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스페인 혼혈, 메스티조
필리핀을 방문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스페인 식민 역사 때문에 으레 혼혈이 많을거란 고정관념이 있다. 심지어 필리핀에 오래 살았다는 교민들 또한 그렇게 알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지만 필리핀은 중남미와 다르게 스페인 혼혈 비율이 고작 3%를 조금 넘는다. 이는 스페인이 식민 지배를 했던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터무니 없이 적은 비율이다.
필리핀에 메스티조가 적은 이유는 간단하다. 스페인에서 필리핀으로 건너온 스페인 사람들의 숫자가 적었다. 식민 시대 중남미로 이주한 스페인 사람들은 180만여명이 넘었지만 필리핀에는 고작 1만여명이 전부였다. 이유인 즉, 유럽에서 남미로 이동은 비교적 쉬웠던 반면 유럽에서 필리핀까지 오려면 긴 시간과 비용이 상당했기 때문에 일반 이주민들은 엄두도 못냈고 그나마 관료나 군인 또는성직자들은 의무와 개척이라는 목적이 있었기에 그 먼 거리를 감내하고 필리핀에 들어왔다. 게다가 그들이 터전을 잡은 곳은 항구가 인접한 도시 지역이지 산골이나 농촌 지역은 아니었다.
그리고 스페인 정부에서 현지인과 동화나 결혼은 철저히 금지했기에 그렇지 않아도 적은 이주 인구에 현지인과 관계까지 통제를 하다보니 혼혈의 비중이 낮을 수 밖에 없었다.
필리핀은 스페인 혼혈보다는 오히려 중남미계나 중국계 혼혈 비중이 훨씬 높은 편이다.
스페인 식민 시대에 이동 거리도 멀고 유지비도 많이 드는 애물단지 같은 필리핀에 자국민을 보내기 보다 스페인의 또 다른 식민지였던 중남미에서 중간 관리자 뽑아 필리핀에 파견하는 것이 가성비 측면에서 더 효율적이었다.
그리고 필리핀과 중국의 무역 역사는 이미 16세기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만큼 그 역사가 오래됐고, 무역을 하기 위해 필리핀에 자리잡은 중국인들이 당시 기록으로 중국인 거주촌(일명: 차이나타운)에 2만여명이 넘는 인구가 필리핀에 터를 잡고 살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간혹 메스티조가 더 많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필리피노 대부분이 스페인식 이름이 많기 때문에 분명 조상이 스페인 혈통을 이어받았을 것이라고 단정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슬프게도 한국도 일제 식민 시절에 "창씨개명" 강제했듯이 필리핀도 스페인 식민 통치 기간 동안 많은 필리피노들이 창씨개명을 했다는 것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한국인들은 창씨개명을 거부하고 저항했지만, 필리피노들은 스페인식 창씨개명을 서로 권장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필리핀 사회의 전통적인 혼혈은 극소수의 스페인 혼혈인 메스티조와 높은 비율로 남미계와 중국계 혼혈인 치노이가 대부분이며, 그 다음으로 중동계가 많고 최근에는 일본계 혼혈인 자피노와 한국계 혼혈인 코피노가 늘어나는 추세이기도 하다.
스페인과 필리핀의 관계
필리핀은 스페인의 식민지배를 받으면서 언어, 문화, 종교 등에 영향을 받았지만, 중남미 국가들과 달리 스페인어가 널리 쓰이지는 않았다.
근세
1521년에 페르디난드 마젤란이 필리핀을 발견한 이후, 5차례에 걸친 정복 전쟁이 벌어지고 결국 필리핀에는 1565년 ~ 1898년까지 필리핀 도독령이 들어섰다. 당시 필리핀 도독령은 누에바에스파냐의 일부였고 지금의 필리핀 지역뿐만 아니라 서태평양의 일부 섬들까지 필리핀 도독령이었다. 단, 민다나오 섬 지역은 스페인의 지배를 받지는 않았다. 그리고 필리핀은 스페인의 지배를 받으면서 지명, 인명, 문화, 종교(천주교) 등에서 영향을 많이 받게 되었다.
물론 필리핀 식민지 초창기의 운영 과정은 다소 험난했다. 중국의 유명 해적 리마홍이 필리핀의 스페인인 정착지를 습격하고 마닐라 전투(1574년)까지 일어나면서 스페인은 중국인들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다른 한편으로 필리핀 도독령은 이웃한 브루나이의 술탄과 계속 전쟁을 벌어야 했다. 여담으로 당시 필리핀에서는 브루나이 술탄국 측에서는 이집트인과 예멘인 용병들이 그리고 필리핀 도독령 측의 가톨릭 군에는 누에바에스파냐와 페루 부왕령에서 온 메스티소, 원주민 군대가 참전하는 등 실사판 토탈 워 시리즈 모드 매치를 벌이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필리핀 자체가 중세 이슬람의 전파 동진 한계점이고 부분적으로 중국계의 영향력도 있었으며 거기다 스페인 유럽 카톨릭 열강의 태평양 전진기지가 되니 근세의 세계화의 축소 박물관 같은 곳이었고 아니나 다를까 그 세계화의 주인공들은 해적들이었다.
중국계에 대한 반란 진압과 학살 이후에도 필리핀의 스페인인들은 중국인들을 계속 필리핀 마닐라로 이주하는 것을 받아줄 수 밖에 없었는데, 이는 아메리카 식민지에서는 스페인인들이 퍼트린 질병이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궤멸시켰던 것과는 반대로 필리핀에서는 열대 질병이 원주민보다 오히려 스페인인들에게 좀 더 위험했기 때문이다. 중국인이라고 필리핀의 열대성 질병에 타격을 받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이 쪽은 죽는 속도보다 들어오는 속도가 더 빨랐다. 물론 장시간 이주가 지속되다보니 스페인인들이 어느정도 유입은 되기는 해서, 안드레스 페드로 야고라는 독일인 학자의 조사에 의해 19세기에는 루손섬 인구의 1/3이 스페인계 혼혈이라는 통계를 내놓기는 했지만, 이 통계에서도 단순 유럽계 후손뿐만 아니라, 중남미 메스티소나 인도인과도 혼혈된 사람도 포함되어있으며, 루손섬 이외 지역에서는 각 지역에 따라 큰 차이가 나는것으로 나와있다. 이러한 역사를 반영하여, 라틴 아메리카의 경우 인구 상당수가 이베리아계 백인 남성과 원주민 여성 혼혈의 후손인 메스티소인 것과 다르게, 오늘날 필리핀인들을 대상으로 한 하플로그룹 조사에서도 부계에서도 백인의 혈통이 15% 남직 나오는데 그치고 있으며, 오히려 중국계의 비중이 더 높다. 스페인계 백인 혈통은 주로 저지대 지방에 집중되어있다. 모계에서 백인의 비율은 더욱 낮다.
필리핀 내 스페인인들은 대개는 유럽 스페인 본토에서 온 사람들보다는 멕시코에서 건너온 경우가 더 많았다고 한다. 포르투갈과 스페인이 동군연합을 구성한 기간은 실질적으로는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스페인 입장에서는 필리핀 식민지와 교류할 때 멕시코를 이용하는 것이 더 편했다.
19세기
중국과 필리핀, 멕시코를 잇는 갈레온 무역이 아편전쟁 등을 계기로 19세기 적자를 기록하면서 폐지된 것을 계기로 스페인과 필리핀 사이의 교역 규모도 대폭 감소하였다.
1898년 미국-스페인 전쟁에서 스페인이 패배하고 미국령으로 바뀐 이후에는 스페인어의 사용이 줄어들게 되었다. 애초에 필리핀 도독령은 유럽 스페인 본토보다는 갈레온 무역에 의해 멕시코(누에바에스파냐)나 중국의 영향을 더 많이 받은 지역이었고 라틴아메리카 지역에 비해 스페인어의 위상이 약할 수 밖에 없었다.
20세기
미국의 지배를 받았을 당시에 미국이 스페인어의 사용을 금지하게 되면서 스페인어의 비중이 많이 줄어들어버리게 되었다. 미국에서 독립하면서 필리핀은 잠시 스페인어를 공용어로 채택했지만,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정권하에서 다시 공용어의 권력을 박탈당하고 스페인어 사용자의 대부분이 라틴아메리카와 스페인으로 이주하는 결과를 가져오고, 80년대에 스페인어를 대학교에서 가르치는 것도 사라지면서 스페인어 사용자은 현저하게 줄어들어버렸다. 필리핀내 스페인어 사용자가 몇천명정도밖에 남지 않았었다. 다만, 필리핀 헌법에서 스페인어는 자발적이고 사용할 수 있는 언어로 규정됐다.
21세기
2008년부터 스페인어는 필리핀의 주요 언어로 지정되었고, 스페인 정부와도 협정을 맺게 되었다. 그리고 90년대초에 소수였던 스페인어 사용자가 2008년에는 30만명이상으로 늘어나게 되었다. 필리핀은 라틴 연합에도 가입되어 있고 이베로-아메리카 공동체의 참관국에 가입되어 있다.
2017년 6월 12일에 필리핀의 알레하노 하원의원은 스페인 식민시대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국명을 개명하는 법안을 발의했고 '마할리카'라는 새국명을 주장했다.#. 현재의 필리핀이라는 국명 자체가 16세기 스페인 국왕 펠리페 2세 에서 유래했기 때문이다.
도끼, 혼혈 아버지, 필리핀 스페인 혼혈
힙합레이블 `일리네어 레코즈`의 CEO이자 래퍼인 도끼(Dok2, 이준경)가 혼혈이라는 사실이 새삼 화제다.
도끼는 필리핀-스페인 혼혈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라이브 연주 일을, 친형은 힙합 앨범을 낸 뮤지션이며 사촌 누나는 세계적인 걸그룹 푸시캣 돌스의 전 멤버 니콜 셰르징거로 알려져 화제가 됐다.
최근 도끼는 자신의 트위터에 "어릴 때 사진 발견. 몇 살 때려나. 저 때나 지금이나 내가 누군지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내게 한국말로 말을 걸지 않았다"는 글과 함께 3장의 사진을 게재했다.
공개된 사진 속에는 어린 도끼가 줄무늬 양말에 멜빵바지를 입고 꽃다발을 들고 서 있다. 특히 지금과 변함없는 귀여운 외모가 눈길을 끈다.
예명인 도끼는 그가 고수하고 있는 머리를 밀고 선명한 두 줄을 남기는 헤어스타일이 "도끼 찍힌 자국같다"는 주변사람들 말 때문에 사용해왔다.
도끼 혼혈 소식을 접한 누리꾼들은 "도끼 혼혈인줄 몰랐는데" "도끼 혼혈 정말 힘들었겠다" "도끼, 혼혈이었구나"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