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서둘러라!(Festina lente!)
로마의 역사가 수에토니우스(Suetonius)가 저술한 책 ‘De vita Caesarum’에 나오는 ‘천천히 서둘러라(Festina lente)’는 말은 황제 아우구스투스(Augustus)가 한 말이라고 한다. 로마의 영웅 카이사르가 암살된 이후 벌어진 피비린내 나는 내란을 종식시킨 아우구스투스는 아예 이 말을 자신의 좌우명으로 삼았다.
‘Festina lente’라는 말은 ‘서둘러라’를 의미하는 ‘festina’와 ‘천천히’를 의미하는 ‘lente’의 합성어다. 서두르다 보면 천천히 할 수 없고 천천히 하다보면 서두를 수 없다. 따라서 ‘천천히 서둘러라’는 말은 논리적 모순이다.
하지만 이 말은 모순을 넘어서서 역설적으로 들린다. 서두르지만 전후좌우를 따져보면서 서두르라는 말이다. 방향과 목적의식을 잃고 자신이 왜 빨리 서두르는지를 망각하는 경우가 있다. 목적 없는 질주와 탈주는 가만히 앉아 있는 만 못하다. 그래서 멈출 시기를 아는 결단과 차분한 여유가 질주하는 속도와 서두르는 조급함보다 더 중요하다.
‘천천히 서둘러라’는 말은 두 가지 의미심장함을 전해주고 있다. 첫째, 서두르되 내가 무엇을 위해서 서두르는지를 분명하게 인식하라는 말이다. Springbok이라는 산양은 처음에 앞의 양이 뜯어 먹는 풀을 뒤의 양이 못 뜯어 먹도록 밀어붙이다 보니 앞의 양은 더 빨리 풀을 뜯어 먹는다. 더 빨리 풀을 뜯어 먹는 앞의 양을 밀어붙이기 위해서는 뒤의 양도 더 빨리 밀어붙여야 한다.
이러다보니 결국 앞의 양은 풀을 뜯어 먹지도 못한 채 앞으로 내 달리게 되고 뒤의 양도 내달리는 앞의 양을 쫓아 더 빨리 내달리는 웃지 못 할 상황이 발생한다. 왜 어디로 뛰고 있는지, 방향성과 목적의식을 상실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 빨리 서두르는 것은 죽음을 자초하는 행위밖에는 되지 못한다.
두 번째, ‘천천히 서둘러라’는 말에는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손자병법」에 보면 우직지계(迂直之計)라는 말이 있다. 돌아서 가는 길이 빠른 길이라는 말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곡선으로 가는 것보다 직선으로 가는 길이 빠른 길이다.
하지만 빨리 가는 직선의 길에는 장애물도 많고 경쟁자도 많아서 오히려 곡선으로 우회하는 길보다 시간이 더 많이 걸릴 수 있다. 지구상에서 가장 빠른 새는 매다. 매가 땅위의 쥐나 토끼를 발견하면 수직으로 강하하지 않고 사냥감이 안 보이는 멀리서 수직으로 강하했다가 에너지를 축적, 시속 320㎞ 속도로 날아가서 목표물에 접근한다. 그야말로 눈 깜짝 할 새에 사냥감을 낚아채는 것이다. 매가 시속 320Km로 날아갈 수 있는 원동력은 빙 돌아가는 전략에 있다.
수직으로 강하하면서 낙하에너지를 축적한 다음, 축적된 에너지를 이용하여 수평으로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날아가는 것이다. 매의 우직지계 형 사냥전략은 돌아가는 게 결코 먼 길이 아니라 오히려 ‘가까운 길’이라는 점을 온 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비슷한 우화로 비둘기 이야기가 있다. 몹시 목마른 비둘기가 옥상에 앉아 있다. 건너 편 건물에 무언가 반짝 거렸다. 목마른 비둘기는 한 줄기 단비 같은 희소식이라고 느꼈다. 그것은 시냇물처럼 맑아 보였다. 순간 비둘기는 “물이닷!”라고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질렀다.
탈진상태의 비둘기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온힘을 다해 순식간에 시냇물로 날아들었다. 하지만 비둘기는 날개가 꺾인 처참한 모습으로 길거리에 내동댕이 처졌다. 비둘기는 마지막 숨을 몰아쉬면서 헐떡거리고 있었다.
“아아 분명히 물이었는데” 하지만 비둘기가 부딪힌 것은 시원한 시냇물이 그려진 광고탑의 배경 그림이었다. 목이 타서 죽을 지경이라면 눈앞에 보이는 것은 모두 물로 보였을 것이다. 이렇듯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의미인 우직지계라는 말은 이런 상황에 꼭 필요한 지혜가 아닐 수 없다. 정말 서둘러야한다면 천천히 서두르자. 천천히 그러나 꼼꼼하게, 서두르되 뚜벅뚜벅, 여유를 갖되 긴장감을 늦추지 말자.
Festina lente
천천히 서둘러라
모순적인 의미를 지닌 이 경구는 로마의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좌우명이다. 아우구스투스가 누구인가? 카이사르가 공화파인 브루투스 일당에게 암살당한 후 로마 사람들은 카이사르의 후계자로 그를 오랫동안 보필한 당시의 실력자 안토니우스를 예상했다. 하지만 그의 유언장에는 다른 이름이 적혀 있었다. 바로 거의 존재감이 없었던 아우구스투스였다.
사람들은 아우구스투스를 한낮 애송이로만 생각했지만 그는 야심을 지닌 젊은이였다. 아우구스투스는 자기가 해야 할 일과 할 수 있는 일을 정확히 구분하여 한 발씩 실행에 옮겼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시간을 미래를 향하여 직선 위에서 흘러가는 크로노스Chronos와 시간의 깊이를 나타내는 카이로스Kairos로 구분하여 생각했다. 크로노스는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물리적인 시간을 말하고, 카이로스는 특별한 의미가 부여된 시간을 말한다. 우리말로 구분한다면 크로노스는 '시간'이 될 것이고, 카이로스는 '시각', 혹은 '때'가 될 것이다.
신화 속의 크로노스는 그 형태가 없거나, 간혹 수염이 긴 노인으로 표현된다. 하지만 제우스의 아버지인 크로노스Chronos와는 다른 신이다. 크로노스가 의미하는 시간이란 자연이 순환하는 시간, 즉 인간이 태어나서 죽기까지의 시간을 의미한다.
이에 비해 제우스의 아들 혹은 형제로 등장하는 카이로스는 조금 특별한 시간의 신이다. 일단 그는 외모가 특이하다. 앞머리는 길어서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얼굴을 분간할 수 없게 만들고, 뒷머리는 대머리이다. 게다가 등에는 날개가 달려 있다. 사람들이 카이로스를 발견하면 그의 앞머리를 잡아채어 자신의 시간, 즉 기회를 포착하려고 한다. 하지만 기회는 순간에 잡아야 한다. 앞머리를 놓치면 뒷머리를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카이로스의 뒷머리는 대머리다. 지나간 기회는 잡을 수 없다는 뜻이다. 게다가 카이로스는 날개까지 가지고 있다. 기회는 날아간다는 의미이다.
사람들에게 두 시간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면 카이로스를 선택할 것이다. 그만큼 카이로스는 특별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말한다.
오늘 내가 허비했던 크로노스는
어제 죽은 사람에게는 그토록 귀중한 카이로스가 아니었던가?
Festina Lente에서 festina의 원형은 festinare인데 1군 동사의 활용은 다음과 같다.
라틴어는 대명사 주어를 굳이 사용할 필요가 없으므로 festinas라고 하면 '너는 서두르다'가 되고, 여기에서 s를 탈락시키면 명령법이 된다. 즉 '서둘러라'라는 뜻이 된다. Lente는 '천천히'라는 부사이므로 영어로 바꾸면 slowly가 될 것이다.
* 라틴어에서 인칭 대명사가 대개 생략된다. 만약 Ego를 주어로 사용한다면 강조의 의미이다.
** 라틴어에는 3인칭 대명사 주격이 없다. is는 영어의 this처럼 지시 대명사인데, 인칭 대명사의 주격으로도 쓰인다. 복수인 ii도 마찬가지이다.
아우구스투스가 '서두르라'고 말한 시간은 물리적인 시간인 크로노스가 아니라 상대적인 시간인 카이로스를 말한 것이었다. 천천히 준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자신의 운명을 정할 수 있는 그런 시간인 카이로스를 자신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말이었을 것이다.
카이로스의 손에 저울이 들려 있는 것은 자신에게 도래한 이 기회를 정확히 저울질해서 판단하라는 뜻이고, 칼을 들고 있는 것은 칼같이 결단을 내리라는 뜻이다. 아우구스투스는 자신이 카이사르가 이루지 못한 제국의 기초를 놓기 위해 천천히, 하지만 결단력을 가지고 한걸음씩 앞으로 갔던 것이다.
한자 숙어 중에 Festina lente와 아주 비슷한 말이 있다. '호랑이의 눈으로 보면서 소처럼 걸어간다'라는 호시우행虎視牛行이 바로 그것이다. 인생을 살다 보면 호랑이처럼 카이로스의 번개 같은 결단이 필요한 때가 오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