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부활의 증거
리 스트로벨의 예수 부활 5가지 증거
만일 예수 부활이 사실이라면 예수가 하나님이 유일한 아들이라는 정체가 확증되면서 그분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영생의 문이 열릴 것이다. 그러나 만일 부활이 전설이거나 착각이라면 예수는 수많은 혁명가와 거짓 메시아들의 뒤를 이어 십자가 처형 틀에 희생된 또 하나의 불운한 인물이 지나지 않을 것이다. 부활에 대한 증거가 더 많을까. 아니면 부활은 없다는 역사적 자료가 더 많을까. 1975년부터 전문가들은 최근까지 프랑스어와 독일어, 영어로 된 자료를 모았다. 미국 리버티대 학장을 지낸 게리 하버마스는 그 자료만 2200편 이상을 모았다.
미국 시카고 트리뷴 법률담당 기자로 일했던 리 스트로벨은 예수 부활의 사실 여부를 추적했다. 그는 신학자와 고고학자, 역사학자, 의학자 등 이 분야 전문가들을 만나 인터뷰했다. 그 결과는 놀랍게도 부활에 대한 증거는 차고 넘쳤다. 오히려 부활이 거짓이라는 것을 증명하기가 더 어려울 지경이었다. 이는 복음서와 바울 서신서의 기록, 고고학적 성과, 다양한 고대 역사기록과 유대교의 기록물, 초기 교회 교부들의 문서 기록, 구전, 그리고 고대 문화적 맥락 등을 고려한 결과였다. 실제로 신약성경은 기독교의 경전일 뿐 아니라 역사적 가치를 가진 1차 자료로서 학계가 인정하는 추세다. ‘예루살렘 전기’(시공사)를 쓴 사이먼 시백 몬티피오리는 예루살렘 역사를 기록하면서 신구약 성경을 주요 참고문헌으로 삼는다.
예수는 십자가에서 실제로 죽으셨다
2000년 전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사건은 역사적으로 의심할 여지가 없다. 우선 신약성경의 4 복음서인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이 하나같이 이 일을 전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기독교 바깥에서도 이를 전한다. 역사가 타키투스는 “예수가 티베리우스 황제 재위 중에 극형을 당했다”고 썼고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는 빌라도가 “예수에게 십자가형을 선고했다”고 전했다. 2세기 그리스의 풍자작가 사모사타의 루키아노스와 마라 바 세라피온은 예수가 처형당한 사실을 확인한다. 유대교 ‘탈무드’에도 예수가 죽임을 당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제자들은 그분이 부활해 자기들에게 나타났다고 믿었다
제자들이 예수께서 실제로 다시 살아나 자기들에게 나타나셨다고 믿었다는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자료는 제자들에 관한 사도 바울의 증언, 초대교회에 전해진 구전(口傳), 초대교회의 기록 문서 등 세 가지가 있다.
사도바울이 중요한 이유는 그가 예수님의 제자인 베드로, 야고보, 요한 등을 직접 안다고 했기 때문이다. 이는 사도행전 9장 26~30절, 15장 1~35절 등에 나와 있다. 바울은 이렇게 사도들을 알았으며 사도들도 자기처럼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것을 선포했다고 전하고 있다.
다음은 구전으로, 당시엔 글로 기록될 때까지 자연히 말로 전해오는 구전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았다. 학자들은 이 구전이 신앙고백, 찬송, 설교 요약 등의 형태로 신약성경에 그대로 옮겨져 있는 곳을 몇 군데 찾아냈다. 구전이 신약성경이라는 기록물보다 먼저 존재했어야만 신약성경 저자들이 그것을 인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는 대단히 중요한 단서가 된다.
이 가운데 가장 중요한 신앙고백 중 하나가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쓴 첫 번째 편지(고린도전서)에 옮겨져 있다. 고린도전서는 AD 55년쯤 쓴 편지로 신앙고백의 내용은 이렇다.
“나도 전해 받은 중요한 것을 여러분에게 전해 드렸습니다. 그것은 곧, 그리스도께서 성경대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셨다는 것과, 무덤에 묻히셨다는 것과, 성경대로 사흗날에 살아나셨다는 것과, 게바에게 나타나시고 다음에 열두 제자에게 나타나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 후에 그리스도께서는 한 번에 오백 명이 넘는 형제자매들에게 나타나셨는데, 그 가운데 더러는 세상을 떠났지만, 대다수는 지금도 살아 있습니다. 다음에 야고보에게 나타나시고, 그 다음에 모든 사도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고전 15:3~7)
많은 학자는 이 고백이 바울이 회심한 지 3년 만에 예루살렘으로 베드로와 야고보를 찾아갔을 때 그들에게서 이 신앙고백을 전해 들은 것으로 본다. 그렇다면 십자가 사건이 있은 지 채 5년이 지나기 전이었다. 이 신앙고백은 시기가 매우 일렀을 뿐 아니라 바울에게 그것을 전해준 사람들 또한 분명히 목격자들이거나 바울이 신뢰할 만한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더 신빙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전설의 산물이기에는 시기가 일러도 너무 이르다.
구전은 이 신앙고백 말고도 사도들의 설교가 몇 편 남아 있다. 초창기 사도들의 가르침이 사도행전에 요약된 이 설교들 속에 고스란히 간직돼 있다. 그 설교들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몸으로 부활하셨음을 선포한다. 예를 들어 바울은 베드로가 사도행전 2장에서 했던 오순절 설교와 비슷하게 사도행전 13장에서 이렇게 말한다. “다윗은 당시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섬기다가 잠들어 그 조상들과 함께 묻혀 썩음을 당하였으되.”(행 13:36)
마지막으로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 같은 4 복음서와 같은 기록 문서가 있다. 이들 복음서가 1세기에 기록됐다는 것은 회의적인 역사가들 사이에서도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자유주의 성향이 강한 학자들도 인정한다. 이 네 편의 전기는 예수의 생애로부터 70년 이내에 기록됐으며 예수께서 부활하셨다는 제자들의 주장을 명확하게 전하고 있다.
이는 고대 역사 문헌과 비교하면 더욱 뚜렷하다. 예를 들어 알렉산드로스 대왕에 관한 가장 훌륭한 문헌 두 편은 그가 죽은 후 400년이 지나서야 기록됐다. 그 밖에 사도 교부들이라 불리는 1~2세기 초에 살던 소수 작가는 사도들을 직접 알았거나 사도들을 아는 사람과 친했다고 한다. 그들의 저작물엔 사도들의 가르침이 그대로 반영됐을 가능성이 크다. 그들은 예수의 부활이 사도들에게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왔다고 했다.
초기 교부 이레나이우스는 클레멘트가 사도들과 직접 대화했다고 했고 아프리카의 교부 테르툴리아누스는 클레멘트가 베드로에게 직접 안수를 받았다고 했다. 순교자 폴리캅은 사도 요한을 비롯한 사도들에게 직접 배웠고 그리스도를 직접 본 많은 사람과 대화했다. AD 110년쯤 폴리캅은 빌립보 교회에 편지를 쓰면서 예수의 부활을 다섯 번이나 언급했다.
스트로벨은 “이 증거의 심도를 생각해보라”며 “바울, 구전, 기록 문서 등 세 가지 범주에 9가지의 증거 자료가 있다. 다수 목격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를 보았다는 제자들의 주장을 아주 이른 시기부터 증언한 것이다. 제자들은 이것이 자신들의 존재의 핵이라 믿었다”고 했다.
왜냐하면 제자들이 부활을 믿지 않았다면 굳이 자신의 목숨을 내놓으며 순교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제자들이 이 믿음을 사수하기 위해 고난도 마다하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초기 자료는 7가지가 된다. 여기다 바울의 순교, 예수의 동생 야고보의 순교까지 합하면 증거는 더 늘어난다. 거짓말을 위해 순교할 사람은 없다. 그들이 죽음을 불사한 것은 그분이 부활하셨다는 진실 때문이었다.
교회를 박해했던 바울의 회심
사도 바울은 자신의 신앙 때문에 평생 고난은 물론, 죽음까지도 불사했다. 고대 자료에 그렇게 기록한 작가는 바울 외에도 누가, 로마의 클레멘트, 폴리캅, 테르툴리아누스, 고린도의 디오니시우스, 오리게네스 등 6명이나 된다.
바울은 사울이었던 시절, 예수를 박해하던 사람이었다. 그가 십자가 사건이 있고 난 뒤 간절한 바람이나 슬픔 때문에 저절로 예수의 환영을 보았을 사람이 아니다. 바울은 기독교 운동을 저지할 생각밖에 없었고 그리스도인들이 거짓 메시아를 따르고 있다고 믿었다. 박해자였던 그가 오히려 선교사로 180도 바뀐 데는 설명이 필요하다. 최고의 설명은 부활하신 예수를 만났다는 그의 말이 사실이라는 점이다. 만일 예수를 만나지도 않고 억지로 꾸며냈다면, 그렇게 해서 그가 얻은 것이라고는 고난과 순교를 자초하는 것 말고는 없다.
예수의 동생인 회의론자 야고보의 회심
예수께서 살아계실 당시 야고보가 예수를 따르는 사람이 아니었다는 충분한 증거가 있다. 마가와 요한 둘 다, 예수와 형제들이 아무도 예수를 믿지 않았다고 기록했다.(막 3:21; 6:3~4; 요 7:3~5)
그런데 결정적인 사건이 벌어진다. 고린도전서 15장에 나오는 고대 신앙고백에 따르면 부활하신 예수께서 야고보에게 나타나셨다고 돼 있다. 이 기록 역시 시기가 매우 이른데 사실 야고보도 이 신앙고백을 바울에게 전해준 사람 중 하나였을 수 있다. 만일 그렇다면 야고보는 그 신앙고백에 담긴 자신에 관한 내용을 직접 시인한 셈이다.
부활하신 예수를 만난 결과, 야고보는 그리스도인이 됐을 뿐 아니라 나중에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가 됐다.(행 15:12~21, 갈 1:19) 부활 사건으로 인해 야고보는 예수께서 메시아이심을 철석같이 믿게 됐고 결국 순교자로 생을 마감했다. 이 사실은 기독교 내에서는 물론 기독교 외부의 자료로도 입증된다(요세푸스의 ‘유대고대사’,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의 ‘유세비우스의 교회사’ 등).
예수의 무덤이 비어 있었다
학자들의 75%가 빈 무덤을 역사적 사실로 보고 있었다는 게 리스트로벨의 취재 결과다. 무덤이 비어 있었다는 증거는 예루살렘 요인, 적들의 증언, 여자들의 증언 등 세 가지다.
예루살렘 요인이란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공개 처형되고 장사 되었고 부활도 같은 도시에서 했다는 뜻이다. 예수의 시신이 무덤 속에 그대로 있었다면 예루살렘은 기독교의 발상지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당시 들려온 말은 무덤이 비어있다는 유대인 지도자들의 증언들이었다. 그들은 제자들이 시신을 훔쳐갔다고 했지만 시신이 무덤 속에 그대로 있었다면 왜 굳이 훔쳐갔다고 말하겠는가. 이는 무덤이 비어 있었음을 암묵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게다가 제자들이 시체를 훔쳐갔다는 발상 자체가 조악한 설명이다. 제자들이 공모해 시신을 몰래 빼돌린 뒤, 그 뻔한 거짓말을 위해 평생 고난과 죽음까지 감수했다는 것을 믿을 수 있을까. 시신을 훔쳤다는 것은 워낙 황당한 발상이라 오늘날 학자들은 누구도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여자들의 증언이다. 1세기 유대문화와 로마문화에서 여자들은 항상 차별을 받는 대상이었다. 여자의 증언은 믿지 않았다. 그런데도 복음서들은 예수의 부활 소식의 첫 목격자로 여자들을 말한다. 만약 이야기를 그럴듯하게 꾸미려면 굳이 여자들이 빈 무덤을 발견했다고 쓰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베드로나 요한 같은 남자들이었다고 주장했을 것이다. 그런데 왜 복음서 저자들은 이런 신빙성 떨어지고 불리한 여성들의 말을 기록했을까. 그것은 부활이 실제로 일어난 일이며 거기서 파생될 신빙성의 문제와 관계없이 사실을 정확하게 전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옥스퍼드대 윌리엄 워드는 ‘기독교는 역사적 종교인가’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모든 엄밀한 역사적 증거가 빈 무덤을 지지하고 있다. 빈 무덤을 배격하는 학자들은 그 근거가 과학적 역사가 아닌 다른 데 있음을 인정해야만 한다.”
'예수 부활 사건' 미스테리
예수의 실존 여부와 복음서의 가치
주류 사학계의 대부분 학자는 다음 네가지 사항에 동의합니다
1. 예수라는 사람이 서기 1세기 경에 존재했다
2. 그는 종교적 리더였으며 큰 세력을 이끌었다
3. 그는 반란 세력으로 몰려 십자가에서 죽었다
4. 그의 제자들은 그가 부활했음을 주장했는데 이로인해
기독교가 시작되었다
만약의 예수가 허구의 인물이라면, 로마든 유대인이든
그런 사람 없었는데 하고 반박하면 기독교는 끝장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적은 없었고 이는 '예수'라는 인물 자체는
실존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할 수 있습니다
복음서 또한 이 예수라는 인물에 대해 세세하게 적은
거의 유일한 사료입니다. 당대의 기록을 살펴보면 그냥 있었다
이정도인데 복음서는 뭘 했는지 또한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종교적인 내용을 걷어내야겠지만, 역사적 예수를
연구하는 대부분 학자들은 복음서를 사료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단지 그 사료가 적힌곳이 경전인 성경이라고 해서
그 사료적 가치를 폄하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또한 복음서들은 예수를 본 사람들이 살아있을때
쓴 것입니다. 서기 30년 경에 10대 중반~20대 후반이던
사람들이 40~50대 일때, 가장 늦다는 요한복음서마저도
70~80대일때 쓰여졌습니다. 또한 사본들 간에 단어 선택의
문제는 있을지언정 맥락이 달라지는 틀린 사본은 몇점에
불과합니다. 즉, 쓰여질 때부터 예수를 본 사람들에
의하여 태클이 걸릴 수도 있었으며 원본과 사본의 차이가
거의 없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예를 들어, 난중일기는 이순신 장군이 쓴 일기입니다.
성경을 공격하는 논리를 그대로 적용시켜 본다면
'그거 자기가 쓴건데 과장하고 그럴 수 있는 것 아니냐?
그런데도 사료로서의 가치가 있는가?'
(종교적 목적으로 쓰여진 것이니 믿을 수 없음)
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조선왕조실록 등 다른 사료들과 교차검증을 토대로
임진왜란을 연구하는데 있어서 난중일기는 귀중한
사료로 쓰입니다. 따라서 어느정도는 걸러야 겠지만
복음서는 어느정도 실존했던 사람 '예수'의
행적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제자들이 돌변하여 예수의 부활을 전파했다는 것은 널리
인정된 '사실'입니다. 이 전제를 부정하신다면 본인은
할 말이 없네요, 제 논리는 여기에 기반하니까요
예수 이전에도 자신을 메시아라 부른 이들은 차고도
넘쳤다. 그들의 우두머리가 잡혔을때 그 세력은
와해되거나 자기들 내에서 후계자를 뽑았습니다.
예수의 세력도 마찬가지였다. 복음서의 내용으로
추정해보았을 때, 제자들은 예수를 로마의 압제에서
구해줄 정치적 메시아로 여겼음이 보입니다.
예수가 체포되던 날 밤, 죽기까지 충성하겠다는 베드로는
예수를 모른다 부인했으며 나머지 제자 또한
십자가 근처에서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얼마 뒤, 그 제자들이 다시 나타나 예수가 그리스도다
예수는 죽고나서 다시 살아났다를 외쳤습니다.
이로 인해 그들은 박해받고 쫓기었으며 죽임당했습니다.
또한 그들 중 누구도 죽을 때까지 믿음을 철회하지 않았습니다
(베드로: 역십자가형, 안드레: X자 십자가형 등등등)
여기서 흔한 사이비와 초기 기독교가 구분됩니다.
왜냐하면 사이비는 교주의 사익을 위해 운영되지만
초기 교회의 리더들은 방랑자이자 쫓기는 신세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흔한 사이비와 예수&제자들은
구별된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부활이 사실이 아님을 전제할 때, 제자들의 행동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다른 가설들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가설들은 3가지로 요약됩니다
1. 예수는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다(실신설)
필자가 쓴 글을 읽으면 알겠지만 기본적으로 십자가형은
질식사로 죽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복음서에서 말하기를
로마병사가 옆구리를 찔렀을 때 복음서 저자는 피와 물이
나왔다고 증언한다. 오늘날 의학에서는 그 물 같은 액체는
심낭삼출이라고 부릅니다. 이는 심장을 찔렸음을 시사하며
이것만으로도 예수는 확실히 십자가에서 죽었습니다
만약에 복음서가 거짓이라고 치고 십자가형만 당했다고
가정한다 해도 3일만에 부활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일단 채찍질 만으로 반죽음 상태였을 뿐더러 그 상태로
기적적으로 소생이 되어 일어난다 한들
이 큰돌을 옮길 수 있는 힘은 거의 없었을 것입니다.
오히려 무덤에 안치되고 얼마 뒤 죽었을 확률이 더욱 큽니다.
따라서 이 가설은 불완전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2. 예수의 시체를 제자들이 옮기고 거짓말 했다(재매장설)
일단 어부나 세리였던 제자들이 로마군을 따돌리고
예수의 시체를 도둑질하여 매장할 수 있었는가와
예수의 제자들은 십자가 당시 다 튀었다는 점을 빼고
어찌되었든 재매장해서 거짓말을 했다고 가정합시다
당신은 자신이 거짓말한다는 것을 알고 있고 거짓말만
철회하면 살 수 있는데 기꺼이 죽겠습니까?
또한 복음서 저자들은 공통적으로 여자를 부활의 첫 목격자라
말합니다. 만일 지어낸 이야기라면 유대 문화에서 온전한
사람취급도 받지 못하던 여자를 처음 증인이라 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여자들이 누구인지는 저자마다 다르지만
복음서가 기본적으로 증언임을 감안해야 합니다.
경찰들 또한 사건을 조사할 때 증언이 디테일마저도 동일하면
오히려 공모였을 가능성을 의심하니까요
그들은 놀고 먹고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동족들에게
배척받고 쫒기었으며 결국에는 죽었습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자신의 주장을 철회하지 않았습니다. 허면 거짓말인데 왜
죽었겠습니까? 적어도 제자들은 예수의 부활을 사실로
믿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
다음가설이 나오게 됩니다
3. 제자들이 환각을 본것이다(환각설)
이 가설은 예수의 부활과 상관없이 제자들의 돌변을 설명하기
좋은 가설입니다. 가장 현실적이기도 하고요. 저도 한때는
이 가설을 지지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 가설도
완전히 설명하지는 못하는데 500명이 봤다는 바울의 주장을
무시하고서라도 최소한 예수의 직계 12제자들이
전부 다 같은 환각을 봐야만 이것이 설명이 됩니다.
이 또한 현대 지식으로 보았을 때 기적과도 같은 일입니다.
환각은 개개인에게 일어나는 것이지 인셉션마냥
다 같은 것을 보는 것이 아닙니다. 12제자들이 동시에
다 같은 환각을 봐야 제자들이 전부 돌변했음을
설명할 수가 있습니다
댓글 보충 설명: 물론 부활과 환각 사이에는 합리성의 무게가
다릅니다. 하지만 결론에서 말했듯이 결국에는 선택을 해야합니다
부활을 '믿던지' 환각을 받다고 '믿던지', 필자는 전자를 선택했습니다
결론
저는 구약의 창세기가 신화 같음을, 노아의 홍수가 일어나지 않았을
가능성을(일어나더라고 국지적 홍수였을 가능성), 구약의 윤리가
현재 보았을때 잔혹해 보일 수 있음을, 구약이 정립된 것이 바빌로니아
포로 시절 이후임을, 구약의 기적들이 고대인의 착각이거나 허구일
가능성이 아주 높음을 잘 알고 있고 받아들입니다. 또한 창세기에
따라 젊은 지구설을 주장하고 성서의 오류가 없다는 성서무오설에
반대하는 입장입니다. 오로지 내가 그리스도인인 이유는 위에
설명한 가설들을 믿는 것이나 부활을 믿는 것이냐의 선택의 기로에서
제 신앙적 경험과 이성을 바탕으로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저 또한 과거로 돌아가는 타임머신이 있다면 이것을 직접
보고싶습니다. 도대체 무엇을 보았기에 목숨마저도 내놓을 수
있었는지 저 또한 궁금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니체가 말한 것 처럼 인간은 아무것도 의지하지 않기 보다는
'무' 그 자체에 의존하는 믿음의 동물입니다. 그것이 이성이
되었든 돈이 되었든 신이 되었든 그대들의 선택입니다.
제가 이 글을 쓴 이유는 그대들을 전도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그것이 아니라 모든 기독교인이 덮어놓고 믿는 것이 아님을,
어느정도 합리를 갖추고 있는 사람도 있음을 알려주기 위함입니다
노상 전도, 부정부패, 사랑의 부재 등등 때문에 기독교에 대해
불호를 가지고 계신분이 많은 줄로 압니다. 우리가 잘못한 겁니다
다만 모든 기독교인이 미개하다고, 위선적이라고는 하지
말아주십시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열심히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이태석 신부님도 그러면 미개하고
어리석은 사람입니까? 비록 저 한사람이지만 기독교가
그대들에게 잘못했던 점에 대해 사죄드립니다. 그리고
기독교에 대해 모든 사람이 그렇다고 욕하지 않으시길 부탁드립니다
예수는 신화다’를 반박
‘예수는 신화다(The Jesus Mysteries. 티모시 프리크(Timothy Freke) 피터 갠디(Peter Gandy) 공저. 1999년 영국)’라는 책의 내용은 역사적으로나 종교적으로나 신학적으로 검증된 내용이 아니라는 데 심각한 문제가 있다. 3세기의 영지주의자들의 저작들을 일방적으로 해석해 예수가 역사적 인물이 아니라 신화적인 인물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의 주장은 기독교와 관련된 역사적 사실을 현저하게 왜곡하여 기독교 신앙을 호도하는 것으로 그 문제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1. 예수의 역사적 생애는 오시리스 신화와 본질적으로 다르다.
예수의 생애와 고대 이집트의 신화적인 인물 오시리스(Osiris)의 생애가 여러 면에서 유사하다는 이유(26, 115-118 쪽)로 예수를 오시리스와 같은 신화적인 인물이라고 주장하지만, 이것은 형태적 유사성만 부각하여 본질적인 상이성을 완전히 무시하는 궤변이다. 물과 기름이 액체로서 유사하다 하여 같은 종류라고 하는 논리를 펴는 것과 같은 어리석음의 극치는 예수의 역사적 생애를 왜곡하려는 의도와 오시리스 신화의 본질에 관한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풀루타르코스의 영웅전에 의하면 오시리스는 땅의 신 게브(Geb)와 하늘의 신 누트(Nut)의 아들로 누이동생 이시스와 결혼하였는데, 후에 형의 지위를 노린 아우 세트(Seth)에게 살해되고 그의 시신은 14조각으로 토막나 온 나라에 흩어져 버린다. 이시스(Isis)는 그 시체 조각을 모두 다시 찾아 맞추어 최초의 미이라를 만들고 그의 성기(性器)를 살려내어 관계하여 아들 호루소(Horuso)를 낳았다. 그리고 오시리스의 소생을 위한 의식을 거행한 결과 그가 소생하여 죽은 자들의 사후 세계의 왕이 되고, 호루소는 산 자들을 통치하는 현세의 왕이 되었다고 한다.
죽은 신을 애도하고 그 재생을 기원하는 오시리스 신앙은 농경문화와 결합되어 해마다 춘분이 되면 겨울에 죽었던 식물들이 되살아나는 것과 관련시키는 재생의식으로 지켜졌으며, 이러한 자연종교의 재생신앙이 영적 각성이라는 의미에서 영적 재생 신앙으로 밀교(미스테리아)와 영지주의에 의해 재해석되어 널리 유포되었다.
그러나 종교학자 내쉬(R. Nash)는 오시리스 재생 신화와 예수의 부활 신앙을 비교해 보면 다음과 같은 분명한 차이점이 드러난다고 하였다. ▲다른 사람을 대신해서 죽는다는 점 ▲자신에게 속한 사람들을 위해 죽는다는 점 ▲단 한 번의 죽음이지 반복된 죽음이 아니라는 점 ▲역사적 실제사건으로 처형당해 죽는다는 점 ▲자발적인 죽음이었다는 점 ▲그의 죽음은 패배가 아니라 승리였다는 점이 전적으로 다르다는 것이다.
따라서 1세기의 유대 땅 나사렛 사람 예수와 기원전 4500년 경의 이집트의 신화적 인물 오시리스를 동일한 신화적인 인물로 여기는 것은 복음서와 고대 역사가들의 예수에 대한 기록과 오시리스의 신화를 이중 왜곡하는 것이므로 현혹되지 말아야 할 것이다.
2. 신화적 인물인 예수를 3세기의 기독교가 역사적 인물로 각색한 것이 아니다.
바울마저도 예수를 역사적인 인물이 아니라 신화적인 인물로 보았는데, 콘스탄틴 황제에 의해 기독교가 지배자의 종교로 공인 되자 3세기의 유세비우스라는 역사가를 시켜 오시리스 신앙의 신화적인 인물인 예수를 역사적 인물로 각색한 것은 ‘거대한 음모의 결과’였다고 주장한다(35쪽). 그러나 이러한 주장이야 말로 바울의 생애와 유세비우스 시대의 역사를 저자들이 마음대로 각색한 ‘웃지 못할 음모의 결과’이다.
바울은 로마서 서론에서 예수를 가르켜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태어나신(generatio) 분이며, 영으로는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resurectio) 분”(롬 1:3~4)이라고 하였다. 예수는 오시리스 신화처럼 가현적인 인간(doceo)이 아니라 실존 인물이었다. 그리고 오시리스처럼 해마다 반복하여 재생하는 존재가 아니라, 죽은 자 가운데서 단 한 번 부활하신 분임을 분명히 하였다.
더군다나 3세기의 기독교 역사가 유세비우스가 신화적 인물 예수를 역사적 인물로 각색했다는 주장은 한심하기 짝이 없다. 유세비우스보다 200년 전에 이미 예수는 역사적 인물로 기록되었다는 것은 역사적 상식이기 때문이다.
AD 70년을 전후하여 예수의 역사적 생애를 기록한 4복음서 외에도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가 AD76-79년 사이에 쓴 ‘유대고대사’와 ‘유대전쟁사’나, 로마의 역사가 타키투스(P. Cornelius Thakitus AD. 55/56-120년 경)가 쓴 ‘연대기’(15/14. 3.)에서도 유대 총독 빌라도에 의해 나사렛 사람 예수가 십자가에 처형당한 것이 기록되어 있다. AD 170년경 헬라의 풍자 작가인 루시안(Lucian)도 예수가 ‘십자가에 달려 죽은 현자(賢者)’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역사적 기록을 부정하고 예수를 신화적 인물로 주장하는 만용에 통탄할 일이다.
3. 예수의 부활은 죽은 자의 부활이며, 산 자의 영적 부활(해탈)이 아니다.
저자들은 1946년 나그 함마디에서 발굴된 영지주의자들의 문서들을 인용하면서 예수는 고통을 겪지도, 피를 흘리지도, 죽지도 않았으며, 따라서 ‘죽음으로부터 부활한 것’이 아니라고 적고 있다. 특히 영지주의 문서인 ‘빌립복음서’에 기록된 “먼저 죽고 난 다음에 다시 살아난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틀렸다.… 죽고 나서 부활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살아 있는 동안 부활해야만 한다”는 영적 부활론을 기독교의 본래적인 가르침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영적 각성을 통한 영적 재생은 미스테리아 신앙의 핵심이며, 득도나 해탈과 같은 선불교적 특징과 유사성이 있기 때문에 동서양의 가장 보편적인 신앙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고린도교회 내에도 이러한 영적 부활론자들이 존재하여 부활신앙에 대한 혼란을 가중시킨 것을 질책하였다. “어찌하여 여러분 가운데 더러는 죽은 사람의 부활이 없다고 합니까? 죽은 사람의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께서도 살아나지 못하였을 것입니다”(고린도전서 15장 12절-13절)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우리의 선포도 헛되고 우리의 믿음도 헛될 것”이라고 하였다. 바울은 영적부활이나 영혼불멸설을 주장하지 않고, 죽은 자의 몸의 부활을 가르쳤다. 바울이 영지주의자였다는 저자들의 주장이 틀렸음을 증거하는 것이다.
저명한 신학자인 몰트만은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한국신학연구소, 1979)이라는 책에서 희랍의 미스테리아 신앙과 영지주의의 신관과 성서의 하나님 신관 사이의 결정적인 차이점을 명쾌하게 제시하였다.
고대 희랍신화에 나타나는 신은 고난과 죽음을 겪지 않는 무감정의 신(God of Apathos)이다. 고난을 당하거나 죽는 신은 육체의 굴레에 얽매여 있는 가멸적(可滅的) 존재이므로 더 이상 신일 수 없다.
그러나 성서는 하나님이 육체를 지닌 인간으로 태어나서 많은 고난을 당하고 마침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고 가르친다. 이는 희랍인들에게 너무나도 낯선 신앙이다. 히브리의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의 고난을 하감하시고 그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고난당하는 백성과 함께 하시는 인정이 많으신 하나님이다.
사랑의 하나님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자의 고난과 죽음에 동참하시므로 그 고난과 죽음을 극복하시는 하나님이다. 하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사건은 바로 고난받으심으로 고난을 극복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사역의 결정적인 계시이다. 우리를 위하여 고난받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현실적인 고난에 항거하시고 고난을 극복하시고 승리하신 것이다. 그래서 몰트만은 “부활신앙이 아닌 기독교 신앙은 기독교적인 것도 아니고 신앙이라고 일컬을 수 없다.”고 단언하였다.
20세기 대표적인 신학자 칼 바르트도 ‘죽은 자의 부활’(한국신학대학출판부, 1989)이라는 책을 저술하여 기독교의 부활신앙은 산자의 영적 부활이나 영혼 불멸이 아니라 ‘죽은 자의 부활’인 것을 분명히 하였다.
그러나 영지주의자들은 고난당하는 신을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에 예수의 육체적인 죽음과 죽은 자의 부활을 거부함으로서 기독교 신앙을 크게 왜곡한 것이다. 그래서 하르낙은 2세기에 기독교가 영지주의적 왜곡을 극복하지 못하였다면 세계적인 종교가 되지 못하였을 것으로 단언하였다.
4. 영지주의는 본래적 기독교가 아니라, 영지주의에 입각하여 기독교를 왜곡한 것이다.
저자들이 말하는 ‘미스테리아(密敎) 신앙’이 고대 유럽의 민중들 사이에 널리 퍼진 것은 사실이다. 이러한 신앙이 기독교인들에게도 큰 영향을 주어 역사적 예수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기독교신앙을 미스테리아 신앙과 혼합하여 영지주의 기독교가 등장한 것이다.
그러나 영지주의가 역사적 기독교를 영적 기독교로 왜곡한 것이지, 기독교(저자들의 용어로는 문자주의자들)가 영지주의를 문자주의로 왜곡한 것이 아니다. 영지주의의 주장을 조금만 살펴보면 저자들의 가설이 전도된 것임을 알 수 있다.
3세기의 기록으로 보이는 영지주의 문서인 ‘도마복음서’ 25절에는 예수가 “형제를 여러분의 영혼처럼 사랑하라”고 가르친다. 이보다 2세기 이전에 복음서에서 기록된 “네 이웃을 네 몸(육체)과 같이 사랑하라”(마 19:19 병행)는 말씀을 왜곡시킨 것이다. 육체로 말미암아 고통과 죽음이 유래된 것이기 때문에 육체를 사랑하라는 예수의 가르침을 영혼을 사랑하라는 것으로 제멋대로 왜곡한 것이다.
심지어 일부 영지주의자들은 예수가 십자가에 달려서 외친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는 구절을 영지주의적으로 해석한다. 아람어 엘(El)은 보통명사로서 신(神)이라는 뜻일 뿐만 아니라 영(靈)을 뜻한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예수의 영(神)이 인간의 육체를 빌려 마치 유령처럼 이 땅에 나타났다가, 예수가 십자가에 달렸을 때 인간의 육체적 가면을 벗어버리고 다시금 영적 존재로 되돌아가려고 하자, 예수의 가현적인 육신이 “나의 영이시여, 나의 영이시여 어찌하여 나(육체)를 버리셨나이까?”라고 외친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초대교부들은 영지주의의 해악을 반박하는 많은 글을 남긴 것이다.
그리고 신약성서 요한2서 1장 7절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임하심을 부인하는 자들”, 즉 영지주의자들을 가리켜 “미혹하는 자요 적그리스도(anti-Christ)”라고 하였다. 이처럼 영지주의자들은 그리스도는 육체로 오신 분이 아니기 때문에 고난도 죽음과 함께 당하지 않는다고 왜곡한 것을 바울은 “다른 예수, 다른 영, 다른 교훈”(고린도후서 11장 4절)이라고 분명히 밝힌 것이다.
5. 기독교 신앙은 영지주의자들의 은밀한 미스테리아가 아니라 사도전승이다.
영지주의자들은 신앙의 핵심은 영육 이원론이다. 인간은 육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온갖 고난을 당하고 마침내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은 육신의 감옥 속에 갇힌 영혼을 해방시킴으로서 구원에 이른다고 하였다. 구원의 구체적인 방식이 비밀스러운 영적 지식(gnosis)을 깨닫는 것이며, 이 영적 지혜는 소수의 선택된 영지자들에 의해 비밀스럽게 전승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미스테리아 신앙은 밀교의 전형적인 형태이다. 종교학자들은 종교를 밀교(密敎)와 현교(顯敎)로 나눈다. 밀교는 교리와 제도와 의식이 이중적이다. 공개되는 부분과 비공개적인 부분이 있다. 통일교가 이러한 밀교의 성격을 지니고 있어 핵심적인 교리와 제도와 의식은 핵심 내부인들에게만 은밀히 알려져 있다. 외부의 직접적인 비난이나 공격을 피하기 위한 수단일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는 처음부터 예루살렘성전과 회당에서 공개적으로 유대인들에게 “너희가 못박아 죽인 이 예수를 하나님이 다시 살려서 우리의 주와 그리스도가 되었다”(사도행전 2장 23절-24절, 36절)고 선포하였다. 바울에 의하면 예수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장사지내시고 부활하시고 다시 살아나셨다”(고전 15:3~4)고 하였다. 기독교 신앙의 핵심적인 신앙에 대한 최초의 기록 역시 “내가 전해 받은 것을 너희에게 전하는 것”(고전 15:1)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초대교회 이레네우스는 ‘이단 반박’이라는 방대한 저술을 통해 영지주의를 반박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공개적인 사도전승’이지만, 영지주의의 영지(gnosis)는 ‘은밀한 비밀 전승’이라는 점에서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밀교의 말로는 그 은밀한 비공개성 때문에 황당무계한 신앙을 저마다 제멋대로 전수하였고, 이러한 모순된 신앙에 대한 객관적 이성적 비판과 검증의 과정을 거치지 못했기 때문에 역사에서 사라진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는 적대적인 정부와 종교가 지배하는 체제에서도 자신들의 신앙의 진리성을 공개적으로 선포하였기 때문에 엄청난 비판과 도전과 박해를 당하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신앙의 진리성 때문에 역사적인 종교로 세계화의 기틀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은밀한 밀교는 불교처럼 엘리트적인 소수만의 득도와 수행을 통해 영적 각성에 이르는 것을 우월한 것으로 여겼다는 점도, 예수가 가난하고 무식하고 병들고 사회적으로 소외된 자들의 구원을 위한 대중적인 신앙을 표방한 것과 결정적으로 다른 측면이라고 할 수 있다.
6. 저자들의 주장은 명확성과 일관성이 부족하고 상호모순 투성이다.
저자들의 주장을 자세히 읽어 보면 논리적 일관성이나 명확성이 부족하며, 자체 모순이 가득차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구체적인 사례 하나만을 들어보자.
서기 3세기의 한 부적의 그림을 근거로 “십자가에 못박힌 사람은 예수로 착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이교도 신인인 오시리스-디오니수스였다”(102쪽)고 했다가, 그 다음 페이지에서는 “최초의 십자가상에 나타난 예수는 곧 오르페우스였다”고 하였다. 그리고 다른 곳에서는 영지주의 문서인 ‘옹호자 도마의 책’을 인용하면서 예수와 모든 점에서 닮은 “예수의 쌍둥이 형제가 대신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다.”(211 쪽)고 주장한다. 그리고 몇 페이지 뒤에는 영지주의 문서인 ‘위대한 새트신의 두 번째 이야기’를 인용하면서 “십자가에 매달려 죽은 것은 (예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간) 구레뇨 사람 시몬이다”(215 쪽)고 하였다. 그렇다면 진짜로 십자가에 죽은 자는 누구인가?
문자주의자들이 각색한 음모처럼 예수가 십자가에 달려 죽었다가 문자 그대로 부활한 것이 아님을 반박하는 것이, 이 책의 주요한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십자가에 달려 죽은 자에 대해 이처럼 오락가락하는 주장을 내세우는 것을 보면 저자들의 지적 수준이 의심스럽지 않을 수 없다.
예수는 신화다, 기독교의 신은 이교도의 신인가
티모시 프리크, 피터 갠디 저
영국과 유럽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는 2002년 첫 출간과 동시에 일부 보수적인 개신교단의 강력한 반발로 강제 절판 되었던 『예수는 신화다』 완역판. 이 책은 예수 이야기와 고대 지중해 세계에 일반적으로 퍼져 있던 미스테리아들을 비교하고 초기 그리스도교 교회의 역사를 역추적함으로써 그리스도교의 기원을 밝힌다.
철학박사이자 고대 이교 신앙 전문가인 두 저자는 그리스도교가 본래 자신의 모델이었던 고대 미스테리아를 말살하고 문자주의 종교로 탈바꿈했던 역사의 진실을 퍼즐처럼 맞추어 나간다. 그러면서 고대 미스테리아의 유대인 판본이었던 예수의 이야기가 역사적 사실로 위조·가공되고, 고대의 신비주의 신앙이 권위적이고 독선적인 문자주의 신앙으로 변질되는 과정을 세밀하게 그리고 있다.
목차
제1장 생각할 수 없는 생각
제2장 이교도의 미스테리아
제3장 악마의 모방
제4장 완벽한 플라토니즘
제5장 영지주의
제6장 예수라는 암호
제7장 잃어버린 사람
제8장 바울은 영지주의자였는가?
제9장 유대인의 미스테리아
제10장 예수 신화
제11장 가짜 그리스도교인
제12장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이야기
저 : 티모시 프리크 (Timothy Freke)
철학박사이자 세계 신비주의의 권위자이다. 세계 각지를 여행하며 많은 다른 전통의 영적 스승들을 만나 그들로부터 가르침을 받으며 영적 사상과 수행을 공부해 왔다. 『예수는 신화다』가 나온 이후 각종 미디어에 출연하는 한편, 영지주의를 탐구하며 세계 각국에서 세미나를 열고 있다. 그 외에도 『헤르메티마』『웃고 있는 예수』등 20여 권의 책이 전세계적으로 출간되었다.
저 : 피터 갠디 (Peter Gandy)
고대 문명에 대한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고대 이교 미스테리아 신앙과 초기 기독교에 대해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전문가다. 저서로 『고대 이집트의 지혜, 헤르메티카』, 『예수와 잃어버린 여신』, 『이교도 철학자들의 지혜』, 『예수는 신화다』, 『웃고 있는 예수』 등이 있다.
2002년 강제 절판 후 금서나 마찬가지였던 『예수는 신화다』가 완역판으로 돌아왔다.
전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사흘 만에 부활하여 승천한 나사렛 예수는 역사적 진실인가 아니면 신화에 불과한 허구인가? 왜 한국의 보수 교단은 이 책의 출간을 그토록 두려워했는가?
『예수는 신화다』는 예수 이야기와 고대 지중해 세계에 일반적으로 퍼져 있던 미스테리아들을 비교하고 초기 그리스도교 교회의 역사를 역추적함으로써 그리스도교의 기원을 밝히는 책이다. 저자는 그리스도교가 본래 자신의 모델이었던 고대 미스테리아를 말살하고 문자주의 종교로 탈바꿈했던 역사의 진실을 퍼즐처럼 맞추어 나간다. 그러면서 고대 미스테리아의 유대인 판본이었던 예수의 이야기가 역사적 사실로 위조·가공되고, 고대의 신비주의 신앙이 권위적이고 독선적인 문자주의 신앙으로 변질되는 과정을 세밀하게 그리고 있다.
예수와 마찬가지로 죽은 지 사흘 만에 부활한 神人들
예수는 신의 아들이자, 그 자신이 신이며, 육화된 한 인간이고, 모든 인간의 구원자이다. 그러나 구원자 신인(神人)의 이야기는 그리스도교만의 독특한 교리가 아니다. 예수 탄생보다 수백 년 이전에 고대 지중해 세계에는 그와 동일한 구조의 수없이 많은 종교들이 존재했다.
이집트의 오시리스, 그리스의 디오니소스, 페르시아의 미트라스, 시리아의 아도니스, 히타이트의 아티스……. 이들은 모두 신의 아들이자 육화된 신이었으며, 12월 25일에 탄생했고, 성스러운 자로부터 세례를 받았고, 결혼식에 물을 포도주로 바꾸고, 병자를 고치며, 귀신을 내쫓고, 많은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는 등의 기적을 일으켰다. 이들은 세상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 혹은 나무에 매달려 죽었으며, 사흘 만에 부활하여 하늘로 올라가 최후의 심판일에 재림할 것을 약속했다. 또한 그들의 신자들은 빵과 포도주, 즉 신인의 찢겨진 육신과 피를 먹음으로써, 그의 죽음과 부활을 기리는 의식을 했다.
즉, 예수의 이야기는 근본적으로 동일한 이야기의 또 다른 변형일 뿐이다. 그런데 우리는 오시리스나 디오니소스의 이야기는 문자 그대로 사실이라고 믿지 않는데 왜 유대인을 배경으로 한 똑같은 사건은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는가?
저자는 예수 이야기의 원본이 바로 과거 지중해 세계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던 신비주의 신앙이었다고 주장하며 이를 통칭하여 오시리스-디오니소스 미스테리아라고 부른다. 예수의 이야기보다 더 오래된 다른 신인들의 신화는 오늘날 우리뿐만 아니라 초기 그리스도교의 교부들도 곤혹스럽게 했다. 이레나이우스와 같은 초대 교부들은 이교도 신화와의 유사성을 인정하면서도 예수 이야기를 역사적 사실로 만들기 위해 분투했다. 예수 이전의 미스테리아들은 구원자 예수의 진실성을 음해하기 위해 악마가 미리 모방한 것이라는 설득력 없는 반론이 그것이다.
예수는 다양한 고대 미스테리아의 유대인 버전이다
역사가 헤로도토스는 철학자이자 샤먼인 피타고라스가 고대 이집트의 오시리스 미스테리아에 감화되어 이를 모델로 한 디오니소스 미스테리아를 창안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제우스의 아들이며 동정녀에게서 인간으로 태어나 죽어야 할 운명의 디오니소스는 일개 토착신[酒神]에서 죽음을 극복한 인간, 인류의 구원자, 신 중의 신으로 떠오른다.
고대 이집트의 오시리스와 마찬가지로 디오니소스도 (그리고 예수도) 모두 동지인 12월 25일에 태어났는데 이날은 해가 가장 짧은 동지였다(분점세차 때문에 점차 이동해서 현재는 12월 22일 무렵이다.). 즉, 묵은 해가 죽었다가 새로운 해로 기적적으로 재생하는 것을 축하하는 것이다. 오시리스-디오니소스는 태양을 의미했으며 예수 또한 그러했다. 태양은 모든 만물에 생명을 주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고대의 미스테리아는 태양과 같은 신인의 죽음과 부활이라는 은유적 텍스트를 통해 개인적이고 수준 낮은 자아의 죽음과 보편적이고 수준 높은 자아로의 재생이라는 영적 고양을 추구한 것이다. 따라서 모든 미스테리아는 카타르시스라 알려진 영적 정화의 체험, 만물에 내재한 우주의 영혼인 신과의 합일을 목표로 하는 신앙이었다.
물론 처음에는 예수 이야기도 고대 미스테리아의 일부였다. 초기 그리스도교의 원형은 유대인 메시아를 신인으로 내세운 예수 미스테리아였고, 그것이 바로 영지주의(Gnosis)이다. 영지주의의 목표는 각각의 신도가 입문하여 그리스도가 되는 것이었다. 예수 이야기는 은밀하고 신비한 가르침을 암호화한 하나의 비유일 뿐이고, 깨달음을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었다.
예수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예수 이야기는 문자주의자들에 의해 입문과 깨달음을 위한 은유가 아니라 역사적 사실로 둔갑하기 시작했다. 문화적으로 낙후한 고대 로마제국 서부 지역에서 시작된 문자주의자들은 예수 신화를 문자 그대로의 진실이라고 주장하면서 그리스도교를 유일한 계시 종교로 만들었다. 종교 개혁 이후 성서가 가톨릭교회의 독점에서 벗어나자 개신교 학자들이 예수의 역사적 증거를 찾기 위해 분투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처참했다. 역사적 예수의 증거는 없거나 매우 희박했다.
3세기 동안의 집중적인 연구 결과, 예수의 역사적 기초가 세워지기는커녕 문자주의의 예수상(像)은 완전히 붕괴되고 말았다. 즉 사도들의 얘기는 서로 앞뒤가 맞지 않았고, 심지어 바울의 편지들과 사도행전 등 여러 글들이 후대에 위조된 ‘가짜’였던 것이다. 그리고 위조의 과정에서 성경 내 복음서 순서를 고의로 치밀하게 뒤바꾸기까지 했던 사실이 드러났다. 그래서 오늘날 신약 성서는 실제 집필 순서와는 정반대로 편집되어 있다. 만약 신약 성서를 쓰여진 순서대로 다시 본다면 영지주의 예수가 먼저이고 역사적 예수는 나중에 가공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예수 이야기가 어떻게 지배적인 신앙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을까? 그것은 강력하고 권위적인 문자주의 그리스도교가 로마제국의 이해관계와 일치했기 때문이었다. 하나의 제국, 하나의 황제가 되기 위해서는 ‘국가의 권위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 ‘하나의 신앙’이 필요했던 것이다. 지배자의 종교가 된 그리스도교는 이교도 신앙을 대대적으로 말살했다. 4세기경 이교도에 대한 테러와 고문이 횡행하였고 무수한 이교도 신전이 파괴되었으며, 수많은 저술들의 대규모로 소각되었다. 그리스도교판 문화혁명이 일어났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그리스도교는 자신의 뿌리에 대한 증거를 말살함으로써 유일한 진리의 종교로 재탄생했다.
금서를 넘어 열린 논쟁과 성찰을 기대하며
『예수는 신화다』는 영국과 유럽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는 2002년 첫 출간과 동시에 일부 보수적인 개신교단의 강력한 반발로 강제 절판되었다. 그래서 이번에 새롭게 나온 『예수는 신화다』는 7년 만에 다시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다는 의미가 있고, 더불어 기존에 번역되지 않았던 방대한 주석까지 완역된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다. 한때 가톨릭교회는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 칸트의 『순수 이성 비판』, 갈릴레오와 다윈의 저서들을 금서 목록에 올렸으나 현재는 금서 목록 자체가 없다. 그러나 한국 사회의 일부 독선적인 기독교인들은 지금까지도 열린 소통을 거부하고 자신들의 배타적인 주장만을 되풀이하여 사람들의 외면을 받고 있다. 『예수는 신화다』의 재출간은 다시 한 번 ‘닫힌 종교’의 폐해에 경종을 울리며, 진정한 예수의 가르침은 무엇이었는지를 성찰하게 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THE JESUS MYSTERIES
티모시 크리크, 피터 갠디 지음.
예수는 정말 존재했는가?
예수 이야기가 수백 년 앞섰던
오시리스-디오니소스 신화와
이렇게 똑같은 까닭은 무엇인가?
* 예수는 인류의 구원자이며, 인간이 된 신이고, 하느님의 아들이며 아비지와 동격인데, 오시리스-다오니소스 또한 그렇다.
* 예수는 결혼식 때 물을 포도주로 바꾸었는데, 오시리스-다오니소스 또한 그랬다.
* 예수는 오병이어라는 기적을 일으켰는데, 이교의 현자도 기적의 음식을 베풀었다.
* 예수는 열두 제자를 거느렸는데, 오시리스-다오니소스 또한 그랬다.
* 예수는 세상의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에 매달려 죽었고, 사흘 만에 부활해서 사도들 앞에 나타난 후 하늘로 올라가 심판의 날을 기다리는데, 오시리스-다오니소스 또한 그렇다.
문자주의 그리스도교인들의 말처럼, 악마가 미리 모방한 것인가? 아니면 예수의 이야기야말로 오시리스-디오니소스 신화를 변형한 또 다른 판본인가?
오시리스-디오니소스 신화를 문자 그대로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왜 유대인 예수 이야기는 역사적 사실이 되었는가?
이 책의 저자들은 예수 이야기와 이교도 신화가 매우 닮았다는 것을 알고 나서 경악을 했다고 한다. 당연히 두 저자는 이교도 신앙과 그리스도교가 완전히 대립된 종교적 관점이라고 믿는 문화 속에서 자라왔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더욱 호기심이 생겨 깊이 파고들기 시작했고, 파고들수록 더욱 많은 유사성이 드러났으며 수많은 증거를 찾아냈다고 한다.
고민에 빠졌던 저자들은 그동안 축적해온 수많은 충격적인 증거들을 통해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린다. 예수 이야기는 역사적으로 실존한 메시아의 전기가 아니라, 이교도의 여러 유서 깊은 이야기를 토대로 한 하나의 신화라고 확신하게 되었다고. 그리스도교는 새롭고 유일무이한 계시 종교였던 것이 아니라, 실은 고대 이교도의 미스테리아 신앙을 유대인 방식으로 각색한 것이라고.
이 책의 내용은 그저 여흥을 위한 공상이 아니고, 물의를 일으키기 위한 억측도 아니다. 이 책은 이용 가능한 역사적 자료와 가장 최근의 학문적 연구 성과를 굳건한 토대로 삼고 있다. 이 책은 일반 독자를 대상으로 한 책이지만, 우리의 주장을 아주 철저히 분석하고 싶어 하는 독자를 위해 인용문의 출처, 참고 문헌, 기타 보충 내용에 대해 풍부한 주석을 달아놓았다.
- 중략 -
미스테리아의 핵심에는 죽어서 부활한 신인과 관련된 여러 신화가 있었다. 이 신인은 여러 이름으로 알려져 있었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오시리스 (이집트어로는 우시르), 고대 그리스에서는 디오니소스, 소아시아에서는 아티스, 시리아에서는 아도니스, 이탈리아에서는 바쿠스, 페르시아에서는 미트라스로 불렸다. 근본적으로 이 신인들은 모두 동일한 존재다. 이 책에서는 일찍이 BCE(BC) 3세기에 통용된 이름들을 합성해서 오시리스-디오니소스라는 이름을 사용하게 될 것이다.
- 중략 -
우리가 오시리스-디오니소스 신화의 다양한 변형을 연구하면 할수록, 예수의 이야기도 그 변형들이 지닌 온갖 특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 더욱 명백해졌다. 우리는 오시리스-디오니소스와 관련된 신화의 골자를 추려내면 예수 전기를 속속들이 재구성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 오시리스-디오니소스는 육체를 가진 신이며 구세주이고 "하느님의 아들 Son of God"이다.
* 그의 아버지는 하느님이며 어머니는 인간 처녀이다.
* 그는 세 명의 양치기가 찾아오기 전인 12월 25일에, 동굴이나 누추한 외양간에서 태어난다.
* 신도들에게 세례 의식을 통해 다시 태어날 기회를 준다.
* 결혼식장에서 물을 술로 바꾸는 기적을 행한다.
* 나귀를 타고 입성할 때 사람들은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고 찬송하며 그를 맞이한다.
* 세상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부활절 무렵에 죽는다.
* 죽은 지 사흘 만에 부활해서 영광되게 하늘로 올라간다.
* 신도들은 최후의 날 심판자로 그가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 신도들은 그의 몸과 피를 상징하는 빵과 포도주로 그의 죽음과 부활을 기다리는 의식을 치른다.
이것들은 오시리스-디오니소스 이야기와 예수 전기에 똑같이 나타나는 것들 가운데 핵심만 추린 것이다. 서로 이토록 닮았다는 것을 우리는 왜 전혀 몰랐을까? 나중에야 우리 두 저자는 알게 되었다. 초기 로마 교회가 그런 사실을 감추기 위해 안간힘을 다했다는 것을. 로마 교회는 이교도의 미스테리아 신앙을 말살하려는 잔혹한 계획을 세우고, 이교도의 신성한 문헌들을 체계적으로 철두철미하게 말살했다. 이 계획은 너무나 완벽하게 수행되어, 오늘날 이교도 신앙은 "죽은" 종교로 간주되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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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이야기는 신화로서의 속성을 모두 갖추고 있다. 그렇다면 그것은 정확히 무엇인가? 어차피 새로 발견된 영지주의 복음서를 읽는 사람은 거의 없고, 그들의 환상적인 이야기를 문자 그대로 받아들일 사람도 없다. 그 복음서는 당연히 신화로 보인다. 그런데 신약 성서의 복음서들을 마찬가지 관점에서 보지 않는다면, 그것은 문화적 편견의 소산일 뿐이다. 신약 성서의 복음서들 또한 우리가 읽어버렸다가 최근에 새로 발견했다고 가정해 보자. 그러면 대체 누가 그 복음서를 열렬히 읽을 것인가? 또 동정녀에게서 태어났다는 인간이 역사적 실존 인물이며, 물 위를 걸었고, 죽은 후 부활했다는 것을 누가 사실로 믿겠는가? 오시리스, 디오니소스, 아도니스, 아티스, 미트라스 등등 이교도 미스테리아 신앙의 구세주 이야기는 모두 비유라고 생각하면서, 근본적으로 동일한 이야기를 유대인식으로 각색해 베들레헴의 한 목수 이야기는 사실이라고 믿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스도교인으로 자라온 우리 두 저자는 수년 동안 열린 마음으로 영적 탐구를 했으면서도 감히 그런 의문을 갖는 것조차 위험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어린 시절에 교리를 주입하면 아주 깊숙이 스며든다. 우리는 이제 요컨대 예수가 이교도의 신이었으며, 그리스도교는 이교도 신앙의 이단적 산물이라고 말하게 되었다! 이런 발언은 위험천만해 보인다. 하지만 우리의 명제를 따르면, 오시리스-다오니소스 이야기와 예수 그리스도 이야기 사이의 유사성이 간명하고 우아하게 설명된다. 이 이야기들은 발전하고 있는 신화 세계의 일부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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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리스-디오니소스 신화와 예수 그리스도 전기 사이의 놀랄 만한 유사성이 오늘날에는 그리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기원후 첫 몇 세기 동안에는 그 유사성이 이교도와 그리스도교인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었다. 이교도 철학자이자 풍자가인 켈수스는 예수 이야기가 실은 이교도 신화의 저급한 모방일 뿐인데도, 그리스도교인들이 그것을 새로운 계시인 양 유포시키려고 한다고 비난했다. 그는 이렇게 물었다.
그 특수한 사건들이 그리스도교인들에게는 지상에서 유일무이한 사건인가? 만일 그렇다면, 그것이 어떻게 유일무이하단 말인가? 우리의 것은 왜 신화로 여겨야 하고, 그들의 것은 왜 사실로 믿어야 한단 말인가? 그리스도교인들은 무슨 근거로 자신들의 믿음에 특수성을 부여하는가? 사실 그리스도교인들이 믿는 것에는 특별한 구석이 전혀 없다. 그들에게 특별한 데가 있다면, 신에 대한 더욱 폭넓은 진리를 모두 배제해버린 채 신을 믿는다는 점뿐이다.
초기 그리스도교인들에게는 이러한 비난이 너무나 통렬했다. 그리스도교보다 수백 년은 앞선 이교도 신화가 어떻게 하나이며 유일한 구원자 예수의 전기와 그토록 공통점이 많을 수 있단 말인가? 그것을 필사적으로 해명하기 위해 교부들은 앞에서 말한 가장 터무니없는 이론들 가운데 하나에 호소했다. 기원후 2세기 순교자 유스티누스 시대부터 그들은 악마가 사람들을 호도하기 위해서 예언대로 그리스도교 신앙을 표절했다고 선언한 것이다. 하느님의 진짜 아들이 문자 그대로 도래해서 지상을 거닐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악마가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나기 전에 그의 생애 이야기를 베껴서 오시리스-디오니소스 신화를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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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교에서는 예수가 "하느님의 독생자"라고 주장하지만, 여러 형태의 오시리스-디오니소스 또한 하느님의 아들로 찬양되었다. 예수는 하느님의 아들이지만 아버지와 동격이다. 디오니소스는 "제우스의 아들, 본질적으로 가장 무서우면서도 인간에게는 가장 자애로운 신"이다. 예수는 "참다운 신 중의 신 Very God of Very God"이다. 디오니소스는 "날 때부터 신 가운데 주인인 신"이다.
예수는 인간의 모습을 띤 신이다. 성 요한은 예수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계신다고 썼다. 바울의 말에 따르면, "하느님은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냈다." 디오니소스는 "죽어야 할 육체 속에" 자신의 "신격"을 감춘 것은 "죽어야 할 운명의 인간들에게 나타나기" 위해서였다고 말한다. 그는 사도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나는 불멸의 형태를 변화시켜 인간의 모습을 갖게 되었다.
예수와 마찬가지로, 여러 신화에서 이교의 신인은 죽어야 할 운명의 동정녀에게서 태어난다. 소아시아에서 아티스의 어머니는 동정녀 키멜레다. 시리아에서 아도니스의 동정녀 어머니는 스미르나라고 불린다. 알렉산드리아에서 아이온은 동정녀 코레에게서 태어난다. 고대 그리스에서 디오니소스는 동정녀 세멜레에게서 태어난다. 세멜레는 광채로 가득한 모습을 한 제우스를 보고 싶어 하다가 불가사의하게 번갯불에 의해 임신한다.
초기 그리스도교인들이 가장 많이 인용한 비정통 문헌에 따르면, 예수는 마리아의 자궁에서 일곱 달만 보냈다. 이교도 역사가 디오도루스의 기록에 따르면, 디오니소스의 어머니 세멜렉 역시 일곱 달만 수태를 했다.
- 책 <예수는 신화다>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