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
'유대 지역의 사람(Judea·Judaea人)'이라는 뜻을 지니는 민족명이다.
유래
유대인은 기원전 10세기부터 기원전 6세기까지 존속했던 국가인 유다 왕국의 후손으로 간주되며, 근연민족으로는 이스라엘 왕국의 후손인 사마리아인이 있다.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유대인은 중동의 히브리인에서 기원한 이스라엘 12지파 중 유다 지파, 또는 유다 왕국의 후손들을 가리키므로, 이스라엘 왕국 분열 이전의 고대 히브리인 혹은 고대 이스라엘인(בְּנֵי יִשְׂרָאֵל, Israelites)을 '유대인'이라 통칭하는 것은 학술적으로 틀린 표현이다. 이 이스라엘인은 이스라엘, 곧 야곱을 시조로 하는 민족을 뜻한다. 사실 왕국 분열 이후에도 유다 왕국의 백성들은 스스로를 '이스라엘 자손'으로 여겼기 때문에, 학술적인 면에서 '유대인'은 남왕국도 무너진 뒤, 그 유민들이 바빌론으로 끌려간 이후 아니면 페르시아 시대부터 쓰인다 (Coogan, The Old Testament). 따라서 밑에 유대인으로 등재돼 있는 다윗, 솔로몬도 유다 지파 사람일지언정, '유대인'은 아니다. 그러나 실생활에서 이러한 구분 없이 표현이 무분별하게 남발되고 있으며, 나무위키 내의 여러 항목들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인구
인구수는 약 1500만명 가량으로 추산된다. 2차 세계대전 직전에는 인구가 1700만 명이었지만,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유대인 대학살 및 전투로 인해 인구가 크게 줄어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는 1100만 안팎으로 줄었었다, 이후로 유대인이 많이 남아있던 미국과 소련에 베이비붐이 불면서 유대인들의 인구는 조금씩 회복되었지만 1960년대~70년대에 걸쳐 이들 국가의 베이비붐이 끝나면서 미국과 소련 유대인의 출산율은 인구대체 수준을 밑돌게 되었고, 점차적으로 고령화되어서 21세기에는 감소세에 들어서게 되었다. 다만 미국 유대인의 출산율이 1명대 중반에 그치는 것에 반해 이스라엘의 건국 이래로 비교적 높은 출산율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2030년대에는 1930년대 수치를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히브리어
יְהוּדִי / יְהוּדִים
yehudi / yehudim
예후디 / 예후딤
이디시어
ייִד / ייִדן
yid / yidn
이드 / 이든
라디노어
ג׳ודיו / ג׳ודיוס
Djudio / Djudios
주디오 / 주디오스
유대 트어
ז׳אוּהאוּר / ז׳אוּהאוּרהאָ
Çuhur / Çuhurho
주후르 / 주후르호
아람어
ܝܺܗܽܘܕ݂ܳܝܳܐ / ܝܺܗܽܘܕ݂ܳܝܶܐ
yəhûḏāyā / yəhûḏāyê
유다야 / 유다예
아랍어
يَهُودِيّ / يَهُود
yahūdiyy / yahūd
야후디 / 야후드
암하라어
አይሁዳዊ / አይሁድ
āyihudawī / āyihudi
아이후다위 / 아이후디
페르시아어
یهودی / یهودیان
yahudi / yahudiyân
야후디 / 야후디연5
한국어
표준어
유대인
개신교 성경
한자어
유태인(猶太人)
공동번역 성서
유다인
가톨릭 성경
유데아인
영어
Jewish people / Jews·Jewry
한자로는 유태인(猶太人)이라고도 한다. 즉 유대인과 유태인 어느 쪽으로 써도 맞는 표현이지만, 한자문화권이 아닌 나라들은 원어쪽을 존중하기에 보통 '유대인'을 널리 쓰고있는 추세이다.
구분 기준
유대인 집단 내에서 스스로를 다른 민족과 구분하기 위해 사용하는 기준은 다름아닌 유대교 신자 여부이다. 즉 유대 공동체에 살며 시나고그(유대교 교당) 등지에서 모여 정기적으로 안식일과 기타 유대 휴일에 예배를 드리고 유대 율법(보통 코셔가 가장 중요하다.)을 따르면 유대교를 믿는다고 본다. 남자의 경우에는 포경수술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보통의 경우 랍비에게서 유대인 증명서를 받거나 혈연(특히 모계쪽이 유대인인 경우)이 있는 경우 두 가지뿐이다.
이스라엘에서는 조부모 중에 한 명만 유대인이면 유대인으로 간주해 이민을 받아주다가 네오나치가 발생해 반유대주의적 폭력을 휘둘러 충격을 받기도 했다. 또한 이스라엘에서는 유대인 분류 중에서 '힐로니'라고 불리는 비종교적인 유대인 부류가 있다. 하레디(극정통. 인구 7.3%), 다티(종교적. 인구 8.8%), 마소르티(전통적. 24.3%), 힐로니(세속적. 33.1%).
흔히 이스라엘인이라고도 불린다. 이스라엘인은 민족명이기도 하고 현대 이스라엘의 국민(영어로는 Israelis라 하여 민족명 Israelite와 구분한다)을 의미하기도 한다. 민족으로서 모든 유대인은 이스라엘인이지만, 국적으로 따지자면 이스라엘인이 아닌 유대인도 많고 이스라엘인 중에는 아랍인 등 유대인이 아닌 민족도 많이 있다.
유대인들 간에 피부색 같은 특징으로 인한 차별이나 배척이 없지는 않지만, 일반적으로 유대교로 개종하는 순간 민족이나 혈통 같은 건 무시하고 '우리는 한 조상을 모시는 가족'이라는 개념으로써 받아들여 준다고 한다. 기본적으로 2천년 이상 지속된 디아스포라를 통해 수많은 나라에 흩어져서 살다보니 어느 국가, 집단으로 가도 소수고 거기서 자기들끼리만 뭉친다면 바로 들통나 배척당하고 소멸할 수 있었기에 이들은 속인주의나 속지주의에 비할 만한 속교(敎)주의에 가깝게 혈통을 포기하고 유대교의 전통을 지키며 종교의식과 윤리규범에 따라 살면 유대인이라고 인정해 주는 것. 따라서 유대인의 외모가 로스차일드 가문이나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등의 예와 같은 유럽인의 모습으로써 대변되기에 그냥 유럽인 계열의 한 민족으로만 알려졌을 뿐 유대인이라는 민족은 어디까지나 중동의 셈어파 민족에 그 근원을 두고 있다. 중국의 황인종이나, 흑인 중에서도 유대인이 소수 존재한다. 아래 문단 참고. 즉, 유대인은 태어나는 게 아니라 교육받고 만들어지는 민족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다민족 사회임에도 단일민족정책을 펴고 아슈케나짐, 세파르딤, 베타 이스라엘 등 출신 성분에 따라 빈부격차가 심한 편임에도 간신히 국가 유지가 가능해지는 것.
한국인들이 제사도 지내고 점도 보고 교회에도 가고 하듯이 유대인들 모두가 근본주의적인 전통을 고수하며 살지는 않고 적당히 다른 종교나 문화도 누리며 평범하게 살거나 혹은 개종하여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도 많긴 한데, 이들도 편의상 유대인으로 분류하고는 있지만 하레디나 일부 랍비들은 인정 못하는 것 같다. 유대인 하면 키파에 히브리어를 쓰고 이상한 복장에 고리타분한 이미지를 연상시키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 평범한 복장에 다른 민족들처럼 살고 히브리어가 아닌 자국어로 대화한다. 사실 랍비는 점잖은 케이스고 하레디는 아예 이스라엘 주류 사회와도 갈등을 벌이는 꼴통들이라...
어머니가 유대인이면 그 자식은 유대인으로 인정이 된다. 즉 모계 사회이다. 다만, 모계 사회라고 하지만 자식의 성씨는 남편의 것을 물려주며, 여성의 지위가 더 높지도 않다. 유대인 사회가 모계 사회인 이유는 유럽 전역으로 흩어지게 되면서 심한 박해를 받게 되었기에 유대민족의 전통과 종교, 윤리 규범을 눈에 띄지 않게 가르치려면 어머니가 집안에서 가르쳐야 했고, 어머니가 유대인이라면 무슨 일이 있어도 최소한 절반은 유대인 혈통이 보장되었기 때문이다. 종족의 정체성 유지를 위해 그리 된거지 여성의 권력이 더 강해서 그런 게 아니라는 뜻. 일례로 보수적인 유대인인 하레디를 보면, 유대교의 알파이자 오메가인 토라는 오직 남성만 공부할 수 있고 여성은 토라 공부를 하는 남편을 물심양면 지원해야 할 의무가 있으며 그걸 영광스럽게 여겨야 한다. 그리고 하레디 사회에서 최고의 사윗감은 토라 공부를 잘하는 똑똑한 남성인데, 사윗감이 똑똑할수록 여성의 집안에서 사위의 집안에 더 많은 돈을 보낸다. 만약 사위가 오래 살아서 거물 랍비가 된다면 그야말로 무엇에도 비할 수 없는 가문의 영광으로 여긴다.
아버지가 유대인, 어머니가 타 민족이라면 당연히 교육을 제대로 받지 않았을 가능성이 커서 유대사회의 심사를 받아 유대인인가 아닌가 판단하게 된다. 보통 랍비를 통해 심사를 받는다. 유대인이 같은 유대인인 누군가에 대해 험담을 할 때의 단골 레퍼토리가 어머니가 유대인이 아니라는 소문이나 (남성의 경우) 비유대인 여성과의 사이에서 아이를 낳았다는 소문이다.
유명한 유대인들
성서 인물
유다·베냐민 지파와 남유다 왕국 이후의 인물들만 기재해 놓았다.
12사도
이스카리옷 유다
느헤미야
다윗
다니엘
사도 바울로
사울
성모 마리아
솔로몬
에스델
예수
나자렛의 성 요셉
유딧
현대 인물
※ 종교가 유대교임이 밝혀진 경우 ✡ 표시. ✡ 표시가 없는 이들은 가문이 유대인 혈통이지만 종교가 유대교가 아니라서 유대인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유대인 집단 내에서 스스로를 다른 민족과 구분하기 위해 사용하는 기준은 다름 아닌 유대교 신자 여부이다. 즉 유대 공동체에 살며 시나고그(유대교 교당) 등지에서 모여 정기적으로 안식일과 기타 유대 휴일에 예배를 드리고 유대 율법(보통 코셔가 가장 중요하다.)을 따르면 유대교를 믿는다고 본다. 남자의 경우에는 포경수술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따라서 유대계 혈통이더라도 유대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유대인으로 간주되지 않으며 보통은 부계 혈통에 따라 민족이 결정된다. 예를 들어 소련의 건국자인 블라디미르 레닌을 보면 부계는 러시아인이고 모계는 기독교로 개종한 유대계 혈통이므로 레닌은 그냥 러시아인이다. 그럼에도 레닌이 유대인으로 여겨지는 것은 유대인에 관한 일반 대중의 뿌리 깊은 편견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과거부터 각종 유대인 관련 음모론들이 이런 편견을 만들어 왔다.
다만 이스라엘에서는 조부모 중에 한 명만 유대인이면 유대인으로 간주해 이민을 받아주다가 네오나치가 발생해 반유대주의적 폭력을 휘둘러 충격을 받기도 했다. 또한 이스라엘에서는 유대인 분류 중에서 '힐로니'라고 불리는 비종교적인 유대인 부류가 있다. 하레디(극정통. 인구 7.3%), 다티(종교적. 인구 8.8%), 마소르티(전통적. 24.3%), 힐로니(세속적. 33.1%).
라피 파인&베니 파인 형제
J.J. 에이브럼스✡
Lil Dicky
Rucka Rucka Ali
가리 카스파로프
갤 가돗✡
게이브 캐플러
겐디 타르타콥스키
골다 메이어
구스타프 말러
그리고리 지노비예프
그리고리 페렐만
기네스 팰트로✡
길라드 헥슬맨
나탈리 포트만✡
나프탈리 베네트✡
노스트라다무스
노턴 1세
노턴 슈워츠
놈 촘스키
니슬리 미클로시
니콜라 사르코지
니콜라 펠츠
닐 드럭만
닐스 보어
다니엘 데이 루이스
다니엘 래드클리프
다니엘 레비
다니엘 린데만
다니엘 바렌보임✡
다니엘 스턴
다비드 벤구리온
대니 엘프먼
대런 애러노프스키
더그 라이먼
더글러스 임호프
더스틴 호프먼
데니스 샤포발로프
데니스 프레거
데이비드 듀코브니
데이비드 리 로스✡
데이비드 리카도
데이비드 베니오프
데이비드 베컴
데이비드 수셰이
데이비드 슈위머✡
데이비드 스턴
데이비드 싱클레어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데이비드 커퍼필드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도자 캣
돈 리클스
드레이크✡
드류 굴락
디에고 슈와르츠만
조이 라몬
토미 라몬
라스 폰 트리에
라시다 존스
라이언 브런
라이언 사도스키
라자르 카가노비치
랄프 로렌
래리 엘리슨
래리 킹✡
래리 페이지
랜디 뉴먼
랜디 새비지
레너드 말틴
레너드 번스타인
레너드 코헨✡
레아 미셸
레옹 블룸
레우벤 리블린✡
레이 커즈와일
레이븐
레이첼 바이스✡
레이첼 플래튼
레프 란다우
레프 트로츠키
로건 러먼✡
로랑 슈바르츠✡
로렌 코핸✡
로만 아브라모비치
로만 폴란스키
로몰라 가레이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로버트 스탁
로스차일드 가문 인원 전부
로자 룩셈부르크
로저스 앤 해머스타인
로지 헌팅턴 휘틀리
론 제러미
루 리드
루도비코 라자로 자멘호프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루이스 블랙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리 스트라스버그
리 언크리치
리 젤딘
리버 피닉스
리사 쿠드로✡
리에브 슈라이버
리처드 도너
리처드 드레이퓨스
리처드 로저스
리처드 파인만
리처드 플라이셔
린다 매카트니
릴리 콜린스
마라 윌슨
마르셀 프루스트
마르크 샤갈
마야 루돌프
마이크 리
마이클 델
마이클 만
마이클 베이
마이클 볼튼
마이클 블룸버그✡
마이클 샌델
마이클 아이스너
마일스 텔러
마커스 골드만
마크 론슨✡
마크 샤파이로
마크 저커버그
마크 제이콥스
마크 큐반
막스 오퓔스
막스 형제
막스 호르크하이머
매들린 올브라이트
매디슨 비어✡
매튜 브로더릭✡
맥 밀러✡
맥스 브룩스
맥스 프리드✡
맥스웰 제이콥 프리드먼
맷 블룸
맷 스톤
머리 겔만
메나헴 베긴
멜 브룩스
멜라니 로랑✡
모세 다얀
미리암 슈타인
미하일 구레비치
미하일 미슈스틴
미하일 보로딘
밀라 쿠니스✡
밀턴 프리드먼
바뤼흐 스피노자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바비 피셔
바실리 레온티예프
박노자
발터 베냐민
밥 딜런
밥 멜빈
밥 아이거
버니 샌더스✡
버드 셀릭✡
베냐민 네타냐후✡
벡
벤 버냉키
벤 샤피로✡
벤 스틸러✡
벤저민 그레이엄
벤저민 디즈레일리
보리스 넴초프
보리스 존슨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브라이언 싱어
브라이언 엡스타인✡
블라디미르 레닌
블라디미르 지리노프스키
블라디미르 푸틴
블라디미르 솔로비요프[
비달 사순
비스티 보이즈
빅토르 프랑클
빅토리아(프로레슬러)
빌 골드버그
빌 마허
빌 애크먼
빌리 밀리건
빌리 와일더
빌리 조엘
빌리 크리스탈
사라 실버맨
사샤 바론 코헨✡
사이먼 앤 가펑클
사이먼 쿠즈네츠
사프디 형제
새뮤얼 풀러
샌디 코팩스
샘 레이미
샘 멘데스
샘 올트먼
샘 해리스
샤이아 라보프✡
세라 미셸 겔러
세라 제시카 파커✡
세라 폴리
세르게이 브린
세르게이 예이젠시테인
세르게이 키리옌코
세르쥬 갱스부르
세스 로건✡
세스 마이어스
셜리 클라크
셰릴 샌드버그
솔 크립키
숀 그린✡
숀 펜
수전 손택
수전 워치츠키
슐로모 산드
스칼렛 요한슨
스콧 루딘
스탠 리
스탠리 큐브릭
스티브 발머
스티브 블룸
스티븐 므누신
스티븐 손드하임
스티븐 슈왈츠
스티븐 스필버그✡
스티븐 울프럼
스티븐 핑커
시드니 루멧
시몬 페레스
아다르 간델스만
아담 램버트✡
아론 크릭슈타인
아르놀트 쇤베르크✡
아르투르 루빈스타인
아리 애스터
아마레 스타더마이어✡
아미 해머
아비 바르부르크
아서 쾨슬러
아이작 아시모프
아이작 펄머터✡
아인 랜드
아일라 피셔✡
아트 슈피겔만✡
안네 프랑크
안셀 엘고트
안톤 옐친
알 프랑켄
알란 아킨
알렉산더 그로텐디크
알렉산더 보빈
알렉스 브레그먼✡
알렉스 카프
알리시아 실버스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알프레드 뉴먼
알프레트 아들러
앙리 베르그송
야코프 스베르들로프
애덤 리바인
애덤 샌들러✡
앤드류 가필드
앤드류 프리드먼
앤디 샘버그
앨런 그린스펀
앨런 긴즈버그
앨런 더쇼비츠
앨런 멩컨
앨리슨 브리✡
앨리슨 해니건
얼룬드라 블레이즈
에두아르트 베른슈타인
에드가 다비즈
에드문트 후설
에드워드 위튼
에디트 슈타인
에런 소킨
에런 테일러존슨
에르되시 팔
에른스트 루비치
에리히 폰 슈트로하임
에리히 프롬
에릭 안드레
에릭 홉스봄
에린 헤더턴✡
에밀리 라타이코프스키✡
에바 그린
에반 레이첼 우드
에스텔 해리스✡
에이드리언 브로디
에이미 와인하우스
에즈라 밀러
에핌 젤마노프
엘 얌 칸세폴스키
엘리너 오스트롬
엘리에제르 벤 예후다✡
엘리자베스 뱅크스✡
엘리자베스 테일러✡[
엘리후 카츠
엠마누엘 루베즈키
예브게니 프리고진
예브게니 프리마코프
오데야 러쉬✡
오스카 해머스타인 2세
오토 웜비어
오토 프레밍거
오토 하인리히 바르부르크
올리버 스톤
와킨 피닉스
요시 베나윤✡
우디 앨런
원오트릭스 포인트 네버
월터 사무엘
웬트워스 밀러✡
위노나 라이더✡
윌리엄 프리드킨
유리 겔러✡
유리 로웬탈
유발 하라리
이디나 멘젤
이리나 슬루츠카야
이방카 트럼프✡
이안 킨슬러
이츠하크 라빈
이츠하크 헤르초그
일라이 로스
일라이 월랙✡
자크 데리다
작 피더슨
장폴 사르트르
재닛 옐런
재러드 쿠슈너✡
재레드 다이아몬드
잭 블랙
잭 에프론
잭 커비
제니퍼 코넬리
제러미 마이클 보더
제리 루이스
제리 사인펠드
제마 아터턴
제시 아이젠버그
제이슨 블룸
제이크 질렌할 / 매기 질렌할
제임스 그레이
제임스 맨골드
제임스 칸
제임스 캘러헌
제임스 프랭코 / 데이브 프랭코
제프 골드블룸
제프 러스킨
조 크라비츠
조나 힐
조나단 글레이저
조너선 라슨
조던 벨포트
조레스 알표로프
조셉 고든레빗
조셉 리버만✡
조앤 리버스
조엘 킨나만
조이 도이치✡
조이 킹
조지 거슈윈
조지 소로스
조지프 제이콥스
조지프 퓰리처
존 대니얼스
존 랜도
존 번설
존 스튜어트
존 오소프✡
존 케리
존 패브로✡
존 폰 노이만
존 프랭컨하이머
줄리아 루이드라이퍼스
줄리안 에들만✡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
지가 베르토프
지그문트 바우만
지그문트 프로이트
지니어스(프로레슬러)
진 와일더
찰리 채플린
찰리 카우프만
찰리 푸스
척 슈머
츠비 미시나이
카를 란트슈타이너
카를 마르크스
칼 세이건
칼 포퍼
캐롤 킹
캘빈 클라인
캣 데닝스✡
커크 더글라스 / 마이클 더글라스✡
케네스 애로우
케빈 유킬리스✡
케빈 필라✡
케이트 허드슨✡
켄 레빈
켈리 켈리
코리 스톨
코엔 형제✡
콜린 트러보로
크리스 반 알스버그✡
크리스 파인
크리스핀 글로버
타라 스트롱
타이카 와이티티
터커 칼슨
테오 엡스타인
테오도르 헤르츨
테오도어 아도르노
토니 블링컨
토마스 뉴먼
티모시 샬라메
파벨 파블리코프스키
에머릭 프레스버거
패트리샤 아퀘트
페기 립튼
펠릭스 멘델스존
폴 골드슈미트
폴 뉴먼
폴 러드✡
폴 사이먼✡ - 다만 냉담자라고 밝힌 적이 있다.
폴 새뮤얼슨
폴 코언
폴 크루그먼
폴 헤이먼
프란츠 카프카
프리다 칼로
프리츠 랑
프리츠 하버
피터 그린
피터 보그다노비치
핀 울프하드
필립 로스
핑크
하비 와인스틴
하비 카이텔
하워드 애쉬먼
하워드 진
하이먼 리코버
하인리히 하이네
하임 바이츠만
하임✡
한나 아렌트
한스 모겐소
한스 짐머
해럴드 블룸
해리 후디니
해리슨 포드
행크 그린버그
행크 아자리아
헤디 라마르
헤르만 민코프스키
헤르만 브로흐
헤르베르트 마르쿠제
헤일리 스타인펠드
헨리 모겐소 Jr.
헨리 키신저✡
헬레나 본햄 카터
헬렌 헌트
헬무트 슈미트
호세 페케르만
호프 힉스
분파
전 세계 유대인 분파 권역
|
|
|
아슈케나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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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파르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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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적 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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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즈라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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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後)아슈케나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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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後)세파르딤
|
다른 민족과 마찬가지로 유대민족에도 갈라져 서로 구분되는 다수의 분파가 존재한다. 이중 다수의 구성비율 혹은 정통성을 유대인을 대표하는 분파는 아슈케나짐(אשכנזים, 뜻은 '독일 사람들'), 세파르딤(ספרדים, 뜻은 '스페인 사람들'), 미즈라힘(מזרחים, 뜻은 '동방 사람들')의 셋이다. 이중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아슈케나짐(아슈케나즈 유대인)은 주로 우크라이나 등 동유럽에 거주하던 유대인들로, 이디시어를 주로 사용하고 유대인 중 유럽인과 가장 유사하며 흔히 유대인들중 기반을 서구권에 두고 전세계적으로 활동하며 영향력이 강한 있는 사람들이다. 세파르딤(세파르드 유대인)은 이베리아 반도를 중심으로 북아프리카 등지에 퍼져있는 유대인들을 말하고, 라디노어를 주로 사용하였다. 미즈라힘(미즈라흐 유대인)은 중동이나 중앙아시아, 캅카스 일대에 사는 유대인들을 말하고, 유대-아랍어(Judeo-Arabic languages)를 사용한다.
종교 의례로 구분할 때는15 크게 아슈케나짐식과 세파르딤식 이 두 개로 분류한다. 또는 그냥 아슈케나짐식 이외의 다른 모든 의례를 다 싸잡아서 세파르딤식 의례라 하기도 한다. 이때 미즈라힘은 비록 세파르딤과 혈연관계가 없지만 세파르딤식 의례를 따르므로 세파르딤으로 분류된다. 이런 이분법적인 분류는 문제가 많아 현대 이스라엘에서는 아랍어를 모어로 썼으면 미즈라힘, 유럽 출신으로 아랍어를 모르면 세파르딤이라 구분한다.
1492년 스페인 왕국에 의한 알함브라 함락후 소위 "알함브라 칙령"이 내려지게 되는데, 이 때 대다수 세파르딤이 북아프리카 및 레반트 지방으로 쫓겨나 미즈라힘과 혼합되었다. 세파르딤 중 핵심 세력 일부는 당시 가장 자유로웠던 네덜란드로, 나중에 영국으로 이주하여 신흥 해양 세력의 자본을 대면서 번영하였다. 영국의 총리를 지낸 벤저민 디즈레일리와 범신론 사상으로 유명한 철학자 바뤼흐 스피노자가 그 후손이다.16
이중 아슈케나짐의 기원에 대해서는 팔레스티나에서 살던 민족이 아니라 서아시아에 살면서 유대교를 믿은 유목민 하자르족의 후손이라는 설이 있이 있었으나, 주류 학계에서 반박된 상태이다. 참고로 하자르족의 직계 후손으로 추정되는 건 아슈케나짐보다는 튀르크멘족과 아스트라한의 타타르족 그리고 우크라이나 크림 반도에서 리투아니아에 걸쳐 극소수로 존재하는 카라임이다.1718 또한 카라임이 믿는 유대교 교파는 아슈케나짐이나 세파르딤이 믿는 유대교와는 교리 자체가 완전히 다르며, 십자군 시대 이후에야 크림 반도에 정착했다.
이스라엘 매체에서는 아슈케나짐의 조상들은 350명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근세 역사에서 아슈케나짐과 세파르딤 사이의 통혼이나 아슈케나짐과 기독교인 농노, 카자크 사이의 통혼 사례는 차고 넘치는 수준이다. 다만 유사 사례가 없는 것은 아닌데 오늘날 약 480만여 명 규모의 프랑스계 캐나다인 인구 대다수가 17세기 캐나다 퀘벡으로 강제이주된 여성 800여 명의 후손으로 제한된 유전자 풀을 지녔다고 한다.
유대인 분류의 정치적 담론
유대인 분류는 정치적으로도 문제가 되고는 하는데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과 관련해서이다. 유럽계 유대인이 고대 유대인의 후손이라면 이들도 고대 유대인들처럼 아랍인의 모습과 가까워야 하지만19 피가 섞일 대로 섞여 중동인의 피는 희석되어 버렸고 오늘날의 유럽계 유대인은 전형적인 유럽인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나마 아주 보수적인 유대인 사회의 유대인들은 아랍인처럼 머리가 까만 등 상당부분 아브라함 계통 종교의 민족의 모습을 보존하고 있다. 일본에 맥도날드를 들여오고 《유태인의 상술》이란 책을 쓴 후지타 덴에 의하면 유대인들을 쉽게 구별할 수 있는 외모상의 가장 큰 특징은 매부리코라고 하는데20, 이는 아랍인들에 대한 인상과도 일치한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유대인을 풍자하는 일러스트에서도 코를 과장하는 것을 흔히 찾아볼 수 있다.
그래서 중동 아랍인들은 이스라엘을 중동에 남은 마지막 유럽인의 식민지 혹은 제2의 십자군 국가21라고 폄하하고는 한다. 유럽계 유대인이 이스라엘을 건국한 명분이 바로 자기들 조상의 땅이라는 것인데 이렇게 되면 이스라엘 건국의 명분도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밑에 나오다시피 남성 성염색체를 통해 부계혈통을, 그리고 미토콘드리아의 DNA를 통해 모계혈통을 추적할 수 있는 지금, 많은 유대인들이 그 외양이 어떻다 한들 자신들에게 고대 유대인의 피가 어느 정도는 섞여 있음을 증명할 수 있다.
유전학 연구에 따르면 전형적인 현대 유대인들의 경우 아슈케나짐과 세파르딤은 중동계와 유럽계 혈통이 대략 반반이라고 한다. 중동계는 대체로 레반트계, 유럽계는 대부분 이탈리아나 그리스 등의 남유럽계이고, 부계혈통의 경우는 중동계가 대부분, 모계혈통은 유럽계가 대부분이다. 이는 고대에 몇세대동안 유대인공동체가 여성개종과 그와의 통혼에 비교적 열려 있었기 때문이다. 게르만족과 슬라브족 조상의 비중은 유대인들이 유럽에 거주한 기간을 생각하면 생각보다는 적은데, 고대 로마시대 디아스포라 유대인들로부터 유전자풀이 크게 변하지 않은 듯하다. 물론 현대 들어 유대인들이 세속화되면서 이스라엘 밖에서는 통혼이 늘고 있다.
모로코, 튀니지 등 마그레브 유대인들의 경우 아마지그족 등 북아프리카 혈통이 약간 있고, 이라크 유대인과 관련된 디아스포라인 산악유대인들이나 이란 유대인들의 경우는 비레반트계 혈통의 경우 메소포타미아계가 높다.
하지만 여기서 또 하나의 문제가 발생하는데 바로 '유대 국가'로서 세워진 현대 이스라엘이 유대인의 원래 땅이었던 유대 지역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땅이 아니었던 사마리아나 갈릴래아, 심지어는 아무런 연고도 없는 아랍 베두인 유목민들의 땅인 네게브 사막까지 지배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이스라엘 건국 이전이나 이스라엘 초반 중심지나 세력, 실질적 영토는 텔아비브와 하이파 등 가나안 북쪽 해안가와 서부 예루살렘이 사실상 진짜 영토나 다름없었으며, 현재도 이 지방들에 이스라엘계 유대인들이 많다.22 예루살렘 서쪽과 네게브 사막 너머 홍해 회랑의 에일라트 등은 1947년 이후에 본격적으로 이스라엘화되었기 때문이다. 6일 전쟁에서 승리한 이스라엘 정부가 예루살렘으로 행정수도를 이전한 이래로 무려 5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지금도 텔아비브가 여전히 이스라엘의 임시수도 기능을 유지하고 있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물론 텔아비브와 하이파 등 서북부 지역과 서부 예루살렘도 처음부터 유대인들의 땅은 아니었지만.23 갈릴래아의 경우는 이스라엘 건국 전에 이스라엘을 세우게 될 이스라엘계 유대인들이 거주했지만 중심지나 실질적 영토 등으로 보기엔 무리가 있으며 중심지였던 텔아비브와도 거리가 멀었다. 물론 사마리아는 하스몬 왕조 때 유대인들이 잠깐 유다의 다른 주변 지역들과 함께 침략해서 지배한 적이 있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유대인의 사마리아에 대한 식민지배였고 사마리아인들은 유대인들에게 계속해서 저항했으며 유다의 사마리아 통치도 로마 제국이 유다를 정복한 뒤 유다 치하의 피지배 지역들을 독립시킴으로써 짧게 끝났다.
유대인의 역사
기원 및 분열왕국 시대까지
고대 이스라엘의 구성 민족인 히브리인은 메소포타미아 및 레반트 남부에 살았으나 나중에 가나안 일대로 이주했고, 이집트의 지배를 받으면서 이집트에 있기도 하였다. 성경에서 말하는 시조는 형제들에 의해 이집트에 노예로 팔려갔다가 능력을 발휘해 고위직에 오른 요셉이 이후 친지들을 불러들인 것에서 시작된다고 말하는데, 이후 모세에 의해 이탈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적 차이가 있기 때문에 지속적인 구성 변화가 있었으리라고 추측 가능하다. 출애굽기는 유대인의 민족적 기원을 다룬다.
이들이 집단 의식을 발전시키는 것과 함께 수가 지나치게 팽창하자 이집트 당국에서도 억제 정책을 펼치게 되고, 이에 대한 돌파구로서 집단 이탈을 제시한 것이 이집트 왕족이지만 스스로의 정체성을 히브리인에서 찾은 인물인 모세. 유대인들에게 아브라함이 단군 수준의 위인이라면 모세의 위치는 가히 세종대왕과 이순신을 합친 것 쯤은 된다. 이들에게 최초로 집단적 주권의식을 주입시키고 자립의 길을 처음으로 이끈 인물이기 때문. 이들은 모세의 지휘 하에 이집트에서 이탈하여 자신들이 정착할 만한 지역을 탐색하는 것과 동시에 이동 경로에 있는 토착 세력들과 경쟁을 펼치며 약 사십 년 정도 떠돌게 된다. 서사적인 과장이 있을 것으로 여겨지지만 성경에서는 장정만 60만명이라고 했는데 딸려있는 식솔들을 합하면 최소 약 300만명에서 최대 약 500만명이었다고 한다.
여호수아가 모세 사후에 이스라엘의 12지파를 지휘하여 가나안 일대를 침략해 정복했고 기원전 10세기경엔 익히 아는 다윗 왕과 솔로몬 왕의 시대로 이스라엘 왕국의 전성기였다.
한편 많은 사람들이 고대의 팔레스타인 지역을 히브리인만이 거주하던 지역으로 오해하는데 팔레스타인은 고대부터 다민족 지역이었다. 성경에만 기록된 것이라 확실성이 부족하지만 히브리인 자체가 이집트에서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한 이주민족이다. 그리고 그들이 이주하기 이전에 이미 가나안족, 헷족, 히위족, 브리스족, 기르가스족, 아모리족, 여부스족 등 원주민 일곱 부족이 살았으며, 전쟁을 통해 원주민을 복속시키고 히브리인들이 지배민족으로서 팔레스타인에 자리잡은 내용이 씌여져 있다. 원래부터 히브리인들이 땅을 차지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라 히브리인의 도래 이전에 이미 선주민이 있었다는 것이다.
구약을 보면 블레셋인과 히브리인들이 싸우는 영토 다툼이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이야기로 비유되어 나온다. 구약에는 히브리인들이 몇몇 이민족들을 멸절시키고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들어가긴 했으나, 일부는 그냥 남아있다가 이스라엘이 정착 후에 강성해지자 사역에 동원되고, 일부는 산으로 쫒겨가기도 했다고 기록되어있다.24 또 성경의 다른 구절들을 보면 블레셋인, 암몬인, 모압인 등 여러 민족들이 계속해서 히브리인들과 섞여 살고 있었다.
당시의 군장국가체제에서 민족개념이라는 것은 지역에 따른 부족개념이었다. 당시의 가나안(Canaan) 지역은 오늘날의 이스라엘, 레바논, 시나이 반도, 요르단 서부를 통칭하는 개념이었다. 성경에 나오는 여러 민족들의 이름은 단순한 가나안 민족의 여러 부족개념으로 봐야한다. 한국 고대국가 시대에 부여, 고구려, 예맥, 신라, 백제, 가야 등의 수많은 부족국가들이 혼재했던 개념으로 이해하면 쉬울 것이다. 그리고 당시의 언어들은 북서셈어계에 속하는 언어로서 모두다 친연관계에 있었다. 가나안 지역과 페니키아 지역은 서로 많은 지역을 문화적 교집합으로 갖고 있는데, 히브리어와 페니키아어, 모압어는 서로 매우 가깝고, 아프리카아시아어족 가나안어파의 하위 어군으로 상호 방언관계를 이룬다.
자신이 유대인이기도 했던 《블랙 아테나》의 저자, 마틴 버낼 교수는 히브리 민족과 주변민족과의 관계사를 연구하기 시작했을 때 "히브리인과 페니키아인이 서로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으며, 진지한 언어학자라면 두 언어를 가나안어의 방언으로 함께 취급한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놀라웠다"라고 '블랙 아테나'에서 이야기한다. 즉 언어학적으로 히브리어와 페니키아어는 알파벳의 표기가 다를 뿐, 한 쌍으로 묶인다는 것이다. 세르보크로아티아어의 관계를 연상해보면 된다.
또한 팔레스타인은 지리적인 교통 중심지이다. 그래서 문화적으로도 아주 이른 시기부터 수메르 문화, 이집트문화의 영향을 짙게 받았으며, 바빌로니아, 페르시아, 마케도니아(그리스), 히타이트, 아시리아, 로마, 이슬람 제국 및 유럽 십자군 등의 지배를 받았다. 오랫동안 지배를 받았다는 것은 그만큼의 혈연적 관계도 있었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다. 애초부터 여러 민족들이 어울려 살았을 뿐만 아니라 역내외의 다양한 문화들이 오고가며 서로에게 영향을 주던 문화적 교통로이기도 했던 다민족-다문화 지역이었던 것이다.
솔로몬 사후 히브리 지역은 이스라엘 왕국과 유다 왕국으로 분열하여 히브리 민족도 이스라엘 왕국의 사마리아인, 유다 왕국의 유대인으로 나뉘어졌고 결국 이 두 나라는 각각 아시리아와 신 바빌로니아에 패망하였다. 그리고 이 시점부터 유대인들은 아람어를 일상언어로 사용하기 시작하고 히브리어는 종교 의례에나 쓰였다. 신 바빌로니아에 유다 왕국이 멸망한 이후 유대인들은 바빌론 유수를 겪게 된다. 이렇게 본래 이스라엘땅을 떠나 해외에 정착하거나 떠도는 유대인 집단 또는 그 망명 자체를 디아스포라라고 한다.
헬레니즘 제국~로마 제국 시기
이후 헬레니즘 제국을 거치면서 유대인 인구 상당수가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치하의 알렉산드리아로 강제이주당하기도 하고 예루살렘 근교에 남아있던 유대인들은 셀레우코스 제국의 통치를 받다가 마카베오 반란을 일으켜 잠시 하스몬 왕조를 세우기도 한다. 헬레니즘 제국 시대와 하스몬 왕조 시대를 거치면서 도회지 지역의 유대인들이 그리스 문화의 영향을 받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25 하스몬 왕조의 패권정책 때문에 모압, 암몬, 에돔, 갈릴래아 인들이 반강제로 유대교로 개종되었고,26 적지 않은 그리스계 이주민들도 유대교의 유일신 신앙에 매력을 느끼고 새로 유대교로 개종하는 사례가 증가했다. 유대교 사회는 그리스 문화의 영향에 대해서 혹은 이방인이 유대교로 개종하는 경우에 대해서 어떻게 대응해야 할 지 여러 의견이 갈라졌다. 특히 포에니 전쟁 이후에는 페니키아인들 중에서 과거 자신들이 믿던 바알이나 타니트가 자신들을 보호해주지 못했다는 실망감으로 유대교로 개종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는데 이들은 알렉산드리아 유대인 커뮤니티에서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였다.
로마에 의해 합병되어 서기의 기점(실제 연도는 역산상의 오류로 조금 차이가 있지만)인 예수 그리스도의 시기에는 로마의 식민지 상태였다. 예수를 처형할 때 예수에게 붙은 죄목 역시 명목상의 '로마 제국에 대한 반체제 책동(반역)'이었으며 실질적으로는 로마에 대해 독립을 요구하는 자주세력과 로마에 협력하는 기득권층 사이의 갈등 사이에서 상대에게 타격을 주려는 기득권층의 고발에 의한 것이었음을 고려하면27 당시 유대인 사회 내에서 독립에 관하여 사회적 갈등이 상당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상술한 유대교 사회의 문화적 갈등 요인도 없지 않았다.
예수 사후 유대인들은 로마를 상대로 독립전쟁인 유대-로마 전쟁을 벌였지만 실패했다. 제1차 유대-로마 전쟁 때는 예루살렘 성전이 불탔고, 살아남은 유대인 저항군은 마지막 보루였던 마사다 요새에서 저항하다가 로마군이 총공세를 펼치자 함락위기에 몰려 독립군 전원이 자결하였다.28 이후 기원후 135년에 유대인이 벌인 두 번째 대규모 반로마 전쟁인 바르 코크바의 난을 진압한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유대인들의 독립운동을 막기 위해 유대인들을 예루살렘에서 추방하였다.29
기독교가 퍼지기 시작했던 기원후 2~3세기에 이미 로마시내 곳곳엔 유대인들의 집단 거주지인 게토가 존재했다. 초창기 기독교인 사회의 중추는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했던 이들 혹은 유대교에 호감을 가지고 있던 그리스인들이 중추가 되었으며, 이러한 연유로 기독교 교세가 확장되기 이전에는 유대교와 기독교가 엄밀히 구분되는 것이 아니었다. 또한 유대인들 외에 유대교에서 개종한 기독교인들도 집단 거주지가 있었다. 초기의 기독교는 유대교의 새로운 한 분파로써 시작했기에 유대인들에 대한 전도부터 시작했으며, 특히 국제어였던 그리스어를 이미 사용하고 있는 유대인 집단이 지중해 권역 곳곳에 자리잡고 있었다.
그동안 팔레스타인을 지배했던 아시리아, 히타이트, 페르시아, 마케도니아, 그리고 그뒤를 이은 로마제국까지 다 광대한 영토를 자랑하는 다민족국가들이었다. 또한 유대인들은 기독교가 지중해 문화권의 주요 종교가 되기 이전에는 비유대인에 대한 선교를 하는 경우 역시 적지 않았고 디아스포라 및 개종자들의 증가로 아람어 및 그리스어 사용자가 증가하기 시작했다. 고대의 그리스인이나 페니키아인, 카르타고인들도 그렇게 지중해 전역에 퍼져살았다. 고대의 지중해는 하나의 커다란 경제적 권역을 이루고 있어서 권역내에서 교류가 잦았던 점도 큰 요인이다. 이러한 이유로 이후 많은 유대인이 중동이나 유럽으로 퍼졌다.
중세에서 근대까지
중세 유대인은 대개 유럽인들과 무슬림들에게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대체로 차별을 받았다. 제대로 된 일조차 구하지 못했기에 서유럽의 유대인들은 대부분 금융업에 종사했고 이는 고리대금업을 금하는 기독교 사회 안에서는 더욱 배척받고 미움받는 원인이 되었다. 기독교 사회였던 중세 유럽에서 유대인은 토지를 소유할 수 없기에 농사도 지을 수 없었고 조합에 가입할 수 없어 상업도 공업도 제약이 극심했다. 그러다보니 유대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고리대금업밖에 없었다.30
더욱이 기독교인들은 (주로 배타적인) 유대인들을 '예수를 죽인 민족'이라는 이유로 그들을 증오하고 멸시했다. 성경에서 예수의 사형이 결정될 때 유대인들이 외친 "그의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리소서"32가 가장 유명하다. 십자군 전쟁 때도 지나가는 길에 유대인들이 있으면 그냥 쳐죽이고 재산 빼앗는 일은 예사였다.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에 등장하는 사악한 유대인 고리대금업자 샤일록 또한 이런 증오가 투영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십자군 전쟁 기에는 내부 정화라는 미명 하에 개종을 거부한 유대인들을 태워 죽이기도 하였다. 독일, 프랑스, 잉글랜드 등 서유럽에서 주로 이루어졌다.
스페인 지역에도 로마 시대부터 많은 유대인들이 건너와 살았다. 그러다 8세기경 우마이야 왕조가 기존 서고트 왕국 등 기독교 세력을 몰아내고 이베리아 대부분을 장악했는데, 유대인들은 자신들을 기독교 세력의 압제에서 벗어나게 해준 이슬람 세력에 호의적으로 다가갔으며 이슬람 세력도 유대인들의 부와 지식을 눈여겨봤기 때문에 이슬람 지배 기간 동안 유대인들은 이들과 협력하며 여러 특권을 누리며 떵떵거리고 살았다. 이들은 이슬람 세력이 코르도바, 그라나다 등에서 기독교 박해를 벌일 때 이를 방관하거나 간접적으로 돕기도 했으며, 이에 대한 보답으로 이슬람 군주들은 유대인의 이민과 무역 활동을 더욱 장려하게 된다.
하지만 레콩키스타가 진행되고 이슬람 세력이 이베리아에서 대부분 쫓겨나면서 유대인들도 보복을 피해 마그레브로 대거 이주해갔으며, 카스티야의 이사벨 1세와 아라곤의 페르난도 2세가 1469년 혼인동맹을 맺으면서 개종을 통해 남아있던 이들도 더더욱 궁지에 몰리게 된다. 유대인에 적대적이었던 스페인 왕실과 교회는 유대인 특별 조사기구를 만들고 첩자를 통해 이들의 행동거지를 관찰해 보고하게 했다. 조사 후 12년간 수천명의 유대인이 개종에도 불구하고 처형당했다.
1492년 마지막 이슬람 왕국인 그라나다의 나스르 왕조까지 멸망하면서 유대인들은 더욱 심한 탄압에 시달리게 되었다. 스페인은 알함브라 칙령을 발표하여 당시 스페인에 살던 수십만의 유대인들은 4개월 동안 개종하거나 떠날 것을 강요받았다. 칙령에는 유대인들의 재산권을 인정한다고 적혀 있었지만 단서 조항에 금, 은, 화폐와 국가가 정하는 품목은 금지한다는 내용이 있어 사실상 재산 반출도 금지되었다. 명시된 기간동안 떠나지 않으면 모두 처형되었고 유대인을 숨겨준 사람은 모든 재산을 압류당했다. 추방의 결과로 스페인계 유대인들은 남동유럽, 마그레브 등으로 흩어지거나 타지역 유대인 공동체에 흡수되었지만, 절반 이상은 유대인의 능력을 높이 사던 포르투갈로 이주하기도 했다. 하지만 계속 신앙은 유지하지 못했다.
스페인의 금융업을 장악했던 유대인이 거의 다 떠나거나 처형당하여 스페인 왕실은 방대한 식민지 운영과 재정관리에 난항을 겪었고 결국 1557년 펠리페 2세 때의 디폴트 선언과 이후 스페인 제국의 몰락에도 적잖은 영향을 끼친다.
그래도 스페인의 사례와는 다르게 지역에 따라서 나름대로 기독교인들과 공존하며 지내거나 높으신 분들에게 등용되기도 했다. 특히 폴란드가 유대인에게 관대하기로 유명했는데 이는 국가의 상공업 발달을 위해서였다. 아무튼 폴란드가 유대인에게 호의적으로 대해주는 거의 유일하다시피한 국가다보니 유대인 상당수가 폴란드로 이주했다. 폴란드에서는 유대인들이 직접 농사를 짓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개 마름으로 일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유대인의 상공업 종사에도 제약이 없었다. 심지어 유대인 농민은 폴란드인 농노보다 지대 부담을 적게 받았을 정도였다. 이 덕에 한 때 전 세계 유대인의 4분의 3이 과거 폴란드-리투아니아에 거주하기도 했다. 이후 폴란드 분할 이후 유대인들이 대거 거주하던 벨라루스와 우크라이나 일대가 러시아 제국 영토가 되는데, 러시아 제국에서 포그롬으로 유대인들을 탄압하면서 상당수의 유대인들은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동유럽에 남은 유대인들은 대부분 홀로코스트에 희생당했다.
현재 재정적인 문제로 이스라엘로 돌아가지 못하는 유대인들을 지원하는 단체의 상당수가 개신교 계열이다.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을 분리시킨 신약에서도 이스라엘을 위해 기도할 것과 그들을 향한 신의 사랑과 계획이 있음을 분명히 말하고 있다. 교리적으로나 성서적으로나 기독교인이 유대인을 적대할 이유가 전혀 없으며 차라리 경제적, 정치적인 이유에서 그 답을 찾는 것이 빠르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유대인들의 고리대금은 당시 유럽 기준으로 매우 영세한 규모였다. 중세 말에서 근세 사이 유럽에서 가장 금융업이 발달했던 지역은 엄연히 이탈리아 북부 도시국가들과 스페인 북서부 카탈루냐 지역으로 해당 지역의 은행들이 현대 금융업의 시초로 유대인들과 상관이 없다. 기록에 의하면 유대인이 기독교인보다 더 너그러웠다고 한다. 기독교인이 사채업으로 배를 불린 이야기는 14세기 이탈리아의 작가인 보카치오가 저술한 책인 데카메론에서도 수시로 언급될 정도며,33 경제사학자들은 중세 이탈리아에서 우후죽순으로 설립된 은행들 중 하나인, 1408년에 설립된 산 줄리오 은행을 인류 역사상 최초의 주식회사로 보기도 한다. 물론 정설은 훨씬 뒤에 설립된 네덜란드 정부 산하의 공기업인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가 역사상 최초의 주식회사라는 것이지만, 이런 주장이 나올 정도로 유럽의 기독교 신자들이 이끄는 금융업계가 고도로 발전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시기에 유대인들이 설립하거나 운영하는 은행은 단 한 곳도 없었고, 유럽 내에서 유대계 자본에 의해 설립된 최초의 은행은 중세도 끝난 18세기에 설립된 로스차일드 은행이었다34.
물론 십자군 전쟁 때까지만 해도 기독교인끼리 사채는 금지되었다. 이는 유대인들도 마찬가지여서 유대인끼리의 사채는 금지되었다. 그때는 사채에 대한 부정적인 관점이 강해서 자신과 동질감을 느껴지는 사람들끼리는 사채를 하는 것이 터부시되었다. 그래서 고리대금뿐 아니라 저리대금이라 할지라도, 기독교인 입장에서는 유대인이나 이슬람인 등 이교도들에게 꿀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 중에 유대인이 위에 기술된 이유들까지 더해져서 기독교인들의 머리 속에 악덕 사채업자로 각인된 것이다. 십자군이 돈이 부족하면 유대인한테 빌리든지 뺏든지 했던 것도 이의 연장선으로 생각할 수 있다. 또 이는 이 당시 기독교인들끼리, 또 유대인들끼리 내부의 소속감이 얼마나 컸으며, 반대로 외부에 대한 배타성이 얼마나 강했는지를 시사해준다. 근데 뭐 당시 기준으로 말하자면 중세 유럽에선 '기독교'란 한국에서 '검은 머리'라고 말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표현이었다. 극소수 유대인이나 기타 종교인이 있는 거고 기독교는 그냥 '일반 국민 기본값'이다.
한편 이슬람권에선 일반 국민 기본값이 무슬림이었고, 유대인을 포함한 다른 종교를 믿는 집단은 이슬람 세력의 우위를 인정하고 제때 지즈야만 낸다면 딤미 혹은 아흘 알 키탑 (성서의 민족들)으로 존중되었다. 무함마드가 메디나의 통치자가 되고, 메카 세력과 대결하는 과정에서 메카 공격을 주저하거나 내통하던 유대인 부족들과 대립했었기 때문에 쿠란과 하디스에 반유대주의적인 구절이 다수 실리게 되었지만, 평시에는 세금 잘내고 복종도 하면 자치권을 주는 등 봐주었고, 후대의 칼리파와 술탄들도 대체로 이러한 기조를 그대로 이어받았기 때문에, 유대인들이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지위를 누릴수있던것이었다. 11세기 파티마 왕조에선 사다카 이븐 유수프 알 팔라히와 아부 사아드 등의 유대인 와지르 (재상)을 두기도 했고, 마이모니데스는 살라딘의 주치의였다. 몽골계 특유의 능력주의이던 일 칸국 역시 유대인 와지르를 두었다.
18세기와 19세기가 되자 서유럽에서도 유대교와 유대인에 대한 탄압은 감소하며 동시에 유대인들의 사회적 지위가 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18세기 들어서 유대인들도 지역사회에 활발하게 융화되어 참여하기 원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지금도 여러 음모론에 단골로 등장하는 로스차일드 가문이 금융 재벌이 된 것도 19세기 초반이며, 19세기 후반 영국에서는 성공회로 개종한 유대인 정치인인 벤자민 디즈레일리가 수상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딱히 따로 말하지 않아도 당시 전 분야에 걸쳤던 유럽계 유대인들의 눈부신 활약은 충분히 알려져 있다. 하지만 반유대주의는 살아남아 결국 홀로코스트가 일어났고, 6백만 명의 유대인들이 죽었다고 추산된다.
홀로코스트
20세기 초중반에 걸친 러시아 제국의 포그롬과 포그롬의 연장선상인35 나치 독일의 홀로코스트는 600만 명이 넘는 유대인을 학살하여, 인간이 어디까지 잔혹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아이러니한 건 나치는 유대인이 수전노에 고리대금업자라는 이미지로 선전했는데 나치 집권 후 아인슈타인36처럼 통찰력 있는 사람을 제외한37 나머지 유대인들은 다 수용소로 끌려갔다.
20세기 초 영국은 시온주의의 대두를 지켜보고 유대인들에게 영국령 우간다 땅을 내줄 테니 거기서 나라 만들라고 제안한 바가 있었다고 한다. 자세한 것은 영국령 우간다 계획 참고. 비슷한 시기 소련에서도 유대인 자치주를 만들어 유대인 이민을 유치하려고 했다.
홀로코스트가 유대인의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는 이유는, 이 경험을 통해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유대인"이라는 공통된 아이덴티티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수백 수천 년간 세계를 떠돌면서 유대인들은 다양한 분파로 나뉘어 있었고, 그 다양한 분파의 일원들은 서로를 닭 소 보듯이 하며 동질감을 느끼지 않았다. 아예 본인이 유대인이라는 사실은 알았지만 별로 의미를 두지 않았던 사람들도 많았다. 카를 마르크스, 펠릭스 멘델스존, 벤저민 디즈레일리, 슈테판 츠바이크, 바뤼흐 스피노자 등 유럽에서 활약했던 유대인들의 면면을 살펴봐도 혈통 외에 이 사람들의 공통점을 찾기는 어렵다. 단순히 업적의 차이가 아니라, 철학적인 지향점이나 인생을 대하는 태도가 굉장히 판이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애시당초 홀로코스트는 제국주의에서 없어선 안 될 방해파와 장애물 숙청, 제거의 목적이 있는 한 현상이고 이에 총통의 정신나간 사상이 결합되어 유대인이 목표가 된 것이다.38
정치적인 면에서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테오도르 헤르츨 같은 이들은 시온주의 운동을 통해 유대인 국가의 건설을 주장했지만, 유럽 사회에서 성공한 많은 수의 사람들은 "우리가 왜?"라는 심드렁한 태도를 보였다. 본인들이 사회적으로 성공하면 유대인이라는 핸디캡을 벗어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예를 들어 18세기 말부터 시작된 유대인 계몽주의 운동인 하스칼라(השכלה)39의 선구자 역할을 했던 모제스 멘델스존40의 후손들은 은행업, 면직산업, 음악가로서 성공한 삶을 살았으며 모제스 멘델스존의 아들 대부터는 아예 전부 기독교로 개종했다. 실제로 19세기 독일에서는 유대인의 공직, 교직, 군입대가 허용되는 등 유대인 차별 정책이 하나둘 철폐되었고 바이마르 공화국 시절에는 고위직 장교와 고위직 공무원까지 허용되는 등 유대인이 진정으로 독일 국민의 일원으로 대우를 받기 시작했다. 마찬가지로 유대교 전통이 약해지고 유대교를 배교하고 기독교로 개종하는 사람들도 늘어났으며 유대인이면서 독일어만 쓸 줄 알고 이디시어는 하나도 모르는 사람들도 상당하는 등 유대인들 역시 여기에 발맞춰 독일 사회의 일원으로 착실히 편입되어 가고 있던 중이었다. 거기다가 같은 유대인임에도 가난한 동유럽에서 온 유대인들을 깔보는 인종차별적인 태도는 덤이었다.41
하지만 이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돌프 히틀러가 등장해서 종교 개종, 사회적 성공의 여부와 상관 없이 모조리 잡아 죽이겠다고 날뛰었으니 유대인들 입장에선 큰 충격이었다.42 따라서 홀로코스트는 "우리가 남이가" 내지는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라는 식의 공통된 유대인 아이덴티티가 형성되는 계기가 되었고, 그렇게 형성된 아이덴티티가 바로 오늘날 이스라엘을 통해서 발현된 것이다.
그 시대에도 유대인에 대한 차별이 없던 것은 절대 아니지만 그래도 개인의 노력을 통한 성공으로 그런 차별을 뛰어넘어 자신의 입지를 갖출 수 있으며, 그 길이 유태인의 독립국가를 세우자는 시온주의적 노선보다 더 쉽고 합리적, 효율적으로 유대인의 입지를 얻을 수 있는 길이라고 여기는 이들이 다수였던 것이다. 하지만 히틀러와 나치의 만행으로 인하여 이러한 노력들은 무위로 돌아가 버렸다. 근대 국가 내에서 비주류 집단이 아무리 순응적인 태도를 취한다고 해도 주류 집단이 이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배타적인 태도로 폭력을 휘두르겠다고 작정해버리면 비주류 집단으로써는 이것을 막을 방법이 전혀 없음이 확인된 것이다. 이 때문에 유럽의 유대인들에게 '유대인 스스로의 안전을 보장하는 방법은 유대인에 의한 민족 국가를 만드는 것 뿐'이며, 자신들의 나라가 없는 상태에서 누리는 안전과 번영이란 그 나라의 주류가 '인정해 주는' 동안만 누릴 수 있는 불안한 것'이라는 관념이 형성되었다. 이것이 19세기~20세기 초까지만 해도 별 인기 없던 시오니즘 운동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을 뿐 아니라, 그 후 탄생한 현대 국가 이스라엘의 대외정책(대 중동 정책)에 비타협적인 배타주의의 경향이 강하게 두드러지게 하는 일종의 역사적 트라우마가 된 것이다.
전간기 시절 반유대주의의 기승으로 유럽에 있던 유대인들은 남거나 도망치거나 했는데, 2차 세계 대전 발발 이후 나치의 유대인 추방 정책이 홀로코스트로 선회하게 되면서 남아있는 대부분이 홀로코스트로 살해당했다. 1939년 전 소련에 거주하거나 독소불가침조약으로 획득한 지역에 거주한 유대인 300만 중 절반 가량은 소련군을 따라 도피했지만 나머지는 대부분 독일군과 그 부역자들에게 살해되었다. 미주 지역으로 도망친 유대인들은 주로 미국, 브라질, 아르헨티나 위주로 도망쳤다. 심지어는 중국으로 도망친 유대인도 있는데 중국으로 도망친 유대인들 중 상당수는 하얼빈이나 신장 위구르 자치구로 이주 후 상하이를 거쳐 미국 등으로 망명했다. 일본 제국은 상하이로 도망친 유대인 2만여 명을 상하이 게토43에 가두었는데, 이 유대인들은 동유럽의 게토와 달리 대부분이 살아남았지만 역시 열악한 생활조건으로 고통을 겪었다.
현대 이스라엘
제 2차 세계대전 종전 2년째인 1947년, 마르세유에서 배를 타고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하는 독일 유대인 생존자들.
유럽계 유대인들이 온갖 박해에도 불구하고 그들 특유의 생명력으로 나름대로 상업과 금융의 중심으로 떠오르는 등, 좀 불편한 환경이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유럽 사회에 붙어 살던 중, 아돌프 히틀러가 등장해 600만44의 유럽계 유대인을 학살하였다. 게다가 아랍 세계도 근대 이후 민족주의가 고조되면서 홀로코스트같은 산업화된 학살만 벌어지지 않았다 뿐이지 아랍계 유대인에 대한 포그롬을 자주 일으켰다.예시 결국 유럽과 아랍 세계의 유대인들은 자신의 나라를 열망하게 되고 1948년, 고대 유대인의 땅이었던 팔레스타인에서 현대 이스라엘을 건국하게 된다.
그러나 아랍 세계 한복판에 이민족의 국가가 들어서는 것을 좌시할 생각이 없던 아랍 국가들은 제1차 중동전쟁을 일으켰고, 여기서 이스라엘이 승리하면서 팔레스타인 정착에 성공하자 아랍인들의 원수가 되어버렸다. 덕분에 주변 아랍국가들뿐만 아니라 이슬람권 전체에서 이스라엘에 비협조적이 되었고 이스라엘은 국제사회에서 고립받는 나라가 되어 버렸다. 하지만 미국과 유럽국가들(특히 독일46)만큼은 이스라엘과의 수교 관계를 맺으며 이스라엘을 지지하고는 있으나 프랑스의 경우 외교 정책에서 종종 이스라엘보다 아랍 국가들의 편을 들기도 하고(대표적으로 프랑스는 이스라엘과 아랍국가들과의 평화협상을 중재할 때 사실상 아랍국가 쪽으로 유리하게 협상을 중재하는 경우가 있다) 독일이나 다른 유럽권 국가들도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들간 분쟁에 비판적, 적대적인 태도를 어느 정도 취하면서 미국과 달리 좀 아니꼽게 보기도 한다.
흔히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에서의 이스라엘측이 일으키는 사건들을 두고 이해할 수 없다는 편견이 있다. 그러나 유대인들도 결국 다른 민족과 다를 바 없는 똑같은 사람들이며47, 게다가 이 분쟁은 이스라엘의 국권은 물론이요, 유대인 자신의 목숨줄도 걸린 문제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이스라엘은 아랍 세계와 4차례에 걸쳐 국운을 건 전쟁을 벌였으며, 특히 1차 전쟁과 4차 전쟁에서는 나라가 아예 망할 뻔했다.
또란 이스라엘 유대인의 구성도 고려해야 한다. 편견과 달리 이스라엘 유대인은 아슈케나짐이 대부분을 차지하지 않는다. 이스라엘 유대인의 과반은 세파르딤과 미즈라힘들이다. 그들은 아랍 세계에서 추방되면서 학살, 투옥, 약탈 등 온갖 험한 꼴을 당했기 때문에 아랍인에게 적대감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게다가 팔레스타인 아랍인과 지속적으로 유혈투쟁을 일으키면서 소수의 화해파와 진보파를 제외하면 이젠 정말 적대감 외에는 남은 게 없는 상황이다. 아무튼 이스라엘과 이스라엘 유대인들이 인종차별을 하는 일도 많고, 이것은 유대인에 대한 혐오가 다시 커지고 있는 이유 중 하나다. 특히, 근본주의자들인 하레디들이 제일 답이 없다. 자세한 것은 하레디 참조.
현대의 유대인
유대인은 수천년간에 걸쳐 동서양 인도유럽어족 등 혼혈화가 상당히 진행됐기 때문에 혈통보다는 그 안에 있는 영혼 또는 정신을 바탕으로한 신에 대한 믿음을 중요시하게 되어 인종이나 혈통은 큰 의미가 없어졌으며, 좁은 의미에서는 풍습과 유대교 신앙 여부로 유대인의 여부를 가리는 게 더 의미 있을 수도 있다.48 하지만 혈통 역시 중요한 게 현실이라서, 모계가 유대인이면 자식도 (유대교를 믿느냐와는 무관하게) 유대인으로 치는 게 일반적인 현실이다. 엄연히 유대인 가족의 자녀인데 유대교를 믿지 않는다고 해서 유대인이 아니라 무슨 앵글로색슨인이나 중국인이라고 할 순 없으니 말이다. 실제로 유대인(Jewish)라고 분류되는 현대인들의 상당수는 유대교도가 아니라 단지 부모가 유대인이라서 당연히 유대인이라고 불리고 있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약 1500만 명의 유대인이 분포한다.
미국 유대인
전 세계적으로 합산해봤자 1,400만 명밖에 안 되는 이 작은 민족이 가장 영향력 있는 집단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역시 미국에 사는 유대인인 유대계 미국인들 때문이다. 미국 인구의 약 1.5%를 차지하는 유대인들은 경제, 학문, 문화, 예술, 언론, 스포츠49 등 미국 사회의 거의 모든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다.
유대인들이 일찍이 영화산업을 가치있게 눈여겨본 이유가 과거엔 늘 핍박을 피해 도망가고 이주하다 보니 언제 갑자기 또 무슨 탄압을 당하면 집과 물건 등 유형 재산을 버려두고 바로 튀어야 할지 모르므로 무형적인 가치에 대해 관심이 컸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눈에 보이는 물건 같은 것 보다도 무형적인 가치를 더 중요시하는 유대인의 성향은 학문, 예술, 인간과 세계에 대한 호기심, 창의적인 아이디어 등 정신적인 면을 탐구하는 유대인들이 그토록 많은 것과도 연결된다.
그리고 헐리우드 영화사들 뿐 아니라 주요 기업, 금융기관, 언론사들의 설립자들이 전부 러시아, 폴란드, 헝가리, 독일 등에서 이주한 동유럽/중유럽계 유대인이고50 미국의 모든 분야에서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사실 유대계 미국인의 대다수는 동유럽과 독일에서 온 아슈케나즈 유대인이다. 또한, 일부 세파르드 유대인과 미즈라흐 유대인들도 존재한다. 19세기 말~20세기 초 유럽의 반유대주의 때문에 중유럽과 동유럽에 살던 많은 아슈케나즈 유대인들이 미국으로 이주했고 그 과정에서 기존의 정착민들에 의해 차별을 받았지만 이들은 유대인 마피아들을 조직해서 뒷세계에서도 살아남고, 특유의 경제력을 통해 연방법원에 기소를 하여 인종의 구분을 언어의 경계로 성문화 하였다. 1980년대 동유럽 공산권 붕괴 이후에도 많은 아슈케나즈 유대인들이 소련에서 미국이나 이스라엘로 이주했다. 소련을 제외한 동유럽 국가들의 유대인들은 나치의 홀로코스트로 몰살당했기 때문에 그 전에 탈출하지 않고 남아있던 이들 중에 살아남은 유대인이 극소수라서 1970년대 이후에 미국이나 이스라엘로 이주한 유대인들은 대다수가 소련에서 온 유대인들이다. 공산권 붕괴 이전에는 공산권 국가들은 자국민의 이주를 쉽게 허가하지 않았지만 1970년대 말에도 소련은 일부 유대인들의 이주를 허가해 상당수의 소련 유대인들이 1970년대 말에 미국이나 이스라엘로 이주했다. 구글 공동 창업자 세르게이 브린은 1979년 미국으로 이주했고 유대인인 레프 트로츠키의 손녀는 스탈린 시대에 살아남아 1979년 미국으로 이주했다가 미국에서 이스라엘로 이주했다.
유대계 미국인의 상당수가 미국 민주당을 지지하는 정치 성향을 가지고 있다. 미국 유대인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1940년대 이전에 미국으로 이주한 유대인들의 후손들은 민주당 지지 성향이 압도적으로 강하지만, 1970년대 이후 동유럽에서 이주한 보다 소수의 유대계 미국인들은 공화당 지지 성향도 강한 편이다.
이처럼 유대인은 모든 분야에서 큰 성과를 내며 잘 나가다보니 비유대계 백인들, 특히 원래 미국 백인의 주류 민족이었던 WASP 계층의 질시와 견제와 증오를 받기도 하고 각종 음모론의 주인공이 되기도 한다. 물론 그래도 유대인들의 엄청난 부와 명예, 권력 때문에 함부로 욕을 못하는 것 뿐. 극단적 사례는 역시 유대인 배후자본설. 하지만 많은 유대인들은 그런 무시무시한 음모론과는 별 관계가 없는 사람들이다. 후술하겠지만 유대인 중 자본가, 기업가, 영화업계, 학문, 예술, 전문직에 종사하는 상류층 지식인들이 많지만, 과거에 오랫동안 박해받아온 피해자로서의 아픈 역사가 있기 때문인지 정치성향은 소외 계층 배려를 지지하는 진보 성향이 많다. 유대인이 세계를 지배하니 이런 소리 때문에 피해를 받은 적이 많아서 유대인 음모론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다. 유대인 음모론을 활용한 나치의 홀로코스트가 유명하고 영국이나 프랑스, 미국에서도 비슷한 일들이 있었다. 다른 나라들도 주요 계층이 유대인 음모론과 비슷한 논리로 유대인들이 얻은 권력과 돈을 빼앗았지만 특히 프랑스가 나폴레옹, 조제프 푸셰 등 유명인들로 많이 알려졌다.
반유대주의는 꽤 최근까지의 역사이며 실제로 WASP 주류 민족의 실력자들이 유대인에게 가졌던 생각과 그들에게 했던 행동을 보면 배후자본설 등은 아무리 좋게 봐도 중세 때부터 받던 박해의 연장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유대인들은 중세 때부터 지긋지긋하게 느껴질 정도로 가진 것들을 어이없는 이유로 빼앗기며 미움과 박해를 당했다.
2008년 미국 대통령 선거의 경우, 민주당과 버락 오바마를 찍은 유대인은 80% 이상이었다. 이게 굉장히 독특한 현상인것이, 미국 유대인은 미국 전체 인구의 1.5%밖에 안되는 소수 인구이지만 전체 GDP의 20% 이상을 장악하고 있는 부자, 엘리트 집단인데도 부자에 대한 증세, 강한 정부, 빈부격차 완화같은 정책을 내놓는 민주당을 지지하기 때문이다.5152 이렇게 급진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흔한 것은 아니지만 미국의 유대인 랍비와 유대인들이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에 대한 군사행동을 비난하는 경우도 있었다. 다만 이스라엘 내 유대인 기득권은 이와 정반대이며 이스라엘 내 비호전적인 유대인들은 탄압받기도 한다. 팔레스타인과 공존을 추구하는 샬롬 악타브(히브리어로 안녕 평화여라는 뜻)같은 단체들은 민족주의 유대인 민병대들에게 허구한 날 두들겨 맞는다. 게다가 이 민족주의 유대인들을 민족주의 정치인들이 득세하는 정부가 제대로 단속할 생각도 안 하고 똑같이 양심적인 유대인들을 탄압하고 불이익주는 판국이다. 그리고 2016년 미국 대선에서 유대인 명문가의 자손인 재러드 쿠슈너를 사위로 삼은 도널드 트럼프가 친 이스라엘 정책을 펴면서 많은 유대인 상류층들이 공화당 지지로 돌아서서 트럼프 당선에 공헌했다.
물론 뉴욕 같은 데 가면 진짜로 검은 옷 입고 수염은 허리에 닿고 안식일에는 불도 안 켜는 골수 유대인들이 있긴 하지만53, 어디까지나 일부고 대부분은 평범하고 튀지 않게 살고 있으며 히브리어를 모르는 사람들도 태반이다. 말이 유대인이지 유대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도 많고 기독교 풍습을 따라 크리스마스에 트리를 세우기도 한다. 유대인들 중에서도 기독교로 개종하거나 종교가 아예 없는 사람도 적지 않다. 카를 마르크스의 부친도 개신교로 개종한 유대인 집안 출신이었고, 영화배우인 해리슨 포드도 꽤 진한 유대계 혈통이긴 하지만 개신교로 개종한 집안에서 자란 탓에 본인이 유대인이라는 사실에 크게 개의치 않으며 살았다. 반면 인디아나 존스에 같이 나왔던 케이트 캡쇼는 유대인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와 결혼하면서 유대교로 개종, 혈통은 유대계가 아니지만 유대인이다. 물론, 마르크스의 경우 프로이센 왕국의 강한 유대인 탄압으로 인해 반강제적으로 개신교로 개종한 사람도 많았다는 점을 유념해야 하긴 하다. 이렇게 혈통만 유대인이고 나머지는 평범한 백인인건 유럽 시절 아슈케나짐부터 있어왔는데, 미국 이민 이후로 더 강해진 편. 다만 미국같은 경우엔 메리 크리스마스가 기독교 상징이라고 하여 해피 홀리데이라는 말로 대신하는 인삿말이 퍼지고 있는데 이 말에 대하여 유대인들이 기여했다는 말도 있다. 사실 극소수 인구임에도 유대인들의 명절인 욤 키푸르(속죄일)는 여러 주에선 국경일인 것도 유대인들의 힘이 그만큼 크기 때문.
대부분의 대중매체에서는 돈 밝히는 구두쇠이거나, 학문이나 예술에 몰두하는 범생이 내지 천재로 묘사된다. 전자야 인종차별에 가까운 편견이지만 후자는 어느 정도 사실에 가깝다. 예를들어 미국의 명문대학과 대학원에서 유대인 비율은 인구대비 압도적이다. 현재 미국 유명대학 재학 유대인 비율은 하버드 대학교 30%, 예일 대학교 28%, 프린스턴 대학교 24%로 엄청나다. 사실 명문대일수록 인종적/민족적 비율도 어느 정도 조정하려 하기 때문에 유대인이 너무 많이 입학하는 걸 경계하는 기류가 예전부터 있어와서 사실 미국의 대입 제도는 유대인에게 오히려 불리한 점이 많다. 특히 20세기 전반기까지만 해도 명문대학들에서 너무 유대인들만 많이 합격하기 때문에 당시 WASP 출신이 주류였던 대학교 이사진에선 어떻게 해야 유대인의 입학을 줄일 수 있을까 고민을 했을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대인이 그토록 명문대에 많이 입학하는 것은, 고교에서 탁월한 성적을 거둔 학생들이 워낙 유대인 투성인데다가, 대학교에서도 유독 유대인들의 성적과 아웃풋이 워낙 좋기 때문에 각 명문대학교의 입장에서도 자기 대학교의 아웃풋을 위해서는 학업적으로 우수한데다가 성공할 확률이 높은 유대인을 많이 안 받을래야 안 받을 수가 없는 것이다.
기업, 학문, 전문직종들 뿐 아니라 유대계가 꽉 잡고 있는 할리우드 영화를 비롯해서 각종 문화 예술(음악, 문학, 시나리오 작가 등등 심지어 유명하거나 기발한 스탠드업 코미디언들도 상당수가 유대인이다.) 쪽에도 수많은 유대인들이 업적을 주도해오고 있다.
미국에서 유대인들은 주로 대도시에 거주하는 경우가 많다. 지역으로 보면 북동부와 캘리포니아, 플로리다에 많이 거주한다. 뉴욕주의 경우 유대계 미국인 인구56가 1,757,270명에 달한다. 보스턴-뉴욕-필라델피아-워싱턴 D.C.로 이어지는 메갈로폴리스에 300만명 가량의 유대인이 거주한다. 뉴욕시의 경우 여느나라 대도시가 그렇듯 흑인 백인 가릴것 없이 출산율이 낮은편인데, 정통파 유대인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의 출산율은 독보적으로 높다고 한다. 이는 유럽의 정통파 유대인 거주지역도 마찬가지다.
사실 유대인이 물고기가 물만난 듯이 주로 활약해온 건 유럽에 비해선 민족 차별이 덜 했던 미국에서이지만, 유럽에서도 각 분야에서 천재로 불리거나 업적을 낸 사람들의 상당수가 알고 보면 유대인인 경우가 허다하다. 학문쪽만 봐도 엄청나서, 전세계 인구의 0.2%에 불과한 유대인들이지만 역대 노벨상 수상자 중 유대인의 비율은 무려 25% 정도나 된다. 그것도 평화상과 문학상을 제외한 과학/학문 분야의 노벨상만 따지면 30%가 훌쩍 넘는다. 수학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필즈상에서도 역대 수상자들의 상당수가 유대인들이다.
이스라엘 유대인과 미국 유대인의 문화적 차이
이스라엘에 있는 유대인들은 유럽과 미국의 유대인들과 문화적으로 꽤 큰 차이가 있다. 대다수의 유럽계 유대인들은 다른 유럽인들과 문화적으로는 그냥 동질감이 있는 편이라서 서구화된 한국인들은 딱히 대하는데 어려움이 없는데 이스라엘계 유대인들은 이야기가 좀 다르다고 한다. 대표적인 게 거침없이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회사에서 회의할 때 말단 사원이 거침없이 질문을 하고 솔직한 코멘트를 말하는 등 서양의 문화라고 해도 무례하다 싶을 정도로 거침없다. 게다가 발성도 우렁차게 하는 것을 좋아해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말할 때 굉장히 거칠고 크게 말한다. 이정도면 성격이 직설적이고 우렁차게 말하는 거 좋아하는 아랍인과 비슷하다.57 유대계 미국인과 유럽인들도 이스라엘인들의 이 거침없음이라면 학을 뗀다.
현대 유럽의 유대인
세계 유대인의 10%(140만 가량)는 유럽에 거주한다. 유럽에서 유대인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나라는 50만 가량이 거주하는 프랑스이며 파리시에만 27만명의 유대인이 있다고 한다. 그 다음은 영국으로 30만명이 있고, 뒤이어 러시아 연방, 독일 순이다. 그 외의 국가는 10만명 미만이 거주한다.
편견과 음모론
유대인은 역사적으로 항상 자신들의 역사관1과 종교관을 고수하였기 때문에 기독교권과 이슬람권 모두에게 차별의 대상이 되었다. 현대에도 이와 관련하여 편견과 고정관념, 논쟁거리가 많다. 영어 멸칭으로 유대인을 Kike라고 부르곤 한다. 흑인을 "Nigger" 또는 동양인을 Chink라고 부르는 것과 동급.
유대인들은 금융 자본 관련해선 조지 소로스, 로스차일드 등과 관련하여 음모론이 끊이질 않는다.
유대인은 슬기롭고 지혜로운 민족이다.
탈무드의 이름을 달고 유대인의 지혜를 주제로 내건 어린이용 교육 도서가 많으며, 대한민국의 교육을 문제삼을 때에도 북유럽 교육 못지않게 종종 비교하는 대상이 바로 유대인들이 역사적으로 해 온 교육 방법이다. 대표적인 것이 하브루타이다. 이 때문에 특히 한국에서 유대인은 어딘지 모르게 고상하고 지적이고 지혜롭다는 이미지를 갖고 있다. 더군다나 유대인들은 근대사에서 나치 독일에게 학살당한 역사도 갖고 있기 때문에, 여러 가지 조리돌림을 막을 수 있고 홍보용으로도 좋다.2 마찬가지로 타민족에 의해 탄압을 받은 역사를 가진 한국인 입장에서 더욱 공감해 주기 쉽다. 이 같은 모종의 이유로 인해 한국에서는 유대인이 사회적 약자이며, 지혜롭고 본받아야 할 대상 정도로 그려지기도 한다. 하지만 유대인도 결국 사람이고, 이스라엘 항목을 보아도 알 수 있듯, 이들 역시 레바논 등에 대해 자신들이 과거에 받은 부당한 탄압을 이젠 도리어 자신들이 행하는 등 문제점 역시 많다.
또한 이스라엘은 내부적으로도 슬기와 지혜와는 거리가 멀다. 이론상 유대인은 인종에 연연하지 않는 정체성을 가졌지만 실상은 그 내부에서도 인종차별이 만연하기 일쑤로 같은 유대인이더라도 백인 유대인이 흑인 유대인보다 더 대접이 좋다. 한국으로 치면 같은 한국인인데 피부가 (상대적으로) 검다고 차별하는 꼴.
그리고 이 중 절정인 하레디는 이스라엘의 미래를 어둡게 만드는 존재들이다. 이들로 말하자면 유대교 근본주의자라고 말해도 좋을 이들인데 그냥 근본주의로 끝내고 말면 모를까 이들은 병역을 거부한다. 이집트와 요르단만 빼면 다 적국인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이것도 빡칠 일인데 그런 주제에 정치참여는 활발하다. 더욱이 이들의 인구가 많은 비중을 차지하며 또 늘어나는 집단이기에 무시도 못한다. 그나마 이들이 부자라면 세금이라도 왕창 거둘 수 있겠지만 실업자가 대부분이다. 그럼 또 지식이라도 있냐면 그것도 아닌게 문제라서 인터넷 등 현대매체의 상당수를 배척한다. 공부? 그런 것 없다. 하레디에는 1에서 100까지도 못 세는 사람도 많다. 그나마 전화는 쓰지만 스마트폰은 제한적으로 사용한다. 심지어 이들 중 일부는 아예 자신들의 생활을 남에게 강요하기까지 하는데 대표적으로 제4차 중동전쟁 당시 일부 유대인 장성들이 하레디들에게 돌을 맞은 일이 있다. 그럼 또 얘네가 조용히 지내냐면 팔레스타인에 대해서 결코 온건하지 않은 이스라엘 정부도 한 수 접는 초강경파다. 그나마 정치인들이 하레디를 통해 이익을 보긴 하지만 당연히 국익과는 전혀 무관하다. 그래서 하레디는 이스라엘의 큰 문제점이 되어가고 있다. 이스라엘의 여론도 하레디에게 부정적이고 인식도 그렇다. 그러다보니 이스라엘에서도 더는 못참고 하레디들을 강제적으로 징집하거나 사고를 치면 (예전보다) 강경하게 진압하는 등 점점 강경하게 나가고 있다. 이런 사람들이 슬기나 지혜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물론 그렇다고 해서 유대인을 싸잡아 비하한다거나 음모론적인 사고로 공포를 가지는 것도 예전부터 내려왔고 그런 작품들을 벤하거나 자기네가 먹고 자기네것으로 한다. 부정적 편견 만큼 과도한 긍정적 편견도 자제하고 개인 단위로 판단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유대인은 좌파이며 지금도 세계정복 음모를 꾸미고 있다.
프랑스 혁명 이후에 당시 우파 세력은 프랑스 혁명, 러시아 혁명, 공산주의, 성 소수자 인권운동, 심지어 흑인 인권운동과 페미니즘까지 유대인과 연관되어 있다고 해왔으며 이러한 연좌의 끝판왕이 바로 나치 독일이 들고 홀로코스트와 독소 전쟁의 명분으로 내건 유대-볼셰비즘이다. 나치의 패망 이후에도 反유대인 성향을 띄는 대안 우파들도 이런 소리를 반복하고 있다. 단 대놓고 ‘유대 볼셰비즘’이란 단어를 쓰면 누가 봐도 나치이기 때문에 탄압받아서 지금은 문화적 마르크스주의란 용어를 쓴다. 지금까지도 일부 극우세력들은 자신들이 혐오하는 진보운동들을 모두 유대인과 연관짓고 있다.
유대인을 다룬 이러한 선동, 음모론에 관해서 사회주의자들은 자본주의 체제에서 계급 불평등을 은폐하는 기능을 한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사실 홀로코스트 이전에는 사회주의자들도 상대방 마음에 안 들면 유대 금융자본의 하수인 부터 나올 정도로 반유대주의는 일반적이었다. 1920년대 독일에서는 극좌와 극우가 서로에게 심심하면 유대 금융자본의 하수인 혹은 유대 사회주의 하수인 개드립을 쳤다.
유대인은 백인이 아니다.
과거의 구닥다리식 백인 개념3으론 아닐 수도 있지만, 현대의 인종 분류 기준으로 유대인은 대부분 백인(코카소이드)이다. 물론 흑인 유대인 또한 존재한다. 전술 및 후술되어있는 바와 같이 유대인의 범위는 인종이 아니다. 반유대주의가 유행했던 시절엔 유대인은 유색인종으로 간주했으며 지금도 서구의 극우들 사이에서 이어지고 있다.
서구의 극우들은 같은 백인이라도 기독교 문화권이 아니면 유색인종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더 심하게는 같은 기독교라 하더라도 종파가 다르거나 종교 내부의 이념 성향에 따라서도 백인은 물론 인간 취급조차 하지 않은 시절도 있었다.
유대인은 본래 유다 왕국의 후손이란 뜻이지만, 넓은 의미에서 유대인은 인종이나 민족 명칭이 아니라 기독교인, 무슬림처럼 종교인 명칭이기도 하다. 시온주의자들은 유대인을 민족 개념으로만 간주하는 경향이 있지만 이에 대해 반시온주의자들은 "그런 사고방식은 서구 극우세력이 유대인을 인종 개념으로 간주한 것과 다를 바가 없다"고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현대의 유대인과는 다르게 고대의 유대인은 전부 중동의 셈족이며 따라서 예수도 그러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예수는 서양인은 아니며 인종적 백인(Caucasian)은 맞다. 현대 중동계 유대인이나 아랍인을 상상하면 된다. 되려 이스라엘에서는 비 백인 유대인을 차별한다.
유대인은 항상 이스라엘편이며 아랍, 이슬람을 혐오하고 미국을 지배하고 있다.
유대인=이스라엘인이라는 사고방식과 함께 서구의 반유대주의를 수용하면 생기는 편견들이다. 이스라엘의 우파세력이 아랍, 이슬람혐오를 조장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유대인의 행태라고 정의하는 것은 성급한 일반화이다.
놈 촘스키, 에릭 홉스봄, 노르만 핀켈슈타인, 슐로모 산드, 일란 파페, 기데온 레비 처럼 반이스라엘, 반시온주의를 주장하는 유대인및 이스라엘인들이 있으며 이들에게 동조하는 유대인및 이스라엘인들은 적어도 극소수는 아니다. 그리고 이스라엘과 시온주의를 지지하는 사람은 유대인만이 아니라 서구의 기독교우파들과 세속적 우파들도 있다.
미국이 이스라엘을 지원하는 것은 유대인의 로비도 일정 역할을 하겠지만, 그보다는 중동을 통제하는데 이스라엘의 역할이 제격이기 때문이다. 사실 미국의 이스라엘관은 거진 아오안 취급이었고, 원래는 국력이 압도적인 이란 제국이 훨씬 중요한 중동 친미국가였다. 그러나 이란 혁명이 일어나 이란이 골수 반미국가로 바뀌면서 미국은 그 대안을 찾을 필요가 생겼고 그 나라가 바로 이스라엘이 된 것이다.
이스라엘의 주류 정당인 리쿠드당은 친미적인 정당이다. 그러나 비주류이지만 이스라엘 내에서도 반미적인 유대우월주의 정당이 있으며, 친이슬람적인 정당도 있다. 이스라엘이 심한 친미 성향을 보이는 것은 이스라엘이 미국을 지배해서가 아니라, 미국에 의존하지 않으면 국가가 생존할 수가 없는 형편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을 당장 없애고 싶어하는 아랍에 완전히 둘러싸인 국가라, 미국이 지원을 완전히 끊으면 이스라엘은 지도상에서 사라질 만큼.(제4차 중동전쟁 참조) 핵무기가 있기는 하지만 만약 핵무기를 쓰면 이스라엘을 박살내는 주체가 중동 국가들에서 공식 핵보유국으로 바뀌게 되기 때문에 더 처절하게 망한다.
그리고 유대교 근본주의자들은 오히려 반이스라엘 성향을 보였다. 건국된 이스라엘이 자신들이 원하는 신정국가가 아닌 세속국가였기 때문이다. 물론 시간이 지나자 이스라엘을 인정하고 입국한 하레디로 많았지만, 아직도 상당수의 하레디는 반이스라엘 성향을 보이며, 반이스라엘 성향의 아랍인과도 연대하기도 한다.
현대 유대인은 가짜이며 오히려 현대 팔레스타인인이 고대 유대인의 후손이다
유대인들의 혈통이 이민족들의 지배 때문에 부계에서 모계로 변하고 아예 이민족 출신의 유대인5들이 유명하기 때문에 이런 발언이 나오지만 유대인 개념이 종교인 개념이라면 위 제목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러한 논쟁이 생긴 원인은 아서 쾨슬러가 제13지파라는 책을 출판하면서부터인데 이때부터 아슈케나짐=하자르 후손=가짜 라는 학설이 퍼지기 시작했다. 아슈케나짐 하자르 가설은 하플로그룹 분석을 통해 반박되면서 사라진 학설이다.
그러나 일부 반시온주의자들도 저런 학설을 주장하는 경우가 있는데 대표적인 인물이 이스라엘 좌파 학자들의 거두 슐로모 산드이다. 그는 시온주의를 비판하면서 시온주의자들이 강조하는 디아스포라는 신화에 불과하며 당시 유대교는 선교를 통해 확산되었으며 혈통과 상관없이 누구든지 유대교를 믿으면 유대인으로 간주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는 오히려 혈통을 따지자면 지금의 팔레스타인인들과 이스라엘 아랍인들이 고대 유대인의 후손이라고 주장했다. 슐로모 산드의 대표작 '만들어진 유대인'이 2022년 1월 한국에 출간되었다. 심지어 슐로모 산드는 하플로그룹 분석까지도 믿을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슐로모 산드뿐만 아니라 츠비 미시나이라는 학자도 같은 주장을 하고 있는데 그는 팔레스타인인들을 조사하면서 팔레스타인 내에서 유대교의 흔적을 찾아내고 현대 팔레스타인인들도 유대교적인 풍습을 계승하고 있고 중동에 만연된 이슬람주의 때문에 그것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는 주류 시온주의와 팔레스타인 민족주의를 비판하면서 둘 다 고대에는 유대교적인 풍습을 지녔는데 현대에 와선 서로를 타자화하고 서로의 유사점을 못 보고 있다고 비판했다.
현대 팔레스타인들이 아랍인들의 혈연적 후손이라는 주장이 있지만 이것은 시온주의자의 비역사적인 주장에 불과하고 지금의 아랍인들은 혈연적으로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유래된 것이 아니라 7세기에 아랍 군대가 중동을 정복하면서 원주민들이 아랍화된 것이다.6 19세기에 유럽의 유대인들이 이민오기 전에 타지역 이민자들이 있었지만 대량이민이 아니었고 다수 팔레스타인인들은 수천 년 전부터 자신의 고향에서 이주하지 못하고 살아왔다. 지금은 교통수단이 발달해 누구든지 이사하기가 쉽지만 19세기 이전엔 이사라는 것도 재력이 있어야 가능했고 재력이 아니라면 권력자에 의해 강제로 이주하는 것밖에는 없었다.
현대 이집트인들도 고대엔 이집트 다신교를 믿었지만 세월에 지남에 따라 기독교인이 되고 무슬림이 된 것이다. 팔레스타인인들도 이와 같은 경우라는 것은 이미 주류 학자들에 의해 밝혀졌다. 이를 부정하는 것은 학계가 아니라 특정 정계이다.7
결론을 정리하자면 유대인 민족이라는 아이덴티티의 측면에서보면 유대인과 큰 상관은 없다.
그나마 그럴싸하게 주장을 하자면 현대 유대인의 대다수는 비유대인과의 오랜 통혼으로 혈통적으로 고대 유대인과는 많이 달라졌다는 것 정도. 사실 유대교 신앙을 기준으로만 유대인을 판가름하는건 근현대 기준이고 고대 유대인 기준으로 보면 여기다가 '혈통'도 중요해진다. 사마리아인이 유대인과 가장 가까운 민족임에도 대접이 박했던 것도 물론 주된 이유는 사마리아인들의 신앙이 이방 신앙과 혼합되는 모습을 보인 것도 있지만 일단은 사마리아인이 이방인의 피가 섞인것도 이유기는 했다. 그러니까 고대 유대인 눈에 보기에 현대 유대인은 신앙은 유대교 신앙이 맞지만 혈통적으로는 이질적인 그런 존재에 가깝다. 거기다 사실 고대 유대교와 현대 유대교에 차이가 없는 것도 아니고.8
사회주의자들은 대개 유대인이다.
대중적으로 카를 마르크스, 블라디미르 레닌, 레프 트로츠키, 로자 룩셈부르크, 빌헬름 라이히, 토니 클리프, 놈 촘스키, 버니 샌더스 등을 보고 떠도는 이야기이다.
유대인=사회주의자 라는 이야기가 떠돈 원인은 10월 혁명 이후로 서구의 매카시즘 신봉자들이 당시 성행했던 반유대주의와 연계하여 "사악한 유대인들이 유럽을 볼셰비즘으로 물들어 세계정복을 진행하고 있다."라고 선동했기 때문이다. 이런 유대-볼셰비즘 선동은 나치 정권 당시에 절정을 이뤘고, 냉전 시대에도 자유진영 내 극우파들이 이런 이야기를 퍼트렸다. 심지어 유대인 버니 샌더스가 민주사회주의를 주장하는 것 가지고 유대인=사회주의자라는 편견이 아직까지도 성행하고 있다.
구체적 사상으로서의 사회주의는 프랑스인이었던 클로드앙리 드 루브루아 생시몽 백작(Claude-Henri de Rouvroy, comte de Saint-Simon, 1760년 10월 17일 ~ 1825년 5월 19일)이 최초로 창시했다. 사회주의자들 중에 카를 마르크스가 대표가 되어 버린 것은 그가 사회주의를 19세기 이성의 시각에서 구조화하여 과학적 사회주의를 성립했기 때문일 뿐이고 유대인 여부와는 관련이 없다. 비록 카를 마르크스가 사회주의에 미친 영향은 크지만, 카를 마르크스 본인은 그 이전의 사회주의를 공상적이라고 비판하면서도 그들의 업적을 완전 무시하거나 사회주의가 아니라고 말한 적은 없었다.
물론 초창기 이스라엘에서 노동당이 건국 직후부터 1977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30년 장기집권을 한적이 있었고, 노조가입률도 80%에 달했을 정도로 좌파적인 성향이 강했을때도 있긴 했다. 하지만 2000년대에 와서는 노동당이 소수정당으로 전락한지라 다 옛날 이야기일뿐이다. 유대인이 전부 다 좌파라면 우파 정당인 리쿠드 소속의 네타냐후가 장기집권을 할 일도 없었다.
그리고 마르크스9, 레닌, 트로츠키 같은 공산주의자들은 애초에 무신론을 신봉하며 자신들을 유대인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유대계 미국인들은 거의 다 성공한 상류층이다?
당연히 사실이 아니다. 미국 유대인이 700만 명이나 되는데 아무리 미국이 세계 최대 경제대국이라고 해도 미국에 부자가 그렇게 많을 수는 없다. 초창기 유대인 이민자들 가운덴 가난하고 폭력적인 사람들도 많아 유명한 유대인 마피아들도 많았다.
물론 상당수의 유대인들이 성공해 미국의 상류층이 된 것은 사실이다. 1970년대 이후 동유럽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이민 1세대 유대인 중 크게 성공한 유대인은 거의 없어도 학력으로 전문직이나 교수가 되고 자녀들을 명문대에 보내 뉴욕 등 대도시에서 중산층에 성공적으로 정착한 유대인은 많다. 그러나 학력만으로 중산층에 진입하는 능력으로 미국에서 가장 인정받는 소수민족은 이제 유대인이 아닌 아시아인이다.
과거에는 미국 명문대의 유대인 학생 비율이 매우 높았던 것은 사실이다. 1925년 하버드의 유대인 학생 비율은 25%였고 1990년대까지 높은 비율을 유지했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아시아계 학생들의 비율이 높아졌고 유대인 학생의 비율은 크게 감소했다. 2010년대 하버드의 유대인 학생 비율은 13%이다. 허나 소수민족으로써 낮은 비중은 절대 아니다. 참고로 미국 내 유대인 인구의 비중은 약 2%이다. 인구 대비 6배가 넘는 수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