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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역사 수메르, 수메르 문명의 시작, 최초의 농업과 최초의 도시, 최초의 문자

Jobs9 2022. 2. 13. 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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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만물의 시작, 수메르
모래바람에 뒤덮여 있던 최초의 역사가 되살아난다

8,500년 전 이야기가 살아 숨쉬는 국내 최초 전문 연구자의 수메르문명사
인류 최초의 문명이자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모든 인간 문화의 발원지인 수메르문명. 바로 이 수메르의 역사를 되살린 한국인 전문 연구자의 책이 출간되었다. 《최초의 역사 수메르》는 〈길가메쉬 서사시〉의 점토판 원전을 한국에서 처음으로 직접 해독하여 독자들의 큰 사랑을 받았던 《최초의 신화 길가메쉬 서사시》의 저자 김산해의 신간으로, 30여 년 동안 수메르문명 연구에 전념하여 일구어낸 또 하나의 성취다. 《최초의 역사 수메르》 역시 5,000여 년 전에 쓰인 점토판 원문을 손수 한국어로 해독해가며 수메르의 역사를 추적하고 복원한 국내 최초이자 유일한 저작이다. 
실제 수메르문명기 당시에 제작된 수백 장의 점토판과 석판을 샅샅이 톺아보고, 설형문자로 새겨진 일차 사료에서 곧장 건져 올린 《최초의 역사 수메르》는 8,500년 전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이 흐르는 메소포타미아 남부의 비옥한 대지로 독자를 소환한다. 문명사의 흐름을 살린 시간순 서술과 200여 장에 달하는 방대한 사진 자료, 압도적인 전문성을 뽐내는 주석과 캡션은 수메르문명의 발굴 현장에 서 있는 듯한 생생함을 전한다. 세상 모든 만물의 시작, 인류 역사의 장엄한 기원, 위대하고 찬란한 초고대 문명 수메르의 숨결이 수천 년의 긴 잠에서 깨어나 지금 바로 우리 눈앞에 펼쳐진다. 

“수메르라는 이름은 인류의 기억에서 2,000년 이상이나 지워졌었다.”
_새뮤얼 노아 크레이머

“우리들은 대부분 24시간 전에 대해서는 너무 많은 시간을 쓰면서
6,000년 전에 대해서는 너무 적은 시간을 쓴다.”
_윌 듀란트

‘웹사이트에서 찾을 수 있는 뻔한’ 수메르의 역사 이야기는 쓰고 싶지 않았다. 내 앞에 점토판과 석판에 기록된 사료들이 첩첩했다. 나는 설형문자를 하나하나 짚어가며 읽기 시작했다. … 제대로 된 수메르의 역사 이야기를 꼭 쓰고 싶었다.
_〈여는 글〉에서

 

 

 

 

■ 수메르 문명? 메소포타미아 문명?

고대 메소포타미아 지도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문명이라면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인더스, 황하 문명 즉 세계 4대 문명입니다. 그런데 인류 최초의 문명은 ‘수메르 문명’이라고 하는데요. 수메르 문명은 세계 4대 문명이 아닌 새로운 문명일까요? 수메르 문명은 메소포타미아 문명 중 하나입니다. 메소포타미아 문명 중 가장 먼저 발생한 문명으로, 수메르인들이 일으켰다 하여 수메르 문명이라고 합니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단일 문명을 이르는 것이 아닙니다.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을 중심으로 발생한 문명을 통틀어 이르는 말입니다. 메소포타미아란 그 어원부터 고대 그리스어 ‘Μεσοποταμια’에서 온 말로서, ‘메소(Μεσο)’는 중간, ‘포타미아(ποταμια)’는 강을 뜻하여 ‘강 사이의 땅’이라는 의미입니다. 바다와 사막으로 둘러싸인 폐쇄적 지형의 이집트 문명과 달리 개방적 지형의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침략과 전쟁이 잦았고, 여러 민족과 국가들이 흥망성쇠를 반복하며 여러 개의 하위 문명들을 이루었습니다. 수메르가 그 첫 번째 문명

 

 

■ 수메르 문명의 시작, 최초의 농업과 최초의 도시

 수메르의 관개 농업

수메르는 메소포타미아의 가장 남쪽 지방으로 오늘날 이라크의 남부 지역인데요. 이라크라고 하면 건조하고 무더운 중동의 사막이 떠오르는데, 어떻게 제일 먼저 문명이 발생한 걸까요?

다행히 두 강이 만나는 하류는 강물의 범람으로 휩쓸려 내려간 진흙이 쌓여, 영양분 가득한 비옥한 땅이 되었습니다. 덕분에 갖가지 식물과 야생 보리, 야생 밀이 풍부하게 자랐고 사람들은 강의 하류로 모여들었습니다. 사람들은 홍수에 대비해 강가에 둑을 세웠고, 가뭄에 대비하고 경작지를 넓히기 위해 강의 물을 끌어다 쓰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인류 최초의 관개농업이었으며 농업 생산량을 급격히 증대시켰습니다. 이로써 더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정착하게 되었고, 우르, 우르크, 키시 등 인류 최초로 도시들이 생겨났습니다.

 

 

■ 가장 위대한 발명, 최초의 문자

수메르인이 쐐기 문자판을 만드는 방법. ①강가의 진흙을 퍼 온다. ②적당한 크기의 점토판으로 다듬는다. ③마르기 전에 갈대 펜으로 꾹꾹 눌러 글자를 새긴다. ④햇볕에 잘 말리면 쐐기 문자판 완성.

사회가 점차 발달하고 복잡해지면서 서로 간에 전달하거나 소통시켜야 할 정보의 질과 양이 많아졌습니다. 사람들은 전달성과 보존성이 보다 확실한 방법을 찾아 말을 기록으로 남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림으로 시작한 문자는 점차 간소화되어 쐐기 문자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는데요. 수메르에서는 왜 하필 쐐기 모양의 문자를 사용하게 되었을까요?

수메르 사람들은 진흙으로 점토판을 만들고 갈대를 날카롭게 다듬어 펜처럼 사용했습니다. 그림을 그리기 보다는 쿡쿡 찌르는 것이 간편했던 것입니다. 강 주변에 위치한 수메르에는 진흙과 갈대가 많았는데요. 때문에 주변에서 구하기 쉬운 재료이면서 보존성도 좋은 점토판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햇빛에 잘 말린 점토판은 후대에 등장한 파피루스, 양피지 등의 기록물보다 훨씬 보존성이 좋았습니다. 또한 다른 기록지들은 전란 시의 화재나 자연재해로 소실되기 쉬웠던 반면 점토판은 불에 구워지면 더욱 단단해졌습니다. 덕분에 수천 년 전의 기록이 지금까지도 남아있어 추측이 아닌 정확한 역사를 알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수메르어는 인류 최초의 문자로, 후대의 문자에도 영향을 미쳤으며, 수메르 문명의 지적, 문화적, 경제적 발전에 큰 영향을 주어 수메르의 수많은 발명 중 가장 위대한 발명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 최초의 달력, 천문학, 60진법

수메르의 별자리 지도. 수메르인은 점토판에 별자리 지도를 새겼다. 수메르인의 천문학 지식은 그리스에 고스란히 전해져 그리스 천문학의 바탕이 됐다.

농사를 지으려면 날씨와 계절을 예측해야 했는데요. 수메르 사람들은 밤하늘을 관찰해 달의 모양이 약 30일 주기로 달라지고, 이렇게 열 두번 되풀이하면 다시 처음의 계절로 돌아온다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이것은 오늘날의 달력인 ‘태음력’, 줄여서 ‘음력’의 시초였습니다.

수메르에서는 천문학도 발달하였습니다. 그들은 일식, 월식의 기록은 물론 행성들의 세세한 움직임까지도 알고 있었고 점토판에 별자리 지도를 새기기도 했습니다. 수메르의 이런 천문학 지식은 그리스에 전해져 그리스 천문학의 바탕이 되었습니다.

수메르는 곡식의 양이나 땅의 크기를 재기 위해 수학과 기하학도 발달했습니다. 수메르인은 곱셈과 나눗셈은 물론 원을 360도로 나눠 각도를 재는 방법까지 알고 있었습니다. 덕분에 교역을 하고 큰 건물을 짓는 것도 가능했습니다. 또 수메르 사람들은 오늘날 시간 계산에도 사용되는 60진법을 사용했는데요. 2~6의 숫자로 나눴을 때 모두 정수로 떨어지는 장점이 있다고 합니다.

 

 

■ 악기부터 장신구까지, 수메르 왕가의 무덤에서 나온 다양한 유물들

왼쪽부터 차례대로 머리 장식과 목걸이(출처: chegg.com)/ 은으로 만든 리라(출처: 영국국립박물관)/ 금으로 만든 단검(출처: 위키미디어)/ 덤불 속의 염소(출처: 영국국립박물관)

 

■ 운송 수단의 발명, 최초의 바퀴와 최초의 돛

우르에서 발견된 모자이크 작품에 바퀴가 달린 전차가 새겨져 있다. (출처: 영국국립박물관)

 

오늘날을 ‘자동차 문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이 ‘자동차 문명’을 가능케 한 위대한 발명품 중 하나는 바로 ‘바퀴’입니다. 바퀴 역시 수메르에서 가장 먼저 사용되었습니다. 서기전 3500년경 바퀴 달린 수레를 사용한 것이 가장 오랜 기록이고, 서기전 2600년경 우르의 군대는 바퀴 달린 전차를 전투에 사용했습니다. 덕분에 우르는 주변을 석권할 수 있었고, 이후 바퀴는 빠른 속도로 전파되어 육상교통의 혁명이 시작되었습니다. 

수메르는 교역이 활발한 나라였습니다. 목재와 석재, 금속 등의 자원이 부족했던 수메르는 다른 나라에서 이를 수입하고 옷감과 곡물을 수출하며 일찍이 교역이 발달했는데요. 필요한 것들을 강과 바다를 통해 가져오다 보니 배 만드는 기술이 발달했고, 인류 최초로 배에 돛을 달아 사용했습니다. 당시 수메르인들은 홍해 주변과 인도양까지 진출해 인더스 문명과도 교류했는데요. 바퀴와 돛 덕분에 거리가 먼 인도까지 교류가 가능했던 것입니다. 수레에 바퀴를 달아 많은 물건을 손쉽게 옮길 수 있었고, 배에 돛을 단 덕분에 바람을 이용해 멀리까지 항해할 수 있었습니다. 

 

 

■ 최초의 법전, 우르남무 법전

최초의 법전, 우르남무 법전 점토판

 

사회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법이 필요합니다. 수메르 역시 법이 존재했고 문자로 적힌 법전도 있었습니다. 인류 최초의 법전인 우르남무 법전입니다. 우르남무 법전은 수메르 우르 3 왕조의 우르남무 왕이 제정한 법전으로, 이는 인류 최초의 성문법(문자로 적어 나타내고, 문서의 형식을 갖춘 법률)입니다. 널리 알려진 바빌론의 함무라비 법전(기원전 1755년)보다 약 3세기 앞서 만들어졌으며, 함무라비 법전을 비롯해 오늘날 법체계의 선례가 되었습니다.
우르남무 법전은 살인, 강도, 강간은 사형죄로 다스리고 있으며, 상해, 노비 관계, 결혼, 재판정에서 증인의 의무 등 다양한 영역을 다루고 있습니다. 함무라비 법전이 전반적으로 ‘눈에는 눈, 이에는 이’식의 형벌 체계를 따르고 있는 데 비해 우르남무 법전은 가급적 금전적으로 배상하도록 한 것이 특징입니다. 벌금을 처벌의 한 형태로 간주하는 것은 오늘날에도 적용되는 개념입니다. 약 4천 년 전에 기록된 우르남무 법전은 법률의 단순성 말고 그 내용만으로 보면 현대 사회에서 주로 적용되는 불법적인 행위에 대한 처벌과 크게 차이가 없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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