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 등정의 발자취
The Ascent of Man
제이콥 브로노우스키
Bronowski, Jacob
20세기 르네상스인 브로노우스키의 방대한 지적 대장정
이 책의 시작은 원래 브로노우스키가 기획하고 해설한 1973년의 BBC 다큐멘터리 〈The Ascent of man〉이었으며, 책은 이 다큐멘터리를 바탕으로 하여 이듬해인 1974년에 영국에서 처음 출간되었다. 다큐멘터리는 당시 전 세계적으로 절찬리에 방영되었고, 책 또한 상당 기간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KBS에서 한국외국어대학교 박성래 교수의 해설을 붙여 여러 차례 방영된 바 있으며, 책은 1976년에 《인간 역사》라는 제목으로 이종구의 축약번역판(삼성문화문고 79)이 처음 출간되었다. 이후 9년 뒤인 1985년, 김은국 재미작가의 번역으로 범양사에서 ‘신과학총서’의 일환으로 완역판이 출간되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원서에 있던 몇 개의 도판이 빠지고 사진도 흑백으로 실려 책의 모습을 온전히 담아내지 못했었다.
2004년 바다출판사는 220여 개에 이르는 원서의 총천연색 도판을 온전히 싣고, 당시 김은국의 번역을 도왔던 수원대학교 김현숙 교수가 다시 현대적인 언어로 번역을 손질하여 이 책을 출간했다. 또한 국내 과학사 연구의 선구자인 송상용 한양대학교 석좌교수의 감수를 통해 과학적인 정확성을 기하였다. 그리고 2009년 가을, 이 책의 독보적인 위치에도 불구하고 독자들이 쉽게 접하기 어려웠던 가격과 장정을 대폭 수정하고, 번역 일부를 수정하여 개정 보급판을 출간하였다.
과학, 기술, 예술, 문학, 종교의 영역을 넘나드는
인간 지성의 도저한 발달사
《인간 등정의 발자취》는 인류가 이룩한 눈부신 과학적·문화적 성취의 산맥을 타고 오르는 지적인 대장정이다. 브로노우스키가 자신의 모든 연구와 에너지를 쏟아부어 펴낸 이 책은 원시 인류의 진화에서부터 현대 핵물리학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위대한 정신과 무한한 가능성을 깊이 있게 체험할 수 있는 아주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
이 책의 원제 The Ascent of Man은 다윈의 유명한 저서 The Descent of Man을 떠올리게 한다. 즉, 다윈이 보잘것없는 원시인에서 현대의 인간으로 진화해 내려온 생물학적인 진화의 과정을 ‘The Descent of Man’이라는 용어로 표현했다면, 브로노우스키는 인간이 상상력과 이성, 정서적 예민함과 강인성으로 환경을 변화시켜 온 문화적 진화의 상승 과정을 ‘The Ascent of Man’이라는 용어로 나타낸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은 분명 과학사를 다루고 있으나 여기서의 과학은 가장 광범위한 의미에서의 과학이며 자연과학이라는 영역을 뛰어넘어 예술, 문학, 종교, 기술, 건축 등 문화적 진화 일반까지를 아우른다. 부싯돌에서 기하학에 이르고, 건축물의 아치에서 상대성이론에 이르는 발명과 발견은 자연을 이해하고 또 그것을 지배하는 인간의 특수한 능력의 표현임을 보여준다.
그러나 책 속에 담겨 있는 지적 세계의 방대함보다 우리를 더욱 매혹하는 것은 브로노우스키의 유려한 문학적 비유와 함께 신비로울 만큼 유연하고 유기적으로 서로 관계를 맺고 있는 그의 관념과 지식들의 ‘체계’이다. 따라서 이 책은 단지 문화적 진화의 ‘역사’만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철학, 즉 브로노우스키에 따르면 현대판 ‘자연철학’을 제시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여타의 과학사 책과 구별된다.
과학의 경계를 넘어선 과학자
제이콥 브로노우스키
자연과학뿐 아니라 인문·사회과학 분야에서도 놀라운 능력을 발휘한 20세기의 르네상스인으로 꼽히는 과학자이다. 1908년 폴란드에서 태어나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로 이주했으며, 1920년에 다시 런던으로 옮겨 영국에 귀화하였다.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최고의 성적을 받으며 수학을 공부했고, 기하학과 위상기하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뒤 헐대학교에서 강의했다.
1942년 대학을 떠나 영국 국무부 군사연구소에서 근무하던 그는 1945년 원자폭탄으로 폐허가 된 나가사키에 도착한 순간 삶의 일대 전기를 맞이한다. 그는 그 순간이야말로 우주적인 한순간이었고, 그것이 “전 인류적 경험”이었다고 밝혔다. 이후 생명과학으로 관심의 영역을 넓힌 그는 1964년 생물학과 인간학의 통합적 연구를 목표로 세운 소크생물학연구소의 창립 멤버로 참여하여 그곳의 선임연구원이 되었다.
일찍이 TV 미디어의 힘을 인식한 그는 종종 과학 프로그램에 출연하거나 직접 기획을 하면서 과학의 사회적 저변 확대에 힘을 쏟았다. 그리고 13부작으로 구성된 BBC의 〈인간 등정의 발자취The Ascent of Man〉에 평생에 걸친 연구와 사유의 모든 결정을 쏟아부었다. 이 시리즈는 1973년 전 세계적으로 방영되었으며, 그 내용은 같은 해 책으로 출간되어 상당 기간 베스트셀러의 위치를 지켰다. 그러나 이 시리즈에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바친 그는 결국 이듬해인 1974년에 세상을 뜨고 만다.
이 책에는 브로노우스키의 모든 역사와 혼이 담겨 있다. 분명 과학사를 다루고 있으나, 여기서의 과학은 자연과학의 영역을 이미 초월해 있다. 예술, 문학, 종교, 기술, 건축 등 인간의 문화적 진화 일반까지 아우르는 이 책은 자연을 이해하고 그것에 적응하며, 또한 그것을 지배한 인간 능력의 도저한 발달의 역사를 담고 있다.
마추픽추는 1500년경 잉카 제국의 절정기에 건설되었다. 이들의 계단식 농경문화의 핵심에는 관개시설이 있으며 이를 관리하기 위해 강력한 중앙의 권위가 요구된다. 그 권위의 통신망은 도로, 다리, 통신이라는 3개의 고리가 지탱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리 아래에는 아치가 없었으며 통신은 문자로 씌어지지 않았고, 도로에는 바퀴 달린 수레가 없었다. …… 인류의 기념비들은 군왕들과 종교, 영웅들과 신조를 찬양하기 위해 세워졌다고 생각되어 왔으나, 궁극적으로 찬미되는 것은 그것을 건설한 사람이다. 그러므로 모든 문명의 위대한 신전 건축은 개인이 곧 인류와 하나가 됨을 표현한다. / 돌의 결
마야인들은 유럽보다 훨씬 앞선 수체계(그들에게는 ‘0’의 기호가 있었다)를 가지고 있었지만, 간단한 것을 제외하고는 별의 운동을 작성한 적이 없었다. 왜 못했을까? 한 가지 분명한 이유는 남반구의 하늘에 북극성이 없다는 데 있다. 하지만 그들에게 천문학이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위대한 상상력, 즉 바퀴 같은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천체가 축을 중심으로 돈다는 생각은 콜럼버스가 출항할 때 그에게 영감을 주었고, 그 축은 둥근 지구였다. / 별의 사자
제임스 브린들리는 열일곱 살에 물레방아를 만들며 자수성가의 생애를 시작했다. 또한 공장과 광산의 토목공사를 하러 다니며 운하들을 독자적인 계획에 따라 조사하여 400마일이나 되는 운하를 건설, 영국 전역에 수로망을 형성했다. 운하망을 건설하는 데는 두 가지 요소가 두드러지는데 이것이 산업혁명 전반의 성격을 규정한다. 하나는 산업혁명을 이룩한 사람들이 실용적이었다는 사실이며, 다른 하나는 새로운 발명, 발견들이 일상생활에 이용되었다는 점이다. 운하를 통해 잡다한 물건들이 운반되었고, 촌락에서 생산된 물건들은 전국적인 교역이 가능해졌다. …… 동력은 과학의 새로운 관심사, 어떤 의미로는 새로운 사상이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과학은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탐색하는 일에만 전념했지만 이제는 자연을 변형시켜 동력을 얻으며, 한 형태의 동력을 다른 형태의 동력으로 전환한다는 ‘에너지’에 대한 근대적 개념이 과학의 첨단에 나타났다. / 동력을 찾아서
물리학의 새로운 사상들은 괴팅겐 대학을 중심으로 퍼져 나갔다. 1921년 막스 보른이 물리학 과장으로 지명되자, 그는 원자물리학에 흥미를 가진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일련의 학술대회를 시작했다. 보른과 함께 여기서 전성기를 보낸 이가 하이젠베르크이다. 당시에는 전자가 입자인지 파동인지를 두고 한창 논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1927년 초 하이젠베르크는 전자의 성격을 새롭게 규정했다. 그는 전자가 입자이기는 하나 단지 한정된 정보를 주는 입자라고 했다. 이를테면 전자의 속도와 위치는 양자의 허용 한도 내에서 제한되도록 맞춰져 있다. 이는 과학사에 있어서도 위대한 과학적 사상의 하나이며, 그는 이를 ‘불확정성 원리’라고 불렀다. / 지식과 확실성
19세기 인간의 진보는 오스트리아 빈 대학에 그레고르 멘델이 도착함으로서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갔다. 농부의 아들로 수도사가 된 멘델은 교사로서 정식 학위를 받기 위해 빈 대학에 갔다. 하지만 시험관은 그가 ‘지식에 있어서 필수적인 명확성과 통찰력이 결핍되어 있다’고 판정하고 그를 낙제시켰다. 1853년 그가 빈에서 돌아왔을 때 그는 서른한 살의 실패자였다. 멘델은 빈에서 돌아온 지 2~3년 후인 1856년경부터 8년간 완두콩 실험을 시작한다. 그는 실험을 위해 완두콩의 서로 다른 일곱 개의 차이점을 선택했다. 그러나 같은 염색체에 두 개의 유전자를 갖지 않고서는, 그러므로 최소한 부분적으로 연결시키지 않고서는 일곱 개의 다른 특성을 조사할 수가 없었다. 그 당시 누구도 유전자는 생각해본 적도 없고, 연결에 대해 들어본 적도 없었다. 하지만 그의 원고는 매 페이지마다 모든 것이 현대 유전학이다. / 이어지는 세대
제이콥 브로노우스키
‘인간의 얼굴을 한 과학’을 찾기 위해 전 생애를 바친 20세기의 진정한 지식인. 수학자, 희곡작가, 생물학자이자 과학사학자이다. BBC의 다큐멘터리 〈인간 등정의 발자취The Ascent of Man〉의 진행자와 동명의 책 저자로 널리 알려졌다.
1908년 폴란드에서 태어나, 1차 대전 중에 독일로 이주했으며, 박해를 피해 1920년에 가족이 모두 영국 런던으로 이주했다.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하여 박사학위를 받고, 헐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 후 영국 국토안전부에서 일하였고, 2차 대전 중에는 영국 공군을 위한 폭격전략을 수학적으로 구현하는 작업을 했다. 영국 석탄국 소속 연구소 소장으로 근무하면서,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의 원폭투하 소식을 듣고, 전공을 물리학에서 생물학으로 바꾸었다. 1945년 원자폭탄의 효력을 연구하기 위해 일본을 방문했다가 재앙과 같은 끔찍한 실상을 목격한 뒤 군사연구를 중단했다. 그때부터 과학의 도덕적인 측면에 관심을 갖고 생명과학과 인간성 탐구로 연구 방향을 선회하면서 과학의 인간적 측면을 감동적으로 표현하는 작업에 주력했다.
1964년부터 죽을 때까지 미국 샌디에이고의 소크 생물학 연구소에 근무하면서 생물철학 분야에서 독창적인 연구를 수행했다. 주요 저서로 《인간을 묻는다》 《과학과 인간의 가치》 《인간 등정의 발자취》 《서양의 지적 전통》 등이 있다.
인간 등정의 발자취 - 제이콥 브로노프스키
20세기엔 유명인사들이 주도하는 장편 다큐멘터리가 유행이었다. 가장 유명했던 건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였다. 그 외에도 앨빈 토플러, 앨리스테어 쿠크, 제임스 버크, 케네스 클락, 제이콥 브로노프스키 같은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 중 일부는 책이 원작이었고 몇몇은 나중에 책으로 만들어졌다.
세이건의 명성과 영향력이 더 높았지만 나는 버크와 브로노프스키도 그만큼 좋아했다. 나는 논픽션 책을 쓸 때 여전히 버크의 스토리텔링을 모방하는 경향이 있다. 1973년 나온 브로노프스키의 <인간 등정의 발자취>는 <코스모스>만큼이나 좋아했던 작품이었고 그다음 해에 나온 책 역시 자주 읽었다. 세이건이 교양이 풍부한 과학자였다면 브로노프스키는 수학자로 출발했지만 두 문화를 커버하는 르네상스맨이었다. <코스모스>가 우주의 역사 안에서 인간을 보았다면 <인간 등정의 발자취>는 과학자 입장에서 보다 가까이 다가가 인간의 역사를 바라본다. 정치가와 왕족 대신 과학자와 엔지니어가 주도하는 역사이다.
<인간 등정의 발자취>의 문장 상당부분은 즉흥적이었다. 책 내용이 다큐멘터리 촬영 현장에서 대본 없이 읊은 독백을 받아적은 것이라는 말이다. 이 책, 그리고 다큐멘터리에서 가장 자주 인용되는 부분도 브로노프스키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학살 현장을 보고 느끼면서 독백한 것이다. 이 현장성은 텍스트로 옮겨진 뒤에도 여전히 남아 있다.
브로노프스키는 이 책이 나온 해에 죽었다. 그 뒤로 인류의 공포 대상은 핵전쟁 위험에서 기후변화와 생태계 파괴로 옮겨갔다. 하지만 자신이 절대 지식을 갖고 있다고, 신의 지식을 갖고 있다고 믿는 어리석은 인간들이 지구와 인류에게 얼마나 끔찍한 일을 저지를 수 있는지 경고하고 가장 인간적인 형태로서 과학의 가치를 주장했던 이 책 내용은 그 어느 때보다 유효하다.
인류의 문화적 진화의 원동력인 인간 지성의 발달사이다. 인류의 기원에서부터 청동기와 철기,중세,근대를 거쳐 현대까지 과학,예술,철학,종교,건축 등이 어떻게 인류 문명을 구축해왔는지 살폈다.
원시 인류의 진화부터 현대 유전학의 발전까지 인류가 이룩한 과학 도전의 위대한 역사를 보여 주고 있으며 과학, 기술, 예술, 문학, 종교의 영역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20세기 르네상스인 저자가 펼치는 인간 지성의 위대한 발달사인 것이다. 저자는 자연 이해의 궁극 목표가 인간성의 이해이며 자연 속에서의 인간조건의 이해라고 믿기 떄문이다.
보잘 것 없는 원시인에서 현대의 인간으로 진화해서 내려온 과정을 다윈은 그의 저서 '인간의 유래The Descent of Man'로 집약한 반면, 인간이 현재의 모습으로 되기까지의 과정을 놀라운 발전적 향상으로 본 저자는 저서를 '인간등정의 발자취The Ascent of Man'이라 이름붙인 것이다
'모든 동물은 존재의 흔적만을 남기지만 오직 인간만이 창조의 흔적을 남긴다', ‘손은 정신의 칼날’ 등 무수한 명언이 가득한 책이다.
또한 포교(propagation)에서 지금의 프로파간다(propaganda, 선전)라는 낱말 유래나 운하건설 기술의 선구자 브린들가 항해자(navigator)철자를 몰라 영국은 지금도 도랑이나 운하 파는 토역꾼을 'navy'라 부른다거나, 존 던의 '황홀The Extasie'의 '사랑의 신비는 영혼 속에서 자라나지만, 그래도 육체는 사랑이 씌어 있는 책인 것을'을 인용하면서 정신적인 사랑과 육체적인 사랑이 분리될 수 없다고 하였다.
추천서로 많이 언급된 책이며, BBC방송의 기획시리즈 대본을 바탕으로 한 이 책의 미덕은 내용도 내용이거니와 미국에선 고교 교재로 쓰일 정도이다.
책이 너무 재미 있고 이해하기 쉽게 쓰였으며 소위 학문의 통섭을 보여주는 필독서이다. 본 서외에 과학 사회학의 명저인 '과학과 인간의 미래'도 읽어야 할 필독 목록에 속한다
ㅇ 예술과 과학은 동물이 할 수 있는 영역 밖에 있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특유의 행동이다. 또한 여기서 우리는, 그 둘이 동일한 인간의 능력에서 나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능력이란, 미래를 그려보고 장차 일어날 일을 내다보며, 그 예상을 계획하여, 우리의 머릿속에 투사되고 돌아다니는 이미지들로 표현하거나, 혹은 어느 동굴의 어두운 벽이나 텔레비전 화면 위에 빛을 쏘아 재현하는 능력을 말한다. 또한 우리는 여기서 상상력의 망원경을 통하여 보고 있다. 상상력이란 시간상의 망원경이며, 과거의 경험을 되돌아보는 것이다. 이 벽화를 그린 사람들,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은 그 망원경을 통하여 앞을 내다보았다. 문화적 진화란 본질적으로 상상력의 끊임없는 성장과 확대이므로, 그들은 인간의 등정을 따라 앞을 내다보았던 것이다
ㅇ 성서는 기이한 역사여서 일부는 전설이고 일부는 기록이다. 물론 역사는 승자들에 의해 씌여지는 것이고, 이스라엘 민족이 이곳을 돌파해 들어왔을 때 역사의 담당자가 되었다. 성서는 그들의 설화다. 즉 성서는 유목과 목축을 주업으로 하다가 농경 부족으로 전환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한 민족의 역사다
ㅇ 우리는 인간의 클론을 만들어야 할까? 아름다운 어머니의 혹은 똑똑한 아버지의 복사물을 만들어야할까? 물론 그렇지 않다. 내 견해는 다양성이 새명의 숨결이므로 우리는 우리의 환상 -심지어 우리의 유전적 환상- 을 사로잡는 어떤 단일한 형태를 만들기 위해서 다양성을 포기해서는 안된다. 클론은 한 가지 형태로 고정시키는 것이며, 그것은 전 창조의 흐름 -무엇보다도 인간 창조의 흐름- 을 어기는 것이다. 진화는 다양성을 기초로 해서 이루어지고 또 다양성을 창조한다. 모든 동물 중에서도 인간이 가장 창조적인 이ㅠ는, 인간이 가장 큰 다양성을 가지고 있으며 또 그것을 표현하기 때문이다. 우리를 단일화하려는 모든 시도는 생물학적으로든, 감정적으로든, 지적으로든, 인간을 정점에 이르게 해준 진화의 추진력에 대한 배반인 것이다
인간 등정의 발자취
“인간의 딜레마에는 두 가지 요소가 있다. 하나는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믿음인데 그런 원격조종식(push-button)의 철학, 인간의 고뇌를 일부러 외면하는 그런 자세가 전쟁 무기 속의 괴물로 변했다. 다른 하나는 인간 정신에 대한 배반이다. 즉, 정신을 폐쇄하고 한 나라, 한 문명을 유령의 군단, 복종하는 유령 혹은 고뇌하는 유령의 군단으로 이끌고 가는 교조의 주장이다.
과학이 인간을 비인간화하고 수치화할 것이라는 말이 있다. 그것은 거짓말이다.
아우슈비츠의 수용소와 화장터가 여기 있다. 이 연못 속에 무려 400만명의 재가 흩어졌다. 그것은 가스로 행해진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만 때문에 일어났다. 도그마에 의한 것이며 무지에 의해 일어난 것이다. 인간이 현실적으로 시험해보지도 않고서 절대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믿을 때 이런 식으로 행동한다. 인간이 신의 지식을 갖고자 할 때 이런 짓을 하는 것이다.(…)
과학은 지식의 그야말로 인간적인 형태이다. 우리는 항상 알려진 것의 첨단에 서 있으면서 바라는 것을 향해 나아가고 싶어 한다. 과학에서의 모든 판단은 오류의 가장자리에 서 있는 것이며 개인적인 것이다. 우리는 잘못을 저지르기도 하지만 과학은 우리가 알아낼 수 있는 것에게 바치는 제물인 것이다.
우리는 절대 지식과 절대 힘에 대한 욕심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리는 원격조종식의 명령과 인간의 실행 사이의 거리를 없애야만 한다. 우리는 인간을 어루만져야 하는 것이다.”
하늘 아래 절대적인 것은 없다. 하지만 사람들은 절대적인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착각 속에서 살아간다. 절대적으로 ‘옳은’ 것의 이면에는 절대적으로 ‘그른’ 무언가가 반드시 존재해야 하기에, 절대성을 인정하면 내 편과 네 편이 명확히 갈린다.
세상 모든 다툼은 여기에서 시작된다. 절대선(善)을 상정하는 순간, 타도해야 하는 절대악(惡) 역시 형성되기 때문이다.
불완전하고 모순된 인간 스스로가 절대적으로 옳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가장 불경한 짓이 아닐까.
‘인간 등정의 발자취’…광속으로 달려온 인류문명 역사
타일공인 시몬 로디아는 42세가 되던 어느날 갑자기 뒷마당에 닭장용 철사와 철도 침목,깨진 유리 조각으로 탑을 쌓기 시작한다. 작품을 완성했을 때 그의 나이 75세. 33년 간 로디아가 쌓아올린 탑이 바로 로스앤젤레스의 명물 ‘와츠 타워스’다. 평범한 타일공이 어떻게 이처럼 놀라운 구조물을 만들었을까. 수수께끼의 답은 단순했다. 타일공의 손에는 20세기 공학이 오롯이 축적돼 있었다.
영국의 과학자 제이콥 브로노우스키가 1973년 쓴 ‘인간 등정의 발자취’는 인류의 기원에서부터 청동기와 철기,중세,근대를 거쳐 현대까지 과학,예술,철학,종교,건축 등이 어떻게 인류 문명을 구축해왔는지 살폈다.
저자는 두가지를 전제했다. 인간은 동물과 다르다는 것,그리고 인류는 ‘틀림없이’ 진보해왔다는 것. 한마디로 인류 역사는 ‘인간 등정(the Ascent of Man)’의 역사라는 것이다. 문명 진보에 대한 찬사를 담은, 이런 가정은 일견 시대착오적으로 보인다. ‘역사는 발전하는가’를 두고 현대 철학은 지금 회의를 거듭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30년의 시차에도 불구하고 르네상스적 언어로 개괄한 브로노우스키의 문명사는 여전히 매력적이다. 과학과 예술이 분리된 것은 근대 이후. 과학과 예술,철학 모두 인간이 세계를 분석하고 재구성해나가는 방식이라고 믿었던 작가는 ‘예술이 곧 과학이고,과학이 곧 철학이던 시대의 언어’로 문명사를 재통합한다.
진보는 단숨에 이뤄지지 않았다. 모든 것은 “하나의 봉우리가 또 다른 봉우리의 발판이 되는” 유기적 여정이었다. 이를테면 르네상스 미술을 발전시킨 원근법은 단지 중세 미술만 바꾼 것이 아니었다. 원근법은 신의 관점으로 사물을 배치하는 중세의 예술관을 붕괴시켰고,수학을 시간과 연동되는 역동적 사유양식으로 발전시켰다. ‘눈에서 빛이 나오는 게 아니라 물체에서 빛이 나온다’는 이슬람 물리학자 알하젠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원근법은 예술을 넘어 과학과 종교,세계관의 붕괴로 이어졌다.
18세기 산업혁명과 프랑스 혁명,낭만파 시,열역학 사이에도 공통점이 있다. 바로 에너지다. 이 시기 과학자들은 증기와 석탄,바람 등 자연물이 에너지의 한 형태임을 깨닫기 시작했다. 석탄을 증기로 바꿔 에너지화한 것. 증기 기관차는 산업혁명을 촉발하고 도시를 발전시켰으며 정치적 격변을 불러왔다. 낭만파 시와 음악에 넘쳐나는 폭풍과 질풍노도의 이미지는 18세기를 풍미한 자연 에너지로부터 영감받은 것이다.
이외에도 브로노우스키는 인류의 발전을 10여가지 계기로 나눠 소개한다. 작물 재배와 가축 사육이 가져온 정착 문화는 최초의 대격변이었다. 아시아의 스키타이족은 말을 길러 기마 부대를 구성,전쟁의 판도를 혁명적으로 바꿔놓았다. 반인반마(半人半馬)의 형상을 한 켄타우로스는 기마병에 대한 그리스인의 공포를 드러낸 것이다.
나무와 돌을 깎기 시작했을 때 인류는 다시 한번 진보했다. 브로노우스키는 ‘사물을 쪼개고 깎는 것은 흙을 뭉쳐 토기를 빚는 것과 근본적으로 다른 일’이라고 말한다. 깎는 행위를 통해 인간은 사물의 본성을 파헤쳐 구조와 법칙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돌덩이 내부에 있는 형상을 망치로 해방시킨다’고 생각했던 조각가 미켈란젤로처럼 인간은 깎으며 분석하고 이때 발견한 법칙을 토대로 사물을 재구성했다. 연금술 역시 금속의 숨겨진 구조를 찾아냈다는 점에서 인간 등정의 일보였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은 20세기 최대의 사건이었다. 그의 이론은 A와 B가 각자의 시공간을 갖는다는 데서 출발한다. 둘은 광선을 통해 서로의 관점을 소통할 뿐 공유하지는 못한다. 빛을 시간에,시간을 공간에 통합시킨 아인슈타인의 과학은 현대 물리학의 출발이 됐다. 하지만 ‘상대성 이론’이 현대 철학과 예술에 가져온 격변은 역시 시차 때문이겠지만, 아쉽게도 책에 빠져있다.
혹 브로노우스키의 작업을 ‘인문학의 언어로 쉽게 푼 과학사’로 생각한다면 오해다. 책에서 과학은 자연과학의 범위를 뛰어넘는 광의의 과학이며 예술과 문학,종교,기술,건축 등 ‘문화적 진화’를 망라한다. 저자는 이들을 엮어 하나의 체계,스스로 ‘자연 철학’이라고 부르는 구조를 세우고자 했다.
1908년 폴란드에서 태어나 수학과 생물학을 전공한 브로노우스키는 세계적 과학자이자 시인이며 희곡작가,평론가이기도 하다. 책은 13부작 BBC 다큐멘터리에 참여하며 쓴 글을 중심으로 1973년에 출간돼 베스트셀러가 됐다.
글은 가깝게 당겨 소개할 것과 넓게 관조할 것 사이를 오가며 유연하게 원근을 조절한다. 그 덕인지 1만2000년을 13가지 테마로 개괄하면서 작가는 한번도 겅중대지 않는다. 지적 공력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덧붙여,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과 열역학 제2법칙 등 난해한 과학 이론에 대해 이만한 안내글도 찾기 쉽지 않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