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스 국어/현대문학

승천(昇天), 이수익 [현대시]

Jobs9 2022. 4. 14.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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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천(昇天)

이수익

내 목소리가
저 물소리의 벽을 깨고 나아가
하늘로 힘껏 솟구쳐올라야만 한다.

소리로써 마침내 소리를 이기려고
歌人은
심산유곡 폭포수 아래에서 날마다
목청에 핏물 어리도록 발성을 연습하지만,

열 길 높이에서 떨어지는 물줄기는
쉽게 그의 목소리를 덮쳐
계곡을 가득 물소리 하나로만 채워버린다.

그래도 그는 날이면 날마다
산에 올라
제 목소리가 물소리를 뛰어넘기를 수없이 기도(企圖)하지만,

한번도 자세를 흐뜨리지 않는
폭포는
준엄한 스승처럼 곧추앉아
수직의 말씀만 내리실 뿐이다.

끝내
절망의 유복자를 안고 하산(下山)한 그가
발길 닿는 대로 정처없이 마을과 마을을 흘러다니면서
소리의 승천(昇天)을 이루지 못한 제 한(恨)을 토해냈을 때,

그 핏빛 소리에 취한 사람들이
그를 일러
참으로 하늘이 내리신 소리꾼이라 하더라.

 

핵심 정리
- 주제 : 가인의 처절한 수행을 통해 진정한 소리꾼으로 거듭나는 모습을 형상화
- 특징
▪ 장인 의식(匠人意識)을 제재로 삼은 작품
▪ 사건이 있는 이야기가 들어있는 서사시적 구조

이해와 감상
'승천'은 명창이 되기 위해 감수해야 하는 가인의 처절한 수행을 통해 진정한 소리꾼으로 거듭나는 모습을 형상화한 시다.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쉽사리 결과를 맺지 못하는 모습이 나타나 있다. 

 

인간의 아름다운 목소리는 태초 하늘에서 내려주는 것일까. 아니면 인간의 노력이 얻은 득음일까. 우주 만상이 다 소리라면 소리일 것이다. 마음 바탕이 텅 비어야만 들린다는, 지구 자전의 소리는 말할 것도 없고, 저 태양 둘레를 돌고 도는 온갖 행성들이 뽐내는 교태의 소리는, 이미 인간을 하늘 밖으로 불러내 홀린 지 오래다. 

밤하늘 허공에 떨어져 가는 별똥별을 보고 있자면, 제 몸을 태워서라도 기꺼이 만나봐야만 하는 그 어떤 기막힌 슬픈 곡절의 사랑이야기가 들려오는 듯 하다. 우리는 아마, 허공은 허공대로, 구멍은 구멍대로, 우주 삼라만상이 모두 제각각 영원회귀 속 저 자신의 소리를 찾아 헤매고 있는지 모른다. 

어떤 이는 한 점에서 우주를 그리고, 어떤 이는 한 촉(觸)에서 우주를 깨닫고, 어떤 이는 한 音에서 우주 득음을 이룬다. 일체만물이 다 신묘다. 혹여 이것이 답이 아니면 어떠리. 수 억 만년 이승과 저승을 돌며, 또 태어나고, 돌아가고, 또 생겨나는 가운데 무지한 생령의 물리가 트이면, 한바탕 해탈도 맛보는 것이다.

1942년 경남 함안 출생인 시인 이 수익의 시 「昇天」은 득음해 가는 여정을 한 여류 명창의 뼈 깎는 예술 혼을 통해, 시로써 어떻게 언어화 되는지 명징하게 보여준다. 시 「昇天」의 자취를 따라가 보면, 소리가 풀리니 가인이 되고, 가인이 풀리니 폭포수 되고, 폭포수 풀리니, 준엄한 물의 수직 말씀들 되살아나고, 수직의 말씀이 절망의 피 토하니, 비로소 소리가 승천 이루니, 이 시의 역설 고리는 가히 일체만상이 다 한 법에서 나와 한 법으로 흘러듦을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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