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스 국어/현대문학

초록 기쁨 - 봄 숲에서, 정현종 [현대시]

Jobs 9 2022. 3. 1.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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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기쁨  - 봄 숲에서

정현종

해는 출렁거리는 빛으로
내려오며
제 빛에 겨워 흘러 넘친다.
모든 초록, 모든 꽃들이
왕관이 되어
자기의 왕관인 초록과 꽃들에게
웃는다. 비유의 아버지답게
초록의 샘답게
하늘의 푸른 넓이를 다해 웃는다.
하늘 전체가 그냥 기쁨이며 신전이다.
 
해여, 푸른 하늘이여.
그 빛에, 그 공기에
취해 찰랑대는 자기의 즙에 겨운,
공중에 뜬 물인
나뭇가지들의 초록 기쁨이여.
 
흙은 그리고 깊은 데서
큰 향기로운 눈동자를 굴리며
넌지시 주고받으며
싱글거린다.
 
오, 이 향기
싱글거리는 흙의 향기
내 코에 댄 깔대기와도 같은
하늘의, 향기
나물들의 향기
 

 

시상의 흐름(짜임)

- 1연 : 초록의 숲에 비치는 햇빛의 모습
- 2연 : 나뭇가지들의 초록 기쁨
- 3연 : 흙들의 싱그러움
- 4연 : 흙, 하늘, 나무의 향기

 

이해와 감상
밝은 햇빛이 초록의 숲에 비치는 광경을 예찬적으로 그리고 있다. 화자는 햇빛을 '꽃들의 왕관'이나 '비유의 아버지'라고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출렁이며 내려오는 햇빛의 살결, 그 햇빛으로 만들어진 왕관, 그 왕관을 저마다 쓰고 있는 초록과 꽃들의 모습, 스스로도 어쩔 줄 모르고 솟아나는 초록의 기쁨들을 떠올리면 어느새 여러분도 하나의 꽃이나 초록이 되어 그 생명의 향연에 동참하는 착각에 빠져들어 갈 지도 모른다.
 
 ■ 정현종의 작품세계
정현종은 고통의 한국 문학 속에서 기쁨의 언어를 노래해온 아주 예외적인 시인이다. 정현종의 기쁨의 언어는 현실의 고통을 외면하는 데서 비롯되는 것도 아니고, 거짓 행복과 거짓 화해의 세계에 함몰되는 데서 비롯되는 것도 아니다. 이 기쁨의 언어는 제도화된 억압의 은폐를 민감하게 포착하되, 그 구속을 부정하고 거부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그 구속으로부터 자유로운 인간의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구성하는 데로 나아간다. "구속된 상태에서 구속에 대한 부정에 의해서만 예술은 자유의 이미지를 유지할 수 있다."는 아도르노의 언술을 정현종의 기쁨의 언어는 한편으로 껴안으면서 다른 한편으로 성큼 넘어가고 있는 것이다. 1965년에 등단한 이래 4 · 19세대의 시, 한글 세대의 시를 대표하는 몇 안 되는 시인들 중의 하나로서 30여 년을 일관되게 수행해온 정현종의 시업은 이제 기쁨의 언어의 지극한 경지에 이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정현종은 초기 이래로 바람의 시인이며 자유의 시인이었다. 바람이 자유의 바람인 것은 자연스럽다. 바슐라르의 말처럼 "바람의 환희는 자유"인 것이다. 그런데 정현종의 바람은 자기 자신만 홀로 자유로운 존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타자에게도 작용하여 타자를 변화시키는 능동적 존재이다. 그것은 생명의 우주적 숨결이 된다. 인간과 자연과 우주의 막힌 숨구멍을 터주어 숨을 잘 쉴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이 바람은 물 · 불과 함께 정현종 특유의 에로스적 상상력을 빚어낸다. 정현종의 에로스적 상상력은 인간과 사물, 인간과 자연, 인간과 우주, 그리고 고체와 액체, 기체들을 소통시키고 융합시킨다. 시인은 그 소통과 융합의 장면 앞에서 경탄하며 신명들린 듯 기쁨의 언어를 토로하고 황홀에 도취한다. 
대체로 자연은 그 소통과 융합의 현장이 되고 문명은 그것을 방해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정현종은 단순한 문명 비판자요 자연 찬미자인 것이 아니다. 정현종이 비판하는 것은 문명 자체가 아니라 억압된 문명이며 찬미하는 것은 자연 자체가 아니라 억압 없는 자연이기 때문이다. 정현종은 억압 없는 세계의 이미지, 자유의 이미지를 자연 및 자연과의 교감으로부터 길어내는 것인데, 그 이미지를 문명에 투사할 때 문명은 그것이 은폐한 과잉 억압을 드러내며 억압 없는 문명의 가능성을 시험받게 된다. 여기에 정현종의 해방의 시학의 요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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