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밭가에서
김수영
삶은 계란의 껍질이
벗겨지듯
묵은 사랑이
벗겨질 때
붉은 파밭의 푸른 새싹을 보아라.
얻는다는 것은 곧 잃는 것이다.
먼지 앉은 석경 너머로
너의 그림자가
움직이듯
묵은 사랑이
움직일 때
붉은 파밭의 푸른 새싹을 보아라.
얻는다는 것은 곧 잃는 것이다.
새벽에 준 조로의 물이
대낮이 지나도록 마르지 않고
젖어 있듯이
묵은 사랑이
뉘우치는 마음의 한복판에
젖어 있을 때
붉은 파밭의 푸른 새싹을 보아라.
얻는다는 것은 곧 잃는 것이다.
개관
- 화자 : 일상 생활에서의 체험을 통해 깨달은 바를 의지적으로 정리하고 결심하는 단호함을 보임.
- 주제 : 새로운 사랑(삶)을 위한 의지
- 성격 : 상징적, 의지적, 성찰적, 역설적
- 표현 * 말하고자 하는 바를 다른 대상에 빗대어 표현
* 시각적 이미지를 활용하여 강렬한 효과를 자아냄(색채의 대비)
* 관념적인 의미를구체적으로 형상화해서 표현함.
* 역설적 표현을 통해 시적 진실을 추구함.
* 각 연이 동일한 구조를 취함으로써 시상의 안정 및 의미 강조에 기여하고 운율감도 획득함.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1연 → 묵은 사랑은 반드시 벗겨 내야만 먹을 수 있는 계란의 껍질 같은 존재이다. 벗겨 내는 데 힘이 들고 아픔이 있을지라도 그것은 껍질이기에 새로운 사랑이라는 알맹이를 얻을 수 있는 기쁨을 맛보기 위해서는 그 모든 것을 감수해야만 하는 것이다.
* 삶은 계란의 껍질 = 묵은 사랑 → 경직된 의식, 기존의 낡은 가치
* 붉은 파밭 → 묵은 사랑
* 푸른 새싹 → 새로운 사랑
* 얻는다는 것은 곧 잃는 것이다. → 역설적 표현, 주제의식 함축 / 새로운 사랑을 얻기 위해서는 묵은 사랑을 버려야 한다.
* 먼지 앉은 석경(돌거울) → 고루한 전통, 묵은 것,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
* 너의 그림자 → 실존이 아닌 허위
* 묵은 사랑이 / 움직일 때 → 묵은 사랑에 대한 추억이 자꾸 떠오를 때
* 묵은 사랑이 / 뉘우친 마음의 한복판에 / 젖어 있을 때 → 묵은 사랑을 뉘우치면서 쉽게 떨쳐내지 못할 때
시상의 흐름(짜임)
- 1연 : 묵은 사랑을 떨쳐 내려는 마음
- 2연 : 묵은 사랑의 힘을 떨쳐 내려는 의지
- 3연 : 묵은 사랑에 대한 뉘우침과 극복 의지
이해와 감상
이 시는 ‘묵은 사랑’에서 벗어나 ‘새로운 사랑’을 희망하면서 이전과 다른 삶을 살기 위해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가 무엇인지 말하고 있다. 이 시에서 ‘묵은 사랑’과 연결되는 시구는 ‘잃는 것’이고 ‘새로운 사랑’과 연결되는 시구는 ‘얻는다는 것’이다. 즉, 화자는 새로운 사랑을 얻는다는 것이 묵은 사랑에 대한 집착과 미련에서 벗어나는 것임을 깨달으며 새로운 사랑을 향한 강한 의지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또한, 붉은색과 푸른색의 대조적인 시각적 이미지(색채 대비)와 동일한 문장 구조의 반복, 일상생활 속에서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는 소재를 통해 주제 의식을 더욱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작품 연구
‘묵은 사랑’과 ‘푸른 새싹’이 의미하는 바는?
이 시에서 ‘묵은 사랑’은 표면적 의미 그대로 ‘과거의 사랑’으로 볼 수 있지만, 현 시대의 낡은 가치 또는 버려야 할 사회적 관습이나 개인의 나쁜 버릇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묵은 사랑’을 떨쳐 내어 얻을 수 있는 ‘푸른 새싹’ 또한 새로운 사랑, 이상적인 가치나 사회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주요 시구의 의미와 주제의 함축
이 시에서 주제를 함축하고 있는 구절은 각 연에서 반복되고 있는 ‘붉은 파밭의 ~ 곧 잃는 것이다.’이다. 동일한 어구가 각 연에서 반복되면서 운율감을 형성할 뿐만 아니라 의미를 강조하여 주제를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여기서 ‘푸른 새싹’은 파밭에서 싹이 나는 자연의 이치처럼 묵은 사랑이 간 후 화자에게 올 새로운 사랑을 의미한다. 화자는 ‘얻는다는 것은 곧 잃는 것이다.’ 라고 모순된 표현을 하고 있는데 이는 과거의 사랑과 이별을 해야 새로운 사랑을 얻을 수 있다는 의미를 내포한 역설적 표현에 해당한다. 그리고 ‘묵은 사랑’은 ‘삶은 계란의 껍질’, ‘너의 그림자’, ‘새벽에 준 조로의 물’로 구체적으로 형상화되고 있다.
표현상의 특징과 효과
일상적 소재를 통한 삶의 깨달음
우리는 살면서 내일이 오늘보다 나아지리라고 희망하면서 살아간다. 이 시에서 시인이 삶을 대하는 태도도 동일하다. 시인은 '묵은 사랑'이 아닌 '새로운 사랑'을 희망하면서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기 위해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가 무엇인지 말하고 있다. 일상생활 속에서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는 소재를 통해 사람들의 삶에서 소중한 가치라고 생각될 수 있는 것들에 대한 성찰이나 깨달음을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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