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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비형 미드필더
전통적인 수비형 미드필더는 미드필더 최후방에 위치하며, 경기 내내 수비적인 역할을 해내는 포지션이다. 어느팀이건 최고의 테크니션들이 깔려있을 가능성이 높은 상대의 2선 공격수들을 상대로 대인 마크하거나 존 디펜스, 적극적인 볼 커팅을 해 내며 유사시에는 수비 라인에 가담하기도 한다. 강한 몸싸움과 태클, 맨 마킹 능력이 요구된다.
포지션 플레이가 정립된 현대 축구에서 풀백과 더불어 요구하는 툴이 가장 많아지고 중요해진 포지션이다. 과거의 마켈렐레롤로 이야기되던 중원 피지컬 경합 후 볼탈취만 하며, 이전에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들에게 요구되던 볼배급, 플레이메이킹, 롱패스 등이 이뤄지지 않는 수비형 미드필더는 반쪽짜리 선수로 보는 경향이 생겼다.
후방 빌드업 시에는 센터백 사이에 위치해서 삼각대형을 이뤄 안정적인 빌드업을 돕고 상대 진영에서 빌드업 시에는 박스 바깥에서 버티며 골문을 향한 패스, 방향전환, 직접적인 골대 타격도 해야 한다. 그러면서도 기존에 요구되던 능력인 수비력과 활동량이 당연히 떨어지면 안된다. 현대 축구에서 높아진 수비형 미드필더의 가치는 23-24 시즌 종전 PL 이적료 레코드를 갱신하는 가격인 £105M에 데클란 라이스가 아스날로 이적한 채 한달도 지나지 않아 다시 PL 이적료를 £115M로 경신하고 첼시로 이적한 모이세스 카이세도의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다.
등번호가 굉장히 다양한 포지션인데 일반적으로 상징적인 번호는 6번이며 그 외의 2 ~5번이 많다. 물론 늘 예외는 있는데 예를 들면 그라니트 자카의 국대 등번호는 10번이다.
수행하는 역할과 요구되는 역량
뛰어난 수비형 미드필더라면 플레이 메이킹 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플레이 메이킹이란 팀의 공격 전술을 시작하고 볼을 공격수에게 배급(패스)하는 역할이다. 현대 축구는 압박을 중요시 여긴다. 압박이란 상대 공격시 선수들의 자유로운 이동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개념이다. 전방(상대 박스)으로 갈수록 압박이 심해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압박에서 자유로운 수비형 미드필더의 역할이 계속 커져서 수비뿐 아니라 공격 전개와 볼 배급도 맡게 되는 경우가 늘었다. 볼 배급과 조율을 장기로 하는 이런 선수들을 레지스타(Regista, 연출가)라고 부른다. 미드필더진 후방에서 공을 이어받아 전방으로 공격을 전개시키는 역할을 주로 하며 시합의 흐름을 단번에 반전시킬 수 있는 뛰어난 패스 능력과 경기를 읽는 눈을 요구한다. 레지스타는 자신을 보좌하는 중앙 미드필더 한두 명과 함께 움직이는 것이 보통이며, 오버래핑에도 적극적으로 가담한다. 위치상 수비형 미드필더이지만 많은 수비적 능력을 요구받지는 않고, 도리어 공격적 측면에서 팀의 큰 패스의 줄기를 만들어 나가는 데 주력한다.
플레이 시 자신이 위치할 공간을 적절하게 선정할 수 있어야 한다. 상대가 공격을 전개할 때, 위협 받을 수 있는 위치를 미리 선점하여 상대의 공격을 저지하는 것이 수비형 미드필더의 주된 역할이다. 또한, 수비수와 중원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기 때문에 이 능력은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수비력 역시 중요하다. 상대의 공격 전개 시 일차적으로 센터백 앞라인에서 피지컬과 태클로 볼을 뺏어내거나 적절한 위치선정과 눈치로 상대의 패스를 인터셉트 해야 한다. 역습을 당할 때에도 공격 가담을 하러 올라간 풀백과 중앙 미드필더의 빈공간을 센터백과 함께 넓게 커버해야 한다.
더블 피봇/볼란치
Double Pivot / Volante
선수의 플레이스타일이 아닌 미드필드진을 구성하는 전술적 조합이다. 두 명의 중앙 미드필더 혹은 수비형 미드필더를 기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수비형 미드필더를 단독으로 한 명만 기용할 경우 싱글 피봇/원 볼란치 등의 용어를 사용한다.
국내에서는 이렇게 수비형 미드필더를 두 명 놓는 더블 볼란치의 경우 둘의 역할을 홀딩과 앵커로 분류, 각각 볼 배급과 수비를 맡는다는 정보가 퍼진 적이 있으나, 이는 잘못된 정보이다. 지금처럼 정보 탐색이 수월하지 않던 시기, 3선에서 일반적인 수비형 미드필더처럼 플레이하지 않는 선수들의 사례가 유명해지며 이들의 역할이 구분된다고 여겨진 것. 볼란치라는 말이 수비형 미드필더라는 뜻의 에스파냐어임을 감안하면 더블 볼란치는 그저 수비형 미드필더를 두 명 두고 있다는 의미일 뿐이다. 수비형 미드필더를 한 명만 둘 경우 원 볼란치라 부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다만 공격/수비의 일차원적인 구분은 아니더라도 더블 볼란치 내에서의 역할은 구분될 필요가 있다. 실제로 2000년대 초반 발렌시아는 다비드 알벨다-루벤 바라하 조합으로 큰 성공을 거둔 바 있다. 반면 2010년대 중반 프랑스 대표팀은 블레즈 마튀이디, 은골로 캉테 등 여러 미드필더들을 놓고 적절한 더블 볼란치 조합을 찾지 못해 난항을 겪었으며, 마누엘 펠레그리니 시절 맨시티도 야야 투레가 이탈했을 당시 페르난지뉴와 페르난두 헤지스의 조합이 안맞아 고생했던 적이 있었다. 대한민국 대표팀 역시 이 조합을 찾는데 어려움을 가지고 있다. 사실 항상 투 볼란치를 쓰던 것도 아니고, 좋은 조합이 맞춰지던 시기와 그렇지 않은 시기가 그렇게 차이나지 않는다. 대체로 02년 이후로는 좋은 조합이 생기면 월드컵 16강에 진출하거나 그에 비견할 만한 경기력을 보여주고, 아니면 심지어 예선에서도 기대치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고 해도 과언까지는 아니다.
플레이 스타일 분류
홀딩 미드필더
포백을 보호하는 수비형 미드필더이자 가장 전형적인 수비형 미드필더 롤이다.
후방 빌드업이 기본시되는 현대 축구에 빌드업 역할도 필수이며 넓은 커버 범위도 갖추어야 한다.
대표적인 선수로는 프랑크 레이카르트, 호세 레안드로 안드라데, 디디에 데샹, 클로드 마켈렐레, 하비에르 마스체라노, 카세미루, 미하엘 초어크, 에마뉘엘 프티, 지우베르투 시우바, 페르난지뉴, 네마냐 마티치, 주앙 팔리냐, 데클란 라이스 등이 있고 한국과 K리그 선수로는 허정무, 김남일, 김기동, 이을용, 김상식, 김진우, 김정우, 조원희, 이호, 한국영, 최영준, 에스티벤, 박진섭(1995), 오베르단 등이 대표적이다.
국내에서는 이 역할을 공격에 치중된 홀딩, 수비에 치중된 앵커로 구분한다고 잘못 알려져 있으나, 이 둘은 모두 수비형 미드필더를 이르는 말이다. 오히려 차이를 두자면, 공수간 역할보다도 활동 반경에 있다고 보는 것이 적합하다. 두 역할 모두 최종 수비 라인을 보호하는 것은 같으나 홀딩 미드필더는 훨씬 적극적으로, 넓은 범위에서 움직이며 필드 위 빈 공간을 커버한다. 반면 앵커맨은 홀딩 미드필더보다 후방 지향적인 역할로, 최종 수비 라인 앞 공간에 자신의 움직임을 제한하며 포백 보호와 기초 빌드업에 집중한다.
앵커맨
기본적으로 홀딩 미드필더와 비슷하나, 넓은 지역을 커버하기보다는 최종 수비 라인 앞에서 주로 활동하는 역할이다.
국내에는 앵커로 통용되면서 선박의 닻(Anchor)으로부터 유래되었다고 알려졌지만, 사실은 닻이 아니라 뉴스 프로그램에서 기자와 기자 사이를 중계하는 역할을 하는 앵커맨으로부터 유래된 것이다. 이 유형의 선수들은 미드필더로써는 최후방, 즉 포백 바로 위, 심지어 그 아래까지 내려오는 성향이 있는데, 이는 단순히 수비를 위해서가 아니라 안전하게 수비수로부터 공을 넘겨받아 앞으로 전달하는 패스의 시작점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또 중앙 미드필더(와 수비수)들이 압박을 받으면 그들의 패스를 1차적으로 받아주는 것도 앵커맨의 역할이다. 즉 홀딩 미드필더의 커버 범위를 줄이는 대신 포백 보호와 빌드업에 중점을 두고 있는 역할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홀딩 미드필더보다 후방에 위치한다고 하여, 이들의 역할이 수비에만 치중된 것은 아니다. 안드레아 피를로와 같은 레지스타가 중앙 미드필더보다 뒤에 위치하지만 더 수비적이지는 않은 것과 같다. 스페인어로는 이 역할을 '피보테(Pivote)'라고 부른다. 대표적인 예가 아약스 시절의 프렝키 더용. 2010년대 이후의 대표적인 앵커인 로드리나 파비뉴는 동포지션에 비하면 중앙 미드필더만큼이나 공격적인 편에 속한다.
딥라잉 플레이메이커와 다른 점은 딥라잉 플레이메이커가 주로 최전방 공격수들에게 키패스를 넣어주는데 최적화되었다면, 앵커맨은 주로 좌우의 미드필더들에게 짧은 패스로 연결하는 것에 중점을 둔다. 딥라잉 플레이메이커와 앵커맨의 차이는 빗장수비가 발달한 세리에와 티키타카가 발달한 라리가의 차이와 그 궤를 같이한다. 즉 중앙 미드필더의 압박이 강한 세리에 스타일에서는 중앙 미드필더들이 상대 수비를 등지고 아군 수비수로부터 전진패스를 받아 다시 살짝 후방의 딥라잉 플레이메이커에게 밀어주면, 딥라잉 플레이메이커가 이를 전방으로 길게 내어주는 식으로 공격이 전개되는 경향이 있다. 반면 상대적으로 중앙점유가 수월한 라리가 스타일에서는 앵커맨이 수비수로부터 직접 볼을 받아서 좌우의 미드필더에게 패스를 공급하는 방식으로 공격이 전개되는 것이다. 당연히 짧은 패스와 수비만 하는 것은 아니어서, 긴패스에도 능숙한 편이 유리하고, 필요에 따라선 전진해서 중거리 슈팅을 날릴 능력도 필요하다. 최근에는 신조어로 볼플레잉 앵커맨이라는 말도 나왔는데, 앵커맨에서 유래된 플레이 메이킹형 수비형 미드필더로, 기본적으로 앵커맨과 매우 흡사하지만, 더 팀의 플레이 메이킹 및 경기 진행에 영향을 미치는 역할을 수행하는 선수들을 일컫는다.
사실상 볼플레잉 앵커맨이라는 말은 맨체스터 시티에 로드리를 일컫는 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전까지만 보더라도 이런 역할을 수행하는 수비형 미드필더들을 단지 활동량만 조금 많은 앵커맨이라고 생각해 왔지만, 로드리가 아틀레티코 시절부터 보여준 퍼포먼스 덕분에 해외 커뮤니티에선 이미 Ball Controlling Anchor 라고 로드리를 칭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보통 앵커맨은 중앙 미드필더 역할도 잘 소화할 수 있다.
대표적인 앵커맨으로는 페르난도 레돈도, 로드리, 펩 과르디올라, 세르히오 부스케츠, 다비드 알벨다, 파비뉴, 함자 차우두리, 악셀 비첼, 토마스 파티, 피에르에밀 호이비에르, 이드리사 게예, 엘리스 스키리, 소피앙 암라바트, 크사버 슐라거, 마르틴 수비멘디, 오렐리앵 추아메니를 들 수 있고, 한국과 K리그 선수로는 정우영, 오스마르, 박용우, 원두재를 들 수 있다.
하프백
이 어원은 초창기 축구에서 풀백(최후방 수비수, 현대의 센터백)보다 반(Half)쯤 앞에 있다고 하여 부르는 의미였다. 현대 축구로 따지자면 중앙 미드필더 혹은 수비형 미드필더 정도에 위치하는 포지션이었다. 그리고 미드필드의 구분이 없었던 1950년대까지 사용되다가 1960년대 현대 축구가 본격화되고 미드필드가 탄생하면서 사실상 사장된다.
그러다가 현대 축구에서 수비형 미드필더의 더욱 수비적인 역할이 강구되고 라볼피아나가 정착되면서 사라졌던 용어를 재발굴하여 사용하게 되었다. 특정한 역할이라기보다, 팀이 채택한 전술에 따라 선수가 보이는 움직임의 일종이라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해당 전술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라볼피아나 문서 참조.
그러나 현대 축구에서 대부분의 수비형 미드필더가 비슷한 역할을 하게 되면서 지금도 그다지 자주 사용되는 용어는 아니다.
대표적인 선수는 호세 레안드로 안드라데, 요제프 보직, 루이스 몬티, 후안 파블로 소린, 요제프 스미스티크, 미켈레 안드레올로, 옵둘리오 바렐라, 다닐루 아우빙, 에른스트 오크비르크 등이 있으며 한국 선수로는 김용식, 민병대, 주영광이 있다.
유명 선수
호세 레안드로 안드라데, 프랑크 레이카르트, 요제프 보직, 안드레아 피를로, 세르히오 부스케츠, 카세미루, 로드리, 루이스 몬티, 에른스트 오크비르크, 요제프 스미스티크, 옵둘리오 바렐라, 다닐루 아우빙, 대니 블랜치플라워, 지투, 던컨 에드워즈, 토니뉴 세레주, 둥가, 디디에 데샹, 마우로 실바, 파울루 벤투, 페르난도 레돈도, 펩 과르디올라, 에드가 다비즈, 파트리크 비에이라, 토마스 파티, 악셀 비첼, 클로드 마켈렐레, 젠나로 가투소, 샤비 알론소, 다니엘레 데 로시, 하비에르 마스체라노, 파비뉴, 페르난지뉴, 마르첼로 브로조비치, 요주아 키미히, 브루노 기마랑이스, 데클란 라이스, 하칸 찰하놀루, 엔도 와타루, 모이세스 카이세도, 그라니트 자카, 주앙 팔리냐, 은골로 캉테가 대표적이다.
한국의 주요 선수로는 허정무, 김남일, 김용식, 민병대, 주영광, 이강조, 김판근, 김기동, 이을용, 김상식, 김한윤, 김진우, 김정우, 황지수, 조원희, 정우영, 한국영, 최영준, 장현수, 손준호, 박용우, 원두재, 김동현, 김봉수, 정마호 등이 있고 K리그에서 뛴 주요 외국인 선수로는 쇼모지 요제프, 에스티벤, 오스마르, 오베르단 등이 있다.
중요성 및 일화
축구에 힘들지 않고 중요하지 않은 포지션이 어디 있겠냐만은, 수비형 미드필더는 엄청난 운동량과 헌신이 요구되며, 잘하고 있는 이 포지션의 선수들을 함부로 팔았다간 팀의 밸런스가 통째로 무너져 버릴 수도 있다.
레알 마드리드 CF
당시 비센테 델보스케의 지휘 아래 챔스를 차지한 후 데이비드 베컴을 영입하면서 공격 일변도로 막 나가는 팀의 밸런스를 가까스로 유지해 주던 클로드 마켈렐레를 재계약 불발로 첼시로 내보내고 그에 맞는 대체 선수를 영입하지 않은 채 이적 시장을 마쳤는데, 이후 새로운 중원 조합으로 이반 엘게라, 구티, 에스테반 캄비아소, 셀라데스, 보르하, 베컴 등 여러 선수들의 조합을 시험해 봤으나 결과는 모두 좋지 않아 중앙 수비 문제와 더불어 수비형 미드필더의 부진이 팀의 발목을 잡는 요인으로 장기간 자리잡게 된다. 베컴은 당시 중원에서도 여전한 날카로운 킥력과 왕성한 활동량을 보여줬지만 그를 받쳐줄 중원 파트너를 끝내 찾지 못했고, 결국 피구의 인테르 이적 후 본 포지션인 우측 윙으로 복귀하게 된다. 이후 토마스 그라베센, 파블로 가르시아, 에메르손 등 우수한 수미들을 영입해 보지만 이들마저도 모두 실패했고, 페르난도 가고와 마하마두 디아라, 라사나 디아라의 가세 후에야 한숨 놓을 수 있게 되었으며, 샤비 알론소와 사미 케디라를 영입하면서 고질적인 중원 문제를 완전하게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마드리드 보드진이 수비와 수비형 미드필더에는 신경쓰지 않는다는 의견이 있으나, 이런 수난을 겪고 해당 포지션에 대한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꼈는지 갈락티코 2기 이후로는 많은 신경을 썼고, 그 결과 레알 마드리드의 수비진과 수비를 담당하는 미드진은 세계 최고 수준이 되었다. 그 후 2013/14 시즌과 2015/16 시즌 레알 마드리드는 각각 사비 알론소와 카세미루의 활약으로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한다. 팀의 밸런스가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예.
리버풀 FC
2000년대 후반에 샤비 알론소, 하비에르 마스체라노 더블 볼란치 라인을 운용하던 리버풀 FC는 사비 알론소가 나간 뒤에 그 자리를 알베르토 아퀼라니 복귀전까지 못 메우고 7위로 내려가기도 했다. 국대에서 제라드와 배리 조합이 좋아서 배리를 데려오려고 했는데, 그만 단장의 삽질로 '영입 무산 → 알론소가 변심 → 그 시즌 알론소 각성 → 시즌 후 이적 → 배리도 맨체스터 시티 FC에게 뺏김' 테크를 타면서 수비형 미드필더 포지션에 구멍이 생기고 미끄러져 내려간 것. 그리고 2010년에는 마스체라노까지 팔면서 한동안 강등권까지 내려가기도 했다. 마스체라노의 경우도 팀은 챔스를 못 나가고, 자신을 성장시켜 준 베니테스가 나가 버린 상태에서 FC 바르셀로나에서 제의가 오자 선수 본인이 이적을 선택했다.
이와 반대로 팀 밸런스가 무너졌던 클럽에 가세하여 팀의 기틀을 쌓는데 커다란 도움을 주는 케이스도 있는데, 대표적인 예가 에드가 다비즈다. 2004년 프랑크 레이카르트 체제 하의 당시 바르셀로나는 팀의 방향성을 잃고 전반기에 7승밖에 거두지 못 하며 리그 12위까지 추락했었다. 그런데 겨울 이적 시장 때 유벤투스에서 임대 영입한 수비형 미드필더 다비즈가 중원에서 엄청난 활동량과 맨 마킹, 키핑 등을 보여주며 팀에 활력을 불어넣기 시작했고, 이때를 기점으로 팀 전체의 퍼포먼스가 급상승하여 한 때 12위까지 추락했던 팀을 리그 2위까지 끌어올리는 데 크게 일조한다. 이 다비즈의 임대 영입은 이후 바르셀로나 왕조의 기반이 되는 신의 한 수였다는 평가를 받으며 임대의 전설로 남게 되었다.
수비형 미드필더 한 명의 존재 유무가 팀을 바로 세우는 케이스와 팀을 망치는 케이스를 모두 보여준 또다른 사례로는 은골로 캉테가 있다. 15/16 시즌은 레스터 시티 소속으로 지난 시즌 가까스로 강등을 모면한 레스터 시티가 클라우디오 라니에리 감독의 4-4-2에 기반한 선수비 후역습 전술로 PL 우승을 차지하는 기적을 보여줬는데, 그 중심에는 포백 앞에서 엄청난 활동량과 영리한 위치선정, 탁월한 수비 스킬과 준수한 스피드로 상대방의 공격을 차단하고 공격수 제이미 바디와 리야드 마레즈에게 공을 넘겨주었던 은골로 캉테가 있었다. 한편 레스터가 동화를 쓰는 동안 14/15 시즌의 챔피언이었던 첼시는 15/16 시즌 팀 전체가 부진에 빠지면서 중하위권을 헤메는 모습을 보여줬는데, 16/17 시즌을 앞두고 캉테를 영입하면서 다시 우승을 차지했다. 레스터에선 보다 수비적인 모습을 많이 보여줬다면, 첼시에서는 본격적으로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의 모습을 많이 보여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캉테는 중앙 미드필더, 그것도 공격보다 수비에 집중하는 포지션의 불리함을 극복하고 PFA, FWA, 사무국 선정 올해의 선수 3관왕을 달성할 정도로 맹활약을 펼쳤다. 반면 캉테를 내준 디펜딩 챔피언 레스터 시티는 결국 캉테의 공백을 메우지 못하고 다시 중하위권으로 밀려났다.
K리그에서 팀의 흥망성쇠를 좌우했던 수비형 미드필더로 대표적인 인물은 성남 일화와 전북 현대 모터스에서 뛴 김상식이 있다. 울산 현대도 2023시즌 초반 박용우의 활약으로 압도적인 승점을 쌓았으나 박용우가 여름에 이적한 후 극심한 부진에 시달렸다. 아이러니하게도 수비형 미드필더는 현대 축구에 들어서 점점 더 요구되는 능력이 늘어나며 팀에 없어선 안될, 필수 포지션이 되었지만 어찌보면 팀 내에서 가장 주목 받지 못하는 포지션이라고 할 수 있다. 골을 노리는 공격수, 각각 플레이메이킹을 담당하는 공격형 미드필더와 공소유 빈도가 높은 중앙 미드필더, 현대축구의 산물인 풀백과 최후방 수비를 담당하는 센터백, 심지어는 슛을 선방해내는 골키퍼까지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을 만한 포지션은 널렸지만, 잠깐 잠깐씩 빌드업에 관여하고 수비진의 수비를 보조하는 역할에 가까운 수비형 미드필더들은 어떻게 보면 11명 중 가장 눈에 띄지 않는 포지션이라고 볼 수 있다. 유명한 일례로 전 스페인 감독 비센테 델 보스케는 대표적인 수비형 미드필더인 세르히오 부스케츠를 두고, '경기를 보면 부스케츠는 잘 보이지 않지만, 부스케츠를 보면 경기의 전체가 보인다.'라는 말을 남겼다. 경기 내에서 수비형 미드필더의 중요성과, 그에 반해 뒤떨어지는 주목도를 잘 나타낸 말. 이렇게 수비형 미드필더가 중요한 이유는 앞서 말했듯, 포백 앞에서 1차적인 빌드업과 수비에 모두 관여하기 때문에 공격과 수비 양쪽에서 시발점 역할을 하는 롤이기 때문이다. 즉 수비형 미드필더가 흔들리면 팀의 공수 연결고리의 첫 단추부터 잘못 꿰이는 셈이다.
로드리가 2023-24 시즌 역대급 활약으로 발롱도르를 수상하면서 수비형 미드필더의 중요성을 다시금 새겼다고 여기는 사람들도 등장했다. 현대 축구에서 공격수 못지 않게 수비형 미드필더와 풀백의 중요성이 부각된 끝에 이른 결과로 보인다. 다만, 로드리의 활약상이 워낙 역대급인 지라 이 정도의 활약이 아니면 수비형 미드필더가 주목받기 힘들다는 사실은 여전히 달라지지 않았다고 보는 견해도 존재한다.
대한민국에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레프트백과 함께 아킬레스건이라고 여겨지고 있는 포지션이다.
가장 큰 이유는 팬과 시청자들의 까다로운 요구에 맞을 만한 기량을 갖추기 어렵기 때문이다. 냉정하게 말해서 어떤 포지션이나 선수건 간에 공격이나 비난을 받을 때 해외파일 경우 큰 방패막이 된다. 이런 평가기준이 반드시 틀린 것은 아니지만 항상 맞는 것은 아니다. 또 그나마 한국에서 명문에 팬이 많은 선수들일 경우 해외파 정도는 아니지만 나름대로 보호막이 된다.
예를 들어 이제 와서 아닌 척하고 칭송하는 경우가 많지만 김정우와 같은 경우 국대에서 플레이하던 당시에는 엄청난 비판과 비난이 쏟아졌다. 또한 황인범 역시 초창기에는 엄청난 비난이 쏟아졌다. 팀의 승패, 경기력 문제라기보다는 해외 좋은 클럽에서 뛴다는 방패막과 일반 팬들의 눈에 띄는 화려한 스킬이나 외모, 인터뷰 스킬과 같은 스타성이 팬들의 위기감이나 비난에 있어서 훨씬 더 중요한 게 현실이다. 사실 이 포지션에서의 잘하고 못하고는 정말 순간순간의 몸각도나 몇 발짝 차이의 위치선정, 몸을 돌리는 방향이나 공을 받는 수법 등등 미세한 부분에 많이 좌우되어서 축구 매니아들에게 있어서도 알아보기 쉽지 않고, 못하는 것 같아도 감독의 전술적 지시에 따르던 결과인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또한 수비형 미드필더의 경우 중앙 미드필더와의 호환성 문제도 크다. 전문 수비형 미드필더를 양성해야 한다고 말은 되지만 어떻게 보자면 그냥 중앙 미드필더가 몇 발자국 밑으로 내려가면 수비형 미드필더가 된다. 가끔 중앙 수비수가 올라가서 수비형 미드필더를 보다가 잘 되기도 하는 등 딱히 전문 수비형 미드필더가 없다고 한탄하기도 문제가 된다. 어쨌든 이런 이유 때문에 수비형 미드필더 위치에 있지만 중앙 미드필더가 내려간 형식이라 수비 및 포백 보호가 잘 안 된다거나, 수비력은 있는데 연결을 어려워한다거나 하는 문제가 있다. 어쨌든 풀백이랑 다르게 유소년 레벨에서 본인이 선택한다 안한다 하는 층위가 아니라 그냥 감독이 중앙 미드필더에게 너 몇 발짝 내려가서 수비형 미드필더 하라고 하거나 수비수에게 너 올라가서 미드필더 보면서 수비력 강화하고 연결도 해줘라 하면 뛰는 거라 그런 층위에서 볼 건 아니다.
일반 시청자에게 이 포지션이 가장 큰 문제라고 여겨지는 주된 이유는 첫째 결국 빅리그 진출 선수가 안 나와서 납득이 되지 않고, 비난과 비판이 쏟아지는 것이다. 물론 그것부터가 이 포지션의 실력이 떨어진다는 것과 상당히 같은 말이고, 챔피언스 리그 등을 즐겨 보던 시청자들의 눈에 국대 수비형 미드필더의 기량이 만족스럽지 않다는 것과도 상당히 같은 말이지만 완전히 같진 않다. 김민재 혹은 그만치는 아니라도 이재성처럼 인정받는 선수가 나온다면 이 포지션에 가해지는 비난과 비판의 강도는 눈에 띄게 줄어들 것이다.
둘째로는 이 포지션의 선수는 경기 내내 눈에 안 띄어야 잘 하는 거라는 격언과 맥이 같다. 꽤 옛날 축구계 격언이라 지금과 완전히 동일하다 하기는 어려우나 그래도 맥이 통한다. 팀적으로 전술적으로 봤을 때 이 포지션의 선수는 눈에 잘 띄지 않는 굉장히 수수한 것들을 끊임없이 잘 해줘야 하는 포지션이다. 일반 팬들은 볼 간수에서 미숙함을 보이거나 패스가 좀 부정확하거나 실수하면 만족을 못한다. 하지만 어쩌면 그것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앞서 말했던 몇 발자국 차이나는 위치선정, 돌아서는 방향 등이고 그것에 더해서 압박을 들어가는 타이밍, 달려드는 각도, 속도, 압박하지 않고 머무르거나 물러나는 선택, 상대 선수와의 위치 유지나 간격 유지, 안 된다 싶으면 파울하는 감각이나 추하더라도 발버둥치면서 지연하거나 중앙에 못 들어가게 몰아가는 수비 등이 중요한데 이런 거를 해 봐야 일반 팬들이 알아주지 않는다.
김정우, 정우영, 황인범 등이 욕 먹는 것도 동일한 이치였고 예시였다. 수많은 팬들이 입을 모아서 정우영이 못한다 못한다 기성용 빠지면 한국 국대 망한다고 했지만 기성용이 은퇴한 이후 전혀 망하지 않았고 오히려 훨씬 쉽게 아시아 예선을 돌파하고 어쨌든 16강까지 갔다. 이런 괴리의 가장 큰 이유는, 팬들 입장에서 기성용은 스타성도 강하고 알아보기 쉬운 화려한 플레이에 장점이 있었고 빅리그에서 뛰어서 권위가 강했기 때문이다.
이에 비하면 정우영의 경우는 웃기는 부분이 있다. 기성용 파트너 시절 정우영에게는 욕이 엄청 쏟아졌다. 그런데 정작 길게 지켜보자니 정우영으로 바뀌었을 때 눈에 띄는 실수는 정우영이 주기적으로 저질러도 결과적으로 오히려 더 안정적이긴 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어서, 얘는 그 때는 못했지만 경험치를 쌓아서 나중에 가서 잘 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정우영이 그 전에 못했던 것은 사실이었다 하는 식으로 그래서 우리가 욕했을 뿐 나중에는 잘했다 하는 식으로 인식적인 면죄부가 주어졌던 것이다. 실제로는 알아보기 어려운 수수한 플레이에 장점이 있어서 능력치가 편중된 기성용보다는 훨씬 안정적인 조합을 짤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정말 정우영이 기성용보다 훨씬 더 못하고 빠지면 망한다는 팀이 어떻게 훨씬 더 안정적으로 예선을 돌파했겠는가?
이렇기 때문에 다시 화려한 플레이에 장점이 있고 스타성이 강하다거나, 혹은 빅리그 좋은 클럽에 진출해서 권위의 방패를 가지기 전까지는 계속적으로 약한 포지션으로 지목될 것이다. 누구는 이것이 약점이고 저것이 약점이라서 어렵다고 말할 수 있지만 그런 것은 대체적으로 모든 포지션에 동일하게 지목될 수 있는 것이다. 브라질 혹은 그 당시 전성기를 맞이한 다른 어떤 국가대표팀이 아니면 상대적으로 넘치는 포지션이 있고 모자라는 포지션이 있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한국의 수비형 미드필더가 넘치는 것은 아니지만 독보적으로 부족한 포지션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다.
어쨌든 현재로서는 박용우, 정우영, 황인범, 손준호, 백승호, 원두재 등 장단점은 뚜렷하지만 유력 선수들을 활용할 수 있다. 2023 AFC 아시안컵 카타르에서의 참사도 겉으로 보기에는 박용우 외에는 한국에 선수가 없어서였지만 사실 정말로 한국에 선수가 무조건 부족해서라기보다는 손준호의 억류와 클린스만의 불성실함 등이 겹쳐서 생긴 일에 가깝다.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수비형 미드필더는 팀의 빌드업 체계와 수비 전술에도 큰 영향을 받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당장 이 대회에서 거하게 똥을 싸지른 박용우는 정작 클럽팀에선 사우디 리그 무패 우승중인데다 네임밸류마저 유럽 중상위권 팀 선수들이 포진된 알 힐랄의 중원을 털어버렸다.
다만 현재 수비형 미드필더 유망주나 K리그에서 잘하는 선수들도 당연하지만 장단점을 가지고 있으며, 그들도 대개는 박투박 혹은 볼위닝, 딥라잉 플레이메이커에 가까운 선수가 다반사지 전통적인 의미의 원볼란치를 소화할 수 있는 수비력과 전개력을 모두 가진 홀딩 미드필더는 없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국대에서 대담하게 원볼란치를 하는 팀도 거의 없기 때문에, 감독이 전술과 조합을 잘 짜는 능력에 달려있어서 심각하게 신경쓸 정도는 아니다.
그리고 요새 축구 추세상 국대가 아니라 어느 클럽팀에 가도, 그 리그나 국대의 레벨에 맞게 그런 원볼란치 역할을 소화할 수 있는 선수 자체가 별로 없다. 기껏해야 맨시티의 로드리 정도가 전부고, 내로라하는 빅클럽들조차 원볼란치 되는 수미를 못 구해서 야단인게 요즘의 상황이다. 김민재의 소속팀이자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거함 뮌헨조차 원볼란치 되는 선수가 없는게 현실이며, 다른 빅클럽들도 어린 선수를 긁어보거나 말만 원볼란치지 수비 가담 등을 보충받는 시스템을 기용하는 상황이다. 이런 선수가 없다고 한탄하는 건 조금 호들갑 느낌이 있다.
쉽게 말해서 피를로나 알론소, 로드리 급이 없다고 징징대는 격인데, 정작 이 선수들은 소속 국가나 클럽에서도 역대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는 것을 감안하면 이거야말로 투자에 비해 지나치게 후한 성과를 원하는 꼴이다.
수비형 미드필더, 레전드
50위. 노비 스타일스
(Nobby Stiles)
국적: 잉글랜드
생년월일: 1942. 5. 18.
신체조건: 168cm
주요 클럽: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지칠 줄 모르는 스태미너와 거친 수비를 앞세워 수비라인을 커버하는데 큰 재능을 보였던 선수. 영국 <가디언>의 저널리스트 '조나단 윌슨'에 의해 '파괴자'로 묘사되기도 했다. 그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그라운드 위의 노동자 '바비 찰튼'과 중원 콤비네이션을 형성했고, 전자의 팀 소속으로 2차례 리그 우승과 1967/68 유로피언컵 우승을, 후자의 팀 소속으로 1966 FIFA 월드컵 우승을 거뒀다. 특히 그는 1966 월드컵에서 포르투갈의 축구영웅 '에우제비우'를 족쇄 마냥 틀어막으며 세계적인 유명세를 얻었다.
49위. 엠마뉘엘 프티
(Emmanuel Petit)
국적: 프랑스
생년월일: 1970. 9. 22.
신체조건: 185cm
주요 클럽: 아스날 FC
1990년대 중후반 프랑스 축구를 빛낸 금발 포니테일 미드필더. 높은 전술이해도와 필드 전체를 관통하는 부지런함이 돋보였으며, 그 기량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알렉스 퍼거슨'조차도 극찬을 아끼지 않을 정도였다. 그는 잉글랜드 아스날에서 또 다른 월드클래스 미드필더 '파트리크 비에이라'와 손발을 맞춰 1997/98 시즌 리그와 FA컵 2관왕을 이끌었다. 대표 선수로서 그는 1998 FIFA 월드컵 우승과 2000 UEFA 유로 우승을 연달아 차지한 바 있다.
48위. 빔 얀센
(Wim Jansen)
국적: 네덜란드
생년월일: 1946. 10. 28.
신체조건: 165cm
주요 클럽: 페예노르트
1974, 1978 FIFA 월드컵 준우승 주역으로 활약했던 수비형 미드필더. 정확한 상황판단력과 뛰어난 전술이해도를 앞세워 팀의 척추 역할을 톡톡히 수행해냈으며, 종종 중앙 미드필더나 라이트 풀백으로 기용되기도 했다. 그는 자국 리그 명문 페예노르트 로테르담에서 대부분의 클럽 커리어를 보냈고, 팀에 1965년부터 1980년까지 머무르는 동안 3차례 에레디비시 우승, 1969/70 유로피언컵 우승을 포함한 7개의 우승타이틀을 획득했다.
47위. 조반니 트라파토니
(Giovanni Trapattoni)
국적: 이탈리아
생년월일: 1939. 3. 17.
신체조건: 175cm
주요 클럽: AC 밀란
1960년대 초중반 세계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 중 한 명. 센터백으로도 기용되었을 만큼 기본적인 수비력이 탄탄했다. 클럽 커리어의 전성기를 이탈리아의 AC 밀란에서 보냈던 그는, '네레오 로코' 감독의 지도를 받아 각 2차례 세리에 A 및 유로피언컵 우승의 주역으로 활약했다. 특히 그는 1962/63 유로피언컵에서 우승했을 때 당대 유럽 최고의 선수로 칭송받았던 '에우제비우'를 깔끔하게 마크해내며 국제적인 유명세를 얻기도 했다. 트라파토니는 1963년 발롱도르 투표에서 공동 8위에 오른 적이 있다.
46위. 젠나로 가투소
(Gennaro Gattuso)
국적: 이탈리아
생년월일: 1978. 1. 9.
신체조건: 178cm
주요 클럽: AC 밀란
2000년대 이탈리아 프로축구리그를 빛낸 싸움소. 중앙 미드필더나 수비형 미드필더로 출전했고, 횡적으로 넓게 움직이며 터프한 태클과 강한 압박플레이로 많은 상대 공격수들을 곤경에 빠뜨렸다. 그는 단짝 '안드레아 피를로'와 역사에 길이 남을 투볼란치를 형성하여 AC 밀란 소속으로 2차례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거뒀고, 아주리 유니폼을 입고서는 2006 FIFA 월드컵 우승의 쾌거를 달성했다. 가투소 개인은 'FIFPro 월드 베스트 11' 후보에 4차례 지명되었으며, 발롱도르 최우수 20인에 2차례 입성하여 2006년에 14위, 2007년에 19위를 기록했다.
45위. 이메르송
(Emerson)
국적: 브라질
생년월일: 1976. 4. 4.
신체조건: 184cm
주요 클럽: AS 로마
세간 사람들로부터 '퓨마'라는 이명으로 불렸던 수비형 미드필더. 터프하면서도 깔끔한 태클로 볼 리커버리에 재능을 드러냈으며, 볼 탈취 이후 신속한 오버래핑을 통해 팀의 역습을 주도하곤 했다. 그는 바이어 레버쿠젠에서 뛰던 시절 독일 스포츠 전문지 <키커>로부터 'WK'(월드클래스) 등급을 2차례 받는 등 맹활약했고, 이탈리아의 AS 로마와 유벤투스에서도 절정의 기량을 뽐냈다. 대표 선수로서 이메르송은 1998 FIFA 월드컵 준우승, 1999 코파 아메리카 우승, 2005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우승을 거뒀다.
44위. 펩 과르디올라
(Pep Guardiola)
국적: 스페인
생년월일: 1971. 1. 18.
신체조건: 180cm
주요 클럽: FC 바르셀로나
1990년대 초중반 세계 최고의 위용을 자랑했던 '드림팀' 바르셀로나의 척추이자 구단 역대 베스트 11의 단골손님. 몸싸움에 약하고 기동성이 떨어졌지만, 명민한 두뇌를 바탕으로 경기의 흐름을 파악하는 데에 능했으며, 상상도 하지 못할 패스길을 찾아내어 많은 골 찬스를 만들어냈다. '드림팀'의 감독 '요한 크라위프'가 가장 믿고 아끼는 선수였던 그는, 팀의 전술적 핵심 선수로 활약하여 라리가 4연패와 1991/92 유로피언컵 우승에 공헌했다. 과르디올라는 바르사에서의 퍼포먼스를 토대로 스페인 <돈발롱>이 선정한 라리가 베스트 11에 4차례 이름을 올렸다.
43위. 아메리코 가예고
(Américo Gallego)
국적: 아르헨티나
생년월일: 1955. 4. 25.
신체조건: 170cm
주요 클럽: 리버 플레이트
1970년대 후반~1980년대 초반 아르헨티나 축구를 대표했던 명 수비형 미드필더. 투지 넘치는 태클, 부지런한 활동량, 끈적끈적한 대인방어 능력을 그라운드 위에서 두루 보여줬다. 그는 아르헨티나의 강호 뉴웰스 올드보이즈와 리버 플레이트에서 전성기를 보냈고, 특히 후자의 클럽 소속으로 2차례 아르헨티나 리그 우승과 1986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및 인터콘티넨탈컵 우승을 거뒀다. 아르헨티나 대표 선수로서 가예고는 1978 FIFA 월드컵 우승을 차지한 바 있다.
42위. 에스테반 캄비아소
(Esteban Cambiasso)
국적: 아르헨티나
생년월일: 1980. 8. 18.
신체조건: 178cm
주요 클럽: 인테르나치오날레
'Cuchu'(추장)라 불렸던 2000년대 인테르나치오날레의 듬직이 미드필더. 주 포지션은 수비형 미드필더였지만, 마냥 수비에만 치중하지 않고 왕성한 활동량과 기습적인 전진드리블을 앞세워 득점 장면에도 상당 부분 기여하곤 했다. 2004/05 시즌부터 2013/14 시즌까지 인테르나치오날레 소속으로 활약했던 그는, 이 기간 동안 420번의 공식 경기에 출장해 51골을 득점했고, 5차례 세리에 A 우승은 물론 4차례 코파 이탈리아 우승과 2009/10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까지 차지한 바 있다.
41위. 루이 페르낭데
(Luis Fernandez)
국적: 프랑스
생년월일: 1959. 10. 2.
신체조건: 181cm
주요 클럽: 파리 생제르망
당대 프랑스 축구를 대표했던 전천후 수비형 미드필더. 우수한 슬라이딩 태클 능력과 신속정확한 공격가담력의 소유자였다. 그는 '미셸 플라티니', '장 티가나', '알렝 지레스'와 'Le Carré Magique'(마법의 사각형)라 불린 미드필드 라인을 형성하여 1984 UEFA 유로 우승, 1986 FIFA 월드컵 3위로 대표되는 1980년대 레블뢰 군단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페르낭데는 1986년 프랑스의 <옹즈>가 뽑은 유럽 베스트 11에 이름을 올렸으며, 영국의 <월드사커>가 뽑은 세계 베스트 11에는 2차례 거명되었다(1986, 1987).
40위. 디에고 시메오네
(Diego Simeone)
국적: 아르헨티나
생년월일: 1970. 4. 28.
신체조건: 180cm
주요 클럽: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선수단을 이끄는 강력한 카리스마에 착안해 'El Cholo'(목동)라는 이명으로 불렸던 선수. 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 세계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 중 한 명으로, 투지 넘치는 슬라이딩 태클과 준수한 볼 컨트롤 능력, 그리고 호쾌한 헤딩 플레이가 돋보였다. 그는 스페인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 이탈리아 SS 라치오에서 전성기를 보내며 두 클럽 모두에서 리그와 FA컵 2관왕을 거뒀고, 특히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소속으로는 1996년 '라리가 최우수 라틴아메리카 선수'를 수상했다. 대표 선수로서 시메오네는 2차례 코파 아메리카 우승의 주역이었다(1991, 1993).
39위. 데이브 맥카이
(Dave Mackay)
국적: 스코틀랜드
생년월일: 1934. 11. 14.
신체조건: 172cm
주요 클럽: 토트넘 홋스퍼
2009년 영국의 <더 타임즈>가 선정한 토트넘 홋스퍼 역대 최고의 선수 2위. 스코틀랜드 축구가 낳은 최고의 미드필더 중 한 명으로서 날카로운 수비능력과 격렬한 파이터 정신의 소유자였으며, 말년에 스위퍼를 소화했을 만큼 전술적 이해도도 풍부했다. 1959년부터 1968년까지 토트넘 홋스퍼에서 활약했던 그는 북아일랜드 출신의 '대니 블란치플라워'와 막강한 하프백 조합을 형성하여 1960/61 시즌 리그와 FA컵 2관왕으로 대표되는 클럽의 역사적인 전성기를 이끌었다. 이후 맥카이는 더비 카운티에서도 뛰어난 기량을 분출했고, 1969년 'FWA 올해의 선수'를 수상했다.
38위. 카제미루
(Casemiro)
국적: 브라질
생년월일: 1992. 2. 23.
신체조건: 185cm
주요 클럽: 레알 마드리드
2010년대 후반~2020년대 초반 세계 정상급의 수비형 미드필더이자 브라질 대표팀의 중핵. 든든한 포백라인 커버 능력과 터프한 태클, 그리고 원활한 링크플레이로 당대 레알 마드리드에 있어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선수로서 거듭났다. 그는 로스 블랑코스의 유니폼을 입고서 또 다른 월드클래스 미드필더들인 '루카 모드리치', '토니 크로스'와 막강한 미드필드라인을 형성하여 클럽의 UEFA 챔피언스리그 3연패에 큰 수훈을 세웠다. 대표 선수로서도 자신의 진가를 발휘했던 카제미루는 2019 코파 아메리카에서 조국의 통산 9번째 우승을 일궈냈다.
37위. 안토니오 라틴
(Antonio Rattín)
국적: 아르헨티나
생년월일: 1937. 5. 16.
신체조건: 190cm
주요 클럽: 보카 주니어스
1960년대 아르헨티나 축구의 아이콘 중 한 명. 안정적인 볼 배급 능력과 선수단 전체를 아우르는 강력한 카리스마, 그리고 'El Rata'(들소)라 불렸을 만큼 터프한 대인수비력을 두루 갖추고 있었다. 그는 보카 주니어스에서 클럽 커리어의 전부를 보내며 4차례 아르헨티나 리그 우승을 거뒀고, 대표 선수로서는 2차례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을 경험했다. 라틴은 1969년 아르헨티나의 <엘 그라피코>가 뽑은 1960년대 남아메리카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였으며, 1970년 <월드 스포츠>가 주관한 지난 20년 간 베스트 11 투표에서 하프백(지금의 중앙미드필더 또는 수비형 미드필더) 부문 9위에 올랐다.
36위. 하비에르 마스체라노
(Javier Mascherano)
국적: 아르헨티나
생년월일: 1984. 6. 8.
신체조건: 174cm
주요 클럽: FC 바르셀로나
부지런한 활동량과 끈적끈적한 수비 능력으로 스타덤에 올랐던 21세기 아르헨티나 최고의 홀딩 미드필더. 체구는 작은 편에 속했으나 불타오르는 투지로 이를 커버해냈으며, 필드 전체를 아우르는 탁월한 리더십도 두루 갖춰 팬들로부터 'El Jefecito'(꼬마대장)라 불렸다. 그는 리버풀에서 프리미어리그 정상급 수비형 미드필더로 활약하다가 2010년 FC 바르셀로나로 이적했고, 이후 '세르지오 부스케츠'와의 주전 경쟁에서 패배하여 센터백으로 보직을 변경했다. 대표팀에서는 쭉 수비형 미드필더로 기용되었던 그는 2014 FIFA 월드컵 준우승과 4차례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에 수훈을 세웠다.
35위. 다니엘레 데 로시
(Daniele De Rossi)
국적: 이탈리아
생년월일: 1983. 7. 24.
신체조건: 184cm
주요 클럽: AS 로마
이탈리아 축구 역사상 가장 다재다능했던 선수 중 한 명. 주력 포지션인 수비형 미드필더뿐만 아니라 중앙 미드필더, 공격형 미드필더, 측면 미드필더, 스위퍼 등을 두루 소화해낼 수 있었고, 정력적인 움직임과 경기의 흐름을 읽는 고도의 축구지능, 파워풀한 태클, 그리고 치명적인 중장거리 슛팅 능력을 자랑했다. '프란체스코 토티'와 더불어 AS 로마의 상징적인 선수로 여겨지는 그는 팀에 2001/02 시즌부터 2018/19 시즌까지 몸담으며 8차례 세리에 A 준우승과 2차례 코파 이탈리아 우승 등을 거뒀다. 대표 선수로서 그는 2012 UEFA 유로 준우승에 공헌했는데, 백 쓰리 시스템의 스위퍼와 미드필더를 오가면서 원숙한 기량을 분출하여 많은 축구팬들의 찬사를 받았다.
34위. 마우루 시우바
(Mauro Silva)
국적: 브라질
생년월일: 1968. 1. 12.
신체조건: 178cm
주요 클럽: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
2016년 데포르티보 팬 선정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 역대 최고의 선수(베베투와 공동). 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을 풍미한 세계 원홀딩 롤의 정점으로, 지칠 줄 모르는 스태미너와 안정적인 볼 키핑력 등을 무기삼아 데포르티보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대표 선수로서도 자신의 진가를 발휘했던 마우루는 1994 FIFA 월드컵과 1997 코파 아메리카에서 우승컵을 들어올렸으며, 특히 전자의 대회에서 주장 '둥가'와 함께 견고한 3선 미드필드 라인을 형성하여 위명을 떨쳤다. 마우루는 1994 월드컵에서의 퍼포먼스로 같은 해 'FIFA 올해의 선수' 투표에서 9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33위. 피아차
(Piazza)
국적: 브라질
생년월일: 1943. 2. 25.
신체조건: 176cm
주요 클럽: 크루제이루 EC
크루제이루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 중 한 명. 1963년부터 1978년까지 약 15년 가량 팀에 머무르면서 10차례 미나스제라이스 주별 리그 우승, 1966 브라질 전국 리그 우승, 1976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과 같은 위업을 이뤄냈다. 세련된 태클플레이와 수비와 공격을 이어주는 원활한 링크 능력을 자랑했던 그는, 의외로 1970 FIFA 월드컵에서는 주 포지션인 수비형 미드필더가 아닌 센터백으로 기용되었다. 피아차는 새로운 역할에 우수히 적응해내며 조국에 통산 3번째 우승을 안긴 바 있다.
32위. 클로드 마케렐레
(Claude Makélélé)
국적: 프랑스
생년월일: 1973. 2. 18.
신체조건: 174cm
주요 클럽: 첼시 FC
홀딩 미드필더의 교과서와도 같았던 선수. 공격 진영으로의 적극적인 오버래핑을 삼가고 포백라인 보호에 더 중점을 두고 경기하는 수비형 미드필더의 플레이스타일, 일명 '마케렐레 롤'이란 신조어를 탄생시키며 수비형 미드필더의 역사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이러한 그의 존재에 힘입어 레알 마드리드는 2001/02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거뒀고, 첼시는 2004/05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역대 최소 실점 우승(15실점)을 달성했다. 마케렐레 개인은 2005년 'FIFPro 월드 베스트 11'에 선정된 바 있다.
31위. 데메트리오 알베르티니
(Demetrio Albertini)
국적: 이탈리아
생년월일: 1971. 8. 23.
신체조건: 180cm
주요 클럽: AC 밀란
1990년대 전반에 걸쳐 이름을 날렸던 월드클래스 레지스타. '메트로놈'이라는 별명이 있었을 정도로 패스 및 경기조율에 능했으며, 수비력도 출중해 직접 몸을 부딪혀가면서까지 상대 선수로부터 공을 뺏어오곤 했다. 그는 AC 밀란에서 낭중지추의 활약상을 분출했고, 5차례 세리에 A 우승과 2차례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아주리 유니폼을 입고서 알베르티니는 1994 FIFA 월드컵과 2000 UEFA 유로 모두에서 준우승을 거뒀고, 특히 2000 유로에서는 올스타팀에도 선정되었다.
30위. 울리 슈틸리케
(Uli Stielike)
국적: 독일
생년월일: 1954. 11. 15.
신체조건: 178cm
주요 클럽: 레알 마드리드
1980년대 초중반 서독 대표팀의 특급 리베로. 소속클럽에서는 수비형 미드필더 위치에서 뛰는 일이 더 많았다. 세간에서 'El Panzer'(독일제 탱크)라 일컬어졌던 그는 지능적인 위치선정, 탁월한 볼 키핑력, 영리한 수비센스, 그리고 우수한 패스 능력으로 유명했다. 슈틸리케는 스페인 명문 레알 마드리드에서 커리어하이를 누렸으며, 이 클럽 소속으로 3차례 라리가 우승, 2차례 코파 델 레이 우승, 1984/85 UEFA컵 우승을 거두는 한편 <돈발롱>이 뽑은 라리가 최우수 외국인 선수에 4년 연속으로 선정되는 기염을 토했다(1979~1982).
29위. 라이너 본호프
(Rainer Bonhof)
국적: 독일
생년월일: 1952. 3. 29.
신체조건: 180cm
주요 클럽: 묀헨글라트바흐
1970년대 중반~1980년대 초반 독일 축구를 대표했던 수비형 미드필더. 매서운 중장거리 슛팅력으로 유명했으며, 수비력 또한 뛰어나 간혹 라이트백이나 센터백 위치에도 기용되었다. 당대 유럽 최고의 클럽 중 하나였던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소속으로 맹활약했던 그는 팀과 함께 4차례 분데스리가 우승과 각 1차례 UEFA컵 우승, 유로피언컵 준우승을 거뒀다. 대표 선수로서도 큰 족적을 남겼던 본호프는 1974 FIFA 월드컵 우승과 1972, 1980 UEFA 유로 우승을 달성한 바 있다. 특히 그는 1974 월드컵 결승전에서 '게르트 뮐러'의 결승골을 절묘한 땅볼 크로스로 어시스트하기도 했다.
28위. 네스토르 곤살베스
(Néstor Gonçalves)
국적: 우루과이
생년월일: 1936. 4. 27.
신체조건: 178cm
주요 클럽: CA 페냐롤
CA 페냐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 중 한 명이자, 1960년대 남아메리카 정상급의 수비형 미드필더. 막강한 대인수비, 날카로운 롱패스, 강력한 카리스마를 자랑하며 1950~60년대 페냐롤의 전성시대에 일조했고, 팀에 머물렀던 약 15년 간 9차례 우루과이 리그 우승, 3차례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 2차례 인터콘티넨탈컵 우승을 따냈다. 곤살베스는 1966년과 1967년 각각 영국의 <월드사커>, 이탈리아의 <로 스포르트 일루스트라토>가 선정한 세계 베스트 11에 이름을 올렸다.
27위. 클루두아우두
(Clodoaldo)
국적: 브라질
생년월일: 1949. 9. 25.
신체조건: 174cm
주요 클럽: 산투스 FC
1969년 아르헨티나의 <엘 그라피코>가 선정한 1960년대 남아메리카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 2위. 기본적으로 수비형 미드필더 역할을 수행했지만, 과감한 공격가담 및 드리블 돌파를 통해 전방의 공격수들을 효과적으로 지원했다. 또한 그는 당대 월드클래스 윙어들과 견줄 수 있었을 정도로 기술적인 부분에서 두각을 나타냈는데, 이 때문에 테크닉 신봉자들이 많은 브라질 축구계에서 역대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 자국 리그 명문 산투스에서 클럽 커리어의 전성기를 보냈던 그는, 대표 선수로서도 자신의 진면목을 발휘하여 1970 FIFA 월드컵 우승을 이끌었다. 특히 그는 이탈리아와의 결승전에서 '카를루스 아우베르투 토히스'의 득점이 터지기 직전 현란한 드리블쇼를 보여주기도 했다.
26위. 발레리 보로닌
(Valery Voronin)
국적: 러시아
생년월일: 1939. 7. 17.
신체조건: 181cm
주요 클럽: 토르페도 모스크바
발롱도르 최우수 11인에 3년 연속으로 입성했던 1960년대 유럽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 중 한 명. 냉철한 상황판단력과 기술적인 수비력의 소유자였으며, 후방 플레이메이커로서의 기질도 겸비해 종종 비단결 같은 중장거리 패스로 골 찬스를 만들어내곤 했다. 소련 대표 선수로서 큰 명성을 떨쳤던 그는 1964 UEFA 유로 준우승, 1966 FIFA 월드컵 4위, 1968 UEFA 유로 4위 등을 일궈냈다. 보로닌 개인은 '소련 올해의 축구선수'를 2차례 수상하기도 했다(1964, 1965).
25위. 호어스트 시마니아크
(Horst Szymaniak)
국적: 독일
생년월일: 1934. 8. 29.
신체조건: 178cm
주요 클럽: 부퍼탈 SV
1950년대 후반~1960년대 초반 서독 대표팀 미드필드 라인의 중추. 독일 축구의 아버지로 불리는 '제프 헤어베어거'가 가장 총애했던 선수 중 한 명이었으며, 강력한 수비적 기술과 안정적인 볼 배급으로 스타덤에 올랐다. 시마니아크는 대개 하프백(수비형 미드필더)으로 기용되었지만, 능수능란한 볼 컨트롤 능력을 토대로 때에 따라 인사이드 포워드(공격형 미드필더 혹은 2선 공격수) 역할을 맡기도 했다. 그는 독일의 <키커>로부터 'WK'(월드클래스) 등급을 7차례 부여받았으며, 1957년부터 1961년까지 발롱도르 후보에 빠지지 않고 이름을 올려 각각 20위, 8위, 10위, 9위, 17위를 기록한 바 있다.
24위. 아리 한
(Arie Haan)
국적: 네덜란드
생년월일: 1948. 11. 16.
신체조건: 183cm
주요 클럽: AFC 아약스
1970년대 초중반 세계 최고의 위용을 자랑했던 '토탈 풋볼' AFC 아약스의 붙박이 수비형 미드필더. 튼실한 태클 능력과 강인한 스태미너를 가지고 팀의 밸런스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데 능했다. 그는 네덜란드 대표팀에서 종종 리베로로 출전하기도 했는데, 탁월한 경기조율 및 매서운 중장거리 슛팅을 바탕으로 매번 듬직한 퍼포먼스를 펼쳤다. 이러한 그의 존재에 힘입어, AFC 아약스는 유로피언컵 3연패를,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은 FIFA 월드컵 2연준을 달성할 수 있었다.
23위. 엣하르 다비츠
(Edgar Davids)
국적: 네덜란드
생년월일: 1973. 3. 13.
신체조건: 170cm
주요 클럽: 유벤투스 FC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을 풍미한 당대 세계 최고 수준의 수비형 미드필더. '싸움닭'이라 불렸을 정도로 파이팅 정신이 충만한 선수였으며, 수비형 미드필더 위치에서 활약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기습적인 공격 가담을 빈번히 시도하여 상대 선수들을 효과적으로 교란시켰다. 그는 아약스, 유벤투스, 바르셀로나, 토트넘 등을 거치면서 명성을 쌓았으며, 대표 선수로서는 1998 FIFA 월드컵과 2000 UEFA 유로에서 조국의 4강을 주도하여 두 대회 모두에서 올스타팀에 이름을 올렸다. 여담으로, 그는 항상 특수 제작된 고글을 착용한 채 경기에 출전했는데, 이는 희귀질병인 녹내장 때문이었다.
22위. 대니 블란치플라워
(Danny Blanchflower)
국적: 북아일랜드
생년월일: 1926. 2. 10.
신체조건: 175cm
주요 클럽: 토트넘 홋스퍼
1950년대 후반~1960년대 초반 유럽 정상급의 공격형 하프백. 토트넘 홋스퍼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로 손꼽히며, 1960/61 시즌 리그와 FA컵 2관왕으로 대표되는 1960년대 클럽의 화양연화 당시 주장직을 맡은 바 있다. 오늘날 딥라잉 플레이메이커 유형의 선수였던 그는 명민한 두뇌와 빼어난 패싱스킬을 바탕으로 팀 공격의 핵으로서 군림했고, 그 기량을 높게 평가받아 발롱도르 후보에 3차례, 'FWA 올해의 선수'에 2차례 이름을 올렸다. 블란치플라워는 스코틀랜드 출신의 파이터 미드필더 '데이브 맥카이'와 찰떡궁합의 하프백 콤비를 선보이기도 했다.
21위. 던컨 에드워즈
(Duncan Edwards)
국적: 잉글랜드
생년월일: 1936. 10. 1.
신체조건: 180cm
주요 클럽: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1950년대 세계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 중 한 명이자, 불의의 사고만 없었더라면 '펠레'나 '디에고 마라도나'와 어깨를 나란히 했을 거라는 평가를 받는 선수. 강건한 어깨와 탄탄한 피지컬 능력에 착안해 'Big Dunc'(빅 덩크), 'Tank'(탱크) 등의 별명으로 불렸으며, 높은 수준의 소프트웨어까지 장착하고 있었던 미드필더로서 빠른 두뇌회전에 근거한 견실한 패스 역시 돋보였다. 'Busby Babes'(버스비의 아이들) 중 필두로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2차례 리그 우승을 이끌었던 그는, 1957년 약관이 갓 지난 나이임에도 발롱도르 3위에 선정되는 등 승승장구했으나, 이듬해 발생한 '뮌헨 비행기 참사'에 휘말려 안타까운 죽음을 맞았다.
20위. 요제프 스미스티크
(Josef Smistik)
국적: 오스트리아
생년월일: 1905. 11. 28.
신체조건: 183cm
주요 클럽: 라피드 빈
1930년대 초중반 전 세계를 놀라게 했던 전설적인 오스트리아 대표팀, 이른바 'Wunderteam'(분더팀, 경이로운 팀)의 캡틴. 공격적으로 특출나지는 않았으나 안정적인 수비력, 탁월한 리더십, 그리고 정교한 롱패스 능력을 겸비해, 이것들을 바탕으로 팀을 있는 힘껏 지탱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의 활약에 힘입어 '분더팀'은 1932 중부 유럽 인터네셔널컵에서 우승을 거뒀고, 2년 뒤 치러진 FIFA 월드컵에서는 4강 진출을 달성했다. 클럽에서도 대단한 족적을 남겼던 스미스티크는 자국 리그 명문 라피드 빈 소속으로 3차례 오스트리아 리그 우승과 1930 미트로파컵 우승을 거머쥐었다.
19위. 바우에르
(Bauer)
국적: 브라질
생년월일: 1925. 11. 21.
신체조건: 189cm
주요 클럽: 상파울루 FC
<국제축구역사통계연맹> 선정 20세기 브라질 최고의 축구선수 16위. 언론에서 '마라카낭의 괴물'로 수식되었으며, 강력함과 우아함 모두를 갖춘 선수로서 터프한 슬라이딩 태클 및 비단결 같은 패스 능력을 자랑했다. 그는 자신의 고향팀인 상파울루에서 클럽 커리어의 전성기를 보내며 5차례 상파울루 주별 리그 우승을 거뒀고, 브라질 대표팀 소속으로는 1949 코파 아메리카 우승과 1950 FIFA 월드컵 준우승을 차지했다. 브라질의 저널리스트 '닥터 카타 프레타'는 바우에르에 대해 이렇게 평하기도 했다. "지난 40년 간 그에 비견될 만한 미드필더는 아무도 없었다."
18위. 미첼레 안드레올로
(Michele Andreolo)
국적: 우루과이
생년월일: 1912. 9. 6.
신체조건: 169cm
주요 클럽: 볼로냐 FC
1930년대 세계 축구를 빛낸 최고의 하프백 가운데 한 명. 견실한 수비력, 양질의 패스 능력, 강력한 파이터 정신 모두를 두루 갖추고 있었다. 우루과이계 이탈리아인인 그는 1935년 나시오날 생활을 청산하고 이탈리아 세리에 A의 볼로냐로 이적했으며, 이곳에서 4차례 리그 우승을 거두는 등 활약했다. 안드레올로는 우루과이 대표팀과 이탈리아 대표팀 모두에서 뛰었는데, 전자의 팀 소속으로 1935 코파 아메리카 우승을, 후자의 팀 소속으로 1938 FIFA 월드컵 우승을 차지했다. 그는 1938년 <잉글랜드축구협회> 창립 75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치러진 잉글랜드 VS 유럽 올스타 경기에서 유럽 올스타의 주전 센터하프(중앙 하프백)로 모습을 드러냈다.
17위. 즐라트코 차이코프스키
(Zlatko Čajkovski)
국적: 크로아티아
생년월일: 1923. 11. 24.
신체조건: 163cm
주요 클럽: FK 파르티잔
1940년대 후반~1950년대 초반 세계 최고의 센터하프 중 한 명. 안정적인 패스 능력과 우수한 기동력을 지니고 있었으며, 키는 160대 초중반으로 축구선수로서 매우 작은 편에 속했으나 결코 포기하지 않는 정신력을 바탕으로 자신보다 더 큰 상대 공격수들과의 싸움에서도 움츠러들지 않았다. 이러한 그의 존재에 힘입어, 파르티잔은 2차례 유고슬라비아 리그 우승을 포함한 5개의 우승타이틀을, 유고슬라비아 대표팀은 1948년과 1952년 하계 올림픽 축구 은메달을 차지할 수 있었다. 차이코프스키는 1953년 'FIFA 세계 올스타'에 선출되어 잉글랜드 대표팀과 경기한 바 있으며, 1954년에는 이탈리아의 <템포>가 선정한 축구사 베스트 11에 이름을 올렸다.
16위. 네스토르 로시
(Néstor Rossi)
국적: 아르헨티나
생년월일: 1925. 5. 10.
신체조건: 185cm
주요 클럽: 리버 플레이트
아르헨티나 리버 플레이트와 콜롬비아 미요나리오스를 거치면서 9차례 정규리그 우승을 휩쓸었던 원조 우승 청부사. 수비적으로 크게 두각을 나타냈던 선수로, 커다란 체구와 터프한 태클 능력을 앞세워 상대 공격수들을 무자비하게 사냥하곤 했다. 클럽뿐만 아니라 국가대표팀에서도 자신의 기량을 불태웠던 그는, 1947년과 1957년 코파 아메리카에서 정상 자리에 올랐으며, 1958 FIFA 월드컵에 참가해 팀이 치른 모든 경기에서 선발 풀타임 활약했다. 로시는 1984년 <프랑스 풋볼>이 뽑은 역대 최고의 하프백 랭킹에서 8위에 거명되기도 했다.
15위. 토니뉴 세레주
(Toninho Cerezo)
국적: 브라질
생년월일: 1955. 4. 21.
신체조건: 183cm
주요 클럽: UC 삼프도리아
축구 역사상 최고의 미드필드 라인 중 하나로 일컬어지는 브라질 '황금 4중주'의 구성원. 그야말로 완벽했던 수비형 미드필더로, 강철같은 스태미너, 견고한 대인수비력, 안정적인 볼 키핑력, 유연한 볼 컨트롤 능력, 날카로운 중장거리 패스 능력 등을 두루 갖추고 있었다. 커리어의 전성기를 이탈리아 무대에서 보냈던 그는 AS 로마와 UC 삼프도리아 소속으로 월드클래스의 기량을 뿜어냈고, 팀을 유로피언컵 결승전에 각 1차례씩 진출시켰다. 브라질에서도 남부러울 것 없는 활약을 펼쳤던 세레주는 아틀레치쿠 미네이루에서 '브라질 전국 리그 올해의 선수'를 2차례 수상했으며, 상파울루에서는 각 2차례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및 인터콘티넨탈컵 우승을 차지했다.
14위. 세르지오 부스케츠
(Sergio Busquets)
국적: 스페인
생년월일: 1988. 7. 16.
신체조건: 189cm
주요 클럽: FC 바르셀로나
21세기 세계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 중 한 명. 플레이적으로 눈에 띄는 유형은 아니었으나, 안정적인 볼 키핑력과 기술적인 슬라이딩 태클, 부드러운 탈압박 능력, 그리고 유연한 볼 배급력을 무기삼아 팀에 있어 없어서는 안 될 귀중한 부품으로서 기능한 바 있다. 그는 자국 리그 명문 FC 바르셀로나에서 클럽 커리어의 전성기를 보내며 3차례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포함한 무려 30개의 우승트로피를 들어올렸고,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 소속으로는 2010 FIFA 월드컵과 2012 UEFA 유로에서 우승을 거뒀다. 특히 그는 후자의 대회에서 올스타팀에 선정되기도 했다.
13위. 사비 알론소
(Xabi Alonso)
국적: 스페인
생년월일: 1981. 11. 25.
신체조건: 183cm
주요 클럽: 레알 마드리드
이탈리아의 '안드레아 피를로'에 대한 스페인 축구의 답변. 부드러운 경기 조율력과 자로 잰 듯한 신들린 다이렉트 패스, 이른바 '대지를 가르는 패스'로 정평이 나 있었다. 그는 잉글랜드 리버풀, 스페인 레알 마드리드, 독일 바이에른 뮌헨 등을 거치면서 이름을 날렸고, 특히 리버풀과 레알 마드리드 소속으로는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까지 달성해냈다(2004/05, 2013/14). 무적함대의 키를 잡고서 알론소는 2010 FIFA 월드컵 및 2012 UEFA 유로 우승의 주역으로 활약했으며, 특히 후자의 대회에서 올스타팀에 선정되었다. 그는 'FIFPro 월드 베스트 11'에 2차례 뽑히기도 했다(2011, 2012).
12위. 둥가
(Dunga)
국적: 브라질
생년월일: 1963. 10. 31.
신체조건: 176cm
주요 클럽: ACF 피오렌티나
'세계 최강'으로 군림했던 1990년대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의 정신적 지주. 선수단을 아우르는 강력한 카리스마로 유명했으며, 몸을 아끼지 않는 터프한 수비는 물론 중거리 슛팅과 경기 조율에도 능했다. 그와 함께 셀레상은 1994 FIFA 월드컵 우승, 1998 FIFA 월드컵 준우승, 2차례 코파 아메리카 우승(1989, 1997)을 거뒀고, 둥가 개인은 1994년과 1998 월드컵에서 베스트 11에 선정되었다. 둥가는 현역 시절 '브라질리언답지 않은 브라질리언'이라 불리기도 했다. 이는 그가 화려함보다 실속성이 뚜렷한 플레이를 추구했기에 붙여진 별명이다.
11위. 디디에 데샹
(Didier Deschamps)
국적: 프랑스
생년월일: 1968. 10. 15.
신체조건: 174cm
주요 클럽: 유벤투스 FC
프랑스 축구의 전성시대를 이끈 미드필드 라인의 리더. 1998 FIFA 월드컵 우승과 2000 UEFA 유로 우승 당시 레블뢰 군단의 주장으로서 활약했다. 특유의 안정적인 수비력 및 원활한 볼 배급 능력에 착안해 세간에서 '물탱크'로 묘사되었던 데샹은 클럽 커리어의 전성기를 이탈리아 유벤투스 소속으로 보냈다. 믿음직스러웠던 그와 함께, 비안코네리는 3차례 세리에 A 우승과 1995/96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포함한 10개의 우승타이틀을 쓸어담았다. 참고로 데샹은 발롱도르 최우수 20인에 통산 3차례 입성했고, 프랑스 <옹즈 몽디알>이 선정한 유럽 베스트 11에 4차례 이름을 올렸다.
10위. 페르난도 레돈도
(Fernando Redondo)
국적: 아르헨티나
생년월일: 1969. 6. 6.
신체조건: 186cm
주요 클럽: 레알 마드리드
'수비형 미드필더의 교과서'라 불렸던 1990년대 세계 최고의 앵커 미드필더. 기습적인 공격 가담, 창조적인 패스, 우아한 볼 컨트롤 능력, 군더더기 없는 슬라이딩 태클 등을 그라운드 위에서 두루 뽐냈다. 그는 스페인의 레알 마드리드 소속으로 클럽 커리어의 전성기를 누렸고, 팀에 2차례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1997/98, 1999/2000)을 안기는 한편 2000년 'UEFA 올해의 클럽 축구선수'를 수상했다. 아르헨티나 대표팀의 일원으로서 레돈도는 감독과의 불협화음으로 인해 오랜 기간 활약하지 못하였으나, 나름 영향력 있는 퍼포먼스를 펼쳐 보였다. 그는 1992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과 1993 코파 아메리카 모두에서 MVP급 활약상을 선보이며 조국을 우승으로 이끈 바 있다.
9위. 다닐루 아우빙
(Danilo Alvim)
국적: 브라질
생년월일: 1920. 12. 3.
신체조건: 182cm
주요 클럽: CR 바스쿠 다 가마
브라질 축구의 수비형 미드필더 계보를 열어젖힌 선수이자, 유럽의 'WM 시스템'이 브라질에도 적용될 수 있도록 도운 진정한 공로자. 하체의 여러 부위를 활용한 볼 컨트롤 능력으로 정평이 나 있었으며, 정밀도 높은 태클은 물론 상대방의 허를 찌르는 중장거리 킬러패스로도 유명했다. 커리어피크를 CR 바스쿠 다 가마에서 누렸던 아우빙은 1948 남미 클럽 축구 선수권 대회 우승으로 대표되는 구단 최고의 전성기, 이른바 'Expresso da Vitória'(승리의 급행열차) 시대를 이룩했다. 그는 셀레상의 유니폼을 입고서 1949 코파 아메리카 우승, 1950 FIFA 월드컵 준우승을 달성한 바 있다.
8위. 지투
(Zito)
국적: 브라질
생년월일: 1932. 8. 8.
신체조건: 179cm
주요 클럽: 산투스 FC
1950년대~1960년대에 걸친 산투스와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수비형 미드필더. 부지런한 활동량과 뛰어난 태클 실력을 바탕으로 수도 없이 상대 공격을 끊어내며 팀의 대들보 역할을 톡톡히 수행해냈다. 프로 커리어 전부를 산투스에서만 보낸 그는 9차례 상파울루 주립 리그 우승, 브라질 전국 리그 5연패,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및 인터콘티넨탈컵 2연패를 클럽에 선사한 바 있다. 지투는 셀레상의 일원으로서 1958, 1962 FIFA 월드컵 2연패에 큰 수훈을 세웠으며, 특히 체코슬로바키아와의 1962 월드컵 결승전에서는 천금같은 결승골을 득점했다.
7위. 안드레아 피를로
(Andrea Pirlo)
국적: 이탈리아
생년월일: 1979. 5. 19.
신체조건: 177cm
주요 클럽: AC 밀란
21세기 최고의 딥라잉 플레이메이커. 명석한 두뇌를 바탕으로 후방에서 경기 전체를 설계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작곡가'를 연상케 했다. 또한 탁월한 각력을 지니고 있었으며, 특히 그가 패널티 에어리어 바로 바깥쪽에서 구사하는 오른발 프리킥은 환상 그 자체였다. 프로 커리어의 전성기를 자국 리그의 AC 밀란과 유벤투스에서 보낸 피를로는 이들 소속으로 6차례 세리에 A 우승과 2차례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거뒀고, '이탈리아 세리에 A 올해의 선수'를 3연속으로 차지했다(2012~2014). 그는 아주리 군단과 함께 2006 FIFA 월드컵 우승, 2012 UEFA 유로 준우승을 이뤄냈으며, 그 중 전자의 대회에서 '지네딘 지단', '파비오 칸나바로'에 이은 브론즈볼을 수상했다.
6위. 옵둘리오 바렐라
(Obdulio Varela)
국적: 우루과이
생년월일: 1917. 9. 20.
신체조건: 183cm
주요 클럽: CA 페냐롤
<국제축구역사통계연맹> 선정 20세기 남아메리카 최고의 축구선수 13위. 'Destroyer'(파괴자) 스타일의 선수였으며, 치명적인 슬라이딩 태클과 끈적끈적한 허슬플레이 등으로 상대 공격수들을 진절머리나게 만들었다. 그는 당대 남아메리카 최고의 클럽 가운데 하나였던 CA 페냐롤 소속으로 월드클래스의 기량을 선보이며 6차례 우루과이 리그 우승을 포함한 20개의 우승타이틀을 들어올렸고, 우루과이 대표 선수로서 1942 코파 아메리카 우승과 1950 FIFA 월드컵 우승을 이뤘다. 바렐라는 탁월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오랜 기간 동안 소속클럽 및 대표팀에서 주장직을 역임해, 세간에서 'El Negro Jefe'(검은 우두머리)로 통했다.
5위. 루이스 몬티
(Luis Monti)
국적: 아르헨티나
생년월일: 1901. 5. 15.
신체조건: 167cm
주요 클럽: 유벤투스 FC
수비형 미드필더라는 포지션의 모태를 제공한 선수. 저돌적인 플레이스타일로 유명했으며, 엄청난 수준의 활동량을 자랑해 남들보다 2배 더 뛰어다닌다는 뜻의 'Doble Ancho'(도블레 앙코, 두 배의 걸음)라는 이명으로 불렸다. 오리운디(이탈리아 혈통을 가진 타국 출신인)였던 그는 아르헨티나 대표팀과 이탈리아 대표팀 모두에서 활약하며 FIFA 월드컵 우승 및 준우승을 각 1차례씩 차지했고, 코파 아메리카 우승과 하계 올림픽 축구 은메달까지 달성했다. 몬티는 2개의 서로 다른 국적을 가지고 FIFA 월드컵 결승 무대를 밟아본 역사상 유일한 선수이기도 하다.
4위. 에른스트 오크비르크
(Ernst Ocwirk)
국적: 오스트리아
생년월일: 1926. 3. 7.
신체조건: 183cm
주요 클럽: FK 아우스트리아 빈
1950년대를 풍미한 전설적인 센터하프(오늘날의 수비형 미드필더 혹은 센터백)이자 오늘날 딥라잉 플레이메이커의 선조격 선수. 광활한 시야, 정교한 중장거리 패스, 그리고 안정적인 공수 밸런스 등을 토대로 경기의 흐름을 좌지우지하는 이른바 그라운드 위의 지배자였다. 또한 플레이 자체가 매우 일관적이고 뛰어나, 한 영국 언론은 그를 시계장치에 비유하기도 했다. 오크비르크는 1954년 이탈리아의 <템포>가 뽑은 축구사 베스트 11에 이름을 올렸으며, 1981년에는 브라질의 <플라카르>에 의해 역대 최고의 센터하프로 선정되었다(잉글랜드의 빌리 라이트와 공동).
3위. 보지크 요제프
(József Bozsik)
국적: 헝가리
생년월일: 1925. 11. 28.
신체조건: 174cm
주요 클럽: 부다페스트 혼베드
1950년대 초중반을 풍미한 극강의 축구 국가대표팀, 이른바 'Magical Magyar'(매직 마자르, 마법의 헝가리)의 중추신경. 당대 최고의 공격형 하프백으로 여겨졌으며, 후방에서의 정밀도 높은 패스 및 태클로 그라운드 위를 아름답게 수놓았다. 그는 '매직 마자르' 소속으로 1952 하계 올림픽 축구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이듬해 열린 중부 유럽 인터네셔널컵에서 우승을, 1954년 열린 FIFA 월드컵에서는 준우승을 차지했다. 보지크는 1980년대까지만 해도 역대 최고의 중앙(수비형) 미드필더로 폭넓게 인정받았는데, 1970년 <월드스포츠>가 뽑은 지난 20년 간 세계 베스트 11에 이름을 올렸음은 물론, 1984년 <프랑스 풋볼>이 뽑은 역대 최고의 하프백에도 선정되었다.
2위. 호세 레안드로 안드라데
(José Leandro Andrade)
국적: 우루과이
생년월일: 1901. 11. 22.
신체조건: 180cm
주요 클럽: 클루브 나시오날
'La Maravilla Negra'(경이로운 흑인)라 불렸던 우루과이 축구계의 레전드. 오늘날의 우측 수비형 미드필더인 라이트 하프 위치에서 주로 활약했으며, 빠른 스피드와 탄탄한 수비력 그리고 흑인 특유의 탄력을 앞세워 미드필드 전체를 장악하는데 능했다. 그는 대표 선수로서 2차례 하계 올림픽 축구 금메달을 획득했고, 3차례 코파 아메리카 우승과 1930년 초대 FIFA 월드컵 우승 또한 일궈냈다. 1988년, 안드라데는 <이탈리아축구연맹>에 의해 축구사 베스트 11의 일원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1위. 프랑크 레이카르트
(Frank Rijkaard)
국적: 네덜란드
생년월일: 1962. 9. 30.
신체조건: 190cm
주요 클럽: AC 밀란
자타가 공인하는 축구 역사상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 190대의 큰 키와 다부진 체구를 바탕으로 과격한 육탄전에 능했고, 정교한 슬라이딩 태클 능력과 팀 전체를 이끄는 막강한 리더십까지 두루 갖추고 있었다. 레이카르트는 기본적으로 수비형 미드필더 위치에서 활약하며 포백라인 커버에 주력했으나, 가공할 만한 킥 임펙트와 효과적인 오버래핑 능력을 토대로 팀의 공격에도 큰 부분 일조하는 모습을 보였다. AC 밀란 소속으로 명성을 떨쳤던 그는 동일 국적의 '마르코 판 바스턴', '뤼트 휠리트'와 '오렌지 3총사'를 결성하여 2차례 유로피언컵 우승을 포함한 수많은 영광을 품에 안았다. 레이카르트 개인은 1992년 '이탈리아 세리에 A 올해의 선수'를 수상했으며, 1988년과 1989년 발롱도르 3위에 랭크되었다.
* Honourable Mentions *
호세 마리아 벨라우스테
(José María Belauste)
국적: 스페인
생년월일: 1889. 9. 3.
신체조건: 193cm
주요 클럽: 아틀레틱 빌바오
'El Leon de Amberes'(암베레스의 사자)란 별명을 갖고 있었던 당대 스페인 최고의 미드필더. 스웨덴 대표팀과의 1920 하계 올림픽 축구 은메달 결정전에서 동점을 만든 직후 "내가 저것들을 부숴버리겠어!"하고 일갈하여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이 이후 'Furia Roja'(붉은 분노)라 불리게 되는 단초를 제공했다. 아틀레틱 빌바오 원클럽맨이기도 한 그는 1905년부터 1926년까지 팀에 머무르면서 6차례 코파 델 레이 우승과 5차례 바스크 지역리그 우승을 거뒀다.
카렐 페세크
(Karel Pešek)
국적: 체코
생년월일: 1895. 9. 20.
신체조건: 173cm
주요 클럽: 스파르타 프라하
<국제축구역사통계연맹> 선정 20세기 체코 최고의 선수 3위. 체코 축구의 창세기를 빛낸 전설적인 센터하프로, 축구선수와 아이스하키선수를 병행했을 만큼 운동신경이 뛰어났다. 감각적인 볼 컨트롤 능력과 태클로도 정평이 나 있었던 그는 AC 스파르타 프라하 소속으로 클럽 커리어의 전성기를 보내며 5차례 체코슬로바키아 리그 우승과 1차례 미트로파컵 우승을 거뒀다. 대표 선수로서 페세크는 1920, 1924 하계 올림픽에 참가한 바 있다.
데이비드 메이클레존
(David Meiklejohn)
국적: 스코틀랜드
생년월일: 1900. 12. 12.
신체조건: 170cm
주요 클럽: 레인저스 FC
2009년 영국의 <더 타임즈>가 선정한 레인저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 당대 영국 최고의 센터하프 중 한 명으로, 수비 포지션을 맡기에 매우 작은 체구를 가지고 있었으나 불타오르는 투지와 폭발적인 활동량으로 자신의 신체적 약점을 훌륭히 보완해냈다. 1919년부터 1936년까지 레인저스에서 활약했던 그는 이 기간 동안 12차례 스코틀랜드 리그 우승과 5차례 스코티시컵 우승을 따냈으며, '스코틀랜드 리그 11'에도 여러 번 선출되어 총 6차례의 경기에 모습을 드러냈다.
에르네스토 라자티
(Ernesto Lazzatti)
국적: 아르헨티나
생년월일: 1915. 9. 25.
신체조건: 178cm
주요 클럽: 보카 주니어스
'El Pibe de Oro'(골든보이)라 불렸던 1930~40년대 보카 주니어스의 주축 미드필더. 라이트 하프 '카를로스 소사', 레프트 하프 '나탈리오 페스치아'와 함께 견고한 하프백 콤비를 형성하여 이름을 떨쳤고, 팀에 머물렀던 14시즌 간 5차례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우승을 거머쥐었다. 같은 국적의 전설적인 공격수 '리날도 마르티노'는 그의 페어플레이 정신과 지성을 격찬하며 라자티를 '아르헨티나 축구계의 위대한 센터하프 중 한 명'이라 평했다.
스바토플루크 플루스칼
(Svatopluk Pluskal)
국적: 체코
생년월일: 1930. 10. 28.
신체조건: 182cm
주요 클럽: 두클라 프라하
강인한 정신력과 날카로운 슬라이딩 태클 능력으로 중무장하고 있었던 당대의 명 센터하프. '요제프 마조푸스트', '라디슬라프 노바크'와 '두클라 트리오' 조합을 형성해 두클라 프라하 소속으로 8차례 체코슬로바키아 리그 우승을 거뒀고, 체코슬로바키아 대표팀 소속으로는 1960 UEFA 유로 3위와 1962 FIFA 월드컵 준우승의 위업을 이뤘다. 그는 1963년 <잉글랜드축구협회> 창립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개최된 잉글랜드 대표팀 VS 세계 올스타 경기에 참가한 바 있다.
빅토르 베니테스
(Víctor Benítez)
국적: 페루
생년월일: 1935. 9. 12.
신체조건: 172cm
주요 클럽: 보카 주니어스
1969년 아르헨티나 언론지 <엘 그라피코> 선정 1960년대 남아메리카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 3위. 엄청난 수준의 지구력과 결코 포기하지 않는 투지를 자랑했던 선수로, 이탈리아에서 뛰던 시절에는 'Il Peruviano di Fuoco'(불타오르는 페루인)라 불리기도 했다. 그는 알리안사 리마, 보카 주니어스, AC 밀란을 거치면서 명성을 쌓았고, 특히 밀란 소속으로 1962/63 유로피언컵에서 우승하여 빅이어를 들어올린 최초의 페루 국적의 선수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젤리코 페루시치
(Željko Perušić)
국적: 크로아티아
생년월일: 1936. 3. 23.
신체조건: 164cm
주요 클럽: TSV 1860 뮌헨
1960년대 초중반 유럽 축구계를 풍미한 유고슬라비아 굴지의 미드필더. 지금의 수비형 미드필더에 해당하는 하프백이 주 포지션이었으며, 지칠 새 없이 그라운드를 종횡무진 뛰어다니는 높은 수준의 지구력과 우수한 수비스킬의 소유자였다. 그는 서독의 1860 뮌헨에서 커리어의 최전성기를 맞았는데, 특히 1965/66 시즌에는 무려 분데스리가 우승을 이끌어 1860 뮌헨이 바이언을 제치고 당대 뮌헨 최고의 축구클럽으로 올라서는데 공헌했다. 대표 선수로서 페루시치는 1960 UEFA 유로 준우승 및 하계 올림픽 축구 금메달에 큰 수훈을 세웠고, 그 공로로 같은 해 '크로아티아 올해의 체육인'에 선정되었다.
안테 자네티치
(Ante Žanetić)
국적: 크로아티아
생년월일: 1936. 11. 18.
신체조건: 177cm
주요 클럽: 하이두크 스플리트
1960년대 초반을 짧게 불태웠던 당대 정상급의 수비형 미드필더. 지능적인 볼 커팅 능력과 부지런한 활동량을 앞세워 유고슬라비아의 1960년 하계 올림픽 축구 금메달과 UEFA 유로 준우승을 주도했고, 같은 해 영국의 <월드 사커>가 선정한 세계 베스트 11에 이름을 올렸다. 다만 그의 대표 경력은 2년 남짓에 불과한데, 왜냐하면 그가 해외 도피의 길을 택했기 때문이었다. 서방 세계에 대한 동경심이 강했던 자네티치는 1961년 독일에 잠시 머무르고 있었던 하이두크 스플리트팀 숙소를 몰래 빠져나와 벨기에로 도망쳤고, 이후 그곳에서 커리어를 이어나갔다.
이그나시오 소코
(Ignacio Zoco)
국적: 스페인
생년월일: 1939. 7. 31.
신체조건: 183cm
주요 클럽: 레알 마드리드
1960년대 유럽 축구를 풍미한 'Ye-Ye Madrid'(예예 마드리드)의 버팀목. 수비형 미드필더와 센터백을 겸할 수 있었으며, 드넓은 수비커버와 물불 가리지 않는 터프한 태클을 자랑했다. 1962/63 시즌부터 1973/74 시즌까지 레알 마드리드에서 활약했던 그는, 이 기간 동안 7차례 라리가 우승, 2차례 코파 델 레이 우승, 1965/66 유로피언컵 우승의 금자탑을 쌓았다. 대표 선수로서도 자신의 진가를 발휘했던 소코는 1964 UEFA 유로에서 조국의 첫 메이저대회 우승을 이끌었고, 그 공로로 베스트 11에 이름을 올렸다. 참고로 소코는 1961/62 시즌 스페인의 <마르카>가 선정한 라리가 최우수 선수였다.
호세 벨라스케스
(José Velásquez)
국적: 페루
생년월일: 1952. 6. 4.
신체조건: 188cm
주요 클럽: 알리안사 리마
1970년대 남아메리카 정상급의 수비형 미드필더. 물불 가리지 않는 매서운 태클과 거침없는 오버래핑이 장기였으며, 그라운드 위에서의 강력한 사령관적 기질에 착안하여 사람들로부터 'El Patrón'(두목)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는 알리안사 리마에서 클럽 커리어의 전성기를 보내며 3차례 페루 리그 우승을 따냈고, 페루 대표 선수로서는 1975 코파 아메리카 우승과 1978 FIFA 월드컵 8강을 경험했다. 특히 그는 후자의 대회에서 '테오필로 쿠비야스', '세사르 쿠에토'와 함께 막강한 미드필드라인을 형성했다.
가브리엘레 오리알리
(Gabriele Oriali)
국적: 이탈리아
생년월일: 1952. 11. 25.
신체조건: 176cm
주요 클럽: 인테르나치오날레
1970년대 후반~1980년대 초반 이탈리아 축구를 대표했던 수비형 미드필더. 풍부한 활동량과 거친 수비 능력을 앞세워 볼 위너로서 가치를 증명했고, 이탈리아 언론은 이러한 그의 플레이스타일을 두고 'Incontrista'(부딪히는 자)라 수식한 바 있다. 인테르나치오날레와 피오렌티나에서만 클럽 커리어를 보냈던 그는 통산 400번 가까이의 정규리그 경기에 출장했으며, 2차례 세리에 A 우승을 거머쥐었다. 대표 선수로서 그는 1982 FIFA 월드컵에 참가했고, 대회 내내 기복 없는 활약으로 조국에 우승을 안겼다.
도미니크 바티나이
(Dominique Bathenay)
국적: 프랑스
생년월일: 1954. 2. 13.
신체조건: 181cm
주요 클럽: AS 생테티엔
'프랑스의 토탈풋볼러'라고 수식되는 선수. 빠른 예측력, 매서운 슬라이딩 태클, 강철같은 스태미너, 정확한 패스, 파워풀한 양발 슛팅 등을 앞세워 수비하고 찬스를 만들며 득점까지 해낼 수 있었다. 그는 자국 리그의 AS 생테티엔과 파리 생제르망에서 커리어의 전성기를 보냈으며, 특히 전자의 클럽 소속으로 각 3차례 리그앙 및 쿠프 드 프랑스 우승, 1975/76 유로피언컵 준우승을 이뤄낸 바 있다. 바티나이 개인은 1976년과 1977년 발롱도르 후보에 지명되어 각각 26위, 13위를 기록했다.
리카르도 지우스티
(Ricardo Giusti)
국적: 아르헨티나
생년월일: 1956. 12. 11.
신체조건: 178cm
주요 클럽: CA 인데펜디엔테
1980년대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에 있어 없어서는 안 되었던 만능 유틸리티 플레이어. 주 포지션인 중앙(수비형) 미드필더뿐만 아니라 측면 미드필더, 라이트 윙백, 라이트 풀백 등 피치 위의 다양한 역할을 소화해낼 수 있었다. 이러한 그의 멀티플레이어 능력은 아르헨티나 대표팀이 1986 FIFA 월드컵 우승을 달성하는 데에 필수불가결했다. 몇몇 사람들은 지우스티가 그 당시 팀의 에이스였던 '디에고 마라도나' 못지 않은 이른바 '언성히어로'였다고 평하기도 한다.
얀 바우터스
(Jan Wouters)
국적: 네덜란드
생년월일: 1960. 7. 17.
신체조건: 175cm
주요 클럽: AFC 아약스
1980~90년대 네덜란드 축구를 빛낸 싸움꾼 미드필더. 다부진 몸매와 탄탄한 태클 능력에 착안해 'Beton'(콘크리트)이란 별명을 얻었으며, 심판의 눈을 피해 팔꿈치를 쓴다던지 하는 교묘한 반칙플레이로 영국 언론에서 'Dutch Thug'(네덜란드의 폭력배)라 묘사되기도 했다. 그는 클럽 커리어의 전성기를 AFC 아약스에서 구가하며 1986/87 UEFA 컵 위너스컵 우승과 1991/92 UEFA컵 우승을 거뒀고, 독일의 바이에른 뮌헨에서도 활약하여 1992/93 시즌 <키커>가 선정한 분데스리가 베스트 11에 뽑혔다. 대표 선수로서 그는 1988 UEFA 유로에서 전 경기 선발 풀타임 출장한 끝에 조국의 우승을 일궈냈다.
프랑키 판 데르 엘스트
(Franky Van der Elst)
국적: 벨기에
생년월일: 1961. 4. 30.
신체조건: 184cm
주요 클럽: 클뤼프 브뤼허
축구황제 '펠레'가 선정한 'FIFA 100'에도 이름을 올렸던 실력파 선수. 미드필드의 넓은 구역을 종횡무진 쏘다니는 왕성한 활동량이 돋보였으며, 거침없는 슬라이딩 태클로 상대 공격수들을 진절머리나게 만들곤 했다. 그는 1984/85 시즌부터 1998/99 시즌까지 벨기에의 클뤼프 브뤼허 소속으로 활약하면서 600번이 넘는 공식전에 모습을 드러냈고, 5차례 벨기에 리그 우승을 거두는 한편 '벨기에 올해의 축구선수'를 2차례 수상했다(1990, 1996). 판 데르 엘스트는 1986, 1990, 1994, 1998 FIFA 월드컵에 연속으로 참가했는데, 특히 1986년 대회에서는 4강의 위업을 이뤄냈다.
세르히오 바티스타
(Sergio Batista)
국적: 아르헨티나
생년월일: 1962. 11. 9.
신체조건: 186cm
주요 클럽: 아르헨티노스 주니어스
1980년대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디에고 마라도나'의 보디가드 역할을 자처했던 선수. 드넓은 활동반경으로 정평이 나 있었으며, 수비라인 커버는 물론 2선에서부터 상대 공격을 적극적으로 차단해내곤 했다. 그는 아르헨티노스 주니어스에서 클럽 커리어의 전성기를 구가하여 2차례 리그 우승과 1985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을 따냈고, 대표 선수로서는 1986 FIFA 월드컵 우승과 차기 대회 준우승에 이바지했다. 바티스타는 <엘문도>가 뽑은 '남아메리카 올해의 축구선수' 최우수 10인에 3번 입성했고, 1988년과 1989년에 개인 통산 최고 순위인 7위를 기록했다.
디터 아일츠
(Dieter Eilts)
국적: 독일
생년월일: 1964. 12. 13.
신체조건: 186cm
주요 클럽: SV 베르더 브레멘
1990년대 분데스리가 정상급의 수비형 미드필더. 브라질 국가대표 미드필더 '알레망'과 얼굴이 닮았다고 하여, 팬들로부터 '동프리시아의 알레망'이라는 이명으로 불렸다. 엄청난 수준의 지구력과 풍부한 활동량을 자랑했던 그는, SV 베르더 브레멘에서만 클럽 커리어를 보내며 2차례 분데스리가 우승, 3차례 DFB 포칼 우승, 1991/92 UEFA 컵 위너스컵 우승을 거머쥐었다. 대표 선수로서 아일츠는 1996 UEFA 유로 우승에 공헌했고, 특파 기자단이 선정한 대회 최우수 선수에 이름을 올린 바 있다.
폴 인스
(Paul Ince)
국적: 잉글랜드
생년월일: 1967. 10. 21.
신체조건: 178cm
주요 클럽: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1990년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최고의 앵커 미드필더. 흑인 특유의 운동능력을 살린 터프한 태클이 돋보였으며, 지구력과 주력 역시 우수해 90분 내내 중원을 헤집으며 상대 선수들을 효과적으로 괴롭혔다. 그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커리어의 전성기를 보냈고, 팀에 6시즌 간 머무르면서 2차례 EPL 우승을 포함한 10개의 우승타이틀을 거머쥐었다. 'PFA 올해의 팀' 3차례 선정은 덤. 대표 선수로서 인스는 1996 UEFA 유로에 참가했고, 공격형 미드필더 '폴 개스코인'을 보좌하는 수비형 미드필더로 출전하여 조국의 4강 진출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세자르 삼파이우
(César Sampaio)
국적: 브라질
생년월일: 1968. 3. 31.
신체조건: 178cm
주요 클럽: SE 파우메이라스
2차례 '브라질 전국 리그 올해의 선수' 수상에 빛나는 1990년대 브라질 정상급의 미드필더. 상파울루주 4대 명문(산투스, 파우메이라스, 상파울루, 코린치안스) 모두를 거친 역사상 몇 안 되는 선수 중 한 명으로, 파우메이라스에서 최전성기를 구가하여 2차례 브라질 전국 리그 우승과 1999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을 거뒀다. 빈틈없는 수비력과 기습적인 오버래핑 능력을 겸비하고 있었던 그는, 대표 선수로서 1997 코파 아메리카 우승, 1997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우승, 1998 FIFA 월드컵 준우승을 달성했다.
파울루 수사
(Paulo Sousa)
국적: 포르투갈
생년월일: 1970. 8. 30.
신체조건: 178cm
주요 클럽: 유벤투스 FC
'포르투갈 골든 제너레이션'을 상징하는 월드클래스 수비형 미드필더. 지능적인 볼 차단, 유연한 볼 컨트롤, 그리고 가공할 만한 패스 능력으로 정평이 나 있었으며, 1980년대 브라질의 전설적인 미드필더 '파울루 호베르투 파우캉'과 비교되었을 정도로 그 기량이 뛰어났다. 다만 커리어를 통틀어 잔부상이 굉장히 많았는데, 이 때문에 전성기를 길게 가져가지 못해 후대에서의 평가는 박한 편이다. 이탈리아 유벤투스에서 최전성기를 구가했던 그는 1995/96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의 주역으로 활약했고, 1994/95 시즌에는 세리에 A 우승과 MVP를 석권했다.
디노 바조
(Dino Baggio)
국적: 이탈리아
생년월일: 1971. 7. 24.
신체조건: 188cm
주요 클럽: 파르마 FC
1990년대 중후반 유럽 정상급의 수비형 미드필더. 거칠 것 없는 수비와 역동적이면서도 효율적인 움직임으로 절찬받았으며, 강철 같은 스태미너 및 좋은 위치선정 감각까지 겸비해 보다 높은 위치의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로도 기용되었다. 파르마를 대표하는 레전드인 그는 1994년부터 2000년까지 팀에 몸담았고, 이 기간 동안 1998/99 코파 이탈리아 우승과 2차례 UEFA컵 우승 등 많은 영광을 거머쥐었다. 대표 선수로서 바조는 1994 FIFA 월드컵에 참가했고, 노르웨이전과 스페인전에서 중거리포로 득점하는 등 맹활약하여 조국의 결승 진출을 이끌었다.
마르코스 세나
(Marcos Senna)
국적: 스페인
생년월일: 1976. 7. 17.
신체조건: 177cm
주요 클럽: 비야레알 CF
브라질 상파울루 태생이지만, 그 뛰어난 능력을 인정받아 스페인으로 귀화했던 선수. 헌신적인 수비와 드넓은 커버 범위를 바탕으로 원홀딩 역할을 완벽에 가깝게 소화해낼 수 있었으며, 그 뿐 아니라 안정적인 볼 배급 능력과 브라질리언다운 유연한 볼 컨트롤 능력까지 장착하고 있었다. 그는 2000년대 중후반 '노란 잠수함' 비야레알의 약진을 이끌었고, 라리가 준우승을 이뤄낸 2007/08 시즌에는 '스페인 올해의 축구선수'에 선정되기도 했다. 대표 선수로서 세나는 2008 UEFA 유로에서 이른바 '언성히어로'를 자처하여 조국의 통산 2번째 우승의 주역이 되었다.
지우베르투 시우바
(Gilberto Silva)
국적: 브라질
생년월일: 1976. 10. 7.
신체조건: 185cm
주요 클럽: 아스날 FC
2000년대 브라질 축구를 빛낸 홀딩 미드필더의 정수. 어마어마한 수비력을 지니고 있었던 선수로, 수비라인과 미드필드라인의 넓은 공간을 폭넓게 움직이며 상대 공격의 흐름을 끊어내곤 했다. 잉글랜드 명문 아스날에서 커리어의 전성기를 보냈던 그는, 2002/03 시즌부터 2007/08 시즌까지 팀에 머무르면서 2003/04 프리미어리그 무패우승, 2005/06 UEFA 챔피언스리그 준우승을 포함한 수많은 영예를 누렸다. 대표 선수로서 지우베르투는 2002 FIFA 월드컵 우승, 2007 코파 아메리카 우승, 2차례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우승에 수훈을 세웠으며, 그 중 2002 월드컵에서는 터키와의 조별리그 1차전부터 독일과의 결승전까지 전 경기 선발 풀타임을 소화하는 저력을 보여줬다.
조르지뉴
(Jorginho)
국적: 이탈리아
생년월일: 1991. 12. 20.
신체조건: 180cm
주요 클럽: 첼시 FC
2010년대 후반~2020년대 초반 이탈리아 축구를 빛낸 브라질 태생의 딥라잉 플레이메이커. 득점력은 저조한 편이었으나 경기의 흐름을 읽는 높은 수준의 전술안과 후방에서의 정밀도 높은 롱패스로 팀 공격의 시발점 역할을 기능하곤 했다. 그는 이탈리아 나폴리와 잉글랜드 첼시에서 커리어의 전성기를 보냈으며, 활약 기간 동안 리그 탑클래스 미드필더로 이름을 떨쳤다. 조르지뉴는 첼시의 2020/21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과 이탈리아의 2020 UEFA 유로 우승(코로나 19로 2021년에 개최)을 이끈 공로로 2021년 'UEFA 올해의 남자 선수상'을 수상했다. 그는 같은 해 발롱도르 투표에서 3위를 마크하기도 했다.
요주아 키미히
(Joshua Kimmich)
국적: 독일
생년월일: 1995. 2. 8.
신체조건: 177cm
주요 클럽: 바이에른 뮌헨
2020년대 독일 최고의 선수 가운데 한 명. 바이에른 뮌헨과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필립 람'의 후계자로 각광받았으며, 높은 전술이해도와 특유의 다재다능함을 앞세워 수비형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 라이트백, 센터백 등 피치 위 다양한 포지션을 능숙히 소화해낼 수 있었다. 분데스리가 공식 웹사이트에 의해 '맥가이버칼 같은 선수'라 묘사되었던 그는, 바이언 소속으로 2019/20 시즌 '트레블'(분데스리가, DFB 포칼, UEFA 챔피언스리그 3관왕)을 이끌어 2020년 'FIFPro 월드 베스트 11'에 선정되었다.