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계에서 '은둔형 외톨이'라는 진단명은 없다. 원칙적으로 '지적장애' 또는 '정신장애'라는 진단을 받은 사람은 사회활동이 어려워 '은톨이' 범주에서 제외된다.
대체로 은톨이는 외출이 거의 없고 방이나 집안에서만 3~6개월 이상 생활하면서 구직이나 학업활동을 중단한 사람을 일컫는다. 만성적 은둔에 돌입하면 학업과 직업생활로의 복귀가 매우 어려워진다. 주변의 도움으로 다소 호전된다 해도 언제라도 재은둔에 들어갈 수 있다. 생애주기 차원에서 보살핌이 이뤄져야 할 이유다.
'잃어버린 30년' 돌입하며 '히키코모리' 등장
일본에서 히키코모리가 공식적으로 처음 등장한 시점은 198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은 1991년부터 '잃어버린 30년'에 들어갔다. 1992년 주택가격이 폭락하면서 거품 붕괴가 본격적으로 나타났다.
집이나 방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히쿠(ひく, 물러나다)와 코모루(こもる, 은둔하다)를 명사화한 히키코모리(ひきこもり)가 1990년 후반 관련 용어로 등장했다. 히키코모리는 학교에 가지 않고 집에 머무는 청소년이나 등교 거부 상태에서 고등학교 졸업 연령이 되었음에도 집에 틀어박힌 청년을 지칭했다.
일본은 1999년부터 히키코모리 대책을 추진했다. 후생노동성은 히키코모리·부등교 아동복지대책 모델사업을 통해 만18세 미만 아동 당사자와 가족을 대상으로 상담과 심리치료에 나섰다. 히키코모리를 둔 가족들은 부모회를 설립한 뒤 상담 지원, 정보 제공, 당사자를 위한 프리스페이스(居場所)를 제공했다. 2000년대부터 광역자치단체 단위부터 지원활동이 시작됐다. 2003년 후생노동성이 '10대, 20대 히키코모리를 위한 지역정신보건활동 가이드라인'을 마련한 뒤 무직 청년 지원, 잠재적 생활보호대상자 예방을 위한 지역 청년 서포트 스테이션 사업이 진행됐다.
후생노동성은 85개 광역자치단체와 함께 2009년부터 히키코모리 지역지원센터를 중심으로 자립 지원, 취업준비 지원 상담 등 을 제공하고 있다. 이곳에서 사회복지사, 정신보건복지사, 임상심리사, 지원코디네이터 등이 당사자와 가족을 상담한다.
전문 인력 양성 시스템도 갖췄다. 2013년부터 관련 인력 양성을 목표로 코디네이터 양성 교육과 히키코모리 경험이 있는 사람(피어 서포트·Peer Support)를 포함, 서포터를 양성하고 방문을 지원하고 있다. 은둔상태에 있는 당사자의 사회참여를 돕기 위해 시·정·촌 단위에서 ▲지원 상담 ▲실태 파악 ▲당사자 및 가족을 위한 공간 구축 ▲서포터 파견 등을 하고 있다.
히키코모리 고령화·장기화
이 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히키코모리 추정치는 줄지 않고 대상 연령층은 높아졌다. 2018년 12월 전국 중장년(40~64세) 5000명을 포본 추출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내각부는 2019년 3월 중장년 히키코모리를 61.3만명으로 발표했다. 2015년 기준 청년층(15~39세) 추정치 54.1만명보다 많아 사회에 충격을 주었다. 히키코모리의 고령화와 장기화로 사실상 전 국민의 문제가 됐음을 의미한다.
중년 히키코모리는 20대 때부터 은둔 생활을 해온 사람이 많다. 70~80대 부모가 40~50대 히키코모리 자녀의 생계를 책임지는 상황으로 악화되면서 '7040 문제' 또는 '8050 문제'가 발등의 불로 부각됐다. 부모마저 차례로 숨지면 동거 중인 중년 자녀는 고독사 당할 판이다.
히키코모리가 중고령층으로 확대되자 일본 정부는 생활보장제도를 보강했다. 2015년 '생활 곤궁자 자립 지원법’을 도입한데 이어 2018년 ‘생활 곤궁자 자립 지원법' 개정안을 마련, 지역사회로부터 고립된 채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히키코모리를 이 법의 지원 대상에 집어넣었다. 구체적으로 ▲자립상담 지원 ▲주택확보 급부금 ▲취업준비 지원제도 ▲임시생활 지원사업 ▲가계상담 지원 사업 ▲아동학습 생활지원 사업 ▲자립촉진 사업 시행 등이다.
히키코모리 대책이 별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은 포괄적 접근과 고심 없이 정책 목표가 취업, 탈은둔, 예산 대비 실적에 치우친데다 당사자의 심리·정서적 부분에 대한 지원도 미흡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대상자를 빨리 찾아내지 못한데다 다양한 원인을 갖고 있는 수요자에 적합한 맞춤형 서비스가 제대로 제공되지 못한 잘못도 지적된다.
일본의 히키코모리 대응 노력이 어려움을 겪는 것과 관련, "연령과 특성, 시대적 상황 등 종합적으로 고려하지 못한 채 대상자를 선정했기 때문”이라며 "특정 시설을 물리적으로 이용할 수 없는 당사자와 가족이 서비스 사각지대에 놓이면서 '반쪽자리 지원'이란 평가가 나오고 있다”고 밝혔다.
뒤늦게 일본 정부는 예산을 늘리며 총력전에 나서고 있다. 올해 히키코모리 지원 개산 요구액은 18억엔으로 2023년 16억엔보다 2억엔 늘어났다. 올해부터 히키코모리 당사자와 그 가족이 보다 친근한 곳에서 지원 받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다는 목표에 따라 ▲상담창구 설치 ▲거처 마련 ▲관계자 간 네트워크 구축 ▲당사자 모임 및 가족모임 개최 등을 통해 지원체제 기반을 강화하기로 했다.
히키코모리 정책에서 일본이 겪고 있는 어려움은 환경이 유사한데다 '인생 시기별로 정해진 과업을 제때 하지 못하면 평생 뒤처진다'는 인식이 강한 한국에서 나타날 위험성이 높다. 고학력 청년의 '괜찮은 직장' 취업이 힘들어지는 현실에서 이미 등장한 '8050' 가정도 갈수록 늘어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