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6년 6월 10일 순종의 장례일[인산일(因山日)]을 기해 만세시위로 일어난 학생중심의 민족독립운동. 1919년 3·1운동의 소용돌이 속에 해외 각지에서 움텄던 독립운동도 미국이나 서구열강의 원조가 소극적이고 일제의 교묘한 술책과 탄압에 점차 힘을 잃어가고 있었다. 또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상하이[上海]에 모인 청년정객들의 이상주의에 불과하여 처음부터 많은 분란과 오해의 요인을 안고 수립된 망명정부였다. 그런데 1921년 레닌정부에서 보내온 독립원조자금문제와 1925년 이승만(李承晩)대통령 면직결의 등의 문제가 불거져 나오면서 결정적으로 난파상태에 빠져들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만주의 무장독립투쟁도 1920년 청산리대첩으로 절정을 이룬 뒤, 일제의 대토벌로 인해 러시아방면으로 밀려났다가, 192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