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난 아득한 절벽 옆에 서 있어. 내가 할 일은 아이들이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으면, 재빨리 붙잡아 주는거야. 애들이란 앞뒤 생각 없이 마구 달리는 법이니까 말이야. 그럴때 어딘가에서 내가 나타나서는 꼬마가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거지. 온종일 그 일만 하는 거야. 말하자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나 할까. 바보 같은 얘기라는건 알고 있어. 하지만 정말 내가 되고 싶은 건 그거야.”
1951년에 발표된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의 소설. 미국을 대표하는 현대 소설
줄거리
성적이 나쁘고 친구 및 교사와도 사이가 원만하지 않아 펜시 기숙고등학교에서 쫓겨난 주인공 홀든 콜필드(Holden Caulfield)가 뉴욕을 방황하던 3일간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이다. 홀든은 위선자들이 판치는 학교를 떠난다는 핑계로 퇴학을 당하기 전에 먼저 뉴욕으로 떠난다. 그러고는 뉴욕의 술집, 호텔, 클럽 등을 전전하며 우울한 기분을 떨쳐내려고 하지만 어딜 가나 위선자들이 판을 친다. 결국 환멸을 느낀 주인공은 여동생 피비(Phoebe)에게 돌아가고, 동생이 회전목마를 타며 즐거워하는 순수한 모습에 오빠미소를 지으며 힐링한 홀든은 그렇게 3일 간 가출일기의 막을 내린다.
지금 기준으로 봐도 수위가 꽤 높은 용어가 많이 나온다. 혼전성교나 매춘 등등 당시 기준으론 비도덕적이라고 할 만한 요소가 많이 나오기 때문에 책이 출판된 당시엔 큰 논란거리가 되었다.
한 때 할리우드에서 본 소설을 영화화하자고 제안한 적이 있지만 샐린저는 "홀든이 싫어할까 봐 싫다."는 이유로 거절했다고 한다. 그나마 숀 코너리 주연으로 촬영한 영화 《파인딩 포레스터》는 이렇게 은거하던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를 모티브로 삼았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시리즈에서 표지에 작가의 사진 또는 작품의 내용을 상징하는 그림이 없는 몇 안 되는 책 중 하나다. 책 뒷면에도 작품 소개가 쓰여 있지 않으며 저자 소개에도 작품 목록만 달랑 쓰여 있는데 이는 저자의 요구에 의한 조치다. 2001년 초판본에는 표지 그림이 있다. 나중에 표지 그림과 작가 약력을 엽서 형태로 끼워주는 식으로 출판이 되었다. 2019년 이후로는 "세계문학전집 47", 번역자 이름도 지워지고 동봉되었던 엽서도 사라져서 더 허전해진 편이라고 한다.
작가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는 원래 은둔하는 걸 좋아하기도 했고 이 소설의 인기를 그리 달갑게 여기지 않았던지라 수십년 간 은둔 생활을 하다가 결국 2010년 1월 29일 향년 91세로 사망했다. 상당수의 반응이 안타까움 반, "그 양반 아직 살아있었어?"가 반이었다.
제목 및 주인공의 이름의 유래
"내가 할 일은 아이들이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으면, 재빨리 붙잡아주는 거야. 애들이란 앞뒤 생각 없이 마구 달리는 법이니까 말이야. 그럴 때 어딘가에서 내가 나타나서는 꼬마가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거지. 온종일 그 일만 하는 거야. 말하자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나 할까. 바보 같은 얘기라는 건 알고 있어. 하지만 정말 내가 되고 싶은 건 그거야. 바보 같겠지만 말이야."
이러한 홀든의 심리를 반영하듯 그의 이름은 여러 모로 의미심장하다. 홀든 콜필드(Holden Caulfield)의 Holden은 hold의 과거분사형으로 '잡힌', '붙들린'이란 뜻이다. 아무래도 예비학교에 붙잡힌 홀든의 처지와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어 어른의 단계로 떨어지려하는 순수한 아이들을 잡아주려는 그의 포부를 드러내는 중의적인 이름인 듯 싶다.
평가 및 영향
나는 지금 내가 최고로 평가하는 것을 생각하고 있다: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 아마도 이것은 내가 말하려고 했던 것을 아주 완벽하게 표현하기 때문일 것이다. (I am thinking now of what I rate the best one, Salinger's Catcher in the Rye, perhaps because this one expresses so completely what I have tried to say.)
― 윌리엄 포크너#
추악한 위선과 가식들로 얼룩진 세상을 바라보는 상처받은 청소년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명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출판 당시 전 세계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소위 '콜필드 신드롬'이 유행했는데 이는 주인공 홀든 콜필드처럼 위선적인 기존 사회에 저항하고 본연의 가치와 순수를 찾으려는 청소년들의 성장통을 말한다. 출간된 지 반백 년이 지난 지금도 수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으며 명실공히 스테디셀러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인생 책으로 꼽는 사람들도 많은만큼 현재까지도 높은 인기와 인지도를 보유 중이다.
글 자체로 보아도 영어의 언어적 특성을 아주 잘 살린 작품이다. 소리 내어 읽어보면 산문이면서도 언어의 운율과 리듬감을 아주 잘 살리고 있어서 읽는 맛이 있다.
바로 이러한 점 때문에 영미권의 웬만한 학교에서는 Advanced Placement 대비를 위한 필수요소로 자리잡았다. 읽기도 쉽고 분석할 만한 가치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이 책을 안 읽었다고 하면 경악에 찬 주위 사람들의 표정을 감상할 수 있고, 이 책 한 권으로 웬만한 AP 에세이는 돌려막기가 가능하다. 비유하자면 미국판 《소나기》로 볼 수 있겠다.
독자에 따라 평이 극과 극으로 갈리는 소설로 유명하다. 호평하는 사람들은 '과연 명작이다', '너무 공감된다'며 극찬하지만 악평하는 사람들은 '이게 왜 명작인지 모르겠다', '기행이 너무 심함', '홀든이 너무 찌질하다', '성적인 단어가 너무 많이 나온다' 식으로 대차게 깐다. 이 책이 학생들간에 토론거리로 뜨면 한 시간 정도는 가볍게 넘길 수 있고 페이스북 같은 사이트에서 이 책이 토픽으로 뜨기라도 한다면 평소엔 얌전한 학생들이 순식간에 키배를 뜨는 기적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작가의 의도를 잘못 읽은 것으로, 이 작품은 주인공 홀든의 있는 그대로의 심리 묘사 그 자체가 뛰어난 것이며, 그런 점이 독자들에게 공감을 주는 것이다. 작가는 결코 이 작품에서 홀든의 행동을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그저 있는 그대로 홀든 콜필드의 심리를 묘사해 나갈 뿐이다.
하지만 미국 코미디계나 사회학계에서 《호밀밭의 파수꾼》을 비슷하게 비판하기도 한다. 공통된 지적은 책이 발간된 지 60년이 지났는데 미국 고등학교에서 이 작품을 가르칠 때 홀든을 미국 청소년의 대표상으로 보는 게 문제라는 것이다. 돈 넘치는 백인 기득권층 집안의 자제가 별 같지도 않은 문제에 제 풀에 화를 내고 삐뚤어져 비행하는 것을 어떻게 절대다수인 비유럽계 또는 중산층 및 빈곤층 청소년들이 공감을 할 수 있냐는 거다. 이 관점은 작가의 문학적 묘사 가치와는 별개로 작품의 취급을 지적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을 유색인종과 빈곤층 청소년들의 시각에서 "돈 깨나 있는 집안 자제가 제1세계 문제로 불평하는 고상하기 그지없는 비행" 정도로 치부하는 것은 다소 핀트에 엇나간 해석이라고 볼 수 있다. 기본적으로 이 책은 어른들의 세계와 마주하며 청소년들이 겪는 고뇌와 매순간 찾아오는 감정적 동요를 아이들의 순수함을 지키겠다는 홀든의 마음과 결부해 훌륭하게 묘사한 작품이지 유색인종, 젠더 문제에 집중된 현대의 사회학적 시각에서 대단히 의미 있게 분석될 만한 텍스트는 아니다. 오히려 책이 발간된 지 상당 기간이 지났고 시대가 많이 변했는데도 널리 읽히는 것은 그만큼 시대를 관통하는 통찰력을 보여줬다는 방증이나 다름없다.
무라카미 하루키에게도 꽤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이는데 하루키 소설들과 비교해서 읽으면 상당히 흥미롭다. 하루키는 영미문학 번역가로서도 활동하고 있으며 2003년에 이 책을 일본어로 번역하여 출간하기도 했지만 하루키의 번역판은 발번역으로 유명하여 호되게 까였다. 여담으로 하루키는 비틀즈의 곡인 'Norwegian Wood (This Bird Has Flown)'을 노르웨이의 숲이라고 오역해서 저서의 제목으로 쓴 전과(?)가 있는데 애초에 곡 제목에 해석 논란이 있는 데다가 본인도 그걸 알면서 '이거 괜찮네'하며 갖다 썼다고 밝혔다.
등장인물
홀든이 이곳저곳 다니면서 만나는 사람들 외에도 직접적으로 나오지 않고 언급만 되는 사람들까지 포함해서 등장인물이 아주 많다. 그러다 보니 처음 읽어보는 독자는 무슨 말인지 도통 감이 안 잡힌다고 한다. 여기서는 주요 인물들만 다루기로 한다.
홀든 콜필드
본작의 주인공. 온갖 가식과 위선이 판치는 사회를 살고 있는 우리 시대 일부 청소년들의 표상. 청소년기 특유의 기분파적이고 감정이 오락가락하는 면모를 보여준다.
그가 좋아하는 것은 순수한 것, 변하지 않는 것. 싫어하는 건 위선자, 사기꾼. 즉, 가식적인 것이며 심지어 영화나 연극도 배우가 마치 진짜같이 연기하는 것 때문에 싫어한다. 뉴욕에서 1달러를 주고 산 빨간 사냥 모자를 항상 쓰고 다니는데 이는 위선자들을 총으로 사냥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라고 한다. 16살에 키가 6피트 반 인치(약 185cm)에 비쩍 마른 소년. 키는 상당한 장신이지만 힘과 체력이 약한 편이다.
상류층 콜필드 가의 차남으로 아버지는 기업들을 상대하는 수입이 상당한 변호사이다. 어머니는 현재 몸이 좋지 않고 예민한 탓에 홀든은 자기가 퇴학당한 사실을 숨기려 한다.
작중 도입부에선 펜시 기숙 학교에 다니다가 5개 과목 중에서 영어를 제외한 4개 과목을 낙제해 퇴학을 당하고 만다. 이왕 퇴학당한 김에 뉴욕에서 지내다 아무 일 없이 겨울방학하는 날에 맞춰 집으로 돌아오기로 결심한다.
주변 사람들을 멀리하고 혼자 돌아다니는 외톨이로, 기껏해야 여동생 피비, 죽은 남동생 앨리와 첫사랑 제인, 안톨리니 선생 정도만 좋아할 정도로 인간관계는 별로 좋지 않다. 이렇게 반항적인 성격에 만사를 삐딱한 시선으로 보고 거짓말은 밥 먹듯이 하지만, 한편으로는 뉴욕 호수에 있는 오리들은 걱정하는, 그야말로 찌질이에 가까운 인물이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을 좋아하고 나중에는 다른 사람들 모두를 그리워하는 순수한 소년. 우연히 들은 노래에서 '만약 호밀밭에서 사람을 만난다면['이라는 가사를 듣고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겠다는 당찬 포부를 지녔다.
작가 본인의 오너캐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아무래도 혼자서 은거하는 생활 방식과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 등 작가와 일치하는 부분이 많다. 홀든의 성품은 자라면서 애정결핍 때문에 생긴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
D.B. 콜필드
그는 집에 있었을 땐 그냥 보통 작가였었다. 그는 굉장한 단편집을 썼다. 들어보지 못했다면, 「비밀 금붕어」라고 하는 책이다. 거기서 제일 나은 건 “비밀 금붕어”였어. 그건 자기 돈으로 금붕어를 샀다고 해서 아무도 그걸 보지 못하게 한다는 어떤 꼬마 얘기다. 난 거기엔 완전히 야코가 죽고 말았지. 지금 그는 할리웃에 나가 있어. D.B. 말이다, 창녀같이. 내가 싫어하는 게 하나 있다면, 그건 영화야. 내 앞에선 영화 얘긴 하지도 마.
홀든의 친형이자 콜필드 가의 장남. 작중 내내 풀네임은 한번도 나오지 않는다. 원래 무명 소설가였지만 유명해진 뒤로 할리우드에서 영화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 2차 대전에 운전병으로 참전한 적이 있으며 직접적으로 적과 교전을 벌이기보다는 장교들의 차를 운전하는 역할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군대에 대해서는 남동생(앨리)에게 "아군이나 나치나 나쁜 놈들인 건 똑같다.", "좋은 작가가 되고 싶다고 해서 굳이 전쟁에 참전해 볼 필요는 없다."라는 투로 이야기하는 걸 봐서는 별로 좋은 기억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홀든의 시선에서는 글을 잘 쓰면서도 그걸로 돈이 되는 글(영화 시나리오)만 쓰는 위선자로 찍혔다. 홀든의 말로는 "재규어 자동차를 타면서 예쁜 여자도 많이 만나고 다닌다"라고 한다.
앨리 콜필드
홀든의 남동생으로, 콜필드 가의 삼남. 1946년 7월 18일에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홀든은 앨리를 '빨간 머리에 화를 잘 내지 않는 영특한 소년'으로 묘사할 정도로 매우 아꼈다. 앨리가 죽은 날에는 크게 상심한 나머지 자기 집 차고 유리를 주먹으로 깨뜨리는 짓까지 했다. 이때 입은 상처 때문에 홀든의 주먹이 잘 쥐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홀든은 그런 앨리를 그리워한 나머지 스트라드레이터의 작문 숙제에서 앨리에 대한 글을 썼다.
피비 조세핀 콜필드
홀든의 여동생으로, 콜필드 가의 막내딸. 홀든이 좋아하는 인물 중 한 명. 소설 전반에 걸쳐 피비 얘기가 정말 숱하게 언급되는데 본격적인 등장은 후반부에서 나온다. 빨간 머리에 영특하면서도 어린애다운 행동을 보여주는데 여기에서 홀든에 대한 애정과 새침스러운 일면들을 보인다. 홀든이 잠깐 집에 들렀을 때 홀든이 부모님에게 들키지 않도록 거짓말을 하고, 모아 놓은 용돈을 모두 홀든에게 주면서 제발 가져가라고 한다거나, 심지어는 가출을 결심하는 홀든을 따라가려 한다. 이에 홀든이 험한 말까지 해대면서 떼어놓으려고 하니 피비는 울먹거리고 만다. 결국 가출을 포기한 홀든은 단단히 화가 나 있는 피비를 달래주려 놀이공원에 데리고 가니, 피비는 언제 그랬냐는 듯 회전목마를 타고 까르르 천진난만하게 웃는다. 명대사는 "아빠는 오빠를 죽일 거야..."라고 한다.
스펜서 선생님
홀든이 다니던 펜시 기숙학교의 늙은 역사 교사. 초반부에 홀든은 퇴학 처분을 받고 가장 먼저 스펜서 선생 댁으로 간다. 홀든에게 낙제 점수를 준 시험지를 다시 보여줄 정도로 눈치 없고 고지식한 사람이지만, 내심 홀든을 도와주려는 마음은 있는 듯. 물론 홀든은 스펜서 선생도 위선자로 볼 정도로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다.
제인 갤러거
같은 동네에서 살던 여자아이. 제인의 개가 홀든 네 마당에 실례를 하는 것이 홀든과 제인이 만나는 계기가 된다. 홀든은 제인과 골프를 치고 체커도 두며 친구로 지내던 어느 날, 아주 긴밀한 사이가 되는 계기가 찾아온다. 여느 때처럼 제인의 집에서 체커를 두다 제인의 의붓아버지가 제인에게 자꾸 말을 거는 것. 하지만 제인은 대답이 없어 의붓아버지가 사라지자 제인은 참았던 눈물을 떨구고 만다. 홀든은 그런 그녀를 위로해주고 이로써 둘은 연인 사이로 발전한다. 홀든은 제인이 체커를 둘 때 왕을 옮기지도 않고, 극장에서 단둘이 손을 잡을 때 손 위치를 바꾸지 않는 점에서 그녀를 좋아한다. 하지만 그 뒤로는 관계가 더 발전하지 않고 헤어진 듯.
워드 스트라드레이터
홀든의 기숙학교 전 룸메이트. 홀든과는 달리 속물 근성이다. 초반부에는 퇴학을 앞둔 홀든에게 작문 숙제를 부탁할 정도로 뻔뻔함을 자랑하기도 한다. 여성 편력이 화려한 인물로, 홀든에게 지난 일요일에 제인과 차 안에서 검열삭제를 한 게 아니냐는 의심을 받게 되고, 결국 이는 둘의 싸움으로 이어진다. 결국 홀든은 스트라드레이터에게 얻어 터지고 기숙 학교를 나간다.
로버트 애클리
홀든의 기숙학교 룸메이트. 취미는 홀든의 침대에 뛰어들어 얼굴 여드름 짜기이다. 홀든이 비유하길 스트라드레이터는 속이 더러운 놈이지만 애클리는 겉이 더러운 놈이라고. 실제로도 잘 씻고 다니지 않는 데다 치아 관리도 제대로 안해서 홀든이 애클리더러 양치질 좀 하라고 타박한다. 다만 손톱만큼은 늘 깨끗하게 깎는데, 방바닥에 손톱을 다 떨구어 놓아서 홀든이 탁자 위에서 손톱을 깎으라고 호통을 친다. 그래도 홀든이 스트라드레이터에게 얻어터진 걸 보고 걱정해주는 걸 보면 그리 나쁜 인물은 아닌 듯. 홀든도 맘에 안 든다고 계속 중얼거리면서도 막상 학교를 나갈 땐 급우들 중 애클리한테만 인사해 주고 갔다.
포주 모리스 & 창녀 써니
홀든이 뉴욕의 호텔에서 만난 포주와 창녀. 모리스란 포주는 홀든에게 매춘을 권유하고 창녀 써니를 불러준다. 하지만 홀든은 중간에 우울해져서 관계는 하지 않고 그녀와 얘기만 하다가 5달러만 주고 내보낸다. 물론 써니가 유혹의 몸짓을 보내지만 홀든은 거부한다. 잠시 후에 모리스와 써니가 들이닥치고 원래 수고비가 10달러이니 내놓으라고 하자 홀든은 저항하다가 얻어 맞고 돈도 빼앗긴다. 이후 홀든의 상상의 나래가 펼쳐지는데, 상상 속에서 홀든이 권총을 든 카우보이가 되어 모리스에게 총을 쏴댄다.
샐리
홀든의 소꿉친구. 역시 속물 근성을 지닌 소녀. 하지만 외모는 상당해서 홀든은 샐리를 불러냈을 때는 갑자기 없던 결혼 생각을 할 정도였다. 홀든과 함께 극장, 스케이트장을 다니며 데이트를 하지만 홀든의 삐딱한 언행으로 결국 안 좋게 헤어진다. 이후 홀든은 술에 거하게 취한 채 헤어진 샐리에게 전화를 하기도 한다.
안톨리니 선생님
홀든이 전에 다녔던 학교의 젊은 교사. 홀든이 좋아하는 몇 안 되는 인물 중 하나이기도 하다. 전 학교에서 따돌림 당하던 학생이 투신자살을 하자 그 시신을 감싸 안고 병원으로 달려갔으며, 오밤중에 홀든이 전화를 하자 언제든지 오라고 하며 이것저것 조언을 해주는 대인배. 후반부에 홀든이 안톨리니 선생 집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선생님이 홀든 콜필드의 'head'를 만지자 깜짝 놀라고 집을 황급히 뛰쳐나오는 묘사가 있다. 근데 민음사 판에서는 이걸 귀두라고 번역했다. 최근 판에서는 다시 '머리'로 정정했다.
이 부분이 상당히 묘하고 애매하게 묘사된 장면이라서 정말로 머리인지, 귀두인지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 머리를 지지하는 쪽은 그 장면이 그런 섹슈얼리티를 함의하지 않았으며 나중에 홀든이 선생님에게 너무했다고 반성하며 자는 학생의 'head'를 만지는 거 정도는 괜찮지 않냐고 생각하는 장면을 근거로 든다. 아무리 홀든이 대인배라도 고추를 만지는 거 정도는 괜찮지 않냐고 생각할 리가 없다는 것이다. 홀든이 찌질하고 자기합리화를 잘 하긴 한다고 해도 그렇지 이런 부분에서는.... 게다가 이 선생님은 남자다. 거기다 부인도 있지만 각방을 쓴단다. 성적 학대를 20번도 넘게 당했다는 해석보다 타인이 이마를 만진 것이 20번도 넘는다는 해석이 자연스럽다고 한다.
귀두를 주장하는 쪽은 홀든의 반응과 전체적인 장면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고 주장한다. 홀든은 10대 후반이므로 머리 쓰다듬은 20번은커녕 수백 번도 더 당했을 것이라고 한다. 이를 보아 전체적으로 작가가 이 애매함을 노린 거 같기도 하다. 안톨리니 선생님이 '깜빡하고' 파자마를 주지 않았다는 배경이 이를 뒷받침한다고 주장한다.
귀두건 머리건 어쨌든 홀든이 이 장면에서 가장 신뢰하는 어른에게 뜻하지 않은 일을 당해 놀람과 수치심을 동시에 느낀 것으로 묘사된다.
집에서 나온 홀든은 밤을 보내기 위해 자기에게 잘해주었던 옛 영어교사 안톨리니 선생님 댁을 찾아간다. 안톨리니 선생님은 마치 인자한 아버지처럼 홀든에게 인생의 충고를 들려준다. 예컨대 그는 홀든에게, 한 철학자의 말을 인용해 “미성숙한 사람의 특징은 대의를 위해 고결하게 죽기 원한다는 것이고, 성숙한 사람의 특징은 대의를 위해 겸허하게 살기를 원한다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자신이 잠든 사이에 안톨리니 선생님이 자신의 이마를 어루만지는 것을 눈치 챈 홀든은 노교사가 동성연애자라고 추측하고 서투른 핑계를 댄 후, 재빨리 그 집을 빠져 나온다.
영문학자 김성곤 교수의 해석. [출전: J. D. 샐린저와 호밀밭의 파수꾼]
1963년에 아동문학가 유경환 선생이 평화출판사에서 최초로 번역 출간했으나 거의 알려지지 않은 채 사장됐다. 문예출판사가 1985년 재발간한 후에도 별 반응을 얻지 못하다가 지난해 샐린저를 모델로 한 영화 '파인딩 포레스터'가 개봉되면서 한 해동안 총 10만부가 넘는 판매(전체 출판사 통계)를 기록하기도 했다.
존 레논의 살해범 마크 채프먼이 즐겨 읽었던 책으로도 유명하며, 그는 레논을 살해하기 직전에도 읽고 있었다고 한다.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범인 리 하비 오즈월드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저격 미수범인 존 힝클리 주니어도 이 소설을 즐겨 읽었다.
암살자들이 왜 이 책에 빠져들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짐작하기를 오랫동안 금서로서 지정되었다는 점, 소설 곳곳에서 죽음에 대한 암시나 홀든이 누군가를 죽이겠다는 감정을 거칠게 표현한다는 점, 곳곳에 있는 증오나 환멸, 염세주의적인 시각이 암살자들을 자극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전체적인 내용을 보자면 이는 그저 살인을 정당화하고자 하는 암살자들의 핑계이자 방패막이로 삼은 수단에 불과하다. 영상
암살자들이 얽혀 음모론자들의 망상거리가 되었다. 어떤 음모론에서는 이 소설이 정치적 암살자들을 세뇌하는 도구로 쓰인다는 말까지 있을 정도다. 그런 음모론을 다룬 영화가 멜 깁슨 주연의 《컨스피러시》다.
이 음모론에서 왜 <호밀밭의 파수꾼>이 선택되었을까. 어디까지나 음모론임을 가정하고 논리를 붙이면 이렇다. CIA는 민간인을 납치해 인간병기로 만드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살인에 대한 죄책감을 없애기 위해 약물을 이용한 세뇌와 더불어 <호밀밭의 파수꾼>을 이용한 것이다. 주인공 홀든 콜필드는 호밀밭에서 벼랑으로 떨어질 아이들을 보호하는 파수꾼이 되는 게 꿈이다. 이는 호밀밭=전 세계, 파수꾼=미국, 뛰노는 아이들=미국을 제외한 모든 나라라는 공식을 만들어 오로지 미국만이 전 세계 모든 나라를 구할 수 있다는 논리다. CIA에서 하는 일은 인류를 위함이고, 암살은 미국과 인류의 수호하는 내적 논리를 구성한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음모론은 어디까지나 음모론. 암살자들의 애독서라는 우연은 어떤 논리적인 이유가 있기보다는, 일세를 풍미한 베스트셀러라 그들도 자연스럽게 읽었다고 보는 편이 타당하리라.
공각기동대 STAND ALONE COMPLEX에 나오는 웃는 남자 사건의 내용이 이 책의 내용에서 유래한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이 애니 감독 카미야마 켄지는 샐린저의 팬으로 유명하다.
러브 플러스의 코바야카와 린코도 이 책을 즐겨 읽는다는 설정으로 나온다.
《패밀리 가이》에서 이 책을 언급했다. 쾌그마이어와 브라이언의 다른 생각이 이 책에 대한 대립하는 의견들을 잘 보여준다.
《사우스 파크》에서는 이 책이 어린애들에게 유해한 책으로 지정되는 현실을 풍자한 에피소드가 있다. 이 책을 읽고 실망한 얘들이 쓴 책은 엄청 더럽고 역겨운 책이었는데, 그래서 명작으로 칭송받는다. 이 책에 대한 미국인들의 반응을 풍자한 셈이다.
《울트라맨 넥서스》의 센쥬 렌의 이야기의 모티브가 바로 이 소설이라고 한다. 2기 오프닝 영상의 복선 중 도시 한복판에서 울트라맨이 이리저리 뛰는 모습은 홀든 콜필드가 호밀밭에서 위험으로부터 아이들을 지켜내는 것처럼 렌이 시가지에서 위험으로부터 사람들을 지켜낸다는 걸 의미하는 장면이라고.
《암살교실》에도 이 내용이 나온 적 있는데, 7권에서 나카무라 리오가 살생님이 추천한 이 책을 일어와 영어로 읽고 만점의 답안을 작성해낸다. 다만 호밀밭의 파수꾼의 중반부 내용과 비슷한 문장일 뿐 실제로 등장하는 문장은 아니다.
호아킴 데 포사다의 소설 중 하나인 《난쟁이 피터》에도 주인공 피터가 좋아했던 책으로 언급된다. 이후 가출하고 나서 만나는 노인과 책의 내용에 대해 대화하는 장면이 언급된다.
스웨덴의 작가 프레드리크 콜팅(J.D.캘리포니아라는 필명으로 출판했다.)이 이 작품의 2차 창작 소설인 '60년 후: 호밀밭을 지나서'란 소설을 냈는데 샐린저 측과 법적 분쟁 끝에 미국과 캐나다를 제외한 지역에서만 발행할 수 있으며 책의 이름을 ‘60년 후: 호밀밭을 지나서’로 쓸 수 없고 출판 과정에서 원작의 제목과 저자를 언급하는 것도 금지한다는 조건으로 합의했다.
도전! 골든벨 망포고등학교 편에서 최후의 1인이 48번 문제인 이 책의 제목을 묻는 문제에서 탈락하였다.
스타팅 오버에서 주인공이 독서가 코스프레한답시고 읽었다.
스티븐 크보스키가 쓴 작품 월플라워의 주인공인 찰리가 좋아하는 책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DIABOLIK LOVERS의 무카미 루키가 늘 읽고 있는 책이 바로 이 책이다. 루키의 아버지가 물려준 책이라고 한다.
돈노트의 게임 라이프 이즈 스트레인지의 주인공이 홀든 콜필드의 오마주다.
날씨의 아이의 초반에서 남주인공 모리시마 호다카가 가지고 있던 책이다. 가출해서 도시를 떠돌았던 사정을 생각하보면 홀든과 호다카 사이의 공통점(나이가 같다던지)을 상징하는 듯 하다. 하지만 용도는 즉석우동 뚜껑덮개(...). 참고로 일본판 번역을 무라카미 하루키가 했다고 한다.
영화 파수꾼의 제목도 이 책의 도서명에서 따 온 것이다.
20세기 영문학에서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가 1951년에 발표한 소설 『호밀밭의 파수꾼』만큼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킨 작품을 찾기 어렵다. 1960년 미국에서 한 교사가 교재로 지정했다가 해임당한 것을 시작으로, 이 책은 1980년대까지 미국의 많은 고등학교에서 금서로 지정됐다. 욕설, 성적 암시, 신성모독, 음주·흡연 묘사 등이 그 이유였다. 1980년 존 레논을 살해한 범인이 경찰이 올 때까지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고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책의 내용이 범죄를 조장하는 것이 아니냐는 논란까지 일었다.
숱한 비판과 탄압에도 불구하고 『호밀밭의 파수꾼』은 오늘날에도 사랑받는 베스트셀러다. 특히 주인공 ‘홀든 콜필드’와 비슷한 연령대의 젊은이가 주요 애독자층이다. 샐린저는 홀든 콜필드라는 인물을 통해 속물과 순수함,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헤매는 청소년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17세의 주인공 홀든 콜필드는 다섯 과목 중 네 과목에서 낙제해 다니던 ‘펜시 고등학교’에서 퇴학당한다. 홀든 콜필드는 청소년기 특유의 복잡한 정체성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청소년은 어른과 아이 양쪽에 발을 걸치고 있으면서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존재다. 몸은 어른과 엇비슷하게 컸지만 어른이 누리는 권리를 온전히 누리지 못한다. 세상의 풍파를 맞기에는 아직 어리지만 어린아이처럼 뛰어놀지도 못한다. 꼼짝없이 학교에 앉아서 어려운 공부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포근했던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면서도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한다.
실제로 작중에서 나타나는 홀든 콜필드의 행동에는 모순된 점이 많다. 홀든은 ‘빌어먹을’(goddamn), ‘저능아’(moron)같은 욕설을 밥 먹듯이 사용하면서도 초등학교 벽에 ‘씨발’(fuck you)이라는 낙서가 있자 아이들이 보면 어떡할까 걱정한다. 또 그는 “난 어쩌면 이 세상 누구보다도 더 지독한 색정광일지도 몰랐다”고 자평하면서도 막상 자신이 부른 매춘부가 방으로 오자 성관계를 거부하고 우울함에 빠진다.
이렇게 복잡다단한 홀든이 일관되게 혐오하는 것은 ‘속물’이다. 그는 퇴학당한 후에도 방학 전까지 기숙사에 머물 수 있었지만, 속물 룸메이트와 싸운 뒤 학교를 뛰쳐나간다. 얄궂게도 홀든이 학교에서 탈출한 후 마주한 뉴욕의 거리는 끝도 보이지 않는 속물들의 바다였다. 홀든이 ‘가짜’(phony)라고 표현하는 전형적인 뉴욕 속물은 대략 이런 식이다. 그들은 펜시 고등학교와 같은 고급 사립학교에서 무리 지어 다니다가 아이비리그 대학에 진학해 거만한 목소리로 토론한다. 대학을 졸업하고서는 좋은 직장에 들어가 높은 연봉을 받고 플란넬* 양복을 맞춰 입고 자신의 고급 자동차에 대한 자랑을 늘어놓는다.
여기서 말하는 속물을 정확히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홀든이 지독한 속물로 묘사하는 바텐더에 대한 생각을 통해 간접적으로 그 정의를 엿볼 수 있다. 바텐더는 “유명 인사나 상류층이 아니면 말도 제대로 하지 않는 놈”이고, 상류층은 “자신이 굉장한 사람이라도 된다는 듯이 미소를 지어보이며” 쓸데없는 안부나 묻는 사람들이다. 이를 통해 홀든이 생각하는 속물은 물질적 성공과 사회적 지위에 집착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오만하게 행동하는 인간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작품이 발표됐던 1950년대 미국 자본주의 황금기에 사람들이 호황에 취한 채 물질적 축적에만 몰두했다는 점과 관련이 있다. 샐린저는 홀든의 입을 빌려 당시 전형적인 미국인의 모습이 속물이라는 점을 통렬히 지적하고 있다.
작중에서 속물의 대척점에는 순수함이 있다. 순수함은 아이들과 연결돼 나타난다. 홀든 콜필드는 속물 어른들을 대할 때 하염없이 냉소적이지만 순수한 아이들에게는 한없이 우호적이다. 예를 들어 그는 스케이트 끈을 묶지 못해 쩔쩔매는 아이를 친절하게 도와준 뒤, 고맙다는 말을 듣자 “아이들이 공손하고 상냥하게 대해주면 참 기분이 좋아진다”며 흐뭇해한다.
특히 홀든의 여동생 피비는 순수함을 상징하는 아이로, 홀든이 순수함을 갈망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뉴욕 거리를 헤맨 끝에 집에 숨어 들어간 그에게 피비는 “좋아하는 것을 한가지 말해보라”고 요구한다. 이에 홀든은 “호밀밭에서 재미있게 뛰어노는 아이들이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으면 재빨리 붙잡아주는”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 답한다. 호밀밭의 파수꾼은 아이들의 순수함을 지켜주는 사람으로, 순수함을 지키려는 홀든의 열망을 함축한다. 뉴욕에서 방황한 끝에 홀든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알아낸 것이다.
그러나 『호밀밭의 파수꾼』은 순수함이라는 명쾌한 답으로 끝나지 않는다. 홀든의 ‘순수함 추구’는 현실의 벽에 부딪힌다. 근본적인 문제는 그가 청소년이라는 점이다. 청소년은 언제까지나 아이같이 순수할 수 없다. 어른이 돼서 어떻게 살아갈지를 끊임없이 고민해야 하기 때문이다. 홀든은 이 사실을 이미 잘 알고 있다. 소설 초반부에 그가 선생님으로부터 “너는 미래를 걱정하게 될 거야. 다만 그때가 되면 너무 늦었겠지”라는 말을 들으며 절망하는 장면이 이를 보여준다.
홀든은 미래에 대한 현실적 걱정과 순수함 추구 사이에서 고민하면서 탈출을 꿈꾼다. 그는 여자친구 샐리에게 매사추세츠나 버몬트로 도피해 오두막집에서 단둘이 살자고 제안한다. 그러나 샐리는 쌀쌀맞게 “우리는 사실상 어린아이일 뿐”이라며 “돈이 떨어지면 굶어죽을 것”이라는 냉정한 현실을 알려준다. 한편 홀든은 버스에 무임승차해 서부 어딘가로 도망가 귀머거리 행세를 하며 사는 계획도 세운다. 그러나 이 계획도 몽상적이기는 마찬가지다.
그는 이런 비현실적인 도피가 아닌 현실적인 해결책을 모색하기도 한다. 평소 어른들의 조언을 무시하던 홀든은 전에 친하게 지내던 교사인 앤톨리니 선생님을 찾아가 도움을 청한다. 앤톨리니 선생님이 ‘교육을 더 받아야 한다’는 식의 조언을 하자 여느 때와 달리 선생님의 말을 진지하게 경청한다. 하지만 앤톨리니 선생님에게 의지하려는 노력도 실패하고 만다. 잠든 자신의 머리(head)*를 만지고 있는 앤톨리니 선생님을 발견한 것이다. 홀든은 이런 행동에 성적 수치심을 느껴 앤톨리니 선생님의 집에서 황급히 도망친다.
결국 『호밀밭의 파수꾼』은 홀든이 정신병원에서 지내는 것으로 뚜렷한 해결책 없이 끝난다. 정신과 전문의는 학교에 가게 되면 공부를 열심히 할 것인지를 물어보지만, 홀든은 “실제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일”이라며 명확한 답변을 거부한다. 여기서 우리는 홀든 콜필드가 정신적 성장을 이뤄냈는지 알 수 없다. 이런 의미에서 『호밀밭의 파수꾼』은 실패한 성장소설이다. 일반적인 성장소설에서 주인공은 이런저런 일을 겪으면서 성숙하고 현실과 타협하는 법을 배운다. 그러나 소설의 결말 부분에서 홀든의 모습은 성숙과 거리가 멀다. 홀든은 성장에 실패했고, 아직도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이리저리 부딪치며 헤매고 있다.
역설적으로 『호밀밭의 파수꾼』은 ‘실패’한 성장소설이기 때문에 ‘성공’했다. 샐린저는 자신의 작품에서 특정한 대안을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그는 홀든 콜필드란 인물을 통해 청소년, 나아가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사람을 대변한다. 반세기도 전에 발표된 작품이 아직도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이유는 바로 우리가 홀든과 크게 다를 바 없이 방황하는 사람들이어서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