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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네 시, 아멜리 노통브, 소설, 영화, Les Catilinaires, The Stranger Next Door

Jobs 9 2024. 12. 13.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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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네 시

 

아멜리 노통브


일본사회의 경직성을 특유의 문체와 사건전개방식으로 선보인 자전적 소설『두려움과 떨림』이 세계적인 명성을 얻으며 일약 주목받는 작가로 떠오른 아멜리 노통의 또 다른 문제작. 은퇴 후 조용히 여생을 보내기 위해 외딴 지방으로 이사한 에밀과 쥘리에트 부부. 그들에게 오후 네 시만 되면 매일같이 찾아와 '네' '아니오'의 대답으로 두시간을 버티는 한 남자가 등장한다. 인간 내면의 모순과 열정을 단순한 구성과 우의적인 대사를 통해 형상화해 작가의 역량을 가감없이 보여주는 이 소설은 단순함과 블랙 코미디, 괴담 등 순차적으로 이어지는 색다른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이 책은 이전에 같은 출판사에서『반박』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저 : 아멜리 노통브 (Amelie Nothomb,파비엔 클레르 노통브) 
잔인함과 유머가 탁월하게 어우러진 작품으로 현대 프랑스 문학에서 커다란 반향을 일으킨 벨기에 출신의 작가. 본명은 파비엔 클레르 노통브이며 1967년 일본 고베에서 태어났다. 외교관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일본, 중국, 미국, 방글라데시, 미얀마, 영국, 라오스 등지에서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냈다. 스물다섯 살에 발표한 첫 소설 『살인자의 건강법』(1992)이 '천재의 탄생'이라는 비평계의 찬사를 받으며 단번에 10만 부가 팔리는 성공을 거두었다. 이후 발표하는 작품마다 화제를 낳았고 지금까지 노통브의 작품은 전 세계 1천6백만 부 이상 판매되었다. 『두려움과 떨림』(1999)이 프랑스 학술원 소설 대상을 받으며 작가로서의 입지를 굳혔고 그 외에도 르네팔레상, 알랭푸르니에상, 자크샤르돈상, 보카시옹상 등 수많은 상을 수상했다.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매년 거르지 않고 하나씩 작품을 발표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2015년 벨기에 왕국 남작 작위를 받았으며, 현재 브뤼셀과 파리를 오가며 작품 활동을 이어 가고 있다. 최근 노통브는 『갈증』(2019)으로 공쿠르상 최종 후보에 오르고 『첫 번째 피』(2021)로 르노도상을 수상해 대중성과 더불어 그 문학성을 다시금 인정받고 있다.  



우리가 <우리 집>으로 돌아왔을 때에는 6시가 지나 있었다. 생긴 지 얼마되지 않은 듯한, 한 사람의 발자국이우리 집 무 앞까지 나 있었고, 이어 이웃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 발자국, 특히 속절없이 한동안을 기다렸음을 증명하는 현관문 앞의 발자국을 보고 우리는 웃음을 터뜨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발자국은 그의 생각을 대변하고 있는 것 같았다. 자신의 방문을 기다리지 않고 외출한 우리를 정말 돼먹지 않은 것들이라고 여겼을 베르나르댕 씨의 불퉁스러운 태도를 우리는 그 발자국 속에서 분명히 볼 수 있었다. 

쥘리에트는 들떠 있었다. 내가 보기에 그녀는 지나치게 흥분한 것 같았다. 동화 같은 그 산책에 이어 의사가 낙담하고 그냥 돌아갔다는 사실에 정신적으로 흥분한 것 같았다. 아내의 생활은 너무나도 단조로운 것이었으므로, 대단한 것도 아닌 일에 그렇게 강한 반응을 보였던 것이다.
그날 밤 아내는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다음날 아침 아내는 기침을 했다. 나는 나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모자도 쓰지 않은 채 눈을 맞으며 뛰어다니도록 내버려두다니, 수백 개의 눈송이를 삼키도록 내버려 두다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었을까?
---p. 41


그렇다고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낯설게 느껴진다고 한들 무슨 불편이 있을 것인가? 그편이 오히려 나을지도 모른다. 자신이 어떤 인간인지 알게 되면 혐오감에 사로잡힐 테니까. 만약 내게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면-무슨 일이냐고? 그 일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그러니까, 베르나르댕 씨를 만나지 않았다면, 나는 마땅히 이상하게 느꼈어야 할 그런 일을 아직도 당연하게 여기고 있을 것이다.그 사건이 시작된 것이 언제인지 자문해 본다. 어림잡아 열 가지의 추정이 가능할 것이다. 백년 전쟁의 발발 연도에 관한 것처럼 말이다.  

그 사건은 1년 전에 시작되었다고 말해야 옳겠지만, 사건의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6개월 전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 시작은 내가 결혼할 무렵, 그러니까 4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할 것이다. 아니 엄밀하게 말해서 이 사건의 시작은 내가 태어났을 때, 그러니까 6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하는 편이 가장 사실과 가까울 것이다.나는 그 중에서 첫번째 안을 따르기로 한다. 즉 모든 것은 1년 전부터 시작되었다.사람을 굴복시키는 집들이 있는 법이다. 그런 집들은 운명 이상으로 거역 못할 존재들이다. 첫눈에 사람을 함락시키고 마니까. 그곳에 살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 p.8-9 


'그 문제를 곰곰이 생각해 봤어요. 그랬더니 당신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었어요, 팔라메드 씨. 이제 나는 그게 당신의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어요. 나로서는 그것을 인정하기가 힘이 들더군요. 왜냐하면 내가 교육받아 온 것과는 정반대였으니까. 선생도 알 겁니다. <삶이란 지고의 가치이고 인생에 대한 경의는....> 하는 식의 교육 말이죠. 당신 덕택에 나는 그게 헛소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이 세상 모든 것들처럼 사람에 따라 다르다는 걸 말이에요. 삶은 당신에게 어울리지 않아요. 그건 분명해요. 정말이지 내 스스로가 원망스러워요. 당신을 차고에서 끌어낸 일이 후회스럽단 말이에요.' 
--- p.175-176






"나는 내가 어떤 인간인지 알지 못한다"

아멜리 노통브의 <오후 네 시> 제목부터가 마음을 끈다. 소설의 첫 문장을 읽어가던 나는 더는 앞으로 읽어나가지 못하고 가슴 먹먹해져서 차창 밖을 내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소설은 이렇게 시작된다.

"사람은 스스로가 어떤 인물인지 알지 못한다. 자기 자신에게 익숙해진다고 믿고 있지만 실제로는 정반대이다. 세월이 갈수록 인간이란 자신의 이름으로 말하고 행동하는 그 인물을 점점 이해할 수 없게 된다."(p9) 

이 대목에서 나는 뒤이어지는 문장으로 더 나아가지 못했다. 차는 골목을 벗어나 큰 길로 접어들었고 쌩쌩 달려서 강물 위에 놓인 다리를 건너고 있었다. 마치 요즘 내 마음을 대변해 주고 있는 듯하다. 살다보면 내가 내 자신을 알 수 없을 때가 종종 있다. 그때의 당혹스러움이란...나도 가끔 내가 너무 낯설다. 그런 내 자신을 다 알 수가 없다. 단순하고도 자명해 보이던 삶이, 내 자신의 모습이 가끔 나의 또 다른 모습에 황망해 한다. 점점 이해할 수 없어진다. 내 안에는 지킬박사와 하이드가 공존한다. 다음에 이어지는 문장이 조금 위로가 된다. 마치 달래고 어루만지는 듯하다. 

"그렇다고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낯설게 느껴진다고 한들 무슨 불편이 있을 것인가? 그 편이 오히려 나을지도 모른다. 자신이 어떤 인간인지 알게 되면 혐오감에 사로잡힐 테니까."(p9) 

소설은 그렇게 시작된다. 이 소설은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주인공 '나'가 그동안 자기 자신을 잘 안다고 생각해온 육십여 년의 삶, 그것이 어떤 사건을 계기로 자신이 어떤 인물인지 알 수 없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맨 마지막 문장..."나는 내가 어떤 인간인지 더 이상 알지 못한다."(p184). 이것이 주제다. 

사십여 년 동안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에게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가르쳐 오던 '나'는 이제 정년퇴임을 하고 아내와 함께 조용한 여생을 보내고 싶어서 목가적인 느낌이 드는 숲 속 작은 집으로 이사를 오게 된다. 호젓한 숲 속 빈터에 자리잡은 작은 집에서 '나'는 아내와 함께 고요한 날들을 보내리란 기대에 차서 행복에 겨워 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똑같이 생긴 집을 갖고 있는 이웃 노인의 등장으로 평화를 꿈꾸던 생활은 헝클어지고 만다. 

전직 심장전문의였다는 이웃 노인은 40년 동안 이 숲속에서 살아온 사람이다. 이웃 노인은 매일 오후 네 시가 되면 어김없이 '나'의 집 문을 두드린다. 오후 3시 59분도 아니고 4시 1분도 아닌 정확한 시간 네 시가 되면 찾아오는 이 손님은 아무 말도 없이 '자신의 소파'에 앉아 묻는 말에는 '예'와 '아니오'로 일관하면서 정확하게 오후 네 시부터 여섯 시까지 앉아 있다가 돌아가는 것이다. 

평화롭고 호젓한 숲속 생활을 꿈꾸던 이들 부부는 점점 괴로워진다.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다. 이웃의 방문을 거절할 수도 있고 문을 열어주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일평생 몸에 밴 습관인 예의를 한 순간에 버리기란 쉽지 않다. 한 번은 이웃남자에게 아내와 함께 방문하도록 청한다. 사람이라고는 차마 말할 수 없는 거대한 살덩어리인 이웃 노인의 아내를 데리고 방문, 점점 힘들게 꼬여 가는데, 더는 그의 방문을 견딜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만다. 분노하며 쫓아내버린다. 

거짓말처럼 이웃 남자는 그 후로 방문하지 않게 된다. 하지만 오후 4시만 되면 이웃 남자가 방문해왔기에 파블로의 개처럼 조건반사적인 행동을 한동안 계속한다. 어느 날 이웃남자가 자살기도를 한다. '나'는 자살을 시도했던 이웃을 구출하는데, 문득 깨달음이 온다. 이웃 남자는 더 이상 삶을 계속할 이유가 없고 오직 '공허'만 가득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웃 남자의 삶이 지옥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발견했다고 생각한 '나'는 어느 날, 아내한테도 말하지 않고 밤중에 몰래 이웃남자의 집을 방문하고, 베개로 눌러 이웃 노인의 숨통을 끊어버린다. 일흔 살의 뚱보 노인이 죽었다고 해서 아무도 의혹을 제기하지 않았다. 눈이 내렸고 눈이 녹았다. 눈이 녹아 없어지듯 '나'가 행한 일은 아무도 눈치 채지 못했다. 목가적이고 평화롭게 시작한 소설은 블랙 코미디로 막을 내린다. 서늘한 무엇인가가 훑고 지나간다. 

"나의 흰색은 녹아 버렸고 아무도 그것을 눈치 채지 못했다. 두 달 전 여기 앉아 있었을 때, 나는 내가 어떤 인간인지 알고 있었다. 아무런 삶의 흔적도 남기지 않은, 그리스어와 라틴 어를 가르쳐온 일개 교사라는 것을. 지금 나는 눈을 바라본다. 눈 역시 흔적을 남기지 않고 녹으리라. 하지만 이제 나는 눈이 규정할 수 없는 존재임을 깨닫는다. 나는 내가 어떤 인간인지 더 이상 알지 못한다."(p184) 

결론은 '나는 내가 어떤 인간인지 더 이상 알지 못한다'는 것. 40여 년간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가르쳐 온 '나'로 아내도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알고 있었고, 예의바른 사람으로 알고 있을 것이다. 적어도 그는(주인공 '나) 예순 다섯 살이 되도록 자신이 어떤 인간인지 모른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그러니까, 베르나르댕 씨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말이다. 그저, 아내인 줄리에트와 예순 다섯 살이 되기를 바랐고 속세라는, 시간 낭비에 불과한 그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었을 뿐이었고, 그리고 드디어 퇴임 후 숲속으로 이사 왔던 것이다. 

예순 다섯 살, 그 나이에도 내가 몰랐던 '나', 전혀 생각 못했던 또 다른 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 어쩌면 사람은 일생동안 내가 누구인지 모르고 살아가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이 아닌 내 자신만 아는 데만 해도 어쩌면 일생이 걸리는 일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어쩌면 죽음의 자리까지도 나를 모르고 갈 수도 있겠다. 그런데 나 아니 다른 사람, 그 한 사람은 또 어찌 알까. 나도 나를 모르는데, 내 어찌 너를 알까.

내가 수수께끼와 같다. 다른 사람들은 여러 모양의 의문부호들이다. 퍼즐 맞추기, 미로 속이다. 일생동안 얼마나 길을 찾고, 퍼즐 마지막 것까지 맞출 수 있을까. 새삼 내가 낯설고 삶이 낯설다.

 

 

 

 

 

오후 네시 (2024)
4 PM

영화 


감독
송정우
각본
김해곤
원작
아멜리 노통브 - 소설 《오후 네시》
제작
송정우
주연
오달수, 장영남, 김홍파
촬영
박종철
음악
이지수
제작사
HS, 콘텐츠판다
배급사
홀리가든, 콘텐츠판다
개봉일
2024년 10월 23일

 

 

시놉시스
매일 오후 4시만 되면 찾아오는 그의 방문!

타인에 대한 ‘배려’를 기본적인 예의로 생각하는 정인은 교수 퇴임 이후 아내 현숙과 함께 고즈넉한 동네에 새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행복한 노후를 꿈꾼다.
새집으로 이사 후, 맞은 편에 사는 의사 육남에게 인사를 하기 위해 찾아간 정인 부부는 번번이 그와 길이 엇갈려 만나지 못하고, 인사를 적은 쪽지만 남기고 돌아간다.
다음 날 오후 4시. 육남이 정인의 집에 방문하고, 부부는 어색한 시간을 보낸다.
정인 부부는 그의 방문을 단순히 쪽지에 대한 의무적인 화답으로만 생각하여 해프닝으로 넘긴다.
하지만 이후 매일 ‘오후 4시’만 되면 육남이 정인의 집으로 찾아오고…
정인이 대화를 시도해도, 육남은 “그렇소“ 혹은 “아니오”로만 대답하여 분위기는 더욱 경직된다.
오후 4시 정각이면 찾아오는 ‘육남의 방문’이 정인과 현숙의 평화로운 하루를 점점 지배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정인은 그의 방문과 고압적인 태도 때문에 심리적 압박을 느끼는데….

 

 

등장인물
정인 (오달수)
어느 호숫가에 아내 현숙과 함께 노후를 위한 집을 마련한 교수. 평소 상대방에 대한 배려를 실천하는 성격이다.
현숙 (장영남)
정인과 함께 호숫가에 있는 집으로 이사와서 노후를 보내려는 정인의 아내.
육남 (김홍파)
정인과 현숙 부부가 이사온 호숫가의 집 맞은 편에 살고 있는 의사.
새라 (공재경)
소정 (민도희)

 

 

 

The Stranger Next Door


The Stranger Next Door (French: Les Catilinaires) is a Belgian novel by Amélie Nothomb. It was first published in 1995. 

The Stranger Next Door
Author Amélie Nothomb
Original title Les catilinaires
Translator Carol Volk
Language French
Genre Novel


 

Summary
The book begins when a retired couple, Emile and Juliette Hazel, achieve their dream of buying a house in the woods to live alone together, far from the public world. 

Nobody lives around the house except an old doctor, Palamède Bernadin, and his wife, Bernadette, in a little house. To be polite, Emile and Juliette decide to meet them, and thus come in contact with Palamède Bernardin, who develops the habit of coming into their house everyday precisely at 4pm, sitting in an armchair and waiting until 6pm, barely saying a word, at which time he, ever punctually, goes back home. The visits become slowly more and more unbearable, until the Hazels resolve to get rid of him. But by what me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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