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이아스기, Triassic Period, 중생대의, 고생대 페름기와 중생대 쥐라기의 사이, 약 2억 4500만 년 전부터 1억 8000만 년 전까지 지속, 삼첩기(三疊紀), 포유류가 파충류에서 최초로 분화 트라이아스기라는 이름의 유래는 이 시대의 최고 지층인 독일의 지층이 3개로 뚜렷이 구분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지만 실제 표준 지층은 스위스의 석회암 해성층을 이용한다. 이 시대의 지구는 페름기 말에 형성된 초대륙 판게아가 유지되었으며 해안선은 단조로웠다. 후기에 들어서 판게아는 서서히 분열되기 시작하였지만, 이 대륙의 분열이 트라이아스기의 지구에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다. 기후는 초기에는 건조하였으며, 후기는 습하고 더웠다. 전기에는 주로 단궁류와 원시 포유류, 대형 파충류가 번성했으며, 중기 ~ 후기에는 중생대의 공룡이 등장했다. 바다에는 원시 어룡과 수서 파충류, 그리고 원시적인 암모나이트가 등장했다. 하늘에는 소형 익룡이 나타났다. 익룡 이 등장하기 전까지 하늘을 지배했던 곤충은 다양화하여, 노린재목, 대벌레목, 벌목이 크게 번성하였다. |
포유류 진화, 공룡 멸종 전
지금으로부터 약 6500만년 전인 백악기 말, 지구 환경에 큰 변동이 일어났다. 거대한 운석이 충돌해 엄청난 먼지를 발생시킨 것. 먼지 구름이 태양 광선을 차단해 급격한 기온 저하가 일어났으며, 식물이 광합성을 할 수 없게 되자 초식동물과 육식동물이 차례대로 멸종하기 시작했다.
당시 지구의 지배자 공룡도 이때 멸종됐다. 하지만 공룡의 멸종은 포유류에게 곧 새로운 기회였다. 공룡이 숲속을 어슬렁거리고 다닐 때 포유류는 그들의 먹이에 불과했다. 포유류가 파충류에서 최초로 분화한 것은 2억3000만~2억500만년 전의 트라이아스기 후기였지만, 공룡의 시대 동안 포유류들은 내내 억압돼 있었다.
낮에는 공룡을 피해 구멍 속이나 수목의 그늘에 숨어 있다가 밤이 되어서야 식물이나 곤충 등의 작은 동물을 잡아먹고 살았다. 운이 좋으면 공룡의 알을 훔쳐 먹기도 했다. 따라서 이때만 해도 포유류의 몸집은 아주 작았으며, 종의 수도 그리 다양하지 않았다.
포유류는 체온을 일정하게 유지하고, 알 대신 새끼를 낳아 젖을 먹여 키우는 특성을 지닌다. 백악기 말에 몰아닥친 엄청난 환경의 변화에서 포유류도 큰 곤란을 겪었지만, 그 같은 특성 덕분에 멸종은 모면할 수 있었다. 변온동물인 거대한 파충류보다는 항온동물인 작은 포유류가 기온의 변화에 좌우되지 않고 확실하게 자손을 남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본격적인 포유류의 시대가 열리면서 포유류의 종도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백악기 말의 대멸종 때 공룡들이 사라진 덕분에 포유류가 대규모로 분화할 수 있었고 우리 인류도 탄생한 셈이다. 이상이 포유류의 시대와 관련된 기존 학설이다.
공룡 멸종 전에 포유류의 대규모 분화 시작
그런데 포유류들이 대규모로 분화한 것은 기존 가설과는 달리 공룡의 멸종보다 1000만년~2천만년 더 일찍 시작되었다는 새로운 연구결과가 발표돼 주목을 끌고 있다. 시카고대학 및 사우샘프턴대학의 공동연구진이 ‘왕립학회보 B’에 게재한 논문이 바로 그것이다.
미국의 과학전문지 ‘사이언스데일리’에 의하면, 연구진은 박물관의 화석 컬렉션에 보관되어 있는 수백 종류의 초기 포유류 어금니들을 분석한 결과, 공룡이 멸종하기 전에 살았던 포유류들의 이빨 모양이 매우 다양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는 초기 포유류가 매우 다양한 식성을 지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서로 다른 식습관이 존재했다는 사실은 이번 연구의 핵심적인 증거가 되었다. 연구 결과 특정 먹이만을 먹는 포유류 종은 멸종됐지만, 다양한 종류의 먹이를 먹었던 종들은 생존할 수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즉, 공룡의 멸종이 포유류의 대규모 분화를 위한 완벽한 기회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공룡 멸종 직전에 포유류의 대규모 분화가 일어났던 이유는 여전히 수수께끼다. 이에 대해 연구진은 비슷한 시기에 분화하기 시작한 속씨식물의 부상과 포유류의 분화 사이에 연관관계가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속씨식물이 포유류가 먹기 좋은 씨앗과 열매를 제공했으며, 더불어 식물의 꽃가루받이를 시켜주는 곤충들이 많아짐으로써 그것을 먹이로 삼는 포유류도 함께 진화했다는 추정이다.
간상체 진화 덕분에 야간에도 생활 가능해져
포유류는 중생대 쥐라기(1억8000만~1억3500만년 전) 중기에도 폭발적으로 진화한 적이 있다. 이때의 진화는 다양한 종으로의 분화가 아니라 골격 및 치아의 급진적인 변화였다. 하지만 공룡을 피해서 야행성 생활 방식을 지닌 이들 초기 포유류가 어떻게 진화했는지는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그런데 최근 이 수수께끼를 설명해주는 새로운 연구결과도 발표됐다. 미국 국립보건원 산하기관 국립눈연구소의 연구진이 ‘셀(Cell)’의 자매지 ‘디벨롭멘탈 셀(Developmental Cell)’에 발표한 논문에 의하면, 그 비밀은 포유류의 간상체 세포에 숨어 있다.
즉, 포유류의 눈에 위치하여 색깔을 감지하는 역할을 하던 원뿔세포가 빛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는 간상체로 진화하면서 포유류들이 빛이 적은 환경에서도 생활할 수 있는 이점을 안게 되었다는 것.
생물체의 태아 발생과정을 살펴보면 진화과정에서 조상이 가지고 있었던 특징들이 드러나곤 한다. 연구진은 이에 착안해 이틀 된 쥐의 초기 발생단계와 열흘 이후의 발생단계를 거친 쥐의 간상체 세포를 비교했다. 그 결과, 이틀 된 쥐의 간상체 세포에서는 성숙한 원뿔세포에서 볼 수 있는 유전자들이 발현되는 게 확인됐지만, 열흘 이후의 쥐들에게서는 그런 부분이 유전적으로 억제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런 특징은 주행성이면서 주로 원뿔세포로 이루어진 망막을 가진 제브라피시와는 확연히 차이가 난다는 사실이 실험에서 확인됐다. 추가적으로 여러 척추동물의 유전체 염기서열을 추적한 결과, 연구진은 포유류의 NRL이라는 전사인자가 원뿔세포에서 간상체로 변화하도록 함으로써 초기 포유류들이 야간에 활동적으로 생활할 수 있는 이점을 안겨주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인간의 시력은 간상체가 아니라 원뿔세포에 의해 더 많이 좌우된다. 이는 인류의 조상들이 낮 시간에 주로 생활하도록 다시 진화했기 때문이다.
항온성 --> 밤의 세계에 진출 --> 주의 집중
고양이가 박스를 좋아하는 이유
클라우디아 빈케(Claudia Vinke)는 고양이가 좁은 은신처를 선호하는 이유가 환경 변화에서 안전하게 보호받기 위해서라고 설명했습니다. 고양이 같은 작은 동물이 자연 상태에서 안전하기 위해서는 사냥할 때를 제외하고는 가능하면 눈에 띄지 않는 장소에서 휴식을 취하는 것이 안전할 것입니다. 이와 같은 고양이의 야생 습성이 남아 있다는 것은 아직 고양이가 개만큼 가축화가 덜 된 상태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또 다른 가능한 이유로 지목되는 것은 것은 체온입니다. 고양이는 주변 환경이 30 – 36℃ 정도일 때 가장 안정감을 느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고양이 같은 작은 육식 동물은 체온을 쉽게 빼앗기기 때문에 체온을 유지하는데 많은 에너지가 듭니다. 따라서 사냥할 때 이외에는 가능하면 좁은 공간에서 몸을 웅크린채로 체온을 빼앗기지 않게 하고 자는 것이 생존에 유리합니다. 사냥할 때만 날렵하게 움직이면 되는 것이죠.
새로운 연구에서 밝혀진 바에 의하면, 쥐라기 말기에 비해서 쥐라기 중기에는 포유류의 진화가 최대 10배까지 더 빠르게 일어났으며 이 시기에 새로운 적응이 폭발적으로 일어났다고 합니다.
초기 포유류들은 중생대 (2억5200만년에서 6600만년 전) 동안 공룡들과 함께 살았습니다. 예전에는 당시의 포유류들이 모두 몸집이 작고 야행성으로 곤충을 잡아먹는 종류로만 이루어져있다고 생각했으나 지난 십여년 간 발견된 화석들 — 특히 중국과 남아메리카에서 발견된 — 은 이들이 섭식방법 및 활강, 땅파기, 그리고 헤엄치기 등의 이동방식을 포함하여 다양한 적응방식을 발달시켰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이와 같은 새로운 몸의 형태가 언제, 그리고 얼마나 빠른 속도로 출현했는지를 알아내기 위해 옥스포드 대학의 과학자들이 이끄는 연구팀이 중생대 포유류의 골격 및 치아의 변화에 대한 최초의 대규모 분석을 수행했습니다. 이들은 중생대 전체에 걸친 진화의 속도를 계산함으로써 포유류들이 ‘폭발적’으로 빠른 진화적 변화를 겪었으며 이 변화가 쥐라기 (2억년에서 1억4500만년 전) 중기에 절정에 달했다는 것을 보였습니다.
연구팀은 영국 옥스포드 대학과 오스트레일리아 맥쿼리 대학의 연구자들로 구성되었습니다. 이번 연구의 결과는 ‘커런트 바이올로지 (Current Biology)’ 에 출판되었습니다.
“이번 연구를 통해 여러 종류의 다른 몸 설계도와 이빨 종류를 가지고 했던 포유류들의 ‘실험’이 쥐라기 중기에 절정을 이루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논문의 주저자인 옥스포드 대학 지구과학과의 로저 클로즈 박사의 말입니다.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났던 이 시기를 통해 수천만년 동안 지속적으로 알아볼 수 있는 특징적인 몸의 형태가 만들어졌습니다.”
연구팀은 포유류의 각 계통들에서 몸의 형태와 이빨에서 눈에 띄는 변화가 백만년 당 몇 개나 일어났는지를 기록했습니다. 쥐라기 중기에 이러한 변화의 빈도는 계통당 1백만년마다 8 개에 이르렀습니다. 이런 예를 잘 볼 수 있는 것은 현재의 유태반류 및 유대류 포유류의 조상격인 수류(therian) 포유류 계통인데,이들은 쥐라기 중기에 평균보다 13배나 빠르게 진화했으나 쥐라기 말기에 가서 이들의 진화는 평균보다 훨씬 낮은 속도로 떨어졌습니다. 쥐라기 말기에 포유류 종 수 자체는 증가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감속’ 현상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폭발적인 진화를 일으킨 원인이 무엇인지는 알지 못합니다. 환경적 변화 때문일 수도 있고, 어쩌면 포유류가 이때쯤 여러 종류의 서식지에서 번성하고 생태학적으로 다양화할 수 있게 해준 ‘주요 혁신’ — 예를 들면 태생(live birth)이나 온혈성, 그리고 털 등 — 들이 쌓여 ‘임계질량’ 에 도달했을 수도 있습니다.” 클로즈 박사의 말입니다. “높은 수준의 생태적 다양성이 진화하고 난 후에는 혁신의 속도가 느려졌습니다.”
예를 들면, 다구치류(Multituberculates)의 경우 쥐라기 중기에 골격과 이빨에 급진적인 변화가 있었습니다. 쥐라기 중기가 끝날 때쯤 이들은 설치류 비슷한 몸의 형태와 독특한 모양의 이빨을 갖추게 되었고, 다구치류는 수백 개의 다른 종으로 분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때 완성된 전반적인 형태를 그로부터 1억3000만년 후 멸종할 때까지 유지했습니다.
“비슷한 종류의 다른 ‘적응방산’ 사건, 예를 들면 ‘캄브리아기 대폭발’ 에서도 이와 유사한 특성을 볼 수 있습니다.” 클로즈 박사의 말입니다. “쥐라기에는 여러 종류의 기묘하고 놀라운 포유류 몸 형태들이 갑작스럽게 나타났고, 그 이후 ‘걸러내는’ 과정을 거쳐 가장 성공적인 형태들만 살아남았던 것입니다. 이번 연구에서 밝혀낸 것은 포유류도 그들만의 ‘캄브리아기 대폭발’ 에 해당하는 시기, 즉 우리가 알 수 없는 방식으로 진화적 실험이 진행되면서 미래의 포유류 형태가 어떤 것이 될 지 불확실했던 시기가 있었다는 점입니다.” (사이언스 데일리)
포유류의 진화는 쥐라기에 가장 빠르게 일어났다
쥐라기 말기에 비해서 쥐라기 중기에는 포유류의 진화가 최대 10배까지 더 빠르게 일어났으며 이 시기에 새로운 적응이 폭발적으로 일어났다는 사실이 새로운 연구 결과 밝혀졌습니다.
초기 포유류들은 중생대 (2억 5,200만~6,600만 년 전) 동안 공룡들과 함께 살았습니다. 예전에는 당시의 포유류들이 모두 몸집이 작고 야행성으로 곤충을 잡아먹는 종류로만 이루어져있다고 생각했으나, 지난 10여 년간 발견된 화석들 — 특히 중국과 남아메리카에서 발견된 — 은 이들이 섭식 방법 및 활강, 땅파기, 그리고 헤엄치기 등의 이동 방식을 포함하여 다양한 적응 방식을 발달시켰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이와 같은 새로운 몸의 형태가 언제, 그리고 얼마나 빠른 속도로 출현했는지를 알아내기 위해 옥스포드대학의 과학자들이 이끄는 연구팀이 중생대 포유류의 골격 및 치아의 변화에 대한 최초의 대규모 분석을 수행했습니다. 이들은 중생대 전체에 걸친 진화의 속도를 계산함으로써 포유류들이 ‘폭발적’으로 빠른 진화적 변화를 겪었으며 이 변화가 쥐라기 (2억~1억4,500만 년 전) 중기에 절정에 달했다는 것을 보였습니다.
연구팀은 영국 옥스포드대학과 오스트레일리아 맥쿼리대학의 연구자들로 구성되었습니다. 이번 연구의 결과는 <커런트 바이올로지(Current Biology)>에 출판되었습니다.
“이번 연구를 통해 여러 종류의 몸 설계도와 이빨 종류를 가지고 했던 포유류들의 ‘실험’이 쥐라기 중기에 절정을 이루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논문의 주저자인 옥스포드대학 지구과학과의 로저 클로즈 박사는 말합니다.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났던 이 시기를 통해 수천 만 년 동안 지속적으로 알아볼 수 있는 특징적인 몸의 형태가 만들어졌습니다.”
연구팀은 포유류의 각 계통들에서 몸의 형태와 이빨에서 눈에 띄는 변화가 1백만 년 당 몇 개나 일어났는지를 기록했습니다. 쥐라기 중기에 이러한 변화의 빈도는 계통당 1백만 년마다 8개에 이르렀습니다. 이런 예를 잘 볼 수 있는 것은 현재의 유태반류 및 유대류 포유류의 조상격인 수류(therian) 포유류 계통인데,이들은 쥐라기 중기에 평균보다 13배나 빠르게 진화했으나 쥐라기 말기에 가서 이들의 진화 속도는 평균보다 훨씬 더뎌집니다. 쥐라기 말기에 포유류 종의 수 자체는 증가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감속’ 현상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폭발적인 진화를 일으킨 원인이 무엇인지는 알지 못합니다. 환경 변화 때문일 수도 있고, 어쩌면 포유류가 이때쯤 여러 종류의 서식지에서 번성하고 생태학적으로 다양화할 수 있게 해준 ‘주요 혁신’ — 예를 들면 태생(live birth)이나 온혈성, 그리고 털 등 — 들이 쌓여 ‘임계 질량’에 도달했을 수도 있습니다.” 클로즈 박사의 말입니다. “높은 수준의 생태적 다양성이 진화하고 난 후에는 혁신의 속도가 느려졌습니다.”
예를 들면, 다구치류(Multituberculates)의 경우 쥐라기 중기에 골격과 이빨에 급진적인 변화가 있었습니다. 쥐라기 중기가 끝날 때쯤 이들은 설치류 비슷한 몸의 형태와 독특한 모양의 이빨을 갖추게 되었고, 다구치류는 수백 개의 다른 종으로 분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때 완성된 전반적인 형태를 그로부터 1억 3천만 년 후 멸종할 때까지 유지했습니다.
“비슷한 종류의 다른 ‘적응방산’ 사건, 예를 들면 ‘캄브리아기 대폭발’에서도 이와 유사한 특성을 볼 수 있습니다.” 클로즈 박사의 말입니다. “쥐라기에는 여러 종류의 기묘하고 놀라운 포유류 몸 형태들이 갑작스럽게 나타났고, 그 이후 ‘걸러내는’ 과정을 거쳐 가장 성공적인 형태들만 살아남았던 것입니다. 이번 연구에서 밝혀낸 것은 포유류도 그들만의 ‘캄브리아기 대폭발’에 해당하는 시기, 즉 우리가 알 수 없는 방식으로 진화적 실험이 진행되면서 미래의 포유류 형태가 어떤 것이 될지 불확실했던 시기가 있었다는 점입니다.” (사이언스 데일리)
공룡의 등장으로 위기에 처했던 포유류, 야간 활동으로 살아남아
춥고 어두운 환경으로 밀려났지만 뇌·귀·이빨의 진화로 경쟁력 확보
공룡 사라지는 상황에서도 살아남아
1989년 미국 서부 뉴멕시코의 2억2000만 년 전 중생대 트라이아스기 후기 지층에서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는 분석(糞石, 똥 화석)이 발굴되었다. 여기서 아주 작은 뼈 하나도 발견했다. 그것은 가장 오래된 포유류 아델로바시레우스(Adelobasileus)의 머리뼈 일부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아델로바시레우스는 길이가 10㎝ 정도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꼬마 아이에게 아델로바시레우스를 보여주면 ‘쥐’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런데 이때는 아직 공룡은 등장도 하기 전이었다.
공룡이 없다고 해서 아델로바시레우스가 살만 했던 것은 아니다. 공룡 대신 길이가 1m가 넘는 메토포사우루스라고 하는 양서류와 길이가 10m가 넘는 피토사우루스라고 하는 파충류가 사방천지에 널려 있었다. 이들은 웬만한 것은 한 입에 꿀꺽 삼킬 수 있는 절대 강자였다. 거대 양서류와 파충류에게 쉽게 당하지 않으려면 온 몸을 단단한 갑옷으로 감싸야 했다. 갑옷 같은 것이 있을 리 없는 포유류인 아델로바시레우스는 두려움 속에서 살아야 했다.
그렇지 않아도 힘겨운 삶을 살고 있는 아델로바시레우스에게 새로운 강자가 등장했다. 지구 최초의 공룡 코엘로피시스가 나타난 것이다. 공룡이 커서가 아니었다. 코엘로피시스는 머리에서 꼬리까지 길이가 2m 정도이고 꼬리를 제외한 몸통의 길이는 1m에 불과했다. 당시 살고 있던 거대 양성류와 거대 파충류에 비하면 꼬마에 불과했다. 그런데 서서히 지구 대륙은 공룡의 차지가 되어가고 있었다.
생지옥으로 변한 지구
최초의 포유류 아델로바시레우스와 최초의 공룡 코엘로피시스가 등장하던 때는 초대륙 판게아가 한창 분열하고 화산 활동이 빈번하던 때였다. 대기 중에 이산화탄소가 늘어나 지구온난화가 일어났고 대륙은 사막으로 변해갔다. 식물들은 말라죽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직전에 30%에 달했던 산소 농도가 11%까지 급격히 떨어졌다. 오늘날 대기 산소 농도 21%에 비해도 절반밖에 안 되는 것이다. 동물들은 숨을 쉬기 힘들었다. 포유류와 공룡이 탄생한 시기는 굉장히 덥고 건조할 뿐만 아니라 산소가 적어 숨쉬기조차 힘든 시대였다.
이 시기에 등장한 포유류와 공룡은 환경 조건에 맞는 신체 구조였지만 그 이전부터 살고 있었던 거대 양서류와 파충류들은 서서히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이제 그 땅을 누가 차지할 것인가? 포유류와 공룡은 지배자가 되기 위한 경쟁을 시작한다.
이미 출발선이 달랐다. 공룡은 포유류보다 훨씬 컸으며 파충류답지 않게 빨랐다. 파충류들은 다리가 몸통 옆으로 튀어나와 있어서 빨리 이동하지 못하고 몸을 구불거리며 움직일 때마다 허파가 눌려서 호흡이 자유롭지 못하다. 걸을 때와 숨쉴 때를 구분해야 했다. 포유류 아델로바시레우스도 이들과 마찬가지로 몸을 구불거리면서 걸었다. 그런데 공룡은 다리가 몸통에서 바닥을 향해 아래로 똑바로 나왔다. 공룡은 두 발로 서서 걸었다. 하반신과 상반신이 따로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공룡은 걸으면서도 숨을 쉴 수 있었다. 공룡은 인간보다도 훨씬 앞서서 이미 2억 년 전에 직립보행을 한 것이다.
게다가 공룡에게는 공기뼈라는 게 있었다. 뼈 속에 둥글고 작은 구멍과 튜브 형태의 공간이 있는 것이다. 공기뼈에는 공기주머니가 달려 있었다. 산소를 저장하는 탱크가 몸 안에 있는 셈이다. 이런 공룡과 함께 살아야 했던 포유류의 삶은 얼마나 고달팠을까! 출발점도 달랐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격차가 더 커졌다.
빛에서 얻던 정보를 소리에서 얻다
7000만 년을 건너뛰어 보자. 이제는 쥐라기 후기다. 등에 거대한 골판(骨板)이 달린 스테고사우루스와 포악한 알로사우루스, 길이가 30m가 넘는 수페르사우루스가 살던 시대다. 공룡들이 각양각색의 모습으로 다양성을 과시했다. 이때의 대표적인 포유류는 라올레스테스(Laolestes)다. 7000만 년 전과 차이점을 거의 느낄 수 없다. 크기도 15㎝ 정도에 불과했다. 꼬마 아이에게 라올레스테스를 보여줘도 ‘쥐’라고밖에 대답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여전히 작고 보잘 것 없는 라올레스테스에는 한 가지 혁신이 숨겨져 있다. 조상들과 달리 라올레스테스의 턱은 한 개의 뼈로 구성되어 있다. 턱 뼈가 하나로 줄어들었으니 더 단단해졌을 것이다. 그런데 이걸 가지고 혁신이라고 할 수는 없다. 여러 개의 턱뼈가 합쳐져서 하나의 턱뼈가 된 게 아니라 여러 개의 턱 뼈 가운데 하나만이 턱으로 남았다는 것이다. 그러면 나머지 뼈는 어디로 갔을까?
나머지 뼈의 행방은 귀에서 찾을 수 있다. 턱에 있던 뼈들이 귓속으로 이동해 망치뼈와 모루뼈가 되었다. 망치뼈와 모루뼈는 고막을 통해 전달되는 소리를 증폭시키는 역할을 한다. 덕분에 포유류는 높은 소리를 잘 들을 수 있게 되었다. 파충류에는 망치뼈와 모루뼈가 없다. 이런 뼈가 보인다면 그것은 포유류라고 할 수 있다.
턱뼈가 줄어들고 속귀가 발전했다는 게 그래서 무슨 의미일까? 그것은 포유류가 밤의 세계로 진출했다는 것을 뜻한다. 이전까지는 빛이라는 정보에 의존해서 살았다. 속귀가 발명되자 소리라는 정보를 쉽게 해석할 수 있게 되었다.
소리만 들린다고 밤의 세계에 진출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밤에는 춥다. 몸이 사용하는 에너지는 화학반응을 통해 얻어지는데, 화학반응은 일정한 온도가 유지돼야만 일어난다. 그런데 포유류는 체온이 언제나 일정했다. 이걸 내온성(內溫性)이라고 한다. 내온성을 얻기 위해서는 세포 하나에 미토콘드리아가 수천 개씩 들어있어야 한다. 라올레스테스가 속귀를 가졌다는 것은 밤에 생활을 했다는 뜻이고 밤에 생활을 했다는 것은 내온성을 확보했다는 말이 된다. 마침내 어둡고 추운 밤의 세계로 척추동물이 발을 들여놓았다. 포유류에게는 이전과는 다른 전혀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체온 유지 위해 더 많이 먹어야
밤은 가혹한 세계다. 밤에 활동을 하려면 몸 안에서 열을 내야 하는 내온성이 있어야 한다. 몸에서 열을 내려면 연료가 많이 필요하고, 연료를 확보하려면 먹이를 많이 얻어야 한다. 그런데 귀가 좀 들린다고 먹이를 많이 얻을 수 있겠는가? 먹이를 조금만 먹고도 체온을 유지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런데 포유류는 몸집마저 작아서 체온 소실이 매우 컸다. 그래서 작은 동물일수록 먹이가 더 많이 필요하다. 이건 털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포유류는 새로운 장치를 발명해야 했다.
중국 라오닝성의 1억 2500만 년 전 백악기 전기 지층에서 포유류 에오마이아(Eomaia) 화석이 발견되었다. 크기는 여전히 15㎝에 불과했다. 그런데 에오마이아의 턱에는 그 전의 포유류와는 달리 요철(凹凸) 모양의 어금니가 있었다. 초기의 포유류 이빨은 산(山) 모양이어서 먹이를 찟지 못했다. 이젠 음식을 찢고 갈아 으깰 수 있는 이빨을 가진 것이다. 그 결과 먹을 수 있는 곤충의 종류가 늘어났다. 식량의 폭이 확대된 것이다. 심지어 식물을 먹을 수 있는 포유류들도 생겨났다. 식성이 좋아진 것이다. 이젠 밤의 세계에서도 에너지를 충분히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우리 인간은 포유류의 대표선수가 아니다. 인간은 별난 포유류일 뿐이다. 따라서 포유류 이야기를 할 때 우리 인간을 생각하면 안 된다. 우리가 풍부한 색깔의 세계를 누리고 있다고 해서 다른 포유류들도 그런 것은 절대로 아니다. 아름다운 색체의 세상을 보고 있는 포유류는 인류를 비롯한 몇 가지 영장류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포유류들은 색을 잘 구분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포유류는 밤의 동물이기 때문이다. 캄캄한 밤에 색깔은 중요하지 않다. 밤이라는 세계에 사는 포유류는 색을 구분하는 능력을 포기하고 대신 약한 빛을 받아들이는 능력을 택했다. 낮에 활동하게 된 포유류들도 마찬가지로 색을 구분하는 능력이 거의 없다. 지금은 사라진 투우장에서 소가 빨간색 천을 보고서 흥분한 게 아니었다. 소들은 팔랑거리며 움직이는 천의 모습에 반응했을 뿐이다.
작고 짧은 수명 덕분에 빠른 진화
캄캄한 밤에 소리에 의지해서 곤충의 위치와 움직임을 파악하는 일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또 캄캄한 밤에 나갔다가 새벽이 오기 전에 다시 굴 속으로 돌아오는 일도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빨 모양이 바뀌고 다양한 식성을 갖게 된 탓에 뇌에 충분한 에너지를 공급하는 것만으로 가능한 게 아니다.
포유류들은 공룡과는 다른 뇌를 가져야 했다. 단지 뇌의 크기가 달랐다는 말이 아니다. 포유류의 뇌에는 대뇌새겉질(cerebral neocortex)이 있다. 기억과 학습 그리고 의사소통의 능력을 제공하는 영역이다. 밤의 세계로 진출한 포유류는 대뇌새겉질을 만들어 내고 크게 키워냈다. 그 끝에 우리 인류가 있다.
밤의 세계로 진출하면서 포유류는 공룡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턱과 귀, 이빨과 뇌의 구조를 바꿨다. 하지만 커다란 공룡이 100년까지도 살 수 있는 데 반해 포유류는 여전히 작았고 수명은 2~3년에 불과했다. 슬픈 일이 아니다. 짧은 수명은 빠른 세대교체를 의미한다. 세대가 거듭될 때마다 돌연변이가 일어난다. 그리고 작을수록 고립될 확률이 크다. 따라서 작고 수명이 짧을수록 진화할 수 있는 기회가 많다. 결정적인 환경 변화에 살아남을 수 있다는 뜻이다. 6600만 년 전 공룡이 멸종할 때 포유류가 살아남아 진화를 계속하다가 결국 인류가 탄생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원시 포유류가 밤의 세계로 진출하지 않았다면 우리 인류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