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령 동인도
800년부터 1949년까지 현재의 인도네시아에 존재했던 네덜란드의 식민지
1800년 1월 1일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가 국영화되면서 형성되었다. 19세기부터 네덜란드는 패권주의적인 확장을 통해 수마트라섬, 자와섬, 보르네오섬, 소순다 열도, 술라웨시섬, 말루쿠 제도, 파푸아섬 등 인도네시아에 위치한 여러 섬들을 식민지로 통치하였으며 20세기 초반에는 이 지역이 최대 면적에 이를 정도로 확장되었다.
태평양 전쟁 시기였던 1942년 2월부터 1945년 8월까지는 일본 제국에 점령되기도 했으며 1945년 8월 17일에는 인도네시아의 민족주의자들이 인도네시아의 독립을 선언하였다. 인도네시아 독립 전쟁의 결과로 네덜란드는 1949년 12월 27일에 인도네시아의 독립과 주권을 인정하게 된다.
인도네시아계 네덜란드인
네덜란드에 거주하는 인도네시아인 또는 후손들을 뜻한다. 네덜란드 내 인도네시아계 인구는 2022년 기준 349,301명에 달한다.
인도네시아가 네덜란드의 지배하에 놓이면서 수많은 인도네시아인들이 네덜란드 본토로 이주하거나 네덜란드의 지배를 받던 남아공 지역, 수리남 지역에 정착했다. 네덜란드의 지배하에서 인도네시아인들은 네덜란드의 탄압과 억압을 받았다. 그러면서도 네덜란드의 영향을 받기도 했다. 인도네시아 지역은 네덜란드의 지배하에서 아랍 문자로 표기되었던 말레이어가 로마자로 표기되기도 하는 등 네덜란드의 영향을 받게 되었다.
1940년대 후반에 인도네시아는 네덜란드의 지배에서 벗어났다. 인도네시아의 독립 이전에 수많은 인도네시아인들이 네덜란드로 많이 이주했다. 당시 네덜란드로 이주한 인도네시아인들은 주로 기독교인들이 많았으며, 네덜란드인 식민 관료들의 현지처들도 많았다. 이슬람교를 믿는 동아시아 내 일반 인도네시아인 이민자가 아닌 식민지배 시절 친네덜란드파였다가 독립 후 네덜란드로 피난 온 경우로 주로 인도네시아 내 네덜란드인 식민 관료와 인도네시아 현지인 여성 사이의 혼혈을 의미한다.
네덜란드 도래 당시부터 혼혈 집단이었고, 사회적으로 동화가 잘 되어 통혼이 활발히 이루어졌기 때문에 현재 네덜란드에 존재하는 인도네시아계 네덜란드인들은 대개 1/n (n≥4) 수준의 혼혈로 존재한다.
네덜란드-인도네시아 관계가 개선되어가고, 전력강화를 노리는 인도네시아 축구협회 방향성에 따라 인도네시아계가 귀화과정을 통해 인도네시아 축구 국가대표팀으로 뽑히는 사례가 늘어가고 있다.
인도네시아 신태용호, 핵심 자원들은 180㎝ 후반…네덜란드 혼혈
한국과의 23세 이하(U-23) 아시안컵 8강전에서 활약한 인도네시아 대표팀 선수들에게는 눈에 띄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모두 서구적인 외모에 키카 크다. 인도네시아인과 유럽에서도 체격조건이 좋기로 유명한 네덜란드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이기 때문이다.
26일 경기에서 스트라이커로 나서 멀티 골을 기록한 라파엘 스트라윅(ADO 덴하흐), 스트라윅의 두 번째 골을 도운 미드필더 이바르 제너(위트레흐트 U-21팀), 제너와 함께 중원을 지킨 나탄 추-아-온(SC 헤이렌베인), 백스리의 왼쪽을 담당한 센터백 저스틴 허브너(세레소 오사카) 모두 네덜란드에서 태어났다. 인도네시아·네덜란드 이중국적이지만 대표팀 승선 기회를 잡기 위해 축구 선수로서는 인도네시아 국적을 선택한 이들이다. 키도 182㎝인 추-아-온을 제외하면 모두 180㎝ 후반대로 크다. 순수 인도네시아 선수들보다 확실히 체격조건이 좋다.
인도네시아는 체격조건이 좋은 네덜란드 혼혈 선수를 앞세워 과거와 달리 상대 팀과 적극적으로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한국은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온 인도네시아의 조직력은 물론 적극적인 경합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스트라윅은 한국 센터백들을 상대로 밀리지 않았다. 특히 하프라인 밑에서부터 올라온 제너의 롱볼에 세컨드볼을 따내 넣은 두 번째 골은 몸싸움에서 밀리지 않을 것이란 자신감이 있었기에 가능한 득점이었다. 이 장면 외에도 인도네시아 선수들은 기회만 보이면 날카로운 크로스를 올리는 등 몸싸움을 주저하지 않았다.
신태용 감독은 인도네시아 축구를 한 단계 도약시키기 위해 혼혈 선수들을 발굴하고 중용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날 한국전에 나선 네덜란드 혼혈 선수들은 연령별 대표팀과 A대표팀을 오가며 과거 인도네시아 축구의 약점으로 지목되던 신체조건 열세에 따른 한계를 극복하게 해준다. 스트라윅, 제너, 허브너는 지난 1월 열린 카타르 아시안컵에도 출전하며 인도네시아 축구 역사상 첫 대회 16강 진출의 성과를 일구기도 했다.
주로 네덜란드 2부리그 등 중소리그에서 뛰지만, 어린 나이에 유럽 무대를 경험하고 국제무대 경험이 풍부하다는 것도 자산이다. 특히 현재 J리그 세레소 오사카로 임대를 가 있는 허브너는 원 소속 구단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울버햄튼 U-21팀으로 아시아를 대표하는 대형 수비수로 클 재목으로 꼽힌다.
제국의 하수인 되기 원했던 인니(印尼) 귀족들
쁘라무디아 '인간의 대지'
루카치(G. Lukacs)가 말한 것처럼, 역사소설이란 역사적 사건을 되풀이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우리에게 끄집어 와서 그 진정한 상황을 맛보게” 하는 것이다. 인도네시아 태생으로 노벨문학상 후보에 여러 차례 오른 쁘라무디아(Pramoedya Ananta Toer: 1925~2006)의 ‘인간의 대지’ 4부작은 그런 의미에서 역사소설의 몫을 다했다. 쁘라무디아는 아시아보다는 유럽과 미국에서 더 유명한 인도네시아 소설가로 중국의 루쉰에 비견되는 인물이다.
그가 쓴 이 소설은 인도네시아의 ‘언론의 아버지’ 띠르또(Tirto Adhisoerjo)를 모델로 하고 있다. 쁘라무디아는 언론을 통해 민족의식을 일깨우려 노력한 띠르또의 행적에 깊은 감동을 받아 이 소설을 썼다. 쁘라무디아는 띠르또를 알기 전까지 수없이 많은 외세의 침입을 받았지만 한 번도 이기지 못한 인도네시아에 대해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다.
소설의 시대 배경은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로 이 시기는 350년 동안 네덜란드 지배를 받은 인도네시아 땅에 민족의식이 태동하는 시기다. 작가는 주인공 밍꺼를 통하여 언론인 띠르또의 사상과 활동을 리얼하게 그려낸다.
밍꺼는 네덜란드식 교육을 받은 자바의 귀족 집안 아들로서 민족의식을 일깨우는데 있어 언론의 중요성을 일찍이 깨닫는다. 처음에는 네덜란드어 신문에 동족의 아픔을 고발하려는 시도를 하지만 검열 등으로 여의치 않자 직접 인도네시아어 신문을 창간한다. 의술학교에 다니는 학생인 밍꺼는 네덜란드계 혼혈 아넬리스와 사랑에 빠져 이슬람 전통에 따라 정식으로 결혼하지만, 토착인의 신분으로 혼혈인과 결혼할 수 없다는 식민통치 정부의 판결로 혼인관계를 인정받지 못하고 생이별을 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밍꺼의 저항의식이나 식민통치의 부당함이 자연스럽게 부각되고, 밍꺼는 인도네시아의 민족운동을 주도한 이슬람동맹 운동에 투신한다.
쁘라무디아는 이 작품을 통해 식민통치의 부당성을 고발하면서 동시에 인도네시아의 왕족이나 귀족문화의 부정적인 측면을 드러냄으로써 인도네시아가 식민통치 아래에 놓인 것을 외세의 탓으로만 돌리지 않고 있다. 작가는 인도네시아에 정치부재의 관료국가가 존재했던 것은 식민통치 정부의 정책에도 기인하지만, 독립투쟁이나 자국민의 이익을 보호하기 보다는 오히려 식민통치정부의 하수인이 되기를 원했던 토착 귀족들의 수동적인 태도도 간과할 수 없다고 말한다.
유명한 동남아학자 베네딕트 앤더슨(Benedict Anderson)과 직접 교우하기도 했던 쁘라무디아의 민족에 대한 생각은 앤더슨이 민족주의를 설명하면서 주장한 이른바 ‘상상의 공동체’와 맥락을 같이 한다. 앤더슨이 주장한 바와 같이 인쇄자본주의의 발달로 인한 신문과 소설이 민족공동체의 실재를 구성하고 재현하는데 큰 기여를 하였다고 짚은 것은 쁘라무디아가 ‘인간의 대지’ 주인공 밍꺼를 통하여 언론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인도네시아어의 사용을 주장한 것과 맥이 통한다.
개별 국가의 민족의식보다는 글로벌리즘이 먼저 대두되는 지금 시대에 쁘라무디아의 ‘인간의 대지’는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다. 서양식 교육을 받은 주인공 밍꺼는 식민통치의 부당함을 날카롭게 비판하지만, 서구의 발전된 문명은 수용하자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작가가 소설에서 드러내고 싶었던 것은 협소하고 이기적인 개념의 민족이 아니다. 그의 민족은 식민통치를 비롯한 모든 부자유스러운 상황을 털어버리는, 보편적인 인간으로 구성된 민족이다. 그의 모든 작품을 잇는 끈이 ‘인류애’인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소설 제목 ‘인간의 대지’는 결국 ‘인간이 제 구실을 하는 무대’를 희구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