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거대구조
우주 거대구조(宇宙巨大構造, large‐scale structure of the cosmos)란 우주에 분포한 은하들이 나타내는 거품 모양의 구조이다. 꾸준한 우주 은하들의 3차원 공간 분포 조사를 통해 밝혀졌다. 빅뱅 이후의 초기 은하들은 무분별하게 퍼져있다가 점차 암흑물질의 중력 영향을 받아 암흑물질 분포와 비슷하게 뭉쳐져 결국 거품 형태가 되었음이 밝혀졌다. 거품 안의 빈 공간은 거시공동이라고 한다.
우주의 연대기
오늘날 지구상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들은 수많은 매체를 통해 기록된다.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1년 전 우리 사회의 가장 큰 이슈가 무엇이었는지 알고 싶다면 어렵지 않게 많은 기록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고자 한다면 어떨까? 10년 전보다 100년 전이, 100년 전보다는 1000년 전의 기록이 더 희귀해질 테고, 우리가 재생할 수 있는 장면은 더욱 더 희미해질 것이다. 그렇지만 역사가 존재하는 한, 즉 기록이 존재하는 한, 우리는 인류의 과거를 연속적으로 회고해볼 수 있다. 그리고 인류 문명이 어떤 과정을 거쳐 현재의 복잡한 모습에 이르게 되었는지 짐작해볼 수 있다.
우리가 관측하는 우주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과거의 모습을 보고자 한다면 지금 우리에게서 멀리 떨어진 천체를 관측해야 하는데 빛의 세기는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여 약해지기에 정보를 얻어내기는 더 힘들어진다. 지구 주변에 있는 행성과 항성, 우리 은하(태양계가 속한 은하, Milky Way)와 그 주위의 작은 위성 은하들, 그리고 우리 은하에서 가장 가까운 안드로메다 은하 등은 비교적 가깝게 있다는 뜻에서, 천문학에서는 이른바 ‘지역 우주(Local Universe)’라고 부른다. 사람이 평생 동안 빛의 속도로 여행한다고 해도 우리 은하를 벗어나기는커녕 태양계에서 멀어지기도 힘들겠지만, 이 정도의 거리는 우주 크기에 비하면 매우 가깝기 때문에 거의 동시대의 우주로 간주되는 것이다. 지역 우주는 다양한 빛의 파장 영역에서 높은 해상도로 관측되며, 그 성질과 운동도 비교적 자세하게 분석할 수 있다.
‘지역 우주’의 모습은 현대 인류사회처럼 아주 복잡한 모습을 띠고 있다. 은하의 무게만 따지더라도 우리 은하의 100만 분의 1 정도밖에 되지 않는 것부터 10배가 넘는 것까지 다양한 은하들이 지역 우주 안에 존재한다. 현재에 가까운 복잡한 지역 우주를 넘어서서, 과거로 갈수록(더 먼 곳을 바라볼수록) 우주의 모습은 더욱 단순하고 균일한 모습으로 변한다. 지역 우주에서 볼 수 있던 우리 은하보다 10배나 더 무겁던 은하들은 사라지고 주로 우리 은하의 100만 분의 1에서 10 분의 1 정도 크기를 지닌 은하들이 비교적 균일하게 분포하는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지역 우주와 차이를 두어 이런 과거의 모습을 담고 있는 우주를 통상적으로 ‘높은 적색편이의 우주(High-redshift Universe)’라 부르며, 특히 아주 먼 초기의 우주를 가리켜 ‘원시 우주(Early Universe)’라고 일컫는다. [그림 1]에서 보는 것처럼 은하 크기의 불균일성은 과거, 즉 왼쪽인 원시 우주쪽으로 갈수록 줄어든다. 시간을 계속 거슬러 올라가면 별과 은하들이 처음 탄생하던 시기가 나타나는데 이 시기가 앞의 글('캄캄한 원시우주에 별이 처음 생기던 순간')에서 다룬 바 있는 ‘우주의 재이온화 시대’이다. 그보다 더 이전으로 시간을 돌리면 별이나 은하처럼 빛을 발하는 그 어떤 천체도 존재하지 않는 시기에 이르게 되고 우주의 암흑 시대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다시 우주를 인류 역사에 빗대어 말하자면, 별과 은하가 탄생하던 재이온화 시대와 암흑 시대는 인류 역사가 시작되던 초기 문명 시대와 그 이전의 선사 시대와 비슷할 것이다. 인류가 강을 중심으로 모여 살면서 도시나 국가가 형성되고 법이 만들어져 공동체 생활의 틀이 잡히고 지식이 축적되어 철학이 생겨나던 초기 문명은 고고학과 역사학이 만나는 지점이며 문명 생성의 조건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순간으로 여겨진다. 또한 현대의 다양한 문명은 초기 문명에서 출발해 생성, 융합, 소멸을 거듭하며 발전해온 까닭에, 초기 문명에 대한 연구는 곧 현대의 다양한 문명의 바탕이 되는 공통 분모를 발견하는 데에도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암흑 시대와 재이온화 시대를 연구하는 것은 현재 우주 모습의 원인을 밝혀내는 것이므로 우주의 진화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과정이라고 하겠다.
수소와 헬륨 가스로 가득한 암흑시대
첫 번째 별이 탄생하여 우주의 암흑 시대가 끝났다면 그 시작은 언제였고 그 모습은 어떠했을까?
암흑 시대에 관한 정보는 전혀 관측된 바 없지만 다행히 그 시작은 정확히 알려져 있다. 전체 우주를 가득 채우고 있는 우주배경복사가 그 시작을 말해준다. 우주배경복사는 우주대폭발(빅뱅) 이후 약 40만 년 뒤에 뜨거운 물질들이 식으면서 전자와 양성자가 결합하여 수소와 헬륨을 만들어낸 재결합 시기의 순간에 생겨난 빛이다. 이 빛은 우주의 모든 공간에서 방출되어 퍼져나가고 있으며 우주의 팽창과 함께 파장이 길어지고 있다. 이 재결합 시기는 아주 짧게 지속되었으며 곧 암흑 시대의 시작점이 되었다.
암흑 시대 초기의 우주는 수소와 헬륨 가스만으로 가득찬 상태였다. 현생 인류의 유전자 분석으로 20만 년 전 인류의 이동을 추적할 수 있는 것처럼, 우주배경복사의 관측과 분석을 통해 암흑 시대가 시작되던 우주의 모습을 알아낼 수 있다. 7.3센티미터 파장을 지닌 우주배경복사의 전파는 하늘의 전 영역에서 놀랍도록 균일한 세기로 측정되는데, 전파가 강한 곳과 약한 곳의 차이가 10만 분의 1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전파의 세기는 곧 물질의 분포를 나타낸다. 따라서 이것은 암흑 시대 초기에 존재하던 물질의 밀도 분포가 아주 균일해서 그 차이가 10만 분의 1밖에 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우주배경복사에 담겨 있는 정보와 그로부터 알아낼 수 있는 사실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그림 2 (a)]는 우주배경복사의 세기를 온도로 나타내고 지구를 둘러싼 전체 하늘을 세계 지도처럼 2차원상에 표현한 것이다. 0K(K는 캘빈온도/절대온도 단위로 0K는 섭씨 영하 273도)를 파란색으로, 4K를 빨간색으로 표현한다면, 우주배경복사는 2.7K로 거의 균일하기 때문에 모두 초록색으로 나타난다. 지도의 ‘해상도’를 점점 높여 나가면(즉, 파란색과 빨간색이 나타내는 온도의 한계를 2.7K 부근으로 점차 줄여나가면) 10만 분의 1의 차이가 보이기 시작해 [그림2 (b)]처럼 우주배경복사의 ‘불균일성’이 나타난다. 이처럼 하늘의 방향에 따라 우주배경복사의 세기가 차이를 보이는 것을 우주배경복사의 비등방성(Anisotropy)이라고 일컫는다.
우주배경복사의 존재가 처음 발견된 것은 20세기 중반이지만 관측의 한계로 그 비등방성을 확인할 수 없었다. 우주배경복사에 비등방성이 있음을 처음 밝혀낸것은 1999년 발사된 코비 위성(COBE: COsmic Micro Background Explorer)의 관측 결과였다. 코비 위성은 관측 오차를 10만 분의 1수준으로 떨어뜨려 처음으로 비등방성을 탐지하는 데 성공했다. 그 공로로 책임자 조지 스무트와 존 매더는 2006년에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했다.
우주 거대구조에 나타나는 비등방성
우주론에서 이런 비등방성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 [그림2 (b)]에 나타난 우주배경복사의 비등방성은 불규칙적인 모습이지만 임의의 두 점에 대한 온도의 상관관계를 거리의 함수로 나타내면 [그림3]과 같은 패턴이 나타난다. 즉, 이 패턴은 우주배경복사의 요동 정도를 정량화하여 보여주는 것이다.
이 그래프의 패턴은 우주 구성 성분(일반물질, 암흑물질, 암흑에너지 등)에 따라 그 형태가 달라지기 때문에 그 성분들 사이의 비율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비등방성을 더 정확하게 측정하기 위해 코비 위성의 뒤를 이어 더블유맵 위성(윌킨슨 마이크로파 비등방성 탐지 위성, Wilkinson Microwave Anisotropy Probe: WMAP)이 2001년에 발사되었다. 더블유맵 위성은 성공적으로 측정의 정확도를 끌어올리며 정량적인 우주론의 시대를 열었다. 더블유맵 위성의 정밀한 측정은 우주의 나이가 137억 년이고 현재 우주를 구성하는 성분이 일반물질 4%, 암흑물질 26%, 암흑에너지 70%라는 것을 밝혀냈다. 암흑에너지는 물질 형태로는 존재하지 않는 미지의 에너지인데 암흑물질과 더불어 앞으로 우주론이 풀어야할 가장 큰 숙제 중 하나로 남아 있다.
[그림 3]의 세 번째 꼭지점의 존재는 암흑물질 없이는 설명할 수 없다. 또한 10만 분의 1의 비등방성은 매우 작아서 암흑물질 없이 우주가 진화하여 현재에 이르렀다면 지역 우주의 모습은 지금처럼 다양하고 복잡한 구조를 가질수 없었을 것이다. 암흑물질은 우리 은하 바깥쪽을 예상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돌고 있는 별들의 운동을 설명하기 위해 처음으로 도입된 미지의 물질로,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오직 중력으로만 다른 물질과 상호 작용하며 우리 은하의 중심에 모여 있는 것으로 추정되었다. 이론적인 필연성이 아닌 관측 결과를 설명하기 위해 도입된 것이라서 논란의 여지가 있었고 대안적인 방법으로 이를 설명하려는 이론도 지지를 받고 있었다. 하지만 결국 더블유맵 위성이 측정한 우주배경복사의 정밀한 비등방성은 암흑물질의 존재의 필요를 강력하게 뒷받침하였고 ‘차가운 암흑물질(Cold Dark Matter) 이론’이 표준우주론으로 인정받게 되는데 기여하게 된다.
중력의 작용…작은 불균일이 큰 불균일로
이렇게 균일한 가스 상태로 시작된 암흑 시대 초기의 물질은 어떤 과정을 통해 별이나 은하를 탄생시킬 만큼 불균일한 덩어리 구조를 만들게 되었을까?
초기의 아주 작은 밀도 차이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중력의 작용으로 서서히 커진다. 밀도가 높은 곳을 중심으로 가스들이 모여 들어 일정한 수준에 달하면 강한 중력의 영향으로 인해 물질은 그 주위에 묶이게 된다. 뜨거운 크림 스프가 식으면 여기저기에 덩어리가 생기듯이, 균일하던 우주에 주름이 잡히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렇게 중력에 묶인 수소와 헬륨 가스는 구(공) 형태를 이루며 중력은 이들을 한없이 중심으로 끌어당긴다.
중심으로 갈수록 가스의 압력이 높아져 그 힘이 구조를 지탱한다. 온도와 밀도가 높을수록 압력은 커져서 더 큰 무게의 가스가 만드는 중력을 견디며 버틸 수 있다. 하지만 압력이 버틸 수 있는 중력에는 한계가 있게 마련이다. 모여든 가스가 이 한계 무게를 넘어버리면, 즉 한계 중력을 넘어서면, 압력은 더 이상 이렇게 커진 중력을 견디지 못하고, 결과적으로 수소와 헬륨 가스의 구는 짜부러져 핵융합을 일으키는 조건을 만들어낸다. 이제 핵융합은 빛을 발하는 별을 만들어내고, 그리하여 우주 암흑 시대는 서서히 마감하게 된다.
우주의 물질이 만들어내는 구조는 필라멘트(실 모양의 구조)와 클러스터(덩어리 모양의 구조)를 이루어 ‘우주의 거미줄’이라고 불린다. 처음에는 작은 크기로 촘촘히 형성되던 구조가 중력의 작용으로 인해 뭉쳐져 점차 크고 성긴 구조로 진화한다([그림 3]과 [영상 1] 참조). 현재 지역 우주에서 발견되는 필라멘트와 클러스터의 구조는 일반적인 은하보다 수천, 수만 배나 큰 크기를 지니는데, 은하들은 주로 이런 구조 속에 집중적으로 분포하고 있다.
https://youtu.be/8C_dnP2fvxk
[영상1. 우주 구조의 형성을 컴퓨터로 시뮬레이션한 영상. 영상 속의 상자는 우주의 한 공간이 시간에따라 어떻게 변화하는지 보여준다. 상자 속의 파란색 입자는 물질(암흑물질과 일반물질을 포함)의 분포를 나타낸다. (Andrey Kravtsov / Chicago University)]
우주의 거대구조들을 측정하고자 하는 국제 규모의 대표적인 프로젝트로 슬론 디지털 스카이 서베이(Sloan Digital Sky Survey : SDSS)가 있다. 전체 하늘의 4분의 1이라는 방대한 영역에 걸쳐 은하와 퀘이사 등의 3차원적인 지도를 작성하려는 목적으로 2000년에 시작되어 현재도 데이터를 수집중이다. [영상 2]는 실제 관측한 은하들의 위치가 반영된 영상으로 우리은하를 넘어 우주여행을 한다면 우리 눈앞에 펼쳐질 광경을 보여준다.
우주 거대구조의 진화를 밝히는 열쇠
관측은 할 수 없지만 우주의 거대 구조 형성에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우주 암흑 시대의 모습이 어떠했을지는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 우주배경복사를 통해 알아낸 우주 초기 상태에다 중력의 작용을 적용하면, 암흑 시대에서 시작해 현재에 이르는 모습을 재현할 수 있다.
[그림 4]과 [영상 1]은 이런 시뮬레이션의 결과를 보여준다. 그림에서 상자는 시뮬레이션이 이뤄지는 공간, 즉 우주의 한 부분이며 상자의 크기는 우주 거대 구조를 다양한 범위에서 만들어 낼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커야 한다. 상자 속 점들은 은하 수준의 질량을 지닌 물질을 나타낸다. 이들은 처음에는 균일하게 분포하다가 점차 필라멘트와 클러스터 모양으로 모여들며 그 크기가 자라난다. 기나긴 우주 역사의 시간이 흐를수록 밀도가 높은 곳과 낮은 곳의 차이도 점차 벌어진다. 이렇게 시뮬레이션 속의 시간이 현재 우주 나이인 137억 년에 이르면, 그림의 상자에는 현재 지역 우주에서 보이는 것과 같은 거대 구조가 완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