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이미지
박남수
어둠은 새를 낳고, 돌을
낳고, 꽃을 낳는다.
아침이면,
어둠은 온갖 물상(物象)을 돌려 주지만
스스로는 땅 위에 굴복(屈服)한다.
무거운 어깨를 털고
물상들은 몸을 움직이어
노동의 시간을 즐기고 있다.
즐거운 지상(地上)의 잔치에
금(金)으로 타는 태양의 즐거운 울림.
아침이면,
세상은 개벽(開闢)을 한다.
개관
- 주제 ⇒ 힘차고 즐거운 아침의 이미지(아침에 느끼는 역동감과 환희)
- 성격 : 주지적, 역동적, 즉물적, 회화적
- 표현
* 지적이며 절제된 어조로 심상의 표현을 중시한 주지시
* 활유법(어둠과 물상을 살아있는 생물에 비유함)
* 시간의 흐름에 따른 전개(추보식 구성)
* 공감각적 심상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어둠 → 만물(생명)을 잉태하고 있는 건강하고 살아있는 이미지 / 성장의 준비기간 내지는 생명을 잉태하고 있는 시간
* 새, 돌, 꽃 → 구체적 사물이 아니라, 만물을 대표하는 추상적 의미를 지닌 것으로 대유적 표현임.
* 돌을 / 낳고 → "행간걸림" (독자의 호흡을 뺏고 긴장감을 조성하며, '낳고'를 강조하기 위한 용법)
* 어둠이 … 를 낳는다 → 어둠이 물러가고 사물들의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하는 것을, '생물의 출산 과정'에 비유한 표현
* 어둠은 온갖 물상을 돌려주지만 → 어둠의 소멸(생성을 위해서는 기존의 것이 소멸될 수밖에 없는 자연의 원리를 나타냄)
* 스스로는 땅 위에 굴복한다 → 생성을 위한 소멸
* 물상, 굴복 → 낯선 느낌의 시어 사용
* 무거운 어깨 → 어둠의 중량감(무게)
* 노동의 시간을 즐기고 있다 → 어둠 속에 갇혀 있던 사물들이 아침이 되면서 활기차게 움직이기 시작하는 건강한 생명력을 활유적으로 표현함.
* 즐거운 지상의 잔치 → 온갖 만물이 희열과 조화 속에 존재를 드러내는 아침의 정경 / 낙천적 분위기 및 사물에 대한 경이감
* 금으로 타는 태양의 즐거운 울림 → 황금빛 태양이 쏟아지는 광경을 표현. 생동감의 절정 / 새아침에 만물을 축복이라도 하는 듯한 태양의 모습 / 공감각적 표현(시각의 청각화)
* 아침이면 / 세상은 개벽을 한다 → 새 세상을 바라보는 시인의 경외감 / 관념적 진술(주제의식 표출)
* 개벽 → 아침의 이미지를 단적으로 표현한 말(핵심어) / 늘 반복되는 아침이 아니라, 항상 새롭게 태어나는 아침임을 강조한 표현 / 얼마 전까지 어둠 속에 있던 모든 사물들이 빛 아래 움직이는 모습은, 한 세상이 완전히 다른 세상으로 바뀌는 개벽과도 같은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시상의 흐름(짜임)
- 1행 ∼ 2행 : 기(起) → 생명력을 잉태하고 있는 어둠(동트기 전)
- 3행 ∼ 5행 : 승(承) → 어둠의 소멸(동트는 시간)
- 6행∼10행 : 전(轉) → 물상의 움직임과 밝게 빛나는 아침(아침의 시작)
- 11행∼12행 : 결(結) → 새롭게 태어나는 세상(개벽) : 주제구
이해와 감상
이 시에서 시인은 어둠과 아침이라는 흔한 일상의 언어를 매개로 하여 그것이 주는 이미지를 지적인 태도로 구체화하여, 아침의 건강한 이미지를 잘 표현해 내고 있다. 보편적으로 '어둠'은 시련이나 고통 등의 부정적 의미로 해석되는 것이지만, 이 시에서 시인은 어둠을 생명을 잠재적으로 잉태하고 있는 살아있는 건강한 이미지로 보는 것이 특이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어둠이 만물을 그 품안에 품고 있다가 아침이 되면 그 만물을 아침에게 돌려주고는 스스로는 물러서는, 어떻게 보면 전체적인 질서를 위해 자신이 양보하고 희생하는 겸손함의 모습을 어둠에게서 볼 수가 있는 것이다. 이렇게 아침이라는 시간이 되어 빛 가운데 드러난 세상 만물들은 태양의 축복을 받으며 건강하고 활기차게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야말로 힘차고 즐겁고 역동적이고 기쁨에 넘치는 아침의 이미지를 그리고 있는 것이다.
이 시가 제공하는 이미지는 우리가 평소의 다른 시들에서 찾을 수 있는, 젖어있는 이미지들과는 다르다. 즉 이미지들이 사용되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이 하나도 구체적이고 한정된 의미의 이미지로 드러나 있지를 않다는 것이다. 초반부의 '꽃,새,돌'등의 사물이 어떤 구체적인 것, 가령 시인이 아침 산책길에 집 뒤의 동산에서 만난 아침의 물상들인 것으로 제시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그것들은 그냥 물상들인 것이다. 이런 종류의 이미지는 시인의 정의적 태도나 심정이 젖어있은 마르고 경쾌한 이미지들인 것이다. 이런 이미지를 씀으로써 시인은 자기감정을 개입시키지 않고서 사물 본래의 이미지에 독자들 스스로 육박해 가게 하고 있다.
◆ '아침 이미지'에서 '어둠'과 '아침'
흔히 시에서 '어둠'은 부정적 이미지로, '아침'은 긍정적 이미지로 사용되면서, 두 시어는 대립적인 관계를 띤다. 하지만 이 시에서 어둠과 아침은 부정과 긍정의 대립적 관계를 띠지 않는다. 어둠은 밤의 시간 동안 만물의 생명을 잉태하여 아침이면 그 생명을 태어나게 한다. 즉 어둠은 생명의 모태로서의 의미를 지니며, 어둠 뒤에 이어지는 아침은 새롭게 태어난 모든 물상들이 환희에 차서 움직이는 시간대인 것이다.
이처럼 시인은 어둠과 아침이라는 흔한 일상의 언어를 매개로 하여 그것이 주는 이미지를 지적인 태도로 구체화함으로써 어둠과 아침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 '아침 이미지'에 나타나는 이미지
이 시는 대표적인 이미지즘 시 중의 하나로 시인의 감정을 배제한 채 아침이 되어 온갖 사물이 깨어나는 모습을 시각적 이미지와 역동적 이미지로 표현하고 있다. 따라서, 시적 의미의 이해뿐만 아니라 시어나 시구가 지니는 이미지의 체험도 이 시의 감상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가 된다고 할 수 있다. 바로 '어둠은 새를 낳고, 돌을 / 낳고, 꽃을 낳는다.'는 구절이나 '금으로 타는 태양의 즐거운 울림' 등과 같은 구절에서 이미지에 대한 독자의 상상력을 필요로 한다. 특히, 이 시에서 아침은 정지해 있는 것이 아니라 건강하게 생동하는 역동적인 모습으로 표현되고 있는데, '낳다, 굴복하다, 움직이다' 등의 동사가 많이 사용된 것도 아침의 동적인 이미지를 표현하는 데 효과적인 장치가 되고 있다.
◆ 박남수 시 세계와 문학사적 의의
1930년대 말 박남수의 시가 갖는 시사적 위치는 그 당시 대다수의 모더니스트들이 도시의 문명을 소재로 하여 그것의 감각적 인상을 선명히 표현하려 한 것에 비해 박남수는 오히려 그들이 배격한 전통적 소재를 택하여 그것의 회화적 감각으로 표현하려 한 데 있다. 다시 말해 1930년대 모더니즘이 도시를 소재로 택하여 도시에서이 체험을 형상화한 반면 박남수는 자연을 소재로 하여 그것의 체험을 형상화했다는 점에서 맹목적 모방이 아닌 박남수 문학의 독자성과 참신성을 찾을 수 있다. 또한 그의 시는 자연을 소재로 택한 그 당시 청록파 시인들과도 다른 면모를 보이는데 그것은 스스로 밝힌 바대로 자연 속에 사회적인 것을 은유하려 한 점이다. 예컨대 그가 선택한 자연은 우울하고 불안한 정조를 지니는 것으로 식민지 시대의 불안을 내포하고 있다.
결국 박남수의 시는 이미지즘을 강조하는 초기 모더니즘의 기법을 통해 한국의 자연을 소재로 하여 사회적인 상황을 표현하려 했다는 점에서 독특한 영역을 차지한다.
공무원 두문자 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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