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과학 Natural Science/생명 Life sciences

철새, 자기장, 이동경로, 인간과 조류의 적절한 거리

Jobs 9 2025. 5. 19.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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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새

 

번식지와 월동지를 해마다 정기적으로 왕복하는 새. 한자어로는 표조(漂鳥), 후조(候鳥)라고도 한다. 반대되는 개념은 텃새. 텃새보다는 관찰이 어려운데, 계절에 따라 일정 주기로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기 때문이다. 사람으로 치면 유목민, 유랑민족에 해당한다.

 

 

이 철새떼의 개체수라는 것이 한 계절 사이에 수만 마리가 넘나들기 때문에 지역 생태계에 다대한 영향을 미치는 생태계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생태 보존의 척도로 주로 활용되는데, 반대로 국가와 대륙을 넘나드는 거대한 스케일 때문에 바다를 건너서 기생충/전염병의 전염원이 되어 해당 지역에서 생활하고 신나게 배설하면서 병을 퍼뜨리기도 한다. 당연히 이러한 병한테 수없이 감염을 당해온 철새들은 면역력이 보통 강한 게 아니다. 면역력이 약한 철새들은 진작 다 죽었기 때문이다. 철새들마저 전멸하는 사태가 벌어지곤 하는데, 이러한 경우는 정말 병원체가 강한 것이다.

 

사실 철새들이 이동하는 이유는 기후보다는 대체적으로 먹이 부족 때문이다. 잡식성 새가 이런 경우가 많은데, 먹이도 풍부하고 기후도 자기들이 살기에 딱 안성맞춤인 경우에는 이주하거나 귀향하지 않고 아예 텃새가 되어버리는 사례가 있다. 청둥오리가 대표적인 텃새가 되어버린 철새.

 

철새들이 어떻게 방향 감각을 잃지 않고 대규모로 대륙 이동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여러 연구가 중구난방인데, 이는 새의 종류에 따라 방향 잡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 중 전서구와 같은 일부 조류가 지구의 자기장을 이용한다는 사실이 규명되었으나, 정작 지구의 자기장도 이용하지 않고도 방향을 찾는 다른 종류의 철새들 또한 존재하는지라 확실하게 정설로 정해진 것은 아직 없다.

 

한반도는 시베리아나 몽골에서 동아시아로, 그리고 동아시아에서 동남아시아로 이동하는 경로에 위치해 있어 세계적으로도 많은 종류의 여름, 겨울 철새와 나그네새가 존재한다.

 

 

 

분류

 

한반도의 철새들을 중심으로 서술한다. 한반도나 일본은 바다와 대륙의 중간에 위치한 특성상 철새들의 매우 중요한 거점이다. 바다를 건넌다는건 대부분의 새의 입장에서 엄청난 위험을 감수하는 행동인만큼 바다를 건너고 나면 기진맥진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바다를 건널 수 없는 새, 바다를 간신히 건넜지만 지친 새들이 둥지를 틀거나 월동하는 주요 거점으로 철새보호의 필요성이 매우 큰 지역이라 할 수 있다.

 

여름새: 봄과 여름에 대한민국에 와서 번식하고 가을에 남쪽으로 가서 월동하는 케이스로, 대표적으로 제비, 두견새, 해오라기, 왜가리 등이 있다. 여름새들은 겨울새들보다 훨씬 가혹한 비행을 하는데 그도 그럴게 한반도 남쪽은 바다이기 때문이다. 제비만 하더라도 한반도에서 출발한 애들이 동남아를 거쳐서 무려 호주까지 찍고 돌아오는데 이 과정에서 절반이 바다 위에서 지쳐 빠져 죽는다. 이런 생태를 가지고 살기 때문에 새들 중에서도 비행실력이 여간내기가 아니다.

 

겨울새: 여름새들과는 반대로 봄과 여름에는 고향인 북쪽에서 머물면서 번식하며 생활하다가 가을에 국내로 와서 가을과 겨울 동안 국내에서 머무는 케이스로, 대표적으로 독수리, 두루미, 기러기, 황새, 오리, 개똥지빠귀 등이 있다. 하필이면 쌀쌀해지는 때에 역시 윗나라들 뺨칠 정도로 상당히 추운 대한민국에 왜 굳이 찾아오는가 하면, 이 친구들은 윗부류만큼 착륙도 없이 초장기간 날지는 못한다. 대체로 체형부터가 크고 뚱뚱한 편이라 바다를 건널 수가 없으니 그나마 육지중 최남단인 한반도까지 오는 것이다. 고향이 북쪽인데 바다를 건널 수 있다? 그러면 아래 부류인 나그네새로 분류된다. 바다를 건널 수 없는데 크고 뚱뚱하다는 점 때문에 한반도의 급격한 환경변화에도 이 새들은 반도에 자연스럽게 갇히므로 대처가 어렵다. 따라서 겨울새에 대해서는 각별한 주의와 보호, 그리고 인위적인 도움이 필요하다.

여름새는 한국에서 번식하고, 겨울새는 한국에서 번식하지 않는다고 썼는데, 그 이유는 새들의 번식에 있어 최대의 천적은 벽을 타고 이동할 수 있어서 둥지로 침입하는 뱀과 도마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능한 북쪽에서 번식하려 하기 때문에 여름새들은 번식지로 한반도를 점찍는 것이고, 겨울새들은 그냥 추위를 피해 날아왔다가 번식은 도마뱀이 아예 없고 뱀도 거의 없는 타이가나 툰드라에서 한다. 물론 예외는 있다.

 

나그네새: 북쪽의 번식지로부터 남쪽의 월동지로 오고 가는 도중 한때 머무는 새. 대표적으로 도요새, 알락개구리매, 비둘기조롱이 등이 있다.

길 잃은 새(미조, 迷鳥): 예외적인 경우. 본디는 해당 지역으로 오지 않으나 드물게 발견되는, 본래의 이동 경로나 분포 지역에서 벗어난 새를 말한다. 태풍 등으로 인하여 다른 새들의 무리에 본의 아니게 들어가게 되는 등 우연히 길을 잃고 들어온 경우. 당연히 이런 경우는 보기 힘든지라 발견 주기가 수십 년 단위로 있는 경우도 많다. 어떤 종은 하필 이들의 이동 경로가 태풍이 잦게 발생하는 지역과 겹쳐서 유독 태풍 시기만 되었다 하면 대량으로 미조가 발생해 사실상의 철새 취급을 받기도(...) 한다. 사막꿩, 수염수리, 에위니아제비갈매기 등이 있다.

 

물론 조류의 분류가 다 그렇지만 위의 이 분류들에 반대되는 성향을 가진 새들은 얼마든지 있다. 충분히 잘 날 수 있는데 그냥 한반도에서 월동한다든지, 겨울 철새인데 작고 날쌘 체형을 가졌다든지. 이는 조류가 굉장히 종 다양성이 풍부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일이다. 조류는 바다 위의 코딱지만 한 섬도 거점으로 삼을 수 있을 만큼 서식지가 넓고, 육상동물과 달리 날아서 이동할 수 있기 때문에 모든 대륙에 존재한다. 따라서 육상 척추동물 중 가장 종의 수와 개체 수도 많다. 그래서 예외적인 생태를 가진 종의 수도 많고, 똑같은 경로로 날아다니는 것처럼 보여도 나는 방식, 나는 이유, 이동하는 방향이 특이한 종도 상당히 많기 때문이다.

 

 

 

한편 옛날에는 철새였지만 여러 요인들로 인해 아예 국내에 자리잡아 원주민(?)이 된 새들도 부쩍 늘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청둥오리, 왜가리, 백로, 원앙인데, 모두 물 위에서 살아가거나 하천에서 먹이 활동을 하는 조류들이다. 봄 가뭄의 갈수기 때는 한반도 대부분의 개울과 하천이 다 말라버리기 때문에 견디지 못하고 북쪽으로 이소하던 새들인데, 4대강 사업, 도심공원, 천변조성, 저수지 건설 등으로 사계절 내내 물이 마르지 않게 되자 중국의 강남으로 날아가지 않고 그냥 눌러앉아 지내게 된 것이다.

 

황새 역시 한반도에 텃새로 살던 개체군과 철새로 살던 개체군 두 종류가 있는데 텃새 개체군은 전쟁, 농약 남용과 수질오염으로 인한 먹이 부족, 밀렵으로 인해 멸종했고, 철새로 살던 개체군은 다행히 번식을 북쪽에서 한 덕에 생존했지만 그래도 타격을 입어 약 10여마리 정도까지 줄어들었었다.

 

상술한 천변조성, 4대강 사업 등으로 작은 새들의 서식이 가능해진 것에 더불어, 인공담수를 만들려다 수질오염이 답이 없어서 만들어진 거대한 기수 호수 시화호가 생겨 많은 물고기들이 모여들었고, 사람의 출입이 제한된 탓에 한반도를 지나치는 철새들이 죄다 모여들어 수십만 마리 새떼의 번식장이 되었다. 이제 대형새들의 서식까지 다시 가능해졌고 교원대에서 복원사업을 통해 텃새 개체군을 복원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현재 100여 마리까지 정도 회복한 상태다. 큰고니와 큰기러기도 둥지를 틀고 알까지 낳아 새끼를 까서 키울 전망이다.

 

조류보호단체들은 한반도 지형에 맞지도 않고 패널제조 및 관리 폐기로 환경오염 우려가 많은 태양광 발전 단지 사업을 당장 중단하고 시화호처럼 아산만 방조제로 만들어진 곳을 조력 발전 및 인공호수로 조성해서 철새관광단지로 만드는 것이 생태보호 및 경제성 측면에서도 타당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편 여름철새의 경우 다른 이유로 한국에서 텃새가 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건 겨울철새와는 달리 지구 온난화의 영향을 받는 것이다. 후투티와 물총새, 쇠백로가 이런 경우다.










가까워질수록 멀어져야 하는 철새와 인간

 

작년 겨울 서울대공원의 황새가 조류인플루엔자로 폐사했다. 같은 사육장에 있던 원앙에서도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가 검출되었고 이들은 모두 살처분되었다. 전국을 덮친 조류인플루엔자는 겨울 내내 지속되었고, 결국 전국적으로 천만수 이상의 가금류를 살처분했다. 조류인플루엔자에 감염되어서가 아니라 방역으로 인한 과로로 수의사가 안타깝게 사망했다. 정확한 감염로는 알기 어려웠다. 철새가 바이러스를 옮긴다는 공포가 확산되었다. 지자체마다 철새도래지 주변 접근을 막고 소독했다. 한 지자체에서는 철새도래지를 아예 불태웠다가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사실 철새도래지를 태운 게 새로운 뉴스거리는 아니다. 철새들의 보금자리인 갈대밭을 태우는 건 지역 축제 때문에, 건물을 새로 짓기 위해 이전에도 종종 있어왔다.

 

 

인간과 철새의 낭만적 거리

 

동물과 인간의 물리적인 거리가 멀수록 그 사이에는 상상과 상징이 자리 잡기 쉽다. 그런 의미에서 철새는 다분히 낭만적이었다. 그리운 마음을 전하는 전달자로서 기러기는 종종 시조에 등장한다. 멀리 남천축국에서 유학하던 혜초는 더운 남쪽 나라에서 고향에 소식을 전하기 힘든 쓸쓸함을 기러기에 담았다. 춘향은 기러기에게 한양에 떨어져 있는 이몽룡에게 소식을 전해달라고 노래하기도 한다. 때때로 지역을 옮기는 사람들, 한곳에 머무르지 않는 사람들을 상징하는 말로 철새라는 단어가 쓰이기도 했다. <삼국사기>에서는 백제의 온조왕 왕궁에 모여든 홍안(鴻雁)을 북쪽에서 내려오는 사람들이 모여든다는 징조로 해석하기도 했다.

 

다른 문화권에서도 일정한 대형을 이뤄서 하늘을 날아가는 철새의 무리는 여행과 모험에 대한 인간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생텍쥐페리는 어린 왕자가 자신의 별을 떠날 때 철새를 이용하게 했고, 오스카 와일드는 따뜻한 남쪽 나라로 떠나지 못한 제비를 통해 도시의 아픈 이야기를 행복한 왕자에게 전하게 했다. 라게를뢰프는 집거위인 모르텐과 함께 기러기 떼를 따라 집을 떠난 닐스가 긴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인간이 인지하지 못했던 아주 오래전부터 어떤 종의 새들은 계절의 변화에 따라 먼 여행을 했다. 먼 거리를 이동하고 계절이 바뀌면 다시 돌아오는 이 동물들에 대한 과학자들의 관심은 경이로움에서 시작했을 것이다. 동물론(Historia animalium)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두루미들이 흑해 북부 스키타이 초원에서 나일강 상류까지 날아온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는 펠리컨이나 거위 같은 다른 새들도 겨울을 지내려 따뜻한 곳으로 이동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들이 어떻게 이동하고 돌아오는지에 대한 수수께끼가 풀리는 데는 2000년에 가까운 시간이 걸렸지만 말이다.



고대에 철새와 인간의 거리는 낭만과 경이를 유지할 딱 그만큼이었다. 그러나 인간이 활동 범위를 넓혀감에 따라 철새를 위한 공간이 줄어들었다. 반대로 더 이상 철새를 볼 수 없다는 것은 환경 파괴의 지표로 여겨졌다. 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법과 제도를 정비하는 일은 그 사회의 성숙도와 시민의식을 보여주는 지표로, 무분별한 개발을 막고 철새도래지를 보호하는 일은 공익적 가치를 존중하는 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경이로움이 경악으로

 

1997년 5월 홍콩에서 람 호이카라는 세 살 어린아이가 사망했다. 원인은 인플루엔자 감염자에게 심한 구토와 경련, 혼수상태를 유발하는 라이증후군이었다. 원인이 된 바이러스를 밝혀내는 데 3개월이나 걸렸다. 같은 해 3월 가금류에서 인플루엔자가 유행했고 수천마리의 닭이 죽었다는 것과 이 질병을 연계하는 것도 이미 사망자가 발생한 이후였다. 12월에는 다시 가금류 인플루엔자 발생이 보고되었고 그해가 끝날 때까지 감염자 18명 중 6명이 사망했다. 당시 감염자들은 모두 가금류 농장이나 시장을 통해 감염된 닭과 직접적으로 접촉한 사람들이었다.

 

결국, 어린아이의 목숨을 앗아갔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인간이 아니라 가금류에서 유행하던 바이러스라는 것이 밝혀졌다. 조류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사람에게 직접 전염된 첫 번째 사례였다. 사람들은 생닭과 오리를 팔던 시장을 폐쇄하고 농장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전문가들은 시장에 내놓은 닭 중 약 20%가 감염되어 있었지만, 다행히 이 바이러스가 사람에게서 사람으로 전파되지는 않는 것 같다고 결론지었다. 이후 대대적인 조류인플루엔자 바이러스 방역이 시작되었고 가금농장에 대한 관리가 시작되었다. 1997년 12월 29일부터 5일 동안 모든 상업 농장의 닭을 살처분한다는 결정이 내려졌다. 총 150만 마리의 닭이 살처분되었다. 그러나 이후로도 홍콩에서는 지속적으로 조류인플루엔자가 유행했다. 그리고 2002년 말엽 홍콩의 두 공원에서 사육하던 물새가 감염되어 폐사했다. 이 바이러스는 모든 다른 물새나 야생조류를 공격하는 것으로 알려졌고 매우 치명적이기도 했다. 이전에 수금류나 다른 야생물새들에게 치명적이지 않았던 바이러스들과는 달랐다. 기존의 바이러스와 구분하기 위해 이들을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라고 명명한다. 고병원성 바이러스는 감염된 조류의 90~100%를 폐사시킬 정도로 강력하고 빠르게 전파된다.

 

 

바이러스의 생존 전략

 

별의 영향이라는 뜻의 이탈리아어에서 유래한 인플루엔자라는 단어는 18세기 중반부터 유럽에서 쓰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마도 인간이 동물을 가축화하기 시작했던 무렵부터 독감은 존재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또 사람들은 경험상 가축의 전염병과 인간의 전염병이 그 시기나 증상을 공유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독감의 원인체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라는 사실, 그리고 이 병원체가 서로 다른 동물종을 옮겨다니며 변이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20세기 초반 미생물학자들에게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처음에는 보통의 세균을 걸러낼 수 있는 막을 통과하는, 아주 작아 눈에 보이지 않는 세균쯤으로 취급되었다. 고작해야 80~120나노미터 정도 크기였기 때문이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를 구조에 따라 분류하면 크게 A, B, C형으로 구분된다. 인간에게 독감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는 대개 A형에 속한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를 더 세분화하기 위해 바이러스 표면에 있는 단백질에 따라 분류하는데 보통 혈청형이라고 표현한다. 우리가 H1N1, 또는 H5N1이라고 명명하는 것은 이런 분류를 따른 것이다. 때로는 바이러스가 감염되는 동물종에 따라 조류인플루엔자, 돼지인플루엔자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아주 오랜 시간 변이를 거듭하며 인간을 비롯한 다양한 동물에 기생해왔다. 서로 다른 종을 모두 감염시키는 바이러스는 많지 않은데, 어떤 상황에서 변이를 일으켜 종간 감염이 가능해지면 때로 심각한 문제를 발생시키기도 했다. 이런 의미에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상당히 효과적인 전략을 가지고 있다. 같은 바이러스의 다른 아종들, 또는 서로 다른 바이러스가 특정 동물종의 숙주 안에서 이른바 항원대변이(antigenic shift)를 일으킬 수 있는데 이렇게 변화된 표면 단백질로 인해 새로운 아종이 되기 때문에 숙주의 면역 체계는 이들에 대해 새로운 대비책을 준비해야 한다. 예를 들어, 물새와 인간을 감염시킬 수 있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모두 돼지 체내에서 복제가 가능하다. 그래서 돼지를 병원체를 섞는 믹싱 볼(mixing bowl)이라고 부른다.

 

진화적으로 조류는 다른 포유류 동물들에 비해 인간과 거리가 멀다. 따라서 인간과 공유하는 인수공통감염병의 병원체가 적은 편이다. 특히 야생오리가 가지고 있는 병원체가 인간과 접촉하는 일은 흔한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또 이들이 인간에게 직접 감염되기도 어려웠다. A형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오리나 거위 같은 물새들에게 흔한 바이러스로 이들에게는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증상도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이들 물새는 이른바 이 바이러스의 저장소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직접 감염되거나 유행병을 일으킬 위험은 매우 적었다. 우리 역사에서 종종 철새가 사냥감이 되고, 왕에게 진상하는 특산물이 되기는 했었지만 철새와 인간의 거리는 낭만적인 수준으로 유지되었기 때문이다.

 

 

인간과 조류의 동거

 

울타리에 가두어 키울 수 있는 초식동물에 비해 조류를 가축화하는 데는 좀 더 시간이 걸렸다. 가금으로서의 오리나 거위는 중국에서 4000년 전쯤 가축화된 것으로 보인다. 이집트에서처럼 야생오리를 잡아서 사육하는 방식도 여전히 함께 쓰였다. 전통적인 농장의 형태에서 오리나 거위는 낮은 울타리 안에 풀어 키웠기 때문에 자유롭게 집 주위를 돌아다닐 수 있었다. 어느 문화에서나 그러하듯 다양한 종의 가축들은 한 울타리 안에서 서로 접촉할 수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더운 기후의 중국 남부와 아시아 지역에서는 특별한 농업 형태를 가지고 있다. 논에 집오리를 풀어놓아 잡초와 해충을 먹게 두는 것이다. 그리고 최근 친환경 농업의 일환으로 가금류와 돼지의 분변을 물고기 양식에 이용하기도 한다. 돼지와 닭, 그리고 물고기를 함께 키우는 복합 양식은 다른 아시아 국가들에서도 활용되고 있다. 이 복합 농장의 형식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항원대변이를 일으키는 온상이 된다고 비판받고 있다.

 

2012년에 개봉한 영화 <컨테이젼>은 홍콩에서 시작된 전 세계적인 신종 바이러스의 대유행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영화 안에서 걷잡을 수 없는 바이러스 전파를 두고 나누는 보건전문가와 국가보안국 관리의 대화가 인상적이다. 혹시 이 전염병이 누군가에 의한 바이오테러가 아닐까 걱정하는 보안국 관리에게 보건전문가가 말한다. 누군가 바이러스를 무기화할 필요가 없다고. 그건 새들이 늘 하는 일이라고. 야생물새들이 거의 모든 종류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에 이들이 대륙에서 대륙으로 바이러스를 운반하는 것이 아닌가에 대한 의심이 생겨났다. 이들이 가금류와 접촉해서 전염시킨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가금류에서 변이를 일으켜 고병원성이 되는 것은 아닌지, 야생의 철새 자체가 고병원성 바이러스를 직접 가금류에 전달하는 것은 아닌지 과학자들이 관심을 가진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이들은 두 가지 방식이 모두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뿐만 아니라 종을 넘나드는 조류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고양이와 표범, 개와 같이 조류와 공간을 공유했던 동물들을 감염시켰다.

 

 

 

인간과 조류의 적절한 거리는?

 

이미 오랫동안 철새들은 스스로에게 해를 입히지 않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를 가지고 가던 길을 오가고 있다. 그러나 환경이 바뀌었다. 최근 기후변화로 인해 철새들이 이동하지 않고 머무르면서 기존의 생태계에 변화가 있다는 보도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이들이 주변의 동물들과 어떤 상호작용을 하게 될지 아직은 파악하기 힘들다. 우리가 환경을 바꾸었다. 철새도래지와 가까이 위치한 가금류 농장의 문제는 심각하다. 야생의 철새와 가금류들의 거리가 가까워졌기 때문이다. 사람과 철새의 거리 역시 가까워졌다. 아마도 조류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가금이나 돼지 같은 동물을 매개로 변이를 일으킬 좋은 조건을 얻은 것 같다. 과학자들이 걱정하는 바로 그런 상황이다.

 

철새와 인간 사이 적절한 거리와 경계가 무너졌다. 낭만과 상상이 사라진 그 사이에는 두려움이 자리 잡고 있다. 이런 상황에 이르는 데 있어 철새에 비해 인간의 행위가 더 큰 영향을 미친 것은 명확하다.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선택은 복잡하지 않다. 철새를 모두 쫓아내서 거리를 유지하거나, 아니면 이들이 머물 수 있는 환경을 보전하고, 우리와 가까운 가금류를 보호해서 낭만적인 정도의 거리를 유지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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