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과학 Social Sciences/심리 Psychology

우울증, 슬픔과 맞서 싸우지 말라

Jobs9 2020. 9. 22. 0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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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은 감정조절 시스템의 이상

임상심리학자 폴 길버트는 우리 인간에게는 위협을 탐지하고 보호와 안전을 추구하는 위협시스템, 친화에 초점을 두고 웰빙과 평화로움 등 긍정적인 감정을 일으키는 만족시스템, 좋은 것을 찾고 성취하는 욕구시스템의 세 가지 감정조절 시스템이 있다고 합니다. 그는 우울증을 위협시스템의 작동이 증가하고, 욕구시스템과 만족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 결과라고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떨 때 위협시스템을 증가시키고 욕구시스템과 만족시스템을 억제하게 될까요?

우선 우리의 유전적 기질은 좋은 일에는 기쁨으로 반응하고 원치 않는 일이나 위협에는 놀람, 걱정, 분노, 좌절 등으로 반응하도록 진화되어 왔습니다. 그러므로 삶에서 스스로 감당할 수 없다고 느끼는 스트레스를 만나게 되면 자연히 세상과 인간관계에 대한 의욕을 일시적으로 상실하게 되고 긍정적인 느낌보다는 부정적인 느낌을 갖게 됩니다. 그런데 만일 스트레스 상황이 자주 반복되거나 또는 충격의 정도가 심해서 우리의 주의가 지속적으로 위협적인 상황에 붙잡혀 있게 되면 위협시스템이 지나치게 가동되어 만족시스템과 욕구시스템이 정상적인 기능을 잃어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울증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분노, 불안, 혐오, 두려움 등의 부정적인 감정을 유발하는 위협시스템 대신에 위로와 안전, 소속감을 유발하는 만족시스템을 작동시킴으로써 삶에 대한 기대와 흥미, 의욕을 가질 수 있도록 도울 필요가 있습니다. 또 일의 실패나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질병 등은 인간이면 누구나 피할 수 없는 실존적 고통임을 인식하고 그러한 고통을 겪는 자신과 타자들에게 연민을 가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중요합니다.

슬픔과 싸우면 우울증을 만든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거나 일의 실패, 질병 등을 겪게 되면 왜 하필 나에게, 지금, 이런 일들이 일어났는지를 곰곰이 생각하게 됩니다. 이때 그러한 일들이 마치 세상의 모든 사람에게는 일어나지 않는데 오직 자기 자신에게만 일어난 것처럼 자기에게 몰입되면 슬픔을 수용하지 못하고 슬픔에 맞서 싸우게 됩니다. 그리고 종국에는 자신이 가치 없는 인간으로 여겨지고 부적절하고 패배자로 느끼게 되어 수치심과 자기비난을 갖게 됩니다.

불교심리학에서 슬픔의 감정은 화와 해롭게 하는 감정과 함께 일어난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슬픔의 감정이 수용 받지 못하면 슬픔과 함께 일어난 화의 공격성이 극도에 달하게 되어 자살충동과 자살행동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우울증은 그 동기나 원인이 어디에 있든 종국에는 자기 자신을 향한 미움, 분노, 좌절, 실망의 에너지들입니다. 실제로 우울증의 주된 증상들인 슬픔이나 수면장애, 무기력, 자살충동, 자기혐오 등의 공통점들을 살펴보면 하나같이 자기 자신에게 친절하지 않고 자신을 해롭게 만드는 정신상태 또는 행동들입니다. 왜일까요? 인간은 누구나 사랑받고 싶고 사랑하고 싶고, 또 행복해지고 싶은 뿌리 깊은 열망을 가지고 있는데 왜 우울증을 겪고 있는 사람들은 그 반대의 마음 상태에 빠져 있을까요? 그것은 원하지 않는 사건, 고통스러운 현실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감정과 친구되기

그런데 알고 보면 삶의 고통과 슬픔은 가슴을 열라는 신호입니다. 우리를 에고 너머의 영적세계로 인도하고 세상을 보는 관점의 전환을 가져오는 인생의 안내자입니다. 우리는 고통과 슬픔의 경험을 통해서만 배울 수 있는 인생의 특별한 교훈이 있다는 사실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삶의 고통이나 슬픔이 우리로 하여금 우울함을 경험하게 할 수는 있지만 결코 그 경험 자체가 우울증을 가져오지는 않습니다. 우울증은 우리가 고통과 슬픔이라는 방문객에 맞서 싸우고 우리의 가슴에 빗장을 채워 그들을 수용하지 않는 데서 오는 비극일 뿐입니다.

그래도 우리는 여전히 고통이 두렵고 슬픔이 싫습니다. 왜냐하면 즐거움을 주는 것을 갈망하고 괴로움을 주는 것은 맞서 싸우거나 회피하는 반응패턴이 진화적 습관으로 우리 안에 체화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고통 너머의 기쁨과 진정한 행복에 도달하기 위해서 진화한 것이 아니라 단순하게 살아남기 위해서 진화해왔기 때문에 고통과 슬픔에 취약합니다. 따라서 이들을 수용하고 포용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부드러움-위로-허용

자기-연민 명상은 고통과 슬픔에 맞서지 않고 이들을 수용할 수 있는 힘, 즉 정신적 근육을 키워줍니다. 그러므로 고통과 슬픔에 맞서거나 억누름으로써 그 감정을 키우지 말고 수시로 자기-연민 명상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①가슴에 두 손을 얹고 손바닥과 가슴이 맞닿는 부분으로 주의를 가져갑니다. ②손바닥의 따뜻한 기운을 느끼고, 그 따뜻함이 가슴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상상하고 느껴봅니다. ③슬픔, 분노, 좌절 등의 고통이 느껴지는 몸의 부위를 발견하고 그 부위를 부드럽게 문질러주면서 손의 따스함을 느껴봅니다. ④“힘들지, 괜찮아, 사랑해…” 등 위로의 말을 전해줍니다. ⑤고통의 감정이 그곳에서 사라지기를 바라지 않고 그냥 그곳에 머물러 있는 것을 허용해줍니다. ⑥계속해서 부드럽게 만져주고-위로하고-허용해줍니다. 아픈 아이를 안아주는 엄마의 손길처럼 고통을 없애려고 저항하지 않고 그냥 위로와 돌봄으로 고통과 함께 머물러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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