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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자 합의, Plaza Accord, 일본 버블 경제

Jobs 9 2021. 2. 16.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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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자 합의, Plaza Accord

1985년 9월 22일 미국 뉴욕의 플라자 호텔에서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등으로 구성된 G5의 재무장관들이 달러화 강세를 시정하기로 결의한 조치


1985년 9월 22일 미국 뉴욕의 플라자 호텔에서 열린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등 5개 선진국 재무장관과 중앙은행 총재들의 회의를 통해 맺어진 협의. 주요 내용은 미국의 무역수지 개선을 위해 일본 엔화와 독일 마르크화의 평가절상을 유도한다는 것이다. 이 합의가 나온 배경에는 미국의 재정 적자와 무역수지 적자의 심화와 일본과 독일의 급성장이 자리하고 있다. 특히 일본의 경우 오일쇼크를 거치면서 대미 흑자 폭을 크게 늘려나가고 있는 중이었는데 미국이 이에 대해 제동을 건 것이다.

다시 말해, 플라자 합의는 일본에게 있어서 독사과나 다름없었다. 수출의존도가 높은 일본의 경제 구조상 엔화 절상이 되면 일본 기업들의 수출경쟁력이 악화될 것이고 이것이 일본 경제에 치명적이라는 것은 불 보듯 뻔한 결과였다.

 

왜 일본은 플라자 합의를 순순히 받아들였을까?

미국의 정치적 압박이 있었다는 견해도 있고 군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미국에 저항을 할 방법이 없는 일본의 굴복적인 외교였다는 분석도 있다. 일부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좀 더 객관적인 상황을 고려해본다면 당시 말도 안 되게 저평가된 엔화를 무기로 수출경쟁력을 갖춘 일본이 어마어마한 수익을 챙기다가 엔화의 가치가 정상적으로 자리를 잡았다도 할 수 있다. 이유는 일본뿐 아니라 독일, 영국, 프랑스 역시 통화 절상에 합의했기 때문이다. 국제사회에서 자국의 이익만을 위해 화폐 가치를 조정하다 보면 다른 나라들 역시도 똑같이 화폐를 조정할 것이고 이것이 화폐전쟁 촉발 요인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이다.

 

플라자 합의 후

1985년 플라자 합의 후 일본 달러당 엔화 환율은 달러당 237엔에서 1988년 127엔으로 급격히 떨어졌다.

<1달러를 237엔 주고 샀어야 했는데 127엔만 주고 살 수 있으니 미국의 의도대로 달러 가치가 떨어지고 엔화의 가치가 올라갔다는 말>

미국의 이익대로 됬으니 일본은 손해가 나는 게 정상

이듬해 엔화 평가절상으로 인해 일본의 GDP 성장률은 6.3%에서 2.8%대로 하락했다.

당시 일본은 수출로 먹고 사는 나라였는데 급격한 엔고로 인해 기업의 수출은 힘들었다.

<달러가 강했을때 2천 원에 팔던걸 달러가 약해져서 1천 원에 못 받는 격>

 

불황이 예상되자 일본 정부는 어쩔 수 없이 저금리 정책을 쓸 수밖에 없었다.

<저금리는 경기를 부양시킴>

1년 만에 5%에서 2.5%로 금리를 절반으로 떨어뜨렸다.

 

일본 버블(거품) 경제의 시작 - 주식과 부동산

 이론상 저금리를 단행하면 자국 통화는 약해져야 한다. 하지만 이를 비웃듯이 엔은 여전히 엔고를 유지하고 있었다.

엔고로 수입품 가격이 떨어지니 물가가 안정되고 일본 주가(니케이지수)가 무려 3배로 높게 치솟았다.

수출이 잘 안되자 눈치 빠른 일본의 사장들은 모아놓은 돈과 대출로 재빠르게 해외의 부동산을 매입하기 시작했다. 

기준금리인하로 일본 기업들은 은행에서 저금리로 돈을 빌려다가 해외 부동산을 사들이기도 했었다. 

달러가 쌌기 때문에 해외 부동산도 저렴했다.

당시 일본인들은 미국의 록펠러 센터와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공동매입 등 미국의 자존심을 건드릴 정도의 저력을 보여주었다.

해외뿐만 아니라 은행 대출을 이용해 자국 내 부동산도 마구잡이로 사들이기 시작했다. 

부동산. 주식할 것 없이 투자 광풍으로 일본의 부채는 거품과 함께 어마어마하게 쌓여만 갔다.

이때 일본인들은 끝도 없이 올라가는 부동산 가격에 땅값은 영원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버블(거품)의 계속

쌓여가는 부동산 거품으로 인해 당시 90년대 일본땅의 부동산값은 미국 본토의 4배까지 치솟았다.

게다가 87년도에는 미국의 주식 시가 총액까지 초월했다.

일본 정부는 오히려 재정지출까지 늘렸다.

막대한 양의 국채를 발행해 재정지출에 나섰고 그 결과 엄청난 양의 국채를 발행한 나라가 되었다. 

저금리와 방대한 재정지출로 서로 상승효과를 내며 자산 가격 버블을 더욱 부추겼다.

 

 

문제는 2가지였다.

1. 국제결제은행(BIS)의 지급준비율

2. 정부의 정책 급변경

 

1988년 BIS가 은행들은 최소 8%를 지급 준비금으로 유지해야 한다는 규칙을 만들었다.

<지급준비율 : 은행이 가지고 있어야 할 최소한의 돈>

일본 은행은 대출을 무리하게 했었기 때문에 은행이 보유하고 있는 돈이 별로 없었다.

그 상태에서 지급준비율을 맞추기 위해서는 대출을 억제하고 서둘러 돈을 돌려받아야 했다.

그래서 89년부터 단기간에 2.5% 금리에서 3.5%를 올려 6%까지 확 올려버렸다.

게다가 정부는 각종 과열된 부동산 규제와 더불어 부동산 세금을 강화하는 정책을 시행했다.

 

버블 터짐

갑작스러운 금리인상과 정책 변경은당연히 부작용을 불러오는데 일본 같은 경우는 되돌아오지 않을 정도로 심각한 부작용을 가져왔다.

대출로 부동산. 주식투자를 하던 일본 사람들은 대출금을 갚기 위해 부동산과 주식을 매도하기 시작했다.

주식과 부동산은 폭락. 붕괴되었고 많은 은행이 문을 닫았다.

부동산 가격이 꺾이자 부동산 담보 대출을 시작으로 부도 도미노가 이어졌다. 

수많은 사람들이 파산했고 해외자산들은 다시 헐값에 팔려나갔으며 경기부양에 실패하자 은행 및 증권사의 파산도 같이 이어졌다. 

그렇게 일본은 꺼져가기 시작하였다.

 

잃어버린 20년의 기록

이는 91년부터 시작이었다.

일본의 90년대 5.2%대의 성장률이 93년대에는 0.2%까지 떨어졌다.

98년도부터는 -성장률까지 이어졌다.

(2008 금융위기 때는 무려 -5%)

 

2010년 잠깐 좋았던 적 빼고는 일본 경제는 하강을 시작한 이후 20년이 넘도록 오랜 세월 동안 경기부진에 시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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