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부경(天符經) 전래 및 전파 과정
천부경(天符經)은 원래 환국(桓國, B.C7,199-3,897) 환인(桓因) 천제 시절부터 제작되었는데, 나중에 환웅(桓雄) 천황에게 전해졌다. 환웅(桓雄) 천황은 백두산 기슭에 배달국(倍達, BC3,897-2,333)을 개창할 때에 삼부인(三符印) 세 개를 가지고 왔었는데, 그 중의 하나인 용경(龍鏡)에 새겨진 경전이다. 환웅(桓雄)은 나라를 개창한 다음, 신지(神誌) 혁덕(赫德)에게 명하여 녹도문자(鹿圖文字)를 창제하도록 한 후, 천부경(天符經)의 내용을 기록하도록 하였다. 또한, 백두산 동쪽에 큰 비를 세우고 거기에 녹도문자(鹿圖文字)로 천부경(天符經) 내용을 새기게 하였다. 그 후 고조선(古朝鮮, B.C2,333-238)에게로 전해졌고 가림토(加臨土) 문자로 기록되었다.
한편, 배달(倍達, BC3,897-2,333)의 녹도(鹿圖) 문자(文字) 및 고조선(古朝鮮, B.C2,333-238)의 가림토(加臨土) 문자는 오늘날 한글의 뿌리이며 근간되었는데, 세종대왕은 성삼문(成三問)을 만주(滿洲) 방면으로 13번이나 보내어 고조선(古朝鮮) 가림토(加臨土) 문자의 기본을 가져오게 하였다. 결국, 세종 대왕의 한글 창제 작업 역시 만주(滿洲) 방면과 백두산 일대의 상고(上古) 기록을 모방하여 이뤄진 셈이다.
상고(上古) 기록으로 전해진 천부경(天符經)은 환국(桓國). 배달국(倍達). 고조선(古朝鮮)을 거쳐 통일 시라 시대까지 전해졌다. 통일 신라 시대의 세계적 석학인 최치원(崔致遠)은 백두산(白頭山)을 찾았다가 이 비석에 새겨진 천부경(天符經)을 발견하고 그 글을 다시 평안북도 묘향산(妙香山) 석벽에 한자(漢字)로 번역해서 옮겨 놓았다. 그 후, 일제(日帝) 시대에 단(檀)학회 제2대 회장을 역임한 계연수(桂延壽) 선생이 1916년 9월 9일에 묘향산으로 약초를 캐러 갔다가 석벽에서 천부경을 우연히 발견하고 탁본해서 1917년에 단군(檀君) 교당으로 원문을 보내 세상에 다시 알려지게 되었다.
■ 3대 건국 이념 천부경(天符經)
우리나라 태고(太古) 시대의 3대 건국 이념은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하라는 홍익인간(弘益人間), 세상을 밝게 다스리라는 광명이세(光明理世), 이치로써 교화하여 세상을 구제하라는 재세이화(在世理化) 등이다. 그리고, 이들 3대 건국 이념은 모두 천부경(天符經)에서 비롯되었다.
신시(神市) 개천경(開天經) 기록에 의하면, ‘환국(桓國, B.C7,199-3,897)의 말엽에 환웅(桓雄)이 있었다. 그는 홍익인간(弘益人間), 재세이화(在世理化), 광명이세(光明理世)의 뜻을 간직하고 있었다. 환웅(桓雄)은 동방 땅 백두산(白頭山)에 문명 개척단 3,000명과 함께 배달국(倍達國, B.C3,897-2,333)을 건설(建設)하였다.’ 라고 한다.
그러므로, 홍익인간. 재세이화. 광명이세의 사상은 단군(檀君) 조선(古朝鮮)(B.C2,333-238)의 건국 이념이 아니라, 배달국(倍達, BC3,897-2,333)의 건국 이념인 것이다. 일제(日帝)의 식민지 사관에 의해 실제의 우리 역사 내용이 크게 왜곡되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 천부경(天符經) 내용과 해설
일시무시일(一始無始一)이니, 석삼극(析三極) 무진본(無盡本)이고, 천일일(天一一) 지일이(地一二) 인일삼(人一三)이라. 일적십거(一積十鉅) 무궤화삼(無櫃化三)이니라. 천이삼(天二三) 지이삼(地二三) 인이삼(人二三)이니, 대삼합육(大三合六) 생칠팔구(生七八九)하고, 운삼사성(運三四成) 환오칠(環五七)하니, 일묘행(一妙衍) 만왕만래(萬往萬來)라. 용변(用變) 부동본(不動本)이요. 본심(本心) 본태양(本太陽)이니, 앙명인(昻明人) 중천지일(中天地一)할지니, 일종무종일(一終無終一)이니라.
일시무시일(一始無始一) : 일(一)은 시작되지 않고 시작된 일(一)이다. 즉 하늘은 시작됨이 없이 시작된 하늘이다.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이다. 천부경(天符經)에서 사용된 일(一)이란 수는 하늘이고, 이(二)는 땅이며, 삼(三)은 인간을 지칭하는 것이다.
석삼극(析三極) 무진본(無盡本) : 삼극(三極)을 나누어도 그 근본(本)은 다함(盡)이 없다. 하늘. 땅. 사람은 나뉘어도 궁극적인 근본은 다함이 없다. 마르지 않는다. 여기서 삼극(三極)은 천지인(天地人)의 삼신(三神)을 뜻한다. 천부경에서 삼신(三神) 사상이 나왔고, 하늘을 양(陽), 땅을 음(陰), 사람을 중(中)으로 보는 음양(陰陽) 사상이 나왔다. 음양(음양)이 비롯되는 근본(本)을 태극(太極)이라 부른다. 우주 본래의 자리, 그대로의 본래 자리가 바로 태극(太極)이다.
천일일(天一一) 지일이(地一二) 인일삼(人一三)
천이삼(天二三) 지이삼(地二三) 인이삼(人二三) : 이 두 문장은 함께 붙여서 해석해야 한다. 천(天)은 일(一)을 두개 가지고 있고, 지(地)는 이(二)를 두개 가지고 있고, 인(人)은 삼을 두개 가지고 있다. 말하자면, 천지인(天地人)은 자신의 고유수 외에 나머지 둘의 고유수를 가지고 있다. 즉 하늘(天)은 이(二). 삼(三)을 가지고 있고, 땅(地)은 일(一). 삼(三)을 가지고 있고, 사람(人)은 일(一). 이(二)를 가지고 있다. 하늘. 땅. 사람은 각각 자신의 고유한 성질을 나타내고 있지만, 각각은 나머지의 성질을 부분적으로 다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즉 하늘은 하늘이면서 땅이고 사람이요. 땅은 땅이면서 하늘이고 사람이며, 사람은 사람이면서 하늘이요 땅이라는 것이다.
일적십거(一積十鉅) 무궤화삼(無櫃化三) : 일(一)이 쌓여서 십(十) 무극(無極)이 되는데, 상자가 없으므로 삼(三)으로 변한다. 하늘의 정기가 쌓여서 십(十) 무극(無極)으로 충만해지는데, 그것을 담을 상자(櫃)가 없으므로 사람으로 변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동양 사상의 근본이다. 하늘의 모습과 이치가 인간으로 변했다는 것이다. 인간은 바로 소우주(小宇宙)인 것이다. 불교(佛敎)에서 말하는 중생이 곧 부처하는 사상과 유교(儒敎)의 인본주의(人本主義)가 바로 천부경(天符經)에서 나왔다. 동학(東學)에서 말하는 ‘사람 섬기기를 하늘과 같이하라!’는 인내천(人乃天) 사상이 바로 천부경의 가르침에서 나온 것이다. 사람이 곧 하늘이다. 창조주와 피조물이 나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곧 하늘이요 부처인 것이다. 우주의 형상이 생명의 형상으로 나타난 것이 바로 인간(人間)이다. 하늘의 기(氣)가 쌓이고 충만한 과정을 거쳐 인간 생명이 된다는 이 말씀은 우주 생명이 드러나는 이치를 극명하게 표현한 것이다. 인간이란 하늘을 담아 놓은 그릇이며 상자이다. 생명 탄생의 원리를 어떤 과학자나 철학자들도 이 이상의 말로 표현할 수는 없을 것이다. 모든 사람이 다 함께 하늘인 것이다. 서양(西洋)이 신본주의(神本主義)라면, 동양(東洋)은 인본주의(人本主義)이다. 서양(西洋)은 신(神)과 인간이 종속 관계이지만, 동양(東洋)은 일체 관계이며 수평 관계이다. 사람(人)이 곧 하늘(天)인데, 어찌 사람 밖에서 신을 찾겠는가? 마음 밖에 부처가 또 있겠는가? 인내천(人乃天)이다. 사람이 곧 하늘이다.
대삼합육(大三合六) 생칠팔구(生七八九) : 큰 삼(三) 즉 삼극(三極)를 더하면 육(六)이 된다. 1+2+3을 합하면, 바로 6이 된다. 다시 6의 수에 1.2.3을 각각 더하면, 7.8.9가 된다. 다시 칠.팔.구를 더하면, 24(7+8+9=24)가 된다. 우주의 절기(節期)가 24개이다. 1년 운행이 24로 나누어지고, 24절기(節期)라고 한다. 하루의 시간 역시 24시간이다. 삼극(三極)이 존재하면서 우주의 운행이 24절기(節期)로 분화 한 것이다.
운삼사성(運三四成) 환오칠(環五七) : 삼(三)이 운행하여 사(四)를 이루고, 다시 순환(環)하여 오(五)와 칠(七)을 이룬다. 삼(三)이 움직인다는 것은 삼극(三極)이 운행한다는 것이고 삼극(三極)의 움직임이 만들어내는 것이 4가지 기운(氣)이다. 다시 4가지 기운(氣)이 순환(環)하여 오(五)와 칠(七)로 나타나는데, 오(五)는 오행(五行)이고, 칠(七)은 칠정(七情)이다. 음양오행(陰陽五行) 체계가 그렇게 생겨나고, 사계절(四季節) 변화. 인간의 사지(四肢). 오대양(五大洋) 육대주(六大洲) 등이 그렇게 생겨나는 것이다.
일묘행(一妙衍) 만왕만래(萬往萬來) : 하늘의 움직임은 묘(妙)하여서 삼라만상(森羅萬象)이 오고 가게 한다. 하늘의 마음과 형체가 하나로 묘(妙)하게 피어나 우주 만물(萬物)이 형성된다. 하지만, 그 쓰임은 무수히 변하나 근본은 다함이 없다.
용변(用變) 부동본(不動本) : 세상 만물이 그 쓰임과 형태가 변(用變)하여도 그 근본(本) 자리는 바뀌지 않는다. 마음의 근본과 우주 만물의 근본이 하나로 통할 때 일체가 밝아진다. 이렇게 마음으로 환하게 밝혀진 사람에게는 하늘(天)과 땅(地)과 인간(人)이 하나가 되는 경지에 들어가게 된다.
본심(本心) 본태양(本太陽) : 사람의 근본 마음이 본래 큰 빛(太陽)과 같이 밝다. 본래의 우리 마음은 광명(光明) 그 자체이다. 환단고기(桓檀古記)의 태백일사(太白逸史)에서는 이를 ‘개심광명(開心光明)‘이라고 했다. 마음의 광명을 연다는 것이다. 사랑과 감사로 마음을 밝게 하면 광명(光明)과 일체가 된다. 반면, 탐욕과 욕정으로 마음이 사로 잡히면, 본래의 진면목(眞面目)을 잃게 되고 마음이 번잡해 지며 어둠 속을 헤매게 된다.
앙명인(昻明人) 중천지일(中天地一) : 사람(人)을 밝게(明) 우러러 비추어라. 천지(天地) 중에 으뜸이니라.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하라는 홍익인간(弘益人間) 사상과 세상을 밝게 다스리라는 광명이세(光明理世) 사상과 같은 것이다. 하늘의 지극한 신성(神性)을 천일(天一)이라 하고, 땅의 지극한 신성(神性)을 지일(地一)이라 하며, 인간의 지극한 신성(神性)을 태일(太一)이라 한다. 여기서, 우주의 뜻을 실현하는 가장 존귀한 존재가 바로 인간이기 때문에 인일(人一)이라 하지 않고 태일(太一)이라고 한다. 그래서, 인간(人間)이 천지(天地)의 이상을 이루는 가장 지극한 인간의 신성(神性) 경지가 바로 태일(太一)이다. 태일(太一)을 영적인 경계로 말하면 태을(太乙)의 경지이다. 바로 도의 뿌리인 태을천(太乙天)의 경지이다. 하늘과 땅을 형상하여 사람이 생겨났나니, 만물 가운데 오직 사람이 가장 존귀(尊貴)하다. 천지가 사람을 낳아 사람을 쓰나니, 천지에서 사람을 쓰는 이 때에 참예하지 못하면 어찌 그것을 인생(人生)이라 할 수 있겠는가!
일종무종일(一終無終一) : 일(一)은 끝남이 없이 끝나는 일(一)이다. 즉 하늘은 끝남이 없이 끝나는 하늘이다.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