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야(小夜)의 노래
오장환
무거운 쇠사슬 끄으는 소리 내 맘의 뒤를 따르고
여기 쓸쓸한 자유(自由)는 곁에 있으나
풋풋이 흰눈은 흩날려 이정표(里程表) 썩은 막대 고이 묻히고
더러운 발자국 함부로 찍혀
오직 치미는 미움
낯선 집 울타리에 돌을 던지니 개가 짖는다.
어메야, 아직도 차디찬 묘(墓) 속에 살고 있느냐.
정월(正月) 기울어 낙엽송(落葉松)에 쌓인 눈 바람에 흐트러지고
산(山)짐승의 우는 소리 더욱 처량히
개울물도 파랗게 얼어
진눈깨비는 금시로 나려 비애(悲哀)를 적시울 듯
도형수(徒刑囚) 발은 무겁다.
개관
- 제목의 의미: 밤의 이미지로서 "암담한 현실/어두운 시대"를 의미한다고 할 수가 있고, "小夜"는 "초경" 즉 저녁 무렵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으므로 점차로 어두워져 가는 시대적 현실을 뜻하는 말(어둠이 짙어가는 현실에서 부르는 노래)
- 성격 : 감각적
- 표현 : 시각과 청각에 의한 감각적 표현이 두드러짐.
- 구성 : ① 집 울타리에 돌을 던짐(제1연) ② 도형수의 무거운 발길(제2연)
- 제재 : 잃어버린 모성
- 주제 : 식민지의 질곡 속에서 겪는 죄수 같은 삶 / 잃어버린 모성에 대한 그리움과 비애
이해와 감상
이 시의 화자는 ‘도형수’로 등장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실제 죄수라는 뜻이 아니라 식민지의 질곡(桎梏) 속에서 죄수 같은 삶을 살고 있는 시인의 현실 인식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라 하겠다.
'무거운 쇠사슬'과 같은 고난을 끌고 식민지 현실을 헤쳐가는 화자에게 설령 자유가 있다고 해도, 그것은 진정한 자유가 아닌, ‘쓸쓸한 자유’일 뿐이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막막함 속에서 화자는 자신이 살아온 삶의 이정표를 들여다 보지만, 그것은 이미 썩어 흰눈 속에 파묻혀 버렸을 뿐 아니라 ‘더러운 발자국’까지도 함부로 찍혀 있다. 그 때, 그는 가슴 속으로부터 ‘치미는 마음’을 억제할 수 없어 갑자기 ‘낯선 집 울타리에 돌을 던지’지만, 그런 행위를 비웃듯 그에게 돌아오는 것은 ‘개가 짖는’ 소리뿐이다.
이제 화자는 잃어버린 모성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그러한 길을 따라 어머니가 묻혀 있는 ‘차디찬 묘’를 찾아가고 있다. 그러나 큰 꿈을 안고 새로운 한해를 시작하는 정월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면 할수록 그의 발걸음은 무거워질 수밖에 없다. ‘낙엽송에 쌓인 눈’은 바람에 흩어지고, 어디선가 울부짖는 ‘산짐승의 우는 소리’는 더욱 처량하게 들려온다. 개울물은 파랗게 얼어 있고, 하늘에선 당장이라도 진눈깨비가 쏟아져 자신의 ‘애를 적시울 듯’하기만 하다.
여기서 ‘낯선 집 울타리에 던지는 돌’은 보기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여지가 있다. 먼저 일제 강점기라는 시대적 배경을 고려하여 ‘낯선 집’은 일본인들의 집으로, 눈 위에 찍힌 ‘더러운 발자국’은 일제의 발자국으로 해석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치미는 마음’이라는 구절도 역시 일제에 대한 분노로 해석될 것이 마땅하겠지만, 이 시를 항일 저항시의 하나로 보기에는 다음과 같은 난점이 뒤따른다. 우선 ‘돌’을 던진 사람은 분명 ‘도형수’인 화자와 동일한 인물임이 분명하다. 돌을 던진 그의 행위가 역사 현실에 대한 분명한 의식의 결과였다면, ‘돌’을 던지고 난 후에는 적어도 자신의 행위를 적어도 한 가닥 긍지로 인식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에게는 ‘산짐승의 우는 소리’만이 처량하게 들릴 뿐이다. 그러므로 이 같은 행위는 현실에 대한 철저한 대응 의식의 소산이라기보다는 현실 상황에 대한 심한 좌절감을 느낀 화자가 다만 자신의 울분에서 벗어나고자 다소 신경질적으로 보인 행동임이 분명하다. 또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오장환이 그의 두 번째 시집인 {헌사(獻詞)}를 발간할 때까지만 해도 그는 분명 순수 서정 시인이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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