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스 국어/현대문학

하늘, 박두진 [현대시]

Jobs 9 2022. 9. 28.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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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박두진

하늘이 내게로 온다
여릿여릿
멀리서 온다

하늘은,
멀리서 온 하늘은
호수처럼 푸르다.

호수처럼 푸른 하늘에
내가 안긴다. 온몸이 안긴다.

가슴으로 가슴으로 스며드는 하늘
향기로운 하늘의 호흡

초가을
따가운 햇볕에
목을 씻고

내가 하늘을 마신다.
목말라 자꾸 마신다.

마신 하늘에 내가 익는다.
능금처럼 마음이 익는다.



【주제】신비로운 자연과의 합일(合一)

【내용 풀이】
▶제1문단(1연∼4연) : 하늘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 하늘이 내게로 다가오는 것 같이 느껴진다. 천천히, 천천히 멀리서 온다. 멀리서 오는 하늘은 호수처럼 푸르다. 내가 푸른 하늘에 안기면, 어머니의 품에서처럼 향기로운 하늘의 호흡을 가슴으로 느낀다.
   ― 도취와 무아의 세계에서 ‘자연의 품’에 안기는 과정을 노래한 부분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순수 국어를 써서 소박하면서도 율동감이 넘친다. 첫 줄에서부터 활유법이 쓰이고 있으며, 여기에 반복법이 구사되어 섬세하고도 나긋나긋한 표현미를 살리고 있다. ‘여릿여릿’은 의태어인데 조용한 움직임의 느낌을 주는 말이며, ‘멀리서’라는 전성 부사에 삽입모음 ‘어’를 끼워 ‘머얼리서’로 써서 어감상의 효과를 내고 있다.

   자연과의 완전한 귀일(歸一), 또는 합일(合一)의 경지는 이 시에서도 순수시의 광채를 경이적으로 이끈다. ‘서양의 문화는 성벽 속에서 성장되었고, 동양의 문화는 森林삼림) 속에서 성장되었다’고 타고르의 말을 빌린다면, 박두진이 지닌 자연에의 전폭적인 희열과 존엄의 경지는 다른 자연파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맛과 시의 순도(純度)를 더해 준다. 특히 우리 민족에게는 예로부터 경천사상(敬天思想)이 내려오고 있으며, 이것은 천도교에 와서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인내천(人乃天)으로 이어지는 것을 상기할 때, 이 시는 상당한 설득력을 이울러 수반하고 있다 할 것이다.

▶제2문단(5연∼7연) : 눈부시게 쏟아지는 초가을 햇볕으로 목을 씻고, 나는 영혼의 생명수와 같은 하늘을 자꾸 목말라 마신다. 하늘을 마시는 동안에 내가 익는다. 탐스럽고 빨갛게 능금이 익듯이 내 마음도 익어 흐뭇해진다.

   ― 시상이 점차로 고조되어 영혼의 성숙을 노래하는 7연에 와서 절정을 이룬다. 5연은 감각적 표현이며, 6, 7연은 햇볕으로 목을 씻는 정도로는 만족하지 않아서 금붕어가 물을 마시듯 하늘을 마신다고 노래한다. 즉 ‘나는 하늘을 마신다’는 표현은 ‘미칠 듯이 하늘을 좋아한다’는 뜻이 되고 있다.

   여기서 ‘하늘’은 단순한 ‘자연’이 아니라 영혼의 갈증을 채우고, 영혼을 살찌우는 생명수로 되어 있다. 곧 영혼ㆍ정신ㆍ생명의 근원이며, 평화와 결실을 주재(主宰)하는 어머니이기도 하다. 이런 ‘하늘’과의 높은 조화와 동화의 경지를 보이며, 그것을 구가하고 찬미하고 있는 것이 이 시의 시정신이다. - 조남익 : <현대시 해설>(세운문화사.1979) -

【감상】
   이 시는, 맑고 푸른 초가을 하늘을 우러러보면서 샘솟는 생의 기쁨과, 나아가 자연과의 합일(合一)을 이루는 경지를 연쇄의 표현 기법과 정제된 언어로써 잘 나타낸 작품이다. 박두진이 노래하는 자연은 다른 청록파 시인들이 추구하는 목가적 세계로서의 자연이 아니라, 종교적 신앙과 일체화된 신성(神性)의 자연이다. 전 7연의 이 작품은 내용상 2단락으로 나누어진다.

   첫째 단락(1∼4연)에서는 가을 하늘을 바라보는 시적 자아가 그 아름다움에 도취됨으로써 무아지경(無我之境)에 빠져들어 자연의 넓은 품에 안기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하늘과 하나가 된 희열감(喜悅感)과 함께 자연의 숭고함에 대한 시인의 경건한 자세가 나타나 있다.

   둘째 단락(5∼7연)에서는 시상이 점차 고조되어 '능금처럼 내 마음이 익는다'는 마지막 행에서 그 절정을 이루고 있다. '따가운 볕 / 초가을 햇볕으로' 세속에 물든 자신의 육신을 씻어낸 다음, 그 깨끗해진 가슴에 절대 순수의 '하늘'을 가득 채워넣었을 때, 마침내 영혼은 빨갛게 익어가는 '능금처럼' 성숙, 결실됨을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서의 '하늘'은 단순히 자연의 일부가 아니라, 시적 자아의 세속화된 영혼을 맑게 씻어줌으로써 그의 삶을 살찌우는 생명수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박두진에게 있어 하늘은 생명의 근원이며 삶의 주재자로서, 일종의 종교적 구원의 주체요, 경외(敬畏)의 대상인 절대적 '하늘'로 우리 민족의 '경천(敬天) 사상'과 맥락이 닿는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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