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6·15 남북공동 선언문' 발표 이후 개최되었던 남·북한 공동행사.
2000년 6월 남북한 정상회담 이후 축적된 남북한 교류와 협력의 분위기는 민간 차원의 다양한 교류와 협력의 실천을 통해서 공고해졌다. 그 가운데 하나가 남북한 간의 공동행사를 통해 통일문화를 창출하는 ‘통일축전’이다. 2001년에 민족통일대축전(평양)이 처음으로 개최된 이래 2002년 8·15민족통일대회(서울), 2003년 8·15민족대회(평양), 2004년 우리민족대회(인천) 등의 행사가 민간주도로 이루어지다, 2005년 민족통일대축전(평양)부터는 남북한 정부당국자들의 참석이 공식화되었다. 그러나 남북관계의 경색으로 인해 2008년 이후부터 남북 공동행사 차원에서는 개최되지 않고 있다.
역사적 배경
2000년 6월 13일평양의 순안공항에서 김대중 대통령과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분단 반세기만에 냉전의 벽을 허물고 악수를 나눴다. 김대중 대통령은 평양에서2박 3일을 보내면서 단독회담을 진행하여 5개항의 ‘6.15 남북공동 선언문’을 도출해냈다. 이를 통해 냉전과 반목, 갈등을 극복하고 자주와 평화, 민족의 대단합을 이루는 새로운 민족사적 비전이 제시되었다. 1천만 이산가족과 비전향 장기수 문제의 인도적 해결이 심도 있게 논의되었고, 경제, 스포츠, 문화 분야의 협력과 교류에도 기본적 합의가 이루어졌다. 그 가운데 남북화해와 신뢰를 위한 전제조건이자, 50년 만에 성사된 남북대표 간 화해의 산물이 바로 남북공동행사로서의 ‘통일축전’이다.
경과
2001년 이후 남북 공동행사로서의 ‘통일축전’이 다음과 같이 개최되었다.
2001년 6월 15일∼16일금강산에서 남측 대표단 450명, 북측 대표단 200명, 해외 대표단 20명이 모여 민족통일대토론회를 개최했다. 2001년 8월 15일∼21일평양에서 남측 대표단 337명이 참여한 2001민족통일대축전이 개최되었다. 2002년 6월 13일∼16일에는 금강산에서 남측 대표단 217명과 북측 대표단 350명이 참여한 6·15민족통일대축전이 개최되었다. 2002년 8월 14일∼17일에는 서울에서 남측 대표단 530명과 북측 대표단 116명이 참석한 8·15민족통일대회가 개최되었다. 2003년 8월 14일∼17일에는 평양에서 남측 대표단 339명과 북측 대표단 400명이 참석한 8·15민족대회가 개최되었다. 2004년 6월 14일∼17일에는 인천에서 남측 대표단 1,200명, 북측 대표단 126명, 해외 대표단 39명이 참석한 우리민족대회가 개최되었다. 2005년 6월 14일∼17일에는 평양에서 남측 대표단 300명, 북측 대표단 200명, 해외 대표단 100명이 참석한 민족통일대축전이 개최되었다. 2005년 8월 14일∼17일에는 서울에서 남측 대표단 400명, 북측 대표단 200명, 해외 대표단 150명이 참석한 8·15민족대축전이 개최되었다. 2006년 6월 14일∼17일에는 광주에서 남측 대표단 150명, 북측 대표단 148명, 해외 대표단 151명이 참석한 6·15민족통일대축전이 개최되었다. 2007년 6월 14일∼17일에는 평양에서 남측 대표단 284명, 북측 대표단 300명, 해외 대표단 150여명이 참석한 6·15민족통일대축전이 개최되었다.
결과
2008년 이후에는 남북관계의 경색으로 인해 남북한과 해외교포들이 함께 하는 ‘통일축전’이 개최되지 못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통일축전은 행사 때마다 한반도 주변정세에 민감한 영향을 받으며 참여인원에서 행사방식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남북 민관간의 연례적 만남은 이해와 공존, 화해와 협력의 폭을 넓혀가는 발판이 되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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