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장하준, 더 나은 자본주의
경제 시민으로서 권리를 찾아 주는 ‘진짜 자본주의’ 경제 지식!
기업은 소유주 이익만 고려하면 되는 걸까? 부자를 더 부자로 만들면 나머지 사람들에게도 그 혜택이 돌아올까? 미국에서 보듯이 경영자들의 보수가 천정부지로 오르는 것은 그만한 생산성을 보이기 때문일까? 기업에 유리한 정책이 국가 경제에도 좋은 결과를 가져올까? 정부의 시장 개입과 복지 확대는 경제 발전을 저해할까? 교육을 더 많이 시키면 나라가 더 부유해질까? 탁월한 경제학자가 없으면 효과적인 경제 정책을 세울 수 없을까?
이 책은 세계적인 경제학자 장하준 교수가 들려주는 ‘더 나은’ 자본주의 이야기다. 저자는 자본주의가 수많은 문제점과 제약에도 불구하고 인류가 만들어 낸 가장 좋은 경제 시스템이라고 말한다. 다만 지난 30여 년간 세계를 지배해 온 특정 자본주의 시스템, 즉 ‘자유 시장’ 자본주의가 문제라는 것이다. ‘경제 시민으로서 권리’를 행사해 의사 결정권자들에게 올바른 길을 선택하도록 요구하는 데 전문 지식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주요 원칙과 기본적인 사실만 알고 있어도 경제 문제에 대해 말할 수 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이 책에서 저자는 경제 지식 부족으로 제대로 말을 못 하는 평범한 사람들에게 알짜배기 지식을 전해 주는 동시에, 지금의 잘못된 자본주의가 아닌 ‘진짜 자본주의’에 대해 알려 주고, 사람들이 ‘경제 시민으로서 권리’를 적극적으로 행사하는 데 필요한 경제 원리를 설명해 준다.
이 책에서는 자유 시장 이론가들이 ‘진실’이라고 팔아 온 사실들이 꼭 이기적인 의도에서 만들어 낸 것은 아닐지라도 허술한 추측과 왜곡된 시각에 기초를 두고 있다는 것을 밝히고자 한다. 즉, 자유시장주의자들이 말해 주지 않는 자본주의에 관한 여러 가지 중요한 진실들을 이야기하는 것이 내 목적이다. 그렇다고 이 책이 반자본주의 성명서는 아니다. 자유 시장 이데올로기를 비판한다고 해서 자본주의 자체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수많은 문제점과 제약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는 인류가 만들어 낸 가장 좋은 경제 시스템이라고 믿는다. 그저 지난 30여 년간 세계를 지배해 온 특정 자본주의 시스템, 즉 자유 시장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싶을 뿐이다. 자유 시장 체제가 자본주의를 운영하는 유일한 방법이 아니며, 지난 30년 동안의 성적표가 말해 주듯 최선의 방법은 더더욱 아니다. 이 책은 자본주의를 더 나은 시스템으로 만들어야 하고, 그렇게 만들 방법이 있음을 보여 준다.
---「서문」중에서
미국은 노예 매매의 자유를 둘러싸고 남북전쟁을 했다.(물론 남북전쟁의 발발에는 상품의 자유 무역, 즉 관세 문제에 대한 이견도 한몫을 했다.) 영국은 아편을 자유롭게 거래하기 위해 중국을 상대로 아편전쟁을 벌였다. 앞에서 언급한 아동 노동의 자유로운 거래에 대한 규제 또한 사회 개혁가들의 투쟁 덕에 가능했던 일이다. 공직과 투표권을 자유롭게 사고파는 행위를 불법화하려는 노력은 유권자를 매수하고 열성 당원들에게 공직을 나누어 주는 방식으로 운영되던 정당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혔다. 이런 관행이 사라진 것은 개혁적 정치 운동, 선거 제도 개혁, 공직자 임용에 관한 규정 개선 등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시장의 경계가 모호하며 객관적으로 결정할 방법이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면, 경제학이 물리학이나 화학 같은 과학이 아니라 정치적 행위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물론 자유 시장을 신봉하는 경제학자들은 우리가 시장의 올바른 경계를 과학적으로 확정할 수 있다고 믿기를 바라겠지만 그것은 틀린 말이다. 연구하는 대상의 경계를 과학적으로 결정할 수 없다면 그것은 과학적 연구라고 할 수 없다. 지금까지 보았듯이 새로운 규제에 대한 반대는 일부에서 아무리 현상태가 부당하다고 지적해도 그대로 고수하자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 또 기존의 규제를 철폐하자는 주장은 시장 영역을 확대하자는 말이나 다름없는데, 시장은 1원 1표 원칙에 따라 작동하는 만큼 돈 있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권력을 주자는 의미이다. 따라서 자유 시장 경제학자들이 시장의 자유를 제한한다는 이유를 들어 특정 규제의 도입을 반대하는 것은, 그 규제를 통해 보호될 권리들을 부정한다는 자신들의 정치적 견해 표명에 불과하다.
---「Thing 1 자유 시장이라는 것은 없다」중에서
잭 웰치의 연설 이후 곧 주주 가치 극대화는 미국 재계의 시대정신이 되었다. 초기에는 이 원칙이 경영자와 주주 모두에게 정말 좋은 것처럼 보였다. 미국 국민소득에서 이윤이 차지하는 비중은 1960년대 이후 감소 추세를 보이다가 1980년대 중반 들어 급격하게 오르더니 이후 계속 증가 추세를 나타냈다. 주주들은 그 이윤 중에서 더 많은 몫을 배당금으로 받아 냈고 주가 상승의 덕을 보았다. 그에 따라 미국 전체 기업 수익에서 배당금이 차지하는 비율은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만 해도 35~45퍼센트 수준이었으나, 1970년대 말 이후로는 꾸준한 증가세를 보여 이제는 약 60퍼센트 수준에 이르렀다. 그 과정에서 경영자들의 보수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랐다(Thing 14 참조). 그러나 계속 오르기만 하는 주가와 두둑한 배당금으로 행복에 젖은 주주들은 경영자들의 보수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이런 행태는 기업의 지배 구조나 경영 문화가 미국과 유사한 영국 같은 나라에는 아주 쉽게, 그렇지 않은 나라에는 그보다 좀 더 시간이 걸려 전파되었다. 전문 경영인들과 주주들 간에 결성된 이 ‘비신성 동맹(unholy alliance)’은 기업의 기타 이해 당사자들을 착취한 자금으로 유지되었다. (기타 이해 당사자들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강한 비영미계 선진국일수록 이 같은 비신성 동맹의 확산이 더뎠던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일자리는 무자비할 정도로 줄었고, 수많은 노동자들은 일단 해고당한 뒤 더 낮은 임금에 복지 혜택도 거의 없다시피 한 비(非)노조원 자격으로 재고용되었다. 임금 인상은 중국이나 인도 같은 저임금 국가로 설비 이전이나 해외 아웃소싱을 통해, 혹은 그렇게 하겠다는 위협만으로도 억제되었고, 납품 업체와 그 종업원들은 지속적인 단가 인하 압박에 시달려야 했다. 정부 또한 법인세가 낮고 기업 보조금이 많은 나라로 설비를 재배치하겠다는 위협으로 인해 끊임없이 법인세 인하 및 보조금 확대 압력에 휘둘려야 했다. 그 결과 소득 불평등은 극심해졌고, 그런 속에서 미국과 영국 국민 대다수는 전례 없는 규모의 빚을 지지 않고서는 겉만 번드레한 번영에 동참할 수 없게 되었다.
---「Thing 2 기업은 소유주 이익을 위해 경영되면 안 된다」중에서
간단히 말해 가난한 나라의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 나라의 동일 직종 종사자들과 붙여 놓아도 지지 않는다. 정작 자기 몫을 하지 못하는 것은 가난한 나라의 부자들이다. 상대적으로 낮은 그들의 생산성 때문에 나라가 가난하다는 말이다. 따라서 가난한 사람들 때문에 나라가 가난하다는 부자들의 불평은 얼토당토않다. 가난한 사람들이 자기 나라 전체를 끌어내린다고 불평하기 전에 가난한 나라의 부자들은 왜 부자 나라의 부자들처럼 자신들이 나라 전체를 끌어올리지 못했는지를 생각해 봐야 한다. 마지막으로, 자신들의 높은 생산성 덕에 자국의 가난한 사람들이 높은 임금을 받을 수 있다는 말에 부자 나라의 부자들이 너무 의기양양할 것에 대비해 한 가지 경고를 하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부자 나라의 어떤 개인이 비슷한 일을 하는 가난한 나라의 개인보다 실질적으로 생산성이 월등히 높은 분야에서조차, 그 격차는 개인의 능력 차라기보다는 시스템의 차이에서 생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부자 나라의 일부 개인이 가난한 나라의 동일 직종 종사자에 비해 생산성이 수백 배나 높을 수 있는 것은 단순히 그들의 머리가 더 좋다거나 교육을 더 잘 받았다는 것만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그들은 더 나은 기술, 더 나은 조직, 더 나은 제도와 물리적 인프라를 가진 경제 환경에서 살기에 그런 성과를 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수 세대에 걸쳐 축적된 집단적인 노력의 산물이다.
---「Thing 3 잘사는 나라에서는 하는 일에 비해 임금을 많이 받는다」중에서
일부 선진국들, 특히 미국과 영국에서는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정보통신 기술 혁명에 마음이 팔려 이제는 ‘구닥다리’ 제조업은 필요 없고 아이디어만 있으면 된다는 잘못된 생각을 했다. 그에 따라 많은 나라들이 ‘탈산업화 사회’의 시대가 왔다고 철석같이 믿고 제조업을 홀대하여 자국 경제를 약화시켰다(Thing 9 참조). 더 걱정스러운 일은 선진국 사람들이 인터넷에 매료되면서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사이의 정보 격차(digital divide)가 국제 문제화되고, 이에 따라 많은 기업이나 자선단체, 개인들이 개발도상국에 컴퓨터와 인터넷 설비를 갖추라고 많은 돈을 기부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과연 정보 격차 해소가 개발도상국들이 가장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것일까? 개발도상국 아이들에게 노트북 컴퓨터를 한 대씩 마련해 주고, 시골 마을마다 인터넷 센터를 세워 주는 것이 도움은 될 터이다. 하지만 그보다는 우물을 파 주고, 전기를 넣어 주며, 세탁기를 구입할 수 있도록 자금을 지원하는 것이 비록 고리타분해 보일지는 모르나 실제로 개발도상국 국민들의 생활을 개선하는 데에는 더 보탬이 되지 않을까? 우물이나 전기, 세탁기 같은 것이 반드시 컴퓨터나 인터넷보다 더 중요하다는 말은 아니다. 단지 많은 기부자들이 돈을 다른 용도로 사용할 경우 거둘 수 있는 혜택을 장기적 관점에서 비용과 비교해 가며 면밀하게 평가해 보지도 않은 채 그저 그럴싸해 보이는 프로그램에 돈을 주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싶을 뿐이다.
---「Thing 4 인터넷보다 세탁기가 세상을 더 많이 바꿨다」중에서
경제 활동을 하는 데 이기심만이 유일한 동기가 아니라는 것을 체계적으로 보여 주는 증거도 수없이 많다. 물론 이기심이 가장 중요한 동기일지는 모르나 유일한 동기라 할 수는 없다. 정직성, 자존심, 이타심, 사랑, 연민, 신앙심, 의무감, 의리, 충성심, 공중도덕, 애국심 등은 모두 우리의 행동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들이다. 고베 철강의 예에서도 볼 수 있듯이 성공적인 기업들은 의심과 이기심보다는 신뢰와 충성심을 바탕으로 돌아간다. 이것이 ‘일개미의 나라’ 일본에서만 볼 수 있는 특이한 예라고 생각한다면 서구에서 출판된 경영 지침서 혹은 성공한 기업가의 자서전 아무거나 한 권만 들춰 보라. 성공적인 경영자가 되기 위해서는 직원들이 농땡이를 부리고 속임수를 쓸 경우에 대비해 늘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말라고 충고하는 경영서가 한 권이라도 있는가? 아마 대부분의 책에서는 어떻게 하면 직원들과 공감대를 형성하고, 그들이 사물을 보는 시각을 바꾸고, 비전을 제시하고, 팀워크를 다질 수 있는지에 관해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을 것이다. 좋은 경영자는 사람이 오로지 자기 이익만을 추구하는 편협한 시각의 로봇이 아님을 안다. 그는 또 사람마다 좋은 면과 나쁜 면이 있는데, 좋은 경영의 비밀은 직원 개개인의 좋은 면을 최대한 살리고, 나쁜 면을 바꿔 나가는 데 있다는 것도 안다.
---「Thing 5 최악을 예상하면 최악의 결과가 나온다」중에서
물가 안정(즉 낮은 인플레이션)과 잦은 금융 위기, 고용 불안 증대 등 물가로 표시되지 않는 경제 불안 요소들이 공존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 현상들은 모두 동일한 자유 시장 정책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연구에서 로고프와 라인하트는 금융 위기를 겪는 나라의 비율과 자유로운 국제적 자본 이동의 허용 정도 사이에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말한다. 국경에 구애받지 않고 자본을 자유롭게 이동시킬 수 있으면 자본의 이용 효율이 높아진다고 믿는 자유 시장 경제학자들은 자본의 자유로운 국제적 이동을 또 하나의 중요한 목표로 삼는다(Thing 22 참조). 이에 따라 자유시장주의자들은 (최근 들어 개발도상국들에게는 조금 더 유연한 자세를 취하기 시작했지만) 모든 나라에 자본 시장을 개방하라는 압력을 꾸준히 가해 왔다. 고용 불안이 커지게 된 것도 마찬가지로 자유 시장 정책의 직접적 결과이다. 1980년대 선진국들의 높은 실업률로 나타난 고용 불안 현상은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긴축적 거시 경제 정책을 추진한 결과였다. 1990년대부터 금융 위기가 터진 2008년 사이, 실업률은 줄었지만 비자발적 고용 종료 위험과 단기 고용 비율이 높아지는 한편, 일의 성격이 수시로 변했고 일의 강도가 높아진 경우가 많았다. 모두 노동 시장의 유연성을 높여서 경제의 효율성을 증대시키겠다는 의도로 노동 시장에 대한 규제를 변화시켰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신자유주의 정책 패키지로도 알려진 자유 시장 정책 패키지의 일련의 정책들은 낮은 인플레이션, 자유로운 자본 이동, 그리고 (노동 시장 유연성이라는 미사여구로 표현되는) 높은 고용 불안정성 등을 중시한다. 기본적으로 금융 자산 보유자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이 정책들이 입안된 것이다. 인플레이션을 억제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은 금융 자산의 수익은 대부분 명목상 고정되어 있어 물가가 오르면 상대적으로 수익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Thing 6 거시 경제의 안정은 세계 경제의 안정으로 이어지지 않았다」중에서
미국이 1830년대에서 1940년대 사이 경제 도약기에 전 세계에서 가장 보호주의적인 정책을 고수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영국 또한 경제가 성장하는 동안, 즉 1720년대에서 1850년대 사이에는 가장 보호주의적인 나라 중의 하나였다. 현대 선진국들 중 유치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보호 무역과 보조금 정책을 사용하지 않은 나라는 거의 없다. 일본, 핀란드, 한국 등 많은 나라가 외국인 투자를 강력하게 규제했다. 1930년대에서 1980년대까지 핀란드는 외국인 지분이 20퍼센트 이상 되는 기업들을 공식적으로 ‘위험 기업’으로 분류했다. 프랑스, 오스트리아, 핀란드, 싱가포르, 타이완 등 여러 나라들이 주요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국영 기업을 세웠다. 자유 무역 정책을 쓰고 외국인 투자를 환영하기로 이름난 싱가포르는 GDP(국내총생산)에서 국영 기업의 생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세계 평균인 10퍼센트의 두 배인 20퍼센트가 넘는다. 현재 부자가 된 나라들 중에 외국인의 지식재산권을 잘 보호해 주었던 나라도 별로 없다. 외국인의 발명품을 내국인이 자기 이름으로 특허 내는 것을 허용하는 나라도 많았다.
---「Thing 7 자유 시장 정책으로 부자가 된 나라는 거의 없다」중에서
기업이 하는 활동 중 가장 단순하기 때문에 해외로 이전하기 제일 좋은 분야라고 할 수 있는 생산 부문마저 대부분의 다국적 기업들은 아직도 본국에 확고한 생산 기반을 가지고 있다. 제품의 대부분을 외국에서 생산하는 네슬레와 같이 예외적인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이런 예는 아주 드물다. 미국에 기반을 둔 다국적 기업들 중 제조 업체들의 해외 생산량은 전체의 3분의 1을 넘지 못하고, 일본 기업들의 해외 생산량 비율은 10퍼센트도 되지 않는다. 유럽에서는 이 비율이 최근 들어 빠르게 증가하고 있지만 유럽 기업들의 해외 생산은 대부분 유럽 내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현상은 유럽 기업들이 진정으로 국적을 초월했다기보다는 유럽연합이라는 새로운 나라에 걸맞은 새로운 기업을 만들어 가는 과정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적합하다. 간단히 말해 진정으로 다국적인 기업은 거의 없다. 대다수의 기업들이 여전히 대부분의 생산을 본국에서 한다. 특히 전략적 의사 결정이나 고급 연구개발 활동은 본국에서 이루어진다. 국경 없는 세계라는 표현은 엄청나게 과장된 표현이다.
---「Thing 8 자본에도 국적은 있다」중에서
요약하자면 부자 나라들의 GDP에서 제조업 비중이 줄어든 주원인은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제조업 제품에 대한 수요가 상대적으로 하락했기 때문이 아니다. 중국이나 다른 개발도상국 제조업 제품의 수입이 대거 늘어나서 그런 것도 아니다. 이런 수입 제품으로 상당한 타격을 입는 것은 몇몇 부문에 국한되어 있다. 이른바 탈산업화 현상은 제조업 부문의 급속한 생산성 향상에 따라 제조업 제품의 가격이 상대적으로 하락하기 때문에 나타난 것이다. 따라서 부자 나라의 국민들은 고용의 측면에서 보자면 ‘탈산업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지 모르지만, 생산의 관점에서 보면 이들 경제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중요성은 아직 ‘탈산업 사회’를 공언할 정도로 줄어들지는 않았다.
---「Thing 9 우리는 탈산업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중에서
우선 다른 나라보다 평균 소득이 높다는 것이 모든 미국 사람들이 다른 나라 사람보다 더 잘산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이것은 소득 분배가 얼마나 균등한가에 따라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문제이다. 어느 나라에서도 평균 소득을 가지고 그 나라 국민이 어떻게 사는지를 정확하게 짐작할 수는 없지만, 소득 분배가 불평등한 나라일수록 평균 소득으로 그 나라 국민의 삶을 짐작하기가 더 어려워진다. 선진국 중 소득 분배 불평등이 월등히 심한 나라가 바로 미국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미국의 1인당 국민소득으로 짐작한 평균 생활수준 이하로 사는 미국 사람들의 수가 다른 나라에 비해 많을 것이라는 추측을 할 수 있다. 생활수준을 나타내는 다른 지표들도 간접적으로 이 추측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국은 구매력 평가 기준으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평균 소득을 기록한 나라임에도 평균 수명과 유아 사망률 같은 보건 지수는 세계 30위에 불과하다. (물론 미국의 비효율적인 의료 시스템 때문에 이 문제가 더 심화되었다고 할 수도 있겠으나 거기까지 들어가지는 말자.) 1인당 평균으로 보았을 때 미국의 교도소 재소자 수는 유럽의 8배, 일본의 12배나 될 정도로 범죄율이 높아 최빈곤층이 다른 선진국에 비해 훨씬 많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Thing 10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잘사는 나라가 아니다」중에서
구조 조정 프로그램과 그 뒤를 이은 이름만 다르고 내용은 같은 빈곤 감소 전략 계획(PRSPs, Poverty Reduction Strategy Papers)과 같은 다른 프로그램들을 시행한 결과 아프리카 경제는 30년 동안 성장을 하지 않는(1인당 국민소득 기준) 정체기를 맞았다. 1980년대와 1990년대에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지역 국가들의 1인당 국민소득은 해마다 0.7퍼센트 정도씩 떨어졌다. 2000년대가 되면서 비로소 성장세를 보이기 시작했지만 지난 20년 동안의 경제 침체로 말미암아 1980년과 2009년 사이 1인당 국민소득의 연평균 증가율은 0.2퍼센트에 불과하다. 결국 ‘더 좋다’는 정책, 즉 자유 시장 정책을 30년 동안 시행한 후 아프리카의 1인당 국민소득은 1980년과 같은 수준에 머물렀다는 의미이다. 결국 이른바 구조적 요인들이라는 말은 자유 시장 경제학자들이 내놓은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자기들이 선호하는 정책이 좋은 결과를 내지 못하자 아프리카의 정체, 혹은 후퇴(이제는 끝이 났지만 지난 몇 년 동안의 1차 상품에 대한 수요 증대에 힘입어 성장률이 올라간 것을 제외하면 사실상 후퇴한 것이나 다름없다)에 대한 다른 설명을 찾아야만 했다. 자신들이 내놓은 그토록 ‘올바른’ 정책 자체가 실패의 원인이었다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1980년대 초 성장이 자취를 감춘 이후에야 아프리카의 미미한 경제 성적이 구조적 문제 때문이라는 주장이 득세하기 시작한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Thing 11 아프리카의 저개발은 숙명이 아니다」중에서
이 책의 다른 부분에서 더 자세히 설명했지만(가장 자세한 설명은 Thing 7, 19 참조) 정부가 유망주를 제대로 골라낸 나라는 한국만이 아니다. 동아시아 경제 기적을 이루어 낸 다른 나라들도 모두 비슷한 일을 해냈다. 약간 더 공격적인 수단이 동원되기는 했지만 한국 정부가 사용한 유망주 고르는 방법은 기본적으로 일본에서 배워 온 것이다. 타이완과 싱가포르 정부 관료들도 수단은 조금 차이가 나더라도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성공적으로 유망주를 고른 점은 한국 못지않았다. 더 중요한 사실은 성공적으로 유망주를 골라낸 것이 동아시아 국가 정부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점이다. 예를 들어 20세기 후반 프랑스나 핀란드, 노르웨이, 오스트리아 정부 등도 보호 무역이나 보조금 지급, 국영 기업에 의한 투자를 통해 산업 발전을 성공적으로 입안하고 지휘했다. 산업 정책을 동원한 적이 전혀 없는 척하는 미국 정부도 2차 대전 이후에는 연구개발 부문에 대규모 지원을 해서 특정 산업이 발전할 수 있도록 유도했다. 컴퓨터, 반도체, 항공기, 인터넷, 생명공학 등은 모두 미국 정부의 연구개발 지원에 힘입어 발전한 대표적인 산업 분야이다. 20세기 초보다 정부의 산업 정책이 조직력과 효과 면에서 훨씬 미약했던 19세기 말, 20세기 초에도 이제는 부자가 된 나라들 대부분이 관세, 보조금 지원, 인허가, 규제책 등을 동원해서 특정 산업을 발전시키는 데 성공한 사례들이 많다.
---「Thing 12 정부도 유망주를 고를 수 있다」중에서
정작 부자들에게 본격적으로 중과세가 부과되기 시작한 후에도 자본주의는 파멸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본주의는 고율의 세금 덕에 더욱 강고해졌다. 2차 대전 이후 대다수의 부유한 자본주의 국가들에서는 누진세제가 퍼지고 사회 복지 지출이 증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부분적으로는 오히려 바로 그 때문에 부유한 자본주의 국가들은 1950~1973년에 사상 최고의 성장률을 기록했다(Thing 21 참조). 이 시기를 우리는 ‘자본주의의 황금기’라 부른다. 황금기 이전에는 부유한 자본주의 국가의 1인당 국민소득은 연간 1~1.5퍼센트 증가하는 정도였다. 그러나 황금기에 1인당 소득은 미국과 영국에서 2~3퍼센트, 서유럽에서 4~5퍼센트, 일본에서는 8퍼센트 성장했다. 그 뒤로는 이 국가들이 이때보다 높은 성장률을 기록한 적은 없다. 그러나 1970년대 중반부터 부유한 자본주의 국가들의 성장률이 떨어지기 시작하자 자유시장론자들은 19세기의 케케묵은 논리를 다시 들고 나와, ‘투자 계급’에게 돌아가는 소득 몫이 줄어든 것이 성장 감소의 이유라고 세상을 설득했다.
---「Thing 13 부자를 더 부자로 만든다고 우리 모두 부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중에서
그런데 미국 CEO들이 해외 CEO들보다 두 배(스위스 CEO와 비교, 스톡옵션 제외)에서 스무 배(일본 CEO와 비교, 스톡옵션 포함)까지 더 가치가 높은 사람들이라면 왜 많은 산업 부문에서 미국 기업들이 일본이나 유럽의 경쟁사들에 뒤지는 것일까? 일본과 유럽 CEO 보수의 절대액이 낮은 것은 그 나라의 일반적인 급여 수준이 미국보다 낮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일본과 유럽 국가들의 급여 수준은 미국과 거의 비슷하다. 경제정책연구소가 조사한 2005년 13개국의 노동자 급여 평균은 미국의 85퍼센트였다. 그중 일본 노동자들은 미국 노동자들의 91퍼센트를 받는 반면에 일본 CEO들은 스톡옵션을 제외하고도 미국 CEO 보수의 25퍼센트밖에 받지 않았다. 스위스와 독일 노동자들은 미국 노동자들보다 보수가 오히려 더 높아서 각각 미국 노동자 평균 보수의 130퍼센트와 106퍼센트를 받는 반면에 CEO 보수는 미국의 55퍼센트와 64퍼센트에 지나지 않았다. 더욱이 이 수치는 미국 CEO들이 훨씬 많이 받는 스톡옵션을 제외한 것이다.5 이렇게 볼 때 미국 경영자들은 너무 비싸다. 미국 노동자들은 경쟁국에 비해 15퍼센트밖에 더 받지 않는 반면에 CEO들은 적게는 두 배(스위스와 비교, 스톡옵션 제외)에서 많게는 스무 배(일본과 비교, 스톡옵션 포함)를 받는다. 그럼에도 미국 기업들의 실적은 일본과 유럽 경쟁사들과 비슷하거나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Thing 14 미국 경영자들은 보수를 너무 많이 받는다」중에서
이런 관점에서 보면 개발도상국이 가난한 것도 그 나라에 기업가 정신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개발도상국에 관광을 다녀온 부자 나라 사람들은 이야기한다. 나무 그늘에서 허구한 날 차만 마시고 앉아 있는 사람들을 보라, 정말이지 저런 나라가 가난에서 빠져나오려면 진취적이고 능동적인 사람들, 즉 기업가 정신을 지닌 사람들이 필요하다고. 그러나 개발도상국 출신이거나 그런 나라에서 한동안 살아 본 사람이라면 개발도상국이 기업가 정신을 지닌 사람들로 넘쳐 난다는 것을 잘 안다. 가난한 나라의 거리에는 상상할 수 있는 한도 내의 모든 물건을 내다 파는 남녀노소로 가득하다. 심지어 돈으로 살 수 있을 것이라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것까지 살 수 있다. 수많은 가난한 나라에서는 미국 대사관 비자 담당 창구 앞에 길게 늘어선 줄의 앞자리, 주차한 차를 ‘지켜 주는’ 서비스, 길모퉁이에 노점을 차리고 음식을 팔 수 있는 권리, 심지어 엎드려 구걸할 수 있는 자리까지도 돈을 주면 살 수 있다. 각각 직업적으로 미국 대사관 앞에서 줄을 서 주는 사람, 돈을 내지 않으면 주차된 차에 해코지를 하는 깡패들, 부패한 경찰서장, 그 지역을 주름잡는 폭력배 등이 이런 서비스를 파는 장본인일 것이다. 형태야 어찌 되었든 모두 인간의 창의성과 기업가 정신의 극단적인 모습을 보여 주는 예가 아닌가? 선진국 사람들의 기업가 정신은 그들의 발끝도 따라가지 못한다.
---「Thing 15 가난한 나라 사람들이 부자 나라 사람들보다 기업가 정신이 더 투철하다」중에서
금융 전문가인 펀드 매니저들, (영국의 HSBC나 스페인의 산탄데르처럼 세계 최대 은행들이 포함된) 큰 은행의 임원들,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치는 경제학 교수들이 많이 있는 뉴욕 대학교나 바드 칼리지 같은) 세계 최고 수준의 대학들까지 메이도프가 벌인 똑같은 사기극에 놀아났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문제는 메이도프나 앨런 스탠퍼드(Alan Stanford) 같은 사기꾼들의 존재만이 문제가 아니라는 데에 있다. 합법적인 금융업도 은행가나 여타 금융 전문가들이 상황 파악도 제대로 못하고 있는 예가 비일비재했던 것이다. 2008년 여름, 한 은행가가 “이제부터 우리는 대출에 관련된 리스크가 파악될 때에만 대출할 것입니다”라고 말해 앨리스터 달링(Alistair Darling) 영국 재무 장관을 경악하게 만든 적이 있다. 그렇다면 당시까지 그들은 리스크를 파악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대출해 주었다는 말인가? 이보다 훨씬 더 충격적인 사례도 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미국의 보험 회사 AIG가 파산(AIG는 2008년 가을 미국 정부로부터 구제 금융을 받았다)하기 겨우 6개월 전, 이 회사의 최고재무책임자(CFO) 조 카사노(Joe Cassano)는 이렇게 말했다. “경솔하게 들릴지 몰라도 적어도 신용부도스와프(CDS) 거래에서는 1달러라도 손실을 입을 가능성이 있는 시나리오는 상상하기도 어렵다.” 이 발언이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AIG는 파산했는데, 그 원인은 본업인 보험 사업이 아니라 신용부도스와프 거래에서 기록한 4410억 달러의 손실이었다. 대다수 독자들, 특히 카사노가 저지른 초대형 금융 사고를 세금으로 메워야 하는 미국 납세자들은 그의 ‘경솔하게 들릴지 모르는 발언’을 웃어넘길 마음이 나지 않을 것이다. 이렇듯 금융 경제학 분야의 노벨상 수상자, 은행장, 날고 긴다는 펀드 매니저, 명문 대학과 세상에서 가장 똑똑하다는 유명 인사들까지도 자신이 하고 있는 일 그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데 어떻게 인간은 합리적이라는 가정 위에서만 성립하는 경제학 이론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말인가. 결국 우리 인간은 시장에 모든 것을 맡겨도 될 만큼 똑똑하지는 않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이런 결론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무엇인가? 시장에 모든 것을 맡겨도 괜찮을 만큼 우리가 똑똑하지 않은데, 시장에 대한 규제는 가능한 것일까? 대답은 ‘그렇다’이다. 아니, 사실은 그 이상이다. 많은 경우 우리가 똑똑하지 않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규제가 필요하다.
---「Thing 16 우리는 모든 것을 시장에 맡겨도 될 정도로 영리하지 못하다」중에서
교육 말고도 한 나라의 경제 실적을 결정하는 요인은 많다. 그러나 위에서 든 사례들을 보면 여러 요인 중에서도 교육이 동아시아 경제 기적의 주요 요인이었다는 신화에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경제 발전 초기에 동아시아 국가들의 교육 수준이 높지 않았던 반면에 필리핀이나 아르헨티나 같은 나라는 교육 수준이 더 높았음에도 경제적으로 그다지 좋은 성적을 올리지 못했던 것이다. 이것과는 완전히 대조적인 경우인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국가들의 사례를 봐도 교육에 대한 투자를 늘린다고 해서 꼭 경제가 더 나아지는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1980년에서 2004년 사이에 이 지역 문맹률은 60퍼센트에서 39퍼센트가 되어 눈에 띄는 감소 추세를 보였음에도, 같은 기간 1인당 국민소득은 매년 0.3퍼센트가 떨어졌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믿는 것처럼 교육이 경제 발전에 그토록 중요하다면 이런 일은 절대 있을 수 없다. 교육이 경제 성장에 별달리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증거는 여기서 예로 든 동아시아 국가들이나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국가들처럼 극단적인 경우에서만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더 일반적인 현상이다. 세계은행에서 오랫동안 근무하고 하버드 대학에서 경제를 가르치고 있는 랜트 프릿쳇(Lant Pritchett) 교수가 「교육은 전부 어디로 사라져 버렸는가?」라는 제목으로 2004년에 발표한 논문에서는 1960년에서 1987년 사이의 기간 동안 수십 개의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에서 모은 자료를 토대로 교육이 경제 성장에 긍정적인 효과를 끼쳤는지 여부를 살펴본다. 널리 인용되는 이 논문에서 프릿쳇 교수는 교육 수준이 높아진다고 해서 경제 성장이 촉진된다는 증거는 거의 없다고 결론지었다.
---「Thing 17 교육을 더 시킨다고 나라가 더 잘살게 되는 것은 아니다」중에서
이 같은 결정은 최소한 GM의 입장에서는, 그리고 적어도 결정을 내릴 당시에는 최선의 선택이었을 수 있다. 결국 최소한의 노력으로 기업의 수명을 몇십 년 더 연장시킬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 선택은 나머지 미국 경제에는 좋지 않은 결정이었다. GM을 구제하느라 미국 납세자들이 떠안게 된 막대한 금액이 바로 결정적인 증거이다. 보호 무역을 위한 로비를 하고 더 작은 경쟁사들을 사들이는 한편 금융 분야에 손을 뻗치는 대신, 누군가 GM으로 하여금 더 나은 차를 만들어 내는 데 필요한 기술과 설비에 투자하도록 했다면 미국에 더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최소한의 노력으로 GM이 겪는 어려움을 모면하게 했던 그 조처들마저도 궁극적으로는 GM에 좋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물론 경영진이나 끊임없이 바뀌는 주주단과 GM을 동일시하지 않을 경우에 한해서이지만 말이다. GM의 경영진들은 노동자, 하청 기업, 그리고 그 하청 기업의 고용인들과 같이 상대적으로 약한 ‘이해 당사자’들을 쥐어짜고 생산성 향상에는 투자하지 않음으로써 높은 이윤을 창출하고, 그 대가로 말도 안 되게 높은 보수를 챙기는 한편, GM의 미래를 위험에 빠뜨릴 정도로 높은 배당금과 자사주 매입 등의 방법으로 주주들의 입을 막았다. 주주들 또한 이런 현상을 전혀 우려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런 관행을 조장하기까지 했다. 대부분이 기업의 장기적 미래에는 관심이 없는 부동 주주들로 상황이 나빠지면 바로 떠날 수 있는 자본이었기 때문이다. GM의 사례는 기업의 이익과 국가의 이익이 충돌할 가능성에 대한 유익한 교훈을 준다. 즉 기업에 좋은 것, 그것이 아무리 중요한 것일지라도 국가에 좋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 더해 이 사례는 회사를 구성하는 이해 당사자들도 서로 충돌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경영진이나 단기 주주들과 같은 일부 이해 당사자들에게 좋은 것이 노동자나 납품 업체 등 다른 이해 당사자들에게는 좋지 않을 수 있다. 이는 결국 단기적으로 기업에 좋은 것이 장기적으로는 기업에 결코 좋지 않을 수 있다는 것, 즉 오늘의 GM에 좋은 것이 내일의 GM에는 좋지 않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Thing 18 GM에 좋은 것이 항상 미국에도 좋은 것은 아니다」중에서
공산주의 체제가 실질적으로 사라졌다고 해서 경제 계획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비록 공산주의 국가에서 중앙 계획 당국이 추진했던 것처럼 전면적인 방식은 아니지만 자본주의 국가의 정부 역시 경제를 계획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자본주의 경제에서도 예를 들어 전시(戰時)처럼 중앙 계획이 더 효율적인 상황이 있다. 이를테면 2차 대전 당시 교전국 중 주요 자본주의 국가였던 미국, 영국, 독일은 단지 계획 경제라는 이름만 사용하지 않았을 뿐 모든 것을 중앙에서 계획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많은 자본주의 국가들이 ‘유도 계획’을 성공적으로 사용해 왔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자본주의 국가에서 정부가 전략 사업에 대한 투자, 사회 기간 시설 개발, 수출 증진 등 주요 경제 변수에 관해 대강의 목표를 세운 다음 민간 부분과 충돌이 아닌 협조를 통해 그 목표를 이루려 노력을 기울이는 방법을 말한다. 중앙 계획 시스템과 달리 유도 계획의 목표는, ‘유도’라는 단어가 의미하듯이 법률적 구속력을 갖지는 않는다. 하지만 정부는 보조금 지급, 시장 독점권 부여 등 다양한 당근과 각종 규제, 국영 은행을 통한 자금 압박 등 채찍을 뜻대로 활용하며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한다. 1950년대와 1960년대에 걸쳐 프랑스는 유도 계획을 통해 투자 확대와 기술 혁신에 성공하면서 영국을 제치고 유럽 2위의 산업 강국으로 떠올랐다. 또 핀란드나 노르웨이, 오스트리아 같은 다른 유럽 나라들도 1950년대부터 1970년대 사이에 같은 방법을 통해 경제 고도화에 성공했다. 동아시아의 기적을 일궈 낸 일본, 한국, 타이완의 경우에도 1950년대부터 1980년대 사이에 유도 계획을 활용했다. 그렇다고 유도 계획을 쓴 모든 나라가 성공했다는 말은 아니다. 인도 같은 사례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럽과 아시아의 이 같은 성공 사례들을 보면 어떤 형태의 경제 계획은 자본주의 체제와 양립할 수 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오히려 자본주의의 발전을 촉진할 수도 있음을 알게 된다. 더욱이 경제 전체에 대해 명시적으로, 하다못해 유도적인 방법으로라도 계획을 하지 않는 경우에도 대다수 자본주의 국가의 정부가 핵심 부문에 대한 계획만큼은 세우고 추진하는 것이 사실이며, 이런 정책은 결국 전체 경제에 영향을 미친다.
---「Thing 19 우리는 여전히 계획 경제 속에서 살고 있다」중에서
복지 정책에 필요한 돈을 마련하기 위해 부자들에게서 상대적으로 세금을 너무 많이 걷으면 그들은 부를 창출할 의욕을 잃게 되고, 일을 열심히 하건 말건 혹은 일 자체를 하건 말건 최저 수준의 생활을 보장해 준다면 가난한 사람들 역시 일을 해야겠다는 동기를 잃을 것이다(Thing 21 참조). 자유 시장 경제학자들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 결과의 불평등을 줄이려는 시도는 결국 모든 사람에게 해가 되고 만다고 주장한다. 들인 노력과 얻는 결과 사이에 아무런 연관성이 없었던 마오쩌둥의 협동농장처럼 지나치게 결과의 균등을 추구할 경우 사람들이 일을 하고자 하는 욕구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맞는 말이다. 이는 또한 공평하지 못한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나는 진정으로 공평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는 결과의 균등을 꾀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믿는다. 문제는 균등하게 주어진 기회를 통해 혜택을 보기 위해서는 그 기회를 잘 이용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남아프리카공화국 흑인들은 이제 백인들과 똑같이 보수가 높은 직업을 구할 수 있는 기회가 보장되지만 그 직업에 적합한 교육을 받지 못했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흑인들은 이제 과거 백인들만 다니던 좋은 대학에 입학할 수 있지만, 읽고 쓰기도 제대로 못 하는 역량 미달의 교사들만 있는 가난한 학교 출신이면 명문 대학에 입학할 확률은 여전히 희박할 뿐이다.
---「Thing 20 기회의 균등이 항상 공평한 것은 아니다」중에서
복지 제도 규모가 서로 다른 나라들의 경제 성장률은 어떻게 차이가 날까? 앞에서도 설명했다시피 복지 제도의 규모가 작을수록 경제가 더 역동적이리라는 게 통념이다. 그러나 실제 보이는 증거는 이 통념을 뒷받침해 주지 않는다. 1980년대까지 미국은 유럽 여러 나라에 비해 복지 제도가 미비한데도 훨씬 낮은 성장률을 보였다. 1980년 GDP에서 공공 사회 지출이 차지하는 비율은 유럽연합 15개국이 19.9퍼센트인 데 반해 미국은 13.3퍼센트에 불과했다. 스웨덴은 이 비율이 28.6퍼센트에 달했으며 네덜란드는 24.1퍼센트, 독일(서독)은 23퍼센트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1950년부터 1987년 사이에 미국은 유럽 어느 국가보다 성장 속도가 더뎠다. 이 기간 동안 1인당 국민소득의 증가율을 보면 독일이 연 3.8퍼센트, 스웨덴이 연 2.7퍼센트, 네덜란드가 연 2.5퍼센트를 기록한 데 반해 미국은 연 1.9퍼센트에 그쳤다. 물론 복지 제도의 규모는 한 나라의 경제 실적을 결정하는 여러 요인 중의 하나에 불과하지만, 이 숫자들은 복지 제도가 잘 갖춰져 있다고 해서 높은 성장률을 올리지 못하는 것은 아님을 입증하고 있다.
---「Thing 21 큰 정부는 사람들이 변화를 더 쉽게 받아들이도록 만든다」중에서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동일한 실물 자산, 즉 최초로 주택 담보 대출에서 담보로 사용되었던 집들과 그 집 소유자들의 경제 활동들이 새로운 자산을 ‘파생’시키기 위해 반복해서 사용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아무리 천재적인 금융 상품을 만들어 놓아도 결국 이 자산들이 기대한 만큼의 수익을 낼 수 있는지 여부는 최초로 담보 대출을 했던 그 수십만 명의 노동자와 중소기업가들이 대출 융자금을 꼬박꼬박 상환하는지에 달려 있다. 결국 이른바 금융 혁신의 결과는 실물 자산이라는 기초 위에 금융 자산이라는 빌딩을 끝없이 높게 쌓아 올린 끝에 전체 건물이 흔들거리는 꼴이다. (물론 실물 자산이라는 기초 자체도 금융 활동에 의해 부분적으로 넓어지고 튼튼해진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기초가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빌딩이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인 만큼 지금은 이 문제에 집중하자.) 만약 어떤 빌딩을 기초의 확장 없이 높이 쌓는 공사만 한다면 그 건물이 무너질 가능성 또한 올라갈 수밖에 없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고 더 심각해진다. 금융 상품의 경우 ‘파생’이 되면 될수록 금융 상품을 궁극적으로 떠받치는 실물 자산과의 거리도 멀어지며, 이에 따라 점점 더 그 파생 금융 상품의 정확한 가격을 매기기가 힘들게 된다. 이는 기초를 강화하지 않은 상태에서 기존 건물의 층수만 올린다는 의미일 뿐 아니라 층수가 올라갈수록 품질이 불확실한 자재를 사용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철저하게 현실적인 투자 원칙을 지키는 것으로 유명한 미국의 투자자 워런 버핏이 2008년 금융 위기를 통해 파생 금융 상품의 파괴력이 드러나기도 전에 이를 ‘대량 금융 살상 무기(Weapons of Financial Mass Destruction)’라 일컬었던 것도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Thing 22 금융 시장은 보다 덜 효율적일 필요가 있다」중에서
과거 20여 년간 우리는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세계 최고라는 금융 규제 당국자들에서부터 세계 명문 대학 경제학과 출신의 재능 있고 젊은 투자 은행가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자격을 갖춘 전문가들로부터 세계 경제는 잘 돌아가고 있다는 소리를 되풀이해서 들어 왔다. 경제학자들이 드디어 빠른 성장과 낮은 인플레이션을 유도하는 마법의 공식을 발견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사람들은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은 아주 적당한 수준의 ‘골디락스’ 경제에 관해 떠들었다. 세계에서 돈의 규모로나 이데올로기의 영향력으로나 가장 강력한 경제를 20여 년간 관리해 온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전 의장 앨런 그린스펀은 워터게이트로 유명해진 저널리스트 밥 우드워드가 그에 관해 쓴 전기 제목처럼 ‘마에스트로’라는 칭송을 받았다. 그의 뒤를 이은 벤 버냉키는 인플레이션을 길들이고 부침이 심한 경기 변동이 없는 ‘대안정(Great Moderation)’을 이야기했다(Thing 6 참조). 따라서 똑똑한 경제학자들이 모든 문제를 잘 해결하고 있으리라 믿고 있던 여왕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에게 일이 이렇듯 엄청나게 잘못되었다는 것은 정말 수수께끼가 아닐 수 없었다. 유수의 명문 대학에서 학위를 따고 난해한 수학 방정식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무장을 한 이 영리한 사람들이 어떻게 그렇게 틀릴 수 있다는 말인가?
서론
Thing 1 자유 시장이라는 것은 없다
Thing 2 기업은 소유주 이익을 위해 경영되면 안 된다
Thing 3 잘사는 나라에서는 하는 일에 비해 임금을 많이 받는다
Thing 4 인터넷보다 세탁기가 세상을 더 많이 바꿨다
Thing 5 최악을 예상하면 최악의 결과가 나온다
Thing 6 거시 경제의 안정은 세계 경제의 안정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Thing 7 자유 시장 정책으로 부자가 된 나라는 거의 없다
Thing 8 자본에도 국적은 있다
Thing 9 우리는 탈산업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Thing 10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잘사는 나라가 아니다
Thing 11 아프리카의 저개발은 숙명이 아니다
Thing 12 정부도 유망주를 고를 수 있다
Thing 13 부자를 더 부자로 만든다고 우리 모두 부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Thing 14 미국 경영자들은 보수를 너무 많이 받는다
Thing 15 가난한 나라 사람들이 부자 나라 사람들보다 기업가 정신이 더 투철하다
Thing 16 우리는 모든 것을 시장에 맡겨도 될 정도로 영리하지 못하다
Thing 17 교육을 더 시킨다고 나라가 더 잘살게 되는 것은 아니다
Thing 18 GM에 좋은 것이 항상 미국에도 좋은 것은 아니다
Thing 19 우리는 여전히 계획 경제 속에서 살고 있다
Thing 20 기회의 균등이 항상 공평한 것은 아니다
Thing 21 큰 정부는 사람들이 변화를 더 쉽게 받아들이도록 만든다
Thing 22 금융 시장은 보다 덜 효율적일 필요가 있다
Thing 23 좋은 경제 정책을 세우는 데 좋은 경제학자가 필요한 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