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 일본 경제 교류
갑인(甲寅)에 천황이 중궁(中宮)에 나아갔는데, 고제덕(高齊德) 등이 왕의 서신과 토산품을 바쳤다. 그 교서에 “[대]무예([大]武藝, 재위 719~737)가 아룁니다. ……(중략)…… 삼가 영원 장군(寧遠將軍) 낭장(郞將) 고인의(高仁義), 유장군(游將軍) 과의도위(果毅都尉) 덕주(德周), 별장(別將) 사항(舍航) 등 24명에게 서신을 가지고 가도록 하였고 아울러 담비 가죽 300장을 정중히 보냅니다. ……(중략)……”라고 하였다.
『속일본기』권10, 신구 5년(728) 봄 1월
임오(壬午)에 [고]제덕([高]齊德) 등 8명에게 각각 빛깔이 고운 비단과 무늬 있는 비단, 면을 하사하되 차등이 있었다. 이에 그 왕에게 새서(璽書)를 내려 말하기를, “천황이 삼가 발해 군왕(渤海郡王)에게 [안부를] 묻습니다. 계(啓)를 살펴 두루 알게 되었습니다. 옛 땅을 회복하고 예전의 우호를 이어 받아 닦으니 짐이 기쁘게 여깁니다. ……(중략)…… 수령(首領) 고제덕 등이 돌아가는 편에 서신과 함께 신표로 빛깔이 고운 비단 10필과 무늬 있는 비단 10필, 명주 20필, 실 100구, 면 200둔을 보냅니다. ……(중략)……”라고 하였다.
『속일본기』권10, 신구 5년(728) 여름 4월
20일 기축(己丑)에 내장료[內藏寮]와 발해객(渤海客)이 재화와 물건을 서로 교환하였다. 21일 경인(庚寅)에 도성 사람들과 발해객이 서로 왕래하는 것을 허락하였다. 22일 신묘(辛卯)에 여러 시전의 사람들과 [발해]객들이 사사로이 서로 물건을 거래하는 것을 허락하였다. 이날 나랏 돈 40만을 발해국 사신 등에게 주고, 이에 시전의 사람들을 불러 모아 [발해]객들과의 사이에서 토산물을 매매하도록 하였다.
『일본삼대실록』권21, 정관 14년 5월
이 해[746년]에 발해인과 철리[부](鐵利[部]) [사람] 총 1,100여 명이 덕을 사모하여 그 가르침을 좇아 [일본으로] 찾아왔다. 데와국[出羽國]에 머물게 하였다가 옷과 양식을 주어 돌려보냈다.
『속일본기』권16, 천평 18년 1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