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스 국어/현대문학

고개, 이시영 [현대시]

Jobs9 2022. 4. 15.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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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

이시영

앞산길 첩첩 뒷산길 첩첩
돌아보면 정든 봉 첩첩
아재야 아재야 정갭이 아재야
지게목 떨어진다 한 가락 뽑아라
네 소리 아니고는 못 넘어가겠다
기러기떼 돌아 넘는 천황재 아홉 굽이
내 오늘 너를 묶어 이 고개 넘는다만
언제나 벗어나리,
가도 가도 서러운 머슴살이 우리 신세
청포꽃 되어 너는 언덕 아래 살짝 필래
파랑새 되어 푸른 하늘 훨훨 날래
한 주인을 벗어나면 또 다른 주인
한 세월 섬기고 나면 더 검은 세월
못 살아가겠다고 못 참겠다고 너도 울고 낫도 울고 쩌렁쩌렁 울었지만
오늘은 찬 바람에 봉두난발(蓬頭亂髮) 날리며
말없이 너도 넘고 나도 넘는다.
뭇새들 저러이 울어 예
차마 발 떨어지지 않는 느티목 고개,
묶인 너 부여안고 한 번 넘으면 그만인 아, 죽살잇고개를.
 
 
개관
- 성격 : 애상적, 서정적, 민중적
- 표현 : 민요적 율격과 정서 계승
           연민과 한탄, 안타까움의 어조
           감정이입을 통해 화자의 정서 강조
           유사한 시구를 활용하여 운율감을 형성하고 의미를 강조함.
           역사적 사실(억압적 봉건사회)을 차용하여 독재에 저항한 민중의 소망을 드러냄.

- 제재 : 동학 농민 운동, 고개
- 화자 : 죽은 정갭이 아재를 지게에 지고 죽살잇고개를 넘어가면서 지나온 삶에 대해 애통해 하는 사람
- 주제 : 억압적 사회 현실에서 벗어나려는 민중의 열망과 그로 인한 한(恨)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앞산길 첩첩 뒷산길 첩첩/ 돌아보면 정든 봉 첩첩 → 민요적인 율격과 정서를 계승, 험하디 험한 두메산골의 모습, 험난한 시대상황(고통스런 현실) 암시
* 아재야 아재야 정갭이 아재야 → aaba의 율격 구조 형성
* 정갭이 아재 → 동학 농민 운동에 참여했던 인물
* 네 소리 → 정갭이 아재가 부르던 노래
* 기러기떼 돌아 눕는 천황재 아홉 굽이 → 고통과 시련의 인생 역정을 표현함.
* 내 오늘 너를 묶어 이 고개 넘는다만 → 정갭이 아재가 죽었음을 암시함.
* 언제나 벗어나리 → 현재의 억압적 상황(머슴살이 = 독재)을 탈피하려는 심리
* 서러운 머슴살이 → 사회적인 억압의 대상, 온갖 수모와 억압을 받아가며 살아가는 존재(민중)
* 청포꽃 되어 너는 언덕 아래 살짝 필래 → 아름답고 풍요로운 삶 희구
* 청포꽃, 파랑새 → 동학농민운동 또는 전봉준 장군의 상징물
* 파랑새 되어 푸른 하늘 훨훨 날래 → 자유로운 삶에 대한 소망
* 한 주인을 벗어나면 또 다른 주인 / 한 세월 섬기고 나면 더 검은 세월 → 전근대적 신분 차별과 그 후의 독재 정권의 폭압적 지배, 불식되지 않고 계속되는 고통스러운 현실
* 못 살아가겠다고 못 참겠다고 → 사회적 불평등 현상에 대한 저항
* 낫 → 독재 권력에 대한 저항, 봉기, 항쟁의 이미지
* 봉두난발 → 쑥대머리로 더부룩하게 엉클어진 머리털
* 말없이 너도 넘고 나도 넘는다. → 정갭이 아재와 영원히 이별해야 하는 처지
* 뭇새들 저러이 울어 예 → 감정이입에 의한 비애감 고조, 아재의 죽음에 대한 슬픔
* 느티목 고개 → 좁은 고개를 가리키는 땅 이름
* 한 번 넘으면 그만 → 삶과 죽음의 경계
* 죽살잇고개 → 표면적 의미(죽음과 삶이 갈리는 고개, 죽은 정갭이 아재와 살아 있는 화자가 이별하는 공간),
  심층적 의미(살아서 머슴의 신세로 억압을 받으며 지냈지만 죽어서 머슴살이에서 벗어났으므로 오히려 진정한 삶을 살 수 있는 상황이 되었음을 의미)

시상의 흐름(짜임)
- 1 ~ 5행 : 정갭이 아재의 시신을 지고 천황재를 넘어가는 화자
- 6 ~ 9행 : 서러운 머슴살이 신세
- 10 ~ 16행 : 끝없이 반복되는 머슴살이의 설움
- 17 ~ 19행 : 차마 넘지 못할 죽살잇고개

 

이해와 감상
힘겨운 삶의 현실에 저항하다 죽은 정갭이 아재라는 인물을 통해 서럽고 비참한 삶을 살아야 하는 민중들의 한을 노래한 작품이다. 화자는 정갭이 아재를 지게에 싣고 첩첩이 산으로 둘러싸인 길을 걸어가고 있다. 정갭이 아재를 지게에 실은 이유는 정갭이 아재가 죽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정갭이 아재가 죽었을까? 그 이유는 12행 이후에 드러난다. 화자와 정갭이 아재는 서러운 머슴살이를 하면서 언젠가는 이 신세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었지만 그 희망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한 주인을 벗어나면 또 다른 주인에 의해 더 비참한 삶을 살게 될 뿐이었다. 그래서 '너도 울고 낫도 울고 쩌렁쩌렁 울었지만'에서 나타난 것처럼 그러한 현실에 적극적으로 저항을 한다. 그러나 그 저항으로 인해 정갭이 아재는 죽고 화자는 죽은 정갭이 아재를 지게에 묶고 죽살잇 고개를 넘어가지만 한 번 가면 다시 돌아오기 어렵기에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한 것이다.  
이 시는 동학 농민 혁명의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설정하면서 억압받는 민중의 한과 고통을 표현하고 있다. '정갭이 아재'의 죽음, '가도 가도 끝없는 머슴살이'와 같이 고통받는 민중들의 삶을 형상화하여 애상적인 정서를 유발시키고 있다. '죽살잇 고개'라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이별의 슬픔과 한 많은 삶으로부터 해방이라는 이중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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