김영하
金英夏 | Kim Young-ha
1968년 11월 11일
강원도 화천군
소설가
서울잠일국민학교 (졸업)
신천중학교 (졸업)
잠실고등학교 (졸업)
연세대학교 대학원 (경영학 / 석사)
대한민국 육군 제51보병사단 병장
등단
1995년 《거울에 대한 명상》
무종교
예술가가 될 수 없는 수백 가지의 이유가 아니라, 되어야만 하는 자기만의 단 한 가지 이유가 한 사람을 예술가로 만드는 거예요. 될 수 없는 이유는 중요하지 않아요. 대부분의 예술가가 그렇게 해서 예술가가 된 겁니다.
일출을 백 번 보든 천 번 보든 내 삶에 무슨 상관이 있겠어요. 먹고 사는데 아무 상관 없을지라도 아름다운 것을 보고 감동할 때 내가 인간이라는 것을 알게 돼요.
대한민국의 소설가. 1990년부터 하이텔 등 PC통신을 통해 집필 활동을 시작하여, 1996년 장편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로 제1회 문학동네 작가상을 수상하며 큰 명성을 얻었다. 대표작으로 《검은 꽃》(2003), 《살인자의 기억법》(2013) 등이 있다.
1968년 11월 11일, 강원도 화천군에서 군인인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의 두 아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경상북도 고령군 출신인 아버지는 베트남 전쟁에 파병된 경력이 있다. 귀국하여 강원도 화천에서 근무하던 당시 김영하가 태어난다. 국민학교 때 전학을 무려 6번이나 했고 군부대 관사에 거주하던 때가 많아 친구들과 어울릴 시간이 많지 않았다고 한다. 10살 무렵 경기도 양평군에 살던 때 연탄 가스 중독 사고를 당했는데, 결국 그 이전의 기억은 모두 잃었다고 한다.
국민학교를 7살(만 5세)에 입학했으며, 같은 학년 또래들에 비해 발육이 늦어 체육 활동에 잘 끼지 못할 정도로 내성적이었지만 중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성장하면서는 외향적으로 변했다고 한다. 서울 잠실에서 국민학교(잠일초등학교)부터 중학교(신천중학교)고등학교(잠실고등학교)까지 졸업했다. 대학교 재학 당시 '국악 연구회'에서 대금을 연주했는데, 이 시절의 경험이 <도드리>에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김영하는 이한열 열사와 연세대학교 경영학과 86학번 동기로, 이러한 인연으로 <1987 이한열>이라는 책의 서문을 써 주기도 했다.
부모가 모두 독실한 가톨릭 신자여서 출생 직후에 세례성사를 받았는데 세례명은 안토니오였다. 어렸을 때부터 성당에 꾸준히 다녔으며, 고등학생 때는 가톨릭 수도자가 되려고 진지하게 고민하기도 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소설가가 된 이후로는 더이상 성당에 나가지 않게 되었고 현재는 무교라고 알려져 있다.
자전적 수필('말표 구두약')에 따르면 군 시절을 51사단 헌병대 수사과에서 보냈다고 한다. 원래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학군사관후보생이 되었지만 4학년 여름방학 전방 입소 교육에 불참함으로써 학군단을 탈퇴하였다. 학부 졸업 후 경영학과 대학원에 진학하였다가 대학원 졸업 후에야 입대했다.
대학원 시절과 제대 직후 2차례 유럽 배낭여행을 다녀왔고, EBS 세계테마기행 1회에 출연해 이탈리아를 여행하기도 했다. 2008년 서울의 아파트를 팔고 국립대학 교수직(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을 사직한 후 캐나다 밴쿠버와 미국 뉴욕에서 도합 3년간 장기 체류했다. 2012년 귀국한 뒤로는 부산 해운대에서 3년간 살다가 2015년부터는 현재까지 서울 연희동에 살고 있다.
등단
1995년 「거울에 대한 명상」으로 등단해 이듬해 첫 장편소설인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로 제1회 문학동네 작가상을 수상하였다.
작가 활동
1990년대와 2000년대 젊은 작가 세대를 대표하였던 소설가로, 이제는 명실상부한 한국을 대표하는 중요한 소설가 중 한명이다. 초반에는 도시적 일상을 속도감 있게 장르적으로 풀어낸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장편에서 역사물이나 스파이물, 범죄, SF까지 다양한 시도를 해왔다. 대체로 간결하고 직관적인 문장을 쓰기 때문에 가독성이 좋은 편이다. 주로 젊은 층에서 높은 인기를 얻어왔으며, 2018년 알쓸신잡 출연 이후 대중적으로도 매우 유명해졌다. 2010년 2월 문학동네에서 전집이 출간되었다.
문학동네와 관련이 깊다. 문학동네 초창기에 이미 등단한 김영하가 문학동네에 다시 투고하는 식으로 소설가로서의 활로를 개척했고, 문학동네작가상을 수상하기도 하였으며, 문학동네도 김영하의 책을 내면서 이슈를 많이 만들었기 때문. 문학동네 2013년 겨울호(77호)에 당시 사연이 실려 있다. 문학동네판 세계문학전집 중 위대한 개츠비를 번역하기도 했다. 창비, 문학과지성사에서도 책을 냈지만 최근에 문학동네에서 김영하 전집을 내면서 모든 작품의 출판사가 문학동네로 통일되었다.
작품 활동이 뜸하다가 2010년에 단편집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그들에겐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를 냈다. 일부 문단이나 독자들은 '예전 같지 않다'거나 '작품세계가 변했다'고 평가하기도 했으나, 본인은 '이 단편집에 수록된 글들은 순수히 내 즐거움을 위해 썼다'며 개의치 않았다. 그후 장편 살인자의 기억법이 독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tv프로그램에도 출연하면서 대중적 인기를 얻었으며, 그뒤 출간한 작품집 <오직 두 사람>과 산문집 <여행의 이유>는 수십만부 판매되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의 작품에는 모교 연세대학교가 많이 등장한다. '퀴즈쇼'에서는 주인공이 거리를 돌아다닐 때 가까워서 등장하고, 『무협학생운동』에서는 학교를 패러디한 연희방이 배경, '빛의 제국'에서는 주인공 기영과 그의 아내가 연세대 수학과 출신이다.
국내작가들 중에서 작품이 프랑스, 독일, 미국 등 외국에서 무척 많이 소개된 대표적인 작가인데, 이는 그의 작품 세계에서 통할만한 보편성의 요소를 가지고 있어서겠고, 작가 본인 또한 해외진출에 대해 적극적인 태도를 가진 결과일 것이다. 실제로 그의 작품은 해외번역가들 사이에서 번역하기 편한 글로 꼽힌다고 한다.
2013년 가을부터 뉴욕타임즈 인터내셔널 판에 칼럼을 기고했는데, 칼럼 중에 게임중독법에 관한 글이 있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2014년 4월을 마지막으로 칼럼을 중단하였다. 대한민국이 이전과는 다른 상황에 직면했음을 알았기 때문이라고. 또 본인은 느낌을 중시하는 소설가인데 팩트를 중시하는 칼럼과는 맞지 않았다고 말했다. <오직 두 사람>의 작가의 말에서는 '팩트 따윈 모른다. 그냥 그들을 느낀다.'라고 썼다.
TED에서 강연을 한 적도 있다. 2019년 10월 현재 조회수 200만을 넘었다. 자세한 정보는 하단의 링크를 참조하길 바란다.(TED 강의 영상)
2019년 전자책 구독앱 밀리의서재 모델로 기용되어 1년간 활동했으며, 2020년 7년만의 장편소설 <작별인사>를 밀리의서재 독자들에게 선공개하여 화제를 모았다.
2019년 12월 tvN의 다큐멘터리 <쉬프트>의 <책의 운명> 편에 지식큐레이터 및 나레이터로 출연하였다.
자신의 글이 교과서에 실리는 것에 대해서 엄청나게 반대한다. 정확히 말하면 작품 전체가 아닌 일부를 발췌해놓고서 그것만을 보고 작가가 생각하는 바를 분석하게 하는 교육방식을 매우 안타까워 한다. 문학이란 개개인의 다양한 감상을 공유하고 감수성을 기르는 과정이 되어야 하는데 정해진 하나의 답, 심지어 작가 본인이 의도하지 않은 엉뚱한 내용을 멋대로 정답으로 정해놓고 이를 강요하는 식의 교육을 원치 않는다고. 교과서에 작품 전체를 싣거나 부록으로 엮는 방식은 찬성한다고 한다.
2021년 네이버 오디오클립에서 김영하 작가가 책을 읽어주는 컨텐츠를 제공하고 있다. 현재까지 읽은 책은 <완벽한 아이> <아랑은 왜> <오래 준비해온 대답>이다.
2024년 유료 구독 레터 서비스 <영하의 날씨>를 연재했다. 총 24회차로 매주 화요일 구독자 메일로 발송된다.
성향 및 가치관
개인주의를 매우 중요시한다. 동료 작가들과의 모임도 잘 나가지 않고, 직장 내 회식문화를 엄청 싫어한다.
국내 한정 원조 딩크족으로, 아이를 갖지 않기로 일찍 결정한 것으로 유명하다. 1997년에 결혼을 했지만 슬하에 자식은 없으며, 출산 계획도 없다고 한다. 심지어는 실수로라도 아이가 생기는 걸 막으려고 정관수술까지 받았다. 다만 고양이 2마리와 같이 살고 있다고 책 표지 작가 프로필에 기재한 바 있으며, 고양이와 찍은 사진도 공개했다. 글쓰기의 최소 원칙이라는 책에서 아이를 가지지 않는 이유를 아래와 같이 설명하였다.
"저는 30대 초반에 이미 결정을 내렸어요.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요. 그러면 내 삶이라는 것은 어떻게 되는 것이냐? 그냥 살아지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냥 살아지는 것이라면, 그럼 세계는 뭐냐? 세계는 우리와는 전혀 관계없이 존재하는 것이죠. 저는 우주에 관한 책을 굉장히 좋아해요. 빅뱅 같은 천체물리학에 관한 책들을 좋아하고, 스티븐 호킹의 책도 좋아해요. 그 책들을 보면서 우주에서 신성을 보는 사람도 있지만, 저는 그냥 인간이라는 것은 우주의 한 점 먼지에 불과하다고 생각해요. 휴머니즘의 반대편에 서 있는 것이죠. 인간이 무언가를 할 수 있고, 세계도 바꿀 수 있고, 그밖에 어떤 의미 있는 것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계시는 반면, 저는 그 반대편에 있어요. 저는 인간들은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어리둥절한 채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고, 죽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다가 결국은 죽어 사라지는 존재라고 봐요. 물론 영생에 대한 관념들도 있지만, 저는 그런 관념에는 동의하지 않아요. 그것에 관해서는 뭐랄까, 아주 오래 전부터 도저[한 허무주의를 갖고 있었어요. 제가 20대 후반에 쓴 소설에 나타난 허무주의에 대해서 많은 분들이 "젊어서 그럴 거야"라고 생각했지만, 지금까지 계속 보신 분들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을 거예요. 앞으로도 저는 별로 변하지 않을 것 같아요.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으니까요."
본인도 남성이지만 남성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남성 집단 특유의 문화 때문에, 남성들이 많은 곳에 가면 불편할 정도라고. 같이 어울리는 작가들도 여성 작가들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여자들은 관계지향적인 데 반해, 남자들은 지배를 원한다. 서열을 정하지 않으면 30분도 그냥 앉아 있지 못한다. 만난 지 30분 만에 선배라고 '영하야, 말 놔도 되지', 이러는 거 너무 싫다."
교수직에 있을 때, 학생들에게 글을 쓸 때 '짜증난다'라는 표현을 금지어로 지정했다고 한다. '짜증난다' 라는 단어가 구체적이지 못하고 많은 감정을 뭉뚱그려 표현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문단의 촉망받는 소설가로 2004년 9월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극작과에서 서사창작 전공 교수로 임용되었다. 그러나 2007년 사직하고 돌연 캐나다와 미국으로 떠나 화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산문집 랄랄라 하우스에 따르면 대학시절 연세대 근처 철학관에 가서 사주를 봤는데, 그 도사가 앞으로 뭘 하고싶냐는 질문에 “글쎄요, 혁명군?”이라고 반농담삼아 답했다가 글을 쓰면 잘 풀릴 거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훗날 사람들이 그 철학관이 어디냐고 알려달라는 말을 들으면 그냥 웃어 넘긴다면서 자신은 글쓰는 운명을 피하지 않았다고 맺었다.
지금은 아니지만 KBS 1라디오에서는 평일 밤 10시에 거의 항상 문화 프로그램을 배치해놓았는데, 2006년 4월부터 다음 해 3월까지 진행을 맡은 적이 있었다. 당시 프로그램명은 '김영하의 문화포커스'. 이 당시 진행으로 알게 된 사람들도 제법 있는 듯하다. 2017년 현재 해당 프로그램은 문화공감으로 이어지고 있다.
가수 이적과도 친분이 두터워 KBS 2FM에서 '이적의 드림온'이 방송될 당시에는 고정 게스트로 출연한 적이 있으며 이적의 단편소설집인 『지문사냥꾼』에도 추천사를 써주었을 정도. 동시에 김영하의 『랄랄라 하우스』를 보면 이적의 추천사 비스무리한 것도 나온다. 2017년 개봉한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의 원작소설에도 이적의 추천사가 있다.
취미삼아 쿠키도 굽는 것 같다. 사진은 살짝 어색한 웃음이 포인트.
힐링캠프에 나와서 요즘 한국인들이 살기 힘든 이유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한 마디로, '아프니까 청춘이다' 같은 건 없다는 뜻이다. 해당 프로그램에서 가드닝이 취미라고도 말한 적 있다.
일본 소설가인 무라카미 하루키와 공통점이 매우 많다. 김영하와 무라카미 하루키는 둘 다 외롭게 자라왔던 것과 도시적인 인간들의 삶을 주로 그리는 성향도 비슷하고 방랑벽이 있는 성격에 예술 방면으로도 공통점이 많으며, 둘 다 결혼을 했지만 자녀가 없는 것, 고양이 애호가인 것도 같다. 거기다 둘 다 대학시절 운동권 출신이었고 일찍 그만 둔 것도 똑같다. 집단주의와 집단행동을 혐오하고 개인주의와 문화적 자유주의를 지지하는 것까지 똑같다. 작품 활동 중간에 사회적 사건을 계기로 집필 성향이 조금 바뀐 것도 그렇다. 하루키는 걸프전, 도쿄 지하철 사린가스 살포사건, 고베 대지진 등의 사건들을 계기로 좀 더 사회 참여적인 작품들을 많이 냈으며 1인칭을 고수하던 작법도 3인칭으로 바뀌었다. 김영하도 뉴욕 체류 시절 일어난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집필 스타일이 약간 바뀌었다고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세월호 참사 전과 후에 집필된 단편들이 같이 들어있는 <오직 두 사람>에서 드러난다. 둘은 아직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다고 한다.
유년 시절 전라도, 경상도, 강원도 등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거주하였고 6학년 졸업 직전 서울로 올라왔는데 그로 인해 본인의 인생에 있어서 아주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현재까지 한곳에 1년 이상 거주한 적이 없다고 한다. 국내 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고 거주하면서 생활하고 있다고 한다.
등단 초기 왼쪽 귀에 피어싱을 했었다. 지금은 안하지만 '귀걸이 한 소설가'라는 레테르가 아직도 유효해서 김영하 하면 젊은 작가라는 이미지가 아직도 있다.
2012년부터는 부산에서 살다가 2015년 여름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으로 이사를 갔다. 이사 간 집 바로 앞에서 궁동산 숲을 밀고 빌라를 짓는 난개발이 시작되는 바람에 주민들과 함께 개발에 맞선다. 본인의 페이스북 계정에 현장 사진을 올렸으며, 황석영 등 동료 문인들과 독자들이 연대하여 맞서 개발이 중단되었다. 당시 현장에서 '독자와의 만남'을 열어 전국에서 찾아온 독자, 팬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닷새간 가지기도 했다.
원래 정치적 사안에 나서지 않는 편이었지만 개나리언덕 사태를 겪고 장하나 의원의 후원회장을 맡기도 했다
2017년 5월부터 나영석 PD가 제작하는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에 출연했다. 진행자인 유희열과 다른 출연자로부터 '무슨 소설가가 이렇게 아는 게 많냐?'는 감탄을 자아내게 했으나, 본인은 '소설가들 중에서는 자기는 상식이 없는 축에 속한다'라며 겸손한 답을 내놓았다. 이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일반 대중에게 인지도가 상당히 올라갔는데, 그 예로 프로그램 출연 직전 발간된 <오직 두 사람>은 지난 10년간 가장 많이 팔린 한국 소설집이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위의 사례들로 알 수 있듯 사고 방식이 독특하면서도 주관성이 뚜렷한 소설가로 유명하다.
2018년 2월부터 독서를 권장하는 공익광고에 등장했다. 작가 스스로도 엄청난 다독가다.
이탈리아에서 3달을 있었던 적이 있어서[ 알쓸신잡3에서 피렌체에 있었을 때 식당에서 이탈리아어로 주문하는 모습을 보였다.
2020년 12월부터 인스타그램에서 김영하북클럽을 시작했다. 가입 절차는 따로 없으며 매달 정해진 책을 읽고 #김영하북클럽 해시태그를 달아 자기 피드에 올리면 된다. 월말에 열리는 라이브방송에는 2000명 넘게 동시접속하기도 한다. 여기 선정된 책들은 다수 베스트셀러에 등극하기도 했다.
2022년 서울국제도서전의 홍보대사로 활동했다. 심지어 주제강연을 맡는 연사 중 하나로 참여하며 모든 주제강연 중 가장 먼저 매진될 정도로 화제가 되었다.
2022년 12월부터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인간 잡학사전에 방탄소년단의 RM, 장항준 감독, 물리학자 김상욱 교수, 법의학자 이호 교수, 천문학자 심채경 박사 등과 함께 출연했다.
귄터 그라스와 움베르토 에코, 밀란 쿤데라의 팬이다.
장편 소설
작별인사 김영하
아랑은왜 김영하
나는나를파괴할 1 1 2
검은꽃 김영하
빛의제국 김영하
너의목소리가들려 김영하
살인자의기억법 김영하
퀴즈쇼 김영하
무협학생운동 (1992)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1996): <제1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영화화
아랑은 왜 (2001): 경남 밀양의 아랑전설을 소재로 한 소설.
검은 꽃 (2003): <제35회 동인문학상> 수상작
빛의 제국 (2006): <제22회 만해문학상> 수상작. 연극화.
퀴즈쇼 (2007)
너의 목소리가 들려 (2012)
살인자의 기억법 (2013) - 영화화.
작별 인사 (2023)
단편 소설집
호출 김영하
엘리베이터 김영하
무슨일이 김영하
오직두사람 128198 2
오빠가돌아왔다 김영하
호출 (1997)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1999): <제44회 현대문학상> 수상작 수록
오빠가 돌아왔다 (2003): <제4회 황순원문학상>, <제16회 이산문학상> 수상작 수록. 표제작은 연극(2010년) 및 영화화(2014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2010)
오직 두 사람 (2017): 제9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 <아이를 찾습니다>(드라마화), 제36회 이상문학상 수상작 <옥수수와 나> 수록
2020년부터 김영하 작가의 소설들이 출판사 '복복서가'를 통해 일부 개정을 거쳐 다시 출판되고 있다. 작가 본인의 페이스북 포스트에 의하면 장편 <검은 꽃>은 일부 오류를 포함해 전면적으로 수정했고, <아랑은 왜>는 소설의 해체 후 재조립과 같은 정도의 변화가 있었다고 한다. 단편집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는 몇몇 구시대적 표현의 변경과 문장 다듬기만 이뤄지는 등 작품마다 변화의 정도가 다르다. 장편 <살인자의 기억법> 같은 경우는 기존의 문학동네판을 읽었다면 굳이 다시 살 필요는 없다고 한다.
* 복복서가 출간 및 책 속표지 기재 순서대로 작성했다.
검은 꽃 (장편, 2020)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단편집, 2020)
아랑은 왜 (장편, 2020)
살인자의 기억법 (장편, 2020)
오직 두 사람 (단편집),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장편), 오빠가 돌아왔다 (단편집), 빛의 제국 (장편), 퀴즈쇼 (장편), 너의 목소리가 들려 (장편),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단편집), 호출 (단편집)
작별인사 (장편, 2022년)
산문집
굴비낚시 (2000)
포스트 잇 (2002)
김영하, 이우일의 영화이야기 (2003)
랄랄라 하우스 (2005)
김영하 여행자 하이델베르크 (2007)
김영하 여행자 도쿄 (2008)
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 (2009)
오래 준비해온 대답 (2020)
여행의 이유 (2024)
보다·말하다·읽다 3부작
'보다'는 김영하가 씨네21 등에 기고한 영화 관련 칼럼 및 기타 산문이, '말하다'는 김영하의 강연록이, '읽다'는 김영하가 읽은 소설 감상문이 주를 이룬다. 세 책을 한 권으로 만든 '다다다'가 2021년 2월에 복복서가에서 출간되었다.
보다 (2014)
말하다 (2015)
읽다 (2015)
다다다(2021)
수상 내역
1996 제1회 문학동네 작가상
1999 제44회 현대문학상
2004 제16회 이산문학상
2004 제4회 황순원문학상
2004 제35회 동인문학상
2005 제42회 대종상 각색상
2007 제22회 만해문학상
2012 제36회 이상문학상
2013 제8회 에이어워즈 인텔리전트부문
2015 제9회 김유정문학상
2018 제26회 오영수문학상
2018 제4회 일본번역대상
2020년 독일 독립출판사 문학상
김영하 “한강 노벨상 수상, 동료 작가로서 고맙고 자랑스러워”
한강씨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작가 본인에게도 큰 영광이고, 또한 한국어로 말하고 쓰는 모든 이들에게도 정말 기쁜 소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한국어는 식민지 시대를 거치며 소멸의 위협을 받았던 언어였습니다. 이런 운명에 처했던 언어로 세계문학이라는 성좌에 당당히 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은 해방 이후 끈질기게 우리를 괴롭혀 온 집단적 자존감의 문제였습니다. 한강씨는 한국문학이 세계시민의 언어가 될 수 있고, 이미 되어 있음을 분명히 보여주었습니다. 같은 시대를 살아온 동료 작가의 한 사람으로 고맙고, 자랑스럽습니다. 수상 이후에도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우리 근대사의 아픈 상처를 보듬고, 약자들의 편에서 문학의 존재 의의를 밝혀주시기를 기대합니다. 다시 한번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소설가 한강(54)의 한국 최초 2024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에 동료·선후배 작가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축하 메시지와 함께 기쁜 감정을 활짝 드러냈다.
작가 김영하(56)는 11일 인스타그램에 “작가 본인에게도 큰 영광이고, 또한 한국어로 말하고 쓰는 모든 이들에게도 정말 기쁜 소식이라고 생각한다”며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한국어는 식민지 시대를 거치며 소멸의 위협을 받았던 언어였다”고 썼다.
이어 “이런 운명에 처했던 언어로 세계문학이라는 성좌에 당당히 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은 해방 이후 끈질기게 우리를 괴롭혀 온 집단적 자존감의 문제였다”면서 “한강 씨는 한국문학이 세계시민의 언어가 될 수 있고, 이미 되어 있음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같은 시대를 살아온 동료 작가의 한 사람으로 고맙고, 자랑스럽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