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 Humanities/철학, 사상 Philosophy, Ideology

주체사상파(主體思想派), 주사파, 1980~90년대, NL, 강철서신, 품성론, 자주적 학생회론, 종북주의, 뉴라이트, PD

Jobs 9 2025. 5. 14.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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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사상파(主體思想派), 주사파

 

1980~90년대에 대학가에서 북한의 통치이념인 주체사상을 추종하던 NL세력을 일컫는 말이다. 주사파라고 줄여 부르는 경우가 많다.

 

정부의 강력한 반공주의 정책으로 좌익 사상의 씨가 말라 있던 시절인 1986년 김영환이 쓴 <강철서신>을 시초로 주체사상이 남한의 대학가에서 암암리에 전파되었고 당시 좌파 진영에 팽배하던 좌익 민족주의와 뒤섞여서 운동권에 퍼진 것이 주사파의 기원이다. 당시 주류였던 PD세력을 정파투쟁을 통해 몰아내고 빠른 시간에 운동권을 장악하였다. 이들은 운동가의 품성을 강조한 '품성론'과 학문, 생활, 투쟁의 공동체로서의 '자주적 학생회론' 등을 도입해 당시 비판 의식과 논쟁이 치열하던 학생운동권을 장악하였다. 다만 주체사상의 내용 중 '수령론' 같은 경우 NL계 학생운동 내부에서도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대학에서 졸업한 주체사상파들은 학생운동의 쇠퇴에도 불구하고 기성정치권에 성공적으로 안착하여 어느 정당이든 분포해 있다. 주사파에게 밀려난 PD세력은 주사파를 종북주의자로 규정하고 비판하는 경향이 있다.

 

 

역사

 

이들은 1980~90년대 PD와 함께 NL이 학생운동권의 양대산맥을 형성할 때 NL의 핵심지도부를 장악했으며 학생회장 선거를 통해 학생회를 장악하면 학생회의 이름으로 활동하고 학생회장 선거에서 PD나 비운동권파에게 패했을 경우에는 자기들 멋대로 조국통일위원회라는 조직을 만들어서 학생회와는 별개로 활동하면서 학생회비 집행의 지분을 요구하곤 했다. 단파라디오로 '구국의 소리'를 듣는 방송팀을 두었고 품성론에 따라 총화시간마다 연애담까지 전부 털어놔야 했으며 수령론을 도입해 전대협-한총련 의장과 그 밑에 있는 지역별 조직 의장들을 옹립하여 지도자 원리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조직체계를 갖추었다.

 

하지만 1989년부터 동유럽 혁명으로 소련과 동구권의 공산주의 정권들이 서서히 붕괴되면서 진보 진영이 개량주의로 나아가기 시작했고 199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민주화된 남한과 달리 북한의 실체가 까발려지고 민주화 이후 학생 운동도 퇴조하면서 이들은 서서히 잊혀갔다. 1990년 안기부가 발표한 '자주민주통일그룹(자민통) 사건'을 비롯해 1994년 서강대학교 전 총장 박홍 루카 신부의 주사파 발언(1994년 주사파 파동) 때문에 일시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적이 있다. 1994년 주사파 파동 이후 일반 대중의 인식은 'NL=주사파'로 고착화되었다.

 

1996년 연세대 사태, 1997년 한총련 5기 출범식 사태, 1999년 민주민족혁명당 사건 등으로 세력이 깎여나가고 사회도 개방되면서 주사파로 남아있는 인물은 소수이며 이제는 이들마저 대부분 중장년층으로 적극적 사회참여가 적다. 즉, '주체사상을 추종하고 이를 전파하는' 실질적인 의미의 주사파는 극소수로 사실상 지금은 사회적 영향력을 상실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에 따라 주사파라는 단어는 그 외연이 넓어져 현재에 이르러선 꼭 주체사상을 말하고 다니지 않더라도 종북적이거나 종북적인 성향이라고 낙인찍고 싶은 사람을 부르는 말로 바뀌었다고 볼 수 있다.

 

 

이후

 

한편, 1980년대 학생운동 시절 주체사상을 학습하고 골수 주사파로 활동했던 이들은 감옥에 다녀오고 학교를 졸업하면서 자연스레 학생운동을 정리하고 여러 곳으로 흩어졌는데, 일부는 보수로 전향했고, 일부는 명확히 전향하지 않으면서 부분적인 사상만 간직했고, 일부는 주체사상을 그대로 고수하면서 여전히 주사파 조직의 일원으로 공개적인 통일운동, 노동운동에 참여하였다. 그들 중 일부가 만든 지하당 조직이 북한과 연계하다 적발된 게 바로 남한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사건, 민주민족혁명당 사건 등이다.

 

2001년 주사파를 비롯한 NL은 군자산의 약속 이후 운동 방향을 바꾸어 거리투쟁하는 독자적인 조직 같은 것을 만드는 대신 합법 정치활동에 침투하는 방식의 노선을 채택하였다. 이때 이후로 NL파가 민주노동당에 대거 입당하였고, 특유의 조직력을 바탕으로 PD파를 밀어내고 끝내 당권을 장악했다. 이에 따라 21세기 들어 주사파 상당수는 진보계 정당에도 진출하였다.

 

다만, 'NL=주사파'라는 통념과 달리 NL 주류파는 주체사상을 사실상 포기하고 친북 반미 노선만 남긴 "자주 혁신" 계통이었으며, 주체사상 고수를 내세운 "자주 단결" 계통은 당 내에서 소수를 차지했다. 또한 단결 계통은 혁신 계통만큼 진보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는 않아서 일부는 민주당계 정당으로 합류하기도 했다.

 

또한 이들은 공개적인 통일운동 조직인 범민련과 재야연합체였던 전국연합을 장악해서 자신들의 근거지로 활용했으며, 노동운동에서도 민주노총 내의 국민파 계열 중의 일부로 '통일노동자회' 같은 간판을 달고 활동하였다. 특히 한국 노동운동의 중심지인 울산에서 활동하던 울산연합과 인천 지역 노동운동을 조직하면서 성장한 인천연합은 이런 노동운동에 침투한 주사파들의 근거지가 되었다.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 이후 주체사상파도 뿔뿔이 흩어져 현재는 민중민주당, 국민주권당, 자주연합 준비위원회 등으로 흩어졌다. 특히 국민주권당의 경우 강경한 친이재명, 친조국, 친민주당 성향을 내비치며 진보당 주류와 갈등을 빚기도 한다. 진보당의 경우 여전히 개개별 당원이 주체사상을 추종하는 경우는 있으나 애초에 진보당은 현재 주체사상이든 마르크스주의든 이념 학습을 하지 않고 있으며 실천과 사회참여를 더 강조하는 편이다.

 

 

뉴라이트

 

한편 이들 중 일부는 1990년대 중후반 이후 일명 주사파 대부라는 김영환을 시작으로 극적인 변화를 했는데 공개적으로 전향을 선언하고 '북한 독재 타도'의 기치를 내걸고 북한 민주화 운동을 시작한 것이다. 이들 중 가장 큰 무리를 이룬 단체는 스스로를 뉴라이트라고 칭했으며, 2000년대 들어 주사파 이탈자들이 쏟아지면서 그들을 흡수해서 계속 세를 불려나갔다. 일부는 한나라당을 통해 보수 정계에도 진출하면서 이명박근혜 정권의 콘크리트 지지층이 되었다.

 

이들이 초기부터 다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2000년대 중반부터 식민지 근대화론 등 영향을 받으며 상당히 극우화되기 시작했다. 또 이름만 뉴라이트지 실상은 냉전 논리에 기초한 올드라이트의 강경한 버전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자주 제기된다. 과거의 극단적인 반미 친북 노선에서 현재는 극단적인 친미 반북 노선 혹은 북쪽 독재자 만세에서 남쪽 독재자 만세로 편만 바꾼 것 아니냐는 것이다. 때문에 지금은 뉴라이트에도 실망하고 떠난 구 주사파, 구 뉴라이트 출신들이 제법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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