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와 할머니의 실루엣
신경림
어려서 나는 램프불 밑에서 자랐다
밤중에 눈을 뜨고 내가 보는 것은
재봉틀을 돌리는 젊은 어머니와
실을 감는 주름진 할머니뿐이였다
나는 그것이 세상의 전부라고 믿었다
조금 자라서는 칸델라불 밑에서 놀았다
밖은 칠흑 같은 어둠
지익지익 소리로 새파란 불꽃을 뿜는 불은
주정하는 험상궂은 금점꾼들과
셈이 늦는다고 몰려와 생떼를 쓰는 그
아내들의 모습만 돋움새겼다
소년 시절은 전등불 밑에서 보냈다
가설극장의 화려한 간판과
가겟방의 휘황한 불빛을 보면서
나는 세상이 넓다고 알았다.그리고
나는 대처로 나왔다
이곳 저곳 떠도는 즐거움도 알았다
바다를 건너 먼 세상으로 날아도 갔다
많은 것을 보고 많은것을 들었다
하지만 멀리 다닐수록. 많이 보고 들을수록
이상하게도 내 시야는 차츰 좁아져
내 망막에는 마침내
재봉틀을 돌리는 젊은 어머니와
실을 감는 주름진 할머니의
실루엣만 남았다
내게는 다시 이것이
세상의 전부가 되었다.
■ 주제
• 고향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과 아쉬움
• 원초적 자아를 회복하고자 하는 열망
■ 특징
• 인생에 대한 관조와 깨달음을, 일견 회고록의 형식을 빌어 잔잔하게 서술
• 공간적, 시간적 배경의 변화에 따라 시상이 전개
• ①의 '자랐다' ― '믿었다', ②의 '놀았다' ― '돋움새겼다', ③의 '보냈다' ― '알았다'처럼 성장과정에 따른 분명한 인식의 차이
이해와 감상
이 시는 전체 3연 27행으로 이루어져 있다. 1연은 15행으로, 2연은 10행으로, 그리고 마지막 3연은 2행으로 구분되어 있다. 특히 세 개의 연은 공간적인 배경의 변화에 따라 구분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먼저, 첫째 연에서는 현실적인 공간은 시골로, 화자가 꿈꾸는 이상적 공간은 도시로 묘사되고 있는데, 첫째 연을 시간적 배경에 따라 다시 세분해 보면, ① 1행 ∼ 5행의 램프불 시절, ② 6행 ∼ 11행의 칸델라불 시절, ② 12행 ∼ 15행의 전등불 및 휘황한 불빛 시절로 3구분할 수 있다. 따라서 첫째 연은 시간적 흐름에 따라 작은 세 개의 연으로 구성되어 있는 독특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불빛의 종류에 따라 명도와 조도가 달라짐을 알 수 있다. 그 빛의 밝기는 문명의 발달을 말하는 것일 수도 있고, 한정된 인간 경험의 확장을 의미할 수도 있다. 물론 전체적인 분위기는 가난한 생활과 소박한 시골의 삶을 표현하고 있으며, 화자의 인생관은 미래지향적이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첫째 연은 편의상 ①, ②, ③으로 나눌 수 있다. ①의 시간적 배경은 1행의 첫 단어 '어려서'에 한정되고, '램프불'이라는 문명의 한계 속에서 성장하면서 결국 화자인 '내'가 경험한 것만을 전부라고 '믿었다'는 고백의 내용이 전부이다. ②의 시간적 배경은 6행의 첫 단어 '조금 자라서는'에 한정되고, '칸델라불'이라는 문명 속에서 화자는 '놀았다'고 고백한다. 화자인 '나'는 '놀이' 속에서 세상의 어둠과 각박한 세상의 풍조를 경험하게 되었음을 '돋움새겼다'는 내용이다. 그리고 ③의 시간적 배경은 12행의 첫 단어 '소년 시절은'에 한정되고, 화자인 '나'는 선택적인 생활을 해나간다. 즉, 화자인 '나'는 능동적으로 사물을 '보면서' '알았다'고 고백하고 있다. 12행은 문법적으로는 비문(非文)이지만, '소년 시절은'의 '-은'을 '소년 시절'을 강조하는 강조(특수)보조사로 보고, '나는'이라는 주어가 생략된 것으로 보면 그리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
그런데, 첫째 연에서 화자가 시간적으로 한정하고 있는 부사어(구)인 1행의 '어려서'와 6행의 '조금 자라서', 그리고 12행의 '소년 시절'은 시기적으로 어떻게 구분되는지 알 수가 없다. 독자에 따라서 동일한 시기의 각각 다른 표현으로 읽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첫째 연의 시간적 구조는 허구임이 드러나고 만다. 이는 화자가 장황하게 과거를 되새기다 보니 단어의 적절성을 고려하여 적확한 단어를 선택하였다기 보다는 그냥 생각나는 대로 그들 단어들을 끌어들였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리하여 결국 모호하게 하고 있을 뿐이다.
물론, 시의 내용상 1행의 '어려서'보다 더 자란 상태를 6행의 '조금 자라서'로, 그리고 그보다 조금 더 자란 상태를 12행의 '소년 시절'로 이해할 수는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①의 '자랐다' ― '믿었다', ②의 '놀았다' ― '돋움새겼다', ③의 '보냈다' ― '알았다'처럼 성장과정에 따른 분명한 인식의 차이와 그 경험의 결과에 이르기까지의 호응관계를 배려하기까지 한 작품에서 시간적으로 상당히 중요한 의미의 한정을 지어주고 있는 부사어(구)를 가볍게 처리하고 말았다는 아쉬움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둘째 연에서는 첫째 연과는 반대로 현실적인 공간은 도시로, 화자가 그리고 있는 이상적 공간은 시골로 묘사되고 있으며, 현실(현재, 도시생활)과 이상(과거, 시골생활) 사이에서 화자가 겪고있는 긴장과 갈등이 둘째 연의 주된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다.
둘째 연을 내용에 따라 두 개의 소단락으로 구분하면, ① 16행 ∼ 19행까지와 ② 20행 ∼ 25행까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①에서는 대처(도시)로 나온 이후 화자의 숱한 경험을 말하고 있으며, ②에서는 그 숱한 경험의 부질없음과 과거의 애틋한 영상(실루엣)만 남았음을 확인하고 있다.
둘째 연에서 화자의 인생관은 다시 과거지향적으로 바뀌어 어린 시절 경험했던 가치 속으로의 회귀를 꿈꾸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화자의 인생관이 감작스레 과거지향의 삶으로 바뀌는 것은 현실에 대한 염세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인식의 한계와 유한성을 깨달은 각성에서 오는 것이다. 그러나 화자가 꿈꾸는, 그러한 과거는 이미 흘러가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시인은 어머니와 할머니의 막연한 영상만을 추억하며 붙잡아 보려 하지만, 그러한 일들이 부질없음 또한 알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시가 전체적으로 침울한 느낌을 주고 있다.
예컨대, 출발신호와 함께 앞을 향하여 열심히 뛰어가던 육상 선수가 결승선을 앞에 두고 안도의 한숨을 돌리고 나니 갑자기 결승선이 사라져버린 꼴이다. 그러한 류의 허탈함과 공허함이 이 시의 내용 속에 잔잔하게 흐르고 있는데, 어쩌면 인생이라는 것이 자신의 노력에 걸맞는 대가가 주어지는 것도 아니고, 자신의 순수한 의도와는 정반대의 결과 앞에 당황해하기도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인생은 얼마나 허무한가? 그럼에도 자기 몫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이니 말이다.
마지막 연은 2행으로 간단하게 처리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공간적인 배경이나 시간적인 배경이 생략되고, 화자의 분명한 결론만을 뎅그라니 서술하고 있을 뿐이다. 의욕과 꿈에 부풀었던 어린 시절의 삶, 바둥거리며 열심히 살아왔던 삶들이 한순간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바로 그때에 시인은 과거를 그리워하며 그러한 과거 속으로 돌아가려 발버둥치게 된다. 그 과거는 원초적 자아를 되찾을 수 있는 공간일 수도 있다. 그래서 화자는 그 시절로 돌아가 원초적 자아와 일치감을 회복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 시가 전체적으로 인생에 대한 관조와 깨달음을, 일견 회고록의 형식을 빌어 잔잔하게 서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래의 창을 열어주지 못한다는 한계를 안고 있다. 마음에 흡족해하지 못하는 현실을 박차고 일어나지 못한 채 그 삶에 안주하려는 화자의 소극성이 작품의 분위기를 압도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화자는 처음부터 삶에 대한 떳떳한 목표의식이 없이 환경에 따라 순응하고 있을 뿐이다. 즉, 자신의 자기다운 삶을 살지 못한 것이다. 그러기에 과거나 고향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과 아쉬움을 독자들에게 한갓 '실루엣'처럼 안겨줄 뿐, 현실을 타개할 구체적인 행동을 유발시키지는 못하는 한계를 안고 있다고 하겠다. 또한, 화자는 마음속으로 과거나 시골을 그리워하고 있기는 하지만, 현재 편리하고 나름대로 만족을 채워주는 도시의 생활을 은근히 즐기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공무원 두문자 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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