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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영공원(育英公院)1886-헐버트, 최초 관립학교

Jobs9 2020. 8. 31.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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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 중인 헐버트, 당시의 영어 교사 대부분은 일류대학 출신의 서양인

육영공원(育英公院) 

1886년(고종 23)에 설립되었던 관립학교.

우리 나라 최초의 관립 근대학교로서 1894년에 폐교될 때까지 양반고관 자제들을 수용해 근대교육을 실시해 인재를 키웠다. 1883년 미국에서 돌아온 보빙사(報聘使) 민영익(閔泳翊) 일행은 근대화를 위한 몇 가지 건의를 하였다.
이 때 근대문명 보급을 위한 근대학교 설립을 제기하였다. 또한 보빙사 수행원으로 해외근대문명을 견문할 수 있었던 홍영식(洪英植)·서광범(徐光範)·변수(邊燧) 등 개화정객들의 노력이 있어 마침내 육영 공원설치의 윤허가 내려졌다.
그러나 이 해에 갑신정변이 일어나 육영공원의 개교는 지연되었다. 그러다가 미국측에 요구한 3명의 교수요원이 도착한 1886년 9월 23일에야 개교하였다.
육영공원의 학칙인 내부의 계사(啓辭)에 의하면 이 학교의 설립 목적은 “현금 각국 교제에 있어 어학(語學)이 가장 긴급한 일이다. 따로 공원(公院)을 설립하고 연소 총민한 자를 선택해 이습(肄習)”하게 하는 데 있었다.
그 편성은 문무 현직관료 중에서 선발된 학생을 수용하는 좌원(左院)과 양반자제에서 선발된 학생을 수용하는 우원(右院)의 두 반으로 되어 있었고 학생 정원은 35명이었다. 교수들은 모두 미국에서 초빙한 미국인들이었다.
1894년까지는 미국인 헐버트(Hulbert,H.B.)·길모어(Gilmore,G.W.)·번커(Bunker,D.A.), 번커가 사임한 뒤에는 영국인 허치슨(Hutchison,W.F.)과 핼리팩스(Hallifax,T.E.)가 폐교될 때까지 교수직을 담당하였다.
교수 과목은 주로 영어에 치중했으나, 독서·습자·학해자법(學解字法)·산학(算學)·사소습산법(寫所習算法)·지리·학문법 등의 초학과정을 거쳐 대산법(大算法)·제반학법제반역학자(諸般學法諸般易學者)·만물격치(萬物格致)와 각국의 언어·역사·정치 등을 학습하게 되어 있었다.
1894년 정부의 재정난으로 운영이 어렵게 되자 페교하고 영어학교를 신설해 영어교육만을 담당하는 기관으로 바뀌었다.

육영공원은 우리 나라 최초의 관립 근대교육기관이나 정부고관자제만을 수용하는 신분적 제한과 어학 교육을 주로 하는 교육 내용의 한계, 외국인 교수들에 의해 교육되는 특수학교였기 때문에 민족사회에 뿌리내리지는 못하였다. 이 점에서 최초의 사학 근대학교인 배재학교(培材學校)와 여러 모로 대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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