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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리주의의 문제점, 비용‧편익 분석, 필립모리스, 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샌델

Jobs9 2022. 2. 20.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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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강. 공리주의의 문제점(Putting a Price Tag on Life/How to Measure Pleasure)

 

존 스튜어트 밀

 

두 번째 시간인 “공리주의의 문제점”는 제러미 벤담의 공리주의 이론 중에서 가장 널리 이용되는 ‘비용‧편익 분석’ 이야기로 시작된다. 기업과 정부가 늘 이용하는 것이다. 담배회사 필립모리스는 체코인들이 담배를 피우는 게 정부에 이익이 된다는 비용‧편익 분석을 내놓았다. 포드는 비용‧편익 분석을 근거로 핀토 자동차에 안전장치를 달지 않았고, 그 결과 사람들이 죽고 부상을 당했다. 이처럼 사람의 목숨에 값을 매기는 건 가능하고 정당한 일일까? 1930년대, 한 심리학자는 불쾌한 경험들의 목록을 만들고, 얼마를 주면 그 경험들을 하겠냐고 청년들에게 물었다. 그의 연구는 선과 가치도 하나의 단일통화로 환산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일까?

 

공리주의에 대한 또 다른 반박은 개인 혹은 소수집단의 권리를 존중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다수 로마인들의 행복을 위해 기독교도들을 사자 우리에 던져 넣은 것은 정당화될 수 있을까? 후대의 공리주의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은 이런 반박들에 대해 답을 제시하고 공리주의를 보다 인간적인 철학으로 만들고자 했다. 밀은 먼저 고급 쾌락과 저급 쾌락을 구분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샌델과 학생들은 셰익스피어의 연극과 만화영화 ‘심슨가족’을 이용해 밀의 주장을 실험해본다. 밀은 개인의 권리에 대한 반박에도 대답을 내놓는다. 그는 개인의 권리를 존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며, 그 이유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볼 때 공리를 증진시키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제러미 벤담의 공리주의와 존 스튜어트 밀의 공리주의가 어떻게 다른지, 공리주의를 둘러싼 도덕적 문제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알아보자.

 

<강의 내용>

 

지난 시간에 우리는 ‘더들리와 스티븐스 재판’에 대해 토론을 했습니다. 구명보트에 탄 선원들이 인육을 먹는 사건이었죠. 구명보트 사건의 피고였던 더들리와 스티븐스에 대한 토론을 상기하며 제러미 벤담의 공리주의 철학으로 돌아가 봅시다. 벤담은 1748년 영국에서 태어났습니다. 12세에는 옥스퍼드대학에, 15세에는 법학대학원에 입학했고 19세에 변호사 자격을 취득했지만 법조인으로 일한 적은 없습니다. 대신 일생을 바쳐 법리학과 도덕철학을 연구했죠. 지난 시간, 우리는 벤담의 공리주의를 살펴보기 시작했습니다. 핵심적인 사상은 이렇게 요약할 수 있어요.

 

 

개인적 도덕이든 정치적 도덕이든 도덕성을 결정하는 최고의 원칙은 공공의 복지를 극대화하는 것이다. 공동체의 행복, 고통을 뺀 쾌락, 다시 말해서 공리를 극대화하는 것이다. 벤담이 이 원칙에 이르게 된 것은 다음과 같은 추론 때문이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고통과 행복에 지배됩니다. 그것들은 우리의 통치권자죠. 그래서 도덕 체계는 고통과 행복을 계산해야 합니다. 어떻게 계산하는 게 좋을까요? 극대화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도출된 것이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원칙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극대화해야 할까요? 벤담은 행복을 더 정확히 말해서 공리를 극대화하라고 말합니다. 공리 극대화는 개개인뿐만 아니라 공동체와 입법자에게도 적용됩니다. “공동체란 결국 무엇인가?” 벤담은 묻습니다. ‘공동체는 그것을 구성하는 개인들의 총합이다.’ 그래서 최선의 정책이나 법률을 결정할 때, 즉 무엇이 정당한가를 결정할 때 시민과 입법자는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이 정책이 주는’, ‘모든 이익을 더하고’, ‘이 정책에 드는 모든 비용을 뺀것’, ‘행복에서 고통을 뺀 총합이 가장 큰 것이 올바른 일이다.’ 그것이 공리 극대화의 의미입니다.

 

오늘 강의에서는 여러분이 그 주장에 동의하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알아보고 싶습니다. 공리주의 논리는 ‘비용․편익분석’이란 이름으로도 자주 이용됩니다. 기업이나 정부가 늘 이용하는 것이죠. ‘비용․편익분석’은 금액으로 표시되는 가치를 통해 공리를 나타냅니다. 다양한 방안들의 비용과 편익을 금액으로 표시하는 것이죠. 얼마 전 체코에서는 담배의 소비세를 높이자는 제안이 나왔습니다. 체코에서 큰 수익을 올리고 있는 담배회사 필립모리스는 체코인의 흡연에 대한 비용․편익 분석을 의뢰했죠. 그 비용․편익 분석 결과에 따르면 체코인의 흡연으로 체코 정부는 이익을 얻습니다.

 

■ 필립모리스의 비용․편익 분석 연구

비용 편익
의료비용 상승 담배판매로 인한 조세 수입
조기사망으로 인한 의료비용 절감
연금절감
주거비용 절감

시민이 담배를 피울 경우의 이익 : 1억 4700만 달러
조기 사망으로 인한 예산 절감 : 1인당 1227달러

 

어떻게 이익을 얻을까요? 흡연이 체코 정부의 공공재정에 부정적인 영향도 미치는 건 사실입니다. 흡연 관련 질병에 걸린 사람들 때문에 의료비용이 높아지기 때문이죠. 반면 긍정적인 영향도 있습니다. 그것은 정부의 오른쪽에 적혀 있죠. 긍정적 영향에 해당하는 것 중 가장 큰 부분은 조세 수입입니다. 담배 판매로 늘어나는 조세수입이죠. 하지만 절감되는 의료비용도 있습니다. 사람들이 일찍 죽으면 연금을 오래 지급하지 않아도 되고 노인들에게 지급할 주거비용도 절약된다는 것이죠. 필립모리스의 연구가 밝혀낸 건, 비용과 편익을 모두 더했을 때 체코 정부가 1억 4700만 달러의 재정적 이익을 본다는 것이었습니다. 절약되는 주택과 의료, 연금 등의 비용을 모두 계산하면 흡연으로 인한 조기 사망자가 나올 때마다 정부는 1200달러가 넘는 이익을 보죠. 이런 게 비용․편익 분석입니다.

 

공리주의를 옹호하는 분들은 분석이 잘못됐다고 생각할 지도 모릅니다. 필립모리스는 언론의 조롱거리가 됐고 이것이 냉혹한 분석이었다고 사과했죠. 공리주의자들이 쉽게 간과하는 게 여기서도 빠졌다고 할 분도 있을 겁니다. 폐암으로 죽어가는 사람이 자신과 가족한테 갖는 의미 말입니다. 생명의 가치는 계산에 들어갔나요? 비용․편익 분석 중에는 사람 목숨의 가치를 포함한 것도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유명한 게 ‘포드 핀토’의 경우죠. 거기에 대해 아는 분? 1970년대의 일입니다. 포드 핀토가 어떤 자동차인지 생각나세요? 아는 분이 없나요? 핀토는 아주 인기 좋은 소형차였죠. 하지만 결함이 하나 있었습니다. 자동차 뒤쪽 연료탱크의 결함이었죠. 뒤에서 핀토를 들이받으면 연료탱크가 폭발했습니다. 그래서 몇몇 사람이 죽고 몇 명은 심각한 부상을 당했죠. 부상자들은 포드를 고소했고 재판 과정에서 새로운 사실이 드러납니다. 포드는 예전부터 연료탱크의 결함을 알았고 비용․편익 분석을 실시했습니다. 연료탱크를 보호해 폭발을 막는 특수 장치를 부착하는 게 가치가 있는지 알아보는 분석이었죠. 비용․편익 분석을 했더니 안전을 높여줄 부품을 부착하는 데드는 비용은 핀토 한 대당 11달러로 나왔습니다. 이게 재판에서 공개된 비용․편익 분석 자료입니다. 승용차와 트럭 1250만 대 모두에 11달러짜리 부품을 달면 안정성을 높이는 데드는 총비용은 1억 3700만 달러가 됐습니다. 포드는 안전한 차를 위해 이 돈을 지출했을 때의 이익도 계산했죠. 180명이 사망 혹은 부상할 수 있다고 예상하고 목숨에 달러로 가치를 매겼습니다. 사망의 경우에는 20만 달러, 부상자의 경우에는 6만 7000달러였죠. 그다음에는 안전장치가 없어서 파손될 자동차 2000대의 수리 비용을 더했습니다. 한 대당 700달러였죠. 계산 결과 이익은 4950만 달러로 나왔고 포드는 안전장치를 달지 않았습니다. 물론 포드자동차의 비용․편익 분석에 관한 사실이 법정에서 밝혀지자 경악한 배심원들은 어마어마한 위자료 지급을 결정했죠.

 

● 토론

 

이것이 공리주의식 계산이 옳지 않음을 보여주는 예일까요? 포드는 사람 목숨의 가치를 계산에 포함시켰습니다. 이 불리한 예에서 비용․편익 분석을 옹호해줄 분계십니까? 비용․편익 분석을 변호할 분? 아니면 이 예가 공리주의식 계산법을 완전히 무너뜨린다고 생각하십니까?

 

- 말씀하세요.

- 전 똑같은 실수가 있었다고 봅니다. 앞의 경우와 같은 실수죠. 사람 목숨의 가치를 돈으로 매기면서 이번에도 가족의 고통이나 상실감은 계산에 넣지 않았어요. 가족들은 돈과 함께 사랑하는 사람도 잃었고 그 가치는 20만 달러가 넘습니다.

- 좋습니다. 아직 앉지 마세요. 학생은 이름이 뭐죠?

- 줄리로토입니다.

- 20만 달러가 너무 적다고 했죠? 그럼 사랑하는 이들의 상실감과 박탈당한 생존 기간을 생각한다면 얼마 정도의 액수가 더 적절할까요?

- 값을 매길 수 없다고 생각해요. 사람 목숨을 이런 분석에 적용하는 건 옳지 않아요. 돈으로 계산할 수 없다고 봐요.

- 그러니까 줄리의 얘기는 액수가 너무 적을 뿐만 아니라 목숨에 값을 매기는 것 자체가 잘못됐다는 것입니다. 좋습니다. 다른 의견을 들어 보죠.

 

- 인플레이션도 계산해야죠.

- 인플레이션도 계산해야 한답니다. 좋습니다. 그럼 얼마가 좋을까요. 그 액수는 35년 전의 것입니다.

- 200만 달러요.

- 200만 달러요? 그렇군요. 이름이 뭐죠?

- 보이테크입니다.

- 보이테크는 인플레이션을 고려해서 더 후하게 값을 매겨야 한답니다. 학생은 이런 방식으로 문제를 고려하는 데 불만이 없다는 얘기죠?

- 유감스럽기는 하지만 가끔은 그런 숫자가 필요하니까요. 그 액수가 적절한지는 모르지만 사람 목숨에 값을 매기는 게 가능하다는 데는 동의합니다.

 

- 좋습니다. 보이테크의 생각은 줄리하고 다르군요. 줄리는 비용․편익 분석을 위해 사람 목숨에 값을 매기는 게 불가능하다고 했고 보이테크는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값을 매겨야 한다고 말합니다. 다른 분들의 생각은 어떤가요? 비용․편익 분석을 변호해줄 분 없습니까? 정확하다거나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분? 네 말씀하세요.

 

- 포드를 비롯한 자동차 회사들이 비용․편익 분석을 쓰지 않았다면 결국 망하고 말았을 것 같습니다. 이익을 낼 수 없었을 테니까요. 그럼 수백만 명이 자동차를 타지 못하고 월급을 받아 자식을 먹이지 못했을 거예요. 이런 경우에 비용․편익 분석을 쓰지 않으면 더 큰 이익이 희생된다고 생각해요.

- 좋습니다. 학생 이름은 뭐죠?

- 라울입니다.

- 운전자의 운전 중 휴대전화 사용에 관한 연구결과가 최근에 나왔습니다. 운전 중 휴대전화 사용 금지에 관한 논쟁도 진행 중에 있죠. 사망자의 숫자는 2000명 정도입니다. 매년 휴대전화를 쓰다가 일어난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사람의 숫자죠. 하버드 대학 위험분석 센터가 실시한 비용․편익 분석에서는 운전 중 휴대전화 사용으로 인한 이익과 생명 손실로 인한 비용이 거의 같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사람들이 시간을 잘 쓰는 데 따르는 어마어마한 경제적 이익 덕분이죠.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운전 중에 계약을 맺거나 친구와 얘기를 할 수 있으니까요. 이 연구를 볼 때 사람 목숨에 값을 매기는 건 잘못이 아닐까요?

- 제 생각에는 절대다수의 사람이 휴대전화 사용을 통해 극대화된 공리를 도출하고자 노력한다면 그 희생은 만족을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진짜 공리주의자로군요.

- 그렇습니다.

- 마지막으로 하나 물어보죠.

- 네.

- 보이테크한테도 물어본 질문인데 사람 목숨에 얼마를 매겨야 운전 중 휴대전화 사용 금지 여부를 결정할 수 있을까요?

- 제 멋대로 액수를 정하고 싶지는 않아요. 지금 당장은 그렇다는 얘기죠.

- 조언을 듣고 결정하고 싶군요.

- 네, 조언을 들어보고 싶어요.

- 그냥 대략 말해보세요. 2300명이 죽는데 생명에 달러로 가치를 매겨야지 운전 중 휴대전화 사용을 금지하고 생명을 구할지의 여부를 정할 수 있습니다. 대략 얼마일 것 같습니까? 100만 달러? 200만 달러? 보이테크는 200만 달러라고 했는데 적당할까요?

- 100만 달러 정도요.

- 100만 달러라고요?

-알겠습니다. 수고하셨어요.

 

이것들이 바로 비용․편익 분석에 대한 최근의 논쟁거리들입니다. 모든 것에 값을 매겨서 더하는데 대해 제기된 문제들이죠. 이제 다시 반대의 의견을 들어봅시다. 비용․편익 분석 외의 반대로 좋습니다. 비용․편익 분석은 현재 이용되는 공리주의 논리의 일부에 불과하니까요. 공리주의 전체에 대한 반대도 좋습니다. 그러니까 올바른 행동은 즉 정책이나 법률의 정당한 근거는 공리 극대화라는 생각 말입니다. 법률과 공공선에 대한 공리주의적 접근에 동의하지 않는 분? 공리주의적 접근에 동의하는 분? 동의하는 분이 더 많군요. 그럼 비판하는 의견을 들어보죠.

 

- 말씀하세요.

- 다수가 아니라고 해서 정당하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소수의 바람과 욕구가 다수보다 가치가 떨어진다고 말할 수는 없죠. 저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 옳다는 생각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싶어요. 다수에 속하지 않는 사람들은 중요하지 않다는 건가요? 그건 옳지 않아요. 그럼 소수에게는 발언권이 없으니까요.

- 흥미로운 반대의견이 나왔습니다. 소수집단에 미친 결과가 걱정되는군요.

- 학생은 이름은 뭐죠?

- 애나입니다.

- 소수집단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애나의 우려에 대하 말이 있는 분? 애나한테 뭐라고 말하고 싶나요?

- 소수가 덜 존중을 받는다고 했는데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소수에 속해도 각 개인의 가치는 다수에 속한 사람과 똑같아요. 그냥 속한 사람이 더 많을 뿐이죠. 그리고 필요한 시기가 되면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소수에 속한 사람들한텐 미안하지만 때로는 전체의 더 큰 이익을 생각해야죠.

- 더 큰 이익을 위해서랍니다, 애나! 학생은 이름이 뭐죠?

- 용다입니다.

- 애나, 용다한 테 뭐라고 하겠습니까? 용도는 사람들의 기회를 더해야 하고 소수에 속해도 똑같이 존중을 받는답니다. 예를 들어줄 수 있을까요? 애나가 걱정하는 공리주의에 의해 소수의 이해관계나 관심사가 침해를 받는 경우 말입니다. 예를 들어주세요.

- 우리가 얘기한 조난사고의 예에서 잡아먹힌 소년은 다른 사람과 똑같이 살 권리를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소수에 속하고 살아남을 가능성이 적은 사람으로 지목됐다는 이유만으로 나머지 사람들한테 소년을 잡아먹을 권리가 자동적으로 주어지지는 않죠. 그게 더 많은 사람에게 살 기회를 준다는 이유만으로 말입니다.

- 소수에 속한 사람들도 특정 권리들은 갖고 있을지 모릅니다. 공리를 위해서라고 해도 박탈할 수 없는 권리죠. 그런 얘기죠, 에나? 용다한테는 시험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고대 로마에서는 기독교도와 사자를 재미로 콜로세움에 같이 던져 넣었습니다. 공리주의 논리는 이렇게 진행되겠죠. ‘그래, 사자한테 내던져진 기독교도는 엄청난 고통을 당하겠지’, ‘하지만 로마인들의 집단적인 황홀경은 생각해봐.’

 

- 용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 그 당시에는... 아니, 현대에는... 구경하는 사람들의 행복에 숫자를 매기는 건... 제 생각에 정책 결정자들은 이제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 같아요. ‘거기서 얻은 행복의 양과 비교해 봐도 한 사람의 고통이 너무 크다’고 하겠죠.

- 하지만 광분할 정도로 행복한 로마인도 많았다는 점을 인정해야죠. 사자한테 던져진 극소수 기독교도의 극심한 고통을 능가할 정도였을 겁니다.

 

그러니까 공리주의에 대한 반박은 두 종류가 나왔습니다. 첫째는 공리주의가 개인이나 소수집단의 권리를 충분히 존중하지 않는다는 점이고 둘째는 공리나 기호, 가치를 모아서 계산하는 것과 관계가 있습니다. 모든 가치를 돈으로 바꿔 환산하는 게 가능할까요?

 

■ 공리주의에 대한 반박


1 개인, 소수집단의 권리를 존중하지 않는다.
2. 모든 가치를 돈으로 환전할 수는 없다.
- 돈 같은 하나의 척도를 적용할 수는 없다.
- 고급쾌락과 저급쾌락 사이에 차이는 없나?

 

1930년에 한 심리학자는 두 번째 문제에 대한 답을 제시하고자 했습니다. 그는 공리주의자들의 가정을 증명하려고 했어요. 모든 선과 가치, 인간적 관심사를 단일통화로 환산하는 게 가능하다는 걸 증명하려고 정부 지원을 받는 청년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해죠. 1930년대에 있었던 일입니다. 그 심리학자는 청년들에게 불쾌한 경험들이 적힌 목록을 주고 얼마를 받는다면 그 목록의 경험을 하겠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런 설문조사를 계속했죠.

 

질문은 이랬습니다. 얼마를 받으면 윗 앞니 하나를 뽑겠습니까? 얼마를 받으면 새끼발가락 하나를 자르겠습니까? 얼마를 받으면 15cm 길이의 살아있는 지렁이를 먹겠습니까? 얼마를 받으면 남은 일생을 캔자스의 농장에서 보내겠습니까? 얼마를 받으면 떠돌이 고양이를 맨손으로 목 졸라 죽이겠습니까?

 

여러분 생각엔 제일 많은 돈을 요구한 항목이 무엇이었을 것 같습니까? 캔자스요? 그렇습니다. 캔자스였어요. 청년들은 캔자스로 가려면 30만 달러를 받아야겠다고 했습니다. 다음으로 비싼 항목은 무엇이었을 것 같습니까? 고양이는 아닙니다. 앞니도 아닙니다. 발가락도 아닙니다. 지렁이였어요. 지렁이를 먹는 데는 10만 달러를 받아야겠다고 했죠. 제일 저렴한 항목은 무엇이었을 것 같습니까? 고양이는 아닙니다. 앞니였어요. 대공황에 속한 시기였고 사람들은 4500달러만 주면 이를 뽑겠다고 했죠. 그리고 이 연구를 통해 손다이크는 이런 결론을 내렸습니다.

 

‘모든 바람이나 만족은 일정한 양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계량할 수가 있다.’ ‘개, 고양이, 닭의 생명의 가치에 대한 계산은 색욕과 갈망, 욕구, 만족감으로 구성된다’ ‘인간의 생명도 마찬가지다. 다만 식욕과 욕구가 더 복잡할 뿐이다.’

 

손다이크의 연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벤담의 생각을 지지하는 연구일까요? 모든 선과 가치를 하나의 단일통화로 계량할 수 있다는 생각 말입니다. 아니면 목록에 오른 항목들이 터무니없는 것들이란 이런 점을 보면 정반대의 결론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즉 캔자스에서의 일생이나 지렁이 같은 걸 볼 때 우리가 가치를 부여하고 중시하는 것들은 단일통화로 환산될 수 없다는 결론이죠. 만약 단일통화로의 환산이 불가능하면 공리주의 도덕 이론의 결론은 무엇일까요? 이 질문은 다음 시간에 생각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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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간에 우리는 제러미 벤담의 공리주의 대한 몇 가지 반박을 생각해 봤습니다. 지난 토론에서 우리는 두 가지 반박을 제기했습니다. 공리주의에 대한 첫 번째 반박은 최대 다수를 위한 최대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개개인의 권리를 충분히 존중하지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 오늘은 고문과 테러리즘 얘기를 해봅시다.

 

911 테러 하루 전날, 테러 용의자가 체포됐다고 가정해 보죠. 여러분이 아는 바에 따르면 그 용의자는 임박한 테러에 관한 핵심 정보를 갖고 있고 그 테러는 3000명 이상을 죽일 텐데 용의자한테서 정보를 캐낼 수가 없습니다. 용의자를 고문해서 정보를 얻는 게 정당할까요? ‘정언적 도덕 의무에 따라 개인의 권리를 존중해야 돼’라고 말하겠습니까? 어떻게 보면 우리는 첫 시간의 전차와 장기이식 문제로 돌아왔습니다. 그게 첫 번째 반박입니다. 아시다시피 우리는 비용·편익 분석의 예도 몇 가지 생각해 봤습니다. 많은 사람이 비용·편익 분석에 불편함을 느꼈죠. 사람 목숨을 금전적 가치로 환산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두 번째 반박이 나왔죠. 모든 가치를 하나의 가치척도로 잴 수 있느냐와 관계있는 반박입니다. 다시 말해, 모든 가치의 환산이 가능하나를 묻는 것이죠. 제가 경험한 예를 하나 말씀드리죠. 실제로 있었던 일입니다. 개인적 경험에서 나온 예인데 ‘모든 가치를 공리주의의 언어로 정확히 옮길 수 있는가’란 문제를 제기하죠. 예전에 저는 영국에 있는 옥스퍼드 대학원을 다녔습니다. 당시만 해도 남자대학과 여자대학이 하나로 합쳐지기 전이었는데 여자대학 기숙사에는 남자 방문객을 재워줄 수 없다는 규정이 있었어요.

 

1970년대, 이 규정은 잘 지켜지지 않았죠. 그렇다고 들었다는 얘기입니다. 제가 대학원을 다니던 1970년대 후반, 이 규정들을 완화하라는 압력은 커졌고 세인트앤스 칼리지 교직원 사이에서도 이 문제는 논쟁거리가 됐습니다. 세인트앤스 칼리지는 여자대학 중 하나였는데 나이 든 여교수들은 전통을 중시했고 기존의 도덕률에 근거해 규정을 바꾸는 데 반대했죠. 하지만 시대는 변했고, 그분들은 반대의 진짜 이유를 말하기가 쑥스러웠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의 주장을 공리주의의 언어로 바꿔 표현했죠. 그 사람들은 말했습니다. ‘남자들이 자고 가면 대학의 비용이 늘어난다’ 왜 늘어날까요? ‘목욕을 하려고 할 테니 온수 사용량이 는다’고 그들을 말했죠. 이런 말도 했습니다. ‘게다가 매트리스도 더 자주 교환해야 할 것이다.’

 

개혁론자들은 이 주장에 맞서 다음과 같은 타협안을 받아들였습니다. ‘여학생 1명은 매주 3명까지 남자 방문객을 재워줄 수 있다.’ 그 방문객이 같은 사람이어야 하는지 달라도 되는지는 밝히지 않았죠. ‘대학의 비용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는 방문객 1인당 50펜스를 지불한다.’ 이튿날 영국 전역에서 발행되는 신문의 헤드라인은 이랬습니다. ‘세인트앤스 여학생들, 하룻밤에 50펜스’

 

이 예에서도 볼 수 있듯이 모든 가치를, 즉 미덕 같은 것을 공리주의의 언어로 옮기는 것은 어렵습니다. 이것이 바로 공리주의에 대한 두 번째 반박이었습니다. 이 반박이 문제 삼는 부분은 공리주의의 가정이 옳은가 그렇지 않은가 하는 점입니다. 가치체계의 단일성에 대한 가정이죠. 모든 가치를 하나의 기준으로 잴 수 있고 모든 가치를 금액으로 환산할 수 있다는 가정입니다.

 

가치와 기호를 하나로 통합하려는 것은 또 하나의 우려를 불러일으킵니다. 왜 우리는 사람들의 기호를 하나의 저울에 올려놓아야 할까요? 훌륭한 기호인지 나쁜 기호인지 평가하지 않고 말입니다. 우리는 고급쾌락과 저급쾌락을 구분해야 하지 않을까요? 이제 사람들의 기호를 질적으로 따질 수 없다는 반박, 가치에 대한 평가를 회피하는 평등주의적 시각에 대한 반박을 살펴봅시다. 벤담의 공리주의는 모든 사람의 기호가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원하는 게 무엇이든 중요하다고 하죠. 행복하게 만들어주기만 하면 말입니다.

 

아시다시피 벤담에게 중요한 건 쾌락이나 고통의 강도와 지속성입니다. 벤담의 말에 따르면 고급쾌락 혹은 더 훌륭한 미덕은 더 강렬하고 긴 쾌락을 주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을 나타내는 유명한 말도 남겼죠. 쾌락의 양이 동일하다면 압정놀이도 시와 똑같이 훌륭하다(제러미 벤담). 압정놀이가 뭐냐고요? 꼬마원반 튀기기 같은 아이들 놀이입니다. ‘압정놀이도 시와 똑같이 훌륭하다’고 벤담은 말했죠. 벤담의 이 사상 뒤에는 이런 주장이 깔려 있을 겁니다. 어떤 쾌락이 본질적으로 더 가치 있고 훌륭하다는 판단은 추측일 뿐이라는 것이죠. 이러한 판단을 거부하는 데에는 매력적인 면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을 모차르트를, 어떤 사람은 마돈나를 좋아합니다. 어떤 사람은 발레를, 어떤 사람은 볼링을 좋아하죠.

 

벤담은 이렇게 말할 겁니다. ‘이 쾌락들 중에서’ ‘어느 게 더 수준 높고, 가치 있고, 고상하다고 누가 판단할 수 있는가?’ 하지만 벤담의 주장처럼 질적인 차이를 구별하지 않으려는 것이 과연 옳을까요? 과연 우리들 모두는 어떤 것에서 얻는 쾌락이 다른 것보다 더 가치 있다는 생각을 버릴 수 있을까요? 로마의 콜로세움을 다시 떠올려봅시다. 사람들이 그걸 싫어하는 이유 중 하나는 기독교들의 권리를 침해한다고 봤기 때문입니다. 그런 행위에 반대하는 또 다른 이유는 로마인들이 얻었던 쾌락, 즉 유혈 낭자한 광경에서 얻은 쾌락, 즉 천박하고 부정한 쾌락, 이런 품위 없는 쾌락에도 똑같은 중요성을 부여하고 계산에 넣어 공공의 복지를 결정해야 하냐고 묻는 것이죠. 이것들이 벤담의 공리주의에 대한 반박들입니다.

 

이제 이런 반박들에 답을 제시하려 한 사람으로 넘어가봅시다. 후대의 공리주의자 존 스튜어트 밀입니다. 이제 우리가 검토해야 할 점은 ‘존 스튜어트 밀의 견해가’ ‘공리주의에 대한 반박에 설득력 있는 대답이 되는가’입니다. 존 스튜어트 밀은 1806년 태어났죠. 부친인 제임스 밀은 벤담의 제자였고 아들인 존 스튜어트 밀에게 훌륭한 교육을 시켰습니다. 존 스튜어트 밀은 신동이었습니다. 3세인 그리스어, 8세엔 라틴어를 알았고 12세에는 로마법의 역사를 썼습니다. 20세에는 신경쇠약에 걸렸죠. 신경쇠약으로 인해 밀은 5년간 우울증을 앓았습니다. 25세의 밀이 우울증을 떨치게 도와준 건 해리엇 테일러와의 만남이었죠. 둘은 이후 결혼해 행복하게 살았고 해리엇 테일러의 영향력 아래에서 존 스튜어트 밀은 공리주의를 인간적으로 다듬는 데 매진했습니다.

 

밀이 원했던 공리주의의 논리를 확대하고 수정하면 인도주의적 문제들도 수용할 수 있는지를 보는 것이었습니다. 개인의 권리 존중 문제, 고급쾌락과 저급쾌락을 구분하는 문제 역시 다루고자 했습니다. 1859년 밀은 유명한 저서 <자유론>을 집필했습니다. 그 책의 핵심은 개인과 소수집단의 권리 옹호가 중요하다는 것이었죠. 생애를 마감해가던 1861년에는 이번 강좌에서 우리가 읽을 <공리주의>를 썼습니다. 밀은 공리를 유일한 도덕적 잣대라고 생각한다는 점부터 밝히죠. 벤담의 가정을 반박하는 게 아니라 지지한다는 것입니다.

 

밀은 분명히 말합니다. ‘어떤 것이 바람직함을 보여줄 수 있는 유일한 증거는 사람들이 그것을 원한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우리의 현존하는, 실제의, 경험적인 욕망이 도덕적 판단의 유일한 근거라는 얘기죠. 하지만 같은 2장의 8쪽에서는 이렇게 주장합니다. 공리주의도 고급쾌락과 저급쾌락을 구분할 수 있다고 말입니다. 밀을 읽어온 학생 중에서 누가 그 구분이 어떻게 가능한지 말해주시죠. 공리주의자는 어떻게 질 높은 쾌락과 질 낮고, 천박하고, 가치 없는 쾌락을 구분할 수 있을까요? 말씀하세요.

 

- 둘을 다 해보면 매번 자연적으로 질 높은 쾌락을 좋아하게 됩니다.

- 잘 말해줬어요. 이름은 뭐죠?

- 존입니다.

 

존의 저적대로 밀은 이렇게 말했죠. ‘시험을 해보자. 우리는 실제의 욕망과 기호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그건 공리주의의 가정을 위반한다. 어떤 쾌락이 고급 혹은 저급인지를 시험할 방법은 둘을 모두 경험한 사람이 무엇을 선호하는지 보는 것뿐이다.’ 2장에 보면 존이 방금 말한 걸 설명한 밀의 말이 나옵니다. ‘두 가지 쾌락 중에서, 둘을 모두 경험한 사람 모두 혹은 거의 모두가 좋아해야 한다는 도덕적 의무감과 상관없이 그것을 절대적으로 선호한다면’, 다시 말해, 외부의 독립된 기준이 없는데도 그걸 더 좋아한다면 ‘그것이 더 바람직한 쾌락이다.’ 이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밀은 목표를 이뤘나요? 존 스튜어트 밀은 공리주의의 언어를 이용해 고급쾌락과 저급쾌락을 구별하는 데 성공했을까요? 밀이 실패했다고 생각하는 분? 이유를 들어보고 싶군요. 하지만 그 이유를 듣기에 앞서 밀이 주장한 실험을 해봅시다.

 

● 토론

 

이 실험을 위해 우리는 짤막한 세 가지 영상을 볼 겁니다. 인기 있는 오락거리들에서 발췌한 장면들이죠. 첫 번째는 햄릿의 독백입니다. 그리고 나머지 두 가지 경험을 하게 해드리죠. 여러분의 반응을 봅시다.

 

→ 영화의 한 대사 중에서
"인간이란 얼마나 훌륭한 걸작인가! 이성은 얼마나 숭고하고 능력은 얼마나 무한한가! 모습과 거동은 얼마나 적절하고 뛰어난가! 행동을 할 때는 천사와 같고 이해력은 신과도 같네! 세상의 아름다움, 피조물들의 모범이지. 그러나 나에게는 그저 먼지로만 보이는구나. 인간의 나의 기쁨이 아니네."
"당신이 가장 두려워하는 게 현실이 된다고 상상해보십시오. 물렸어요! 매 회 여섯 명의 도전자가 전 세계에서 모여들어 세 가지 극단적인 도전에 나섭니다. 도전자들의 육체와 정신에 엄청난 부담을 주는 도전이죠. 도전자는 여섯, 도전과제는 셋, 우승자는 하나! '피어팩터(Fear factor)'"
→ 심슨 가족
"안녕, 골치 덩어리 이웃들?
플랜더스, 언제부터 재미있는 걸 좋아하게 됐나?
속도를 즐기지는 않지만 안정장비는 아무리 봐도 신나거든. 헬멧에 안전 철봉, 안전 깃발까지!
전 신선한 공기가 좋아요. 저 안의 가난한 사람들 보는 것도 좋고요.
어휴, 왜 우리 부모님 옆에 주차했어?
우리 부모님도 있어, 자기야"

 

어느 게 제일 재미있었냐고 물어볼 필요도 없겠네요. ‘심슨가족’이죠? ‘심슨가족’이 제일 재미있었던 분? 셰익스피어는 몇 분이나 되죠? ‘피어팩터’는 어땠나요? ‘피어팩터’가 제일 재미있었던 분? 정말이에요?

 

‘심슨가족’을 좋아하는 분이 셰익스피어보다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좋아요. 이번에는 다른 투표입니다. 가장 수준 높은 경험이나 쾌락은 무엇이었죠? 셰익스피어라는 분? ‘피어팩터’라는 분? 설마, 농담이죠? 정말이에요?

 

- 왜죠? 이유를 말해보세요.

- 저는 그게 제일 재미있었어요.

- 압니다. 하지만 제일 가치 있고 고상한 경험은 어느 것이었죠? 그게 제일 재미있었다는 건 압니다.

- 어떤 게 단지 재미있기 때문에 좋다면 거기에 대한 다른 사람의 추상적인 기호 같은 건 상관없는 게 아닐까요?

- 알겠습니다. 그러니까 학생은 전적으로 벤담의 편이군요.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게 누구냐? 그리고 무엇 때문에 실제 기호 이외의 기준으로 판단하나?’라는 얘기죠. 알겠습니다. 이름이 뭐죠? 네이트? 잘 알겠습니다.

 

- 재미하고는 상관없이 ‘심슨 가족’이 더 수준 높은 경험이었다는 분? 셰익스피어보다 더 수준 높았나요? 셰익스피어라는 분 다시 손들어보세요. 셰익스피어가 더 수준 높았다고 생각하는 분? 알겠습니다. 이유가 뭐죠? 제가 특별히 의견을 듣고 싶은 분은 셰익스피어가 수준이 높다고 생각하지만 ‘심즌 가족’을 가장 재미있게 본 분입니다.

- 말씀하세요.

- ‘심슨 가족’은 농담도 많고 재미가 있죠. 하지만 누군가는 셰익스피어가 훌륭한 작가라는 걸 얘기해줘야 하고 우리는 그의 작품을 읽고 이해하는 법을 배워야하죠. 렘브란트로 그림 보는 법을 배우는 것처럼요.

- 이름이 뭐죠?

- 아니샤입니다.

- 어떤 사람이 셰익스피어가 더 훌륭하다고 말해주면 아니샤는 그걸 맹목적으로 받아들이나요? 셰익스피어가 더 수준 높은 건 문화나 학교 선생님이 그렇게 말하기 때문입니까, 아니면 자신도 동의하기 때문입니까?

- 셰익스피어의 경우에는 아니지만 그 전에 예로 렘브란트는 맞아요. 만화책을 보는 게 렘브란트의 작품을 분석하는 것보다 재미있죠. 렘브란트가 위대한 작품이라는 얘기는 들었지만요.

- 그러니까 학생이 말하고 싶은 건 문화적 관습이나 압력이군요. 어떤 책, 어떤 그림이 훌륭한지를 배운다는 얘기죠. 다른 의견 없나요?

 

- 말씀하세요.

- 이 수업에 들어와서 제가 ‘심슨 가족’을 더 재미있게 본 건 사실이지만 남은 일생을 그 세 가지 화면 중 하나만 보고 지내야 한다면 전 ‘심슨 가족’이나 ‘피어팩터’를 보며 여생을 보내고 싶지 않을 겁니다. 마음속으로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더 큰 쾌락을 얻고 싶기 때문이죠. 셰익스피어를 통해 더 깊은 쾌락, 더 깊은 생각 같은 게 가능할 거라는 얘기입니다.

- 이름이 뭐죠?

- 조입니다.

- 그러니까 남은 일생을 캔자스의 농장에서 보낼 수밖에 없을 경우 셰익스피어냐 ‘심슨가족’ 걸작 모음집이냐를 택해야 하면 셰익스피어를 택한다는 말이죠? 그럼 존 스튜어트 밀의 시험에 대해 학생은 어떤 결론을 내렸습니까? 둘 모두를 경험한 사람이 수준 높은 쾌락을 선택하게 하는 시험 말입니다.

- 다른 예를 하나 더 인용해도 될까요? 지난해 <신경생물학>에는 쥐 뇌의 특정 부분에 대한 실험 결과가 나왔습니다. 그 쥐는 자기 뇌를 자극해 반복적으로 강한 쾌락을 느낄 수 있었죠. 그 쥐는 먹지도 마시지도 않다가 죽었어요. 쥐가 강한 쾌락을 경험한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제게 강한 쾌락을 경험할지 평생 고급쾌락을 경험할지를 물었을 때, 강한 쾌락을 저급쾌락으로 간주한다면, 잠깐 동안은 강한 쾌락을 즐기고 싶은 마음이 들겠지만... 그런 마음이 드는 게 당연하죠. 평생을 생각하면, 여기 계신 분들 대부분이 그렇겠지만 고급쾌락을 누리는 인간으로 살고 싶을 겁니다. 강한 쾌락을 잠시 누리는 쥐가 되기보다는 말이죠. 그러니까 이런 점이 증명하는 것처럼... ‘증명’이라고 하면 안 되겠죠? 그러니까 제 결론은 밀의 이론대로 다수의 사람에게 어떤 것이 더 좋냐고 물으면 사람들은 고급쾌락을 즐기고 싶다고 대답할 거라는 얘기입니다.

- 그러니까 여기에 관한 밀의 주장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합니까?

- 그렇습니다.

 

- 좋아요. 조하고 생각이 다른 분? 우리 실험이 밀의 주장을 증명하는 게 아니라는 분? 적절한 방법이 아니라거나 공리주의의 테두리 안에서는 고급쾌락과 저급쾌락을 구분할 수 없다는 분? 말씀하세요.

- 좋고 나쁨을 판단하는 기준은 사람들의 선호뿐이라면 그건 정말 상대적인 판단이고 객관적인 확실성이 없다는 뜻입니다. 즉 ‘심슨 가족’을 더 좋아하는 사회도 존재할 거라는 얘기죠. ‘심즌 가족’은 누구나 즐길 수 있지만 셰익스피어를 즐기려면 교육을 받아야 해요.

- 알겠습니다. 수준 높은 것들을 즐기려면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얘기군요. 밀도 고급쾌락을 즐기려면 교양과 이해력, 교육이 필요하다고 지적합니다. 그걸 반박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일단 교양을 쌓고 교육을 받으면, 고급쾌락과 저급쾌락의 차이를 알게 될 뿐만 아니라 고급쾌락을 더 좋아하게 된다고 말했죠. 이런 주장은 존 스튜어트 밀의 유명한 말에서도 드러납니다.

 

“만족하는 돼지보다는 만족하지 못하는 인간이 낫다. 만족하는 바보보다는 만족하지 못하는 소크라테스가 낫다. 바보나 돼지의 생각이 다르다면, 그건 문제를 자기 쪽에서만 보기 때문이다.” - 존 스튜어트 밀 -

 

이것이 고급쾌락과 저급쾌락을 구분하려는 시도입니다. 미술관 관람과 소파에 앉아서 맥주를 마시며 TV를 보는 걸 구분하려는 시도죠. 밀도 두 번째 쾌락에 대한 유혹에 때로 굴복할 수 있다는 건 인정합니다. 소파에서 TV를 보고 싶은 유혹이죠. 하지만 나태와 게으름으로 유혹에 굴복할 때에도 우리는 미술관에서 렘브란트의 작품을 볼 때의 쾌락이 더 수준 높다는 걸압니다. 둘 다를 경험했기 때문이죠.

 

렘브란트를 보는 게 고급쾌락인 이유는 더 차원이 높은 능력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개인의 권리가 제한된다는 반박에 대해 밀은 어떤 대답을 내놓았을까요? 어떻게 보면 밀은 이 반박과 비슷한 주장을 합니다. 5장에서 밀은 말하죠.

 

‘나는 공리에 기초하지 않은, 즉 정의에 대한 가공의 기준을 가진 모든 이론에 이의를 제기하지만’ 그렇지만 밀은 이렇게 생각하죠. ‘공리에 기초한 정의는 모든 도덕 중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 즉 가장 신성하고 구속력이 강한 부분’이라고 즉 정의가 더 높은 것입니다. 개인의 권리에 특권을 줘야 하는 이유는 공리주의의 가정과도 무관하지 않습니다. ‘정의는 특정한 도덕적 요구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집단의 관점에서 볼 때 그 요구들은 사회적 공리의 수준이 높고, 그러므로 다른 요구보다 더 높은 구속력을 갖는다.’

 

그러니까 정의는 신성하고, 중요하고, 특별한 권한을 가지고 있습니다. 덜 중요한 것들과 쉽게 바꿔버릴 수 있는 게 아니죠. 밀은 말합니다. ‘궁극적으로 그 이유는 공리주의적인 것인데 인류의 장기적인 이득을 생각하고 인간을 진보하는 존재로 볼 때 정의를 행하고 권리를 존중한다면 결국 사회는 더 좋아진다’는 것이죠.

 

설득력이 있습니까? 아니면 밀은 인정하지 않겠지만 공리주의의 논리 밖으로 나아가 쾌락의 질적인 문제를 논하고 개인의 권리가 신성하고 중요하다고 논한 것일까요? 우리는 충분한 답을 얻지 못했습니다. 그 질문에 답하려면 즉 권리와 정의의 문제에 답하려면 다른 방법들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공리주의 이외의 방법으로 권리의 근거를 설명하고 그것이 옳은지를 살펴야 하는 것이죠. 

 

제러미 벤담은 최초로 도덕철학과 법리학의 원칙으로 공리주의를 제시했던 인물이죠. 벤담은 1832년 8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납니다. 런던에 가면 벤담을 만날 수 있죠. 진짜로 만날 수가 있습니다. 유언장에서 그가 지시한 건 시신을 보존하고 방부 처리해 런던대학에 전시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지금도 벤담은 자신의 옷을 입고 밀랍머리를 단 채 유리 상자에 들어 있죠. 죽기 전 벤담은 자문했습니다. 자신의 공리주의적 철학과 일관된 질문이었죠. 

 

“어떻게 해야 죽은 자가 산 자들에게 쓸모가 있을까? 한 가지 방법은 시신을 해부학 연구에 기증하는 것이다. 하지만 위대한 철학자의 경우에는 육신을 보존하는 것이 낫다. 미래의 철학자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방부 처리된 벤담을 보고 싶죠? 이렇게 생겼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사진을 자세히 보면 머리의 방부 처리가 성공하지 못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밀랍머리로 교체를 했죠. 그리고 진짜 머리는 바닥에 뒀습니다. 접시에 놓인 진짜 머리가 보일 겁니다. 보이죠? 여기 있습니다. 이 이야기의 교훈은 무엇일까요? 그건 그렇고 런던대학은 운영위원회 회의 때 벤담을 모시고 나온다고 합니다. 의사록에는 그를 ‘참석은 하지만 투표는 하지 않는다’고 기록하죠. 그러니까 벤담이라는 철학자는 생전에도 사후에도 자신의 철학원칙을 고수한 것입니다. 권리에 대한 얘기는 다음에 계속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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