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sla 밸브
테슬라(Tesla) 발명에 대한 새로운 통찰력
100년 된 Nikola Tesla 밸브는 펄스 흐름을 일정한 흐름으로 변환한다.
아날로그 정류기 :
100년 전에 독창적인 발명가 니콜라 테슬라(Nikola Tesla)가 설계한 밸브는 이전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정교하고 다양하게 응용할 수 있다. 최신 테스트에 따르면 테슬라 밸브는 움직이는 부품 없이 체크 밸브로 작동할 뿐만 아니라 스위치처럼 반응한다. 펄스 흐름을 감쇠하고 아날로그 정류기처럼 작동한다. 즉, 액체 교류를 직류로 변환한다.
Nikola Tesla는 전기 시대의 선구자일 뿐만 아니라 뛰어난 디자이너이기도 했다.
변압기, 전기 모터, 원격 제어 보트 및 최초의 라디오 외에도 그는 움직이는 부품 없이 관리할 수 있는 블레이드 없는 터빈과 체크 밸브를 설계했다. 오늘날 그 이름의 이름을 딴 이 테 슬라 밸브는 한 방향으로 액체의 흐름을 촉진하지만 반대 방향으로 액체의 흐름을 억제하는 루프 튜브로 구성되어 있다.
시험대에 오른 100년 된 발명품
"Tesla가 이 밸브의 프로토타입을 제작하고 테스트했는지 확실하지 않지만, 연결되고 구부러진 라인의 고유한 기하학으로 인해 많은 과학자들이 작동 방식과 가능한 응용 프로그램을 탐색하게 되었다"고 New York University의 쿠위느 응엔(Quynh Nguyen)과 그의 동료는 설명했다. Tesla 밸브는 액체 흐름이 더 빠를 때만 역류를 차단하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지금까지 정확히 한계가 있는 곳과 펄스 흐름의 경우 밸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흐름 물리학이 거의 조사되지 않았다. Nguyen의 동료 레이프 리스트로프(Leif Ristroph)는 "100년 된 이 발명품이 아직 완전히 이해되지 않았다는 것이 놀랍다"고 말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그의 팀은 최근 Tesla 밸브를 다시 만들고 현대 유체 역학 방법을 사용해 작동 방법을 분석했다.
밸브가 스위치처럼 갑작스럽게 반응한다.
확인된 분석 :
Tesla 밸브는 흐름에 따라 반응한다. 액체가 천천히 흐르면 난류 나 막힘없이 똑같이 양방향으로 통과 할 수 있다. 이 진행성은 파이프 반경, 액체의 점도 및 유속에 의해 결정되는 값인 100의 레이놀즈수까지 지속 된다.
그러나 레이놀즈수가 약 200으로 올라가자마자 테슬라 밸브는 갑자기 스위치가 된다.
그런 다음 액체의 역류를 차단한다. Ristroph는 "지금까지 이처럼 갑작스러운 이중적 성능을 기록한 연구는 없다."라고 설명했다. “이 스위치를 켜는 것은 역방향으로 난류가 형성되는 것과 관련이 있다. 이는 '와류 및 파괴적인 역류로 라인을 막는다.”
가장 직선 경로를 따르는 대신 액체가 밸브의 루프로 공급되어 그곳에서 혼합된다.
아날로그 정류기
테슬라 밸브의 또 다른 새로운 기능은 실험에서 밝혀진 것처럼 정류기 역할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종류의 회로에 4개의 Tesla 밸브를 결합하면 펄스 흐름을 부드럽고 균일한 유출로 변환할 수 있다. 이는 교류를 직류로 변환하는 정류기와 비슷하다.
Nguyen과 그의 동료들이 보고한 것처럼 펄스 유입으로 Tesla 밸브는 일정한 흐름보다 훨씬 더 효과적으로 리턴 흐름을 차단하고 펄스를 매우 효과적으로 감쇠시킨다.
"우리는 Tesla가 실제로 이 밸브를 사용하여 액체용 정류기를 만들고 싶었다고 생각한다. 이는 전기 실험과 유사하다"고 Ristroph는 말했다. “Tesla의 가장 유명한 발명품에는 AC 모터와 AC에서 DC로의 컨버터가 포함된다.”
가능한 새로운 응용 프로그램
연구팀에 따르면 Tesla의 밸브 작동 방식에 대한 이러한 통찰력은 몇 가지 새로운 응용 가능성을 열어준다. 지금까지 주로 화학 및 제약 분석을 위한 미세 유체 또는 SARS-CoV-2에 대한 항원 테스트와 같은 빠른 테스트에서 움직이는 부품이 없는 체크 밸브가 유리한 곳에서 주로 사용되었다. 이러한 순수 기하학적 밸브는 프로세서 및 기타 열원의 방열판에도 활용됐다.
더 많은 가능성이 있다.
"테슬라 밸브는 이전에 고려되지 않았던 방식으로 현대 기술에 유용할 수 있다"고 Ristroph는 말했다. "예를 들어 이 구성 요소는 연료, 냉각제, 윤활유 및 기타 액체 또는 가스를 펌핑하는 엔진과 기계의 진동을 보상하는 데 사용될 수 있다.“
니콜라 테슬라
Nikola Tesla | Никола Тесла
1856년 7월 10일1
오스트리아 제국 스밀랸
(現 크로아티아 공화국 리카센주 스밀랸)
사망
1943년 1월 7일 (향년 86세)
미합중국 뉴욕주 뉴욕시
물리학자, 전기공학자, 발명가
188cm, 왼손잡이
학력
초등학교(졸업)
중학교(졸업)
하이어 리얼 김나지움(졸업)
그라츠 공과대학교 (전기공학과 / 3학년 중퇴)
세르비아인 출신의 물리학자이자 전기공학자 그리고 발명가. 후에 미국으로 건너가서 활동하였다.
조지 웨스팅하우스가 니콜라 테슬라를 고용하고 얼마 후, 웨스팅하우스사는 '2상 교류 회전자계(2 phase AC RMF) 유도 전동기'의 상용화를 최초로 성공, 즉 교류용 전동기의 상용화를 최초로 실현하여 전기공학에 위대한 족적을 남겼다. 1891년에 '갈릴레오 페라리스(Galileo Ferraris, 1847–1897)가 설계한 '2상 교류 회전자계 동기 전동기' 개념보다 먼저 세계 시장을 점유하였고, 니콜라 테슬라는 오늘날 사용되는 교류 전기 인프라 보급의 선두주자 중의 한 명이 되었다.
3상 교류 회전자계(3 phase AC RMF) 개념은 미하일 돌리보도브로볼스키(Михаил Доливо-Добровольский, 1862–1919)가 고안하였다.
무선통신 기술을 최초로 발표했지만, 무선 통신의 상용화를 최초로 달성한 인물은 굴리엘모 마르코니가 되었다.
생애
1856년 오스트리아 제국의 현 크로아티아 리카 지방에서 세르비아인 정교회 사제인 밀루틴 테슬라와 주카 테슬라(혼전 성은 만디치) 부부 사이에서 차남으로 태어났다.
이름으로 인해 러시아 사람으로 오해하는 사람이 많지만 실제로는 러시아에서 공부도 일도 한 적이 없는 세르비아계 오스트리아 제국 출신 미국인. 크로아티아에서 태어난 세르비아계 미국인이라 유고슬라비아 분열 이후 크로아티아와 세르비아가 이 사람의 국적을 놓고 싸울 수도 있었으나 조용히 넘어갔다. 현재 세르비아는 수도 베오그라드 국제공항의 이름을 '베오그라드 니콜라 테슬라 국제공항'으로 바꾸고 지폐에도 그의 얼굴을 넣는 등 그를 기린다. 크로아티아도 그를 기념하는 박물관을 만들어 세르비아와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지만 심각한 상황까지는 가지 않았다. 테슬라는 생전에 자신의 혈통이 세르비아인이고 고향이 크로아티아인 것에 둘 다 자부심을 느꼈다고 한다.
매드 사이언티스트라는 이미지와는 다르게 부드러운 언변의 소유자에, 연설도 꽤 잘 했다고 한다. 머리도 좋고 키도 크고 말도 잘 하고 8개국어를 하는 언어의 천재에다 얼굴도 잘 생기고 성격도 좋고 옷도 잘 입었다고 전해지는 전설의 엄친아. 당시 사교계의 스타였다. 다만 테슬라의 삶의 목적은 본인의 연구였기에, 사교계 진출도 연구를 위한 인맥을 만드는 것이 목적이었다. 음악과 시에도 조예가 깊었으며, 86세까지 살았다.
그럼에도 그는 평생 독신이었다. 미남에 능력자에 매너 좋고 옷도 잘 입는, 그야말로 여성들에게 인기가 없을 수가 없는 매력적인 남성이었지만, 테슬라의 일생에 친구 이상의 여성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이를 두고 동성애자니 무성애자니 논란이 많지만, 테슬라의 연구에 대한 엄청난 갈망과 집착을 보면 그냥 아예 관심이 없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본인이 "나는 결혼한 남성이 만든 훌륭한 발명품들은 별로 없다고 생각한다."라고 한 적도 있어 연애나 결혼생활 자체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 다만 한 흰 비둘기와 자신이 남녀관계같은 사랑관계에 놓여있다고 주장한 적은 있었다. 한편 테슬라의 누나와 여동생인 안젤리나와 밀카, 마리카는 결혼하여 자녀들을 두었다. 나중에 이 조카들은 테슬라가 미국에서 노환으로 사망하자 외삼촌의 유품들과 재산들을 정리하였다.
오스트리아 그라츠 종합기술학교에 입학하여 처음에 군 당국으로부터 장학금을 받았으나, 이후에 받지 못하여 졸업을 하지 못하였다. 그 후 체코의 찰스대학교에 입학하려고 하니 문제가 있었는데, 필수과목인 그리어, 체코어를 공부한 적이 없었다. 결국 찰스대학교의 철학 강의에 청강으로 참석했지만 성적을 받지 못했다. 아무래도 필수언어를 못하는 문제가 큰 듯 하다. 학교를 그만두고 배를 타고 미국으로 온 후 에디슨 컴퍼니에서 일했으나, 직류에 올인을 외치는 토머스 에디슨과 대립, 회사를 뛰쳐나와 투자자를 긁어모아 자기 회사를 세운다. 그의 교류전기에 대한 실험이 성공을 거두고 사람들의 관심을 끌자 많은 투자자들이 몰렸고, 거금의 투자와 특허비 지급을 약속한 웨스팅하우스와 계약을 맺었다. 이후 직류 vs 교류 문제로 에디슨과 엄청나게 싸웠다는 것은 역사에서 이 대립을 전류 전쟁(War of Currents)으로 따로 기록할 정도로 유명한 일로 나중에(1915년) 에디슨과 노벨물리학상 공동 후보로 올랐을 때 서로 "저 놈이랑 같이 받느니 안 받고 만다"고 악담을 퍼부어 댔다는 루머가 있다.
특허 포기에는 두 가지 이야기가 있다.
당시 에디슨 전기회사(제너럴 일렉트릭)와의 직류 vs 교류 전쟁에서 테슬라의 파트너였던 웨스팅하우스는 교류 전류 전송방식을 특허내서 같이 돈 많이 벌자고 제안했으나, 자신보다는 인류의 이익이 더 중요하다며 특허등록을 거부했다는 설.8
미국 정부의 나이아가라 수력발전 건립의 발전형식으로써, 직류방식의 전력사업을 벌이고 있는 제너럴 일렉트릭(에디슨)과 교류방식의 전력사업을 시작하는 웨스팅 하우스(테슬라)가 경쟁이 붙었는데, 결국 교류 방식이 채택 되었고, 그에 따라 교류 방식이 전기공급의 대세로 떠올랐다. 이에 따라 직류방식을 고집했던 제너럴 일렉트릭(에디슨)은 전기공급시장에서 밀려날 위협을 느끼게 되었다. JP 모건의 지원으로 재정이 탄탄한 제너럴 일렉트릭은 부실한 재정상태인 웨스팅 하우스(테슬라)를 질 것이 뻔한 특허소송들로 압박하였고, 결국 자금의 압박을 버티지 못한 웨스팅 하우스는 교류전류에 대한 특허를 포기하였다는 설.9 테슬라는 사건 이후 웨스팅하우스와 의견 대립 끝에 회사를 그냥 뛰쳐 나와 버렸다.
원래는 직류 전송 방식이 먼저 연구가 시작되어 발전소와 전력망을 만드는 등 먼저 쓰였으나, 결국 변압이 용이하며 장거리 송전에서 손실이 적은 점 등, 교류가 가진 여러 장점으로 인해 에디슨의 직류 전송방식은 일반 전기 분야에서 사장되고, 세계적으로 교류 전송 방식이 쓰이게 된다. 에디슨은 테슬라를 어떻게든 지게 만들기 위해 로비도 하고 언론에 선전도 하는 등 별 짓을 다 했다. 주변에 돌아다니는 고양이나 개를 전기로 태워 죽이는 실험을 많이 해서 주변의 고양이와 개들이 남아나지 않았을 정도. 교류가 매우 위험한 것으로 보이게 하려고 교류를 이용한 사형용 전기의자를 만들어서 사형수에게 시험하기도 했다. 그러나 몇 번 전기를 통한 후에도 연기가 모락모락 날 뿐 죽지 않았기 때문에 참관하던 간수에게 "차라리 화형을 하시죠"라는 말을 들을 정도. 결국 승리한 것은 교류.
톰소여의 모험의 작가로 유명한 마크 트웨인과 교류를 한 적이 있다. 소설 관련이 아닌 발명 쪽으로. 이 부분은 2015년 9월 6일자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 다루었다.
그다지 수익성 있는 발명을 하지 못하여 상업화되지 못한 채 사라진 물건들이 많은 데다, 여자들에게는 매너남이었으나 에디슨과 맞먹을 정도로 성격이 나빴었다고 한다. 특히나 독선적인 고집불통에다 타협을 모르는 성격이었는데, 그런 면으로 인해 조수나 동료는 물론이고 존 피어폰트 모건 등의 투자자들과도 언쟁을 자주 벌이고 안하무인으로 상대를 대해 한때는 조력자였던 대다수 지인과 친구들이 나중에는 대거 절교를 하거나 원수가 되었을 정도였다. 예를 들면 형광등의 경우 그 발명에 어느 정도 기여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제품화하여 상업적 성공을 거둔 사람은 다른 사람이었고, 심지어 전 세계에 형광등을 보급하여 떼돈을 번 회사는 바로 최대의 라이벌 에디슨이 만든 제너럴 일렉트릭이었다. 그 탓에 기껏 고생해서 고안해 낸 발명도 개발비가 없어 묻혀버린 경우가 많았다.
친구나 동료, 가족은 남아나질 않았다. 게다가 노년기에는 호텔 방과 임대주택 월세 방을 전전하면서 매우 아끼는 존재던 비둘기에게 모이나 주는 가난한 삶을 살다가 1943년 뉴욕의 월도프 아스토리아호텔에서 쓸쓸하게 생을 마감했다. 노년의 사진은 4장 남아있다고 한다.
테슬라가 성격이 에디슨보다 더 나쁘고 독선적인 고집불통에 타협을 모르는 성격에, 다른 사람들을 안하무인으로 대했다는 여러 일화들에 대해서는 아직도 맞는지 아닌지 논란이 있다. 원체 테슬라의 일생의 적지 않은 부분이 베일에 싸여 있기도 하고, 그나마 세간에 알려진 행적들도 일반인들 보기에는 하도 기묘한 구석이 있기는 하다. 한편 니콜라 테슬라는 자신이 어렸을 적에 죽었던 형 다니엘 테슬라를 자신보다 훨씬 뛰어난 능력을 가졌다고 말하며 형에 비하면 자신의 능력은 별 것이 아니었다라고 인정하기도 했다.
그도 말년의 에디슨처럼 오컬트에 깊이 심취하였다. 다만 에디슨도 말년에 오컬트에 심취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에디슨과의 미운정 고운정
앞서 말했듯 테슬라가 에디슨과 여러 모로 대립한 것도 사실이고, 이로 인해 에디슨이 테슬라를 견제하기 위해 전기의자를 제작하고 테슬라의 전기 체계가 위험하다고 주장하고 그것을 실험하는 등 진흙탕 싸움이 어느 정도 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둘의 갈등에는 부풀려진 면도 적지 않다.
에디슨은 테슬라가 최초로 '교류를 사용한 유도 전동기'를 발명하자 그와 그 회사를 비즈니스로 묻어버리려 했으나, 기존에는 없던 상용화가 가능한 교류용 전동기가 절실히 필요했고 에디슨의 라이벌이었던 조지 웨스팅하우스가 그를 받아들인 덕에 실패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런 일 때문에 "에디슨이 뒷공작으로 테슬라를 몰락시키기 위해 마피아들과 결탁했고 테슬라의 회사를 망하게 할 악의적인 물건을 발명했다"는 소문도 있었고 "전기의자를 만들기 위해 길거리에 돌아다니던 동물들을 싹쓸이했다"는 말도 나돌았을 정도로 험악한 분위기였다고 한다.
그러나, 에디슨과 테슬라는 정작 몇몇 갈등 이후에는 서로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연락하고 지낸 것으로 밝혀졌다. AC(교류전기)와 DC(직류전기)간의 전류전쟁은 에디슨과 테슬라간의 대립이라기 보다는 에디슨과 나중에 테슬라로부터 AC 송전의 특허를 사들인 조지 웨스팅하우스 사이의 대립에 가깝다.
1890년대에는 X선에 대해 서신을 주고 받았는데, 에디슨이 사용한 표현을 보면 절대로 숙적한테 보낸 편지가 아니다.
"My dear Tesla, Many thanks for your letter. I hope you are progressing and will give us something that will beat Roentgen."
"친애하는 테슬라여, 자네의 편지는 잘 받았네. 나는 자네의 발명이 잘 진행되어 우리에게 뢴트겐의 업적을 이길만한 것을 주었으면 하네."
또한 1896년 Electrical Review 5월호에 올라온 비평에 에디슨은 테슬라에 대해 이런 답변까지 남겼다.
나에 대해 뭐라하든 상관없으나 테슬라는 신경질적 기질이니 이런 기사는 그를 비통하게 만들고 일을 방해할 것이다. 테슬라가 불가능해 보이는 낙관적인 발언을 하더라도 그가 최고의 실험가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며 시간만 주면 테슬라는 빈말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할 수 있다.
테슬라 측에서 에디슨을 그나마 비판한 건 에디슨의 실험 방식이 반복실험과 시행착오가 지나치게 많은 등 "한 결과를 내기까지 삽질이 잦았었다"는 것이다.13 전류 전쟁으로 사이가 틀어졌다고 해도 테슬라의 어그로를 가장 많이 끈 건 웨스팅하우스와 진정한 승리자인 존 피어폰트 모건이었을 것이다. 즉, 에디슨과 테슬라의 라이벌 관계는 흥미를 위해 과장된 면이 많으며 어느 정도는 걸러 듣는 것이 좋다.
물론 니콜라 테슬라와 에디슨의 라이벌 관계가 과장된 면이 많은 것이 사실이라면, 왜 니콜라 테슬라는 살아 생전에 IEEE를 "에디슨의 주구" 정도로 여기며 싫어했고, 또 1917년 동 학회가 "에디슨 상"을 수여하려 하자 거부했는지는 의문이다. 이에 대해서 테슬라는 세상을 떠날 때까지도 에디슨을 싫어하고 경계하였으나, 에디슨은 테슬라에 대해 똑같이 화가 나긴 했어도 세월이 지난 후에는 에디슨도 테슬라의 실력 자체만은 개인적으로 인정했다는 것으로 보인다.14 에디슨이 테슬라에게 발명에 성공하면 5만 달러를 주겠다고 했다가 몇 년 후에 진짜로 성공하자 농담을 모른다고 잡아뗀걸 보면, 돈 떼먹힌 사람과 돈떼먹은 사람의 입장차 정도 겠다.
오늘날은 교류가 초고압으로의 변압이 쉽기 때문에 장거리 송전에 주로 사용되고, 직류는 철도, 건전지나 알루미늄 생산 같은 전기화학 공정, 태양광 발전, 반도체 소자의 전원, 초고압 직류 송전(HVDC) 등에 사용된다. 컴퓨터나 TV를 포함한 대부분의 가정용 전자기기도 들어오는 전원이 교류이므로 직류로 먼저 전환해야 사용이 가능하다. 테슬라가 전기 시대의 아버지라면 에디슨은 전자(電子) 시대의 아버지인 셈. 본인들이 살아생전엔 몰랐겠지만 결국 둘 다 현대 기술의 대다수의 기반을 마련한 위대한 발명가였다.
매드 사이언티스트
생전에는 매드 사이언티스트 취급을 받았다. 동시대 사람들이 이상해서가 아니라, 테슬라 본인이 매드 사이언티스트라는 말을 들을 만한 짓을 많이 했다. 밑 일화들이 약간 왜곡되어 있지만 대부분은 W. 버나드 칼슨의 테슬라 평전에 자세히 서술되어 있다.
뉴욕에서 실험 중에 공진동 기계를 작동시켰는데, 실험실이 있던 건물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놀란 사람들이 건물 안에서 도망치고 난리가 났다. 경찰이 도착해서 문을 박차고 들어가자, 테슬라는 본인도 제어가 불가능해진 공진동기계를 해머로 박살낸 후 경찰들에게 말하기를 "흥미로운 과학실험 구경을 놓치셨군요!". 그러나 약간 왜곡이 되어 있는데 실제로 테슬라는 저 장치를 망치로 때려 부순 뒤 조수들에게 입 다물라 시켰고 그 후 조사에서 조수들은 경찰들에게 "그건 틀림없이 지진임" 이라 말했다는 후문도 있다.
콜로라도 스프링으로 가서 개인 실험실을 만들고 실험을 시작했다. 한적한 시골도시였는데 주민들은 테슬라의 실험실에서 밤이 되면 파란 불꽃이 일고, 실험실 근처를 지나가면 전기가 튀고 근처 땅 전체에서 불꽃이 튀는 등의 사건을 겪으면서 테슬라를 두려워했다고 한다. 거기다가 테슬라가 전류를 너무 많이 써버리는 바람에 도시 전체가 정전이 되는 사건까지 발생해버려서, 엄청난 두려움과 미움을 받았다고. 단 정전에 대한 보상과 사과는 확실하게 했다. 그리고 나서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계속해서 전기실험을 했다. 당시 테슬라는 투자 좌절로 인한 자신의 좌절감을 표현하려고 저 짓을 했다고 한다.
존 피어폰트 모건에게 지원을 받아 롱 아일랜드의 절벽 위 땅을 사서 워든클리프타워라 이름짓고는 거대한 돔을 얹을 예정이었던 전 지구 통신용 타워를 짓기도 했다. 나중엔 이 타워가 워덴클리프 타워라 이름 붙여지기도 했다. 하지만 경제적으로 심각하게 타격을 입고 있었던 테슬라는 모건으로부터의 지원 중단 전보가 오자 그 수만 달러를 주고 세운, 그것도 다 만들어지지도 않아서 제일 중요한 돔 얹는 공사도 못한 타워를 고철 값만 주고 팔아버렸다. 들리는 얘기에 따르면 어떻게 만든 건지 공사장비로 두들겨도 휘지 않아서 TNT로 날려버렸다고 한다. 일생의 꿈 중 하나였던 타워의 건설을 돈 때문에 포기한18 이후, 테슬라는 투자자들을 돈이 나오는 금고 정도로 취급한다. 당시 이 프로젝트가 실패 후 테슬라는 신경쇠약이 걸렸고 이런 프로젝트는 다시는 진행하지 않았다고 한다.
테슬라가 사망하자 FBI가 달려와서 연구노트와 기록들을 몽땅 압수해서 군기지로 가져가서 분석했다. 그 후 발표는 별 거 없다. 라고 한 후 2차대전이 끝난 후 테슬라의 고국에 있는 친척에게 돌려주었다. 단 상당수의 테슬라 추종자들과 음모론자들은 미국 정부가 돌려준 기록은 쓸모 없는 것들만 있고 실제 중요한 것은 아직도 어딘가 숨겨두고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20 이때 FBI가 보낸 MIT 과학자는 45대 미 대통령 도널드 J 트럼프의 숙부인 존 트럼프다.
1921년 자신이 화성인과 신호를 통해 소통을 하였다는 주장을 했다. 1-2-3-4번으로 반복되는 패턴이었고 이런 숫자는 거의 모든 우주에 통용되는 법칙이기에 이를 의사소통에 써먹었을거라고 얘기를 한다. 그리고 피에르 거즈만 상21을 이미 따놓은 당상이라며 김칫국을 마셨지만 상금을 못 받았다. 참고로 이 피에르 거즈만 상은 아폴로 11호의 우주비행사들에게 수상되었다.
그는 위에서 언급했든 한 비둘기와 자신이 남녀관계같은 사랑관계에 빠져있다고 주장했다. 이건 왜곡이나 과장이 아니라 테슬라가 직접 사용한 표현인데,(I loved that pigeon as a man loves a woman, and she loved me. As long as I had her, there was a purpose to my life.) 이러한 내용을 자기가 직접 말하고 다닌 탓에 "테슬라는 말년에 미쳐서 비둘기랑 결혼했다."라는 루머가 퍼져나갔다. 현대 시트콤인 빅뱅이론에도 언급될 정도로 테슬라 관련해서 꽤 유명한 루머다.
특유의 모난 성격과 기행 탓에, 오랫동안 수상한 발명만 해대는 기인으로서 과학 기술 업적으로는 정당하게 평가받지 못하고 신비주의자나 음모론자, 유사 과학자 같은 사이비들에게 사실상 고인드립을 당하는 불쌍한 인물이다.
발명품 및 발상들
라디오의 발전에는 테슬라가 만든 고전압 변환 장치인 테슬라 코일이 역할을 했다.
1898년 무선조종 배(radio-controlled boat)를 시현했다. 무인으로 조종되는 배를 지켜본 상당수 대중들이 이를 속임수, 텔레파시 또는 흑마술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미국에서 무선조종 함선은 제2차 세계 대전이 지난 다음에야 본격적으로 연구되기 시작했다.
유체의 점성을 이용하는 테슬라 터빈(Tesla Turbine)을 발명하였다. 효율 94%로 당시의 터빈에 비해 높은 효율을 가지고 있으며 현대의 에어로포일 터빈에 비해 구조가 매우 단순하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작동하려면 최소 10,000RPM, 94%의 효율이 나올려면 35,000RPM에 도달해야 한다는 미친 조건을 가지고 있어 당시에는 실패했다. 현대에는 역회전 시키면 펌프가 된다는 특징을 이용해 기체보다 점성이 높은 액체, 심실 보조 펌프, 석유, 폐수 등의 펌프로 사용 된다.
테슬라 밸브(Tesla Valve). 역류와 와류를 이용한 밸브로, 경첩, 스프링, 스크류 등의 움직이는 부품이 없어 견고하다. 초소형 펌프나 제트엔진 같이 부품이 못 들어갈 정도로 작거나 높은 내구도를 요구하는 곳에 사용된다.
레이더의 초기 단계를 구상하기도 했다.
테슬라는 무선 전력 송신 기술의 상용화를 시도한 최초의 과학자다. 전기를 보내는 송전탑을 세워 수 킬로미터까지 전류를 보내 바닥에 설치된 전구들을 밝혔다는, 테슬라의 조수가 남긴 기록이 있다. 그러나 테슬라가 원리는 알려주지 않아서 재현은 하지 못했다고. 이 실험으로 그는 1900–1904년 사이 미국의 투자자 존 피어폰트 모건에게 수십 차례나 편지를 보내 대서양을 넘어 에너지를 보낼 수 있는 송전탑인 워든클리프타워를 건축하려고 했으나 계획이 중간에 흐지부지되어 결국 막대한 빚을 져야만 했다. 일각에서는 모건이 자유 에너지(free energy)가 돈벌이가 안 된다고 판단해서 투자를 철회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모건이 훗날 인수한 에디슨의 GE는 에너지 사업으로 막대한 돈을 벌었다. 만약 모건이 투자를 뒷받침해주었다면 인류 역사는 달라졌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참고로 무선 전력 송신 기술은 테슬라 코일과 연관이 있다.
테슬라는 테슬라 발전기(Tesla's oscillator)를 만들기도 했는데, 이 장치는 특정한 공명 주파수에 진동하여 건물이나 땅을 흔들리게 만들 수 있다. 뒤늦게 이 기계의 파괴성을 인지한 테슬라는 해머로 이 기계를 부숴서 실험을 중단해야만 했다. 종종 거론되는 테슬라와 HAARP 무기의 연관성은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 것. 음모론자들은 이 무기를 통해 지진이나 기후변화가 가능하다고 믿고 있다. 베네수엘라 대통령인 차베스도 미국 정부가 HAARP를 통해 2010년 아이티 지진을 일으켰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1899년, 콜로라도 스프링즈에서 전기 실험을 하면서 발전 설비에서 무선으로 전력을 보내는 연구를 했다. 이때 사용한 테슬라 코일 중에는 1억 볼트까지 전압을 상승시킬 수 있는 물건도 있었다.
전기구를 만들어 손으로 움직이는 등의 현재로도 구현방법을 알 수 없는 독특한 실험들을 많이 보여줬으나 대부분의 연구들이 그의 머리속에 있었기 때문에 다른 것들이 어떤 것이었는지는 제대로 전해지질 않지만, 2003년에 세르비아의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됨으로서 필사본 등의 자료가 있음이 확인되었다.
SETI 프로그램의 최초 제안자이기도 하다. "외우주의 전파를 수신하여 분석하면 외계 문명을 찾을 수 있을 것" 이라는 SETI의 기본 개념을 제안한 게 이 사람이다.
그는 전하량이 전자보다 작은 입자가 존재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리고 쿼크 발견으로 그 예언이 실현되었다.
무선충전 기술의 원리를 정립하였다. 다만, 그 당시에는 효율이 너무 나빠 쓰이지 못했고, 2000년 이후에 다시 재조명받았다.
비행기의 수직 이착륙 원리를 개발했는데, 그가 죽고 나서 영국이 세계 최초의 수직 이착륙 비행기인 해리어를 개발하여 실용화된다.
그 외에 음모론이 굉장히 많이 존재하기도 한다. FBI가 그가 죽고나서 연구 자료들을 다 가져갔다든지 (이는 사실이라고 한다. 다만 나중에 세르비아에 반환되었다.) 심지어는 물질 전송 실험을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필라델피아 실험 음모론에서도 주요 인물로 등장한다. 데이비드 사우스웰의 음모론이나 이리유카바 최의 그림자 정부에선 지치지도 않고 나오는 인물들 중 하나이다.
사후 재평가
그가 죽은 지 30여 년 후(1975년)에야 미국 전기전자학회(IEEE)가 그를 기리는 IEEE Nikola Tesla Award를 제정하면서 다시금 재평가가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2009년 7월 10일에는 구글에서 니콜라 테슬라의 생일을 축하하는 로고를 띄우기도 하였다.
자기장의 단위인 테슬라(T) 또한 그의 이름에서 따 온 것이다.
니콜라 테슬라에 관한 저서는 우리나라에서는 (주)양문에서 출판된 "과학문명을 1백 년 앞당긴 천재 과학자 - 니콜라 테슬라(마가렛 체니 저)" 는 원본 초판이 1981년에 나온 묵은 책임을 감안하면 읽어볼 만하다. 나머지는 저 위에 나온 "빛의 제국"처럼 테슬라가 덤으로 나온 게 다다. 물론 현재는 자서전도 나왔고 평전도 나왔으니 관심 있는 사람들은 한번쯤 읽어보긴 좋을 듯.
2012년 이후로 일론 머스크가 최대주주인 테슬라가 혁신기업으로 떠오르면서 회사명의 유래가 된 니콜라 테슬라의 인지도 역시 덩달아 올라갔다.
FBI에서 보안유지기간이 지나 외부에 공개된 기밀문서중에 니콜라 테슬라는 금성에서 UFO를 타고 온 외계인이라고기록되어 있는 문건이 공개되어 논란이 되었다. 다만 이는 오해인데, 해당 문서는 FBI가 조사한 사실을 기록해 놓은 것이 아니라, 니콜라 테슬라가 금성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의 편지를 FBI가 입수해 보존해놓은 것일 뿐이다.
100 세르비아 디나르 지폐의 주인공이다. 또 2023년 크로아티아가 유로화로 전환한 이후에는 크로아티아의 10, 20, 50센트 동전에도 등장하는데, 이에 관해서 세르비아가 크로아티아에게 항의하기도 했다.
세르비아에서는 자국의 대표 위인으로 칭송한다. 그의 이름을 따 베오그라드의 공항 이름을 베오그라드 니콜라 테슬라 국제공항으로 바꿨을 정도이다.
외모
상당한 미남으로, 이는 동료 발명가들이나 에디슨의 질투를 받은 요소들 중에 포함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뛰어난 미모와는 달리 여자 관계는 전혀 없던 것으로 유명한데 테슬라가 젊은 시절 연애라는 것에 연연하지 않고 묵묵히 할일을 했으며 그 당시의 예쁜 여자들이 테슬라를 보면서 관심을 가졌으나 테슬라가 무시했다는 설도 있다.
8. 공산주의에 관한 어록?
니콜라 테슬라는 공산주의와 무관한 인물이라고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2017년 러시아에서 "나는 많은 것을 설명할 수 있다"(д невники. я могу объяснить многое, м осква, 2017)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책은 소련의 사회주의 건설에 대한 테슬라의 긍정적인 태도를 엿볼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한다.
회고록인 이 책은 저널리스트이자 테슬라의 먼 사촌인 스테반 요바노비치가 했다는 점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요시프 브로즈 티토의 아내 조반카 부디사블예비치의 외사촌으로 알려진 요바노비치는 그가 FBI 기록보관소에 접근할 수 있었고, 그래서 가치 있는 정보를 얻었다고 주장한다.
책에 수록된 회고록들이 실제 어록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이들은 분명 추가 연구를 자극하는 특별한 역사적 흥미를 지니고 있다.
"나는 러시아의 상황을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다. 나는 끊임없이 거짓말하는 신문이 아닌 목격자들의 증언을 얻으려고 한다. 나는 러시아 혁명을 지지하는데, 그것이 지구 표면의 6분의 1에서 정직의 원칙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소련은 믿을 수 없는 시련에 직면해 있지만, 그 나라는 이를 극복할 준비가 되어 있다. 러시아인들은 행운이다 - 그들은 사회주의와 스탈린을 가지고 있다. 현명한 지도자를 가진 행복한 국민이다. 나는 러시아인들이 부럽고, 세 명의 무작위 인물에게 지배당하는 내 동포들이 안타깝다..."
"나는 종종 그 당시에 러시아 대신 미합중국을 선택한 것을 후회한다."
"내가 반세기 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나는 한 순간도 고민하지 않고 모스크바로 가고, 배첼러와 에디슨을 지옥으로 보내버릴 것이다. 내 작은 도서관에는 스키비르스키27가 선물로 준 10월 혁명에 관한 텍스트 모음집이 눈에 잘 띄는 자리에 있다. 나는 종종 그 모음집을 다시 읽으며 방문할 수 없는 나라에 대해 애정 어린 마음으로 생각한다. 노년에는 많은 장점이 있지만 두 가지 단점도 있다 - 약한 건강과 '나는 절대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만약 내가 자녀나 손주가 있었다면, 아마 그들의 행복을 위해 소련으로 가기로 결정했을 것이다."
"나는 1918년의 예측을 매우 잘 기억한다. 처음에는 모두가 볼셰비키가 몇 개월 이상 권력을 유지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지만, 나중에 몇 개월이 몇 년으로 바뀌었다. 20년이 지나도 볼셰비키는 여전히 권력을 잡고 있다! 20년! 처음에는 전 세계가 혁명가들에게 등을 돌렸지만, 이제는 그들을 인정하고 협력하고 있다. 나는 스탈린이 미국을 방문한다면 매우 기쁠 것이다. 그를 만나고 싶은 큰 욕망이 있지만, 내 건강이 그렇게 긴 여행을 허락하지 않는다."
1970 – 80년대 한국이나 일본에선 토머스 에디슨을 띄워주다보니 몇몇 위인전을 베이스로 한 매체나 과학만화 등에서 테슬라에 대해선 에디슨을 사사건건 방해하고 중상모략을 꾸민 비열한 악역으로 표현한 적도 적잖게 있었다고 한다.
물론 지금에 와서서는 테슬라에 대한 재평가가 되면서 둘의 위상이 완전히 역전이 되어서 위에서 이야기 되었듯이 위인전 베이스의 매체나 과학매체에선 니콜라 테슬라의 믿기 어려울 정도의 천재적인 능력들이 널리 인정 받고 알려지면서 니콜라 테슬라를 에디슨을 능가하는 최고의 천재로, 또 자신의 수많은 발명품들은 인류가 모두 공유해야 한다는 휴머니즘적인 사상을 가지고 자신의 발명품들의 대부분에 대해 특허를 내지 않은 '참과학자','참발명가'로, 이에 비해 에디슨은 니콜라 테슬라를 평생 질투,시기해 그가 성공하지 못하도록 방해하고, 니콜라 테슬라를 비롯한 자신의 회사 직원들이 개발한 발명품들의 발명 업적들을 가로채 자신이 발명했다고 발표하고, 또 돈만 밝히는 소위 '악덕 사업가'라는 식으로 묘사되곤 한다. 물론 이것도 위에 나온 것처럼 상당히 과장된 면이 없잖아 있다.
위에 나온 것처럼 테슬라가 핫해지면서, 여러 창작물들에 과거 '다빈치'나 '에디슨' 의 네이밍을 따서 발명가라는 스테레오타입을 사용한 것처럼 대충 뭐든지 다 해주는 척척박사 같은 만능 천재 기믹의 대명사처럼 가져다 쓰이고 있다.
하워드 휴즈와 함께 미국사에서도 손꼽을 만한 개성의 소유자였기에 여기저기 직접 등장하거나 모티브가 되었다.
스팀펑크의 디젤펑크에서 독특한 기술력 발달을 일으킨 오버 테크놀로지를 만들거나 그 기술의 권위자로 자주나온다. 거의 세계관 구상의 데우스 엑스 마키나 수준이다.
한국 대체역사물에서도 그의 활동시기를 다루는 쪽에서는 반드시 데려오려는 인재로 나온다. 그리고 에디슨은 테슬라와 조선을 잇는 가교 역할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예외로 조선, 혁명의 시대에서는 금전감각도 없고 성격도 괴팍해서 돈으로 꼬셔도 모셔올수 없는 인물로 등장했다. 반대로 사업가적 기질을 가진 에디슨은 훨씬 더 주인공인 이선에게 도움이 많이된다.
크툴루 신화에 나오는 니알라토텝의 모티브도 이 양반이었다는 소리가 있다.
근육소녀대의 곡 "기계"의 가사에서 "그 남자"의 모티브가 된 인물이다.
Warhammer 40,000에서는 기계교, 특히 그중에서도 전기공학자인 일렉트로-프리스트의 성자로 존경받는다. 테슬라의 해골은 유물로 취급되어 마개조된 이후 강력한 전기 공격을 퍼붓는 무기가 되었다고. 그런데 실제대로라면 테슬라의 유해는 화장되었을 텐데... 그럼... 대체 뭘로 만든 거야...?
드래곤 플라이트에서 전기속성 새끼용 이름이다.
근데 의외로 테슬라의 고국인 세르비아와 크로아티아에서도 유고슬라비아 연방 시절이던 1977년에 테슬라의 일생을 그린 니콜라 테슬라라는 사극 드라마가 제작, 방영된 적이 있었다. 이 드라마에서는 당시 구 유고 연방의 인기 남배우였던 라데 세르베드지야(Rade Serbedzija)가 니콜라 테슬라를 연기했는데, 특이한 것은 테슬라와 테슬라의 부모인 밀루틴 테슬라와 두카 테슬라와 누이들인 밀카와 안젤리나 뿐만 아니라 테슬라의 경쟁자였던 토머스 에디슨 등 미국인 배역들도 구 유고권 국가 출신 배우들이 연기하였다. 꽤 오래된 1977년도에 구 유고 연방에서 이런 사극 드라마가 만들어진 점을 미루어 볼 때 이 지역 국가들에서는 오래전부터 니콜라 테슬라를 위인으로 존경/인정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뭣보다 유고 내의 고질적인 민족주의적 갈등에서 굉장히 자유로운 인물이니 더더욱
SCP 재단/세계관에서는 설정상 귀기공학을 만든 사람으로 나온다.
여러 가지가 심히 뒤틀린 30년대를 다룬 대체역사 게임인 팍스 브리타니카에서는 니콜라 테슬라가 1897년 설립한 군산복합체이자 인프라 회사를 세운다. 테슬라가 러시아 정부로부터 스카웃되어 형성된 기업으로, 무선혁명이 일어난 팍스 브리타니카 세계관 특성상 에디슨의 기업과 더불어 엄청난 위상과 권위를 가지고 있다. 그럴 만도 한 게 대전쟁 때 무주공산이었던 대전쟁 교리를 확립시키고 세계 최초로 오토마톤 따위의 무기와 기계들을 개발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테슬라의 회사인 테슬라 일렉트릭웍스가 러시아 제국의 초거대기업으로 등장하여, 영향력 하 국가들이 러시아령 알래스카를 제외한 러시아 제국과 괴뢰국 전역이라는 엄청난 권역을 자랑한다.
테슬라의 이름이 붙은 것
현실
자기장 단위 테슬라(T) - 1 Wb/m² = 1 kg/(A×s2)33이며, 1 T가 워낙 강한 자기장인지라34 생활에서는 대체로 μT나 nT 단위로 쓰이고, 1 T = 10000 가우스(G)의 비율로 줄인 단위인 가우스를 물리학 등 자연과학계에서는 잘 쓴다. 물론 공학에서는 테슬라를 더 많이 쓴다.
미국 록밴드 테슬라 - 1980년대 후반 인기를 끌던 팝 메탈 밴드다. 니콜라 테슬라를 기리기 위해 밴드명을 '테슬라'라고 지었다. 대표곡은 'Love Song'
테슬라(舊 테슬라 모터스) - 자동차 회사 중 시가총액 1위의 미국의 전기차 생산업체. 창업자인 마크 타페닝이 전기 모터 개발의 선구자인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이름을 따왔다고 한다. 현재는 일론 머스크가 최대주주로 경영하고 있다.
JJ 테슬라 - 슬로바키아의 진공관 제조업체. 동구권 출신의 천재 과학자로 평가받던 그를 기념하여 이름을 지었다. 현재는 JJ 그룹에 인수되어 사명 변경.
국산 기타 픽업 회사 테슬라 픽업. 스윙 기타 고가 라인 등에 장착되고 있다.
베오그라드 니콜라 테슬라 국제공항 - 세르비아의 수도 베오그라드에 있는 국제공항이다. 세르비아에선 테슬라를 제일 가는 위인으로 취급해 주기에 저런 이름을 지었다.
니콜라 모터 컴퍼니 - 미국 애리조나에 기반을 둔 전기 트럭 제조 회사. 축전기 기반 전기차 뿐 아니라 수소 연료전지를 기반으로 한 전기차도 계획하고 있었지만, 대부분 거짓으로 판명나 투자 사기를 목적으로 한 기업이 아닌지 의심되는 수준의 평가를 받고 있다.
NVIDIA의 테슬라 마이크로아키텍처 - 2006년 출시되어 GeForce 8000번대 그래픽카드 GPU로 사용되었다.
에디슨을 뛰어 넘은 과학자, ‘니콜라 테슬라’
미국의 주간지 ‘라이프 매거진’은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중의 한 사람으로 니콜라 테슬라(Nikola Tesla)를 꼽았다. 이보다 앞서 2005년 말 크로아티아는 테슬라 탄생 150주년을 맞아 2006년을 ‘니콜라 테슬라의 해’로 정했고, 세르비아는 2006년 3월 베오그라드 국제공항이름을 ‘테슬라 공항’으로 바꿨다. 테슬라를 두고 미국, 크로아티아, 세르비아가 서로 자기 나라의 발명왕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1856년 크로아티아에서 태어난 세르비아인으로 젊은 시절 미국으로 이민 간 테슬라의 특이한 이력 때문이다. 과학자 테슬라, 그가 어떤 사람이기에 세계가 이렇게 새롭게 주목을 하는 것일까? 테슬라는 현대 전기문명을 완성한 천재 과학자다. 현대 전기 문명의 근간이 되는 교류를 발명했으며, 수많은 전기 실험으로 ‘거의 모든 현대기술의 원조’라는 칭호를 갖고 있다. 시대를 앞선 과학적 통찰력과 독특한 삶 덕분에 많은 문학과 영화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그의 업적을 대표하는 교류발전기와 송·배전 시스템은 웨스팅하우스사(社)에서 일하면서 만들어냈다. 교류는 전기가 흐르는 방향이 주기적으로 바뀌는 전기다. 직류에 비해 적은 손실로 전류를 보낼 수 있는 장점이 있어 현대 전기 문명을 일으킨 원천기술이다. 이 발명은 1895년 웨스팅하우스사가 나이아가라 폭포에 교류발전기를 사용한 수력발전소를 만들면서 빛을 보게 된다. 지금 보고 있는 컴퓨터, 인터넷은 등 수많은 전기문명이 테슬라의 교류 전기시스템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지 모른다. 1891년에는 유명한 테슬라코일(Tesla Coil)을 제작했다. 테슬라코일은 간단한 장치로 수십만 볼트의 전압을 만들어내는 장치다. 당시 60Hz에 불과했던 가정용 전기를 수천Hz의 고주파로 바꾸며 엄청난 고전압을 발생시킨 것이다. 이를 사용해 테슬라는 최초의 형광등과 네온등도 만들었다. 고주파를 발생시키는 테슬라코일은 대중의 관심을 사로잡았다. 심지어 테슬라코일을 이용하면 물체에 자기장을 걸어 순간이동 시킬 수 있다는 황당한 이론까지 나올 정도였다. 지난해 말 개봉한 ‘프레스티지’(Prestige) 영화를 보면 마술사 로버트가 순간이동마술을 펼치기 위해 테슬라를 찾아가 테슬라코일을 얻는 장면이 나온다. 테슬라코일의 유명세와 신비주의를 따르는 추종자 덕분에 테슬라는 ‘몽상가’ ‘미친 과학자’ ‘마술가’ 등의 호칭도 갖고 있다. 또 테슬라는 한 발 앞선 발명가로 현대 과학기술의 발전 방향을 알려 줬다. 그가 완성하지는 못했지만 후대 과학자들이 테슬라의 이론으로 만들어낸 기기들은 무궁무진하다. 그는 테슬라코일을 이용한 실험 도중 라디오 신호를 같은 진동수로 공명시키면 송수신이 가능해진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 원리는 현재 라디오나 TV 등에 응용돼 다양하게 쓰이고 있다. 무선조종장치를 연구하던 테슬라는 현대 로봇의 가능성도 언급했다. 제 1차 세계대전 무렵 잠수함을 탐지하는 아이디어를 냈는데 2차 대전에서 레이더로 실용화됐다. 지금도 수많은 과학자들은 그의 발명노트를 열심히 들여다보며 아이디어를 얻으려고 하고 있다. 테슬라의 발명을 헤아리자면 끝이 없다. 그는 전기기계용 전류전환장치, 발전기용 조절기, 무선통신기술, 고주파기술 발전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면서 전기시스템을 획기적으로 향상시켰다. 그리고 전자현미경, 수력발전소, 형광등, 라디오, 무선조종보트, 자동차 속도계, 최초의 X선 사진, 레이더 등도 그의 작품이다. 많은 발명품을 만들고 현대 과학기술을 예견하고 아이디어를 준 테슬라는 그의 업적만큼 살았을 때 인정받지 못했다. 특히 라이벌이었던 에디슨 때문에 그의 업적은 많이 가려졌다. 1882년 테슬라가 에디슨 연구소에 들어가 발전기와 전동기를 연구할 때부터 에디슨은 천재적인 테슬라의 재능을 질투에 불타는 눈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애초 에디슨은 테슬라에게 전기를 싼값에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방법을 고안하면 거액을 안겨주겠다고 약속했다. 이에 테슬라는 에디슨의 직류시스템의 문제를 지적하며 교류시스템을 만들었다. 하지만 에디슨은 테슬라에게 돈을 주기로 한 약속을 어겼고, 테슬라는 에디슨에게 사표를 던진다. 직류방식을 고집한 에디슨은 테슬라의 교류에 대해 나쁜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 고압 교류로 동물을 죽이는 공개 실험을 하고, 교류 전기의자로 사형집행을 했다. 이 과정에서 테슬라는 교류를 널리 보급하기 위해 자신의 특허권을 포기하기도 했다. 1915년 뉴욕타임즈에 테슬라와 에디슨이 노벨물리학상 공동 수상자로 선정됐다는 기사가 났지만 결국 둘 다 노벨상을 받지 못했는데, 테슬라가 에디슨과 함께 상 받기를 거부했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기이한 삶처럼 그의 성격도 특이했다. 식사 전 광택이 나도록 스푼을 닦아야 하는 결벽증이 있었고, 손수건은 하얀 비단으로 된 것만 썼다. 호텔방의 호실은 3의 배수여야만 했고, 비둘기에 집착해 말년 그의 호텔방에는 비둘기 새장이 가득했다고 한다. 평생 독신으로 살며 발명에 혼신의 힘을 기울였던 테슬라는 1943년 뉴욕의 한 호텔에서 쓸쓸히 숨을 거뒀다. 그러나 세상은 시대를 앞서갔던 테슬라를 잊지 않았다. 1961년 국제순수 및 응용물리학 연맹(IUPAP)의 표준단위 및 그 정의에 관한 위원회는 자기장의 세기를 나타내는 단위로 테슬라의 이름을 딴 T(Tesla)를 쓰기로 했다. 전기를 이용한 수많은 발명품을 만들었던 테슬라의 이름에 걸맞는 단위라 하겠다.
천재 과학자 테슬라, 1900년에 ‘AI 출현’ 예언
무선통신이나 인터넷의 도래를 예언해 시대를 앞서간 천재로 불리는 19세기 발명가 니콜라 테슬라가 인공지능(AI) 개념에 대해서도 언급한 글이 화제다.
폭스뉴스는 10일(현지시간) 테슬라 과학센터가 현대 AI의 개념을 담은 니콜라 테슬라의 신문 게재글을 재편집해 공개했다고 보도했다. 1900년 6월 미국의 더 센추리 매거진이라는 매체에 실린 글이다.
‘증가하는 인간의 에너지 수요 문제’라는 제목의 이 글에서 테슬라는 “지금은 불가능해 보일지라도 독자적인 의식(own mind)을 가진 자동장치가 고안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다”고 썼다.
이어 이 장치는 “조작자로부터 독립돼 스스로 외부 자극에 반응하면서 마치 지능을 가진 것처럼 매우 다양한 행동과 작업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또 “그것은 미리 정해진 코스를 따를 수 있거나 주어진 명령을 따를 수 있을 것”이며 ‘해야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구분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썼다. 이와 함께 “다음 행동에 확실히 영향을 주게될 경험을 하거나 대신 인상을 기록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는 의식을 가진 기계장치가 학습을 하면서 과제를 수행한다는 의미로 개념상 자율적인 인공지능인 ‘범용 인공지능(AGI)’에 가깝다. 조셉 시코르스키 테슬라 과학센터의 연구위원은 “테슬라가 인간으로부터 독립적인 생각하는 기계의 시대를 예견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세르비아계 오스트리아인이었던 테슬라는 미국으로 가 교류 전기의 상용화를 성공시키고 테슬라 코일을 발명해 라디오를 발전시키는 등 전기공학에 큰 족적을 남겼다. 특히 무선통신이나 레이다의 초기 단계 기술을 고안하고 우주의 전파를 수신해 외계 문명을 찾자는 세티(SETI) 프로그램을 제안하기도 한 천재 과학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