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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 피치→포 피치 변신 김광현

Jobs 9 2020. 9. 26. 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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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현은 ‘투 피치 투수’였다. 시속 150㎞가 넘는 빠른 직구와 슬라이더, 두 가지를 섞어 던졌다. 슬라이더는 시속 140㎞를 넘나들었고, 바닥에 박힐 정도로 떨어졌다. 그의 슬라이더에 타자 방망이는 연신 헛돌았다. 명품 슬라이더로 그는 KBO리그 2년 차였던 2008년 최우수선수(MVP)가 됐고, 한국 야구 최고 좌완 투수로 군림했다.
 
메이저리그(MLB)는 투 피치 투수를 마이너스 이력으로 봤다. 김광현은 2014년 시즌 뒤, SK 와이번스 허락을 얻어 포스팅 시스템(비공개 경쟁 입찰)을 통해 MLB에 도전했다. 그는 “직구와 슬라이더만 던지는 투 피치 투수여서 빅리그에서 통하기 어렵다”라는 평가를 받았다. 당시 샌디에이고 파드리스가 그에게 관심을 보였는데, 입찰액이 200만 달러(24억원)였다. 그에게 제시한 연봉은 100만 달러(12억원)에 그쳤다. 결국 KBO리그에 남았다.
 
김광현은 ‘투 피치 투수’ 꼬리표를 떼기로 마음먹었다. 2015년부터 커브와 체인지업, 스플리터 등을 익혔다. 꼬리표 떼기는 쉽지 않았다. 스프링 캠프에서 열심히 구종을 익혔다. 시범경기에서도 “올해는 다른 구종을 더 많이 구사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그러나 정규리그에 들어서면 직구와 슬라이더에 의존했다. 2016년 말 왼쪽 팔꿈치 수술을 받아 2017시즌을 통째로 날렸다. 더는 물러설 곳이 없다고 생각했다.

2018년 복귀한 김광현은 천천히 컨디션을 끌어올렸다. 지난해 본격적으로 포 피치를 구사하기 시작했다. 전체 투구 중 85~90%였던 직구(39.1%)와 슬라이더(37%) 비중을 낮췄다. 커브(9.5%)와 스플리터(14.5%)를 많이 던졌다. 그는 “우타자 바깥쪽을 공략하려면 스플리터가 필요하다. 또 슬라이더와 확연히 구분되는 느린 공이 필요한데 커브가 제격”이라고 말했다.
 
MLB 입성에 실패한 지 5년 만에 김광현은 투 피치 투수라는 꼬리표를 뗐다. 지난해 말 MLB 문을 다시 두드렸고, 세인트루이스와 2년 연봉 총액 800만 달러(96억원)에 계약했다. 투 피치에서 포 피치가 되면서 연봉이 4배나 상승했다. 현재 진행 중인 MLB 시범경기에서 5년간 연마한 커브와 스플리터를 마음껏 뽐내고 있다. 특히 시속 120㎞ 미만의 커브 덕분에 빠른 직구와 슬라이더의 위력이 극대화됐다.

현지 중계진은 김광현의 커브를 보며 “떨어지는 폭이 훌륭하다”고 칭찬한다. 10일(한국시각) 미국 플로리다주 포트 마이어스의 해먼드 스타디움에서 열린 미네소타 트윈스전에서도 커브를 잘 활용했다. 김광현은 1회 맥스 케플러에게 초구 직구, 2구 커브를 던졌다. 빠른 공과 느린 공을 보여준 뒤, 3구째 빠른 공으로 헛스윙을 끌어냈다. 이어 조시 도널드슨에게는 초구에 느린 커브, 2구에는 빠른 직구를 던졌다. 도널드슨은 결국 삼진당했다. 케플러와 도널드슨은 지난 시즌 각각 홈런 36, 37개를 친 장타자다. 하지만 김광현의 구속 조절 투구에 고개를 숙였다.
 

김광현이 평가한 포 피치

패스트볼과 슬라이더는 요즘도 가장 자신 있는 구종이다. 패스트볼 최고 구속은 시속 150km를 넘어선다.

슬라이더에는 약간의 변화를 줬다. 스피드를 끌어올린 것이다. 거의 컷 패스트볼에 가까울 정도의 스피드를 형성하고 있다. 직구 타이밍에 스윙이 나오다 슬라이더가 걸리는 것을 막기 위한 변신이다.

실제로 김광현은 팔꿈치 수술 전인 2016년 슬라이더 평균 구속이 시속 132.4km였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슬라이더 구속이 136km를 넘기 시작했다. 올 시즌 슬라이더 평균 구속은 136.6km다.

손혁 투수코치의 조언에 따른 변화였다. 상대가 어차피 패스트볼 아니면 슬라이더만 노리고 들어오기 때문에 슬라이더의 구속을 높여 상대를 좀 더 헷갈리게 만들자는 전략이다.

김광현은 "상대가 둘 중 하나만 노리고 들어오기 때문에 슬라이더 구속이 느리면 직구 타이밍으로 스윙이 나오다 느린 패스트볼처럼 맞아 나가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슬라이더 구속을 끌어올렸다. 컷 패스트볼에 가까운 수준으로 던지고 있다. 대신 커브와 스플리터로 완급 조절을 한다"고 말했다.

김광현의 스플리터는 구분이 쉽지 않다. 패스트볼과 궤적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지난해보다 손에 깊이 잡고 패스트볼을 던지듯이 던지고 있다.

간혹 전력분석팀조차 속는 일이 나타나고 있다. 실제로 김광현은 21일 잠실 LG전에서 14개의 스플리터를 던졌는데 LG 전력분석팀엔 하나도 체크가 되지 않았다.

커브와 스플리터는 스트라이크존을 향해 던진다. 두 구종을 모두 스트라이크를 잡는다는 생각으로 던진다.

지난 겨울 김광현은 커브를 스트라이크와 볼로 확실하게 구분해 던질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스트라이크존으로 커브를 언제든지 넣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다.

스플리터 역시 마찬가지다. 그 영향인지 패스트볼(0.357) 슬라이더(0.313)에 비해 커브(0.161) 스플리터(0.212)의 피안타율이 눈에 띄게 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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