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향(沈香)
서정주
침향(沈香)을 만들려는 이들은, 산골 물이 바다를 만나러 흘러내려 가다가 바로 따악 그 바닷물과 만나는 언저리에 굵직굵직한 참나무 토막들을 잠거 넣어 둡니다. 침향은, 물론 꽤 오랜 세월이 지난 뒤에, 이 잠근 참나무 토막들을 다시 건져 말려서 빠개어 쓰는 겁니다만, 아무리 짧아도 2 ~ 3백 년은 수저(水底)에 가라앉아 있은 거라야 향내가 제대로 나기 비롯한다 합니다. 천 년쯤씩 잠긴 것은 냄새가 더 좋굽시요.
그러니, 질마재 사람들이 침향을 만들려고 참나무 토막들을 하나씩 하나씩 들어내다가 육수(陸水)와 조류(潮流)가 합수(合水)치는 속에 집어넣고 있는 것은 자기들이나 자기들 아들딸이나 손자 손녀들이 건져서 쓰려는 게 아니고, 훨씬 더 먼 미래의 누군지 눈에 보이지도 않는 후대들을 위해섭니다.
그래서 이것을 넣는 이와 꺼내 쓰는 사람 사이의 수백 수천 년은 이 침향 내음새 꼬옥 그대로 바짝 가까이 그리운 것일 뿐, 따분할 것도, 아득할 것도, 너절할 것도, 허전할 것도 없습니다.
개관
- 주제 : 후대를 배려하는 바람직한 삶의 자세
- 성격 : 산문적, 긍정적
- 특성 ① 인식의 전환을 통해 메마른 인간성과 현대사회의 위기를 극복하고자 함.
② 침향의 의미와 함께 바람직한 삶의 자세를 제시해 줌.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침향 → 참나무를 잘라 천 년을 물 속에 둔 후, 그 나무로 만든 향
* 산골 물이 ~ 빠개어 쓰는 겁니다만, → 침향을 만드는 과정
* 아무리 짧아도 ~ 냄새가 더 좋굽시요. → 완성을 위한 긴 기다림의 시간
* 질마재 → 시인의 고향인 전북 고창의 마을 이름
* 훨씬 더 먼 미래의 누군지 눈에 보이도 않는 후대들을 위해섭니다. → 먼 후대를 위해 침향을 만드는 아름다운 마음
* 따분할 것도, 아득할 것도, 너절할 것도, 허전할 것도 없습니다. → 우리의 본래적 삶은 이렇게 비합리적 · 자연적 · 비경제적이라는 의미를 내포함.
시상의 흐름(짜임)
- 1연 : 침향을 만드는 과정
- 2연 : 질마재 사람들이 침향을 만드는 이유
- 3연 : 침향을 만드는 질마재 사람들의 마음
이해와 감상
이 시는 '침향'을 만드는 질마재 사람들을 통해 시인이 생각하는 바람직한 삶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물 속에 참나무 토막을 넣고 천 년의 세월을 기다리는 질마재 사람들의 마음과 시간의 영속성에 대한 믿음, '영원'에 대한 인식을 드러내었다. 자신도 아니고, 자신의 자식도 아닌, 먼 후대 사람들을 위해 참나무 토막을 물에 넣는 사람의 마음이 시간의 흐름과 겹쳐지며 경건성을 느끼게 한다.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친근한 어투를 사용하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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