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해운산업 절대강자
그리스는 기원전 480년 살라미스 해협에서 무적 페르시아 함대를 궤멸시켜 3차에 걸친 페르시아 전쟁의 최종 승자가 됐다. 이를 기점으로 그리스는 바다의 지배자가 됐고 문명 중심은 서구로 전환됐다. 하지만 기원전 2세기 중반 새롭게 바다를 재패한 로마에 점령 당하고 이후 오스만 통치를 받으며 2000년간 주권을 상실하는 수난을 겪는다.
오늘날에도 그리스 국력은 여전히 유럽 여러 국가에 못미치지만 유독 해운분야만은 글로벌시장을 석권하며 절대 강자로 군림한다. 그리스는 나라를 잃었지만 바다는 버리지 않았다. 그리스 선주들은 지중해 바다를 누비며 건재했다. 19세기초 전개된 독립운동 주역도 그들이었다.
그리스 해운기업은 가족경영이 특징이다. 가족 구성원의 분사를 통한 창업은 산업규모를 키우는 원동력이다. 그리스 선주들은 시장 소강기에 우수한 선박을 싸게 사들여 운송이익 극대화에 주력하고 호황기때 고가로 배를 처분하는 방식으로 수익을 창출한다. 자금은 거의 해외에서 조달한다. 막강한 인적네트워크도 해운업 부흥을 이끌었다. 영국·네덜란드·노르웨이 등 글로벌 해사클러스터 핵심인력은 주로 그리스계로 알려져있다.
그리스는 한국의 은인이다. 1971년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이 울산 지도만 들고 그리스 리바노스(Livanos) 선주를 찾아 유조선 2척을 발주한데서 우리 조선업 역사가 시작됐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다. ‘바다를 지배한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는 사실을 역사가 입증했듯 그리스도 다시 화려하게 부활할 것인가.
그리스 해운산업은 전체 GDP의 약 7% 차지
친환경 LNG추진선 및 LNG운반선을 중심으로 발주 증가 예상
그리스 선사들은 1950년대 소규모의 노후선대를 가지고 해운업에 진출했으며 1950년부터 1970년까지 중고선 매입을 통해 선대를 확장했다. 1970년대 당시 그리스 정부는 국가 해운업 시장 확장을 위해 해운업과 관련된 제도, 세법, 인프라 등을 개혁하며 당시 해외에서 활동하던 그리스 해운업자들은 1970년대 이후 그리스로 본사를 옮기기 시작했다. 피레우스 항구 주변, 아테네 남동부 지역과 아테네 북서부 지역을 중심으로 선박기자재 에이전트, 선박관리사, 보험사, 물류운송사 등 해운업과 관련된 기업들이 모이기 시작하며 전세계에서 해운업으로는 가장 중요한 국가가 되었다.
2022년 그리스선주사협회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1년 기준 그리스 해운업은 그리스 GDP의 약 7%를 차지하고 있으며 해당 업종과 관련된 종사자 수는 약 20만 명으로 집계되고 있다. 그리스 선사들은 그리스와 국제 다양한 조선·해운업 협회에서 주요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그리스 해운업과 관련된 주요 협회들은 아래와 같다.
○ Union of Greek Shipowners(UGS) / www.ugs.gr
○ Hellenic Shortsea Shipowners Association / www.sghortsea.gr
○ Greek Shipping Cooperation Committee / www.greekshipping.org
○ Greek Shipowners Associatoi for Passenger Ships (홈페이지 미운영)
이 중 가장 큰 영향력을 보유하고 있는 그리스선주사협회(Union of Greek Shipowners)는 1916년에 설립됐고 활동하고 있는 선주들이 보유한 선박은 약 3,000gt이다. 주요 활동하고 있는 분야는 벌크선, 탱커선, LNG/LPG 운반선 등이며 직접 해운물류업에 활동하기도 하며 이외 선박임대차 계약을 중심으로 선박을 운영하고 있다.
시장동향
그리스 선주사들은 전 세계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해상운송업을 통해 발생한 2021년 외화가득액은 약 170억 유로로 2008년 이후 최고 수치를 보였다. 2020년 기준, 그리스 선주사들이 해상운송업을 통해 가장 높은 외화가득액을 기록한 대륙은 아시아로 약 50억 유로이며 2위는 유럽으로 약 20억 유로 그리고 아프리카 대륙이 약 16억 유로로 3위를 차지했다.
<연도별 그리스 해상운송업 외화가득액>
(단위: 백만 유로)
[자료: 그리스중앙은행, 2022년)
<대륙별 그리스 해상운송업 외화가득액>
(단위: 백만 유로)
[주: 2020년 외화가득액 기준]
[자료: 유럽통계청 , 2022년)
UNCTAD(UN무역개발회의)의 2021년 세계해운보고서(Annual Review of Maritime Transport for 2021)에 따르면 2021년 기준 그리스 선박이 차지하는 재화중량톤(DWT)는 3억7342만 DWT으로 전 세계 중량톤의 17.6%를 차지하며 1위를 유지하고 있다. 또한 해당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그리스가 보유한 선박은 총 5,514척으로 전 세계 1위를 유지하고 있다.
※ 그리스 선박이 차지하는 전 세계 선박의 재화중량톤 비중(1,000GT 이상 선박 기준): 2016년(16.4%), 2017년(16.7%), 2018년(19.7%), 2019년(17.8%), 2020년(17.7%)
<연도별 주요 국가 선박 보유 동향>
(단위: 백만 톤(DWT))
[주: 1,000GT 이상 선박 기준]
[자료: UNCTAD, 2022.12.1.)
그리스선주사협회에서 발간한 자료에 따르면 2021년 기준 그리스 선주가 보유한 선박은 벌크화물선이 46.9%로 가장 높았으며 그 뒤로 유조선 35.4%, 화물선 6.3% 등이 차지하고 있다.
<그리스 선주사가 보유한 선종별 비중>
(단위: %)
[주: 1,000 GT 이상 선박 기준]
[자료: 그리스선주사협회, 2022.12.1.)
UNCTAD 보고서에 따르면 그리스가 보유한 선박은 유럽연합국(EU)에서 보유한 선박의 총 59%를 차지하며 1위를 유지하고 있으며 그 뒤로 독일(13.3%), 이탈리아(7.4%), 덴마크(6.8%) 등 국가가 그리스의 뒤를 따르고 있다. 그리스는 유럽연합국에서 보유한 전체 벌크화물선의 37%, 유조선 28.6%, 건화물선 20.2% 등을 차지하고 있다.
<유럽연합국내 그리스 선박 보유 동향>
주: 1,000 GT 이상 선박 기준
[자료: UNCTAD, 2022.12.1.)
<유럽연합국 내 그리스가 보유한 선종별 비중>
주: 1,000 GT 이상 선박 기준
[자료: UNCTAD, 2022.12.1.)
그리스선주사협회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그리스 선주사 발주 현황을 살펴볼 때 유조선이 전체 발주량의 60%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으며 그 뒤로 LNG운반선 12%, 화물선 10% 순서이다.
<그리스 선주사 발주 현황>
주: 1,000 GT 이상 선박 기준
[자료: 그리스선주사협회, 2022.12.1.)
유통동향 및 바이어 인터뷰
KOTRA 그리스 아테네 무역관에서 인터뷰한 선박 부품 수입업체이자 외국 기업들의 현지 에이전트로 활동하고 있는 그리스 기업 Technava사의 구매 담당자의 의견에 따르면 대부분의 선박 부품은 현지 에이전트·수입상·선주사·선박관리사들의 부품조달팀 또는 신건조발주팀을 통해 수입계약을 체결한다고 한다. 또한, 그리스 선박기자재 시장의 경우 현지 에이전트가 관리하고 있는 선주사들과의 인맥이 매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기 때문에 한국 기업이 현지시장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에이전트의 규모보다는 선박 종류별 활동 분야, 선주사들과 구축돼 있는 기존 인맥 등을 고려한 후 협력 에이전트 선정이 필요하다고 한다.
한국 기업의 입장에서는 그리스 시장 첫 진출 시 다수의 현지 에이전트를 통해 선박기자재 공급을 희망하는 편이나 현지 에이전트 입장에서는 에이전트 사이에서 가격 경쟁이 발생하고 전략적인 홍보 마케팅에 집중할 수 없기 때문에 단독 에이전트 조건으로 계약을 체결하는 방법을 선호한다고 한다.
선박의 특성상 수입한 선박 부품이 한국에서 그리스로 수출되는 경우는 거의 없으며, 해당 선박이 건조 또는 수리되고 있는 한국 또는 타 국가 조선사가 있는 곳으로 배송된다고 한다. 선박의 경우에도 그리스 선주사가 보유한 선박이라도 세무 기준에 따라 선주사들이 그리스 국적이 아닌 타 국가로 선박을 등록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한국 대그리스 선박 및 선박 부품 수출액 통계는 실제 그리스 기업들과 계약이 실행된 금액과 비교시 더 적은 금액으로 통계가 집계되고 있다.
Technava사 구매 담당자의 의견에 따르면 2022년 발생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해 유럽 내 공급이 중단돼 그리스를 포함한 유럽 국가들은 에너지 대란을 겪으며 지난 7년간 인상되던 LNG 가격이 급등한 점과 국제해사기구의 해양환경 보호 규제 정책이 앞으로 더욱 강화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한국조선사와 한국 조선기자재 제조사는 그리스 선사와 선박 업종 관계자들에게 높은 기술력으로 인지도가 높은 편이며 세계 선박시장이 친환경·스마트·자율운항 선박을 중심으로 확대되고 있기 때문에 한국조선사와 조선기자재 기업들은 친환경 선박과 탄소배출 감축에 필요한 꾸준한 연구 개발을 통해 조선·해운업 시장의 주도권 확보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보였다.
시사점
그리스는 전 세계 해운업 1위를 유지하고 있는 반면 조선사와 조선기자재를 생산하는 설비는 매우 미약해 수입에만 의존하는 시장이다. 코로나19에 따른 불안한 글로벌 시장 경제, 국제해사기구를 포함해 유럽연합에서 추진하는 유럽그린딜에 따른 탄소중립의 큰 틀 아래 기후법, 순환경제, 분류체계 등 다양한 기후변화 규제, 대응 및 관리에 따라 목표가 설정되고 있다. 그리스 선주사들과 해운업 관계자도 유럽연합이라는 큰 틀과 국제해사기구 아래 도입되는 친환경 규제를 피할 수 없기 때문에 탄소배출을 감축할 수 있는 친환경 선박과 선박기자재 구입으로 전환하는 방법을 선택할 수 밖에 없을 것으로 전망되며 앞으로 친환경 선박과 선박 부품을 중심으로 꾸준한 수요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유럽연합은 탄소중립 목표를 앞세워 항공·해운업 분야를 대상으로 지속가능한 해운 연료 사용지침(FuelEU maritime & FuelEU Aviation)을 신설하였다. 해당 지침은 바이오 연료 등 지속가능한 연료 사용으로 전환하는 계획을 통해 2050년까지 각 회원국별 목표를 설정할 계획이며 이러한 사유로 그리스 선주사들은 LNG 운반선 발주에 더욱 큰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친환경 선박 기술과 친환경 연료에 대한 관심도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 특히, 그리스 선주사들의 LNG운반선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는 시점인 점, 2021년 전 세계에서 발주된 대형 LNG운반선의 약 89% 이상을 한국 조선사에서 수주하며 압도적으로 선두를 차지하고 있는 점을 볼 때 앞으로 한국 조선사와 한국 조선기자재 기업들의 활약을 기대해 볼 수 있다.
자료: 그리스선주사협회, 유럽통계청, UNCTAD, 그리스 선박부품 에이전트 담당자 인터뷰, 선박부품 수입상 인터뷰 및 KOTRA 아테네 무역관 자체 조사 자료 종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