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스 국어/현대문학

추운 산, 신대철 [현대시]

Jobs 9 2022. 12. 25. 0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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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산

신대철

 

춥다. 눈사람이 되려면 얼마나 걸어야 할까? 잡념과 머리카락이 희어지도록 걷고 밤의 끝에서 또 얼마를 걸아야 할까? 너무 넓은 밤, 사람들은 밤보다 더 넓다.
 
사물에 이름을 붙이고 즐거워하는 사람들
이름을 붙여야 마음이 놓이는 사람들
이름으로 말하고 이름으로 듣는 사람들
이름을 두세 개씩 갖고 이름에 매여 사는 사람들
 
깊은 산에 가고 싶다. 사람들은 산을 다 어디에 두고 다닐까? 혹은 산을 깎아 대체 무엇을 메웠을까? 생각을 돌리자, 눈발이 날린다.
 
눈꽃, 은방울꽃, 안개꽃, 메밀꽃, 배꽃, 찔레꽃, 박꽃
 
나는 하루를 하루종일 돌았어도
분침 하나 약자의 침묵 하나 움직이지 못했다.
들어가자, 추위 속으로

 

때까치, 바람새, 까투리, 오소리, 너구리, 도토리, 다람쥐, 물
 

 

개관

- 주제 : 순수한 세계와 내면에 대한 동경
- 표현 * 적절한 의문문의 사용을 통해 궁금증을 유발하고, 시상 전개를 통해 그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 대립적 의미 구조를 통해 순수한 세계에 대한 화자의 동경 의식을 형상화하고 있다.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추운 산 → '이름을 붙여야 마음이 놓이는 사람들'이 사는 세속적 공간과 대비를 이루는 이상적이고 순수한 공간
* 눈사람 → 화자가 도달하려고 하는 삶의 목표 / 속된 욕망이나 허위 의식을 버리고 고통스러운 자기 단련 과정을 거쳐 고결한 삶의 경지에 이른 순수하고 이상적인 자아상
* 밤 → 벗어나야 할 부정적인 삶의 공간.  바람직한 삶의 방향을 가로막는 대상
* 사람들은 밤보다 더 넓다. → 밤은 깊고 어두워서 절망적 상황을 함축하는데, 사람들이 밤보다 더 넓다고 한 것은 사람에 대한 화자의 절망적 인식을 드러낸 것임.
* 2연 → 속된 욕망과 허위 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존재들 / 화자가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세속적인 세계에 속박되어 사는 존재들이다. 여기서 '이름'은 인간 중심적 행위 또는 이름을 부르는 주체 중심적 행위이다. 이름 붙여진 존재는 피동적 위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화자는 이러한 이름이 지니는 부정성, 이름 붙이는 행위에 함축된 소유 의식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 깊은 산 → 순수성이 지배하는 원초적인 세계
* 사람들은 산을 다 어디에 두고 다닐까? 산을 깎아 대체 무엇을 메웠을까? → 사람들은 산을 멀리하고 시정의 삶에 골몰하여 산조차 자신들의 쓸모에 맞게 깎아 내거나 메움으로써 변형을 가한다. 그러한 이기적인 삶 속에서 사람들은 무엇을 얻었을까 하고 반문하는 것이다.
* 무엇 → 탐욕과 이기심을 환기시킴.
* 눈꽃, 은방울꽃, 안개꽃, 메밀꽃, 배꽃, 찔레꽃, 박꽃 → 눈과 닮은 흰색의 꽃들로, 색채 이미지를 통해 대상의 속성과 내면 세계를 부각시키고 있음. / 화자가 동일시하고자 하는 순수하고 이상적인 생명체들임.
* 나는 하루를 하루 종일 돌았어도 / 분침 하나 약자의 침묵 하나 움직이지 못했다. → 화자는 자신의 내면 단련이 세상의 시계침을 돌리거나 누구를 움직일 만한 큰 힘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절감하고 있다. 
* 약자  → 4연과 6연에 나오는 것들
* 침묵 → 2연에 나오는 '이름'과 대조를 이룸.
* 추위 속 → 고결한 존재로 거듭나기 위해 거쳐야 하는 엄격한 자기 단련의 과정
* 6연 → 연약하지만 순수하고 이상적인 동물

시상의 흐름(짜임)
- 1연 : 속악한 현실과 순수한 삶에 대한 희구
- 2연 : 허위 의식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사람들
- 3연 : 인간의 탐욕과 이기심
- 4연 : 연약하고 순수한 자연물(식물)
- 5연 : 순수한 삶의 세계에 도달하기 위한 자기 단련
- 6연 : 연약하고 순수한 자연물(동물)

 

이해와 감상
이 시에서 시인은 추운 산길을 걸어가고 있다. 1연에서 시인은 눈사람이 되려면 얼마나 걸어야 하는 것일까라고 말한다. 시를 읽는 독자는 다소 당황하지 않을 수 없다. 추운 겨울 산길을 걷는 자는 어서 산길을 벗어나 따뜻한 곳을 찾기 마련이다. 그러나 추운 산에서 눈사람이 되기 위해 걷는다니. 이러한 궁금증은 이후 전개되는 시행을 읽어 가면 해답을 얻게 된다. 시인이 눈사람이 되고 싶은 것은 잡념을 떨구고 머리카락조차 희어지길 원하기 때문이다. 어수선한 잡념을 깨끗한 흰색으로 탈색시키고 싶어하며 허연 머리카락이 표상하는 지혜를 얻기를 원한다. 흰색은 단지 색깔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순결한 정신, 고아한 정신을 상징하는 색채라는 것을 감지할 수 있다. 그러므로 추운 산길은 세상의 잡스러운 색깔에서 벗어나, 순진무구한 색으로 자신을 바꾸어 놓기 위한 구도의 길인 셈이다.  
시인이 걷는 산길은 세상사람들로부터 멀어지는 길이기도 하다. 사물에 이름을 붙이고 이름이라는 텅빈 허상을 소유하고 즐거워하며, 이름에 속박되어 사는 어처구니없는 사람들의 잡박한 세계로부터 그는 멀어지고 싶어한다. 사람들은 산을 멀리하고 시정의 삶에 골몰하여 산조차 자신들의 쓸모에 맞게 깎아 내거나 메움으로써 변형을 가한다. 그러한 이기적인 삶 속에서 사람들은 무엇을 얻었을까라고 시인은 반문한다.  
시정의 잡다함과 허욕에서 시선을 돌리며 시인은 눈의 빛깔과 닮은 꽃이름을 떠올린다. 아름다운 이름을 떠올리며 산 속에 외따로 떨어진 자신을 위무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시인은 자신의 내면 단련이 세상의 시계침을 돌리거나 누구를 움직일 만한 큰 힘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절감하고 있다. 그는 다시 추운 산에서 자기 정진의 길을 걸으려 한다. 추운 산 속에 사는 작은 동물들을 떠올리며 그 순결한 삶을 내면화하고자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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