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당시 양구 북방의 피의 능선에서 벌인 진지(陣地) 공격전투.
전투기간은 1951년 8월 17일부터 9월 3일까지이다. 피의 능선(稜線)이란 《Star and Stripes》지가 지은 이름으로 3개의 고지 즉, 983고지·940고지·773고지와 연결된 산맥으로 이루어진 능선을 말한다.
피의 능선전투는 국군과 유엔군이 캔사스-와이오밍 선으로 진출한 후, 주 저항선 전방의 전초기지 확보를 위해 제한된 공격작전을 실시하고 있을 때, 미 제2사단과 국군 제5사단 제36연대가 양구 북방의 피의 능선을 공격하여 북한군 제12사단과 제24사단을 격퇴하고 목표를 점령한 공격전투이다.
피의 능선에 대한 공격은 1951년 8월 17일 아침 한국군의 공격으로 시작되었다. 8월 25일 10여 일에 달하는 공격으로 능선을 점령했으나 다음날에 탈취당하고 말았다. 이때 한국군 제36연대는 1,000명 이상의 사상자를 내었다.
그 뒤 미군은 제24사단의 4개 포병대대, 중형포 2개 대대, 1개의 105㎜ 대대 , 2개의 중박격포대대, 2개의 연대 전차중대, 그리고 중형 전차대대 1개 중대 등을 투입하여 피의 능선에 공격을 감행했다. 8월 27일, 940고지에 있던 미 제9연대 제2대대가 983고지를 공격하였고, 28일에는 제3대대가 동쪽에서 긴 능선을 공격했으나 실패하였다.
30일에는 제1대대 및 제2대대가 북쪽 940고지에 대한 정면 공격을 감행하였으나 능선 정상의 수백 미터 전방까지 진출했다가 적의 사격으로 저지당하고 말았다. 이후 9월 3일까지 제1대대는 포병 및 공중의 지원을 받으며 이 능선을 수차례에 걸쳐 공격하여 결국 견고히 구축된 적의 방어진지를 점령하기에 이르러, 3주일 동안 지속된 한·미 양군의 공격은 종지부를 찍었다.
이 전투로 인해 국군과 미군은 1개 연대 규모의 사상자가 발생했으며, 북한군은 1개 사단 규모 이상의 피해를 보았다. 또 북한군은 펀치볼 북쪽 능선으로 물러서게 되었으며, 한·미 양군은 피의 능선을 장악하여 백석산과 대우산 간의 측방도로를 확보하였다. 당시의 격전지에는 1980년 11월 11일 전투를 기념하기 위한 전적비가 세워졌다.
공무원 두문자 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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