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기차 사고 사례는 국내를 비롯해 해외 등지에서 다수 발생한 바 있다. 일례로 지난해 8월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고독소로를 달리던 테슬라 모델3가 견인트럭과 충돌해 화재가 발생하기도 했으며, 지난해 6월에는 전북 전주시에서 주행 중이던 테슬라 차량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지난 3일 소방청에 따르면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6년간 전국에서 발생한 전기차 화재는 총 160건이다.
연도별 화재 건수는 ▲2018년 3건 ▲2019년 7건 ▲2020년 11건 ▲2021년 24건 ▲2022년 43건 ▲2023년 72건 등이다. 이는 전기차 사용자가 증가함에 따라 사고 비율도 비례해 증가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올해는 5월까지 27건의 화재가 발생해 1명이 숨지고 1명이 다쳤다.
특히 다중이용시설 지하주차장에서 발생한 전기차 화재는 2018년 0건에서 지난해 10건으로 증가했다. 이 기간 지하 주차장에서 발생한 전기차 화재는 총 21건이다.
이렇듯 전기차 화재 사고가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
이날 금산에서 일어난 EV6 전기차 화재에 탑재된 제품은 SK온의 배터리다. 최근 발생한 인천 청라국제도시 지하주차장의 벤츠 전기차 화재사고는 중국 배터리 제조사 파라시스의 제품이 탑재된 것으로 밝혀졌다.
전기차 사고에서 우려되는 부분은 배터리 화재다.
전기차의 경우 일반 불이 나면 일반 내연기관 차량보다 화재 진압이 훨씬 까다롭다. 전기차에 탑재된 리튬배터리 화재 시 1000도가 넘게 치솟는 '열폭주' 현상이 발생한다. 분말소화기를 사용하더라도 분말이 리튬배터리 내부에 미치지 못하고 냉각 효과도 거의 없다.
특히 니켈 비율이 높은 '하이니켈 양극재'는 용량이 큰 대신 열 안정성이 낮은 단점이 있어 열폭주에 더 취약하다.
임종우 서울대 화학부 교수 연구진은 열폭주 현상이 기존 예상보다 급격히 악화되는 이유는 배터리 내 음극과 양극 사이 '자가증폭루프' 때문이라고 지난 5일 밝혔다.
연구진은 배터리의 양극과 음극 사이 화학 종이 교환되며 자가증폭루프 반응이 열폭주를 크게 유도하는 것을 관찰했다.
자가증폭루프는 열폭주 초기 단계에서 흑연 음극재에서 발생한 에틸렌 기체가 하이니켈 양극재로 이동해 양극재 내에서 산소 기체가 탈출하는 것을 유도하고, 양극재 산소 기체가 다시 음극의 에틸렌 기체를 발생시키며 강한 발열 반응을 일으키는 순서로 일어났다. 이와 같은 '자가증폭루프' 도중 생성된 산소와 이산화탄소는 음극 표면에 석출된 리튬과 반응해 배터리 온도를 더욱 올릴 수 있었다.
국내 배터리와 중국산 배터리를 떠나 전기차 배터리 자체의 안정성 문제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전기차 충전업계 관계자는 "발생하는 다수의 전기차 화재는 차량 자체의 배터리 결함으로 발생해 이에 대한 초동대처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제작결함이 아니라면 배터리 노후화로 인한 덴드라이트(배터리 리튬 침전물이 음극 표면에 쌓여 결정체를 만드는 현상)일 수 있다"며 "침전물이 전극을 따라 자라면서 분리막을 찌르거나 파손해 화재가 일어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기차 화재의 원인과 대책
2020년 이후 화재 건수의 약 17%는 블랙박스 보조배터리, 휴대용 충전기 등 차량에 장착된 액세서리 등에서 불이 난 것으로, 전기차 자체의 안전 문제라고는 보기 어려운 '외부 요인'이었다. 나머지 중에서 54.3% 정도가 '고전압 배터리'에서 발생했다. 전체 전기차 화재 중 절반 이상이 배터리가 원인인 셈이다. 나머지 28%는 차량 기타 부품(커넥터, 운전석 열선 등)에서 불이 난 경우였다.
자동차 화재라는 것은 발생하고 나면 대부분 차량 전체로 불이 번지기 때문에, 100% 원인을 명확히 찾아내기가 쉽지 않다. 그러다 보니 분석하는 기관과 분류하는 방법에 따라, 통계에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앞서 설명한 보조배터리도 배터리로 묶어서 통계를 내게 되면, 전체 전기차 화재의 약 70%가 배터리에서 발생한다.
다음으로는 충전 중 화재가 주요 원인이다. 충전기나 충전케이블의 결함, 충전 중 차량의 충격이나 낙하, 충전기와 차량의 접촉 불량 등으로 인해 화재가 발생할 수 있다. 다만 공식적으로 충전기 이상이 화재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분류된 것은 없다. 최근 발생한 1건의 사고가 충전 손잡이에서 직접적으로 화재가 시작된 경우가 있지만, 전체 화재 발생 비율에서 보면 아주 제한적이다.
충격 혹은 충돌 사고로 인해 전기차의 배터리가 손상되면 화재가 발생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부분은 일반 내연기관 차량과 마찬가지로, 부품이나 차량 결함으로 인한 사고로 분류할 수는 없기에, 통계에서 제외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기타 차량 내부의 전기 배선이나 전자 부품의 결함, 차량의 관리 소홀 등으로 인해 화재가 발생할 수도 있다.
충전 중 화재라고 언론에 보도되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공동주택 주차장에서는 충전이 끝난 후에도 늦은 밤이나 새벽에 차량을 이동시키는 경우는 드물고, 다음날 출근 때까지 그대로 충전기에 물려두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화재 발생 후 한전의 데이터 값을 살펴보면, 충전이 끝난 후 대기 중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결국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충전기에 물려 있는 상태로 화재가 발생했기 때문에 충전 중 화재라고 인식하는 것이다. 얼마 전 세종에서 발생한 사고의 경우도 자정 무렵 충전이 완료되었다는 문자가 차주에게 전송되었고, 그 후 수 시간이 경과 한 뒤에 화재가 발생했다. 따라서 정확히 분류하자면, 충전이 완료된 후, 차량이 스스로 배터리 상태 등을 관찰하는 도중에, 즉 방전 중에 화재가 발생한 것이다.
그렇다면 전기차 화재를 예방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우선은 배터리에 대한 인증체계 등 정부의 역할 강화가 중요하다. 전문성을 갖춘 정책결정권자의 역할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이다. 배터리 제작사는 품질 안정화에 힘을 쏟아야 한다. 초기에는 배터리를 제조한 후에, 팩킹까지 해서 납품했었다.
그런데 코나 전기차 리콜 이후에는, 배터리 제조사는 마지막 팩킹을 자동차 제작사에 미루고 있다. 품질에 따른 이슈에서 아예 손을 떼겠다는 속셈이다.
마지막으로 자동차 제작사는 배터리 상태를 모니터링하고, 위험을 사전에 감지하는 기술 개발에 힘써야 한다. 최근 이러한 기술 개발의 성과가 조금씩 보이고는 있다. 최근 발생한 테슬라 화재의 경우, 양평에서 운행 중 전원이 차단되면서, 운행 불가 상태가 되었다. 성수동 서비스센터로 옮긴 후 하부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면서, 화재가 시작된 것이다. 화재 발생 이전에 배터리의 이상을 감지하고 운행 중단을 통해 인명피해를 막았기 때문에 피해가 크게 퍼지지 않았다.
이러한 여러 가지 노력 보다도, 가장 확실한 방법이 있다. 전기차 운전자들이 직접 실천할 수 있는 꿀팁이 있는 것이다. 급속충전 보다는 완속 충전을 자주 이용하고, 최대 충전율을 85% 미만으로 셋팅해 놓는다면, 전기차 화재의 99%는 예방할 수 있다. 정부 차원에서는 충전요금 차별화를 정책으로 고민해 볼 수도 있다. 85% 이상으로 충전할 경우, 요금을 좀 더 비싸게 책정해 자발적인 억제를 유도할 필요성도 있다고 본다.


배터리 열폭주
리튬배터리는 한번 불이 나면 순식간에 1천도 이상 온도가 치솟는 ‘열폭주’ 현상이 발생해 화재 진압이 쉽지 않다.
리튬배터리 화재의 가장 큰 문제는 ‘열폭주’ 현상이다. 리튬배터리는 기온 상승이나 과충전 등으로 온도가 올라가면 풍선처럼 부피가 커지고 배터리 내부 압력이 커지는데, 이 과정에서 분리막이 붕괴해 양극과 음극이 직접 접촉하면서 불이 붙고 급격한 온도 상승이 일어난다. ‘재발화 현상’도 드물지 않게 벌어진다. 초기 화염이 제거되더라도 뜨거운 열이 근처 다른 배터리의 열폭주를 일으키면서 연쇄적으로 발화가 시작되는 것이다. 김영하 화재보험협회 화재조사센터장은 한겨레와 통화에서 “열폭주 문제와 관련해서는 전 세계적으로 아직까지 뾰족한 진압 방법이 없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리튬배터리는 물과 만나면 가연성 높은 수소 가스가 발생해 평상시에는 수분을 통제해야 해서 화성 공사 현장엔 스프링클러가 설치돼 있지 않았다. 하지만 열폭주가 일어나 대형 화재로 번졌을 때는 오랜 시간 물을 대량으로 뿌리는 것이 상책이다. 배터리 열폭주로 박사 학위를 받은 강경석 구리소방서 소방장은 “리튬메탈이 물과 만나면 수소 반응이 나오긴 하지만, 안전이 통제된 상황에서 압도적인 물을 방수해서 연소 확산을 저지하고 리튬을 산화시켜 불을 끄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라며 “이번 화재 현장의 경우는 이런 대응이 상당히 어렵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런 경우 상당한 소방력이 동원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전기차 1대에서 난 화재사고를 진압하는 데 물이 최소 1만리터가 필요한데, 일반 소방펌프차 1대가 싣고 다니는 소화용수가 약 3천리터다.
때문에 리튬배터리를 다루는 현장은 사전에 ‘피해저감책’을 잘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영주 경일대 교수(소방방재학)는 “제조 공정에서 화재 발생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라 예방과 초기대응이 중요하다”며 “법에서 정하고 있는 소방설비가 잘 갖춰졌는지, 안전한 대피통로가 만들어졌는지 등을 살필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전기차 배터리 열폭주, 이제 속수무책 아니다
원인 및 억제 방법
서울대-포스텍-삼성SDI 연구팀 공동연구
하이니켈 계열 이차전지 열폭주 메커니즘 규명
고온에 안정하다 알려진 알루미나 음극 표면에 코팅 열폭주 억제 확인
지난 1일 인천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시작된 전기자동차 화재가 8시간 동안 계속돼 주변차량 40여대를 태우고 100여대에 열손실과 그을림 손상을 일으켰다. 이 화재로 인해 아파트 수도와 전기공급에 문제가 생기면서 입주민들이 대피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화재의 주요 원인으로 전기차 배터리의 열폭주 현상을 지목하고 있다. 열폭주는 과충전, 장시간 사용, 물리적 손상 등으로 내부 화학 반응이 비정상적으로 활성화되면서 발생한다. 배터리가 특정 온도에 도달하면 화학 반응이 급격히 일어나 온도가 1000°C를 넘어서며, 이로 인해 연쇄적으로 더 큰 열이 발생하고 피해가 확대된다.
최근 전기차에서 배터리에 의한 화재·폭발 사고가 잇따라 발생하는 가운데 국내 연구진이 열폭주 현상의 원인을 규명하고, 음극 코팅을 통해 열폭주를 억제할 수 있는 방법을 밝혀냈다. 임종우 서울대 화학부 교수팀, 김원배 포스텍(POSTECH) 교수팀, 삼성SDI 연구팀이 공동으로 진행한 연구는 하이니켈 양극재를 주력으로 하는 국내 배터리 기업들의 경쟁력을 높일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전기차의 주요 에너지저장장치로 쓰이는 리튬이온배터리는 현재 니켈 함량이 80~90%로 높은 하이니켈 계열이 많이 사용되고 있다. 니켈이 많이 포함된 하이니켈 양극재는 장거리 주행이 가능하다는 장점을 제공하지만, 높은 니켈 함량은 열 안정성을 낮춰 열폭주에 취약하다는 단점이 있다.

연구팀은 포항방사광가속기 기반 X선 회절 기법을 활용해 배터리셀 내부에서의 화학종 교환 반응을 관찰했다. 연구를 수행한 서울대 조수근 연구원에 따르면 포항방사광가속기는 기존 X선보다 10만배 밝은 빛을 사용하며, 이로 인해 작은 분자 간 반응을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양극재와 흑연 음극 사이에서 중대한 발열반응이 발생하고, 이로 인해 생성된 자가증폭루프가 산소와 이산화탄소를 발생시켜 리튬과 반응하며 급격한 온도 상승을 초래하는 것을 규명했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자가증폭루프에서 생성된 산소와 이산화탄소 반응을 막기 위해 높은 온도에서도 안정하다고 알려진 알루미나를 음극 표면에 얇게 코팅하는 방법도 개발했다. 조 연구원은 "알루미나 코팅으로 산소 기체 발생이 억제되어 자가증폭루프를 차단할 수 있었고, 열폭주도 성공적으로 억제됐다"며 "200도 이상에서 나타났던 열폭주 현상이 알루미나 코팅으로 억제되는 것을 확인했다. 화재 진압을 위한 골든타임을 늘릴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감을 표했다.
이 연구는 니켈 함량 88%의 리튬이온 배터리를 대상으로 진행되었다. 현재 상용화된 배터리 중 가장 높은 니켈 함량은 91%이다. 조 연구원은 "니켈 함량이 높을수록 에너지 저장 용량이 커지는 만큼, 니켈 함량이 더 높은 배터리에 대한 연구를 확대할 예정"이라며, "열폭주 위험이 큰 오래된 배터리를 활용해 안정성 테스트를 지속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연구 결과는 8월 1일 국제학술지 ‘어드밴스드 머티리얼즈 (Advanced Materials)’의 표지 논문으로 선정되어 출판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