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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성훈(1975년), 아오키 신야(1983년)

Jobs 9 2022. 3. 27.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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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성훈(1975년)

 

아키야마 요시히로(秋山成勳, 한국명: 추성훈(秋成勳), 1975년 7월 29일 ~ )는 한국계 일본인으로 유도 선수 출신 종합격투기 선수이다. 일본 오사카에서 재일 한국인 4세로 태어나, 2001년에 일본으로 귀화하였다

대한민국 유도 국가대표로 2001년 아시아 유도 선수권 대회에서 금메달을 땄고, 일본으로 귀화한 후에는 일본 대표로 2002년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을 땄다. 2004년 종합격투기 무대에 데뷔하였고, K-1 히어로즈, 드림, UFC를 거쳐, 현재는 싱가포르의 종합격투기 단체인 원 챔피언십(ONE Championship)에서 활동 중이다

추성훈은 선수촌에서 만나 결혼한 재일 한국인 (증조 할아버지 대에 제주도에서 일본으로 넘어왔다. 4.3 사건의 희생자였던 것으로 추정되며, "슈퍼맨이 돌아왔다" 중 추성훈과 딸 추사랑이 제주도에 남아있는 옛 집을 찾아가는 에피소드가 있다.) 유도 선수 추계이와 한국인 수영 선수 유은화 사이에서 1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일본 오사카부 오사카시 이쿠노구 쓰루하시의 한인촌에서 자라면서 아버지의 영향으로 3살 때부터 유도를 시작하였다. 긴키 대학시절에는 간사이 지역 유도 대회에서 3연패를 차지했으며, 졸업 후 1998년 4월 한국에 건너와 부산광역시청에 입단하였다. 2000년 코리아 오픈 유도 대회에서 우승 했고, 이듬해 2001년 국가대표팀으로 선발됐다. 2001년 4월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열렸던 아시아 유도 선수권 대회에서 전 경기 한판승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하지만 일본과 다른 스파르타식 훈련 시스템, 그리고 끊임없이 찾아 온 파벌에 대한 불만 등이 겹쳤고, 조인철에게 밀려 국가대표팀에도 늦게 뽑히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2001년 10월에 출전한 전국체전을 마지막으로 3년 7개월간의 모국 활동을 마치고, 일본 헤이세이 관재국에 귀화를 조건으로 입단하여, 2002년 부산에서 열린 아시안 게임에서 일본 국가대표 81kg급으로 출전하여 한국의 안동진을 꺾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하지만 2004년 하계 올림픽 일본 국가대표팀 선발전에서 탈락하여 그 해 5월에 유도복을 벗게 됐다

추성훈은 2007년 지인의 소개로 만난 일본의 탑모델 야노 시호와 2년 열애끝에 2009년 3월 결혼식을 올렸고, 결혼 2년만인 2011년 10월 24일 외동딸 추사랑(일본어: 秋山 紗蘭 아키야마 사란)이 태어났다

추성훈은 어린시절부터 유도를 시작해 일본에서 각종 대회에서 상위에 입상했으나 한국 국적으로 인해 국제대회에 나갈 수 없었다. 재일교포 유도선수로 전국체전에서 우승한 적이 있는 아버지의 "할아버지의 나라 한국에서 태극기를 달고 한국인의 기상을 떨치라"라는 당부에 따라 1998년 4월 여동생 추정화와 함께 한국으로 건너왔다. 부산시청 유도팀에 입단하여 2000년 12월 코리아오픈 준결승에서 조인철선수를 한판으로 이기고 결승전에서 18초만에 중국의 다이 선수를 한판으로 이겨 첫 국제대회 우승을 차지했다. 시드니 올림픽 선발전에는 조인철선수에게 져서 국가대표에 선발되지 못했다. 2001년 3월 국가대표 선발전 준결승에서 다시 판정으로 패배하여 국가대표 선발 순위 3위에 랭크되었으나, 대한유도회 김정행 회장의 지시로 국가대표 2진으로 선발되어 참가한 몽골 아시아선수권에서 전 경기 한판승으로 81kg급 1위를 차지한다. 6월 이란에서 열린 FAJR 국제유도에서 81kg급 1위, 10월 충남에서 열린 전국체전에서 1위를 마지막으로 한국에서 유도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2001년 9월 다시 일본으로 돌아와 일본 국적을 취득했다. 당시 이 이유에 대해 교포에 대한 차별, 특정 대학 학연으로 얽힌 한국 유도계의 텃세와 파벌 싸움으로 자신이 한국에서는 2인자로서 대표가 될 수 없었기 때문 등 여러 추측이 일어났으나, 본인은 일본의 스타일이 자신에게 더 맞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2002년 그는 일본 유도 국가대표로서 부산 아시안 게임에 참여했고, 결승전에서 한국의 안동진을 꺾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에 스포츠조선은 "조국을 메쳤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내는 등 한국의 여론은 추성훈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종합격투기 선수로 전향한 뒤 그는 2005년 11월 5일에 열린 HERO'S 서울 대회에서 승리한 뒤, 링 위에서 “(지금 국적은) 한국인이 아니지만, 제 가슴 안에, 여기 들어가 있는 피는 완전 한국인입니다”라는 발언을 했다. 이어 11월 13일 KBS가 제작한 추성훈에 대한 다큐멘터리가 방영되었고, 과거 추성훈이 한국에서 유도 선수로 활동했을 때 용인대학교와 대한유도회의 밀어주기식 편파 판정에 피해를 보았음을 밝혔다. 국가 대표 선발전 등의 중요한 대회가 있을 때마다 추성훈에 불리한 판정을 내렸다는 것이다. 결국 대한민국 남자 유도 81kg급에서 양대 산맥으로 군림하던 추성훈과 조인철은 이러한 편파판정 속에 희비가 엇갈렸고 그로 인해 재일교포 출신인 추성훈 대신 용인대학교 출신의 조인철이 발탁되었던 것이다. 방송이 나간 뒤 한국에서는 추성훈에 대한 지지와 대한유도회와 용인대학교에 대한 비난의 여론이 일기도 했다.

그는 종합격투기 경기에 나설 때마다 도복의 양 어깨에 한국의 태극기와 일본의 일장기를 달고 등장하며 경기에 들어가기 전에 양 국기를 손바닥으로 번갈아 툭툭치는 제스처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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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오키 신야(1983년)

일본의 종합격투기선수.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일본 경량급의 강자. 관절기의 스페셜리스트. 


원래 유도계에 몸담고 있었는데, 국대 상비군으로 훈련을 받은 후 한계를 느꼈는지 유도를 그만두고 나카이 유키에게 주짓수를 배우기 시작했다. 이후 삼보까지 익히면서 다양한 그래플링을 접했다. 주짓수 블랙벨트 보유자. 

MMA에서는 극단적으로 서브미션을 노리는 스타일이다. 어떻게든 상대를 그라운드로 몰고가 관절기를 노리는데, 테이크다운 능력이 그다지 뛰어나지 않기 때문인지 상당히 변칙적인 TD를 사용한다. 셀프가드는 예사고 별별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상대의 다리를 잡고 늘어져 어떻게든 누운 자세로 게임을 끌고 간다. 

그라운드에서도 포지션에 관계없이 기술을 거는데 사지가 길고 몸이 매우 유연해서 별의별 기술을 다 쓴다. 하위에서의 러버가드로 특히 유명하며 러버가드를 위력적으로 쓸 수 있는 몇 안되는 선수 중 하나이다. 어떤 상황이건 그라운드에서라면 일발역전의 서브미션을 노릴 수 있고, 그만큼 위험한 선수라고 할 수 있겠다. 

가장 큰 약점은 답이 안나오는 스탠딩 타격. 그나마 긴 팔다리로 어떻게 중간은 해먹고 있지만, 역시 타격이 아쉬운 것은 어쩔 수 없다. 이것이 가장 뚜렷하게 나타난 경기가 바로 멜렌데즈전의 패배다. 웰라운더인 멜렌데즈는 일단 스탠딩을 먹고 들어가며 레슬링과 체력의 우위를 살려 그라운드에서도 아오키를 몰아붙이며 시합을 지배했다. 반면 아오키는 장기인 서브미션이 죄다 막히면서 손도 써보지 못하고 완패했다. 아오키 본인도 시합 후 '미국 선수들은 복싱이 뛰어나다'며 이를 인정했다. 

레슬링 스킬이 부족한 것도 불안요인. 아오키의 전략은 하위에 깔리더라도 서브미션으로 한방에 결정짓는 것인데, 요즘 경기에서 이런 전략은 점점 사장되고 있는 추세다. 전체적으로 서브미션 TKO가 잘 나오지 않고, 선수들도 하위포지션에 깔렸으면 서브미션을 시도하기 보다는 탈출이나 스윕등을 시도하는데, 그만큼 서브미션 성공율이 적고 파운딩을 맞고 점수를 더 빼앗기게 된다. 

개중 레슬링 베이스의 선수들이 주짓수를 수련하면서 이런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는데, 압박이 좋으면서 주짓수까지 뛰어난 레슬러는 UFC에는 넘쳐날 정도로 많다. 심지어 레슬링과 타격이 받쳐주는 그라운드 스페셜리스트도 완패하는 세계 무대에는 멜렌데즈같은 신체조건이 뛰어난 웰라운더들이 우글거리기 때문에 타격이나 레슬링이 약한 아오키는 계속 일본 최강으로만 남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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