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란드(Greenland, Grønland)
북극해에 위치하는 덴마크령의 섬
수도 및 최대 도시는 누크(Nuuk). 인문지리적으로는 북아메리카에, 정치·역사적으로는 유럽(북유럽)에 속한다.
그린란드는 캐나다 북방에 위치해 아메리카 대륙에 속해 있지만, 오랫동안 유럽인의 문화권의 영향을 받아왔다. 원주민인 이누이트인이 전체의 88%를 차지하고, 덴마크인이 12%에 불과하다.
그린란드는 1262년 바이킹족에 의해 발견되어 노르웨이의 지배하다가 1721년 노르웨이 왕국과 덴마크 왕국이 합병되면서 통합왕국의 식민지로 전환되었다. 두 왕국이 분리된후 1814년 킬 조약(Treaty of Kiel)에 의해 덴마크에 귀속되었다. 수도는 누크(Nuuk)다.
덴마크는 스코틀랜드 북쪽에 있는 페로제도(Faroe Islands)도 영유하고 있는데, 그 섬도 자치정부를 두고 있다.
덴마크는 한때 그린란드를 덴마크화하려다 실패했다. 1953년 덴마크는 그린란드를 직할주로 승격시켜, 그린란드 주민들에게 덴마크의 시민권을 주었다. 동시에 그린란드 주민들의 자녀들을 덴마크에 의무적으로 공부하게 하고, 공식문서를 덴마크어를 사용하게 해 덴마크 문화를 이입시키려 시도했다.
그러나 그린란드 주민들의 주인 의식이 강화되면서 강력한 자치권을 요구했고, 1979년 5월 1일부로 자치권을 획득했다. 국가원수는 덴마크 국왕으로 하고, 외교권과 국방도 덴마크가 맡고 있다.
2차 대전 때 덴마크가 독일에 점령되자, 미국은 1941년 그린란드를 점령해 통치했다. 독일이 패망한후 1945년에 미국은 그린란드를 덴마크에 돌려주었다.
그후 1946년에 미국은 정식으로 덴마크에 그린란드를 1억 달러에 구입하겠다고 제안했다가 거절당한 적이 있다. 그후 미국은 그린란드에 공군기지 건설을 제안해 툴레공군기지(Thule Air Base)가 건설되었다.
그린란드의 주민은 미국·캐나다의 아메리카 원주민과 같은 민족적 뿌리를 둔 민족인 이누이트들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덴마크-노르웨이 왕국의 식민지 개척 이후 오늘날까지 그린란드의 주권은 덴마크에 있지만, 현재 그린란드 주민들은 법령에 따라 독립국에 준하는 고도의 자치권을 보장받고 있으며, 이에 그치지 않고 완전한 독립을 주장하는 정치 세력도 존재한다.
그린란드는 지구상에서 남극과 함께 육지가 수천 미터 두께의 빙하로 덮인 둘뿐인 지역이다. 당연히 매우 추워서 내륙에선 연평균 기온이 -30℃로 한여름에도 0℃ 이상이 되지 않는 빙설 기후가 나타난다. 그린란드 내륙과 북부, 동부 지역은 인간이 살기 힘든 척박한 지역이지만, 타실라크(Tasiilaq)나 이토코르토르미트(Ittoqqortoormiit) 등 적게나마 마을이 있다. 본래는 북동부(현재의 북동 그린란드 국립공원) 위치에도 거주자가 있었지만,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뒤 관측, 연구 시설 등을 제외하고 민간인은 빠져나갔다.
면적은 약 216만 6,086 km²로 남한 면적의 21.6배, 한반도 전체의 9.68배, 제주도의 1,158배, 뉴기니 섬의 2.75배 정도로, 사우디아라비아(약 215만 ㎢)보다 조금 더 넓다. 만약 그린란드가 완전하게 독립국이 된다면 세계에서 12번째로 큰 나라이자 세계에서 가장 큰 섬나라가 될 것이다.
허나 이런 광활한 육지와 대조적으로 춥고 척박한 환경 때문에 인구는 56,000명 정도로 굉장히 적어서, 인구 밀도가 0.026명/km²에 불과하다. 실제로는 누크를 비롯한 몇 개 도시에 집중적으로 인구가 분포하지만, 숫자로만 따지면 근방 50 ㎢ 내에 사람이 한명 있을까말까한 정도
그린란드라는 이름은 중세 시대 이곳에 정착한 바이킹이 지은 이름이다. 첫 바이킹 이주 집단은 그린란드에서 정착 가능한 땅을 발견해 정착했었는데 이들은 '초록색의 땅'이라는 의미로 Grœnland라는 이름을 붙였고, 이것이 국제적인 명칭으로 널리 퍼졌다.
그러나 그린란드는 얼음이 많아 초록색의 땅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왜 얼음뿐인 땅을 '초록색의 땅'이라 이름붙였는지는 불명이지만, 바이킹 그린란드 정착 이야기를 다룬 붉은 에이리크의 사가(Eiríks saga rauða)에서는 초기 정착자 에이리크가 다른 이주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마치 풍요로운 땅인 것처럼 보이려고 이 이름을 붙였다고 하였다. 처음 바이킹이 그린란드에 도착했을 때 초원이 약간 있는 해안가를 먼저 발견했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그린란드어 이름인 '칼라흘리트 누나트(Kalaallit Nunaat)'은 '칼라흘리트국(國)'이라는 의미이다. 칼라흘리트(kalaallit)는 서부 그린란드 토착 이누이트인이 자신들을 일컫는 자칭인 칼랄레크(kalaaleq)의 복수형 표현이며, 누나트(Nunaat)는 (사람이 사는) 땅 내지는 국가(國家)를 의미하는 단어이다. 가령 본국인 덴마크는 '카흘루나트 누나트(Qallunaat Nunaat)'라고, 인접 국가인 아이슬란드는 '카흘루나치아트 누나트(Qallunaatsiaat Nunaat)'라고 표현하는 식이다. 각각 직역하면 '데인족의 국가', '(예전에 그린란드에 왔던) 노르드인의 국가'라는 뜻이 된다.
그린란드 자연
지리
면적 216만 6086 km², 해안선은 4만 4087 km에 달하지만 전 국토의 84%가 얼음으로 덮였고, 그 외엔 그냥 돌뿐인 황무지가 대부분이다. 초원은 인간이 거주하는 해안가 끄트머리에 있고 국토의 1% 정도이며, 최남단 지역에 숲이 딱 한 곳(Qinngua Valley) 있다. 마을과 도시가 있는 지역들은 그래도 여름에는 초원이 드리워진다. 아무튼 이런 극단적으로 황폐한 환경 때문에 인구가 매우 적고 무거주지의 비율이 월등히 높다. 그린란드 전체에 사람 사는 마을이 100곳도 되지 않고, 인구가 2만 명을 넘는 마을은 한 곳도 없다.
그러나 지구 온난화로 인해 이제는 대륙 빙하가 다시 얼지 못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100만 년 전까지만 해도 정말로 '그린란드'란 이름답게 빙하가 전혀 없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 110만 년 전 그란란드 중부는 녹색 툰드라 지대라는 연구결과도 내놓았다.
41만 6천 년 전 그린란드 빙하의 일부가 완전히 녹았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
극단적으로 낮은 인구 밀도는 바로 옆 배핀 섬을 비롯한 캐나다 북극 제도에서도 나타난다. 그린란드 옆의 캐나다 북극 지역은 누나부트 준주 관할인데, 누나부트 준주의 면적이 203만 8722 km²로 그린란드보다 약간 작고, 사우디와 비등하지만 인구는 고작 3만 8천 명이다. 이 넓은 땅의 주도이자 가장 큰 도시인 이칼루이트의 인구가 고작 7500명일 정도. 이정도면 일개 동보다 인구가 적은 수준이다.
일부 지역은 목초지가 있다. 최남단 쪽. 인구의 대부분이 이곳에 몰려 살고, 행정·경제적 중심도 당연히 이곳에 위치한다. 물론 겨울이 오면 여전히 춥다. 이 목초지가 있는 지역의 위도는 인구 100만 명이 사는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와 동일한 북위 61도. 참고로 그린란드의 최남단은 북위 59도이다.
또한 아메리카 대륙에서 유럽과 제일 가까운 땅이다. 유럽인 아이슬란드와 300 km 정도 떨어져 있다.
그린란드 기후
그린란드의 해안가 지역은 대부분 툰드라 기후(ET)를, 최남단 지역 일부는 냉대 습윤 기후(Dfc)에 속한다.
물론 북위 59~83°인 북극권에 위치하여 대부분의 지역이 한대기후이지만, 의외로 북극권 이남(북위 66° 33′ 이남) 지역은 난류의 영향을 받아 겨울에도 많이 춥지 않고 1년 내내 눈도 많이 내린다. 그린란드 최남단에 위치한 북위 60° 08′의 나노르탈리크(Nanortalik)의 경우 1월 평균 기온이 -4.7℃로 대한민국의 중부 지방보다 약간 추운 정도에 불과하며 강원도 산지보다 오히려 약간 따뜻할 정도. 북위 64° 10′의 누크도 최한월인 1월과 2월 평균 기온이 -7.5℃로, 대한민국의 강원도 산지와 비슷한 겨울 기온을 보인다. 또한 국제공항이 있는 캉에흘루수아크처럼 북극권 이북임에도 한대기후에 해당하지 않는 곳도 있다. 다만 겨울이 그리 춥지 않은 대신 북극 지역답게 여름이 매우 시원한데, 나노르탈리크의 경우 가장 더운 7월의 평균 기온이 8.6℃로 대한민국의 11월 평균 기온과 비슷하다. 누크 역시 가장 더운 7월의 평균 기온이 8.0℃로 대한민국의 11월 평균 기온과 비슷한 수준이다. 즉 이 지역들은 여름이 대한민국의 늦가을 날씨와 비슷할 정도로 매우 시원하다.
그러나 해안 지대지만 위도가 높은 카나크 같은 북부 지방은 상당히 춥다. 최북단 마을인 카나크의 경우 가장 추운 2월의 평균 기온이 -24.6℃로 한반도 최한지인 개마고원보다 추우며, 이곳에서는 최저 기온이 -58.0℃까지 내려간 적도 있다.
내륙 지방은 여름 평균 기온조차 영하로 떨어지는 영구 빙설 지대로, 남극과 거의 동일한 혹독한 조건이다. 그린란드 정중앙의 아이스미테(Eismitte) 기지에서는 2월 평균 기온 -47.2℃, 7월 평균 기온 -12.2℃에 최저 기온 -64.9℃까지 기록되기도 하였다. 2017년 7월 4일에는 북반구 7월 사상 최저 기온 -33.0℃가 그린란드 'Summit Station'에서 관측되었다. 지금까지 그린란드에서 관측된 역대 최저 기온은 -69.6℃로, 1991년 12월 22일에 기록되었으며 현재까지 깨지지 않는 북반구 역대 공식 최저 기온이다. 다만 그린란드는 남극과는 달리 엄연히 덴마크 정부의 국유지라서 기온 분포와 같은 상세한 데이터가 대외적으로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남극과 비교해 연구 활동이 활발하지 않아 기상 관측 자료가 부족하여 기록이 많이 존재하지 않을 뿐, 공식 기록보다도 훨씬 추운 날들이 있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린란드의 최북단인 북동 그린란드 국립공원에는 피어리 랜드라는 곳이 있는데, 이곳은 지구에서 사실상 가장 북쪽에 위치한 대륙이며, 북극점(북위 90°)에서 불과 709.39 km 남쪽에 있다. 특이하게도 이곳의 대부분 지역은 얼음에 덮여 있지 않은데, 날씨가 따뜻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지나치게 건조해서 그런 것이다. 이곳의 연 강수량은 극도로 적어서 25 mm에 불과하며, 아주 옛날 지구가 지금보다 따뜻했을 때에는 이 지역에도 식물이 자라고 사람이 살았으나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는다. 즉 이곳은 날씨만 춥지 사막기후의 정의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곳이다.
2021년 8월에 기상 관측 최초로 그린란드에서 비가 내리는 일이 발생했다.
그린란드 크기
그린란드는 국제적으로 대륙으로 불릴 수 있는 육지 면적의 기준이다. 그린란드보다 큰 육지는 대륙으로, 더 작은 육지는 섬으로 정의한다. 따라서 그린란드는 세계에서 가장 큰 섬이 된다.
커다란 섬임은 분명하지만, 한때 가정용으로 많이 보급된 메르카토르 도법 세계지도에서는 그린란드가 아프리카와 비슷하거나 더 크게 나오는데 메르카토르 도법은 원통 투영법이기 때문에 위도 간의 면적이 동일하게 나타나 극지방에 위치한 그린란드의 면적이 실제보다 훨씬 크게 보이는 현상이 나타난다. 실제로는 아프리카 대륙의 알제리보다 작으며, 남아메리카 아르헨티나의 4분의 3 정도 면적으로 아르헨티나보다도 작다.
최근의 세계지도들은 옛날의 메르카토르 도법보다는 왜곡이 덜 심하도록 조정되어 나오지만, 그래도 보통의 네모난 세계지도에서는 그린란드가 여전히 원래 면적보다 훨씬 커 보인다. 정적도법인 등지구도법으로 세계지도를 보면 객관적이고 정확한 그린란드 면적을 체감할 수 있다. 사실 타 대륙과의 면적 비교를 위해 제일 좋은 건 지구본을 보는 것이다.
그린란드 역사
근대 이전
아주 오래 전 이주해 온 사람들은 이누이트로 그린란드 남부에 사카크(Saqqaq) 문화를 이루었고 북부에선 인디펜던스 문화가 존재했다. 이후 이들이 사라지고 그린란드 서해안의 도싯 문화와 북부의 인디펜던스-2 문화가 나타났으며, 훗날에는 바이킹이 이 섬에 들어왔다.
그린란드 땅의 99%는 얼음으로 뒤덮였지만 1%는 양과 소를 기를 수 있을 만큼 풍요롭고 한적한 풀밭이었고, 에이리크 힌 라우디가 처음 도착했다고 알려진 브라타홀리드는 풍경이 꽤 전원풍이다. 실제로 당시의 그린란드는 온난화에 의해 최근에 비하면 꽤 따뜻하고 그럭저럭 소와 양을 키우며 살 수 있을 정도의 풀밭도 있었다. 이런 바이킹의 팽창은 이러한 북방의 온화한 날씨와도 연관이 있었다. 거꾸로 바이킹의 몰락은 돌아온 소빙하기 때문이었다.
여하간, '풍부한 숲과 풀'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었다. 그린란드에 정착한 바이킹들은 필요한 목재를 구하기 위해서 종종 북아메리카 본토까지 찾아가야 했고, 그 과정에서 빈란드라는 식민지를 건설했다가 아메리카 원주민들과 충돌하기도 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바이킹들이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보다 5백 년 먼저 북아메리카에 도달했다는 것은 문헌 기록뿐 아니라 고고학적인 발굴을 통해 오늘날 분명한 사실로 인정되고 있다. 지리학적으로 그린란드 자체가 북아메리카의 일부라는 것을 생각하면, 유럽인들은 아주 오래 전부터 북아메리카(캐나다의 일부)를 잘 알았던 셈이다.
실제로 그린란드의 바이킹들은 뉴펀들랜드에서 북아메리카 본토의 래브라도 반도까지 항해했다. 그러나 도착하자마자 아메리카 원주민과의 무력 충돌에 의해 정착하진 못하고, 가끔 부족한 목재를 보충하러 갔다고 한다. 아메리카 원주민과 교역도 했는데, 원주민들에게 우유와 옷감을 주고 모피를 받아갔다고 한다. 나중에는 래브라도 해안까지 가서 나무를 캤는데, 여기서 노르웨이의 구리나 철 조각, 심지어는 노르웨이 왕 올라프 3세의 치세(1067~1093)에 주조된 은화가 발견됐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역사적 사실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뉴펀들랜드 래브라도 주 일대의 아메리카 원주민 부족들의 하플로그룹 분석에서 바이킹의 흔적이 발견되지 않아서 인류학자들의 의문을 자아냈는데, 당시 이 지역의 주민들이 외부인에 대해 대단히 적대적이었고, 때문에 전쟁 포로로 잡힌 바이킹들을 학살하거나 잡아먹어버림으로써 양자간의 인적 교류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라고 추정된다.
그린란드의 바이킹은 몇백 년 동안 계속 거주했고, 한때는 바다코끼리의 어금니(사치품인 상아의 대용품) 수출로 번영하여 가톨릭 주교구가 설정될 정도로 성장했으나, 14세기에 접어들면서 기후변화 등으로 인해 바다코끼리 사냥이 점점 힘들어지고 가축을 키우기도 어려워지면서 차차 인구가 줄어들었으며, 15세기가 되면 기후변화가 더욱 심해지고 유럽과의 교류마저 중단되는 등으로 인해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그러나 고고학적 및 유전학적 조사 결과 이들이 이 섬에서 몰락했다기보다는 아이슬란드로 질서정연하게 이주했다는 주장도 나온다. 그 근거로 오늘날 아이슬란드인 중 소수가 그린란드의 이누이트와 일치하는 모계 유전자를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학계에선 이 주장을 정설로 받아들이지 않고 부정하고 있다. 이들의 거주지의 몰락 과정은 미국의 생물학자이자 문화인류학자인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저서 《문명의 붕괴》에서 자세히 다루고 있는데, 그 내용 중 특기할 만한 점은 그린란드 바이킹들이 몰락 직전 극심한 식량난에 시달린 것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그린란드 유적지에서는 생선뼈와 각종 낚시도구들이 거의 발견되지 않아 생선을 잘 먹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그런데 실제로 바이킹들의 유골을 동위원소 분석 방법으로 분석해보면 그린란드 바이킹의 식사 가운데 해산물의 비율이 당초 50% 쯤에서 14세기에는 80%로 높아졌다고 한하고, 또 이 결과가 크고 부유한 농장에서 발굴된 뼈를 가지고 분석해 나온 것인데, 동시대의 작고 가난한 농장에서 발굴된 뼈를 이와 비교해보면 해산물의 비중이 더 높게 나와서 실제 비중은 그 수치보다 더 높을 수 있다고까지 밝히고 있다. 《문명의 붕괴》에서는 그린란드 바이킹의 해산물 주식은 사냥한 바다표범 고기인 것으로 보인다고 나타나므로, 식량난에 처하자 생선이라도 찾아 먹었던 것으로 보인다. 일단, 명목상으로는 적어도 13세기까지 그린란드가 노르웨이령으로 간주되었다.
한편 이 무렵에 서쪽 북아메리카를 통해 새로 들어온 이누이트들은 툴레 문화를 만들었으며, 이들은 다시 북쪽에서부터 내려와 16세기 경이면 그린란드 전역을 차지하였다. 1501년에 가스파르 코흐트-헤알이 그린란드에 다시 도착했으나 유럽인이 이주하진 않았다. 1721년에 노르웨이의 선교사 한스 에게데(Hans Egede)가 그린란드의 옛 북유럽인 정착지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선교활동을 위해 그린란드를 찾아가 지금의 누크인 고드호프를 세웠으며, 그린란드를 노르웨이의 식민지로 삼게 되었다. 당시엔 노르웨이가 덴마크-노르웨이 왕국이라는 덴마크 왕과의 동군연합이었기 때문에 덴마크 왕 프레데리크 4세가 곧 노르웨이 왕이었고 이때부터 사실상 덴마크령이 되었다.
덴마크 식민지 그린란드
그린란드가 노르웨이에서 덴마크로 공식적으로 할양된 킬 조약 체결 당시(1814년)에는 그린란드의 상당수는 미발견지였고 그린란드의 각지에 미국, (영국령) 캐나다, 노르웨이 등이 최초 발견한 지역들이 존재하였으며, 이 지역들을 영토로 주장할 명분이 존재하였으므로 그린란드 전체에 대한 덴마크의 주권은 인정받지 못하던 상황이었다.
따라서 덴마크는 미국과의 1917년 덴마크령 버진아일랜드 판매 조약, 1921년 영국과의 상호조약 등에서 덴마크의 그린란드 주권 인정을 받았고, 1921년이 되어서야 덴마크의 그린란드 전역에 대한 주권이 국제적으로 인정받았다. 물론 이조차도 간간히 도전을 받아 1930년대에 노르웨이가 그린란드 동북부의 사람이 살지 않는 지역의 영유권을 주장하기도 하였다가 국제사법재판소에서 퇴짜를 맞고서야 덴마크의 그린란드에 대한 영토 주장이 공고히 되었다.
이후 제2차 세계 대전 기간 동안에 덴마크 본토가 나치 독일에 의해 강제점령당하면서 안보 상의 이유로 미국이 점령하기도 했으며, 그 후로 미국 정부는 이 섬에 관심을 가져서 알래스카 조약 때처럼 1억 달러로 덴마크한테 사겠다고 제안했지만 거절당했다. 그 이전에도 구매에 대한 주장들은 있었다. 2019년에도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그린란드를 구매하겠다는 제안을 했으나, 또다시 덴마크와 그린란드 자치령 정부에 의해 거부당했다. 그럼에도 미국은 덴마크 정부와의 합의로 이곳에 툴레 공군기지를 비롯한 군사기지들을 유지하긴 했다.
1950년 북위 68도를 기준으로 나뉘어진 남그린란드와 북그린란드가 통합해 그린란드 식민지가 되었고, 1953년 그린란드 주가 되어 본토로 편입되었다. 그러다가 1979년 그린란드는 자치권을 획득했으며 2009년 국방과 외교를 제외하면 모든 면에서 덴마크와 분리되어 거의 준독립국이 되었다.
덴마크 자치령 그린란드
덴마크의 유럽 공동체(EC) 가입으로 같이 가입되었지만, 이에 관련된 혜택이 없어서 결국 1982년 주민 투표를 통해 탈퇴하기로 하고, 1984년에 맺은 그린란드 조약을 통해 1985년 1월 1일에 공식 탈퇴 처리되었다.
그로부터 반세기가 훨씬 넘은 2019년 8월, 트럼프 미 대통령이 다시 매입을 추진한다고 알려졌고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사실이라고 시인했으나, 덴마크 및 그린란드 측은 그린란드가 파는 것이 아니라며 거부했다. # 이에 트럼프는 발끈하며 예정돼 있던 덴마크 방문과 회담을 일방적으로 취소했다. 그 속에는 희토류와 안보에 관하여 중국과 러시아를 겨낭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특히, 중국도 이 섬에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트럼프 정부는 2020년 중에 그린란드에 영사관을 개설할 예정이라고 포린폴리시가 보도했다. 덴마크 정부도 영사관 설치를 승인하였다.
군사
국방이나 외교는 덴마크 정부의 영역이므로 그린란드와는 상관이 없었으나, 2009년 자치 정부가 세워지자 상황이 바뀌고 있다. 독립 움직임과 함께 국방, 외교 분야에 대한 권리도 요구하고 있기 때문.
지금도 국방과 외교는 덴마크 정부의 영역이며 덴마크 해군에서 14명으로 구성된 개썰매 부대 Slædepatruljen Sirius를 운용한다. 주요 임무는 빙하 등과 관련된 정보 수집이다. 그 외에 그린란드 도서 방위 사령부(Island Command Greenland)가 1946년부터 운용되고 있다. 규모는 군무원 포함 150명으로 작긴 하지만 항공기나 선박 구조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