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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륵, 于勒, 가야금, 가야, 신라의 음악가

Jobs 9 2022. 7. 19.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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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륵, 于勒, 가야금

 

가야, 신라의 음악가.

원래 가야 성열현(省熱縣) 출신으로 대가야 가실왕의 총애를 받게 되었고 중국 남제와의 교역에서 얻은 쟁을 개량해서 가야의 이름을 본따 12현금(絃琴)을 만들게 된다. 이 12현금으로 연주곡 12곡을 작곡하기도 하였다.

우륵이 지은 곡으로는 상가라도(上加羅都), 하가라도(下加羅都), 보기(寶伎) 등이 있으며 기악곡인 보기와 사자기 정도를 제외하면 대부분 5~6세기 가야 시절 군현(郡縣)에서 본딴 이름들로 가야 각 소속국의 지방 특색이 있는 고유 음악을 정리해 작곡한 것으로 추정된다.

530년대 이후 후기 가야 소국들은 중앙 집권적 영역 국가로 발전한 백제와 신라 사이에 껴서 국력에 밀리고 분열과 쇠퇴를 거듭했고 우륵도 551년 제자 이문(尼文 혹은 泥文)과 함께 가야에서 신라로 넘어오게 되었다. 우륵은 신라 진흥왕 앞에서 신곡을 연주하게 되고 진흥왕의 찬사를 받아 지금의 충청북도 충주인 국원경에서 살게 됐고 552년 신라에서 대나마 계고(階古), 법지(法知), 만덕(萬德) 세 사람에게 우륵의 음악을 배우도록 했다. 우륵은 그들의 재능을 헤아려 계고에게 가야금, 법지에게 노래, 만덕에게 춤을 가르쳤다. 

야사에서는 제자들이 자신의 곡 일부를 편곡하여 밝고 웅장하게 바꾼 것을 칭찬함과 동시에 멸망한 고국 가야를 그리워하며 가야금과 함께 어디론가 떠나는 최후를 맞았다고 한다.

충주의 탄금대도 우륵과 관계된 지명으로 우륵이 이곳에서 가야금을 탄 것이 유래가 되어 지금과 같은 지명이 이어지고 있다.


국악계에서는 추앙받는 인물이다. 생몰년 자체가 미상이고 생애 전반에 걸친 행적이 묘연한데도 여러 접근 방식으로 관련 사업이 빈번한 편. 왕산악, 박연과 더불어 한국사 3대 악성으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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