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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진골귀족 생활 -금입택(金入宅)
신라의 전성기에 서울에는 17만 8936호, 1360방, 55리, 35개의 금입택(金入宅)이 있었다. 남택(南宅)⋅북택(北宅)⋅우비소택(亏比所宅)⋅본피택(本披宅)⋅양택(梁宅)⋅지상택(池上宅)⋅재매정택(財買井宅)⋅북유택(北維宅)⋅남유택(南維宅)⋅대택(隊宅)⋅빈지택(賓支宅)⋅장사택(長沙宅)⋅상앵택(上櫻宅)⋅하앵택(下櫻宅)⋅수망택(水望宅)⋅천택(泉宅)⋅양상택(楊上宅)⋅한기택(漢岐宅⋅비혈택(鼻穴宅)⋅판적택(板積宅)⋅별교택(別敎宅)⋅아남택(衙南宅)⋅김양종택(金楊宗宅)⋅곡수택(曲水宅)⋅유야택(柳也宅)⋅사하택(寺下宅)⋅사량택(沙梁宅)⋅정상택(井上宅)⋅이남택(里南宅)⋅사내곡택(思內曲宅)⋅지택(池宅)⋅사상택(寺上宅)⋅임상택(林上宅)⋅교남택(橋南宅)⋅항질택(巷叱宅)⋅누상택(樓上宅)⋅이상택(里上宅)⋅명남택(椧南宅)⋅정하택(井下宅)이다.
『삼국유사』권1, 「기이」2 진한
봄에는 동야택(東野宅), 여름에는 곡량택(谷良宅), 가을에는 구지택(仇知宅), 겨울에는 가이택(加伊宅)이다. 제49대 헌강대왕(憲康大王) 때에는 성 안에 초가집이 하나도 없었고 집의 처마가 서로 닿고 담장이 이어져 있었으며, 노래와 피리 소리가 길에 가득 차서 밤낮으로 끊이지 않았다.
『삼국유사』권1, 「기이」2 우사절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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