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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갑골 문자, 상나라, 은나라, 은허

Jobs 9 2024. 1. 17.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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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문자, 한자와 갑골 문자의 발견, 상(은) 

전설상의 왕조에 지나지 않았던 상나라, 1899년 갑골 문자가 발견되어 존재를 드러내다.
갑골문은 아주 먼 옛날 중국 은나라 때 쓰던 글자였다. 은나라는 중국 한나라 때의 역사가 사마천이 쓴<사기>라는 책에 나온다. 그렇지만 갑골문이 발견되기 전까지는 은나라가 실제 있었던 나라라고 누구도 자신 있게 말하지 못했다. 은나라 유물이 발견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갑골에 은나라 사람들이 농사짓고 자식 낳고 전쟁하며 살았던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었던 것이다. 책에 이름만 나오던 고대 왕국이 실제로 있었다는 것이 입증된 셈이다. 

상나라시대&nbsp;수도(은허)



은허란 상나라의 마지막 수도였던 은의 유적이다. 1928년부터 행해진 조사에서는 크고 작은 분묘·궁전·종묘지·움집터·청동기·토기·옥석기 등의 유물이 발굴되었고, 이를 통해 상나라의 정치·사상·생활·종교·교역 상황 등을 가늠할 수 있게 되었다. 

은허에서 발견된 지배층의 무덤에서는 수준높은 청동 제기와 청동 무기, 예술적 가치가 높은 부장품들이 많이 출토되었다. 무덤 안은 눈이 부실 정도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마치 지하 궁전을 연상케 할 정도란다. 또 적게는 수십 명에서 많게는 수백 명에 이르는 사람이 제물로 바쳐진 제사와 순장의 유적도 발견되었다. 이를 통해 상나라 말기에 수많은 사람을 희생 제물로 바치는 제사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은허&nbsp;무덤에서&nbsp;발견된&nbsp;마차와&nbsp;마구
상의 청동솥



고대 중국에서는 음식을 익히는 데 사용하는 청동솥을 정(鼎)이라 하였다. 상나라와 이후의 주나라 때에는 청동솥이 국가의 중요한 제기로서 존중되었으며, 더불어 왕권을 상징하였다.

은허의 무덤에서 발견된 마차와 마구 상은 제정일치의 신권 정치를 실시하였다. 발달한 마차와 마구들을 사용한 것으로 보아, 이들 문명의 주인공들은 우수한 무력과 기동력을 바탕으로 인근 지역을 정복했던 것으로 보인다.


한자의 기원, 갑골문

  은허에서는 1만 7천여 개의 갑골문이 발견되었다. ‘갑골문(갑골문)’이란, 거북의 배딱지나 동물의 뼈에 새긴 글자를 말한다. 상나라에서는 날씨, 전쟁의 승패, 사냥의 성공 여부 등 중요한 일을 앞두고 반드시 점을 쳐서 하늘의 뜻을 살핀 후에 정치를 했다. 이들은 갑골, 즉 거북의 배딱지나 동물의 뼈를 태워서 그 갈라진 모양을 보고 점을 쳤는데, 매번 점을 칠 때마다 날짜와 길흉 등의 결과를 갑골에 새겨 두었다. 만약 갑골에 글자를 쓰고 난 다음 그것을 태웠다면, 갑골과 함께 글자가 갈라졌을거다. 그러나 갑골문의 글자가 그대로인 것으로 보아, 점을 친 다음 그 위에 결과를 기록했음을 알 수 있다.

  갑골문 문장의 길이는 보통 40~50자, 긴 것은 100자로 된 것도 있다. 이전의 토기에서 보이던 기호나 부호 같은 것과 구별되기 때문에 갑골 문자를 한자의 기원으로 보고 있다. 갑골문에 기록된 글자의 수는 약5천여 자로, 그중에서 지금까지 해석된 것은 약 천4백여 자이지만 상나라의 역사를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

갑골문




  갑골문을 통해 또 하나 알 수 있는 사실은 상나라에서 정전제가 실시되었다는 것이다. 정전제(井田制)란, 땅을 우물 정(井)자 모양으로 9등분하여 8개의 농가가 각각 한 구역씩 경작하고, 중앙의 한 구역은 8개 농가가 공동 경작하여 그 수확물을 세금으로 납부하게 하는 제도이다. 정전제는 하나라·상나라·주나라 삼대에 걸쳐 실시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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