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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십자가형, 스테파노 순교, 유대인, 그리스도인, 십자가, 밀라노 칙령

Jobs 9 2025. 1. 3.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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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 그리스도인, 십자가

이스라엘의 도로에는 십자형(+) 교차로가 없다. 교차로가 필요할 경우 중앙에 화단 등을 설치, 차가 회전하며 진행하도록 로터리를 만든다. 물론 관광객이나 이방인이 많이 찾는 예루살렘이나 텔아비브 등 교통이 혼잡한 곳에서는 십자형 교차로가 간혹 눈에 띄긴 하지만 유대인들이 주로 거주하는 지역에는 어김없이 로터리다. 
유대인들은 그리스도교를 연상시키는 십자형 문양에 대해 이처럼 심한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다. 심지어는 학교에서 수학을 배울 때도 세계 공통으로 사용하는 더하기 기호(+)를 쓰지 않고 ‘⊥’기호를 사용한다. 또 환자를 수송하는 앰뷸런스에도 적십자 기호가 아닌, 다윗별이 그려져 있다. 만약 커다란 십자 문양이 그려진 가방을 메고 이스라엘을 순례한다면(특히 예루살렘 통곡의 벽을 방문한다면) 유대인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을 각오, 단단히 해야 한다. 
유대인들이 십자 문양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가지는 것은 왜일까. 상처 때문이다. 사과를 깎다가 피부가 칼에 살짝 스치는 그런 상처가 아니다. 가슴을 찌르는, 폐부를 도려내는 그런 상처다. 

처음에는 유대인들이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했다. 스테파노의 순교(사도 7,54-60)가 대표적 사례다. 당시 유대인들이 정기적으로 바치던 기도문에는 “진노를 일으키시고 분노를 쏟아 부으시어 적을 쳐부수시고 원수를 없애소서”(집회 36,8-9)라는 부분이 있었다. 이 기도는 당초 사두가이파를 향한 것이었지만, 서기 90년경에 이르면 그리스도인들을 지칭하는 것으로 개작된다. 그리스도인들은 유대인 회당에서 추방됐으며, 일부 지역 그리스도인들은 유대인에 의해 집단 학살당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힘의 우위가 313년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밀라노 칙령 이후, 그리스도교(이하 교회)가 점차 로마 국교로 자리 잡으면서 뒤집어지게 된다. 교회가 유대교보다 우위에 서게 된 것이다. 
당시 초기 교회 신앙인들은 유대인들에 대한 반감이 강했다. 예수가 일부 유대인 지도층을 ‘악마의 자녀’(요한 8,44)라고 지칭한 것을 두고 당시 신앙인들은 보편적 의미로 받아들였다. 그리스도교 신앙인들은 유대인들이 “그 사람의 피에 대한 책임은 우리와 우리 자손들이 질 것이오”(마태 27,25)라고 말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믿었다. 유대인들은 점차 고립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변화에 유대인들은 위축됐으며, 강한 불안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물론 교회가 처음부터 유대교에 대한 탄압을 조직적으로 전개한 것은 아니었다. 사실 교회는 ‘유대인들이 예수를 죽인 민족이기에 벌을 받아야 한다’는 주장을 하지 않았다. 그저 “유대인들이 예수의 기적과 삶을 직접 체험했으면서도 그 의미를 깨닫지 못했다”는 차원의 인식이 대부분이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354-430)는 “유대인들의 존재 자체는 하느님의 계획의 일부”라고 까지 말했다. 
하지만 법보다는 주먹이 가깝다. 4세기 초부터 로마 제국 전 지역에서 유대인들에 대한 이유없는 반감이 생겨났다. 많은 그리스도교 설교가들이 유대인들은 박해를 받아 마땅하다고 말했고, 민중들은 거기에 동조했다. 까다로운 율법에 대한 맹목적 준수와 할례, 생소한 요리법 등은 유대인들을 ‘독특하고 유별난 민족’으로 보게 했다. 유대인들 몸에는 꼬리가 있다든가, 독특한 냄새가 난다거나, 여자들은 늘 하혈로 고통받는다는 등 헛소문도 유럽 전역으로 퍼졌다. 심지어 유대인들이 악마와 소통한다는 소문도 있었다. 문제는 많은 신앙인들이 이를 사실로 믿었다는 점이다. 유대인들은 멸시를 받았으며, 공직에도 나가지 못했다. 유대인 마을은 공공연히 습격과 방화의 대상이 됐다. 
로마의 황제들도 유대인 박해에 앞장섰다. 7세기에 “로마는 할례를 받은 이들에 의해 파멸될 것”이라는 소문이 퍼지자, 로마 황제는 유대인들에게 강제적으로 세례를 주었으며 이를 어길 경우 사형에 처했다. 이렇게 유대인들은 혹사당했고, 박해를 받았으며 재산이 몰수되거나 턱없이 많은 세금을 내야 했다. 심지어는 무역에 종사하는 것조차 금지 당했다. 
유대인들은 이제 그리스도교라는 이름만 들어도 치를 떨게 된다. 이 시점에 유대인들에게 새로운 희망이 싹튼다. 바로 이슬람 세력의 성장이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아랍인들은 구세주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아랍인들의 유럽 침공에 적극 협력한다. 실제로 711년 이슬람이 스페인을 침공, 점령하는데 유대인들의 협력은 결정적이었다. 이러한 공로로 유대인들은 이슬람 제국에서 번영을 누릴 수 있었다. 「유대인의 역사」를 쓴 폴 존슨에 따르면 서기 900년경 이슬람 국가가 된 스페인에는 44개 이상의 도시에 부유하고도 안정적인 유대인 공동체가 있었다. 
7~8세기에 걸쳐 순식간에 서양 세계의 절반을 정복했던 이슬람 전사들은 안정적 자금원인 유대인들이 없어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 게다가 유대인들은 모하메드를 십자가에 매달지 않았다. 유대교는 또 그리스도교처럼 공격적인 교리를 가지고 있지도 않았다. 그리스도교는 복음을 아랍인들에게 전하려 했지만, 유대인들은 전교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식사와 정결에 대한 규정들도 유대교와 이슬람이 비슷했다. 이슬람과 유대교는 이질적인 종교가 아니었다. 그래서 한동안 유대인들은 이슬람 궁전에서 의사와 관료로 일하는 등 우호적 관계를 맺을 수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유대인들을 바라보는 아랍인들의 눈빛이 변하기 시작한다. 아랍인들은 그리스도교 로마 제국에 향했던 칼을 이제는 유대인들을 향해 휘두르기 시작한다. 



스테파노 순교

 

중국 금(金)나라의 동해원(董解元)이 지은 「서상」(西廂)에 이런 구절이 있다. “참으로 이른바 좋은 시기는 얻기 어렵고, 좋은 일을 이루려면 많은 풍파를 겪어야 한다.”(眞所謂佳期難得, 好事多磨) 

그렇다. 성난 파도가 훌륭한 뱃사람을 만든다. 잔잔한 바다만 경험해서는 절대로 1급 항해사가 될 수 없다. 쇠망치와 불의 단련을 받고 나서야 명검(名劍)이 탄생한다.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 그렇게 굳은 땅에 물이 괸다. 마찬가지로, ‘고난’(수난)이 승화될 때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을 볼 수 있는 ‘영적 도약’(부활) 또한 가능하다. 이것이 ‘고통의 신비’다. 이제 막 걸음마를 떼기 시작한 교회에 그 고통의 신비가 찾아온다.  

출발은 환희의 신비였다. 예수 그 이후, 초기 교회는 급속히 성장한다. “주님께서는 날마다 그들의 모임에 구원받을 이들을 보태어 주셨다.”(사도 2,47) 하지만 좋은 일은 많이 일어나도 문제다. 교회는 급격히 늘어난 신자 때문에 고민이었다. 처음에는 사도들이 직접 관리를 맡았지만 신자들이 늘어나면서 그것이 불가능해졌다. 그래서 사도들은 협조자(부제) 7명을 뽑았다. 그들의 이름은 스테파노, 필리포스, 프로코로스, 니카노르, 티몬, 파르메나스, 니콜라오스다.(사도 6,5 참조) 여기서 우리는 스테파노에게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가 바로 최초의 순교자이기 때문이다.  

스테파노는 열정적으로 교회 일에 임했다. 그런 그를 유대 사회가 가만히 보고만 있지 않았다. ‘고통의 신비’가 시작된다. 스테파노가 최고 의회에 끌려 왔다. 고발장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유대 사회를 붕괴시키려 한 죄.’ 하지만 스테파노는 목숨의 위협을 받는 상황에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천사처럼 보이는 얼굴(사도 6,15)로 대사제 및 유대교 원로들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한다. “목이 뻣뻣하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이여, 여러분은 줄곧 성령을 거역하고 있습니다.”(사도 7,51) “여러분은 율법을 받고도 그것을 지키지 않았습니다.”(사도 7,53)

스테파노의 말은 유대인들에게 일종의 모욕으로 들렸다. 변호사에게 ‘당신은 법을 모른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수학 교사에게 수학을 모른다고 하고, 육군 장성에게 소총 사용법을 모른다고 하면 얼마나 화가 나겠는가. 

분노한 유대인들이 달려들어 스테파노를 포박했다. 그리고 성 밖으로 끌고가 돌을 던지기 시작했다. 피가 튀었다. 이때 스테파노의 입에서 터져 나온 것은 기도였다. “주 예수님, 제 영을 받아 주십시오.”(사도 7,59) 평판이 좋고 지혜와 믿음, 성령이 충만했던 스테파노(사도 6,3-5 참조)는 그렇게 잠들었다. 

사도들도 무사하지 못했다. 요한의 형제였던 대 야고보 사도의 머리가 잘렸다.(42년) 끝까지 예루살렘에 남아 교회를 이끌던, 초대 기둥 중 하나(갈라 2,9)였던 알패오의 아들(마태 10,3) 소 야고보 사도도 모세의 법을 어겼다는 죄목으로 돌에 맞아 죽었다.(62년) 베드로 사도가 기적적으로 감옥에서 탈출한 것(사도 12,6-19 참조)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이밖에도 예수 그 이후, 교회가 유대인들로부터 박해와 차별, 고립을 겪었던 정황은 성경 곳곳에 나타나고 있다.(사도 17,5; 24,5 참조) 

“그리스도의 이름 때문에 모욕을 당하면 여러분은 행복합니다. 영광의 성령 곧 하느님의 성령께서 여러분 위에 머물러 계시기 때문입니다. … 그리스도인으로서 고난을 겪으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히려 그 이름으로 하느님을 찬양하십시오.”(1베드 4,14-16) 유대인들의 박해로 인해 신앙인들은 뿔뿔이 흩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 과정에서 교회의 기반이었던 예루살렘 공동체는 와해 된다. 그럼에도 성령에 충만했던 사도들과 신자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들은 “행복하여라, 지금 우는 사람들! 너희는 웃게 될 것이다”(루카 6,21)라는 약속을 믿고 끊임없이 복음을 선포했다. 

하지만 이러한 믿음을 코웃음 치며 바라보던 사람이 있었다. 사울(훗날의 바오로 사도)이었다. 바리사이파이자 로마 시민권을 가진 지식인이었던 그는 스테파노와 사도들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스테파노(가톨릭), 스데반(개신교)(그리스어: Πρωτομάρτυρας Στέφανος, 영어: Saint Stephen, 5년 ~ 34년)

 

기독교 역사상 최초 7명 부제(집사)이자 순교자다. 기독교 성인으로 로마 가톨릭에서 12월 26일, 동방 정교회에서 12월 27일, 성공회에서 12월 26일에 그의 순교를 기억한다. 스데파노라는 이름은 그리스어로 ‘왕관(면류관)’이란 뜻이 있다. 미술작품에서 그는 흔히 달마니카와 중백의, 대각선으로 한 개 영대를 두른 부제복 차림으로 묘사한다. 


내분을 겪던 초대교회
사도행전에 따르면 스데파노는 첫 번째 교회인 예루살렘교회에서 선출한 일곱 부제(Diakonos) 중 한 사람이었다. 로마가톨릭교회는 예수님의 12제자 이외에 처음으로 선출된 일곱 부제가 가톨릭 사제로 인정하고 있으며, 로마가톨릭 초대교황은 베드로 사도로 추정하고 있다. 부제들은 사도들의 목회를 도와서 최초의 그리스도인들, 특히 과부들에게 매일 음식을 나누어주는 사회선교를 맡았다. 사도들은 고아와 더불어 이스라엘 사회에서 가난한 사람들로 이해하는 과부들에게 매일 음식을 나누어주는 일을 했는데, 헬라파 기독교인과부들이 그러니까 해외에서 살다가 고향에 정착한 과부들이 음식을 받지 못하는 일이 생기자 당연히 불만이 터져나왔다. 흔히 초대교회 또는 처음교회라고 하면 이상적인 교회를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지역감정과 분열이 있던 지극히 인간적인 교회였다.

사도들의 지혜
사도들은 성령과 믿음이 모두 가득한 일곱 사람을 부제로 선발하여 사회봉사를 공정하게 하도록 하였다. 복음주의 성서학자들 중에서 어떤 이들은 스데파노 부제를 비롯한 일곱 부제들이 한 일을 재정지출로 보기도 한다. 한글성서에서 식량배급, 공궤(恭饋, 공손하게 식사를 대접하다)로 번역한 Diakonein Trapezais는 식량배급이라는 뜻도 있지만 재정지출을 뜻하기도 하고, 부제들이 모두 교회에서 인정받을 만큼 인격과 믿음이 훌륭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음식대접이 아니라, 교우들의 자발적인 기부로 마련한 교회재정을 가난한 과부들에게 생활비로 나누어주는 일을 했을 것으로 보는 것이다. 이러한 해석을 따른다면 교회에서 생활비 지원대상자를 정할 때마다 헬라파 기독교인 과부들이 소외되었기 때문에 헬라파 교우들에게 불만이 터져나왔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식량배급이든, 식량비 지원이든 사회선교에서 이스라엘에서 나고 자란 히브리파 기독교인들이 자주 혜택을 보고, 헬라파 기독교인들은 소외되는 지역감정이 있었다는 것은 초대교회가 흔히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교회의 분열을 일으킬 수 있는 심각한 문제를 겪기도 한 지극히 인간적인 교회임을 말해준다.

청년성직자
스데파노는 믿음과 성령이 가득한 청년이었으며 은혜와 권능이 가득하여 사람들 사이에서 많은 기적을 일으켰다. 초대교회에서는 히브리파 기독교인들인 사도들이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헬라파 기독교인들 중에서 일곱 부제들을 선발했으므로 스데파노는 아마 그리스에서 태어난 유대인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스데파노는 성서에 대해서 매우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었으며 그러한 지식을 바탕으로 유대교에서 오랫동안 논쟁을 벌일 수 있었다. 

순교
자유인의 회당의 소속된 키레네와 알렉산드리아 사람들과 길리기아와 아시아에서 온 사람들인 스데파노와 논쟁을 벌였다. 그들은 지혜와 성령을 받아 말하는 스데파노를 당해낼 도리가 없었고, 그래서 그들은 사람들을 매수하여 "우리는 스데파노가 모세와 하느님을 모독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하고 말하게 하였다. 또한 백성과 원로들과 율법학자들을 선동함으로써 그들이 스데파노에게 몰려가 그를 잡아 의회로 끌어오게 하였다. 그는 구약성서를 바탕으로 유대인들이 성령을 거부하고 예수 그리스도가 메시아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면서 유대교를 비판했으며, 사람들은 그의 얼굴에서 천사의 얼굴을 보았다고 한다. 스데파노 부제의 유대교에 대한 공격에 분노한 랍비들은 그를 성 밖으로 끌어내 돌로 치게 했다. 한꺼번에 여기저기서 날아오는 돌에 맞아 순교할 때 스데파노는 하늘의 문이 열리면서 하느님의 영광이 보이노라고 말하고 12사도 외에 첫 순교자가 되었다. 
- 초대교회의 첫 순교자 스데파노 (사도행전 6:10-15, 7:51-60, 공동번역성서) -

순교의 서막
그러나 그들은 지혜와 성령을 받아 말하는 스데파노를 당해낼 도리가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사람들을 매수하여 "우리는 스데파노가 모세와 하느님을 모독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하고 말하게 하였다. 그리고 백성과 원로들과 율법학자들을 선동하여 스데파노에게 몰려가서 그를 잡아 의회로 끌어오게 하였다. 또한 거짓 증인들을 내세워 "이 사람은 언제나 이 거룩한 곳과 율법을 거슬러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늘 이 사람에게서 나자렛 예수가 이 성전을 헐고 또 모세가 전해준 관습을 뜯어 고칠 것이라고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하고 말하게 하였다. 그러자 의회에 앉았던 사람들의 시선은 모두 스데파노에게 쏠렸다. 그의 얼굴은 마치 천사와 같이 보였다. 

스데파노의 순교 장면
"이교도의 마음과 귀를 가진 이 완고한 사람들이여, 당신들은 당신네 조상들처럼 언제나 성령을 거역하고 있습니다. 당신들의 조상들이 박해하지 않은 예언자가 한 사람이나 있었습니까? 그들은 의로운 분이 오시리라고 예언한 사람들을 죽였지만 이제 당신들은 바로 그분을 배반하고 죽였습니다. 당신들은 천사들에게서 하느님의 율법을 받고도 그 규례를 지키지 않았습니다." 의회원들은 스데파노의 말을 듣고 화가 치밀어올라 이를 갈았다. 이때 스데파노가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보니 하느님의 영광과 하느님 오른편에 서 계신 예수님이 보였다. 그래서 그는 "아, 하늘이 열려 있고 하느님 오른편에 사람의 아들이 서 계신 것이 보입니다." 하고 외쳤다. 그러자 사람들은 크게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았다. 그리고 스데파노에게 한꺼번에 달려들어 성 밖으로 끌어내고는 돌로 치기 시작하였다. 그 거짓 증인들은 겉옷을 벗어 사울이라는 젊은이에게 맡겼다. 사람들이 돌로 칠 때에 스데파노는 "주 예수님, 제 영혼을 받아주십시오." 하고 부르짖었다. 그리고 무릎을 꿇고 큰소리로 "주님, 이 죄를 저 사람들에게 지우지 말아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스데파노는 이 말을 남기고 눈을 감았다. 

 

 

유대인들은 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했을까? 

기원전 7년 경부터 서기 36년 경까지 살았던 예수(Jesus, Yeshua)는 유대교와 기독교, 이슬람교 등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인물이다. 특히 기독교에서는 사도신앙 고백에 따라 하나님을 성부와 성자, 성령이 삼위일체 된 존재로 보는데, 예수는 하나님의 성령을 받아 동정녀 마리아에게 잉태되어 태어난 완전한 사람으로 여긴다. 예수를 '예수 그리스도'라고도 부르는데, 그리스도는 메시아를 뜻하는 그리스어 '크리스토스(Christos)'에서 유래한 말이다. 기독교에서는 예수를 메시아(구세주)로 여기고, 이슬람교에서는 무함마드에 앞선 예언자 중의 한 사람으로 여기며, 유대교에서는 예언자나 랍비 중의 한 사람으로 여긴다.        

예수가 예루살렘에서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하자 기존의 유대교 사상과 충돌되는 점이 많았다. 당시의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축복이 유대인에게만 해당된다고 생각했고, 병들거나 가난한 사람은 죄를 지어 벌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예수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이고, 하나님의 사랑은 무한하기 때문에 유대인이든 환자든, 빈자든 누구나 구원받을 수 있다고 가르쳤다. 그리고 착한 사람은 상을 받고 악한 사람은 벌을 받는다는 '상선벌악(賞善罰惡)'의 교리도 뒤집어서 죄를 지은 사람도 진심으로 하나님 앞에 회개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하나님은 죄인을 긍휼히 여기시고, 정의보다는 은총을 먼저 생각하시기 때문이라는 것이 이유였다.         

랍비 예수는 유대인의 배타적인 선민사상과 형식적인 율법주의를 비판하며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듯이 이웃도 똑같이 사랑해야 된다고 강조했다. 즉, 유대인의 정해진 율법을 초월하는 '사랑과 믿음, 소망'을 전파했던 것이다. 예수는 율법을 그대로 지키면서 하나님과 이웃을 등지는 것보다 무한한 사랑으로 하나님과 이웃에게 가까이 다가서야 한다고 말했다. 예수는 율법과 할례 없이도 하나님을 향한 믿음만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가르쳤다.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받았다는 것을 확인해주는 율법과 할례는 유대인들에게 종교를 넘어 정체성이자 생명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예수가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벽을 허물고 누구나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다는 복음을 전파하자 유대인들은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것이다. 

예수는 토라에 대한 복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이 하나님의 응답을 부른다고 말했다. 유대인들은 토라의 율법을 철저히 지켜야만 다가올 최후의 심판 때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 반면에 예수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만으로 충분히 구원이 가능하다고 설파했다. 유대인들은 토라를 부정하고, 선택받지 않은 이방인들과 하나님을 함께 모셔야 한다고 말하는 예수를 인정할 수 없었다. 예수를 추종하던 사람들은 '메시아'라고 불렀지만 많은 유대인들은 유대교의 전통을 무시하며 유대인들을 분열과 혼란에 빠뜨린 예수를 메시아로 인정할 수 없었다. 결국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율법과 관습을 지키고, 신앙공동체의 정체성을 수호하기 위해 예수를 배척하고 박해하며 십자가로 내몰고 말았다.  


Why did the Jews crucify Jesus?

Jesus (Jesus, Yeshua), who lived from around 7 BC to around 36 AD, is an important figure in Judaism, Christianity, and Islam. In particular, Christianity regards God as a triune being consisting of the Father, the Son, and the Holy Spirit according to the Apostolic Confession of Faith, and Jesus is considered a perfect human being who received the Holy Spirit and was conceived and born of the virgin Mary. Jesus is also called 'Jesus Christ', which is derived from the Greek word 'Christos', meaning Messiah. Christianity regards Jesus as the Messiah (Savior), Islam regards him as one of the prophets before Muhammad, and Judaism regards him as one of the prophets or rabbis.  

When Jesus began to spread the gospel in Jerusalem, there were many conflicts with existing Jewish ideas. The Jews of that time thought that God's blessings were only for Jews, and that sick and poor people were punished for their sins. However, Jesus taught that all people are God's children, and that since God's love is infinite, anyone, whether Jewish, sick, or poor, can be saved. He also overturned the doctrine of 'reward and punishment', which states that good people are rewarded and evil people are punished, and said that even those who have sinned can be saved if they sincerely repent before God. The reason was that God takes pity on sinners and thinks of grace before justice. Rabbi Jesus criticized the Jewish idea of ​​the chosen people and formal legalism, and emphasized that we must love our neighbors as God loves us. In other words, he preached 'love, faith, and hope' that transcended the Jewish laws. Jesus said that we should approach God and our neighbors with infinite love rather than turning our backs on them while keeping the laws. Jesus taught that salvation can be achieved through faith in God alone, without the law or circumcision. The law and circumcision, which confirmed that one was chosen by God, were not just religion to the Jews, but were like identity and life. However, when Jesus broke down the wall between Jews and Gentiles and preached the gospel that anyone could become God's people, the Jews had a hard time accepting it.  

Jesus said that faith in God's Word, not obedience to the Torah, brings about God's response. While the Jews thought that only by strictly observing the laws of the Torah could they be saved at the coming final judgment, Jesus preached that faith in God alone was sufficient for salvation. The Jews could not accept Jesus, who denied the Torah and said that they should serve God together with the Gentiles who were not chosen. Those who followed Jesus called him the 'Messiah', but many Jews could not accept Jesus as the Messiah because he ignored the traditions of Judaism and caused division and confusion among the Jews. In the end, the Jews rejected and persecuted Jesus and drove him to the cross in order to keep their laws and customs and protect the identity of their religious commun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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