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스 국어/현대문학

유리창, 정지용 [현대시]

Jobs 9 2020. 6. 17.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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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창

 

유리에 차고 슬픈 것이 어른거린다.
열없이 붙어 서서 입김을 흐리우니
길들은 양 언 날개를 파다거린다.
지우고 보고 지우고 보아도
새까만 밤이 밀려나가고 밀려와 부딪히고,
물 먹은 별이, 반짝, 보석처럼 박힌다.
밤에 홀로 유리를 닦는 것은
외로운 황홀한 심사이어니
고운 폐혈관이 찢어진 채로
아아, 너는 산새처럼 날아갔구나!

 


 

정지용 鄭芝溶 [1902.5.15~1950.9.25] 충북 옥천(沃川) 출생. 서울 휘문고등보통학교를 거쳐, 일본 도시샤[同志社]대학 영문과를 졸업했다. 귀국 후 모교의 교사, 8·15광복 후 이화여자전문 교수와 경향신문사(京鄕新聞社) 편집국장을 지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순수시인이었으나, 광복 후 좌익 문학단체에 관계하다가 전향, 보도연맹(輔導聯盟)에 가입하였으며, 6·25전쟁 때 북한공산군에 끌려간 후 사망했다. 

표현   ①선명한 이미지의 사용
         ②감각적인 시어의 선택
성격  주지적, 회화적, 감각적, 묘사적            
어조  감정이 절제된 어조  
주제  자식을 잃은 아버지의 비애
출전  <조선지광(朝鮮之光)>(1930)                              

 

표현

기(1-3행)

유리창에 서린 입김을 통해 만나는 죽은 아이의 영상

창밖의 세계와 창안의 세계의 대립 구조

언 날개 - 입김 자국을 가날픈 새에 비유한 것

승(4-6행)

창 밖의 별을 통해 만나는 죽은 아이의 영상

지우고 보는 행위를 거듭함 - 죽은 자식에 대한 미련

물 먹은 별 - 아버지의 눈에 어린 눈물의 반짝임

별 - 죽은 아이의 영혼을 비유

전(7-8행)

외롭고 황홀한 심사

슬프고 외로운 감정과 차갑고 황홀한 감정의 대비

결(9-10행)

죽은 아이의 사라진 영상을 보며 느끼는 간절한 그리움

아아 : 감정의 집약적 제시

산새 : 죽은 아이의 영혼 비유

 

어휘와 구절

언 날개를 파다거린다. : 유리창에 입김이 서렸다가 사라지는 모습을 감각적으로 형상화한 구절이다. 시적 자아는 유리창에 바짝 붙어 서서 밖을 내다보고 있다. 따라서, 숨을 들이쉬고 내쉴 때마다 입김이 차가운 유리창에 부딪쳐 뿌옇게 흐려졌다가 사라지는데, 이 모습을 새가 날개짓하는 모습에 비유하고 있다.

지우고 보고 지우고 보아도 : 시적 자아는 유리창의 양면적 성격 -외부 세계와 시적 자아를 이어 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차단하고 있는-을 잘 인식하고 있다. 그런데 시적 자아가 유리창에 다가서면 설수록 유리창은 입김 때문에 흐려져서 시적 자아가 창 밖을 볼 수 없게 만든다. 따라서, 입김 때문에 뿌옇게 흐려진 유리를 닦는 행위는 '별'로 표상된 아들의 영혼을 좀더 잘 보기 위해 자신의 슬픈(입김)을 절제하고 극복하려는 안타까운 노력을 암시한다.

외로운 황홀한 심사이어니, :
 외롭다는 것은 자식을 그리워하는 어버이의 심정을 가리키는 것이고, 황홀하다는 것은 자식의 영혼과의 순간적 교감에서 빚어지는 정신적 기쁨을 암시한다.


고운 폐혈관이 찢어진 채로/아아, 늬는 산새처럼 날아갔구나! :
 자식이 병으로 시달리다가 죽었다는 사실과 시적 자아가 극도의 비애에 빠져 있음을 암시하고 있는 구절이다. 자식의 죽음을 산새가 잠시 나무에 앉았다가 날아간 것에 비유하여 슬픔의 감정을 지적으로 통제하고 있다.

                    

이해와 감상

'유리창'은 자식을 잃은 어버이의 심정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그러나 이 시에서는 자식을 잃은 어버이의 슬픔이 직설적으로 표출되는 대신 극도로 절제된 어조로 표현된다.

이 시에서 '유리창'은 시적 자아를 외부 세계와 연결해 주는 통로인 동시에 시적 자아의 외부 세계를 차단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시적 자아는 유리창을 통해 '별'(이 시에서 '별'은 잃어버린 아들의 영혼을 상징한다.)을 바라보지만 동시에 유리창 때문에 그 별과 차단되어 있다. 따라서, 시적 자아가 이 '유리창'에 붙어 서서 밖을 내다보다가 '밤에 홀로 유리를 닦는 것'은 잃어버린 아들에게 좀더 가까이 가고 싶어하는 소망의 표현이면서 동시에 그 현실을 수용하는 태도의 표현이기도 하다. 이처럼 정지용은 감정을 절제하고 단련하여 선명한 이미지로 표현하는 데서 두드러진 재능을 보였거니와, 이와 같은 정지용 시의 특징은 우리 현대시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이 시는 정지용의 초기 시의 특징을 잘 보여 주는 작품이다. 밤에 유리창 앞에서 잃어버린 자식을 그리워하는데, ‘밀려나가고 밀려와 부딪히고’ 하는 무한한 어둠은 작자의 허전하고 괴로운 마음에 대결적으로 작용한다. 기운 없이 불어 낸 입김 자국이 쉽게 사라지는 모습에서 가냘픈 새의 모습을 연상한다. ‘산새처럼 날아갔구나!’라는 절제된 비탄의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새’는 바로 허망하게 작자의 곁을 떠나버린 아이의 비유적 형상이다.

 잃어버린 아이에 대한 작자의 지극한 슬픔은 어둠 속에서 보석처럼 빛나는 ‘물 먹은 별’로 집약되어 나타난다. 이 ‘별’의 이미지는 복합적인 것으로 첫째, 아버지의 곁을 떠나 죽음(어둠)의 세계로 가 버린 아들의 이미지를, 둘째, 별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눈에 눈물이 어려 있음을 말해 준다.

 이 시는 시인이 어린 자식을 폐렴으로 잃고 쓴 시라고 한다. 이 시에 나오는 ‘차고 슬픈 것’, ‘언 날개를 파닥거리는 것’, ‘물 먹은 별’, ‘산새’ 등은 모두 죽은 아이의 표상이다. 시인은 유리창에 붙어 서서 입김을 불었다 지웠다 하면서 죽은 아이의 생각에 잠겨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겉으로 슬픔을 노출시키지 않고 담담하게 시상을 전개해 간 것이 이 시의 장점이다. 마지막 시행에서는 감정의 고삐를 풀고 슬픔의 탄식을 터뜨린다. 
                     

참고 자료

'유리창'의 이미지 : 이 시의 중심 이미지이다. '유리창'은 투명하기 때문에 창 밖을 내다볼 수 있게 해 주지만, 창 밖을 차단하기도 한다. 시적 자아는 바로 이 유리창 때문에 하늘나라로 간 아들의 영혼과 조우(遭遇)할 수 있지만, 반대로 유리창 때문에 아들의 영혼에게 다가설 수 없다. 
시적 자아는 단지 유리창에 붙어 서서 밤 하늘에 빛나는 별(아들의 영혼)을 하염없이 바라볼 뿐이다. 그러나 유리창에 붙어 서면 입김(이 입김은 슬픔을 암시한다.) 때문에 유리가 흐려져서 별을 볼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시적 자아는 계속해서 유리창에 어리는 입김을 지우고 또 지우면서 창 밖을 내다보면서 아들과의 영적 교감을 나누려고 하는 것이다.

 '별'과 '새'의 이미지 : '별'은 죽은 자식의 영혼을 암시하는 이미지이다. 시적 자아는 유리창을 통해 이 '별'과 영적인 교감을 나눈다. 이 때 '별'은 시적 자아의 눈물 머금은 눈에 비치므로 '물먹은 별'로 형상화되었다. '새'도 마찬가지로 아들의 영혼을 암시한다. 시적 자아는 가볍게 날아간 산새의 이미지를 빌어 자식의 죽음을 미적으로 승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정지용의 시 세계와 문학사적 의의 :  정지용은 휘문 고보 시절 박팔양 등과 함께 습작지 <요람>을 발간하는 등 일찍부터 시에 깊은 관심을 기울였다. 이후 1920년대 중반부터 모더니즘 풍의 시를 써서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특히 이 무렵에 발표한 작품으로는 '향수'와 식민지 청년의 비애를 그린 '카페 프랑스'같은 작품이 주목된다. 그러나 정작 정지용의 시가 문학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되는 것은 1930년대 이후이다.

1930년대 첫머리부터 그는 <시문학>의 동인으로 참여, 김영랑과 함께 순수 서정시의 개척에 힘을 썼다. 그러나 김영랑이 언어의 조탁과 시의 음악성을 고조시키는 일에 힘을 기울인 데 비해, 정지용은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새로운 표현의 방법을 개척하는 데 힘을 쏟았다. 그의 장기로 여겨지는 선명한 시각적 이미지의 구축, 간결하고 정확한 언어 구사가 바로 그것이거니와, 이를 통해 그는 한국 현대시의 초석을 놓은 시인으로 평가된다.

   이와 함께 그는 사상적인 면에서도 다양한 변화를 보여 주는데, 한때는 카톨릭 신앙에 기초한 신앙시를 쓰기도 했고, 1930년대 말에는 동양적 은일(隱逸)사상에 기대어 '장수산', '백록담' 같은 시를 발표하여 주목을 받기도 하였다. 이처럼 다양한 시적 변모를 보여 주면서도 그의 시는 줄곧 선명한 시각적 이미지, 1930년대 말부터 <문장>지의 심사 위원으로 있으면서 정두진, 박목월, 조지훈, 김한직, 박남수 등 많은 시인들을 문단에 소개하였다. 해방 이후에는 조선 문학가 동맹에 가입하여 활동하였으며, 6 25를 전후하여 납북되어 현재 생사를 모른다. 한때 월북 시인으로 분류되어 문학사에서 다루어지지 않았으나 1988년에 해금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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