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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리브해 해적, 카리브해 대해적시대, 18세기, 유럽 아메리카 항로 거점

Jobs 9 2025. 2. 16.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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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리브해는 18세기에 해적들의 황금시대를 맞이했던 곳으로,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을 연결하는 항로의 주요 거점

 

 

카리브해 해적의 특징 

 

카리브해 해적들은 버커니어 출신들이 많았다.

헨리 제닝스는 은화 35만개를 약탈하며 전설이 되었다.

카리브해에서 가장 유명한 해적은 '검은 수염' 에드워드 티치였다.

 

카리브해 해적의 황금시대 이유 

아메리카 대서양 연안에서 유럽으로 가는 항로의 주요 거점이었다.

설탕과 커피 등 유럽에서 인기가 많은 상품 작물의 주요 생산지였다.

해적질하기 좋은 선박의 수가 많았다.

 

카리브해 해적에 대한 흥미로운 사실 

제2차 세계 대전 때 나치 독일 해군의 U보트들이 카리브해로 사냥을 오기도 했다.




 

해적

 

놀이기구 캐리비안의 해적과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에서도 알 수 있듯 해적으로 유명하다.

 

해적으로 유명했던 이유는 다음과 같다. 지리적으로 해군에서 일일이 감시하기 어려운 조그만한 섬들이 무척 많고, 기후가 상당히 좋아서 섬에 숨어지내며 과일 등의 식량을 구하기 쉬웠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곳은 아메리카 대서양 연안에서 유럽으로 향하는 항로의 주요 거점이었고, 돈이 되는 설탕과 커피 등 유럽에서 인기가 많은 상품 작물들의 주요 생산지여서 해적질하기 좋은 선박의 수도 매우 많았다. 똑같은 이유로 제2차 세계 대전 때 나치 독일 해군의 U보트들이 사냥 오기도 했다.

 

카리브 해적 하면 주로 식민시대의 이야기지만 사실 오늘날에도 이 지역은 가끔 해적이 출몰한다. 영국 해군이 이들과 마약 밀수 선박들을 단속하고 자신들의 식민지 도서에 대한 지배력 과시를 위해 프리깃 1척을 상시 초계시켰으나, 2012년부터 돈이 없어서 철수시켰다. 이들의 초계 활동을 다룬 다큐멘터리도 있으며, DVD도 나와 있다. 어차피 영국이 손 떼도 라틴아메리카를 자기들 앞마당으로 여기는 미국 해군과 미국 해안경비대가 알아서 초계를 대신해줄 것으로 보는 듯하다.

 

2010년대 중후반 들어서 해적들의 출몰 횟수가 늘어났다.#, # 카리브해에 접한 나라들 가운데서 치안이 좋지 않기로 유명한 멕시코와 과테말라, 온두라스 등이 있다. 그리고 베네수엘라가 유가 폭락과 경제 정책 실패로 경제가 파탄나면서 돈벌이 때문에 아예 해외로 이민 가거나 직업을 구하러 가는 베네수엘라인이 늘어났다. 베네수엘라 마피아들도 이 틈을 타서 밀매업을 확대하면서 해적질도 사업 확장의 일환으로 같이 겸하게 된 경우가 많다. 베네수엘라는 값싸게 물건을 구하려면 몇 시간씩 줄을 서야 하지만, 총기와 마약은 왕창 넘쳐나기 때문에 밑천 구하기는 쉬워서, 주변국 어민들 사이에서는 베네수엘라 연안 출신 해적들이 새로운 두려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런 이유로 일반 베네수엘라인조차 범죄자로 이미지가 굳어지는 등 선량한 이민자까지 욕을 보고 있다. 물론 미국의 해안경비대가 철저히 감시하는 플로리다 앞바다 같은 미국 영해까지 기어들어갈 생각은 못하고, 주변의 중소 국가 주변에서만 얼쩡대는 정도다.




다리엔 갭

다리엔 지협

Darién Gap | Tapón del Darién

위치

북위 7° 54′ 서경 77° 27′

소속

파나마 국기 파나마 다리엔 주 야비사

콜롬비아 국기 콜롬비아 안티오키아주 투르보

면적

약 5,790㎢ (2,240 sq mi, 다리엔 국립공원)

너비 약 87㎞ (54 mi, 지협 구간)

다리엔 지협(Darién Gap, 다리엔 갭)은 파나마 야비사(Yaviza)와 콜롬비아 투르보(Turbo)사이의 국경지대에 위치한 거대한 지협이다. 아메리카 대륙에서 특징적인 오지 가운데 하나로, 지협 전체가 개발되지 않은 열대우림으로 덮여 있어 팬 아메리칸 하이웨이에서 유일하게 끊긴 구간이기도 하다. 이 지역은 파나마의 다리엔 국립공원(Parque Nacional Darién)과 콜롬비아의 로스 카티오스 자연 국립공원(Parque Nacional Natural Los Katíos)으로 지정되어 있다.






지정학적 이점과 개발의 어려움

지정학적으로 현대 파나마 운하와 그리 멀지도 않고 지도상으로만 보면 남북미를 연결하는 엄청나게 중요한 전략적 거점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17-18세기 기술력으로 여기를 소수의 실력 있는 콩키스타도르만이라면 모를까, 대규모 인력과 물자가 이동할만한 정기 교역로로 개발할 능력을 가진 나라는 아무도 없었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걸쳐 공사한 파나마 운하도 처음에는 9년 가까운 공사를 했음에도 완전히 말아먹었음을 생각하면 그보다 기술력이 훨씬 열악했던 당대에는 당장의 입지 조건만 보고 건설하는 것은 무리 중의 무리였다. 그나마 비슷한 시기에 늪지대에 건설한 러시아 제국의 상트페테르부르크도 건설 과정에서 수만 명이 죽어나갔는데도 우격다짐으로 건설을 해서 완공시킨 것이다.

 

인구수가 포화상태에 다다르고 가까운 데에 위치한다면 이런 지역들도 어떻게든 배수작업을 하고 숲을 베어내서 개간 작업을 진행하는 일은 역사시대 이전부터 많이 행해졌던 일로 실제로도 황하나 갠지스강, 장강의 상당수 지역, 베를린 등 수많은 지역이 이런 식으로 개간이 이뤄졌고, 아메리카에서도 이미 상당수 지역에서 원주민들에 의해 오래전부터 행해졌던 일이다.

 

하지만 스코틀랜드는 애초부터 인구가 적은 데다가 다리엔 지협과는 거리가 너무 멀기 때문에 이 지역에서 개간 사업을 벌일 역량이 없었다. 이러한 점에서 이미 스코틀랜드인들이 어느정도 주거해서 입지를 다져놓은 북아메리카에서 일을 벌이는 것이 나았을 것이다. 스페인 자체도 중남미 식민지를 육로로 연결하겠다는 발상은 진지하게 한 번도 추진한 적이 없고, 대서양 멕시코-누에바 그라나다, 태평양 멕시코-페루 같은 주요 식민지간 무역, 교류는 죄다 해로로 해결했다. 카리브해에서 대해적시대가 열린 것도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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