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8년 만주 북간도에 세웠던 민족교육기관.
1906년에 설립되었다가 1년 만에 폐교된 서전서숙(瑞甸書塾)의 민족교육정신을 계승하여, 김약연(金躍淵)의 주도로 서전서숙을 나온 김학연(金學淵) 등 애국지사들이 1908년 4월 27일 화룡현 명동촌(和龍縣 明東村)에 설립하였다.
1908년 4월 명동촌(明東村)에 있던 사숙을 통합하여 명동서숙(明東書塾)을 세웠다. 숙장(塾長)에 박무림(朴茂林), 숙감(塾監)에 김약연, 재정에 문치정(文治政), 교사에 김학연·남위언(南葦彦) 등이 취임하였다.
1909년 명동서숙은 이름을 명동학교로 바꾸고 김약연이 교장에 취임하였다.
1910년 3월 에 명동중학교(明東中學校)를 병설하고 교장에 김약연이 취임하였으며, 교사는 국사에 황의돈(黃義敦), 윤리에 박태환(朴泰煥), 한글에 장지영(張志暎) 등이 초빙되었다.
그 밖에 박태식·최기학·송창희·박경철·김성환·김승근 등의 교사가 있었으며, 그 뒤 김철·박일·박상환·김치관 등이 교사로 부임하면서 간도·함경도 일대 및 연해주에서까지 입학생이 찾아왔다. 이로써 학교의 발전은 물론 교육내용도 더욱 충실해져 갔다.
1911년 에는 이동휘(李東輝)가 명동에 와서 여성교육의 필요성을 역설하여 명동학교에 여학교를 병설하고, 교사에 정신태(鄭信泰)·이의순(李義順)·우봉운(禹鳳雲) 등이 취임하였다.
명동학교의 교과목은 역사·지지(地誌)·법학·지문(地文)·박물(博物)·이화(理化)·생리(生理)·수신·수공(手工)·신한독립사·위생·식물·사범교육학·농림학·광물학·외교·통역·대한문전·신약전서·중국어·작문·습자·산술·체조·창가 등이었다.
교육목표는 항일독립정신에 두었는데, 한 예로 입학시험 및 작문시험에 반드시 애국과 독립의 내용을 포함시켰으며, 매주 토요일에는 토론회를 열어 민족독립사상을 고취시키는 교육을 실시하였다.
3·1운동 때에는 주민과 더불어 대대적으로 독립운동을 하여 많은 희생자를 내었다. 이와 같은 항일교육에 대해서 일제는 명동학교를 조선인 독립운동의 소굴이라 하여 1920년 10월 에 훈춘사건(琿春事件)을 조작, 학교를 소각시키고 교장을 구속하였다. 그 뒤 학교를 재건하였으나 일제의 탄압과 재정난으로 1925년에 폐교되었다.
개교 이래 17년 동안 1,000여 명의 애국청년들이 명동학교를 졸업하였다. 명동학교는 서전서숙과 함께 재만한국인을 위한 민족교육의 주류였으며 민족교육기관의 원조로서, 인재를 양성하여 독립운동가 및 민족교육자로 배출, 재만한국인사회에서 자주독립을 위해 투쟁하게 한 요람지였다
공무원 두문자 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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