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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르데시야스 조약, 스페인-포르투갈, Treaty of Tordesillas, 브라질, 대항해시대

Jobs9 2024. 2. 29.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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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항해시대 당시 콜럼버스가 아메리카로의 신항로를 발견하고 카스티야 연합 왕국-아라곤 왕국과 포르투갈 왕국이 서로 경쟁적으로 인도로 가는 길을 찾고 있을 때 두 국가가 전쟁까지 갈 정도로 티격태격 하자 1494년 6월 6일 교황 알렉산데르 6세가 중재에 나서 스페인 서부의 토르데시야스라는 도시에서 체결한 조약으로, 대양에서 새로 발견되었거나 발견된 땅을 어느 군주에게 귀속시킬지를 그 골자로 한다. 

당시 포르투갈은 이미 남쪽으로 뻗어가 서아프리카 지역을 점령하기 시작했으며, 여기에 대한 권리를 교황에게 승인받은 상황이었다. 교황의 칙서에 따라 기니와 카보 보자도르 남쪽에 대한 포르투갈의 권리가 인정된 것이다. 하지만 이후 스페인이 레콩키스타를 마무리하고 통일하여, 이들이 해외로 진출하면서 얘기가 달라졌다. 콜럼버스에 의해 아메리카 대륙이 발견되었는데, 원래 콜롬버스가 발견한 카리브 해의 섬들은 위도상 포르투갈의 권리가 인정되던 땅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스페 인-포르투갈 양측이 충돌하기 시작했다. 특히 아프리카 쪽의 세우타와 멜리야, 카나리아 제도 등이 문제가 되기 시작했다. 

결국 교황의 중재로, 당시 구대륙의 끝이라 여겨지던 카보베르데 섬과 신대륙의 시작이라 여겨지던 히스파니올라 섬 사이의 정가운데인 대서양 한가운데 경선을 기준선으로, 새로 발견한 미개척지의 귀속이 서쪽은 에스파냐로, 동쪽의 땅은 모조리 포르투갈로 돌아간다는 내용의 토르데시야스 조약이 맺어졌다. 

이 조약으로 인해 브라질을 제외한 아메리카는 전부 스페인이 차지하게 된다. 북아메리카+중앙아메리카+카리브 해의 북미카리브와 남아메리카까지 몽땅 스페인 몫이 되고 브라질 혼자 포르투갈 몫이 된다. 지금의 브라질의 해안가 지역은 기준선의 동쪽에 있었기에, 기준선 동쪽의 땅에 대한 권리를 얻은 포르투갈이 브라질을 차지했다. 물론 이때까지 스페인이나 포르투갈을 비롯해서 서유럽 사회가 워낙 폐쇄적이었기 때문에 막상 토르데시야스 조약을 맺긴했지만 동쪽에는 무슨 국가들이 있는지에 거의 아는 게 없었다. 그렇기에 이 땅의 존재는 양국 모두에게 안 알려져 있었고 실제로 지구를 양분하자는 생각이 아니라 교황이 그냥 둘이 싸우니까 말리고자 했던 하나의 임시방편에 가까웠다. 
 
조약을 맺는 과정 중 당초 교황이 제시한 카보베르데 기준 서쪽 100리그 경선에서, 포르투갈의 강력한 주장으로 370리그 경선으로 더 밀어낸 것과 관련해 콜롬버스 이전에 이미 포르투갈에서 이미 남미 대륙의 존재를 파악하고 있어 이를 확보하기 위해 밀어붙였다는 떡밥이 남아있다. 공식 기록상으로 브라질은 1500년 발견되었으나, 이미 수십 년간의 경험을 통해 아프리카 항로에 대한 지식이 충분히 축적된 상태에서, 인도로 가는 도중에 폭풍을 만난 것도 아니면서 대서양 반대편까지 배를 몰고 갔다는 점과 발견 당시 항해 기록이나 이를 보고 받은 포르투갈 왕실이나 새로운 땅을 발견해놓고도 아무런 놀라움을 드러내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미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물리적 근거는 없어서 아메리카 대륙은 스페인의 콩키스타도르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먼저 발견했다는 게 현재까지 정설이다. 그나마 이러한 진실을 밝혀줄 수 있었을 기밀 항해 기록은 리스본 테주 강변에 위치하던 왕궁의 문서 보관고에 저장되어 있다가, 1755년 11월 1일 일어난 리스본 대지진과 연이은 지진해일로 모조리 유실되어 버려 그저 짐작만 할 수 있는 상태다. 

당초 조약대로라면 스페인 측이 보장받은 부분이 훨씬 컸는데도 포르투갈은 훗날 남아메리카 대륙의 거의 절반인 브라질을 차지하는데 아마존 강 하구가 조약 기준선 기준으로 포르투갈 관할이었던 덕분이다. 당시 유럽인 탐험가들은 배를 타고 다녔고 내륙은 직접 통제하기 어려웠다. 스페인 탐험가들은 하필 안데스 산맥에 막혀 거의 아마존에 제대로 접근하지 못하는 동안 바다같이 넓은 아마존 강의 하구를 확보한 포르투갈인 개척자들이 나중에 조약이 유명무실해진 뒤 아마존 상류와 지류를 거슬러올라 항해해서 아마조니아 곳곳에 깃발을 꽂고 포르투갈어를 이식하고 개척하면서 결국 지금의 거대한 브라질 영토가 완성됐다. 우연의 일치인지, 이렇게 완성된 브라질의 면적은 남아메리카 대륙 전체의 대략 절반 정도 된다. 그러니까 기아나 지역 같은 일부를 제외하면 남아메리카 대륙을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거의 반반씩 차지한 셈이다. 

사실 남아메리카를 벗어나 신대륙 전체로 보면 북아메리카는 영국의 버지니아, 프랑스의 루이지애나 및 캐나다를 빼고는 거의 다 스페인이 차지했기에 스페인의 지분이 훨씬 크다. 당장 캘리포니아, 애리조나, 유타, 콜로라도, 네바다 등 미 서부, 뉴멕시코, 텍사스, 오클라호마, 플로리다 및 앨라배마 연안지역 등은 모두 원래 스페인 땅이었다. 그리고 프랑스령인 루이지애나도 원래는 스페인이 발견해 차지했다 나중에 프랑스에 넘겼다. 

나중에 스페인의 콘키스타도르 페르디난드 마젤란과 엘카노, 미겔 로페스 레가스피 등이 동남아시아에도 필리핀 도독령을 설치하여 태평양 쪽도 문제가 되어 1529년 사라고사 조약으로 태평양도 동경 142도까지 경계선을 설정했다. 그 선에서는 서쪽이 포르투갈, 동쪽이 스페인 몫이 되어 동남아시아는 포르투갈 차지가 된다.

이후 포르투갈의 왕위가 스페인 국왕에게 넘어가면서 이베리아 연합이 형성되어 조약의 양 당사자 사이의 구분이 애매해지고, 잉글랜드, 프랑스, 네덜란드 등이 속령의 확보에 나서면서 이 조약은 유명무실해졌다. 이들 나라들이 포르투갈과 스페인이 자기네들끼리 맺은 조약을 인정할 이유도 없고, 더군다나 종교 개혁으로 교황의 권위가 떨어지면서 조약의 권위도 떨어졌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 조약 대로라면 잉글랜드, 프랑스, 네덜란드 등 모든 서유럽 국가들은 물론 스페인도 포르투갈의 식민지가 돼야 했기 때문에 오류가 심하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스페인 국왕 카를로스 1세와 경쟁자였던 프랑스 국왕 프랑수아 1세는 "스페인 국왕에게 이 세계의 반쪽을 지배할 수 있는 권리가 아담의 유언장에 나와 있다면 몇 항 몇 조에 있는지 보여주시오."라고 비아냥거리며 토르데시야스 조약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래도 스페인은 이걸 근거로 19세기까지 라틴 아메리카의 식민지를 유지하는 데 성공했고, 현재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물론 현재는 먼로 독트린을 통하여 촉발된 아메리카 패권 성향이나, 바로 옆에 붙어있는 미국이 라틴아메리카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지만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영향력이 아예 0에 수렴해진 건 아니다. 당장 중남미 지역의 쿠바만 하더라도 스페인이 19세기까지 주권을 유지하였고, 현재도 전 세계에서 쓰이는 언어 3위가 스페인어인 이유는 중남미 국가들의 언어가 식민통치 시기 스페인어, 포루투갈어가 가톨릭과 함께 중남미에 성공적으로 정착한 이유가 대단히 크며, 축구로 유명한 중남미 국가들의 최우선 진출대상은 스페인와 포루투갈의 1부 프로축구 리그인 라 리가, 프리메이라 리가일 정도로 문화적으로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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